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p147~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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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고용이데올로기와 활동가 1. 들어가며 ································································································································147 1.1. 연구 목적과 문제 의식 ·································································································147 1.2. 조사 연구 방법···········································································································150 2.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교훈 ····························································································152 2.1. 왜 다시 98년 투쟁을 들추는가? ·················································································152 2.2.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경과·································································153 2.3.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기억과 영향 ······································································159 2.4. 끝났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원직 복직 쟁취투쟁 ············170 2.5. 98년의 의미와 영향 ·····································································································186 3. ‘고용이데올로기’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에 미친 영향 ············································191 3.1. ‘고용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191 3.2.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한 현장의 변화 ·····································································193 3.3. 역대 집행부 활동을 통해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의 변화 과정····························220 3.4. 구조조정 쟁점사안들의 구체적 진행 양상····································································248 3.5. 요약······························································································································263 3.6. 나가며··························································································································266 4. 활동가 ····································································································································271 4.1. 들어가며·······················································································································271 4.2. 98년 이후의 변화 양상 :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 조합원, 활동가, 그리고 현장의 변화 ····274 4.3. 98년 이후 현장의 변화 ································································································284 4.4. 현장의 요구에 대한 활동가들의 판단과 대응······························································288 4.5. 활동가들의 일상활동 및 현장조직 활동 ·······································································300 4.6. 활동가 형성과 강화에 대하여 ·····················································································317 4.7. 소결 - 활동가 재생산을 위한 몇 가지 제언································································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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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05]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p147~327)

3장. 고용이데올로기와 활동가

1. 들어가며 ································································································································147

1.1. 연구 목적과 문제 의식 ·································································································147

1.2. 조사 연구 방법 ···········································································································150

2.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교훈 ····························································································152

2.1. 왜 다시 98년 투쟁을 들추는가? ·················································································152

2.2.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경과 ·································································153

2.3.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기억과 영향 ······································································159

2.4. 끝났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원직 복직 쟁취투쟁 ············170

2.5. 98년의 의미와 영향 ·····································································································186

3. ‘고용이데올로기’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에 미친 영향 ············································191

3.1. ‘고용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191

3.2.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한 현장의 변화 ·····································································193

3.3. 역대 집행부 활동을 통해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의 변화 과정 ····························220

3.4. 구조조정 쟁점사안들의 구체적 진행 양상 ····································································248

3.5. 요약 ······························································································································263

3.6. 나가며 ··························································································································266

4. 활동가 ····································································································································271

4.1. 들어가며 ·······················································································································271

4.2. 98년 이후의 변화 양상 :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 조합원, 활동가, 그리고 현장의 변화 ····274

4.3. 98년 이후 현장의 변화 ································································································284

4.4. 현장의 요구에 대한 활동가들의 판단과 대응 ······························································288

4.5. 활동가들의 일상활동 및 현장조직 활동 ·······································································300

4.6. 활동가 형성과 강화에 대하여 ·····················································································317

4.7. 소결 - 활동가 재생산을 위한 몇 가지 제언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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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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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고용이데올로기와 활동가

1. 들어가며

1.1. 연구 목적과 문제 의식

1.1.1. 98년 5월 정리해고 반대 파업투쟁을 다시 바라본다

“하청들이 우리보다 월급 적게 받고 고생하는 것 누가 모르겠습니까. 활동가도 아니고, 노조 집행부도 아니고, 평범한 조합원인 우리들도 이 나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현자노조 조합원이라면 대부분 비정규직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당연히 지지하고 함께 싸워줘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현장에서 인간적으로 개인적으로 잘 해주는 것과,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조직적으로 싸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고용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합니다. 왜냐면, 현대차 노동자들은 98년 정리해고 사태 때 그 살벌한 칼바람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악몽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98년 5월은 생각하기도 싫은, 말 그대로 ‘악몽’이다. 그해 여름 277명 정리해고와 1,900여명 18개월 무급휴직, 그리고 8,000여명 명예퇴직이라는 무서운 피바람이 몰아쳤다. 그 후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 등 대부분이 약 1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러나 현대차 노동자들은 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아픔을 지워지지 않는 흉한 상처처럼 드러내기도 싫어하고, 당시의 고통이 재발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레이버투데이’에서 인용)우리의 문제의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98년 투쟁 이후 조합원들은 고용 안정을 가장 중요한 사안 1순위로 꼽고 있다. 그리고 ‘악몽 같은’ 98년이 재현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측의 구조조정에 따른 공포감을 스스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이후 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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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은 사상 초유의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반면, 현대 노동자들은 ‘상시적 고용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불안이 집단적 불만으로 조직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상태에 이르기까지 사측의 노동 통제는 어떠하였고, 이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떠하였는가. 투쟁의 성과와 패배는 현장 정서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는가. 사측의 경영 전략과 이에 따른 통제 이데올로기, 그리고 조합원들의 패배 의식・무력감・실리주의 등이 한데 버무려진 현장의 여론을 선진 활동가들은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1.1.2. 비정규직 철폐・계급적 노동운동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고용 이데올로기’

최근 현대자동차 불법 파견 투쟁의 어려움을 진단하면서 주로 짚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이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 계급적 노동운동의 복원을 위해 무척 중요한 투쟁인데도, 정규직 노조가 이를 적극 받아 안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은 ‘현상’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정규직의 이기주의는 일상적 구조조정으로 일상적 불안정을 만들어온 자본의 공세에 대한 방어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는 문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전선을 만드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98년 정리해고의 수용, 2000년(직접 생산 라인 내 사내 하청 투입을 16.9%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내용의) 완전고용 합의서, 직영 인원 충원 시 인원의 40%를 사내 하청 노동자로 채우도록 했던 2003년 노사합의 등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은 바로 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전선’이 없음을 반영한다.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 당시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리전 양상으로 격돌하면서 만들어졌다가 손상된 대(對)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선이 아직 복구되지 못한 것이다.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실패한 후, 노동조합은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논리로 양보 교섭을 진행하였다. 고용을 약간 보장받는 대가로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노동 조건의 악화는 피할 수 없다’는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양보 교섭 때문에 현장의 불안감은 더욱 확산되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을 복원하고 노동자 대항 이데올로기를 확장하는 길을 찾지 못하고, 그 대신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생존할 방도를 모색하면서 ‘자발적으로’(강제된 자발이지만) 노동강도 강화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전체 노동자들을 나누고 위계화하는 자본의 전략에 동조한 점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이런 문제점들은 다시 노동조합과 선진 활동가들에게 되돌아와 그들의 역량과 활동 폭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밟아왔다.몇 년 전부터 가장 주요하게, 가장 많이 외치고 있는 ‘고용안정 쟁취’라는 슬로건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에 걸맞는 투쟁에 대한 기획과 결합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오히려 현장의 고용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왜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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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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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노동강도 강화와 고용이데올로기

이제 노동의 불안정화는 비정규직(주변부) 노동자의 문제로만 보기 어려워졌다. 이미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화 경향은 특정 근로빈곤층이나 불안정 노동층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칼날은 전체 노동자를 이미 심각한 지경으로 분할하였을 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반까지 야금야금 도려내고 있다.2005년 현재 현대자동차의 상반기 순이익은 2조원이 넘었다. 연간 순이익은 3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회사가 잘 나가는 만큼 노동자들도 더 쉽고 편하게 일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실제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조사한 결과들은 그러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보여준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예전 그대로이거나 혹은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노동자들이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가들 역시 노동강도에 관한 문제들, 즉 노동자의 몸과 건강에 대한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최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강도 문제는 특수한 별도 영역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커다란 ‘노동의 위기’ 중 한 부분이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강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강도 문제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전체적 차원에서 인식해야 하고, 더 나아가 단위 사업장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총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그 인식과 대안을 위해, 먼저 9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을 주목하고자 한다. 98년 현대자동차 구조조정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찾으려면, 98년의 경험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단 노동강도의 문제 뿐 아니라, 지금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들의 원인을 찾으려면 98년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서 발생되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무엇’을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그 ‘무엇’에 대한 대처방안이 나와야 한다. 그 ‘무엇’이란 바로 ‘고용이데올로기’ 이다.3장은 고용이데올로기로부터 출발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그런 결과가 ‘연구’만으로 온전한 결실을 맺을 수도 없는 일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결실이 자본의 공격에 맞서거나, 혹은 그 공격을 비껴가고 있는 현장 속에서 맺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결실을 맺기 위해 지나간 흔적을 더듬거리며 찾고, 확인하고, 드러내는 것이 본 연구의 1차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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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고용이데올로기와 활동가

이번 연구의 큰 줄기는 노동강도 강화 원인을 밝히고 노동강도를 평가하며, 그 대안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장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과 고려가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현장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이를 만들어내는 주요 주체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노동자의 대항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이데올로그이자,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활동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이후 현장도 변하고 조합원들도 변했다는데, 과연 활동가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여전히 저항의 1차 기지로서의 현장의 구심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대다수의 조합원들이 눈살 찌푸리는 모습으로 단결을 방해하는 원심력이 되고 있는가? 이런 점들이 우리의 주된 문제의식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고용이데올로기’, 즉 ‘고용불안(감)’ 증폭에 대한 현장의 대응을 분석하는 일이다. 그 분석을 위하여 활동가들이 구조조정에 대한 일상의 대응에서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원칙을 가지고 조합원들과 끊임없이 만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는 활동가들의 유입 경로나 생애 분석 등을 대폭 줄이고, 98년 이후 현장의 변화, 활동가들의 변화, 사측의 경영전략의 변화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이 보고서가 현대자동차 활동가들의 의식 상태,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 방향, 방법, 활동 전반에 대한 인식 등을 활동가들 안에서 함께 나누고, 현장 활동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으로 조사한 내용을 최대한 가감 없이 싣고자 하였다.

1.2. 조사 연구 방법

1.2.1. 활동가 심층 면접 조사

대의원, 소위원, 여러 현장조직 구성원, 98년 투쟁을 경험한 활동가, 2002년 이후 입사자 중 활동가, 현 집행부 등으로 구분하여 면접 대상을 선정하였다. 면접 내용은 △98년 투쟁 평가, △98년의 개인적 경험, △98년 이후 각 주체들의 변화 양상, △구조조정 대응에 대한 원칙・사례・평가, △활동가 조직에 대한 판단, △활동가들의 변화 양상, △신・구세대에 대한 판단 등 총 7가지 주제로 구성하였다. 연구원과 면접 참여자가 1대 1로 이야기하는 면접 방식으로 진행하였으며, 면접 참여자는 총 46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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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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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대의원・소위원 설문 조사

대・소위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총 461부를 수거하였다. 설문 조사는 앞에 언급한 활동가 면접 내용을 바탕으로 하되, 보다 많은 수를 포괄하여 활동가 그룹 일반의 경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설문 내용은 면접 조사와 동일한 주제로 구성하되, 면접 결과에 따라 답변 항목들을 조정하여 재구성하였다.

1.2.3. 조합원 면접

노동강도 평가 조합원 면접에 98년 정리해고 투쟁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평가, 98년 이후 고용불안감을 느끼는 주・객관적 요소, 활동가들에 대한 인식 등을 포함하였다.

1.2.4. 문헌 조사

98년 당시 쟁의대책위원회 유인물을 비롯하여 98년 이후 노조 소식지와 활동 보고서를 토대로 노동조합의 대응 흐름을 정리하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참고하였다. 활동 보고서 등 노동조합에서 만들어낸 자료들은 실제로 진행된 노동조합의 사업과 사건, 소식들을 파악하고 일관된 흐름으로 존재하는 주제들을 설정하기 위함이었으며, 외부에서 작성된 논문들의 경우 본 보고서에는 직접 인용되지는 않았으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을 이해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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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교훈

2.1. 왜 다시 98년 투쟁을 들추는가?

어떤 ‘사건’은 그 사건이 벌어진 공간과 시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사건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반복 재생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굴절되기도 하고 축소・확대되기도 한다. 규모가 큰 사건은 그 사건에 직접 연루된 사람들 뿐 아니라 목격자, 주변부, 혹은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후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우리는 97년 IMF 외환위기 국면을 기억한다. 갑자기 모든 경제 활동이 중단되었고, 잘 돌아가기만 하던 경제 시스템은 곧 붕괴될 위기에 처한 ‘문제덩어리’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의 모든 삶들이 수술대 위에 올려졌고, 미국과 IMF는 이 사회의 경제 상태가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회생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렸다. 정말 현실은 그런 것 같았다. 언론은 연일 금융 위기와 재벌 경영의 문제를 이구동성으로 쏟아냈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픽픽 쓰러지는 지역 공단의 중소 사업장들, ‘가격파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해 쏟아지는 거리의 할인 물결들, 갑자기 생겨난 듯 역 대합실을 배회하는 노숙자들1).또한 우리는 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을 기억한다. 96월 12월 24일 새벽 6시,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었음을 알리며 ‘탕 탕 탕’ 울려 퍼진 의사봉 소리와 함께 우리들의 투쟁도 전국 각 거리에서 전개되었다. 아침에 모여 거리를 점거하고,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그 최루탄 파편을 맞으며, 수십 일을 그렇게 거리에서 보냈다.그 연장선에 현대자동차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있었다. 정권과 자본의 입장에서는 정리해고 법제화 이후 정리해고를 공식적으로 관철시킬 필요가 있었고, 노동의 입장에서는 정리해고의 도입을 실제 현실에서 막아내느냐 마느냐의 투쟁이었다. 합의와 양보의 여지를 가늠하기 이전에 피차 지느냐, 이기느냐 둘 중 하나인 싸움이었다. 2005년 현재, 현대자동차 현장에서는 98년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서로 다른 조건과 상황, 위치, 98년 투쟁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을 생각한다면, 서로 다른 기억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직까지 집단적으로 98년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다양한 기억들 한 구석에는 숨겨진, 혹은 이미 잊혀진 98년의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36일간 진행된, 대중들이 직접 참여하고 겪었던 투쟁의 기억이다.

1) ‘심각한 문제는 구직을 할 수 없다는 참담함이다. 건설 일용공 노동자들의 61%가 자살을 고민해 보았다는 비극적 설문조사, 생활고로 인한 자살자의 속출과 가장의 실업으로 인한 이혼율 급증, 가장의 가출과 가정 파탄으로 인하여 버려지는 아이들, 아버지의 실업으로 점심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과 학비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의 급증’ - 노동전선 36호, 199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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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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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활동가나 조합원 대부분에게 98년에 대한 가장 강한 기억은 그 치열한 ‘투쟁’이 아니라 ‘결과’이다. 당시 집행부의 마지막 협상 보고가 그들에게 남겨진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이런 식으로 결과로만 기억되는 순간, 투쟁은 사라진다. 그 혹독했던 시기에 36일 간의 전면 파업으로 맞섰던 그 선도성과 전투성도 사라진다. 자기 손가락의 금반지도 모자라 갓난 애기의 돌 반지마저 앞다투어 내놓던 그 혼돈의 시기에 정확히 자본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던 그 선명함도 없어진다. 무엇보다 그 투쟁을 만들었던 노동자 대중이 잊혀진다.잊혀진 또 하나의 기억은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투쟁이다. 그들의 투쟁은 36일 간의 파업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파업이 끝나고, 활동가들을 포함한 무급휴직자와 정리해고자들이 현장을 떠나고, 어제의 투사였던 이들이 오늘의 생산 일꾼으로 숨막히는 노동 통제와 노동강도를 감내하고 있었던 그때, 그들은 투쟁을 지속했고, 또 투쟁으로 정리해고를 철회시켜냈다. 그러므로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36일 간의 파업이라는 1부 투쟁 뿐 아니라, 1부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던 2부 투쟁, 바로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투쟁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역사적인 36일 간의 대중 투쟁이 말끔히 잊혀졌다는 것은 좀 과도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 남아있는 기억에는 “98년 때도 그렇게 싸웠는데 졌다, 그런데 지금 뭘⋯.”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한 면접자의 말처럼 패배적인 정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도부의 직권조인으로 모든 투쟁의 의미를 패배로만 남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98년의 기억 중에서 직권조인이라는 결과 속에 잊혀진 대중 행동과 투쟁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복원되어야 한다.물론 이 보고서 역시 98년 투쟁을 제대로 복원해 내기에는 충분치 않다. 현장 활동가 46명과 조합원 100여 명이 참여한 면접 조사 결과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주체들의 내밀한 기억, 감추고 싶은 기억, 아직 다 풀리지 못한 논쟁 지점들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연구팀의 미흡함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주 목적이 현대자동차의 ‘현실’에 대한 분석이므로, 그나마 수집한 면접 내용조차 충분하게 담지 못한 점도 있다2).

2.2.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경과3)

2.2.1. 첫 번째 양보 - 희망퇴직 합의

이른바 ‘IMF 국면’에 접어든 1997년 11월 이후 현대자동차 자본은 ‘1998년 인력관리 운영계획’을 통해 1998년 한 해에만 총 3천명의 여유 인원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본은 1997년 말부터 하청 노동자 1천 8백여 명을 쫓아내더니, 1998년 들어와 회사 임원과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에 대한 명

2) 가령 이 보고서에는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또 다른 주체였던 가족대책위원회의 기록은 담지 못하였다. 또한 98년 투쟁 이후 식당 여성 조합원들과 함께 <미완의 장기전>을 치룬 주체였던 징계・정리해고자들(생대위, 해복투)의 투쟁 역시 담지 못하였다. 이들은 상당 기간 식당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출근투쟁, 텐트농성 투쟁을 함께 벌여냈으며, 해고자들이 먼저 복직되었고, 이후 2000년 임단협 이후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복직되었다.

3) 이종호,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투쟁’(진보평론 3호)을 바탕으로 구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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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퇴직을 실시하여 8백 명 이상을 ‘정리’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1998년 1월 13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쟁의 행위를 결의하고 ‘단협 사수, 고용 안정, 민중생존권 사수를 위한 중앙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1월 15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여 83.8%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결의했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민주노총은 1998년 2월 6일 새벽, 2년간 유예되었던 정리해고제를 조기에 받아들이는 노사정 합의안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러나 2월 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직권조인’된 노사정 합의안을 부결시키고 상근 임원 전체의 퇴진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구성을 결의하였다. 다음날 비대위에서는 2월 13∼14일의 총파업 투쟁을 결정했다. 그런데 비대위는 2월 12일 8시간의 회의 끝에 다시 총파업을 철회해버렸다. 바로 이날 대우조선 최대림 조합원은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투쟁에 전 조합원이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며 분신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철회로 전국 투쟁전선이 무너지고 2월 14일 임시국회에서 유예 조항이 삭제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가 통과됨으로써 이제 자본의 정리해고 공세는 거칠 것이 없어졌다. 전 공장에 걸쳐 잔업이 축소되고 일방적 배치전환과 집단 순환 휴가가 실시되었다4). 4월 8일 현대자동차에서는 노동조합 주최로 현장조직들이 참여한 2차 현장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현대자동차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 실천하는노동자회(실노회), 현대자동차노동자신문(현노신), 한빛노동자회(한빛) 등 현장조직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근무형태 개선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부터 “현실적 양보교섭”에 이르는 다양한 견해를 제출했다5). 4월 17일 노동조합 중앙비대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주당 38시간으로 근무시간 단축, 주간 연속 2교대제로 근무형태 변경, 배치 전환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자본은 노동조합의 제안을 무시하고 4월 17일부터 1주일 동안 일방적으로 1차 희망퇴직 모집에 들어갔다6). 5월 1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제108주년 세계 노동절 기념 집회에서 이갑용 민주노총 2기 지도부는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 철폐 및 부당 노동행위 근절, 고용안정과 생존권 보장, 고용・실업 대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해체・노동3권 보장・노동자 경영참가, IMF 재협상’ 등 5대 요구를 중심으로 5월 말・6월 초의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이날 행진 과정에서 격렬한 거리투쟁이 벌어졌다. 한편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5월 14일부터 1주일 동안 2차 희망퇴직이 실시되었고 1,5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자본은 5월 20일 ‘경영위기 극복 및 여유인원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수정안’을 노사협의회 안건으로 제시하면서 2천 2백억 원 가량의 임금 삭감과 8,189명에 대한 2년간의 무급휴직・정리해고를 기정사실화하여 노동조합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나갔다. 이 날 노동조합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본관 건물 로비에서 강제 희망퇴직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 강제 희망퇴직 당한 52세의 한 여성 조합원은 “나 혼자서 4명 가족 먹여 살리는데 퇴직금 2천만 원으로 어떻게 살아가4) 노동조합은 2월 19일 '중앙비대위'를 '고용안정대책위'로 전환하고, 3월 23일 노사실무협의에서 집단 휴가시 통상임금 70% 지급과

'고용안정 노사공동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로 노조 스스로 단체협약을 위반하게 되었다. 당시 캐피코 노조나 현대정공 노조에서는 집단 휴가 시 단협에 의거 통상임금 100%씩을 쟁취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의 이 합의는 이후 다른 사업장에서의 집단 휴가 때 많은 영향을 미쳤다.

