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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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 덕성여대 심리학과 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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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미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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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시와 함께 마음 읽기

2012-1

덕성여대

심리학과

詩와 함께 마음 읽기

Page 2: 시와 함께 마음 읽기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차 미리사>

Page 3: 시와 함께 마음 읽기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 이혜지

가끔 내 이름을 부르고 싶다, 이석 / 이혜지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최영미 / 박효진

꿈 팔러 가는 길, 하정열 / 임선영

이별의 눈물, 이해인 / 김수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 / 신다정

빈집, 기형도 / 김민정

그것은 하나의 악취, 김언희 / 송정은

향기로운 말, 이해인 / 인혜인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박노해 / 최민주

사막, 정호승 / 정예인

잘 쓸어논 마당, 황동규 / 전정은

침 흘리는 사내, 유용주 / 이주연

뼈아픈 후회, 황동규 / 최소희

귀천, 천상병 / 이은진

수선화에게, 정호승 / 하지수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 신수안

기쁨을 찾는 기쁨에게, 이해인 / 유지민

즐거운 편지, 황동규 / 서다솔

사랑으로 나는, 김정란 / 김윤선

Page 4: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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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 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이기철 詩(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민음사, 2000)

Page 5: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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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첫 번째로는 비유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 채소처럼 푸른 손, 별 같은 약속,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 상추 잎 같은 편지 등

읽으면 읽을수록 깨끗하고 푸른 느낌, 제목만큼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비유여서 좋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나중에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나중에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 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라는 말이 궁금했다. 대개 하루의 끝은 밤이고, 깊

은 휴식을 취하는 것 그리고 낮의 일을 되돌아보는 것도 밤이다. 피곤한 몸을 눕히고 고단

한 낮의 일과에 대한 보상으로 편안히 잠잘 수 있는 시간은 밤이다. 이러한 밤을 노년기에

비유했다고도 생각이 들었고,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라는 말은 하

루하루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푸른 손으

로 하루를 씻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

별은 숭고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의미로 생각했다. 봄에는 화사한 벚꽃이

잔뜩 피지만 결국 꽃도 언젠가는 지기 마련이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화사할 때가 있으면

앙상한 때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만남이라는 시간이 있는 반면 이별이라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화사한 인생의 봄, 벚꽃이 피는 시기에 많은 만남이 이루어지고 나는 행복할 것이

다. 그러나 앙상한 인생의 겨울날, 나는 아플 것이다. 내가 원하던 일이 되지 않을 수도 있

고 오해가 생길수도 있고 비난받을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 수도 있지만 겨

울이 가면 결국 다시 봄이 올 것이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나의 시련을 예고할 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별을 예고할 때, 나는 다음 봄을 생각하며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했다. 결국 그 시련과 이별은 나를 더 성숙하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많이 어린지, 다가올 시련을 생각하면 무섭기만 하다.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 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향기로운 꽃잎의 말은 도

대체 어떤 말일까. 상추 잎 같이 푸른 편지는 도대체 어떻게 쓰면 그런 편지가 되는 걸까.

나는 아직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상추 잎 같은 편지를 보

내주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고민하다보면 향기로운 꽃잎의 말

이 무엇인지, 상추 잎 같이 푸른 편지는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중에 향기

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 잎 같은 편지를 보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꽃처

럼 향기롭고 상추 잎처럼 푸르른 순수함으로 내 아는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다. 그 누군가에

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한다. 그 의미를 찾고자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는 저자처럼 나도 이 세상에 살고

싶어 별 같은 약속을 하고 싶다. 그 약속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항상 내 마음 속에 자

리 잡아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이혜지)

Page 6: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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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이름을 부르고 싶다.

움푹진푹하던 시절에 가슴으로

아카시아가 들어왔다.

하얗게 비리던 꿈이

속속들이 혈관을 찾아 검은 뿌리를 들이밀고

어느덧 마른 기침 소리에 날선 가시가 묻어나온다.

쩍쩍 갈라지는 등줄기에서

세월의 각질이 부서져 내린다.

아카시아 가시가 아카시아 가시스러울 때

넘어지려 한다.

세찬 바람을 기다려본다.

이석 詩 ( 가끔 내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늘의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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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주 가끔 내 이름을 부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주 작게. 힘들고 서러울 때는 왜 내

가 살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난 결국 살고 싶다. 나는 아직 내 이름을 불러보고

싶으니까. 아카시아 가시가 아카시아 가시스러울 때 넘어지려한다는 저자처럼 나도 용기 있

게 세찬 바람을 기다릴 수 있을까. 나에게 다가올 미래가 막연하고 무섭다. 가끔씩은 험한

세상에서 사는 것 자체가 무섭다. 하지만 용기를 갖고 싶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내 이름

을 부르고 싶을 때 내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이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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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커피도 홍자도 아니야

재미없는 소설책을 밤늦도록 붙잡고 있는 건

비 그친 뒤에도 우산을 접지 못하는 건

짐을 쌌다 풀었다 옷만 갈아입는 건

어제의 시를 고쳐쓰게 하는 건

커피도 홍차도 아니야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돌아누워도 엎드려도

머리를 헝클어도 묶어보아도

새침 떨어볼까요 청승 부려볼까요

처맨 손 어디 둘 곳 몰라

찻잔에 쥘까요 무릎 위에 단정히 놓을까요

은근히 내리깔까요 슬쩍 훔쳐볼까요

들쑥날쑥 끓는 속 어디 맬 곳 몰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속 뒤져보면

그래도 어딘가 남아이쓸, 잡초 우거진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에 그대, 들어오겠나요

어느날 문득 소나기 밑을 젖어보겠나요

잘 달인 추억 한술

취해서 꾸벅이는 밤

너에게로, 너의 정지된 억개 너머로

잠수해 들어가고픈

비라도 내렸으면

최영미 詩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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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밤에 잠 못 들고 들뜨고 설렌 여자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시이다.

흔히 밤에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마시는 카페인 음료인 커피나 홍차 아닌 그 사람 때문에

잠 못 이루고, 그 사람이 좋다고 추천한 재미없는 책을 붙잡고 읽고 비오는 날 같은 우산을

쓴 추억에 우산도 접지 않고 멍하니 다시 추억하게 하는 남자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그 사

람 생각에 누워서도 이리 저리 뒤척이며 이건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헷갈리는

마음에서 많이 공감했다. 3연에서는 대상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사람 앞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손은 어디에 두고 눈을 맞춰야 할지 피해서 찻잔만

바라볼지 고민하는 모습이 들어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카페에 마주보고 앉아 잡지도

못한 손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괜히 빨대 껍질만 찢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들쑥날쑥 끓는 속 어디 맬 곳 몰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속 뒤져보면’을 읽으면서

화자가 그렇게 한 대상에게 매여 있지는 않구나. 아직 자기도 잘 모르겠어서 오랜 시간 끌

어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연에서 보면 ‘그래도 어딘가 남아 있을 비무장 지

대’는 다른 사람이 지나가지 않은, 다른 사람과의 추억으로 오염되지 않은 마음 한 구석이

라고 생각이 든다. 전 연인의 자리가 아닌 그 사람만의 자리를 뜻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