5) 현장조직 민투위는 5월 들어 '주 35시간 이하로 노동시간 단축, 1일 7시간 주간 연속 2교대로 근무형태 개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통상임금 100% 보전과 생계비 부족분에 대한 고정 OT 확보, UPH down을 통한 적정 노동강도 유지와 생산량 조절'이라는 정책 대안을 정리하여 소책자로 제작·배포하고 조합원 중식 홍보투쟁 등을 벌여나갔다.

6) 통상급 4∼6개월치가 위로금으로 주어졌고 2,000명 가깝게 퇴직했다. 자본은 4월 23일 23%의 임금 삭감과 15,000여명에 대한 인원 정리를 의제로 하는 임시노사협의회를 4월 30일 개최하자고 요구하면서 정리해고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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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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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차라리 회사에서 죽고 말겠다!”라며 대성통곡하였다. 5월 25일 조합원 총회에서는 89.4%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총파업투쟁을 결의했다. 5월 27・28일 민주노총이 1차 총파업에 들어갔고, 이틀 동안 49개 노조 7만 7천여 명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5월 29일 기아자동차의 송인도 조합원이 분신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은 6월 1일 '체불임금 지급과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6월 5일 민주노총이 6・10 2차 총파업을 철회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투쟁은 전국 총파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고립된 채 패배하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2차 총파업 철회로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 또한 현대자동차만의 투쟁으로 고립되었다.6월 24일 ‘임금 및 고용조정 대책위’ 본교섭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집행부는 3차 희망퇴직에 합의했다7). ‘노사합의’된 3차 희망퇴직으로 2천여 명이 다시 회사를 떠났다. 조합원들은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동안 정리해고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노사 합의사항을 “6월 30일 이후에는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였다8).

2.2.2. 두 번째 양보 - 임금 삭감안 제출

6월 30일 오전, 현대자동차 자본은 4,830명의 조합원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노동부에 신고하여 접수를 마쳤다. 신고서에는 “임금을 22% 삭감하지 않으면 6,842명을 추가로 잘라야 한다.”라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었다. 노동조합은 7월 4일까지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6월 30일 26시간 1차 경고 파업에 들어갔고, 다시 7월 6일 48시간 2차 경고 파업을 벌였다. 7월 10・11・13일 자본은 부분적으로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을 기습 발표하고 7월 13일부터 4차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7월 14일 금속산업연맹을 시작으로 15・16일 총 68개 노조 15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총파업이 벌어졌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비대위도 무기한 전면 파업을 선언하고 이틀 동안 파업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7월 15일 밤 중앙 비대위는 전면 파업을 유보하고 16일 오전 10시부터 정상조업에 임하기로 결정했다. 또 만장일치로 고용조정 및 임금 관련 교섭 폭에 대한 권한을 위원장에게 위임하였다. 노조 위원장은 이 날 민투위를 탈퇴했다9). 7월 16일,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대폭적인 양보안을 내놓았다. △97년 성과금 150% 미지급분, 휴가비, 선물비, 고정 O/T수당, 직책수당 등을 포함하여 1년간 약 2,500억원 규모 지급을 중단토록 하는 고통 분담 안 제출 △정리해고 규모인 4,380명 중 4차 희망퇴직자 500명을 제외한 4,300명 중에서 하도급 전환 대상으로 포함된(식당, 출

7) 합의 내용은 “희망퇴직을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하되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동안은 정리해고를 추진하지 않고, 위로금은 (근속) 10년 이상 12개월, 5∼10년 11개월, 5년 미만 10개월치 지급” 등이었다.

8) 당시 집행부의 희망퇴직 합의에 대해서 민투위는 "노조에서는 희망퇴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정리해고 철회를 전제로 노동시간 단축과 근무형태 변동 등을 회사가 받아들일 때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쟁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희망퇴직을 합의한 것은 조합원들을 기만한 행동이다. 이는 정리해고 도입을 합의한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희망퇴직은 위장된 정리해고이며, 임금 삭감 또한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민투위 대자보 ‘희망퇴직 합의는 잘못되었다’, 1998.6.25)

9) “공인으로서 더욱더 조합원의 생존권 사수와 고용안정 쟁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져 조직을 탈퇴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삼만이천 조합원을 책임지려” 한다는 것이 당시 민투위 의장에게 제출한 탈퇴서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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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시설 등) 938명은 직영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1,800명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로 일자리를 유지하고 △나머지 1,500명에 대해서는 순환휴가제를 도입하여 6개월의 휴가를 실시하며, 휴가시 임금은 회사 측이 통상금의 50%를 지급하고 노동조합은 기금을 조성하여 30%를 지원한다는 안이 ‘마지막 협상에 임하는 노조 입장’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조합의 양보에도 아랑곳없이 7월 17일부터 정리해고자 명단을 개별 통보하기 시작했다. 7월 20일 노사협상은 1시간 만에 결렬되고 노동조합은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1만 조합원이 참가한 결사항전 결의대회에서 위원장이 삭발과 무기한 철야농성 투쟁을 시작하고, 세 전직 위원장들이 45m 굴뚝농성에 들어갔다. 조합원 5천여 명은 노동조합과 공장 출입문을 중심으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가족들도 가족대책위를 구성하여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23일부터 밤샘농성을 함께 벌였다. 자본은 7월 20일부터 임시 휴업에 들어갔고 7월 23일부터 마지막 5차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4・5차 희망퇴직으로 3천 명 가까이 회사를 떠났다. 이로써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조합원은 8천 명이 훨씬 넘었다. 7월 22일에는 금속산업연맹 15개 노조 6만 8천여 명이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7월 23일 민주노총 산별 대표자 회의는 총파업 방침을 철회하고 말았다. 이후 전국 공동투쟁 전선은 급속히 와해되었다10). 7월 31일 국민회의 노무현 부총재와 노사가 참여한 노사정 간담회가 열렸지만 자본은 오히려 1,538명에 대해 최종 정리해고 통보를 하였다. 정리해고 대상에는 노조 상무집행위원 15명과 현직 대의원 89명 등 총 115명의 노동조합 간부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민투위 120여 명, 실노회 70여 명 등 현장활동가 대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8월 1일부터 9일까지 휴가 기간 동안 3천여 조합원들은 휴가를 반납하고 농성투쟁을 계속 벌여나갔다. 노동조합은 휴가 기간 동안 어린이 여름학교, 노동영화제, 특별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족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매일 저녁 집회를 통해 투쟁 결의를 다져나갔다. 8월 5일 집행부는 8월 6일 김대중 대통령의 울산 방문 소식에 맞춰 또다시 추가 양보안을 제시했다. △사회적 상식 수준의 추가적 임금 삭감, △노동조합 임원에 대한 상징적 정리해고 수용, △노사 평화선언 및 2000년까지 정리해고를 유보하는 고용안정 협정서 체결 등 이었다11).

10) 7월 24일 부산지방경찰청은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동조합 상급단체 상근자들과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 16명을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몰아 구속시켰다. 25일 현장조직 의장단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되었다.

11) 민투위는 집행부의 추가 양보에 대해 “첫째,… 만약 양보안처럼 2000년까지 정리해고 유보라면 이는 투쟁의 목표와 20여일 동안 강고한 투쟁을 전개해온 모든 노력과 성과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며, 7월 31일 정리해고된 1,538명은 시한부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것이며 2, 3차의 정리해고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상식이 통하는 임금 삭감이라 하는데 이미 월 평균 임금 삭감액이 45만원을 육박하고 있는데 추가적인 임금 삭감을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조합원의 동의 없는 추가 임금 삭감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셋째, 무쟁의 선언은 줄 것을 다 주고 현장을 사측에게 넘겨준다는 항복인 것이다… 향후 진행될 전환 배치, 라인 통합, 라인 축소, 하청 이관, 그리고 모답스 도입에 따른 여유인원 발생 등 사측의 의도가 분명함에도 무쟁의 선언을 한다면 또 다시 현대자동차는 고용 불안에 직면하고 더 큰 희생과 양보만이 남을 뿐”이라고 비판했다.(1998.8.9. '민투위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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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공장 점거 천막농성 파업과 김광식 집행부의 정리해고 수용

휴가 마지막 날인 8월 9일 저녁, 1만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한 집회가 있었다. 이 집회의 ‘감동’을 한 조합원은 이렇게 전했다.

집회를 한참 하고 있는데 폭우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졌습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정리해고 철회’를 외쳤을 땐 정말 가슴이 찡했습니다. 사측도 이 광경을 보고 ‘모두들 미쳤다’라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정리해고를 철회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이 때 가졌습니다. 이 날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들 대부분은 속으로 많이 울었을 겁니다. (‘인터뷰, 현대자동차 윤실근’, 노동전선 1998.10)

휴가 이후 첫 출근인 8월 10일 자본은 협상을 제의해왔다. △정리해고 대상자 1,538명 중 60%는 3년간 무급휴직, △40%는 정리해고, △정리해고 대상자 중 식당 종사자 167명에 대해서는 고용 승계를 전제로 외주・하청화 하고 나머지 인원은 희망퇴직을 모집해서 정리해고 최소화, △희망퇴직 조건은 5차 때와 같고(10∼12개월분 위로금), 노조의 2천 5백억 원 임금 삭감안은 수용한다는 것이 자본의 최종 안이었다. 노동조합은 순환휴가와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했지만 협상은 결렬되었다. 8월 13일 위원장은 노조 사무실 옥상 위에 지어놓은 10m 철탑 위로 올라가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농성 대오는 휴가 이후 4∼5천명으로 불어났고 매일 저녁 집회에는 1만 명 이상의 조합원과 가족들이 결합하면서 열기는 더욱 높아져갔다. 정문 앞 육교와 건물 등에는 지역 주민들이 가득 모여들어 집회를 지켜보면서 호응을 보내왔다. 자본은 공장을 가동시킨다며 정몽구 회장을 앞세워 현장에 들어와 사수대와 대치하는 모습을 언론에 흘리면서 공권력 투입에 대한 명분을 쌓아가는 한편, 용역 깡패 수백 명을 사택과 경주 등지에 대기시켜놓는 등 공권력 투입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8월 14일 대검찰청의 공권력 투입 발표가 있었고 15일 범민족대회 때문에 빠져나갔던 병력이 돌아오면서 100여개 중대 1만 2천여 명의 경찰 병력이 현대자동차 주변에 배치되었다. 16일 안영수 노동부 차관이, 17일 이기호 노동부 장관이 내려와 중재를 시도했으나 성과 없이 끝났다. 17일 자본은 관리자와 하청업체 직원들 1만여 명을 동원하여 정상 조업 촉구 결의대회를 가졌으며, 농성에 참가하지 않는 조합원들에게 일당을 줘가면서 울산 인근으로 놀러 다니게 하는 등 투쟁 대오를 고립시키려 혈안이 되었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긴장감이 가장 높았던 이 날 저녁 집회에는 그동안 집회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인 2만여 명의 조합원이 가족들과 함께 참여하여 공권력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노동조합은 전 공장에 흩어져 있던 농성 천막들을 승용1공장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쌓아 공권력 투입에 대비했다. 18일 새벽, 페퍼포그와 포크레인을 동원한 진압 병력이 정문 앞에 집결하자 순식간에 승용1공장 조합원을 중심으로 1천여 명이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구호를 외치며 즉각 대치에 들어갔다. 이렇듯 강력한 저지로 경찰 병력은 금방 물러갔지만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 날 밤 노무현 부총재를 중심으로 한 국민회의 중재단이 급파되었다.8월 20일 정부 중재안이 나왔다. △정리해고 대상자 1,538명중 식당 여성 조합원을 포함하여 250∼300명으로 최소화, △1,200여명 무급휴직・순환휴가, △고용안정기금 설치・운영, △민・형사상 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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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과 손해배상, 재산가압류 취하, 징계 철회, △노사평화선언 등이 골자였다. 8월 21일 저녁 협상보고대회에서 위원장은 정부 중재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식당 조합원 정리해고 위로금 2,000∼2,5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식당을 소비조합 형태로 노조에서 운영하겠다. 고소고발, 손해배상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만만하지 않다. 내일 17시까지 중재안을 받지 않으면 노조에서 제시한 모든 안을 철회하겠다.”라고 밝혔다. 집회 중간 중간 야유와 함성 소리 때문에 위원장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무대 뒷편에서는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집회가 끝난 직후 식당 여성 대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그날 오전 “식당 조합원들이 정리해고를 수용하라.”는 위원장과의 간담회 내용을 폭로했다. 이어 민투위 의장은 “국민회의 중재단은 바로 이것을 노렸다. 우리들이 분열하는 것을 노린 것이다. 힘을 한 곳으로 모을 때다. 노동조합이 정리해고를 철회시키지 못한다면 현장의 활동가들이 모여서 정리해고를 철회시키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선대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우리 투쟁의 목표는 정리해고 철회이다. 정리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자!”라고 선동했다.집회 뒤 가족대책위를 중심으로 노동조합 앞에서 항의 집회가 열렸다. 사수대를 비롯하여 1천여 조합원이 노동조합 앞으로 몰려들었다. 분노한 조합원들의 즉석 발언이 이어졌다. “공권력이 무서웠으면 벌써 투쟁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우리는 공권력에 맞서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 “위원장이 투쟁할 자신이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양보안과 중재안을 철회하라! 만약 그럴 자신이 없으면 노동조합 위에 매달아 놓은 관을 불태워 버려라!”, “지금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과 회사가 시켜서 일당받고 놀러 다니는 사람들과 같은 투표권을 줘서 투표로 심판받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협상 때 회사는 당당한데 위원장은 왜 그렇게 힘이 없느냐? 힘내라. 표정 관리 해라!” 조합원들이 위원장의 입장을 다시 요구하자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뜻을 충분히 알겠다.”고만 밝히고 끝까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12). 8월 22일 가족대책위, 식당 여성 조합원, 사수대, 민투위 등은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던 본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졌다. 항의집회 대오는 저녁이 되어 5백여 명으로까지 불어나기도 했다. 저녁 집회에는 농성투쟁 이후 가장 적은 3천여 명이 참여했고, 위원장은 “앞으로 협상에 목매달지 않겠다. 지금까지 노조에서 밝혔던 임금삭감안을 철회한다. 더 이상 비굴하게 머리 숙여 협상에 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힘있는 투쟁을 조직하자.”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계속 타결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8월 23일 오후 2시 태화강 둔치에서 민주노총 주최 ‘정리해고 저지와 민주노조 사수 전국 노동자대회’가 열렸고 집회 참가자 3천여 명은 현대자동차까지 거리 행진을 벌였다. 이 날 권영길 민주노총 전위원장은 “현대자동차 협상이 만약 불만족스러운 내용으로 타결되더라도 인정해 주자.”라고 얘기하여 집회 참가자들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이틀째 문선대가 문화선동 활동을 거부한 가운데 열린 이 날 저녁 집회에서 위원장은 “언론에 현혹되지 말라. 조합원이 수용할 수 있는 안이 나오면 도장을 찍기 전에 조합원들에게 먼저 의견을 묻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8월 24일 새벽 2시 30분 노사합의 소식이 TV 자막을 통해 발표되었고, 오전 6시 노사는 잠정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277명 정리해고, 나머지 1,261여명 1년 6개월 무급휴직, 정상조업을 위한 노력이 있을 때 재산 가압류와 고소고12) 중재안 합의에 대해 민투위는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어 △기만적 중재안 반대, △전직 위원장들의 입장을 서면으로 받는다, △현

장조직들간의 입장을 통일해 유인물을 만든다는 입장을 결정했다. 그러나 실노회가 조직원 총회에서 자기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면서 현장조직들 간의 입장을 통일시킬 수 없었고, 전직 위원장들의 입장 또한 현장조직들의 입장 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정리되지 않아 윤성근 전 위원장 혼자만 "정리해고는 저지해야 하며 무급휴직도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서신을 작성하여 민투위 유인물에 실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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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등에 대한 부분 철회, 노사화합 및 무분규 선언’ 등이 주요 합의 내용이었다.아침 뉴스를 통해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조합원들은 망연자실하였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빠져나갔고, 몇몇 분노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앞으로 몰려가 노동조합 유리창과 집기들을 부수고, 사수대 옷을 벗어 불태우고, 관을 끌어내려 불태웠다. 오후 들어 농성 조합원들 거의 모두가 빠져 나갔고 바리케이트가 철거되었다.

2.2.4. 잠정합의안 부결

이른바 노사정이 합의한 8・24 잠정합의안은 9월 1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63.6%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된 재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합의 내용은 오히려 더욱 개악되어 관철되었다.결국 98년 현대자동차에서는 하청 노동자 1천 8백여 명, 과장급 이상 관리자 8백여 명, 다섯 차례의 희망퇴직 8천여 명, 정리해고 277명, 무급휴직 1,261명 등 모두 1만 2천여 명이 이른바 ‘고용조정’되었다.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수용으로 8월 17일부터 시작한 만도기계 노동조합의 전면 파업 투쟁은 전국 전선의 엄호를 받지 못한 채 무자비한 공권력 침탈로 격파당하고 말았다. 98년 12월 22일 7대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투표가 진행되었고, 62.2%가 불신임에 찬성함으로써 7대 집행부는 간신히 불신임을 모면했다. 99년 7대 집행부가 사퇴하고 난 뒤 노동조합 임원선거 2차 투표에서 정갑득 후보 진영이 8대 집행부로 당선되어 간신히 노동조합이 정상화되었다. 99년 12월 27일 부로 무급휴직자 전원이 복직되었다.

2.3.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기억과 영향

2.3.1. ‘자발적 선택’이었던 희망퇴직이 남긴 공포

98년에는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앞서 이른바 ‘자발적 선택’이었던 희망퇴직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 4월 17일부터 1주일 동안 일방적인 1차 희망퇴직을 모집하였다. 통상급 4∼6개월치의 위로금을 받고 2천여 명이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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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4일부터 1주일 동안 2차 희망퇴직. 1천 5백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 6월 24일 ‘임금 및 고용조정 대책위’ 본교섭에서 집행부가 3차 희망퇴직에 합의하였다. ‘노사합의’된 3차 희망퇴직으로 2천여 명이 다시 회사를 떠났다. ⋅ 7월 10, 11, 13일 자본은 부분적으로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을 기습 발표하고,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4차 희망퇴직을 실시하였다. ⋅ 7월 20일부터 임시 휴업 돌입 후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마지막 5차 희망퇴직을 실시하였다. 4차, 5차 희망퇴직으로 3천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로써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조합원은 8천 명을 훨씬 넘었다.

이와 같이 현대자동차의 희망퇴직은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당시 거의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그랬듯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도 정리해고의 사전 예고판이었던 ‘희망’ 퇴직을 막아내지 못했다. 4개월간 진행된 희망퇴직 기간 동안 노동조합이 잃은 것은 8천여 조합원만도,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만도 아니었다. 8천여 조합원을 잃어가는 동안 마땅히 해야 할 투쟁의 접점을 만들지 못함으로써 흩어진 조합원들은 개별화되었고, 개별화된 조합원들과 집행부의 관계는 모호해졌다. 남은 조합원들은 생존을 위해 일대 일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일자리를 놓고 어제의 ‘형님’과 ‘동료’는 모두 경쟁 상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4개월 간의 ‘희망’ 퇴직 경험은 살아남은 자에게 생존에 대한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힘들었지요. 그때가 할 일이 없으니까… 앉아서 대기하고, 교육받고, 그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단합이 잘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야 하는데, 옆에 있는 동료가 아니면 내가 나가야 하는데 허심탄회하게 말을 못한다. 동료애도 많이 없어지고 그렇더라. 회사 와서 힘들고 집에 가서 힘들고. 나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옆에 동료가 노란 봉투 타고 나갈 때 ‘그 사람 뭐먹고 사나’ 걱정은 하는데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살았다는 생각을… 그런 시대는 정말 안왔으면… 오래된 사람은 시급이 많아서 먼저 짤리지 않겠는가 걱정하고, 신입사원은 입사 역순으로 짜른다고 걱정하고. 젊은 사람들은 속으로 ‘나이도 들고 벌어 놨으니까 나가지’라고 생각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속으로 ‘젊은 너희들은 나가면 일자리 있지 않냐’ 하고… 겉으로는 서로 웃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고. (면접자 a, 조합원)

신입은 신입대로, 고참은 고참대로 ‘겉으로는 서로 웃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고’ 서로 누가 먼저 짤릴 것인가에만 온통 관심이 쏠리게 되는 상황이 일어났다.

조업이 단축되는 그 순간부터 현장에 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했습니다. 짜른다 하더라… 기준점이 어떻게 된다더라… 슬슬 흘리니까 스스로 참다 참다, 동료들도 생각해보더니만 스스로 사표 쓰고 튀어 나가고, 면담 한번 하고 오더니만 조용히 사표 쓰는 사람. 그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한 번씩 관리자들이 전화 와서 ‘니는 괜찮다’하면 집회 다 빠지고… 같이 근무하는 애도 간곡히 말려도 그만 뒀습니다. (면접자 b,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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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는 집회대로 안되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앞가림’ 하기에 바빠졌다. 조합원 사이의 불신도 깊어졌다. 회사의 편 가르기 수법이 먹혀 들어간 것도 그런 불안감들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 서로 간에 불신이 상당히 깊어 졌다는 거죠. 예를 들어 노란 봉투를 받았냐 안받았냐 차이. 회사가 편 가르기를 했잖아요. 이쪽은 집회하고 한쪽은 계곡으로 다니고, 심지어는 양쪽 다 다니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아파트에 찾아가서 스프레이로 욕도 써놓고, 회사 쪽에 따라다닌 사람들도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요? 사회적 약자고 힘이 약하고, 보수적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쪽에 휘말려가면 나도 정리해고 대상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던 거고, 지도부가 거기에 대해서 확실한 신념을 갖도록 못하도록 한 책임이지 조합원 대중의 이탈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크고 힘들었다 이거죠. 까놓고 보면 끝까지 모인 사람들 해봤자 몇 명 안 된다 이거죠. 전체 조합원이 3만이라면 3~4천이었죠. 나머지는 집에서 문 잠가놓고 TV보고 있었겠죠. 이 사람은 노란 봉투를 주고 저 사람은 안주었잖아요. 안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아이고 다행이다, 안도가 있었겠죠. 어쨌든 찍히고 싶지 않았겠죠. 그런 것들이 ‘니는 빠져나갔다’고 ‘니만 살려고 하냐’고 하고 막 공격하고 할 때, 좀 그랬어요. (면접자 ㄱ, 활동가)

회사는 해고 통보를 받은 이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보장받으려 했다. 이는 자본이 쓰는 편 가르기 수법의 전형이다.

그때 당시 나간 사람의 일하는 자세 등을 보면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주로 나간 사람은 노동조합에 많이 관여된 사람도 많이 나갔지만, 그 라인에서 일하는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갔다. 일이란 그 일 맡은 데서 최선을 다하고 성의 있게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나갔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나갔다. (면접자 c, 조합원)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봐 해고를 받아들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젊은 사람이 다녀야 한다고 울며 겨자먹기로 ‘배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란 봉투’라고 회사의 압력으로 나간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제 부친도 그렇게 나갔는데, 당사자 입장에서 보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어른들 입장은 아닌가 봐요. 혹시나 자식한테 피해갈까 싶어서 주위에서 눈총은 안줬겠나. 오죽하면 그렇게 나왔을까 싶더라고요. 아버지가 지금 장애인 됐어요. 술을 많이 드셔셔요… 회사 나오고 공공근로 하시다가 2~3년 후에 쓰러졌어요. 병원에 있다가 방법이 없더라고요. 솔직히 그런 생각까지 했거든요. 너무 억울해서요. 한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구나 싶어서요. 당시 그런 여건이 안됐는데 법적으로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집에 이야기 하니까, 저도 다치니까 그냥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희망퇴직 말이 희망퇴직이지 희망퇴직이 아니지요. (면접자 ㄴ, 2000년 이후 입사자, 활동가)제일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때 조장이었는데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 힘들어 하셨어요. 1,2차 넘어가고 결국에는 ‘인원이 없어서 내가 나가야 하겠다’고 식구들을 앉혀놓고 말씀하실 때 전부 울었죠. 투쟁이나 이런 부분은 잘은 모르지만, 제가 조합 활동 하면서 그때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보면 그때 절실했구나, 아버지 입장으로 봤을 때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면접자 ㄷ, 2000년 이후 입사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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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음이 아팠던 것은 반의 아줌마가 희망퇴직을 했는데 조합원들이 반 회식에 참여를 시키느냐 마냐를 놓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하도 열이 받아서 (아줌마) 모시고 회식하고, 무급 받은 사람들까지 다 불러라, 만약에 한번이라도 연락이 안 오면 가만 안 있겠다고 했죠. 그런데 아주머니가 오셔서 ‘젊은 사람들이 다녀야지, 내가 나가야지.’ 하시면서, 제일 서글픈 게 회사에 출근하려고 밥 먹고 세수하고 대문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고, 회사 앞까지 왔다가 출입하려고 보니 출입증이 없는걸 보면서, ‘아 내가 회사 그만두었지’ 하면서 돌아가고 그러시더라. (면접자 ㄹ, 활동가)

노동자들의 이러한 순박하고 소박한 생각들과 행동들은 자본에게는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리해고를 자행한 자본의 ‘위기의식’ 또는 ‘경쟁력주의’는 노동자에게 곧바로 ‘삶의 위기’로 전가된다.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배려나 인간미조차 정리해고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본의 운동 법칙이다. 힘없이 ‘아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지’ 하고 되뇌이며 돌아서는 노동자의 뒷모습을 서글퍼하는 것만으로는 자본에 대항할 수 없었다. 그 시기가 바로 희망퇴직 기간, 나아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기간이었다.요컨대 98년은, 자본 운동의 위기가, 혹은 그런 위기를 빙자하여 더 많은 자본을 그러모으기 위한 자본의 탐욕을 위하여, 자본가들(자본가 계급)이 노동자들(노동자계급)을 정리해고로 밀어내는 시기였고, 노동자는 실업이나 비정규직이 되어 ‘삶의 위기’에 내몰리는 시기였다. 즉 자본가(계급)에게 다가온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키는 기간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그 자체가 양 계급간의 전면적인 계급투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시기에 노동자들의 소박한 양보심이나 배려는,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약한 고리에 불과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고용될 때 비로소 노동할 권리를 얻는다. 이 때문에 노동자에게는 커다란 왜곡이 발생한다. 노동이 ‘고용노동’ 또는 ‘임금노동’이라는 형태로 왜곡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 운동의 위기’는 종종 고용을 매개로 하여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노동의 위기’를 불러온다.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이러한 노자간의 계급적 투쟁 관계가 집중적으로 드러난 것이었다13).

2.3.2. 정리해고 대상자, 활동가, 그리고 조합원들의 극단적 분노 : ‘정신적 공황상태’

7월 16일 노조 위원장의 눈물의 기자회견을 통한 대폭적인 양보안에도 아랑곳없이 현대자동차 자본은 바로 다음날부터 개별적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하기 시작한다. 7월 20일 노사협상은 1시간 만에 결렬되고 사측은 2,678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한다. 개별 통보를 시작한 17일부터 20일 무기한 전면 파업 돌입 전까지, 대상자들의 분노는 개별적・즉자적・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났다. 대상자들은 20일부터 파업의 선두에 결합하지만, 사측은 7월 31일 1,539명 정리해고 대상자에게 인사 발령을 통

13) 따라서 현대자동차 투쟁만이 아니라 민주노총이나 금속연맹 등 상급단체의 96~97년 총파업투쟁을 위시하여 노동조합운동 진영의 1998년 투쟁 전체 과정을 들추어 평가하는 것은, 이 장의 과제는 아니지만, 더없이 중요한 사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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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버린다.

관리자한테 전화가 딱 왔더라구요. (통지서) 갖다 줄테니까 집이 어디냐 그래서 필요 없으니까 내가 받으러 갈 테니까 어디서 만나자 했거든요. 그 때 한 반에 저하고 나이가 같은 친구가 있었거든요. 친구하고 같이 받으러 갔었죠, 그날 저녁에 촛불 집회하고 그 담날 사수대 결성하고. 몇 일 동안 텐트 지키면서 날이 가면 갈수록 참석하는 인원은 줄어들고… 어쨌든 내 자신도 약간은 자포자기 했는데, 자포자기가 ‘쓰고 나가겠다’는 건 아니고 ‘이왕 하는데 까지 해보자’고 해서 남아있었던 거고… (면접자 ㅁ, 활동가)정리해고 통보서를 받고 3일 정도 지나고 사수대 막사로 결합한 조합원들이 많은데요… 이 막사에 오기까지 사흘, 그 사흘 동안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민과 술로 밤을 지새고 결단을 내린 겁니다… 아직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사수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그 고통은 잘 다스려지지 않고, 단지 같이 지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통제되고 조합에 의해서 통제되는 상태이지, 마음을 진정하거나 감정을 추스리거나 냉정한 이성을 되찾거나 그런 상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루 아침에 순식간에 자신이 폐품처리 당했는데, 회사가 이미 정리해고를 단행했는데, 협상을 통해서 철회시킬거라는 기대도 안가지고 있어요. (1998년 8월 11일 2지대 어느 사수대와의 인터뷰에서, 임인애, 세기말 현장보고서)노란 봉투를 집으로 보내기 전에 대의원은 알았지요. 그 전에 식칼 들고 올라가 00부 대의원이다, 나를 먼저 집어넣지 않으면 네가 죽을 줄 알아라 하고 나왔다. 분신 말리느라고 힘들었고요… 오히려 순했던 사람들이 더 그랬어요. 후배 놈 중의 하나가 그래서 모질게 팼지요. 그 때 참 가슴이 아팠지요.(면접자 ㄹ)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분노는 극단적이었다. 특히 활동가 그룹이 그랬고,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였다. 사측에 의해 선별당하고 개별적으로 통보받는 방식이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자존감을 심하게 훼손시켰다. 그 분노와 상실은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정리해고 대상자에 들어간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에 노동조합에서 지불했던 선물이 있었어요. 정리해고 시점에 노조에서 지급했던 선물이 주방세트였어요. 수저, 칼, 이런 것이 들어갔었는데, 이때 지급했던 주방기구를 무급휴직, 정리해고 대상자들이 집으로 안가지고 가고 몸에 품고 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분노가 극에 달했어요. 그때 당시에 공권력이 들어오고 같이 맞부딪쳤다면 서로 엄청난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정리해고 대상자에 들어간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것이지요. (면접자 ㅂ)

이러한 분노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회사가 되게 하려고’ 양보하고 ‘희망’퇴직을 받아들이던 모습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정신적 공황상태에 처하게 된 조합원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노란 봉투, 시퍼런 해고의 칼날뿐이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대상자들은 현장에서 막무가내였죠. 반장 책상에 칼 꽂고, 기물 파손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만들어놓은 차에 테러를 가하고… 공구를 다 갔다 버리고. 어쨌든 시작하자마자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조합원들은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왜 하필 나냐 이런 것이지요. 누구든지 잘리게 되어 있다.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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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하는 동지들도 있었다. 그런 동지들은 사수대로, 공장 점거로 결합을 하는 거고, 회사에서는 여러 방면으로 공격을 하는 거예요. 정리해고 대상자에게는 그 속에서 빠져나오면 무급휴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 빠져나오면 무급휴직자들 대상에서 빠지게 해 주겠다. 고리가 약한 조합원들은 ‘지금이라도 희망퇴직 안하면 그것마저 못 찾아가는 것 아니냐’ 여러 가지로 다 파악했기 때문에 대응방식이 다 틀렸죠. 희망퇴직을 조합에서 받아 들였다는 것. 그런 기억들이 많이 나고요.(면접자 ㅅ)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참여했죠. 제가 처음에는 안 받고, 2차 때 해고 통지서를 받았는데… 사람들 중에서 무급 받은 사람도 있고 안 받은 사람도 있고… 동료들 간의 배신감 같은 게 좀 많았었죠. 어떤 사람은 자신은 살았으니까 이런 거 참여 할 필요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자기도 혹시 앞으로 당할지 모르니까 열심히 참여하고 그런 거…. (면접자 d, 조합원)

또 한편에서는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정리해고) 대상자와 아닌 자로 분리되면서 함께 싸우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커져갔다. 대상자와 아닌 자 사이의 갈등과 골은 비록 표면적인 갈등은 희석되었을지 모르나, 파업이 끝나고 현장 복귀 후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그러나 투쟁은 자본에 의해 개별화된 노동자들을 동지적 관계로 다시 일으켜 세운다.

2.3.3. 투쟁은 자본에 의해 개별화된 노동자들을 동지적 관계로 재구성한다 - 단절된 관계, 새로운 동지 : ‘계곡파 조합원’과 식당 여성 조합원

파업 기간 내내 농성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사측에 동원된 일명 ‘계곡파 조합원들’과 쫓고 쫓기는 과정을 지속했다. 그러나 과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투쟁 과정에서 노동조합 내부의 변별점이 ‘어용과 민주’의 구도였다면, 98년 이후 지금까지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대상자였느냐 아니었느냐, 파업에 참여했느냐 사측에 동원되었느냐에 따라 나뉘어 왔다. 한쪽은 사측의 파업 무력화를 저지하기 위한 자발적인 행위였으며, 또 다른 한쪽은 정리해고를 비껴간 상황에서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행위였다. 그러한 구분은 고용, 즉 자신의 생존권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첨예한 갈등으로 나타났으며, 파업이 끝난 뒤로도 극심한 대립과 갈등의 원인으로 남았고, 지금까지도 현장의 일상 속에 잠재되어 예전과 같은 공동체적 질서를 복원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투쟁의 상흔이기도 하지만, 파업 이후 투쟁의 우위에서 현장 질서를 바로잡지 못한 노동조합의 책임이기도 하다.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막연한 화해와 용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억을 복원하고 평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재확인해야 한다.

여름에 비가 엄청 왔죠. 조합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가 오는데 산에 간다고 조합원을 집결시켜놨다고 하더라. 그 비를 맞고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사측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산행을 시작한다고 하니까 그 장대같은 비를 맞고 산에 올라갑디다. 타고 갔던 오토바이 헬멧을 집어던지고 욕을 했더니 가다가 돌아온 사람이 7명 이었어요. (면접자 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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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 개 삶아먹고 그런 거 타격 갔었거든요. 갔는데 참 슬프더라고요. 참 불쌍하더라고요. 조합원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니까, 밉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절대적인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우리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면접자 ㅇ, 당시 문화패)그때 생각하면 선거구 조합원이 야속하다. 우리 선거구는 다 나갔다. 텐트 쳐놓고 대의원하고 저하고 둘이 있었다. 그동안 그 전까지 형・아우하고 지냈던 사람들하고 다 싸웠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대의원선거 나가면서 공개 사과하라는 이딴 소리 들으면서까지… 저는 그 때… 그것이 제일 가슴이 아프다. (면접자 ㅈ)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투쟁은 자본에 의해 개별화된 노동자들을 동지적 관계로 재구성했다. 우리는 그것을 계급성의 회복이라고도 부른다. 식당 여성 조합원들은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을 통하여 ‘밥 주는 아줌마’에서 ‘함께 투쟁하고 있는 식당 아줌마 동지’로 거듭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인식은 ‘식당아줌마’였고 ‘여성 조합원’ 혹은 성별의 차이를 극복한 ‘조합원’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 한계는 결국 투쟁의 막바지에 이 ‘동지’들을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정리해고의 희생양’으로 몰아넣는 차별로 나타났다. 이에 36일 간의 파업이 끝난 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한때 동지였던 남성 조합원들이나 노동조합의 연대 없이 기나긴 해고 철회 투쟁을 이어가야 했다.

98년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식당 아줌마들의 남자들 못지않은 투쟁,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의 타겟이 되었다. 아쉽지요. 그리고,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내 부인, 내 자식까지 하나 된 마음으로 그런 위기 상황에 공동으로 대처했다는 것이 상당히 가슴에 와 닿을 정도로 감동했어요. (면접자 ㅊ)처음에 식당 아줌마들이 파업할 때 저는 조합원한테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우리 집회할 때 창문으로 내려 보며 실실 웃고 하던 사람들인가. 솔직히 안 좋아했지요. 한번 해봐라, 그런데 여성 조합원들이 그만큼 열성적으로 하고 98년 때도 식사도 다해주고 하는 것 보고. 남자 활동가들보다 더 열심히 하니까 나중에는 조합원들이 엄청 좋아했죠. (면접자 ㅋ)

2.3.4. 집행부와 조합원 : 주체들 간의 동질감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8월 5일, 파업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노조 집행부는 ‘임금 삭감과 무쟁의 선언’을 주요 내용으로 한 양보안을 내놓았다. 파업 참여 조합원들은 지도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그 지도부는 투쟁하고 있는 대중이 아니라 정권과 현대자본과 공장 밖의 공권력들, 그리고 투쟁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들과 관리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회유의 입들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조합원들은 “더 이상 미련도 여한도 없다. 후회 없는 한판 싸움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간다.”14)고 말하고 있었지만, 파업 지도부는 “우리의 피와 땀을 여기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투쟁을 남기고 싶습니다. 영원히 지역 주민과 국민들에게 기억될 순결한 투쟁을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15)라고 말하고 있었다. 파업을 둘러싼 내14) 1998년 8월 14일, 파업 농성장 평조합원 텐트15) 1998년 8월 18일 저녁집회, 김광식 위원장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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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주체들 간의 긴장은 파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긴장은 투쟁 과정에서 온전하게 충돌하며 한 단계 상승하지 못한 채 그저 미묘한 기운으로 잠복해 있었다.그토록 힘겨운 와중에도 파업은 파업 그 자체만으로 짜릿한 쾌감과 즐거움을 주었다.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있었고, 그러한 집단적인 체험은 파업의 커다란 동력이자 주체들에게 동질감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 과정에 참여한 대다수의 면접자들은 휴가 마지막 날인 8월 9일 저녁, 1만 여명이 참여한 집회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날의 집회는 공권력 침탈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오히려 더 많은 노동자들이 결집했다는 점, 집회 도중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흩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획된 문화판’이 ‘전체의 난장판’으로 상승되어 집회 참가자 모두가 동일한 흥분과 투쟁의 확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은 파업 지도부의 일관되고 확신에 찬 입장을 대중적으로 소통하고 공유하여 얻어지기도 하지만, 파업 공간에서 직접 느끼는 상호간의 소통과 상승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오는 날 했던 집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지요. 조합원들이 비 속에서 끝까지 남아있었다는 게 흥분되고 짜릿했죠. 그걸 계기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사람들이 참 많이 가졌어요. 조합원들이 공권력이 침탈한다면, 전에 성과급 투쟁 때는 도망갔었는데 이번에는 담 넘어서 들어왔었거든요. 경찰들이 들어온다고 해서 각 문을 봉쇄했는데 오히려 담 넘어서 들어왔었어요. 사람들이 없는데, 집회하면 모이는 거야. (면접자 ㅌ)비가 갑자기 와서 무릎 밑까지 차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어깨동무하고 춤추고 했던 것. 지금도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안에 있었을 때 정신병자 같았는데,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안에서 하고 했던 것들이, 동지적인 것들이 무언가, 결과야 어이됐던 이길 수 있다는, 동지들과 함께 있으면서 외롭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면서 안에 있으면서 상당히 편했었다. 그런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면접자 ㅍ, 활동가, 당시 조합원)소나기 쏟아지는 데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투쟁 동력도 있었어요. 해가 지면 어디서 사람이 나오는지 저녁 7시 집회만 할 때 되면 사람들이 많았어요…. (면접자 e, 조합원)

그 다음 날부터 현대 자본의 제의에 따라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자본은 최종안을 내놓았고, 협상은 결렬되었다. 다음날 위원장은 노조 사무실 옥상 위, 철탑에서 농성을 시작한다. 협상으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자본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8월 중순이 지나면서 공장 정문을 둘러싸고 있는 공권력은 더욱더 불어났고, 정권에서는 연달아 중재단을 급파했다. 파업은 정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정권과 자본의 조여 오는 압박과 함께 조합원들의 열기와 집중도 상승해갔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긴장이 최고조이던 순간에 가장 많은 집회 대오가 모였다.그 열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인 듯 때마침 노무현이 신자유주의 정권의 대리자로 울산에 내려왔고, 8월 20일에는 노무현 중재단의 중재안이 발표된다. 당시의 상황과 판단에 대해 당시 노조 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래와 같이 술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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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에서 노무현이 국민회의 중재단을 꾸려 울산으로 내려온다. 이에 대해 김광식 위원장은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회사 입장에서 보면 합법적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또 “당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별 단위 사업장이 정권과 총자본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개별 단위 사업장이 투쟁을 벌여 정리해고 규모를 줄이는 것은 하지만 기업별 노조보다는 구조와 시스템을 바꿔 산별노조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잠정합의(안)에 대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1,2차 투표를 통해 부결시키지만 문안이 약간 수정돼 통과된다. 사실상 “노조를 유지할 힘조차 없어 합의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는 것이 김 위원장이 바라보는 당시 정세다. - 2002년 6월 월간 『말』

반면 투쟁에 결합했던 현장조직들과 활동가, 조합원들은 즉각 분노와 반발을 표출하였다. 그들의 요구는 “끝까지 싸울 수 있다, 싸우겠다.”는 것이었고, 위원장의 판단은 “노조를 유지할 힘조차 없어 합의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는 것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파업에서 그러하듯 지도부의 현실적인 고민과 조합원의 투쟁 열기 사이의 간극은 이 투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으며, 특히 파업의 정점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의 해결 방안은 파업의 주체들이 행동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답 외에는 있을 수 없다. 문제는 현실 속에서 행동하는 주체들의 힘이다.