람과 했던 애칭이나 추억장소를 지금의 사람과 하게엔 미안하고 껄끄러운 마음을 비무장지

대로 표현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5연에서는 잘 다린 술처럼 무르익고 그 추억을 마셔

서 취해 꾸벅이는 이 밤에 그 사람 생각이 더 나고 그 어깨로 잠수하고 싶은, 비라도 내려

서 다시 우산을 나눠 쓰고 싶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나에게 더 와 닿게 시를

다시 써봤다. (박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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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팔러 가는 길

우리는 꽃보다 향기로운 꿈을 꾸며

바구니에 숙명을 담은 채

삶의 여정을 떠나지

현실의 냉혹함에 도전하기 위해

한 걸음 또 한 발짝 걸어서 가지

때로는 종이 꽃 같은 희망마저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꿈보다 맑은 마음 하나만 안고

여울목에 돌다리 하나씩 놓아가며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가지

오늘은 허부적대던 어제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밀려오는 일상의 모습에서

우린 다시 맑아지고

마주친 사람들은 밝은 별을

하나씩 가슴에 안고 가며

“좋은 꿈 한단 사세요”

외치고 있네 그려

하정열 詩 (삶의 흔적 돌, 황금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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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이번 시 감상문을 쓰기 위해 우리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시이다.

어떤 시를 써야 하나 계속 고민하던 중 이 시를 읽는 순간 공감이 되어 바로 이 시로 정하

였다. 본인은 이 시를 우리나라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서 감상해 보았다.

먼저 ‘꿈 팔러 가는 길’이란 제목과 1연의 내용은 우리가 취업을 하기위해 자기소개서

를 기업에 넣고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의 이미지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2연은 취업실패를 한

뒤 또 다른 회사를 찾는 모습이 연상되었으며 ‘여울목에 돌다리 하나씩 놓아가며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가지’란 대목은 특히 우리나라 취업준비생 더 나아가 미래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종이꽃 같은 희망’은 희망이 가냘

프고 크지 않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3연은 최종면접까지 올라간 후 최종면접을 기다리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으며 ‘밝은 별’은 친한 친구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서로 진정으로 축하해주고 격려해 주는 모습과 새로 피어난 희망을 나타낸다고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4연은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연인데, “좋은 꿈 한단 사세요”란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위해 진정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 하는데 이러한 우리의 꿈들을 한 낱 채소 한단 부르듯이 보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정말 우리를 채용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들은 그들이 맛있게 만

들려는 찌개에 들어가는 그리고 들어가서 한껏 국물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준비재

료 중의 하나로 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4학년이 되면 ‘현실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의 ‘오늘은 허부적대던 어제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란 대목처럼 나중

에 지금의 대학생활이 허부적대었다라고 생각이 들지 않도록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시를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보았는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이시를 취업이 아닌 다른 꿈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해석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

지만 모두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 꿈을 얻기란 모두가 힘이 들고 쉽지 않

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읽고 ‘나만 힘들고 어려워’ 란 생각을 버

리고 ‘우리 모두 어렵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란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으면 한다.

(임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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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눈물 / 이해인

모르는 척

모르는 척

겉으론 무심해 보일 테지요

비에 젖은 꽃잎처럼

울고 있는 내 마음은

늘 숨기고 싶어요

누구와도 헤어질 일이

참 많은 세상에서

나는 살아갈수록

헤어짐이 두렵습니다

낯선 이와 잠시 만나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눈물이 준비되어 있네요

이별의 눈물은 기도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라는

순결한 약속입니다

이해인 詩 (『작은 위로』, 열림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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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는 수능을 치르기 위해 시에 나오는 단어들의 의미를 달달 외웠어야 했다. 그

래서 시를 배우는 날이면 언제 소설로 넘어가나 교과서를 넘겨봤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그

말을 해주신 것은 오늘처럼 날이 무더워질 때쯤이었다. 어떤 시를 배우다가 반 친구들이 꾸

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국어 선생님이 한 마디 하셨다.

“지금은 시가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이 시를 다시 읽었을 때

에는 분명 가슴에 와 닿을 거야.”

그 때는 내가 정말 나이가 들면 시를 읽고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수

능을 칠 필요가 없는데도 내가 시를 찾아 읽기나 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21살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자친구가 얼마 전 군대를 갔다.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기 전날 밤에 편

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머리가 하얘졌다. 너무 울적하고 답답했다. 지금의 내 심

정을 전해주고 싶은데 막상 쓰려니 글로 표현이 잘 안 됐다. 차라리 수업을 빼고 훈련소 앞

에서 포옹이라도 꽉 할 수 있다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서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편지의 첫 번째 장에는 내용이 참 뻔했다. 네가 입대할 때가 되어서 날씨가 갑자기 무더

워지니 걱정이다, 너와 내가 만난 지 벌써....... 첫 장을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채웠는데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편지지에 뽀뽀라도 해볼까, 사진을 넣을까 두리번거리다

책장에 꽂혀 있던 시집이 눈에 띄었다. 새벽 내내 시를 찾다가 편지의 두 번째 장에는 이

시를 써주었다.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는 시지만 그 때에는 지금처럼 눈물 날 것 같은 시는 아니었다. 그

러나 내가 ‘이별의 눈물’을 읽고 목구멍이 콱 막히고, 가슴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을 붉히

는 이유는 시 속의 ‘울고 있는 내 마음’과 남자친구를 보낸 내 마음이 너무나도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물을 통해 기도하고, 약속도 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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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 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 詩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오래된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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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자기 전에 읽었던 시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시였다. 처음 앞부분에서

왕은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호기심을 가졌다. 그러나 나는

기쁨을 슬픔으로 바꾸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사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게

마음을 바꾸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명령을 들은 신하들은 토론 끝에 물건을 가져왔지만, 사람의 감정을 정반대로 바꾸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말이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처음에는 이 말을 보고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떠올리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리라. 어떤 일을 해도 그것은 잠시, 모든 것이

그저 나를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다시 뒷부분인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

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슬픔이 다가오면 이것 또한 지나가니 이겨내고, 행운이 다가오면 그에 취해 행운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오히려 이러한 감정들

은 한 때이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즐기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꼈다. (신다정)

Page 16: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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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詩 (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89)

Page 17: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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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빈집을 접한 것은 스크랩된 신문이었다. 엄마께서 신문에 개제된 시를 스크랩해서

모으시고 계셨는데 그것을 옆에서 읽고 있다가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 눈에 띄었다. 시는 너

무 슬펐고 안타까웠다. 시인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 상태였는데

마냥 슬펐다. 특히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떠도는 겨울 안개들아, 촛불들아, 잘 있거

라’ ~거라, ~라의 어조가 더 슬프게 만들었다. 시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시작

한다. 아마 시 속의 화자가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고 연인과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들,

모든 것들은 집에 남겨놓고 화자 자신도 떠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리고 화자는 연인을 떠

나보냈지만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어쩔 수 없이 가둬야 하는 상태인 것 같다.