2.3.5. 집행부와 조합원 : 파업의 지도력과 민주주의

면접자들에게 파업기간 동안 가장 큰 갈등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싸움에 대한 확신이나 전망이 불투명함에서 오는 갈등인지, 가족들의 또 다른 회유가 갈등이었는지, 현장조직간 활동가간의 전술상의 이견에서 오는 갈등인지, 조합원들에 대한 못미더움에서 오는 갈등인지, 지도부의 의지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오는 갈등인지를 물었다. 활동가들은 파업의 중요 국면에 대해 활동가로서의 판단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현장조직별, 공장별로 진행되는 토론 등을 통해 파업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또 그만큼 갈등의 요소들이 더 풍부하게 드러날 수 있는 집단이다. 따라서 이를 통해 개인적인 고민이나 갈등보다는 당시 정세 속에서 나타난 집단적인 갈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면접자들의 대다수는 지도부와의 갈등을 가장 큰 갈등으로 꼽았으며, 당시 사수대나 대의원으로서 파업에 결합했던 활동가들은 특히 강렬한 반응을 보였다.

지도부의 책임이다. 사수대를 총괄 지휘했던 사람이 부위원장, 지도부 지침이 비폭력. 사수대는 무급휴직자들 중심으로 격앙되어 있었죠. 지도부가 비폭력 지침을 내리고 회사가 야금야금… 결국 생산까지 가동해 보려고, 그런 회의도 하고. 이건 조합원들이 할 수 없는 거다. 그러면서 지도부가 막았어요. 지도부가 투쟁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마지막 정리할 때 새로운 형태의 파업지도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는데, 소수라서… (면접자 ㅎ, 당시 사수대)사실 7대 집행부에서 침탈에 대한 대책을 안 세워 놨었다. 같이 있던 동지들이 공장(꽃)도 가동하고, 사실 믿을 만한 동지들이 별로 없었어요. 낮에는 사수대로, 거의 하루에 20시간씩 돌아다녔던 적도 있고, 밤에 공장 타격투쟁도 하고, 생산시설 파괴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진짜 믿을 동지들만 해서. 사실 타격 투쟁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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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대한 망을 본 것이 아니라 조합에 대한 망을 보면서 했다. 어용은 아니더라도 만족할 만큼 못 싸웠었고, 그것에 대한 실망이 많았었지요. (면접자 ㄴ, 당시 사수대・대의원)집행부에 대해서 그랬다. 이상한 기류로 흐르는 것들. 대중적으로는 결사항전 이런 쪽으로 이야기가 되고. 정확히 찍어내지는 못하겠는데요. 회사와 협상하면서부터 이면적으로 되고. 노무현 중재단 오기 전후 그 정도일 거예요. 흔들렸던 거지. 사실 그 전에 희망퇴직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면접자 ㄹ)집행부에 대한 절망감이 자꾸 계속 들었지요. 그리고 우리가 공장 공구들을 싹 다 갔다 버렸거든요. 나중에 다 주웠더라. 기계에다가 소금물 다 붓고 그랬었거든요. 투쟁 중에도 절망감을 많이 느꼈어요. 지도부에 대한 절망감이 컸어요.(면접자 ㅁ)문제는 투쟁이 지속되어 가면서 이 사람들의 요구는 무조건 정리해고 반대였고, 집행부에서는 시간이 가면서 현실적인 고민이 하나 둘 생겼던 것이다. 상시적으로 소통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면접자 g, 활동가)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하는 투쟁 전술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목표를 둘러싼(합의안으로 표현되는) 지점이 주된 갈등의 양상이었다. 정리해고 명단 발표 이후 파업 기간 내내 대중들은 즉자적이고 즉각적인 분노를 표출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질서’와 ‘조직된 투쟁’이라는 명분으로 그러한 분노를 잠재우고자 했다. 또한 대중의 투쟁의지를 끊임없이 교섭이라는 제한된 틀 내로 가두고자 했다. 그 결과 투쟁동력과 교섭이 투쟁을 상승시키는 계기로 작동하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16). 이러한 지도부와 활동가, 현장조직을 포함한 지도력과 조합원 대중의 정서 사이의 갈등-오히려 갈등이 전면화 되지 못함으로 인해 내부의 골을 더 깊어졌지만-은 투쟁기간 내내 지속, 확장되었다.

연구원 :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활동가들 간 소통이 왜 막혀있었나요?면접자 : 그때 이상하게 그렇게 막히더라고. 그것은 내가 느낀 것인데,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또 이런 것도 있다. 어떤 대의원은 아까 이야기했듯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더라. 그러면서 믿지를 못하는 거야. 그러면서 보면 보이더라. 저거는 끝까지 갈 놈이다. 저놈은 못할 놈이다 그러다보니 함부로 이야기를 못하는 거야. 당시의 상황들은 굉장히 미묘하고 복잡했죠. (면접자 h, 활동가)면접자 : 제가 알기론 위원장하고 뭐 독대도 하고 막 그랬는 거 같던데.연구원 : 위원장이 사측하고?면접자 : 네.연구원 : 독대하는 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조합원이 안 좋아하나요?면접자 : 네.연구원 : 왜요?면접자 : 불안해서. (면접자 j, 조합원)파업지도부에서 대중과의 토론 이것이 핵심이다. 공권력에서 깨져야 하냐는 문제는 깨지면 성공이냐 아니냐의 이런 문제보다는 결국 마지막까지 투쟁을 하면서 대중과 함께 어떻게 했느냐가 관건이었다. (면접자 k,

16) 노동자의 힘, 결코 꺾이지 않은 미완의 투쟁,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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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집행부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다 오픈시켜놓고 판단해도 사실은 약이 올라 있는 활동가들을 이해시키기도 힘들 텐데, 아마 정보자체를 다 오픈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공식적인 절차라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그것은 합의 안하겠다는 이야기 이다. 그런 맥락에서 민주적인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전 과정까지 모든 게 잘못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면접자 l, 활동가)

98년 구조조정을 둘러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투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중의 투쟁의지(동력)에 지도부가 얹혀 있는 형국이었다. 이는 투쟁을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 차가 소통의 부재, 혹은 단절로 인식되게 만든다17). 대다수 면접자들의 평가에서도 파업과정에서 특히 마무리 교섭국면에서의 민주적 절차의 부재를 가장 크게 잘못한 지점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미 정리해고가 법제화된 상황에서 벌어진 36일간의 정리해고를 전면 거부하는 그 자체가 이미 총자본과 총노동의 전선인 98년 현대자동차 파업에서조차 대중들의 투쟁은 철저히 교섭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조합원 동지들! 투쟁의 목적은 협상에 있다.”18)

“집행부의 비폭력 평화노선을 적극 따르라. 조합원들이 위원장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지 않는다면 투쟁을 포기하겠다.”19)

20세기 말 한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전개된 파업들은, 극단에 선 노동자들이 끝을 모르고 덤비는 투쟁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로만 분석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망을 가진다. 이제 파업은 핵심 컨셉과 치밀한 계획, 적절한 수위, 정세나 국면을 타고 잡는 일정이 필요한 하나의 기획이 되었다. 계획과 일정이 분명한 수단으로서 파업은 불시에 터져 나오는 돌출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충분히 예상 가능한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20).파업이 하나의 공인된, 사회적 행위 중의 하나라면 늘 예측 불가능하고 즉자적인 ‘들고양이 파업’만이 그 전형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기획’이 아니라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는 점이다. 투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획보다는 노동자 대중의 운동 방식으로 파업의 기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통제’로 대체하려는 ‘지도’가 아니라 지도부의 지도력을 대중 스스로가 넘어서고 통제할 수 있도록 조합원들의 의지와 행동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을 ‘허용’하는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면접자의 말대로 “민주적인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전 과정까지 모든 게 잘못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오히려 파업의 전 과정에서 파업 지도부가 대중들을 통제와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파업기계’로 제한시킨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그 때문에 대중을 배제한 채 합의한 ‘종이’

17) 임인애, 실패한 상흔은 오래 지속된다, 진보평론 3호.18) 1998년 8월 22일자 현자노조 중앙비대위속보 87호.19) 1998년 8월 12일 저녁 집회, 당시 현자노조 위원장 발언.20) 임인애, 실패한 상흔은 오래 지속된다. 진보평론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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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그야말로 한낱 ‘종이쪼가리’로 무력화시킬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노동자’로 대중이 진전해 나가지 못하였다. 이것이 평가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이다.

어수선했죠.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그 전에 짐작하고 있었죠. 막판에 오면서 노조 유인물도 이상하게 나오기 시작했고, 홍보물이나 TV를 보니까, 이미 그쪽에서는 타결이 임박했다고 하는 것이고, 집회에서도 김광식의 논조가 그런 식으로 가고 있고, 유인물도 그렇게 가고 있고, 그래서 이미 알고 있었다. 다음에 노무현이 내려와서 중재를 하면서 위원장의 의지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당시에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마지막 그날, 이미 알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는 믿음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집회도 집회처럼 안되고 아주 엉성했었다.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퍼져 있으면서 씨발 씨발… 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위원장이 단상에 올라와서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최소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때는 머릿속에 별이 빤짝빤짝했다. 조합원들이 위원장 이야기 듣기 전에 삼삼오오 다 빠져나가고 있었던 상황이다. 가다가 돌아보면서 쳐다보는 조합원들. 내가 정문을 차단하고 막으면 저 사람들 투쟁대오로 이끌 수 있는가도 생각해보았는데, 자신이 없었다.(면접자 ㅅ)

합의의 3주체였던 정부와 현대자본과 노조 지도부는 역사적인 사진 한 컷을 남겼다. 그러나 조합원들에게는 그들 스스로가 남지 못했다. 단지 정부와 자본에 의해 무력화된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합의문과 마치 “군사 쿠데타이후의 상황을 방불케 하는21)” 현장만이 놓여지게 되었다.

2.4. 끝났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원직 복직 쟁취투쟁

2.4.1.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정리해고 : 희생양 277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저지 투쟁에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주요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점은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277명의 정리해고자 중 144명이 식당 여성 조합원이었다. 식당 여성이 집단적으로 정리해고 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여성의 차별적 정리해고에 대한 운동진영의 비판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부 투쟁주체들 사이에서는 277명의 정리해고 수용과 지도부의 직권조인에 대한 분노가 ‘여성 노동자 집단 정리해고’ 그 자체의 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접자들은 당시 잠정합의 이후 그 대상자의 대부분이 식당 여성 조합원이었다는 점이 미안함, 안쓰러움과 동시에 불가피함, 일종의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정리해고 대상자에서 최종 제외되었음에 대한 안도와 함께 노동운동 진영 일부에서 제기된 정리해고 최소화론22)이 노조사수라21) 면접자 w, 조합원.22) 정리해고의 ‘상징적’ 수용과 ‘상징적’ 관철이라는 노조 집행부 및 일부 활동가들과 사측 및 정부의 이해 일치는 이미 노동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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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명분과 더해져 현실적인 타협이 이루어졌음을 회고하고 있다.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경우 조합원 전체로부터 호응 받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죠. 그 이데올로기는 차 만드는 사람하고 밥 짓는 사람하고 임금이나 모든 조건이 똑같을 수 없는 것 아니냐가 회사 측의 논리였단 말입니다. (면접자 ㅍ, 활동가)그때 어떤 집행부였어도 마찬가지 였을 거예요. 그렇게 안 했으면 다 죽었을 테니까. 어떤 집행부였어도 잘 한 거에요. 솔직히 내가 봤을 때는 그 정도면 잘 한 거예요. (면접자 v, 조합원)그때 당시 솔직한 심정은 한마디로 말해서 해고를 피할 수 없으면 잘한 결정이다. 남자가 경제력을 짊어진 상황에서 여성들도 생계에서 역할부담을 하지만 그래도 남자가 경제력을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조합 쪽의 최선의 결정이지 않았나.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나.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면접자 y, 조합원)실제로 어떤 노동조합이던지 희생양은 있다고 본다. 저 아줌마들 저리 열심히 했는데 살릴 수 없었느냐? 나름대로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식당아줌마가 몇 천 명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노동운동이 잘못되는 방향을 그때부터 배우지 않았나. (면접자 ㅎ, 활동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의 유연화를 증대시켰지만, 유연화는 차별적으로 진행되었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진행된 외주화,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은 98년 투쟁당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는데 기본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었고, 주변부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자본의 유연화의 공세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겨누어지는 상황 하에서 더욱 확대・심화되어 진행된 것이다.

그 한 달을 넘게 천막농성하면서 이리저리 식당이 타겟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시간이 지나면 서울에 간 사람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서 식당아줌마가 그 안에 정리해고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공공연한 비밀로까지 되었었어요. 그래서 아줌마들이 여기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때 전경이 들어오니 불을 지르니 오만(가지) 이야기 돌 때였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많은데 아줌마들이 많은 생각을 했지요. 혹시 내 새끼 같은 저기 사람들 다치면 어떻게 하나. 파업도 끝나야 집에 가서 살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할 수도 있고요. 억울해 미치겠다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노동조합이 식당 운영하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리석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싸움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으니까. 노조에서 마지막 방법이다 하니까 우리도 그것을 또… (면접자 q, 당시 식당 여성 조합원)98년 투쟁 이야기하면 너무 속상해서요. 98년 투쟁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있는 거지만. 어쨌든 98년 당시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막 나라가 어렵고, 96년부터 그랬으니까 또 회사가 정말 어렵구나. 그래서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어쨌든 노동조합 지침만 믿고 끝까지 싸웠는데 결국은 해

검토시 노조측의 ‘유연화’ 수용 불가피론에 그 맹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물질적인 단기적 이득을 위해 ‘상징적’ 차원에서 양보하고 조직된 힘으로 막아내면서 조직적 동원력을 유지하고자 한,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민주노총 합법적 제도화를 통해 열릴 정치적 가능성이라는 계산과 경험론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리해고의 ‘상징적’ 수용과 ‘경제적 실리’의 보장을 통한 ‘노조 조직 보존’이라는 결과는 대다수의 노조운동 활동가 및 노동운동계와 학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상층노조의 지원이 저조한 가운데 단위 대공장 노조만으로는 대정부 및 자본과의 전면적인 투쟁의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희생을 최소화하는 결과를 얻어낸 성과는 인정되어야 한다는 근거에서 그런 것 같다. (신병현, 여성 노동자의 집단적 정리해고와 ‘민주’노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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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되더라고요. (면접자 s, 당시 식당 여성 조합원)당시 사실은 위원장이 내려와서 3가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했어요. ‘하청식당으로 승계해주고, 해고자 재활급여에서 급여보장 해주고, 임금보장, 정년퇴직이 없도록 한다.’ 그러면서 정리해고를 우리도 사실 수용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도…. (면접자 q)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둘러싼 공장 내부의 여론은 여성 조합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정리해고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만큼의 집단적인 압력이었다. 그것은 은폐된 협박에 가까웠다. ‘밥 짓는 사람’과 ‘차 만드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간접 노동과 직접 노동을 위계화 한다는 뜻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밥 짓는 여성’과 ‘차 만드는 남성’의 성차별을 은폐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논리였던 ‘대중적 정서’는 면접자 스스로가 말했듯이 바로 현대 자본이 끊임없이 유포했던 논리였다. 그 속에서 활동가들은 이러한 정서를 노동자 운동이 극복해야 할,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23)이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노동 내부의 분절화로 이해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돌파해야 할 핵심지점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활동가들은 이런 자본의 논리를 조합원 대중의 여론으로 이해하고 편승하였다.구조조정 저지, 정리해고 반대의 슬로건 하에서는 단일한 투쟁주체로 보여졌던 식당 여성 조합원들이 핵심과 주변부를 가르는 남성과 여성의 갈림길에서는 더 이상 동일한 노동자가 아니게 되었다.

연구원 : 왜 하필 여성 노동자가 집단적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면접자 : 가장 약한 고리였겠지요. 그리고 늘 그… 직접 부서 아닌 것 있잖아요. 식당은 간접 부서라고 생각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곳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도 직접 생산 부서가 아니라 간접 부서이니까 외주 하청화 한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었거든요. 그래서 자기네들 경쟁력을 위해서다, 다른 식당 보다 임금이 너무 높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쪽으로 만들고 있었고, 시점이 되니까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여자여서 잘라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면접자 s)

당시 정부와 자본이 ‘정리해고 최소화=277명’이라는 숫자만 제시하고 ‘그 277명 대상자는 조합원들이 결정한다’라는 안에 노조가 합의했다고 상상해보자. 예측 가능한 결론은 두 가지로 모아질 수 있다. 하나는 애초에 그 합의안 자체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결정하지 못해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277명의 명단을 선정하게 되는 경우이다. 어떠한 경우이든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토론을 통해 별다른 논란 없이 ‘우리는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용납하지 않겠다’라는 애초의 방침과 결의를 재확인하고 투쟁의 결의를 다시 확인하는 경우를 포함한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투쟁주체들은 엄청난 혼란과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자, 그 속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겠는가? 밖에서는 공권력이 합의안 부결 이후 침탈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중재라는 명분으로 서울에서 급파된 ‘노무현・이기호 협박단’24)이 지도부를 대중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들23) ‘전세계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성차별적 성격을 직시하지 않는 ‘민주’ 노조운동계의 정치적 성격 때문이다. 추상

적이고 도식적인 차원에서 자본운동의 ‘무성성’(gender blindness)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사회구성체의 구체적인 자본운동에 주목하게 되면 그것은 결코 무성적이지 않다. 신국제분업의 자본축적 전략이 전세계에 걸쳐서 주변적 인력으로서 여성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착취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적 지배는 신국제분업의 구성적 요소이다.‘ -신병현, 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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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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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던져진 갑작스런 ‘제한된 선택권’은 아마도 유혹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리는 결정이 과연 자본에 의해 구획된 ‘핵심과 주변’ 노동의 간극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노동자로 인식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까? 모든 발언들과 입장들 사이에서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릴 수 있었을까? 조합원들은 그 자신이 277명의 대상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상호 불신과 경쟁, 모종의 담합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을 만큼 성숙되어 있었나?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결과이지만, 거꾸로 결과란 지나온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우리는 아무도 최악의 결정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이나 장담하지 못한다.

당시 집행간부도 그런 이야기했고 회사 간부도 계속 삐삐로 연락이 오고, ‘나가야 한다’ 심지어 활동가들도 찾아와서 ‘어떻게 할 거냐, 몇 명이나 데리고 나갈래. 지금 안 나가면 나중에는 일자리조차 없다’고 했어요. 지금 (나가면) 고소고발 다 취하해 주겠다. 활동가도 그랬고요. 우리가 최종적으로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자고 했던 것은 위원장이 당시에 그랬거든요. 관을 짜놓고 탑까지 올라갔잖아요. 위원장이 어쩔 수 없다. 고용승계라는 조건이 붙은 거에요. 여성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한 것이 우리는 고용승계 되니까 남자들은 짜르지 마라. 노동조합이 정말 어쩔 수 없다면 133명 남자들은 짜르지 마라. 그렇게 말했는데 공허한 메아리였고, 아무 것도 되지 않았지요. 그리고 위원장이 이야기했던 합의 조건이 부수적으로 다 따라왔었어요. 그렇게 동의하도록 조건을 만들어 낸 거죠. 더 힘이 약화된 것이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대부분 고등학교, 입시생 자녀가 많아서 이것 때문에 다 흔들리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판단하기 보다는 주부라서 그렇게 하게 만든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이요. (애초 위원장이 우리에게 약속했던) 그 조건을 다 받아왔다면 우리 투쟁이 만들어지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그 조건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당시 지도부가 지켜주지 않았던 약속들이 전화위복이 됐다. (면접자 s)한 두 사람 제외하고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젊은 사람들이 정리해고가 되지 않도록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위원장이 ‘안을 내놔라’라고 해서 우리가 요구안을 던졌는데 그것을 들고 들어가자마자 정리를 하고 나왔는데 우리의 요구안은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일부 한두 개, 조합원으로 인정해주는 것과 노조 식당 운영하는 것으로 바로 합의를 하고 나왔어요. 이미 다 정리된 상황에서 구색 맞추기 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어요. 합의하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합의를 해줘도 된다는 식으로 상황이 묘하게 된 것도 같고, 그 부분에 들어가면 막막해져요. 그 상황을 같이 겪지 않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한 쪽 시각으로 정리해버릴 것 같아서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않아요. (면접자 q)

당시 식당 여성 조합원이었던 면접자는 마무리 교섭국면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난감해했다. 드러나는 현상을 놓고 보면 노조 위원장은 주체였던 식당 여성 조합원에게 분명 먼저 의견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요구안을 스스로 제출하라고 이야기했고, 그 주체들 역시 정리해고가 불가피 하다면 어떤 요구안을 제출할 것인지 토론했다. 그렇다면 왜 여성 조합원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데 난감해하고, 또 그 당시 결정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떤 의도에 말려버린 것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시 끊임없이 나돌고 있었던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정리해고설이 여성 노동자들을 포위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수평적 지위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식당 여성 조합원에게만’ 던져진 선택과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이미 정리해고의 핵심 대상이 식당 여성 조합원임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여성 조합원 스스로에게 결정을 하게 한 셈이다.