‘잘 있거라’ 하는 구절은 시인이 그리움을 집에 남기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남긴 것 같다. 그리고 사랑했던 기억 아끼고 싶은 기억을 어쩔 수 없이 가두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화자가 일부러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빈집에 가뒀다고 표현해야한다

고 생각하는데 ‘빈집에 갇혔네’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화자가 직접 문을 잠궜는데도 자

의에 의해서 갇힌 게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갇힌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그것에 대한

그리움은 가엾다고 표현했는데 사랑을 가엾다고 하는 표현이 굉장히 신선했다. 짧았던 밤

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망설

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은 사랑했던 순간들의 열망들로 지금은 더 이상 화자의 것이 아닌 열

망이 되어버렸다고 표현됐는데 이것은 연인에 대한 열망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장님처

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는 사랑했던 연인이 화자를 떠나고 화자는 연인을 잡

고 싶었지만 잡지 못해 더듬거리며 문을 잠근다고 한 것 같다.

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였다.

연인을 통해서 내 것이 된 열망들이 화자에게는 아직도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한 상태가 불쌍하고 외로워보였다. 놓고 싶지 않지만 놓아야하는 화자의 모습이 상상되었고

그 모습이 안됐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보내야하는 심정을 이 시를 통해

서 느낄 수 있었다. (김민정)

Page 18: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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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하나의 악취

1

그것은 하나의 악취, 형언할 수 없는 악취로 이루어진

구조물, 악취의 내벽과 외벽 사이에서 그것이 네 입에 넣

어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2

아무것도 소통하지 않는 소통,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

이해, 벙어리 속에서 걸어 나오는 또 다른 벙어리, 귀머

거리 속에서 걸어 나오는 또 다른 귀머거리, 쇠로 된 귀

머거리.

3

더럽고 견딜 수 없는 꽃밭에서, 목을 조르다가 멈추고

조르다가, 멈추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꽃밭에서, 혀를 자

르다가 멈추고 자르다가, 멈추는

4

네가 없었으면 없었을, 더러운 웅덩이가 힉힉힉 웃는

다, 눈을 돌릴 수 없는 그것의 깊이, 눈을 돌릴 수 없는

그것의 웃음,

이 웅덩이가 이곳의 유일한 꽃이다

김언희 詩 ( 뜻밖의 대답, 민음사)

Page 19: 시와 함께 마음 읽기

19

나에게 있어서 시란 아름다운 운율이다. 그래서 시의 대한 다른 이면은 중·고등학교 때

배운 역설적 표현의 시들이 대부분이다. 시집 속에 김언희 시인의 다른 시들도 많지만, 그

것은 하나의 악취가 좋았던 이유는 악취라는 단어의 적절함 때문이었다. 비슷한 의미로 다

가오는 수많은 어휘, 예를 들어 똥 묻은 발로, 스크래치, 시-추태 .. 보다 내게 더 와 닿았

다. 여기서 왜 와 닿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참 어렵다. 그래서 적절함이라는 단어를 선택

했는데, 아마도 악취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아서 와 닿았던 것 같다.

시를 감상하고 난 뒤에 난 주변의 큰 구조물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쓰인 글귀들이라고 생

각했다. 외벽과 내벽을 모두 언급함으로써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자유롭지 못한 상황, 그

래서 큰 구조물을 떠올렸다. 그래야 완전한 고립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악취와 같은 말로써 귀머거리, 소통이 안 되는 것, 멈추고 자르다가 멈추는 이런 구절에서

난 긍정적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갇힌 고립된 곳에서 찾는 긍정적요소가 아닌 그 상황에

서 당연한 부정적 요소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 곳의 웅덩이가 유일한 웃음이란 말에서, 이것이 상황의 요소를 좋게 생각하

려는 의미라고 받아들여졌다. 나는 긍정의 힘이라는 단어를 어느 선까지는 동의한다. 그래

서 이 시를 읽고 상황 속에서 유일한 탈출구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송정은)

Page 20: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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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새가

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서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이륙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 가벼워서 새가 되었다고 말하지 마라, 새가 우는 것을 노래라고

단정하지 마라, 날개가 있으니 새는 그냥 나는 것이라고도 말하지

마라. 그 새가 날기 위해 내부의 장기들은 늘상 모터처럼 움직이

고, 하얀 달걀 같은 깃털 속에는 슬픈 두근거림이 있었다. 따뜻한

떨림이 있었다.

이수익 詩 ( 신달자 엮음,

시가 있는 아침, 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상처입으리)

Page 21: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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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을 나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로 자유?!를 쉽게 떠올린다. 시를 감상하고 쉽

게 자유를 떠올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시의 내용을 감상하고 떠오른 것은 물 위에 우아한 백조도 물속에서는 쉼 없이 말을

젖고 있다.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비슷한 의미로 느껴졌기 때문

인 것 같다.

“가벼워서 새가 되었다고 말하지 마라, 새가 우는 것을 노래라고 단정하지 마라, 날개가

있으니 새는 그냥 나는 것이라고도 말하지 마라.” 이 글귀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같아서

좋았다. 왜냐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노력한 결과이고 큰 성

과라고 생각하면서 남이 하는 것은 당연하고, 쉽다고 평가 혹은 판단하는 것이 싫다. 그래

서 이 글귀가 끌렸다.

어떤 결과가 있기까지는 원인과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안일하게 결과만을 기다

리는 자세를 가질 때가 있다. 이 시는 이런 것이 습관화 되지 않게 해주는 시가 아닐까? 하

고 생각했다. 즉, 평소 늘 하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의 마지

막에 슬픈 두근거림이 내겐 과정에 대한 결과의 만족도로 느껴졌다. (송정은)

Page 22: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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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말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이해인 詩(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샘터)

Page 23: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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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XX가 뭐 했다메?" "대박! X친거 아니야?" 이 처럼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의 대화의

내용 중 적지 않은 양은 다른 이에 관한 얘기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쉽게 헐뜯었

고, 그것을 비웃었으며 이런 대화를 당연하게 여겼다. 이런 행동은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서 국한되어 있지 않는 얘기다. 우리는 손쉽게 카페나 식당, 교실 안에서 조금만 귀 기울여

도 남을 헐뜯는 소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

었을 때이다. 누군가가 인터넷에 제목 없이 올렸던 이 시는 몇 년이 지난 내 머릿속에서 잊

혀지지 않는 시다. 애송시 과제를 받았을 때도 이 시의 제목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한참 뒤

질 정도로 이 시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다른 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던 그 시절,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향기로

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라는 첫 행에서 나는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거 같았다. 내가 지

금 하는 말, 친구들과 또 그 외의 다른 아이들이 하는 대화는 향기로운 여운은 찾아 볼 수

없는 대화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항에서 내가 하는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 아닌 향

기로운 여운이 남는 말로 남기를 바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는 나는 물론이고 남에 대해 쉽게

얘기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 하는 것 같다.