24) 하수봉, ‘누가 밀실협상, 직권조인을 아름다운 투쟁이라 하는가?’ 19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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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하필 277명이었을까? 144명의 식당 여성 조합원들과 133명의 대다수가 활동가들로 채워진 남성 조합원들은 어떻게 선별되어진 것일까? 그저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당시 식당 여성 조합원은 277명이라는 숫자에 묘한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본격적인 투쟁 이전에 (식당 여성 조합원이) 한 500명 되었을 것인데, 이리저리 희망퇴직으로 나가고 남아있는 277명이 천막농성을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끊임없이 회사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지금 만약에 희망퇴직을 하면 외주업체에서라도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못한다’고 회유와 협박을 했었어요. 심한 경우에는 활동하는 여성 조합원에게는 사표를 쓰고 나와서 식당을 직접 해보면 어떠냐는 이야기도 했었죠. 한명이라도 해고를 시키려고 노력을 했었지요.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나머지 144명은 노조만 믿으면 된다고 생각했었지요. (면접자 q)그때가 애들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오늘, 내일이다는 이야기가 계속 있으면서 277명 정리해고 하겠다고 결정한 것 같고, 그 인원이 식당 아줌마가 천막농성하러 들어왔던 277명하고 맞아떨어진 것이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정확하게 던지지는 않는데 “277명이다”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고 아줌마 남은 인원이 144명이니까. 차라리 144명이 해고되던지 할 수 있는데 277명이라는 것이 지금도 미지수이고 수수께끼예요. 지나고 나서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지나오면서 안 풀리는 것은 왜 277명이었을까. 처음에 천막에 들어온 277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요. (면접자 s)

2.4.2. 직영에서 하청으로: 더 차별적인 대우, 더 강화된 노동강도

98년 정리해고 되고나서 하청이 됐고, 그 속에 있어보니까 직영에 있을 때는 그렇게까지 비참하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하청이 되고 나니까 비참한 거예요. ‘씨발년들아 빨리 밥줘’ 이래 쌓고. 그런 것이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직영으로 있다가 하청으로 되니까 조합원들에게 인격적으로 무시되고. 직영으로 있을 때도 식당이라고 하면 조합원들이 무시를 많이 해요. 아줌마들이 맨 놀면서 돈만 많이 받아간다고 했었으니까. 회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조합원들에게도 일상화 되었거든요. 그래도 98년 이전 하청으로 승계되기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거든요. 98년도 해고된 이후에 식권 수에 따라서 임금이 10% 마이너스 플러스 되니까 식권을 우선 받으려고 하면, ‘씨발년아 빨리 밥이나 줘’하는 이야기도 듣고요. (면접자 q)당시에는 조식도 했어요. 하루에 네 번을 밥을 하는 거예요. 토, 일요일도 없고 명절도 없어요. 그런데 아줌마들 돈 많이 받아간다고 하거든요.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원래 현장에 있던 여성들하고도 임금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 만큼 식당이 어렵고 힘들어요. 옛날에는 김치, 고추장, 된장, 김장, 고춧가루도 직접 갈아서 했어요. 그만큼 힘들었는데 노동강도 하면 진짜로 끔찍해요. (면접자 s)사실 지금 식당 노동자 산재승인 들어가면 다 떨어지거든요. 그만큼 일이 힘들어졌어요. 98년 이후 99년 2000년 투쟁하면서 현장으로 갔던 38명도 다 골병이 들었어요. 이 분들이요. 너무 노동강도가 높은 식당에서 일하다보니까요. 현장보다 배나 높은 게 식당이거든요. 거기서 이미 몸이 망가져서 현장에 들어간 거죠. (면접자 q)98년 7월말부로 해고되고, 회사가 호황 오면서 야 이거 정말 잘못됐구나고 생각했다. 해고 이후 임금은 50%로 떨어졌는데, 우리는 기금을 가지고 월급을 만들어갔어요. 기업운영기금이라는 것으로 만들었어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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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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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도는 200%나 높아졌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고 이후에는 1식 3찬에 복수메뉴 들어가고, 후식 들어가고, 98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안되었거든요. 그런데 98년 이후 일주일에 한번 특식 들어가고. 그렇게 하다보면 식판이 많아지잖아요. 식판이 무겁고, 가지 수도 많아지고, 뚝배기도 무겁고 노동강도가 높아지면서, 말이 정년퇴직도 없다고 했는데 1년도 안가서 다 나갔을 거예요, 그 상태로 있었으면요. 그러면서 99년도 투쟁을 만들어가는 동기가 되요. (면접자 q)

‘놀면서 돈 받아 가는 것’과 ‘끔찍한 노동강도’ 사이의 골은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와 자본가들의 ‘생산력 향상’의 거리감만큼 멀어 보인다. 성별 분업 구조 속 성차별과 위계화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노동자 내부의 분절화・위계화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더욱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관철된다. 이러한 전체 노동자들 내 연쇄차별은 불평등의 악순환을 확대・심화시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사이의 내부 차별은 노동자 스스로 불안정노동층을 재생산하도록 만들며, 불안정노동층이 확대되면서 노동시장 내부의 경쟁이 격화되어왔음을 상기해야 한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겪은 직영에서 하청으로의 신분 변화는 극심한 노동강도의 강화와 인격적인 무시로 드러났다. 후식제공, 메뉴의 다양화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엄청나게 강화시켰다. 그리고 각 공장별로 외주화된 식당들은 식권 수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 식당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로 귀결되었다. 파업 직후 생산현장의 노동강도 역시 극대화되었다. 사측의 현장통제 관리전략인 기초질서 지키기 차원에서 진행되는 출퇴근 시간 지키기, 점심시간 지키기는 노동자들을 더욱 몰아세웠다. 이 속에서 더 빨리 밥 먹고 더 많이 쉬기 위한 조합원들의 식사시간 확보 경쟁은 이전보다 더 격해졌을 것이다. ‘씨발년들아 빨이 밥이나 줘’라는 말 속에서 함께 투쟁했던 동지적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얇은 층으로 형성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식당 여성 조합원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다시금 투쟁을 벌이기 위해 이번에는 그녀들 스스로가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이어진다.

2.4.3. 투쟁 속의 투쟁 : 노동조합 집행부와의 갈등 - 노동조합의 공인된 투쟁이냐 아니냐

투쟁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다시 싸우자고 했을 때 최초에는 전부 반대했어요. 내부 논란을 거듭하다가 대의원 한 번도 안 해봐서 무식해서 그런 것이다, 대의원대회에 우리 모두 가서 봐야 안다, 해서 가보았다. 그랬더니 집행부에서 ‘정리해고자는 133명’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다 돌았다. “회사도 277명인데 왜 노조가 133명이라고 하냐” 그러면서 투쟁이 만들어진 것이다. (면접자 q)너무 힘드니까 식당 운영위원회에 요구하고 대의원대회에 갔는데, 대의원대회에서 해고자는 133명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우리는 사라진 것이죠. 그래서 열 받아서 투쟁을 조직하고 했어요. 대의원대회에서 우리는 해고자가 아니고 고용승계자라며 제외됐다. 하지만 정리해고될 때 임금 등 승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고용승계가 아니죠. (면접자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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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투쟁 과정 내내 식당 여성 조합원들과 노조 집행부 간에는 끊임없는 마찰과 갈등이 지속되었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자들과 출근투쟁을 시작하면서 2000년 합의할 때까지 줄기차게 한편에서는 사측에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투쟁을,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조합에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투쟁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아래는 99월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투쟁을 노동조합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약 18여 개월 동안 진행된 이 투쟁의 기록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노조소식지를 통해 노조집행부와의 갈등의 단면과 투쟁이 기록되어 있거나 투쟁의 주체였던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기억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나름대로 생생하게(?) 당시 이 투쟁을 바라봤던 당시 노조집행부의 시각으로 기록된 소식들을 재구성하도록 한다.

1) 복직투쟁 : 자주적 투쟁 VS 정당한 조합활동25)

집행을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노동조합이잖아요. 우리 절대로 포기 안 할 것이라고 이야기 많이 했지요. (면접자 q)복직투쟁으로, 99년 휴가 끝나고부터 정식으로 출투와 투쟁을 하기 시작한 것은 99년 8월이었지요.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 살았고 투쟁 시작하게 됐고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텐데 힘들었지요. 시작할 때부터 이야기하면 ‘조합원으로 인정해줘도 되냐’는 정도였고요. 우리는 당당하게 조합원이라고 했어요. 그 과정 속에 우리는 집행부에 복직시킨다는 약속을 하라고 요구했고 집행부는 그 약속 못한다 그랬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오면서 우리가 여하튼 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것이 그때는 노동가도 모르고 했는데 나머지 144명이 복직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동지들이 먼저 복직이 되면서26) 우리는 자체적으로 투쟁을 가장 최고 앞에서 서 있었다고 해야 하나요.(면접자 s)

25) 1999년 12월 23일, 노조소식 13-12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26) ‘무급휴직자, 징계해고자 27일 복직 : 작년 고용안정투쟁으로 발생된 무급휴직자 중 1,663명은 10월에 복직하고 나머지 165명의

무급동지들과 징계해고를 당한 동지들 중 9명이 27일부로 현장으로 복직한다… 아울러 남아있는 징계해고자들의 복직문제는 2000년 임금협상시 다시 거론할 것이며, 정리해고자들의 조기리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 노조소식 13-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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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대위원 해복투, 식당조합원들은 원직복직을 위한 출근투쟁 과정에서 손해배상청구 및 채권가압류27) 등 회사로부터 정당한 조합활동을 위협당하고 있어 규약에 의한 정당한 조합활동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과 법적 대응에 필요한 소송비용 일체를 신분보장 기금으로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현대차 노동조합 규약 신분보장과 지급대상 규정에 따르면 ‘규약에 의한 조합활동은 노동조합 4대 의결기구인 조합원 총회, 대의원대회, 운영위원회, 상집위원회에서 결의한 활동’에 대해서만 신분보장 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노동조합 운영위원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며, 투표한 결과 안건 상정 자체가 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에 12월 21일 운영위원회에 식당조합원을 포함한 생대위와 해복투에서 노동조합의 공식 회의체계인 운영위원회 회의 도중 들어와 물리력을 동원한 심한 고성과 삿대질로 회의 자체를 무산시킨 것은 노동조합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심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또 어제(22일)는 8시부터 10시까지 해복투, 생대위, 식당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사무실을 점거함으로써 2시간 동안 노동조합 업무가 중단되기까지 했다.

농성 해고자 문제 이렇게 해결하겠습니다28)복직투쟁과 관련하여 회사 측으로부터 고소고발된 17명의 해고동지들이 규약에 의한 신분보장을 요구하며 노동조합 운영위원회의 부결 결정에 반발하여 노동조합 앞의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5여일 지나고 있다.29) 그러나 해고 동지들은 이러한 집행부의 입장에 대하여 신분보장과 자주적인 복직투쟁 보장 등을 요구하며 오히려 투쟁 수위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몇 차례 밝힌바와 같이 노동조합은 규약과 규정에 의해 집행해야 하며, 지금도 원칙에 변함이 없으며…

해고자 천막농성, 혼란만 가중30)지난 금요일(7일)에 식당조합원들은 유인물을 통해 단식농성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노동조합에서는 해고자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식당조합원들의 집행부에 대한 비난 수위는 노동조합의 정상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조합원들의 일자리와 직접 연관된 현안이 대두되어 있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도 힘든 상황인데 해고자들의 독단적인 행동과 집행부를 비난하는 것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4만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것임을 식당조합원들은 직시해야 한다.

27) 민사 손해배상청구(64,285,476원) 및 채권가압류(84,285,476원), 집회 및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당한 사실이 있다. - 노조소식 13-13호.

28) 노조소식 13-19호, 2000년 1월 5일29) 집행부는 그동안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였고 해고자들의 고소, 가압류, 손배 철회를 시키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도 전달했다. 이후 집행부는 해고 동지들의 농성이 시작된 후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임원 및 해고자 중 대표자와의 간담회를 통해 위와 같은 내용을 전달했고 다음과 같은 문안으로 집행부의 입장을 정리해서 제시했다. 첫째, 집행부는 해고자 17명과 고소, 손해배상 가압류 등을 취하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한다. 둘째, 신분보장의 문제는 고소가 취하되면 자동 해소되는 것이고 고소고발이 취하되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셋째, 원직복직의 문제는 집행부의 방침에 따라 단계적으로 복직을 요구하여 2000년 임금협상 때까지 해소되지 않으면 임금인상 투쟁시 최선을 다한다. 넷째, 또한 향후 해고자 복직투쟁은 집행부와 논의해서 시행한다.

30) 노조소식 13-21호, 2000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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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가들, 조합원들이 처음에는 냉랭했지요. 도장까지 찍었는데 우리가 물리지는 못하겠다고 하고, 조합원들, 대의원들도 김광식 집행부가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은 것처럼 정갑득 위원장도 내가 약속해놓고 복직 못하면 저번보다 더 할 것 아니냐. 약속은 못한다고 하고, 우리는 복직시키겠다고 답해라였다. 그런 과정에서 집행부와도 많이 싸웠어요. 집행부를 대상으로 단식농성하고 대대에서 천막쳐 달라고 발언하면 대의원들이 ‘천막치면 못 지켜준다’고 해서 ‘지키는 것은 우리가 지킬 것이다’ 하니까 치는 것은 해주어야 한다고 해서 본관 앞에서 천막을 치게 되었지요. (면접자 q)

규약, 규정은 노동조합의 법과 생명31)규약과 규정을 만든 우리들이 지키지 못한다면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규약과 규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고자들은 단식농성에 이어 삭발투쟁을 갖겠다며 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집행부가 대책을 수립해 나가자, 이후 투쟁에 대해 신분보장과 자주적인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신분보장은 규약과 규정에 의해 운영위원회나 대의원대회 등 의결기구에서 결정할 사안이지, 집행부가 임의로 결정하거나 약속해 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들의 요구에 밀려 규약,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원칙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은 할 수 없다. 또한 집행부는 자주적인 투쟁을 보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껏 자신들 스스로 단결해서 투쟁해 왔다. 정말 자주성을 내세운다면 투쟁하는 것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이 즈음, 2000년 겨울은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 해외매각 저지를 중심으로 총자본과의 한판 뜨거운 투쟁을 벌이고 있을 시점이었다. 98년 현대자동차, 만도, 99년 한라중공업 파업이후 또 다시 전국적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내부에서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본격화하고 있을 시점이기도 하다. 97년 정리해고 법제화 이후 현장에서는 정리해고를 거부하는 투쟁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 있어서는 첫째, 98년의 전국적 연대에 대한 뼈아픈 경험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게도 되물림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공동의 투쟁으로 받아 안을 것이냐의 선택이 있었다. 그리고 98년의 정리해고 수용의 뼈아픈 경험을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투쟁을 통해 다시금 ‘정리해고 반대’의 요구를 재확립할 것이냐 아니냐의 선택이 놓여졌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앞에 놓인 당면 과제는 “부품사업 양도와 시트매각 저지, 정리해고자 조기 리콜, 신차종 투입에 따른 인력수급 대처, 특별 성과금 쟁취” 등이었다. 이는 98년 이후 사측의 공세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과 무급휴직, 정리해고자 조기 복직이 가장 큰 사안이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현장은 엄청나게 늘어난 생산 물량과 노동강도로 인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상황이었으며, 조합원들의 개별화・실리화는 이미 급속도로 현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의원들 역시 이러한 조합원들의 이해에 조응해 잔업・특근 합의를 하기 시작했고, 모자라는 인력에 대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2000년 현대자동차 현장의 모습이었다. 98년 정리해고 저지투쟁의 전

31) 노조소식 13-23호, 2000년 1월 12일, : 임원, 상집 8500만원 대출 - 법원 담보공탁으로 채권가압류 취소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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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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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그 잠정합의 당시에 무너졌고, 투쟁 이후 이런 현장에서 또 한 번 무너졌다. 98년 당시는 지도부가 무너졌으며, 그 다음에는 조합원이 무너졌다32).이러한 현장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당시 노동조합은 98년 이후 유실된 반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과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또 시트매각 저지 투쟁 등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동일한 선 위에서 인식하고 배치했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대우자동차 투쟁에는 98년 공장 밖의 연대 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연대하였으며, 식당 노동자들의 투쟁에 있어서는 ‘규약’과 ‘규정’을 되풀이하면서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이해 당사자의 투쟁으로 인식하는 한계를 보였다. 노동조합 운동이 제도적으로 합법화・관료화되는 한편에서는 노동자를 핵심과 주변부로 가르는 자본의 공격에 자발적으로 맞서거나, 노동조합의 양보와 타협을 거부하며 노조의 통제에서 벗어난 들고양이 파업(wild cat strike)33)이 시기와 국경을 넘어 존재해왔다. 또한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에서도 노조 민주화를 위한 투쟁,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 개별 현장조직이나 활동가들의 ‘라인 잡기’에 이르기까지 조합원들의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투쟁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투쟁 역시 그러한 역사적 경험 위에 있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제도적 합법화34)에 제한되지 않고 민주노조운동의 합법성을 실질적으로 쟁취하기 위한 조직적 단결과 투쟁이기도 하다. 또한 노조의 통제 속에서 ‘노동자 대중의 행동방식’으로 올바르게 자리매김 하지 못한 98년 투쟁의 한계를 직접 경험했던 그 주체들이 이를 극복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이런 의미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당시 이 투쟁에 대한 일반적인 분위기는 ‘여성’들의 외롭고 힘겨운 투쟁으로 바라보는 온정주의적 태도이거나 노동조합처럼 관료적인 태도, 아니면 무관심이었다. ‘자주적인 투쟁을 보장하지 않은 적이 없다’라는 노동조합의 주장은 자주성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자주적인 투쟁을 보장받기 위해서 식당 여성 노동자들과 해고자들은 노동조합에서 대신 투쟁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 투쟁이 노동조합이 벌이고 있는 여러 투쟁들 중 하나여야 하며, 그러므로 투쟁에 따른 사측의 손배 가압류 조치 등을 노조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분보장을 요구했던 것이다. 자주성은 ‘집행을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노동조합이다’라는 여성 노동자의 인식처럼 주체성 혹은 민주주의35)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32) 파업직후 개별화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조건은 이후 ‘고용이데올로기’에서 다룸.33)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서는 ‘조합원의 일부 집단이 노동조합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쟁의행위(들고양이

파업, wildcat strike)’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34) 노동조합운동의 제도적인 합법화가 곧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의 합법성을 곧바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김영수)35) 전체 노동자들은 ‘민주주의’를 현실화시키는 주체들 중심으로 나서야 하다. 민주주의는 계급투쟁의 산물이고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의 보편적 가치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가 대의제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문제는 대의제가 주권의 주체가 전도되는 ‘위임권력의 이중성’, 즉 위임하는 과정으로서의 권력과 집행되는 과정으로서의 권력이 주기적으로 역전되는 권력행사방식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주권의 자기실현’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간주한다면, 대중들의 참여와 통제장치가 보장되고 확보되는 과정, 즉 권리의 보유자와 행사자 간의 관계에서 권력주체의 의사가 권력 행사자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현실화될 것이다.(김영수) - 노동조합 역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규약과 규정에 의거한 4대 의결기구라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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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농성 해결 위한 중재노력 무산36)중재단 어떻게 만들어졌나? 대의원대표, 현장 제조직(실노회, 민투위, 현지사, 현노신, 미래회, 노연투) 대표, 회계감사 동지들 등 현자노조 역사상 최대 실력자들 22명이 사태해결을 위해 중재를 나서게 된 것이다.15일(토) 오전 9시 중재단은 회의를 가졌으나 해복투와 식당조합원은 끝내 중재안을 거부했다. 중재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복직투쟁에 대한 자주성 보장이 안된다.”는 것과 “원직복직 요구가 특위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갔을 때, 식당조합원의 요구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것이 자주성이고, 어떤 것이 식당 조합원의 요구가 훼손된다 말인가? 진정 사태해결을 위한 거부인지 아니면 노동조합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거부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식당조합원과 해복투의 중재안 수용거부는 단순히 텐트농성을 계속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또 다른 속셈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펼쳐야 할 중요한 사업들이 무수히 산적해 있는데, 텐트농성이 해결되지 않아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농성자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제조직도 식당아줌마 투쟁에 거의 함께 하지 않았어요. 어떤 제조직도 동참하거나 지지하거나 하지 않았거든요. 대신 상징적으로 의장단이 결합한다. 말 그대로 식당 아줌마만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나 생각이 들데요. 다 손 떼어버리데요. (면접자 ㅋ, 활동가)그때 또 아줌마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우리가 이기지 않으면 우리 후배 우리 자식한테 이런 짓을 안전화로 밟히기도 하고 안 당한 것이 없으니까 어느 지점에 오면서 우리만의 복직이 아니라 자본과 정권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 잘하려고 잔소리도 하지만 너무 감탄을 많이했다.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을 하고 목숨을 걸어놓고 한 것이지요. 앞에서 일한 10사람(운영위원) 보다는 사명감을 다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면접자 s)

해고자 텐트농성사태 해결37)19일(수) 식당조합원이 중재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정리하여 텐트농성을 종결짓게 되었다.

위원장이 조합원께 드리는 글38)지금까지 미진한 부분은 2000년 임투 과정에서 정리하고 징계해고자들의 복직을 이루어내면서 완결짓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두웠던 과거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은 것이 위원장의 바램입니다.

36) 노조소식 13-25호, 2000년 1월 17일 <중재안 내용> 1. 해고자 복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운영위원회에서 구성하자. 단, 해고자 출근 투쟁 관련 이전 발생 사안은 집행부가 책임지고 해결토록 노력한다. 2. 특별위원회 구성은 집행부+해고자+대의원대표로 구성한다. (특별위원회 역할은 복직협상 투쟁, 일상활동에 대해 입장을 조율하는 단위)

37) 노조소식 13-28호, 2000년 1월 21일, 13-5차 운영위원회의에서 ‘해고자 원직복직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운영위원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중재안 합의 내용> 1. 해고자 복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운영위원회에서 구성하자. 단, 해고자 출근투쟁과 관련 이전에 발생한 사안은 집행부가 책임지고 해결한다. 2. 특별위원회 구성은 집행부+해고자+대의원대표로 한다. 단, 식당운영위원 10명, 생대위 2명이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3. 집행부는 2000년 임금협상시 해고자 원직복직에 최선을 다한다.

38) 노조소식 13-43호, 2000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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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해졌던 폭력들 :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머리채를 휘어잡는 것부터 시작될까? 왜 남성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자로서 당하는 폭력이 아니라 내 ‘아내들’에게 가한 폭력에 더 분노할까? 왜 여성 ‘노동자’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로 볼까?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2000년 임금인상 요구안에 정리해고자 277명 중 미복직자 전원을 6월 31일 이전에 복직시킬 것을 요구했다39). 이 때 처음으로 노조신문에는 ‘식당 여성 조합원 원직복직 되어야’한다는 입장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노조신문에 실린 것처럼 텐트농성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신분보장 요구를 둘러싼 텐트농성 ‘사태’가 종결되었을 뿐이다. 중재안 합의 후 노동조합 앞에 쳐진 텐트는 정문 앞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투쟁은 계속 ‘간다’.

현대중공업 경비, 노조식당 여성 조합원 폭행40)3월 17일 오후 14시 식당 여성 조합원들이 동구에 있는 울산 과학대 앞에서 집회를 하였다. 울산 과학대 설립 축하를 위해 현대그룹 사장단과 정몽준씨 등 다수가 모인다고 했기 때문이다 … 식당 여성 조합원들을 건장한 젊은 남자 70여명이 과학대 정문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몸이 건장한 젊은 남자들은 아주 무식하고 폭력적으로 어머님뻘 되는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뿌리치려고 발버둥치면서 팔을 저으니까, 이미 손목을 꺽여 버렸고, 만신창이가 되는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식당 여성 조합원들은 즉각적으로 현대의 폭력 집단들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사과하지 않을 경우에는 “과학대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경고를 했다.

싸울 당시에 폭력도 당했어요. 앞의 경비들이 어디서 “밀어” 하면서 넘어오니까 안 밟히려고 했는데 그 때 10여명이 입원했잖아요. 저는 화장실 갔다가 오는데 젊은 경비가 밤길 조심해라 했던 게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하여튼 우리는 정세영 국회의원까지 찾아갈 정도였으니까. 재단 이사장이었잖아요. 안간 곳이 없었어요.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머리채 뽑혀서 맞고… 거의 1년 걸렸지요. 해고된 날부터 23개월, 완전히 출투 한 것은 1년 반 가까이요. (면접자 q)

여성 조합원에게 보내지는 협박 편지 중단하라41)… 이것은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복직투쟁이 장기화되자 여성 조합원들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어 투쟁의지를 꺽어 보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썩었다지만 이래서는 안된다. 여성 조합원들은 한 가정의 어머니이며, 아내들이다.

39) 노조소식 13-45, 2000년 2월 25일40) 노조소식 13-58호, 2000년 3월 20일41) 쟁대위 속보13-17호, 2000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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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 속에서 000하고 저한테 협박편지가 왔어요. 집에 갔는데 딸이 편지를 주는 거예요. 편지를 받았는데 순간 예감이 이상한 거예요. 바로 편지를 뜯지 않고 나 혼자서 뜯었는데 ‘집안에 가만히 있지 않으면 포르노배우를 만들어주겠다’고… 지금 000은 혼자 애들하고 있으니까 애들을 공격하고 저는 남편이 있으니까 저는 그때 아마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협박을 하면 아마 그 편지 받고 좌절할 수도 있었겠지만 워낙에 바로 공개를 해버렸어요. 저도 그때 별 생각을 다했지요. 나는 죽어도 복직안하면 아주 최악의 상황 그런 것까지 다 생각했어요. 복직이 아니면 다른 것하고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그 편지를 받고나서 더 했어요.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 큰 조합이 있고 조합원이 있는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할 정도면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저는 행복한 투쟁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면접자 s)

당시 협박 편지 받았던 것을 수치스럽고 힘든 기억이었다고 술회하는 면접자는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처음 말 꺼내는 것을 난감해하면서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그 편지를 받기 전까지 투쟁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했다는 면접자는 편지를 받고 나서 그 전까지와는 다른 오기와 비장함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투쟁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도 했다. 협박 편지 사건을 접했던 면접 현장에서만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면접자의 감정은 당시의 폭력에 대한 정신적 충격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치욕감’하고는 다른 것이었다. 여성 노동자는 협박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여성의 수치심을 은밀하게 협박하여 투쟁 의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적들의 의도를 ‘공개’했다. 이로써 은폐된 성폭력이 있음을 드러내고, 주체들 뿐 아니라 노동조합도 함께 대응하게 만드는 ‘투쟁’으로 반전시켰다. 그것은 협박을 당한 여성 스스로 그 폭력을 극복해내는 과정이기도 하였다.한편 수백 일이 넘는 출근 투쟁과 천막 농성으로 사측은 복직 등에 대한 3가지 안을 제시하기에 이른다42). 하지만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요구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5월 20일까지 세 가지 안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을 철회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으로 전달되었다. 이에 식당 조합원들은 투쟁의 강도를 더 높이기로 결정한다.

식당조합원 원직복직 염원을 담아43)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정리해고를 당해야 했고, 그로부터 10개월 동안 원직복직을 회치며 투쟁하여 왔다. 지난 19일(금) 17시 그들은 삭발투쟁을 강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여성임을 포기하는 삭발식을 방치할 수 없어 이를 막기로 하고 문용문 부위원장과 상집들이 식당조합원들과 몸싸움까지 하며 봉쇄하고 자제를 호소하였으나 식당조합원들의 의지는 너무나 완강하였다. 이 자리에서 문용문 부위원장은 여성 조합원들의 삭발을 방치할 수 없음을 밝히고 식당조합원들의 원직복직의 염원을 받아안고 노동조합 임원과 상집이 삭발할 것임을 밝히고, 문용문 부위원장과 김대영 조직실장, 김근태 대협실장 동지가 그들의 뜻을 받아 삭발식을 가졌다. 회사는 분명 알아야 한다. 식당조합원들의 한 맺힌 절규를...

42) 쟁대위 속보 13-28호, 2000년 5월 15일 <회사 측이 제시한 3가지 안> 첫째, 울산공장 현장 부서 중 비교적 쉬운 일자리로 복직 둘째, 본인은 외주식당에 그대로 근무, 직계가족 중 1명 추천 현대차 입사 셋째, 노조식당 공동인수 자체운영시 회사 납품권보장, 재식시까지 임금 일정부분 인상, 정리해고자 재활기금 잔여분 식당조합원 복지지금으로 활용.

43) 쟁대위속보 13-32호, 2000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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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문에서 ‘아내들’과 ‘어머니’와 ‘여성’이라는 표현들은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정서’를 염두에 두고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중적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부장적일 뿐 아니라 노동자 집단 내부를 성차별적이고 위계화된 권력 관계로 공고화하려는 자본의 의도를 미처 몰랐거나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합원의 정서’에 기대는 방식은 단기적인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로서의 기반을 자본에게 내주는 결과를 자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 과정을 통해 ‘노동자성’과 ‘여성성’을 회복하는 인식의 진전을 이루어나가고 있었다. 반면에 남성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그 투쟁에 주체로 함께 서지 못함으로 인해 여전히 남성적 권위와 가부장성에 안주하고 있음이 대비된다.

식당조합원 삭발에 이어 단식농성 돌입44)단식농성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으로 자칫 생명의 위협을 가져올 수 있어 대단히 우려스럽다. 하지만 식당 조합원들의 단식농성 돌입을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지만 자유로울 수도 없다. 그것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정리해고 대상에 선정되어야 하는 억울함이 어쩌면 최후의 몸부림인 단식농성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 싸워서 여성이 얼마나 독한지 이번 기회에 보여주자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면접자 s)2000년도 경우에도 마지막 임투였거든요. 그 때도 완전고용합의서45)가 만들어지잖아요. 저는 반대했었거든요. 집행부가 사업부 내려가면서 막 설명회를 해요. 저도 같이 내려가거든요. 당시 위원장 마이크 들고 조합원들 고용안정 내가 지키겠다. 비정규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할 때 나는 옆에서 또 마이크 들고 절대 받아들이면 안된다, 식당 우습게 보고 하청화 되면 그 다음은 현장이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귀담아 주지 않더라고요. 내가 듣기로는 98년도 식당으로 오기 전에 사업부에 있었는데 그 때 사업부에도 비정규직이 많았었어요… 어떻게 보면, 98년도 현자 정리해고가 단순한 정리해고가 아니였다고 봐요. 지금 보면 10,000명이 짤렸고, 그 인원대신에 15,000명이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있거든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회사가 어렵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몇 개월 되지 않아서 알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더욱더 강력하게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을까. 비정규직 다 들어온 자리에 불파가 들어와 있고요. (면접자 q)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수위는 출근투쟁에서 텐트농성으로, 그리고 삭발에서 단식으로 지속적이고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2000년 임단투 역시 잠정합의안이 하나 둘 제출되고 있을 즈음, 노동조합

44) 쟁대위 속보 13-37호, 2000년 5월 30일45) ‘18일 본관 집회시 정갑득 위원장은 연설 중반에 완전고용 보장을 위한 구조조정 3대 원칙과 관련하여 설왕설래가 많아 위원장의

소식을 피력코자 했다. 내용인즉 “내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청 투입은 해야 한다”로 듣는 조합원들의 어안이 벙벙한 연설이 갑자기 나왔다… 4만 조합원의 완전고용 보장 집념에서 표출된 과도한 표현으로 죄송함을 표합니다… 조합원들의 고용안정 확보는 노동조합의 최대의 과제이며 활동가 한사람 한사람의 몫이다. 하청(비정규직)의 조직화 논쟁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어 규약개정을 통해 조합원에 가입시키고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직영들이 투쟁에 나설 날이 곧 오게 된다. 일부에서 직영도 지켜내지 못하면서 하청의 고용보장을 성급하게 내세우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쟁대위 속보 13-37호), 완전고용합의서와 관련해서는 뒤의 “고용이데올로기” 부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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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되자 본관로비를 점거하고 상의를 벗은 채46) 농성투쟁에 들어간다. 이후 이날의 단체교섭은 무산되고 위원장과의 간담회를 통해 여성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이 일부 수용되면서 ‘나체시위’와 농성은 풀게 된다. 그러나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나체시위’를 통한 극단적인 저항의 방식은 여전히 노동조합에 있어서는 이해당사자들의 요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노동조합이 회사와 식당 여성 조합원간의 문제로 이야기하면서 양쪽의 이해당사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간의 노력을 촉구하는 태도는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투쟁에 대한 일관된 인식의 단면을 드러내준다.식당 여성 조합원 내부에서는 사측의 최종안을 둘러싸고 10인 운영위원회 중심으로 논란을 거듭하게 되면서 결국 2000년 임단협 마무리와 함께 합의47)를 마무리 짓게 된다.

10차 협상, 식당조합원 노동조합 내 농성으로 무산48)- 위원장, 사태해결위해 식당조합원 130명과 어제 간담회49) 가져2000년 단체교섭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지부, 본부는 ‘이것만은 해결되어야 한다’하고, 현안의 이해 당사자들은 ‘내 문제 없이 2000년 임투 종결 없다’고 한다. 거기에 식당조합원들은 원직복직이 아니면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투쟁의 강도를 계속 높여가며 본관로비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회사는 최선을 다했다 주장하고, 식당조합원은 무조건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평행선을 그으며 협상은 딜레마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회사든, 식당조합원이든 문제를 풀고자 하는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섭팀은 문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식당조합원들은 2일 오전부터 상의를 벗은 채 원직복직이 되지 않으면 자결하겠다며 회사 본관로비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46) 1976년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자본이 사주한 남성 행동대, 어용 상급조직인 섬유노조, 전경 등이 대의원대회와 노조선거를 방해하고 침탈하려하자 ‘옷을 벗자’는 선동아래 브래지어 바람으로 나체시위로 저항했었다. 부끄러움은 옷을 벗는 여성이 아니라 폭력을 휘두른 남성들의 몫으로 반전시키는 투쟁이었다.

47) <정리해고자(식당조합원) 복직 관련 합의문>1. 대상자 : 고용승계자 144명(노조식당 종사자) 중 타결일 현재 노조식당에 재직 중인 자2. 복직 및 (대체) 채용방법 (당사자 개인별로 아래 3가지 방안 중 한가지를 선택하면 됨)① 현 노조식당을 외주식당 전문업체에서 일체를 위탁 관리・운영하고, 대상자들은 노조식당에 그대로 근무하면서, 월 급여 수준 및

복지제도 지원은 기존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의 재입사 조건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운영수익금, 「정리해고자 재취업 및 재활기금」을 활용한 복지지금 설립 등 소요재원 마련 및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추후 노동조합과 협의하여 시행한다. 또, 본인 신청시 직계가족(자녀 및 형제) 중 1명을 대체입사 조치한다.

② 울산공장 현장 부서 중 비교적 쉬운 일자리로 복직조치하며, 노사 공동으로 복직 가능한 현장의 일자리를 찾아 본인의 동의를 얻어 배치한다.

③ 상기 ①, ②번안을 수용하지 않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현재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는 5공장 갤로퍼 식당으로 재입사 조치한다. 3. 회사는 2000년 임금교섭 타결 후 7일 이내 식당조합원 관련 민⋅형사적 조치(고소, 손배, 가압류)를 취하하고, 노동조합과 식당조

합원들(전원)은 연명으로써 향후 원직복직과 관련한 일체의 이의제기나 집단적인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확약한다. 48) 쟁대위 속보 13-41호, 2000년 6월 5일.49) 간담회 내용 (최종희, 정영숙) : 식당문제 노동조합 대응이 부족했던 부분 섭섭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집단해고 당한 것을 바

로 잡아야 한다. (위원장) : 원직복직 외에 다른 논의 못하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오늘 간담회는 의미 없다. 다른 복직자들도 원직복직한 것이 아니며 다양한 직무에 재배치되어 들어왔다. 원직복직이 아니면 안된다는 데서 변화된 입장을 정리해 달라. 안 그러면 위원장으로서 규약과 규정에 따라 조합원총회에 묻겠다. (최종희) : 다음 안을 제시하며 실무협의를 진행하는데 동의하겠다. (1)현재 6개 식당을 4개로 줄여 원직복직, (2) 일단 식당으로 원직복직 후 본인동의하에 전환 배치 등을 우선 의제로 다루어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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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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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회 10명이 있는데, 당시 지도부랑 우리 간담회50)를 계속 했는데, 지도부가 ‘2000년 임단투 끝나면 당신들 고립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회사 안을 가지고 결정해라. 식당 지도부가 10명이었는데 나하고 2명만 밀어붙이자고 했다. 우리 투쟁을 전국이 보고 있는데… 찬반투표를 붙이게 되요. 그것 때문에 지금도 엄청나게 속상한 거예요. 내가 회사가 던진 안은 원직복직이었다. 세 가지 중에 원하는 것 정해서 가자는 것이다. 장단점이 설명 안되고 단점만 설명되었다. (면접자 p)노조식당이 106명이 남아있지만, 스스로 ‘자녀를 대체입사를 시키고 임금을 똑같이 가져가면서 우리는 1석2조’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왜냐면 청년 실업률을 엄청 높지만, 열 받잖아. 조금만 더 싸우면 만 이천 명 다 들어올 수 있잖아. 그러니까 6개월도 안돼 정상화됐잖아. 리콜 합의 우리가 제대로 된 투쟁을 했으면 무급자, 회망퇴직자 있었잖아요. 다 들어왔잖아. 회사는 우리가 원직복직 되면 희망퇴직자도 다 받아야 하거든요. 우리가 결국 내부적인 분열 때문에 못해냈다. (면접자 s)

3) ‘여성’과 ‘노동자’로 싸우고 생활한다

합의안대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세 가지 안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식당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거나, 생산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50세가 넘는 고령자이다 보니 생산현장을 선택하기 보다는 ‘잔뼈가 굵은’ 식당을 선택하게 된다.투쟁의 마무리 과정에서 원직복직을 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합의내용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논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98년의 ‘패배’와도, 2000년 완전고용합의서의 ‘성과’와도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은 1년이 넘게 투쟁을 했던 그 과정을 투쟁 주체들이 온전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투쟁을 통해 그들의 삶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적어도 면접자들에 대해서는 그렇다. 한 면접자는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꿈꿔 온 일을 위해 당분간 활동을 열심히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그녀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고 했다. 또 다른 면접자는 여성으로, 노동자로, 활동가로 부단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녀의 인식의 넓이와 깊이는 여느 활동가 못지않았다. 그리고 두 면접자 모두 현실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아주 분명하고 원칙적인 태도는 갖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 투쟁을 통해 얻은 ‘살아있는’ 원칙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의 투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소수의 여성으로 현대자동차 노동 현장에서 부대끼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당당함의 원천이었다.