우리는 호감인 사람과 비호감인 사람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둘이 행한 실수는 같

지만 주관적으로 느끼는 그 실수의 '양'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비호

감인 사람의 좋은 모습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나쁜 모습만 보려고 한다. 좋은 면이

있을 경우라도, 내가 싫은 경우 남의 나쁜 점을 찾아 부정적인 말로 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

소서'라는 이해인 수녀의 말에 나는 단순히 싫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을 부정적이

게 보던 내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의 모습을 아름다운 시로 비판한 이해인 수녀의 <향기로운 말>은 많은 생각을 남겨주

었다. 그녀가 시를 통해 남긴, 다른 사람의 나쁜 점 대신 좋은 점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아름다운 말로 꾸민 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분명 많은 노력

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조금의 노력과 인내가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또 조금 무섭게 생각해보면, "What comes around goes around"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우리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언젠가는 우리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려서는 안 될 사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말에 아름

다운 여운이 남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인혜인)

Page 24: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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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에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서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에요

아버지,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

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

Page 25: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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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

그날,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돈 없으면 죽는 구나

그날 이후 삶이 두려웠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알아요,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에요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겨쳐야 하는

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에요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아버지, 어머니,

돈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하늘입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잖아요

못 배웠어도, 힘이 없어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하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

가슴 피고 살아가라고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

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

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

박노해 詩,(『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창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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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집을 내 의지로 집어든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스무살 이맘 때 쯤에

왠지 문학소녀가 되고 싶어서 시집읽기에 도전했다가, 3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다져온 ‘언

어 문제풀이’유형에 벗어나지 못한 채 금방 덮고 말았다. 마치 눈앞에서 ‘긍정적 어구에

는 동그라미, 부정적 어구에는 세모’를 그리고 있는 마법의 펜이 아른거리는 것 같아 아찔

했다. 중·고등학교 6년 간 문학작품을 작품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분석·암

기하는 방식으로 공부해온 한국의 학생들. 이제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문학의 아름다움마

저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비참했었다. 그래서 시집을 덮고, 이제까지 1년간 다시 들

춰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시 도전한 시집은 고등학생 때 수능언어 문외한이던 나도 이해

할 수 있는 시를 썼던 박노해 시인의 시였다. ‘노동의 새벽’이란 유명하고도 멋들어지는

제목의 시를 쓴 시인으로, 미사어구가 적어 쉬운 말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고 느꼈

다. 그래서 박노해 시인의 가장 최근 시집을 골라 들었다.

넌 나처럼 살지 마라. TV드라마 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어머니 아버지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한국의 부모님들이 떠올랐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지녔음에도 언제나 끝도 보

이지 않는 현실을 달리고 또 달리는 한국의 청년들이 떠올랐다. 그 속에서 우리 엄마 아빠

와, '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한 내 자신까지 보았다. 이 시와는 좀 다르게, 나는 반쪽이

처럼 자라왔다. 엄마는 시 속의 부모님처럼 '엄마같은 여자가 되지는 마라'고, 공부해서 좋

은 대학가고 좋은 곳 취직해서 좋은 남자만나서 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없이

살아도 정의롭지 못하게 살지는 마라'고, 네 신념에 그른 길을 억지로 따라가지 말라고 말

씀하셨다. 이 팽팽한 양극 사이, 사춘기 시절의 나는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크게 방황하기

도 했었다. 그 때는 오랫동안 실직도 했고 이리저리 이직경험도 많았던 아빠보단 수 십년

동안 안정적인 직장에서 안정적인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던 엄마를 좀 더 신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를 읽고 나는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존경받아 마땅한 부모님을 증오하

고 멸시하게 만들어놓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무한경쟁시대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렇지만

그 잣대에 휘둘려 아빠를 소득으로만 평가하고 다른 아빠들과 비교했던 철없던 나 역시 너

무나도 부끄러웠다. 죄송하고 창피해서 목구멍이 칼칼했다. 엄마가 현실에 다치지 않고 살

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면, 아빠는 현실을 바르게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쳐주셨던 것

인데. 물질주의적 사고는 도리를 코웃음치게 만들었다. 이제야 느꼈다. 더 많은 용돈을 주

고, 더 비싼 차를 몰고, 더 높은 기대치를 요구하는 다른 아버지들보다 정신적으로 나를 더

살찌우게 해주는 우리 아빠가 훨씬 훌륭한 아버지라는 것을 말이다. 시집오고부터 지금까지

실질적인 가장노릇을 해오느라 아픈 것 슬픈 것 없는 마징가제트 같던 우리 엄마. 누구보다

강인해보였던 엄마도 사실은 무시무시한 자본논리에 상처입은 작은 새라서, 나와 동생은 그

새가 되지 않게 하려고 더욱 강인하게 키우셨던 거겠지. 그래서 우리 앞에선 더욱더 커다란

모습으로 대하셨던 거겠지.

이제는 더 이상, 절대로, 부모님을 무능하다고 생각하거나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양극적인 양육방식에 이제는 감사하다. 20년 살고 나서야

그 분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 속에는 사실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

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었을 거라고 예측해본다. 오월, 계절의

여왕에게 걸맞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어버이날이 다가오는 요즘같

은 때 읽기에 더 없이 좋은 시인 것 같아 감히 추천해본다. 눈부신 오월의 햇살 때문에 우

리들의 '하늘'이 가려지지 않도록...... (최민주)

Page 28: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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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막

들녘에 비가 내린다

빗물을 듬뿍 머금고

들녘엔 들꽃이 찬란하다

사막에 비가 내린다

빗물을 흠뻑 빨아들이고

사막은 여전히 사막으로 남아있다

받아들일 줄은 알고

나눌 줄은 모르는 자가

언제나 더 메말라있는

초여름

인간의 사막

정호승 詩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Page 29: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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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시인의 유명한 시는 유명한 만큼이나 좋지만 마음에 남진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가슴에 새길만한 시라서 그런지 숨겨놓고 보고싶은 그런 '나만의

시'라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난 시집을 읽을 때 시인이 나를 위해 숨겨둔 시를 찾

는다.

정호승시인은 '사막'을 시집의 제목으로 두지 않고, 날 위해 숨겨둔 것 같다. 이 시는 내

가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두고두고 보는 시이다.

아직 어리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더 많이 움켜쥐려는 나를 본다. 손가락 사이로 새

나가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를 본다.

주변인들로부터 더 사랑받고 싶고, 돈도 더 많았으면 좋겠고, 성공했으면 좋겠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게 만족을 가져다 줄 순 없다. 알고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공허함에 발버둥

친다.

만족이란건 되는게 아니라 하는거라고 본다. 무언가 날 만족시킬 순 없다. 다만 내가 만

족'하는' 것이다. 이때 만족이란 내 현재 상태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나약한 내 진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잔뜩 꾸며놓은 채로 내놓는 내가 아니라 본연의 나를 보고 인

정하는 것. 그것이 만족이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도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만족할 수 있다. 물론 만족으로 인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만족 후에야 나아갈 수 있

단 얘기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어 살아간다. 나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으로서 의무를 지닌다. 내

가 경험한 좋은일들 모두 내 능력으로만 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여러 손길들이 있다. 내

가 하는 행동과 그 결과는 모두 이 사회 속에서 일어난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내가 베풀지

않으면 그 사랑은 돌고 돌지 않아 썩고 만다. 결핍인 사람인 생겨난다. 함께 사는 사회인만

큼 내가 베풀지 않으면 마치 발로 밟혀 차단된 물 호스가 결국 터져버리고 말듯이 나도 터

져버릴거다.