98년 봐라. 여성이 정리해고 되었고, 99년도에 여성이 투쟁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투쟁을 만들었으면 희망퇴직자(노란 봉투)까지 다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 (무급휴직자들도) 식당아줌마들의 투쟁으로 빠르게 들어오게 된 것이고, 이런 것이 계기가 되어서 여성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조합에서도 주의깊게 잘 보아야 한다. 여성들을 조직하면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생각해요. (면접자 s)여성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우리는 적어도 실천투쟁을 만들었고요. 여성이 빠진 자리는 남성 비정규직이 온다. 아줌마들이 하는 일은 조금 쉬운 일이다. 그래서 여성을 기피하는 것이다. 저 같은 경우는 다 로테이션 돌거든요. 남성들도 몸이 약하면 (여성들과) 똑같은 경우가 있다. 로테이션을 원하는 여성과 원하지 않

50) 6월4일의 간담회인지는 분명치 않다. 면접내용으로 보면 ‘간담회를 계속’했다는 것이므로 여러 차례의 간담회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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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여성이 있다는 것이예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단순하게 여자가 하는 일은 빠지고 비정규직도 남자가 들어오면 심부름하듯이 다 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여성을 자꾸 기피하게 된다. 여성을 기피하는 것은 한 라인을 다 비정규직을 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우리가 고용위기가 오면 시간을 나누어서 주간연속2교대제 이야기하듯이 이런 식으로 고민하지 않고, 현장 정서도 활동가들이 다 잘못하고 있다고 봐요. (면접자 q)제가 오니까 조장, 반장 등이 다 싫다고 말도 하지 않더라고요. 요새는 반장이 깃발 들고 나가요. 자랑이 아니라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도 가보니까 맨아워 협상하는 것을 보니 회사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편하게 이야기해요. (회사가) 비정규직 받자 하면, 대의원이 ‘조합원이 원하니까’라면서 요구해요. 그러니까 98년에 정규직은 15,000명 나갔는데 비정규직은 3,000명만 나갔잖아요. 처음에는 ‘아줌마는 잘 몰라서 그런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현장 다 안다. 비정규직을 왜 받냐?’ 하니까 ‘물량이 없어지면 누군가 가야하는데 비정규직이 가야 한다.’고 하더라. ‘나중에 물량이 들어오면 비정규직 받고, 그리고 당신들 자식들 들어갈 자리가 없지 않냐.’하면서 처음에는 논란도 많고 싸웠어요. 내 아들이 비정규직이고, 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답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맨아워 협상할 때 비정규직 받자고 했는데, (조장에게) ‘선배 아들은 왜 정규직으로 (현대차에 입사원서) 넣습니까. 정규직 자리가 어디 있어요? 그때 왜 비정규직 받으면 안된다고 이야기 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알아듣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을 조직하고 현장을 만드는 것은 활동가들이 어떻게 중심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활동가들 노조에 와서 이야기하는 것 하고 현장에서 이야기하는 것 하고 달라요. 대의원하려고요. 현장을 조직하고 만들면 아마 이렇게 노동강도가 우리나라가 현대자동차가 최고 높다고 하던데요. (면접자 s)98년 이후로 활동가들 양심이 있으면 된다. 노동해방을 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이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말하고 행동하고 실천이 안되는지… 말은 잘하는데 실천투쟁 장에 보면 없어요. (면접자 q)

2.5. 98년의 의미와 영향

2.5.1. 고용이데올로기의 발생 : 더 이상 정규직의 고용안정이란 없다

IMF 경제위기라는 조건 속에서 ‘노사정합의→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부결→정리해고 법제화→비대위 총파업 선언, 철회→민주노총 2기 선거→5・1절 투쟁’이라는 전국적 흐름 속에 정리해고는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하여 현실로 드러났다. 1998년 5월 20일자 각 신문에 현대자동차의 대규모 구조조정 내용이 비중 있게 실렸다. 전체 직원의 18%에 해당하는 8,189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현대자동차 36일간의 파업 이후에 만도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 역시 공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었다. 당시 공공기관을 포함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이른바 ‘자발적’ 정리해고의 형태를 띤 희망퇴직이 남긴 공포와 정리해고의 충격은, 더 이상 안정된 평생 직장이라는 신화란 없음을 절감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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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이 때, 현대를 비롯한 자본은 정리해고를 통해 수량적 구조조정을 관철하고, 또 정리해고의 위협을 통해 ‘노동통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으로 노동운동의 단결력과 교섭력을 약해진 틈을 타 그동안 노동조합의 저항에 부딪쳐 온전히 추진하지 못한 신경영전략을 공세적으로 도입했으며, 그 결과 일상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유연한’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노동자들의 위계화・양극화를 통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98년 당시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은 자동차 산업의 과잉생산 위기와 그에 따른 급속한 생산 감축으로 인해 노동조건과 상태에 심각한 변화를 경험했다. 사외용역 및 외국노동자들의 축출, 임금삭감, 작업조직 변화 및 노동의 유연화, 작업장 통제 및 노동강도 강화, 정리해고의 위협51)이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각 노동조합은 고용안정협약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유지, 인원배치 등에 대한 노사합의 등을 주요 요구 사항으로 내걸었고, 부분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하면서 고용을 유지하는 양보의 결과가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 대응에서 전반적인 후퇴와 양보를 거듭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상시적 고용불안감은 더욱 확대되어 왔다. 물론 상시적 고용불안감이 노동진영의 대응 실패 혹은 투쟁전선 유실 때문에만 생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본 자체의 위기를 노동자 희생으로 전가했던 상황에서, 이제는 자본이 대대적인 호황을 누리더라도 일상적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대자본만 하더라도 IMF 외환위기 직후 곧바로 연일 사상최대의 흑자를 갱신하고 있으며, 필연적인 과잉생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과잉생산을 확장하는, 이른바 GT-5라는 글로벌 전략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자본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추진해오던 노동의 유연화를 늘리기 위해 외환위기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유연화는 대다수 고용관계를 비정규직 형태로 전환하여 고용불안을 증대시켰다. 유연화는 차별적으로 진행되었으나52) 고용불안은 노동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제도적 고용안정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 규율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됨으로써 체감 고용불안이 높아졌던 것이다. 유연 생산체제는 그 자체로 그 동안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오던 정규직의 위치를 박탈했다. 이제 정규직 노동자들은 시장과 직접 대면하면서 그들 스스로 시장과 경영의 책임을 일상적인 임금삭감(물량 축소에 따른 노동시간의 축소는 곧바로 임금삭감으로 이어진다)으로 전가하게 되었다.한 면접자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고용안정을 요구하지만 고용안정의 실제 요구는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모두들 ‘고용’을 일순위로 꼽고 있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는 요구가 아니라 상시적인 고용불안감의 표현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용안정이란 이제 이전처럼 단순히 ‘안정적인 평생 일터의 보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그 자체가 목적하는 그 모든 정책을 막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용안정이란 ‘총고용보장’ 혹은 ‘고용안정협약’과 같은 요구나 형식이 아니라, 노동강도 강화와 임금불안의 핵심 요인인 변동급의 증가를 막아내는 것, 각 공장에서 고용안정을 볼모로 밀어부치는 구조조정을 중단시키는 것에서부터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51) 강연자, 자동차 산업과 고용문제52) 이덕재, 세계화 선언 이후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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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용보장을 갈구하고 있지만 더 이상 정규직만의 고용은 보장될 수 없다. 또, 임금이나 노동조건과 분리된 고용안정이란 있을 수 없다. 자본에게 고용과 임금과 노동조건은 모두 ‘노동의 유연화’의 다른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자본의 공격들을 하나의 기조 아래 파악하지 않는 이상, 현재 ‘고용’과 관련한 요구들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쫓는 것 뿐임을 확인하자.

2.5.2. 임금삭감안 : 임금과 고용은 생존의 다른 이름들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고용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함으로써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임금의 일정정도 삭감은 불가피하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게 한다. 자본이 제기하는 고용문제의 목표는 광범위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대규모 실업자 양산,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의 최소화이다. 자본은 이와 함께 임금삭감 혹은 임금동결을 압박함으로써 당장의 임금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임금체계의 변화, 즉 임금 유연화의 조건을 확보하려 한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최소 인원의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인 셈이다.이러한 맥락을 이해한다면 노동자들이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서 일정한 양보, 즉 임금삭감 혹은 임금동결을 하더라도 고용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와중에 자본은 ‘임금삭감을 통한 임금체계의 변화’와 ‘노동시장 내부를 분할하는 정리해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는 것이다. 98년 정리해고 저지 투쟁 당시 노동조합 지도부는 희망퇴직에 이어 두 번째 양보안으로 임금삭감안을 발표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임금삭감 고통분담을 통해 정리해고를 철회하겠다는, 혹은 정리해고를 최소화하겠다는 당시 지도부의 의지는 신자유주의 공격을 전혀 철회할 의사가 없었던 현대 자본에게 좋은 기회를 주었다. 이를 적극 활용하여 자본은 임금삭감안은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정리해고는 그것대로 관철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도부의 ‘거듭된 양보’가 무엇을 뜻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소위 ‘고통분담’ 이데올로기가 98년 당시 전 사회를 관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98년 이후 기본급은 실질적으로 하락하고 변동급 비율이 증가하여 임금 구조가 더욱 불안정해졌다.1998년 6월 현재 임금삭감을 타결한 회사는 모두 2백81개사이며, 이중 2백37개사가 상여금을 삭감키로 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법적 수당이 아닌 제반 수당, 즉 복지 영역과 관련한 수당 삭감은 이미 IMF가 터진 직후 거의 완료되었다는 것, 즉, 이미 실질임금이 하락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실질임금이 하락한 상태에서 상여금을 삭감하는 것은 단지 통상임금의 하락을 의미할 뿐 아니라 기본급에 대한 공격을 뜻한다는 것이다. 기본급에 대한 공격이란 단지 임금 인상액의 삭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92년 이후 기본급은 경향적으로 하락해왔고, 노동자들은 그 손실을 연장근로수당, 제반 수당, 그리고 상여금, 성과급 등을 통해 보전해왔다. 그러나 자본은 경제 위기를 빌미로 기본급을 제외한 제반 수당을 삭감하고, 심지어 기본급까지 삭감하여 노동자들의 임금을 경기 변동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임금을 노동자의 생활이 아니라 자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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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에 맞추어 결정하겠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53).면접 조사에서 ‘고용불안의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대부분은 임금과 물량에 대한 것이었다. 물량의 변동 폭이 커짐에 따라 ‘물량불안감’이 발생하고, 그것이 ‘임금불안감’으로 이어지면서 ‘있을 때 더 벌자’라는 심리를 유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안감은 ‘물량불안’이나 ‘임금불안’이 아니라 ‘고용불안’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물량과 임금의 불안정함이 구조조정의 결과와 과정에서 온 것이며, 또 이러한 불안정한 변동은 단기적 상황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고착화 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임금과 물량의 불안이 장차 나의 고용을 위협할 것이라는, 그 자체로 개별화된 조합원의 상태와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따라서 98년 당시 정리해고 철회투쟁과 임금투쟁은 동일한 위상에서 조직했어야 했다. 지금도 역시 임금투쟁과 고용투쟁은 동일한 위상에서 조직해야 한다. 즉 물량을 더 많이 따내어 임금의 총량만을 높이는 성과주의적 투쟁 말고, 임금의 안정성을 높이는 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그래야만 잔업・특근 따내기에 열중하는 대의원의 왜곡된 활동 방식과, 잔업・특근을 대의원 활동의 최우선과제로 요구하는 조합원의 개별적・실리주의적 생존 방식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2.5.3. 277명의 정리해고: 현재의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본다

식당 여성 조합원들의 정리해고는 이미 이전에 외주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경험 위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98년 투쟁의 총전선의 의미였던 ‘집단적’인 정리해고가 ‘여성’에 집중되었던 점, 식당과 같은 주변부 노동에서 관철된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중요성을 가진다. 즉, 신자유주의의 공격 방향이 정확히 노동자 분할과 양극화에 있다는 점과,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가르고 위계화시키는 성별 분업구조가 전면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또 그러한 정리해고에 대해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과 자본 사이에 합의 혹은 암묵적 묵인이라는 담합구조가 형성된 것은,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이 이후 위험천만한 우경화 행보에 발판을 마련했음을 뜻한다.98년 정리해고 이후 노동은 한번의 후퇴와 패배를 반성하고 이후 방향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가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한 각개 전투로 나아갔다. 반면 자본은 그 틈을 타서 기존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이제 그 구조적 폐해의 희생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사회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노동자 내부를 핵심과 비핵심을 가르는 자본의 논리는 노동자들에게 깊숙이 박혀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날로 늘어만 가는 또는 최근 조직되어 가는 비정규직 집단을 목격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종의 방어심리와 불안심리가 혼재되어 더욱 깊은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98년 이후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는 두 번 다시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규직에 국한된 것일 뿐, 공장별로, 사업부별로, 사측과 대의원 사이의 합의와 조합원들의 암묵적 혹은 노골적 동의 속에 비정규직에 대한 일상적인 정리해고는 쉬지 않고 진행되어왔다. 98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는 없다는 점이다. 신차종 투입, 모듈화 합의, 직제개편 등에 따라 인원변동이 있을 때마다, 정규직은 배치전환을 통해 고용이 유지되고, 비정규직은 정리해고 당해왔다.53) 노동전선 36호, 19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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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법파견 문제로 노동조합이 ‘불법파견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조합원과 활동가들은 일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것은 2000년 완전고용합의서를 통해 16.9% 만큼의 비정규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그 이후 공공연하게 사업부별로 비정규직의 확산이나 정리해고를 용인 또는 합의, 심지어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비정규직에 대해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방관해왔던 태도들은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과 사측의 담합구조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그리고 지난 7년여의 과정을 돌아본다면, 지금과 같은 식으로 구조조정을 막아내고 고용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정반대의 결과일 뿐임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2.5.4. 신자유주의 반대 총전선의 유실 : 총파업과 현대자동차

96・97년 총파업투쟁과 98년 5월 총파업투쟁에서 보듯이, 총파업투쟁 이후 노조와 현장이 겪는 어려움은 투쟁이 정치적・조직적으로 강고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이지, 총파업 투쟁 그 자체의 결과는 결코 아니다. 민주노총과 연맹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불신’과 불신을 넘는 ‘분노’, 그리고 이어 다가오는 자본의 공세에 대한 ‘무기력’은 총파업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 아니다. 전국적 총파업투쟁 전선이 무너져, 총자본의 공세를 개별 연맹이나 개별 사업장의 수준에서 고립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전체 노동자의 과제는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신이 현실화시킨 바 있는 정치 총파업투쟁을 이데올로기적・정치적・조직적으로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그 투쟁 전선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위상과 역할은 깊숙이 결부되어 있다. 2001년 7・5 총파업 무산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총 전선의 선봉으로 위치지우는 것을 대단히 부담스러워하고 피로해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밖으로는 전국적 전선 형성을 요구받는 한편, 안으로는 이러한 조합원의 상태에 직면하여 그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사측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노려 집요하게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고 있다. 98년 당시 민주노총과 산별 대표자들은 6월 10일 총파업을 철회하고 노사정위 참여를 결정하면서 현대자동차 투쟁을 전국적 사안으로 받아안지 못하고, 98투쟁을 온전히 현대자동차 지도 역량과 조합원에게만 맡겨놓았다. 만약 당시 현대자동차를 비롯해서 만도 등의 개별적 투쟁을 전국적 전선으로 확장하기 위해 목적의식적인 노력과 실천을 하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있었다면, 이것 역시 동일한 선상에서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총 전선에 대한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피로도와 피해의식이 총전선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의 정치적・계급적 투쟁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조합원 정서’로 수용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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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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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용이데올로기’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에 미친 영향

3.1. ‘고용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3.1.1. ‘고용이데올로기’의 정의

‘고용이데올로기’란 용어는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특한 상황들과, 조합원들이나 활동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어떠한 특이한 정서를 개념화하기 위해 고안해 낸 말이다. 이 용어로 지금 현대자동차 현장의 상황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이데올로기’란 쉽게 말해 ‘고용의 문제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생각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이 유지되어야만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노동자에게 고용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원한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54).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고용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일반적인 ‘고용안정’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정의하는 ‘고용 이데올로기’란 ‘끊임없이 고용불안을 느끼고, 따라서 고용의 문제를 가장 중요시 여기며, 결국 고용을 위해서는 다른 어떠한 조건도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고용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불안이나 현실적 위협이 사라지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고용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금 불안과 양보의 과정을 반복하게 만드는 생각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고용이데올로기’란 ‘고용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고용을 위해 다른 조건들을 양보하지만, 끊임없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며, 따라서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게 되는 생각이나 관점’을 의미한다.

54) 자본가에게도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서는 생산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이윤을 확보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용은 역시 항상 중요한 문제이다.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이 중요한 반면, 자본가들에게는 반대로 ‘고용 유연화’가 중요하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입장이 완전히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고용 유연화’란 노동자에게는 곧바로 ‘고용불안정’을 의미하게 된다. 반대로 노동자들이 원하는‘고용안정’은 자본가들에게는 ‘고용 경직성’으로 인식될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동안의 ‘고용’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수많은 투쟁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자본가는 (이윤)생산을 중심으로 노동자 고용을 생산의 한 수단으로 여기는 반면, 노동자는 자신의 삶(생활)을 중심으로 고용을 생존의 유일한 수단(생활을 위한 소득활동의 핵심적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본질적인 입장의 차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이 사회가 조직되는 원리 그 자체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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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글의 목적과 구성 방식

1) 글의 목적

98년 투쟁이후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은 끊임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고용안정’을 가장 중요한 사안 1순위로 꼽고 있다. 노동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고용안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고용안정’을 내건 투쟁은 언제나 노동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투쟁에 대한 참여를 추동해왔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게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이후 현재까지 ‘고용불안’에 대한 집단적 불만과 저항은 전체 현장노동자들의 힘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98년 이후, 이러한 노동자들의 불안이 집단적 불만과 저항으로 조직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문제의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을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의 주 ․ 객관적 요인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98년 이후 실제로 진행되었던 구조조정 사례와 노동통제 전략을 충실하게 복원하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 사측의 공세가 현장의 불안요인이 되는 과정과 그 불안요인이 투쟁의 근거로 제출되지 않고 현장을 잠식하게 된 원인을 분석한다. 둘째, 노동조합과 현장 활동가들의 대응양상(투쟁과 일상활동) 및 논리(현장이데올로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의 대응이 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구조조정에 맞선 활동가들의 대응을 분석 ․ 평가할 것이다.셋째, 이를 바탕으로 98년 이후 ‘고용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변화 ․ 발전하고 있으며, ‘고용이데올로기’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본 글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안과 밖에 있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처해있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바꿔낼 수 있는 해결책들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2) 글의 구성 방식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분은 ‘고용이데올로기’로 인한 현장의 변화를 살펴본다. 개별 주체(회사, 조합원, 현장 활동가)들의 상태와 행위 양식을 살펴보는 한편 각 주체들과 ‘고용이데올로기’의 상관관계를 파악한다. 두 번째는 주로 노동조합 집행부 차원의 활동을 살펴본다. 98년 이후의 노동조합 운동의 변화의 흐름을 크게 살펴보면서 시기별로 활동가들의 대응이 ‘고용이데올로기’와 어떤 관련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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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한다. 마지막으로 구체적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를 살펴보고, 이러한 개별 구조조정 사안들이 ‘고용이데올로기’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파악한다. 주로 외주화・모듈화 부분과 해외생산 부분을 중심으로 다룰 것이다. 우리는 위와 같은 구성을 통해 사측의 노동통제의 양상과 이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과정의 성과와 패배가 어떠한 현장 정서를 조성해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더 중요하게 이러한 현장정서에 활동가들이 어떻게 반응하였고,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현장을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이 글은 현대자동차 내부의 목소리들을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활동가 스스로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상황을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들 스스로의 목소리로 대안을 제시하도록 구성하고자 한다. 45명의 활동가들의 면접 내용55)과 451명의 활동가들의 설문 내용, 그리고 노동조합 집행부의 유인물과 각 현장조직의 유인물로 구성된다. 이 글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현장을 최대한 풍부하게 들여다보는 한편, 현재의 현장을 ‘최악의 상황들’로 설명해보는 것이다. 즉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 발전시켜야 할 측면보다는 고쳐나가야 할 측면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것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경고와 비판을 가하는 것이며 긍정성보다는 부정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현재 활동가들에게 ‘최악의 상황들’이 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경계가 개인별, 사안별, 단위 공장별 대응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현장 안팎에서 수많은 비판과 대안들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이 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말하지 않아 정작 활동가들의 성찰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현장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일상에서는 느끼기 힘든 ‘위기’들을 느끼고 공감하여 실천적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완전한 진실일수도 없고, 현실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 상정하는 ‘최악의 상황들’은 지금 현실의 일부분을 담아내고 있으며 또한 현실이 그렇게 발전할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진단하는 ‘현대자동차 현장’에 관한 진단들이 훗날 완전한 거짓이 되기를, 그리고 이 보고서가 그것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3.2.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한 현장의 변화

이 장에서는 ‘고용이데올로기’의 원인과 작동 메커니즘, 그리고 현장에 미친 결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 그림은 ‘고용이데올로기’의 확산 과정을 그리고 있다.55) 활동가 면접 조사 결과를 인용하는 경우 임원, 대의원, 소위원 3가지로 분류하였다. 임원은 노동조합 상집과 사업부 대표, 교육