받기만 하고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건 굉장히 쉬운일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어려운일이 아니다.

이 시를 보면서 난 경계한다. '적당히 사는 것.'을 경계한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건 적

당히 내가 가진것에 대해선 만족을 모르는 사막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

이 많아지면서 이 사회에 소외받는 자가 더 늘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건 없다. 최선만 있을 뿐이다. 내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존중하고 사랑할 때 더 완전해진다. 혼자 만족하는 삶은 가치없다. 이기적인 인생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잘 내려놓지 못하

는 나를 깨우는 아주 고마운 시다. 정호승 시인이 나를 위해 숨겨둔 시라고 착각하고 앞으

로도 계속 날 깨쳐주는 시로 삼고 싶다. (정예인)

Page 30: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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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쓸어논 마당

쌀알 눈 사르락 사르락 내리다 말다 할 때

어느 골짜기도 좋지만

우연히 들른 이름 없는 골짜기

일주문도 없이 숨어 있는 조그만 절에 닿기 직전

꽃이라든가 녹음이라든가

여럿이 내는 새소리라든가

돌 박힌 길에 제대로 착지 못하고 구르는 낙엽이라든가

그런 게 없어

걷던 발걸음 그대로 오른다.

다왔다.

깨끗이 비질한 마당에 눈 더 내리지 않아

무언가 더 쓸거나 지울 것이 없다.

꽃 있던 자리에 꽃 없고

풀 있던 자리에 풀 없고

사람 있던 자리에 사람 없는 곳.

그나마 마음 앗던 수국 불두화 배롱꽃이 없으니

박태기꽃마저 없으니

나비처럼 날아가 나비처럼 앉으려 해도 닿을 수 없었던

그래서 더 닿아보고 싶었던

생각이 끝 간 데가 어딘가, 마음속에 떠올릴 연유마저 없다.

한눈에 들어노는 마당, 전부를 그대로 느껴버린다.

사람 사는 거리에서 그처럼 외우고 지우고 하던

색(色)의 본색이 바로 이것이었나?

어디선가 눈 한 톨 날려 와 손등에 앉는다.

느낌 하나가 새로 태어나

자리 잡으려다 자리잡으려다 잠잠해진다.

무언가 짧게 흐르다 만다.

황동규 詩 (겨울밤 0시 5분, 현대문학)

Page 31: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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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 0시 5분>이라는 제목이 맘에 들어 이 시집을 골랐다. 평소에는 소설이나 에세이

를 즐겨 읽지만, 시는 읽지 않아서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찬찬히 시집을 읽어보니 짧

은 시 안에, 우리의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잘 쓸어논 마당’ 을 애송시로 정한 이

유는 시의 전체적인 공허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이다.

1연은 1행에서 사르락 사르락 이라는 말이 이쁘다. 1연 전체에 ~라든가 라는 어미를 반복

하면서 꽃, 새소리, 속음, 낙엽, 전나무길 을 나열한다. 하지만, ‘그런’게 없지만 걷던 발

걸음 그대로 오른다며 담담하게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2연에서는 꽃도 풀도 사람도 있던 자리에 없는 깨끗이 비질한 마당이 등장한다. 눈도 더

내리지 않아 무언가 더 쓸거나 지울 것이 없다고 한다. 뭔가 아무것도 슬픈 것도 즐거운 것

도 딱히 없는 나의 심리상태와 같이 여겨져서 인상 깊었다. ‘나비처럼 날아가 나비처럼 앉

으려 해도 닿을 수 없었던 그래서 더 닿아보고 싶었던’ 이라는 구절은 꼭 짝사랑했을 때가

떠올라서 공감이 갔다. 이 시의 마지막 행(무언가 짧게 흐르다 만다.)은 간결하지만 강하게

시 전체를 한 행으로 압축하고 있는데, 이 행을 읽을 때에도 요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학창시절과는 다르게 얕은 인간관계들, 금방 무엇인가에 대해 열광하다가도 관심이 식는 나

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반성이 되었다.

이 시는 한 번 읽을 때에는 제목 그대로 잘 쓸어논 마당의 느낌이 난다. (정돈된 분위기

가 느껴진다.) 하지만, 딱 세 번을 읽었을 때 담담하고 고요한 듯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없다

고 나열했던 소재들(꽃, 녹음, 새소리, 낙엽, 전나무길, 눈, 꽃, 풀, 사람, 수국 ,불두화, 배롱

꽃, 박태기꽃..)을 강하게 그리워하다가 체념한 느낌을 받아서 더 슬프게 와닿는 시이다. 진

짜 슬픈 화자가 혼자 슬픔을 다 견뎌낸 후에 담담하게 조용히 마당에서 공허함을 읊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운이 깊게 남는 시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었지만, 읽고 나서 묵직

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는 시를 읽으면서 감수성에 푹 빠져 이 생각 저 생각들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정은)

Page 32: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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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흘리는 사내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5년이 넘게 걸렸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일은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개수통이 두 개 달린 싱크대

(설거지 때문에 원형탈모로 고생했던 적도 있었지)

사내는 거실에 곤히 뻗었다

베개에는 송장 썩은 침이 지도를 그린다

같은 임대지만 11평에서 17평으로 옮기는 동안

알코올과 니코틴이 무수하게 내장을 썩게 했으리라

젊었을 때 사내는

배 나온 사람과 침 흘리며 자는 사람을

유달리 혐오했다 또한

불의에 항거하는 시대양심에 박수를 보내는 척했고

기득권에 빌붙어 잘 나가는 부류들을 경멸하면서도

불로소득과 쭉 빠진 여자들을 갈망했다

침 흘리며 편승하길 바랐다

나이보다 깊게 파인 주름 사이로

파리 한 마리가 꼬물거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개는

속부터 썩어 냄새 지독하게 풍기리라

유용주 詩, (은근 살짝, 시와 시학사, 2006)

Page 33: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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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유난히 시와는 인연이 없었다. 도서관

에 가서 무작정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우선 베스트셀러라는 시집과 화려해 보이는 시집부

터 읽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이든 뭐든 추상적인 아름다

움이나 행복을 논하는 것보다 현실을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암울한 시대상을 그린 작품을 좋

아했다. 그래서 말이 아름답기만 한 시는 그만 읽고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찾기로 했

다. 그래서 읽은 것이 유용주 시인의 ‘침 흘리는 사내’이다. (유용주, <은근 살짝>, 시와

시학사, 2006, 78~79쪽.)

작품의 침 흘리는 사내는 우리 사회에 흔한 인물이다. 사내는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자신

의 몸을 혹사시키고, 사회에 비판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속을 갈구하는 모순과 갈등

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내를 보며 나의 미래를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먼저 이 시를 읽자

마자 나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무일푼으로 만나 단칸방에서 시작하셨다. 그렇게

앞만 보고 일해서 지금 두 분은 번듯한 가족을 꾸리고 본인 소유의 집도 갖게 되는 등 어엿

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모님 역시 침 흘리는 사내처럼 사회에 편

승하기 위해 젊은 패기를 죽이며, 자신의 꿈과 청춘을 포기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살

아가던 어느 순간 부모님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세속에 찌든 기성세대가 되었음을

자각하고 회의감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삶에 지친 부모님께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시를 추천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내 미래와 현재 나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아직 젊다. 사

회를 모른다. 그리고 침 흘리는 사내가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사회와 기득권에 비판적인

마음도 있지만 부유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사내처럼, 혹은 주위의 기성세

대처럼 사회에 쉽게 순응하는 사람이 될 까 두렵다. 어쩌면 이미 순응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침 흘리는 사내와 같이 그저 살기에 급급한 사람이 넘쳐나는 곳, 그런

사람을 양산해 내는 곳, 즉 속부터 썩어나는 베개 같은 곳 아닌가. 이런 베개 같은 현실은

정말 하루 살기도 힘들다. 똑같은 삶, 밀려드는 피로감, 권태, 회의. 이들 모두 침대에 눕지

도 못하고 거실에 쓰러진 사내처럼 현대인의 지친 모습을 대표하는 단어이다. 그렇기에 더

욱 이 사회를 바꾸어나가도록 노력해야한다. 나는 내 꿈을 확고히 하고 그것을 이룸으로써

이 사회를 바꾸는 데 일조하겠다. (이주연)

Page 34: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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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Page 35: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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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황지우 詩(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 지성사, 1998)

Page 36: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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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7: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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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수능준비에 찌들어있던 그 때, 나는 나의 모든 답답한 마음과 힘든 현실에 대한

힘든 것들을 글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 당시의 글은 때로는 부정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

도피적이기도 했으며 때때로는 상투적인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한편

으로는 글을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읽는 것에서도 굉장히 위안을 얻기도 했다. 특히 때때로

한 구절이 떠올라서 찾아 읽었던 시들은 내게 쩍쩍 갈라진 땅에 내리는 단비 같았다. 이 시

를 읽었던 것도 수능 전 마지막 추석을 보내고 있던 10월 쯤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

아하는 배우인 유아인이 나온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를 본 후 이 시

가 번뜩 떠올랐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목적성도 없이 살고 있는 내 모습이 겹쳐

지면서 마음이 저릿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폐허처럼, 정말 제

목 그대로 ‘내일은 없’는 것처럼 살았다. 이것 역시 그 당시의 나와 같았다. 지금 자버리

면 내일이 자기 맘대로 와버리는 것이 너무도 싫어서, 새벽 2시 3시가 되도 잠에 쉬이 들지

못했던 나였다. 황지우 시인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또 어떤 의미를 담으며 이 시를 썼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과 썩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이 시는 내게 가슴 저릿함을 안겨준다. 시의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파고들지 않

아도 그냥 시가 어떤 것을 전해주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시를 보

고 반응한다랄까…. 표면적으로 시인은 진심으로 자신이 아닌 것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뼈아픈 후회’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사랑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뼈아픈 후회를 앓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

킨 경쟁심’으로 자신만을 사랑했다 생각하지만 결국 그것 역시 진정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

며, 자신조차도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공감 이상의 이 감

정은 아마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동안 나를 위해서 한 선택들, 나

를 위해서 했던 모든 헌신들이 궁극적으로 나를 사랑해서 시작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의

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간다. 이러다보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폐허로 만들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 속에서나 시를 읽은 후에나 이 ‘뼈아픈 후회’에서 벗어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들은 ‘폐허’같으며 죽은 짐승 속의 ‘모래’같다. 이번 기

회로 이 시가 실린 황지우 시인의 다른 시들을 읽게 되었는데 적어도 이 책-‘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에 실린 시들의 느낌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던 것 같다. 무언

가에 아파하고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들….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시들도 있었으나, 그

래도 위안이 되었던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나만

의 경험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언젠가 나 역시도 황지우 시인처럼 이 시기를 버텨내고 설

수 있기를 기대하며 시집을 덮었다. (최소희)

Page 38: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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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詩, (귀천, 답게, 1996)

Page 39: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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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시 과제 '특명'이 내려졌다. 내겐 차라리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가 좋다 좋

다 하면서도 손을 대지 않은지가 벌써 한참이었다. 이번 기회에 마음의 양식을 좀 쌓고자

도서관을 찾았다. 제목이 마음을 끄는 시집 몇 권을 골라 옆에 놓고 열심히 뒤적였다. 좋은

시는 많았으나 특별히 이거다 싶은 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 인생에 처음

으로 '시'로 다가왔던 작품이 생각났다. 그게 바로 이 작품이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제목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자르르하다. 이게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내 감정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시간이었다. 언어라

면 어느 정도 한다고 자신 있었던 나는,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도 파란펜 하나 빨간펜 하

나를 들고서 열심히 자르고 해부하고 토막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시

는 아니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내게 의미로 다가왔다.

처음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이토록 재미없고 팍팍한 삶이 어떻게 소풍일 수 있

지? 이토록 삭막하고 냉정한 세상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지? 어떻게 죽는다는 말을 저렇

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지? 마치 정말 어제 우리 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안녕, 나 이

제 집에 가볼게. 오늘 즐거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때의 나는 내

삶이 너무나 괴로웠었다. 죽어라 공부해도 모의고사 점수는 그대로인데 수능날짜는 점점 다

가오고, 바닥을 기는 내신은 이제 인공호흡기도 살려내지 못할 것 같은데 싱숭생숭 마음은

안 잡히고. 집에서 나만 바라보는 부모님, 동생들의 눈을 생각하면 온 몸에 철근이 매달린

듯 했다. 그때는 정말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시 속의 이 사람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화가 날 정도였다. 이 시의 첫인상이 너무도 강렬해서, 한동

안 계속 생각이 났다. 시어 하나하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절대 다

신 들춰보고 싶지 않았는데, 얼마 후 나는 슬그머니 다시 책장을 펼쳐 이 시를 마주했다.

좋은 시는 많았다. 많은 작가들이 시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표현했고, 나는 시를

해석하며 그들의 삶을 이해했다. 그러나 시 자체가 내게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시'라는 말 자체에 가슴이 떨려보긴 처음이었다. 난 처음으로 언어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 시를 읽으면 드넓은 푸른 초원에 누워 끝없이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

분이 들었다. 꿈꾸는 듯 몽환적이기도 했고, 어느 때는 미칠 듯이 슬퍼지기도 했다. 이 시는

내게 휴식이었고, 슬픔이었으며, 위로였다.

나는 아직도 이 시를 만나면 가슴이 떨린다. 가끔 울컥울컥 하기도 한다. 시인이 말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사실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먼 훗날 언젠가 내가 눈을 감을 때, 감히

이 세상 소풍이 즐거웠었노라 태연히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도 못하겠다. 그러나 이 시

를 읽을 때만큼은 세상은 내게 충분히 아름답고, 나는 행복하다. (이은진)

Page 40: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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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詩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열림원 )

Page 41: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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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부터 교과서나 문제집을 통해서 수많은 시를 접하고 해석해보았지만 여태까지

나에게 시는 짧은 몇 구절 속에 내가 알아차리기에는 벅찬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난해하고

어려운 문학일 뿐이었다. 당연히 나의 애송시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기에 시를 선정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현대시 모음집을 읽기 시작했는데 새삼 세상에 있는 시라는 것이 온통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 대한 나의

편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여러 편의 시를 읽는 내내 나의 가슴은 뭉클해지기도 하고 평온

해지기도 하며 온갖 감정으로 뒤섞였다. 좋은 시가 너무 많아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정호

승’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선택하게 되었다. 시의 첫 구절인 ‘울지마라. 외로우

니까 사람이다.’이라는 구절이 너무나도 와 닿았기 때문이다.

돈이 많건 적건 많은 배움을 받았건 못 받았건 누구나 한번쯤은 순간적으로라도 외롭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로움에게서 벗어나려고 노력 할 뿐이지

위 시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담담하게 외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

외로운 것이 우리에게 우울, 슬픔과 같은 견뎌내기 힘든 부정적인 감정을 가져다주기 때문

이겠지만 「수선화에게」서와 같이 외로움을 사람이면 당연히 갖고 있는 한 부분 그리고 심

지어 ‘하느님, 나뭇가지, 산 그림자, 종소리’와 같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외로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만은 아

니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외롭기에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즐거움과 행복만 느끼고 살 수 없음을 알기에, 차라리 「수선화에게」와 같이 외로

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어 겸허히 받아들이고 외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충분히 견뎌

내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수)

Page 42: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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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詩

Page 43: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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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정말 내게 섬광과 같은 시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학교의 교실이라 불리는

회색빛 칙칙한 콘크리트 건물의 한 공간에 갇혀 시를 보듯이 나도 이 시를 그렇게 보았다.

처음 봤을때는 솔직히 정말 만만했다. 짧기도 짧았고 메시지도 눈에 확. 그래, 이런게 진짜

시지, 시랍시고 줄줄이 써놓은 건 시가 아니야, 친구들이랑 낄낄거리며 제법 시니컬한 척

해댔지만 이런 시만 수능에 나와라, 정말 하고픈 말은 그거였다.

터닝포인트는 고 3때였다. 대개의 여고생이 그렇듯 나도 우리학교 남자 국어선생님 한 분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다만 차별되는 점이란 그 대개의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키도 훤칠하고

달달하게 생긴 외모에 다정한 그런 국어선생님이 아니었다. 매우 시니컬하고 잘 웃지도 않

고 대학교 4학년때 어떤 시를 읽고 하루 종일 내내 울었던 과거를 얘기하며 시는 이렇게 읽

는거라고 말하신 적도 있었다. 아무튼 매우 까다롭고 날카로우신 분인데 어느 날 교실에 들

어오셔서 제목포함하여 딱 5줄을 써놓고선 우리 맘을 줄줄 읽어내리시는 걸로 수업을 시작

하셨다. 이 시가 매우 쉽고 간결하여 너네가 아주 좋아하겠지만 이 시는 그런 시가 아니다,

너희가 평생 가지고 가도 될 시다, 아주 강렬하게 말씀하시곤 너넨 죽기 전에 이렇게 누군

가에게 뜨거운 적 있을 것 같냐, 딱 한 마디 던지시는데 순간 멍했다. 저 생뚱맞은 소리는

어디서 오는거야에서 기원한 멍함이 아니라 불꽃같은 섬광이 꽈광 지나치고 앗차하는 단계

가 정말 순식간에 훅 지나가고 오는 멍함, 혹은 너무 강렬해서 그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그

런 멍함이었다.

하루종일 사회에 온 몸으로 부딪히고 오신 아버지의 차가운 손 하나 데워드리지 못하는

딸년이 어찌 힘든 하루를 또 각자 삶에 채우고 집에 둘러앉은 한 가족의 궁둥이와 서러움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연탄에 미치겠는가. 정말 잘 지은 꼿꼿한 사대부의 한시처럼 기승전결

아주 확실하게 온 몸 불살라 노곤하게 녹여주는 연탄에 내가 어찌?

세상사는 동안 앞뒤 불사르지않고 그저 희생의 마음으로, 세속의 이익 한 푼 더 가지려 두

눈 부릅뜨고 셈 밝히지 않고 그저 불사르는 사람이 정말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될 수 있을

까?

요즘 늘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는 회의가 이런 류라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 왠지 평

생 사는데 필요한 것 보다 더 많이 알게되는 것 같고, 내가 이런 것을 알 자격이 있나 싶은

느낌이 계속 든다. 결국 이렇게 배우는게 저렇게 연탄처럼 내 한 몸 불살라 세상을 뜨끈하

게 데우는데 쓰이기는커녕 내 단가를 올리느라 눈 벌겋게 계산하는 세속적인 셈에 더 밝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다간 세상은커녕 한 사람도 못 데우겠다, 혼자 조소하면 한 사

람이라도 데우면 다행이다, 하는 소리가 곧장 들려온다.

평생가지고 가도 모자람이 없는 시, 정말 그런 시이다. 짧고 간결한데다 시 맛도 퍽 진하

게 우러있어서 몇 번 읽으면 질리는 뻔한 명언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화려한 기법도, 현란

한 심상도 없지만 이 시는 세상 그 이상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가 생

각하는, 늘 지켜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들 고개 끄덕이며 동의하지만 늘 현실에선

그러지 못해서 부끄럽고 작아지는, 사랑, 우정, 의리, 신의따위와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레포트를 쓰며 또 생각한다.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신수안)

Page 44: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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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찾는 기쁨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생활 안에서

권태나 우울에 빠져들다가도

재빨리 기쁜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슬기를

구하고 싶다

매일 보물찾기라고 하듯이

‘기뻐할거리’를 찾는다면

불평의 습성도 차츰 달아나고 말테지

기쁨을 찾는 기쁨만으로도

나의 삶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안에서 만드는 기쁨은

늘 힘이 있다.

이해인 詩,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샘터)

Page 45: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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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첫 자취를 시작하며 홀로 지내는 단조로운 일상에 우울을 겪었었다.

모든 일이 재미가 없었고, 의미가 없었고, 즐겁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

았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나는 즐거운 음악을 듣고,

조금의 일에도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썼다. 행복한일을 하루에 하나씩 생각했고, 우울을 없

애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위해 노력했었다.

이런 경험을 겪고 나서, 읽게 된 ‘기쁨 찾는 기쁨’ 이라는 시는 읽었을 때 마치 나를

보는듯하였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이 삶에 권태를 느끼고

우울을 느끼고 그러나 이것을 이겨 내기 위해 기쁨을 찾고 즐겁기 위해 노력하고 나는 이런

과정에 있어서 이것을 안좋게 생각했었다. “내 정신력이 약해서, 내가 강하지 못해서”

그러나 이해인 수녀님은 이것을 ‘슬기’라고 표현 하셨다. 그리고 ‘보물찾기’라고 표현

하셨다.

이시를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시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까지

나 이 긍정적인 노력을 부정적이게 쳐다보고 안 좋았던 추억으로만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

다.

‘기뻐할 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며 이 긍정의 힘은 나의

삶에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마치 나의 일상을 보는 듯 하다는 것 이었다 .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고은새는 어디에 숨었을까]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 하나의 시마다 일상을 적어 놓은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이해인 수녀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중학교 교과서에 시를 실으신 분이라는 것, 그리고 종교인으로써 존

경받는 분이라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서 이해인 수녀님이 얼마나 세상을 아름

답게 바라보고 계신지 알 수 있었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 감사 한다는 것을

알았다. (유지민)

Page 46: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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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詩 (즐거운 편지, 휴먼앤북스 )

Page 47: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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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내가 고등학생일때 언어 모의고사에 출제되었던 시다. 시험시간에 날 감상에 젖

게 만들어 눈을 한참 붙잡아놓는 바람에 가뜩이나 모자랐던 언어시간을 더더욱 모자라게 했

던 그 시. 이 시가 1958년, 황동규 시인께서 19살일 때 쓰신 시라는데 어떻게 19살이라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저렇게 절절하지만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었는

지...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일을 사소한 일이라 표현하는 감성이 쓸쓸하기도하고 애틋하기

도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는 그 감정은 절대로 사소한 것이 될 수 없는데 그 것을 사소하

다 표현한 것은 이별의 상처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

실 나는 얼마 전에 5년이 넘는 긴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때에 가장 생각났던 시가 바로

이 시였다. 언제까지나 그 친구를 잊지 못한 채 힘들어 할 것만 같았고, 그 친구가 힘들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아직까지도 너를 기다리는 나의 사소한 마음'에 의지하는 것이길

바랐었다. 그러면서도 시의 마지막에 나온것처럼 언젠가는 잊겠지, 언젠가는 새로운 사람이

싹이 트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름대로는 상처를 위로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치지 않고 언제

까지나 내릴것만 같던 눈이 그쳤다. 눈이 그치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지금, <즐거운 편

지>는 정말 나에게 즐거운 편지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서다솔)

Page 48: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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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나는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았던 매미 날개와 매미 날개에 머

무는 햇살과 그 햇살의 순간의 예민한 망설임들을 이해한

다.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오로라와 그 오로라

가 우주 먼 곳 태어나지 않은 역사와 맺는 관계를 이해한

다. 사랑으로 나는 내 내장 깊은 곳까지 박힌 칼들을 이해

한다. 사랑으로 나는 언젠가 그 칼들이 나를 더 이상 아프

게 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죽어가는 세계의 모든 생명들과 이제 막

태어나는 어린 생명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 될 것이라고

믿는다. 될 것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이며 너이며 그들이

다. 사랑으로 나는 중심이며 주변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

의 상처의 노예이며 주인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의 상처를

세계의 상처 위에 겸손하게 포개 놓는다. 세계, 나의 아들

이며 나의 지아비인 세계의 상처 위에. 나처럼 아프고 불

행한 세계의 상처 위에. 가만히, 다만 가만히.

김정란 詩 (사랑으로 나는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2000. 문학사상사 )

Page 49: 시와 함께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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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상처 위에 나를 포개 놓는 일, 사랑.

사랑! 요즘처럼 사랑이라는 말이 흔한 시대도 없었던 듯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욕망하지만, 사랑은 자꾸 우리 곁에서 멀어져만 가서, 사랑을 좇아

갈수록 사랑의 길을 잃어버리는 당혹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아름다운 말을 갈

고 닦고 창조하는 사람인 시인은 사랑을 어떻게 읊을까? 한국의 많은 시인들이 사랑시를 썼

다. 한국 현대시의 대표 시인이라 할 수 있는 김소월이 그랬고, 2000년에 김소월문학상을

받은 <사랑으로 나는>이라는 이 시에서 김정란 역시 사랑을 노래한다.

이 시는 2연으로 된 산문시다. 산문인 듯하지만 그 안에도 리듬이 읽혀진다. 1연에서는

그 리듬감은 무엇보다 각 문장이 ‘이해한다’로 끝나면서 지켜지고 있고, 2연에서는 문장

의 길이와 종결 형태의 변화를 통해 유지된다. 그런데 이 시의 형태상의 리듬감은 곧 시의

내용과도 연관성이 있다. 1연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해한다’는 사랑과 통하고 있는

핵심어다. 사랑은 근사한 집을 보며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여름에 계속 울어대는 매미의 날

개를, 그 날개에 머무는 햇살을, 그 햇살의 망설임을 이해하는̇ ̇ ̇ ̇ 어찌 보면 그저 사소한 것들

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오로라까지 이해하게 되는 것, 우주가 태어나기 전의 역사와 그 관

계까지도 이해하는 것, 아니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1연의 마지막에서 시인

은 사소한 것, 자세히 봐야 볼 수 있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결국은 칼까

지도, 나를 아프게 했던 칼까지도 이해하고 그 칼들이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을 이해하는 게 사랑의 힘이라고 노래한다. 읽을수록 멋진 표현들이고 읽을수록 깊이

가 느껴지는 시행이다.

이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적화자인 ‘나는’ 2연에서 사랑을 꿈꾼다.

사랑으로 아이를 낳고 사랑으로 결혼을 하고 사랑으로 부자가 되고 사랑으로 자유를 구속하

며 사랑으로 더 견고해지는 성을 쌓는 꿈, 사랑으로 내 집과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꿈이

아니다. 사랑으로 죽어가는 생명과도, 이제 막 태어나는 생명과도 하나가 되는 꿈이다. 사랑

으로 나와 너와 그들이 하나가 되는 꿈, 중심과 주변이 하나가 되는 꿈이다. 마침내 사랑으

로 상처에 이르는 그런 꿈이다. 상처라니̇ ̇ ̇ ̇ ! 사랑과 상처는 이 시에서 마치 동일어처럼 읊어

진다. 상처만이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고, 상처만이 세상을 하나로 묶는 사랑의 길이라고

시인이 믿기 때문일까? 이 시에서 사랑은 결국 상처에 이르는 길이었던 셈이다.

부귀영화를 위해서가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현대인들이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 아니라, 상처의 노예가 되고 상처의 주인이 되는 삶. 상처 때문에 아파하

지만 상처 때문에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의 길을 놓을 줄 아는 사람. 그 삶과 사람의 모습

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해야 할 아들과 지아비는 단지 내

가족만이 아니라 세계다. 아프고 신음하면서 오늘도 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나처럼 아

프고 불행한 세계. 그 세계의 상처 위에 가만히, 다만 가만히 나의 상처를 겸손히 포개놓는

일이 사랑의 길이요 사랑으로 이르고 싶은 꿈이라는 이 시를 읽노라면 그동안 내 사랑이 얼

마나 교만하고 화려했는지 내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시인의 상처와도 같은

이 시 안에서 내 상처는 어느새 위로를 얻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시를 읽고 싶다.

사랑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아픔을 이해하며 사랑으로 세상의 상처와 하나 되는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딛기를, 무수한 말로 ‘사랑’을 오염시키지 말고, 세상의 상처

위에 나를 포개 놓으면서 사랑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그 길에서 따로 있어도 함께 하는 삶

을 이어갈 수 있기를..... (김윤선, 2012년 문학 세미나를 마치며 제자들에게 전하는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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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학기

우리들이 함께 했던 <문학 세미나>

詩와 함께 한 시간을

추억으로 남깁니다.

문학이

시가

우리들의 삶의

작은 위로와 빛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벗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들의 시와 이야기를

기억합시다.

2012년 6월 덕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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