위원, 제도개선위원, 우리사주조합장, 그리고 대・소위원이 아닌 현장조직 임원을 포함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나눌 경우 신원이 쉽게 파악되기 때문에 대의원과 소위원을 제외한 모든 활동가들을 임원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름의 성을 따라 영문 이니셜을 붙였으며 뒤에 붙는 숫자는 임의로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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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1. 조합원의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의 확산 과정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패배는 고용문제와 관련하여 조합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무급휴직을 받게 됨에 따라 현장을 떠나게 되고, 복귀 이후에도 대응이 미흡하여 전 조합원들의 신뢰 회복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에 따라 조합원들은 일상화된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된다.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조합원들은 모듈화, 외주화, 해외생산, 모답스 도입 등 일상적 구조조정 공세에 직면하게 되는 한편, 전사회적 신자유주의 경제 위기로 인한 실업과 저임금의 공포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무엇보다 고용안정을 열망하게 된다. 절실하고 당연한 고용안정의 열망은 안타깝게도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노동조합은 정리해고를 막아낼 수 없다, 물량이 줄어들면 정리해고가 이루어진다’라는 98년 투쟁에 대한 아픈 기억으로 말미암아 조합원들은 ‘물량을 확보해야만 내 고용을 지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활동가들의 물량 확보를 위한 투쟁은 이러한 조합원들의 생각을 강화시킨다. 조합원들의 물량 확보 요구는 활동가와 조합원사이의 관계를 실리 중심으로 제한시키는 것과 맞물리면서, 그러한 요구와 관계를 활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사측의 공세로 인해 물량과 구조조정을 맞교환하기에 이른다. 조합원들이 고용을 부분적으로 보장받는 대신, 사측의 다양한 구조조정 공세들은 손쉽게 관철된다. 활동가들은 이러한 결과를 저지하지 못하는 수세적 대응에 갇히는 모습을 보이며,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대응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러한 결과는 노동과정과 이데올로기 양 측면에서 사측의 현장 장악력 증대와 노동조합의 현장 통제력 약화로 이어지게 되고, 계속적인 구조조정의 관철로 인한 노동조건의 악화와 정규직 일자리 감소는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의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이 과정들에 대해 하나씩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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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사측의 공세

‘고용이데올로기’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발전은 전적으로 자본의 의도아래 진행되었다56). 현대 자본은 98년 이후 본격적인 구조조정 정책을 펼치는 한편 노동조합과 활동가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매우 공격적인 공세를 펼쳐나가고 있다. 이러한 공세는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자본은 구조조정을 통해 ‘고용이데올로기’를 발생시켰으며, 구조조정을 통해 ‘고용이데올로기’를 확장시키고, ‘고용이데올로기’를 이용해서 구조조정을 일상적으로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먼저 사측은 98년 이후 회사 내의 언론 매체를 강화하면서 치밀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해 조합원들은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활동가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교육을 많이 시켜요… 그리고 언론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신문, ‘열린신문’, CATV에 대해서도 투자를 많이 하고요. 조합원들을 더 개별적으로 만드는 거지요… 자본주의 경쟁구조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할 수 있는 교육도 많이 시키고요. (임원 K-4)2000년 이후에 회사의 노무관리가 강화된 것이 바로 언론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언론 시스템에 조합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빨려드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유치할 정도의 표현을 쓰는데 그대로 먹히고 있다. 회사가 하고 있는 각종 언론을 통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지속되고 있고… 옛날에는 회사 유인물을 그냥 버렸다. 지금은 반대로 노동조합 홍보물은 제목만 보아도 다행이라고 볼 정도로 기피한다… 회사 유인물은 간략하고 삽화 등을 통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유인물을 많이 내고 있다. 거기에 비해서 노동조합 유인물은 글이 많고 설명하려 드는 것이, 과거에는 압도했던 조합의 유인물이 지금은 회사에 밀리고 있다고 보인다. (임원 P-1) 회사에서 나오는 소식지나 유인물 나오면 조합원들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주로 눈여겨보는 것은 불안감을 자극하는 거… 회사 유인물에… 다른 기업에 부도난 소식이나 기업이 쓰러지는 거 하고 뭐. 그러니까 조합원들이 언젠가는 우리도 또 그렇지 않을까… (소위원 C-1)언론이나 회사에서 꾸준하게 고용불안에 대한 각인을 심어주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상반되게…홍보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조합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 홍보를 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런 부분들이 조합원 내부에 심어지고 있는 현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다. (소위원 L-3)

56) 그렇다면 자본가가 활용하는 ‘고용이데올로기는 어떤 내용을 가질까?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희구하면서 끊임없이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자본가들은 그러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희구와 ‘고용불안 의식’을 더욱 더 부추기고 그것을 이용하여 ‘고용 유연화’를 도모한다. 유연화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생산, 즉 더 많은 이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생산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연화 공세의 핵심적 방법 중 하나는 물량조절이다. 자본가들의 재고관리, 생산목표 설정, 공장별 라인별 물량 배분 등이 거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공세는 작업조직, 인력 배치, 인사관리 등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법들을 동원하고자 하는 과정이며,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하거나 신기술을 도입하며 작업과 생산라인의 재배치와 변경 등의 과정이기도 하다. ‘고용 유연화’는 이러한 자본가들의 생산에 대한 총체적인 관리와 통제를 관통하면서 진행되고, 정년 관리, 임금 관리, 노동시간 관리, 하도급 관리 등을 포괄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오늘날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전 산업 전 업종의 자본가들이 추구하는 ‘고용 유연화’는 곧바로 노동력 배치에서의 비정규직의 확대,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한 노동강도의 강화로 드러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자본가들의 높은 수익성 실현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노동강도 앞에 놓이게 된 근본 원인은 바로 이와 같은 자본가들의 유연생산체제 구축을 위한‘고용 유연화’ 전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고용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희구와 ‘고용불안’ 의식을 빌미로 한 자본의 부단한 각종 노동조건의 개악 기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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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강화되고 있는 사측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다양한 영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사측이 집요하게 힘을 쏟고 있는 주요 이데올로기 공세를 확인해보자.

첫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방지하고 분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지속적인 공세가 이루어진다.

회사에서 집요하게 들어오는 것이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중간에 스펀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조합원들의 반응은 먹히는 부분이 있다. 회사 측이 그렇게 여론을 조장하고 있다. (임원 M-1) 사측은 ‘경쟁력을 가져야 고용이 보장된다. 비정규직이 완충이 되어야 한다. 유연성이 없으면 전부 다 짤라야 한다’ 고 이야기 한다. (임원 K-3)[원하청 해복투, 05.05.26] “최근 들어 사측이 유인물과 대자보로 현장을 도배하는 까닭은 명확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계속 정규직의 방패막이로 생각하게 만들고,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은연중에 자신의 고용만 보장되면 된다는 심리를 조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규직도 고용이 불안한데 어떻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냐는 의구심이 들도록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연대 투쟁에 대해 집중적인 공세가 이루어진다.

‘왜 너희만 나서느냐’ 든지 ‘우리 현대자동차만 항상 민주노총의 선봉에 서서 남은 것이 뭐가 있느냐’ 같은 것들. 기업별 의식과 ‘회사 경영이 잘되야 되는거 아니냐’가 주로 조합원에게 잘 먹히고 있죠. (임원 C-2)

셋째, 국내외 경제 사정이 어렵다거나 회사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선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회사는 1/4분기에 5천억이 넘는 순이익을 남겨도 유인물을 통해 심각한 위기라고 해요. 유가가 어떻고 하면서 위기설을 조장한다. 항상적인 위기설을 조합원에게 주입하는 거죠. (소위원 P-1)

넷째, 조합원의 고용안정은 곧 회사의 경쟁력과 직결되며, 이러한 회사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조합원의 양보와 협력이 필요함을 선전한다.

현장의 정서는 첫 번째가 자기 고용을 보장받는 것이다. 임금인상이나 복지혜택보다도 자기 일자리를 자기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뭔가, 그걸 보장해줄 수 있는 주체는 누군가, 그걸 가장 고민하는 것이다. 사측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치고 들어온다고 본다. ‘당신들 고용보장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런 측면에서 고참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하면 내가 정년을 맞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지 임금이나 복지는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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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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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회사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먹혀 들어가는 거 같다. (소위원 K-2)

위와 같은 이데올로기 공세와 더불어 사측은 다양한 방식의 인적・제도적・정신적・물리적 공세를 취하고 있다. 첫째,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쟁점 사안들에 있어, 관리자 및 조・반장들을 동원하여 일반 조합원들에 대한 여론 몰이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의원을 압박하거나 혹은 사측의 영향력 하에 있는 대의원들을 이용해서 합의안을 성사시킨다. 대의원은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대의원 개개인이 현장의 각종 쟁점 사항에 있어 커다란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57).

[민투위 비정규직 사업팀 유인물, 02.11.20] “사측은 하청의 필요성을 현장에서 유포하면서 68차 임시대대의 결정-추가투입 인원은 반드시 정규직으로-을 무력화하기 위한 공작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현장에서 하청 투입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부서에서는 조합원 서명을 받아 노동조합에 하청투입을 요구하는 작태가 있는가하면… 하청투입을 요구하는 조합원 투표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일부 대의원들은 하청투입에 반대하는 대의원은 고립시키면서 하청투입을 합의해내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사측이… 현장여론을 조작하면서 하청투입을 요구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대의원까지 그런 요구에 함께 하도록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생산량 변동을 통해 조합원들을 고용불안에 빠지게 하는 한편, 물량 확보를 미끼로 공장 간・부서 간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노동자간의 분열을 조장한다. 특히 이 기제는 ‘고용이데올로기’와 직접 연관된다. 먼저 사측의 생산량 변동을 통한 통제전략의 핵심은 자본이 의도적인 불규칙한 생산을 통해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으로 자극하면서 일상적으로 ‘길들이는’ 것에 있다.

[자주노동자 신문, 04.01.27] “작년 12월 회사 측은 3공장 대의원회에 8개의 토・일 철야 생산을 요청하였고, 성탄절도 철야 생산을 요청하였다…. 올해 1월에는 내수시장 위축으로 철야생산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문제는 갑작스레 철야생산이 없어지다 보니 현장조합원들이 고용불안을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장조합원들은 물량감소로 또다시 고용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현장에서는 ‘일 없을 때는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민노투 신문, 05.04.20] “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2공장에 대해 10-10 근무에 철야를 강요하던 사측이 갑자기 4월 생산 계획 설명회에서는… 재고가 쌓여 8-8근무를 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사측의 고도화된 술수로 조합원의 생존권을 유린하는 작태이자 기만행위이다… 이는 사측이… 전반적인 물량 축소를 통해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불파 문제를 비롯한 모듈협상과 CM카 조기 투입을 위한 각종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얄팍한 술수이다.”

57) 그러나 이처럼 사측에 의해 활용되고 있는 특성 자체가 언제나 나쁜 결과를 가져오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급격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조합원 대중과 활동가의 긴밀한 관계와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현장 투쟁이 가지는 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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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이러한 고용불안을 기반으로 공장 간 물량 경쟁을 유발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 간의 분열을 의도한다.

[5공장 대의원회, 02.05.02] “ 사측은 갤로퍼(15uph->13uph), 싼타모(11uph->8uph)로, 생산량 축소가 불가피 하며 생산량 축소에 따라 발생되는 300명의 잉여인원에 대한 대책은 이후… 03년부터 추가 차종을 투입하여 14uph 생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측의 생산방식은 차가 안 팔리면 생산량을 줄이고, 생산량 축소로 발생된 잉여인원은 타부서 전출 등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생산 물량의 이동 역시… 노동자들 간의 물량 확보 투쟁을 유발시켜 상호 경쟁을 유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승용 2공장 대의원회, 03.02.19] “회사는 향후 생산 예정인 신차(JM)를 전량 2공장에 투입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작년 5공장 대의원들과도 신차(JM) 투입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2공장과 5공장 조합원간의 노노 싸움으로 비화될 소지도 안고 있다… 이는 3공장 라비타 차량을 5공장으로 이전할 때 회사가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이다.” [실노회 신문, 03.04.23] “회사는 트라제를 4공장으로 이관하면서 신차(JM)의 2공장 조기투입을 약속한 바 있다… 이는 2공장과 5공장 조합원들의 노노싸움을 유발하기 위한 회사의 술책인 것이다… 2공장 대의원회는 이번 투쟁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 식의 조직이기주의가 아니라 회사가 기존의 합의한 약속의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민노투 신문, 03.04.29] “신차 JM카 투입을 앞두고 사측의 일방적 합의사항 파기로 인해 2공장 대의원회가 2주째 천막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회사가 JM카 생산을 2공장 물량으로 합의해 놓고, 뒤로는 5공장에 20만대 생산설비 체제를 갖추는 식으로 이중 합의를 통해 물량을 가지고 노노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회사는 그동안 물량 이관이 있을 때마다 해당 사업부에 선 물량 보장 후 약속 파기를 하는 수법으로 장난을 쳐왔다. 이것은 2공장 트라제, 3공장 라비타, 4공장 그레이스 물량 이전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

셋째. ‘합리화 공사’를 통해 손쉽게 구조조정을 달성하고 있다. 자본은 각종 구조조정 사안들을 ‘합리화 공사’를 통해 ‘한 방에’ 해결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측이 합리화 공사를 신차 투입과 밀접하게 결부시키면서 활동가들의 신차 확보 투쟁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노투 신문, 04.09.22] “현대차는 대형차 시장을 포기하는가! … 사측은 더 이상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방치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조합원의 고용안정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 에쿠스 생산라인의 합리화 공사를 통해 혼류생산 시스템으로의 전환 등…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할 것을 요구한다.”[2공장 대의원회, 05.02.16] “회사는 다른 차종을 생산할 수 있는 합리화 공사를… 다른 공장 대의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파기했다. 우리는 여기서 회사가 에쿠스부를 운영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측은 책임있게 합리화 공사가 가능하도록 나서야 한다… 집행부는 다소 욕을 얻어먹더라도 일감을 나누기 위해 회사와 책임 있게 협상에 나서야 한다. 어디는 1년 내내 특근해도 생산물량이 넘치고 어디는… 일거리도 없다면 이 불평등을 해소해야 노동조합 정신에 맞지 않겠는가?”[4공장 대의원회, 05.03.02] “조합원들의 생계권 확보 및 재고 소진에 대한 대안을 회사가 제시해야 한다… 막연히 내수경기가 살아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공장합리화 공사로 혼류생산, 신차 조기 투입 등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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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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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조・반장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권한(인사고과, B55코드58) 등)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조・반장들의 조직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조・반장 영향력 강화와 조직화 움직임은 50년대 도요타 자동차의 노동조합 무력화 공세의 과정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회사가 조 개념 반 개념을 철저히 심어놨어요… 조합원들이… 반장・조장한테 줄서죠. (대의원 A-1)[승용2공장 공동소위워회, 02.05.10] “얼마 전… 울산공장 반장을 중심으로 반장 협의회가 구성되었다… 현장조합원은 많은 우려를 하였고, 5공장 대의원회 대자보에 정면 반박하는 유인물에는 우려를 넘어 분노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다수이다.”[현장조직 공동투쟁 연대. 02.05.23] “지난 4월 22일 반장협의회에… 800명중 700여명에 달하는 반장들이 가입해있다… 전 공장 차원에서 조직되고 있는 것은 회사의 지시나 지원이 뒤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사측은 반장들로 하여금 각 공장별로 불법파업 코드나 무노동 무임금 코드를 적용하게 만들어 현장이 분열되게 하는데 이용하였다.” [공동 소위원회, 02.07.10] “반장협의회는 민주노동당을 반대하는 지방선거 밀착 개입과 노동조합 총회 때 보여준 찬성유도(조합원에게 전화작업, 메시지 작업)를 해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불이익한 행위를 하였다.”

다섯째. 회사 측은 조합원들에 대한 개입을 위해 개별접촉을 시도하고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포섭하고 있다. 이러한 관리자들의 인간적 관계를 통한 접근은 현장에서 관리자들이 많은 영향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모든게 인간적인 문제로 되었고 회사는 조・반장을 통한 형님 아우 관계로 나왔다. 같이 일한 세월이 있기 때문에 형님 아우로 통한다. 이후에 회사가, 의도적인 거라고 보는데, 경・조사에 같이 간다던지 인간적인 사석에 간다던지 내가 관리자로서가 아닌 것처럼 인간적인 모습으로 장악해 들어온 것 같다. 지난번 집행부 때 파업 찬반투표가 높지 못했던 이유가 그 때 과장급들이 찾아와서 하는 이야기가 ‘형님 이번에 하면 나 짤린다. 한번만 도와줘. 어차피 찬성될 거 아닌가’ 한다. 그러다 보니까 조합원들이 까짓것 찬성될 텐데 하고… 회사와 노동조합의 치열한 대립문제가 인간적 관계로 현장에 묻혀버린 한 예가 되었다. (대의원 L-1) 3~4년 전부터… 회사가 노동조합 총회 같은 거 할 때… 선거구 별로 개표 차이가 나게 되었고 그걸로 관리자의 평가 잣대로 삼기 시작한 거죠. 관리자들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만나기 시작해요… 그 때부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맨투맨 방식이 나오기 시작해요. 관리자들은 … 성향이 보수적이고 노동조합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부터 포섭하기 시작했고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과정이지요… 특히 98 고용조정에서 노동조합 지침에 참여한 단위와 하지 않은 단위와 엄청난 괴리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반 회식, 반 야유회라든지 각각의 행사에 관리자들이 꼭 참석을 하는 거죠. 참여하면서 봉투 내놓고, 회사 밖에서 이야기하면 이런저런 대화를 폭넓게 할 수 있지요. 그런 것을 이용해서 인간적인 친밀감을 만들어 놓는 것 같고, 이런 것이 익숙해지면 밖에서도 따로 만나고요. 해가 갈수록 회사 측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사람이 늘

58) [공작사업부 소위원회, 00.05.02] “반장에게 잘 보인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고 잘못 보인 사람은 이때다 하고 보복적인 근태관리는 누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회사는 더 이상 현장을 분열시키지 말고 지금 당장 B55코드를 폐기하라.”

[노동자의 길, 04.07.06] 임단투시 파업으로 인하여 조합원은 합법일 경우 B-50, 불법일 경우 B-55의 폭격기를 맞아가며 금전적으로 많은 손해를 감수해왔다. 노동조합 상집들은 임금손실이 없었다. 이로 인한 조합원들의 불만은 노동조합 간부와 현장 조합원들을 분리하고 괴리시키는 하나의 이유로 작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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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고 있어요. (대의원 Y-1)

이러한 관리자들의 활동은 외양적으로는 개인적인 인간 관계를 쌓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4공장 소위원회. 03.08.21] “4공장에서 노동조합 사찰 문건 및 노동조합 활동 개입에 대한 문건이 발견됐다… 전 사업부에서 과장급 이상이 선무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조합원 사찰 내용은 충격적이다.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었다. ‘가정방문 해서 협조 확약’ ‘경비 지원하면 협조 의사’ ‘가정방문 했으나 불투명’ ‘등산 함께 간 뒤 협조 확약’ 등의 사례들은 부당노동행위를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노동자의 길, 05.03.22] “회사의 관리자들이 요즘 들어 부쩍 현장조합원들과 친한 척 하면서 현장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돌고 있다… 회사의 관리자들은 불파 투쟁과 05년 임단투에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는데 정작 노동조합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타깝다… 모두들 현장이 힘들다 하고 현장이 어용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의 원인은 사측의 관리자들이 밤낮을 설치며 현장을 뒤집고 다닌 탓일 것이다.” [민주노동자회 유인물, 05.07.13] “윤여철 부사장의 지시에 전 공장 관리자 수천 수백 대오가 일사분란하게 행동하고 있다… 동원된 관리자들은… 현장 조직력을 침체시키고… 임단투 무력화를 위한 무분규로 치닫고 있다… 관리자의 활동영역이 이렇다보니 현장은 임단투 요구안이 쟁점화 되지 못하며 집행부만의 요구안으로 겉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리자들의 활동은 회식자리와 향우회, 동호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활동가가 포함된 관계를 스스로 빼요. 사측 관리자들이 압력을 넣고 있어요… 활동가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회는 회사에 의해서 하나둘 탈퇴를 해요. 그렇게 무너지고 있는데, 반대로 조・반장이나 학연, 지연, 혈연으로 묶여 있는 데는 괜찮아요. 회사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공격의 대상과 보호의 대상을 구분하는 거죠. (대의원 A-2)조합원들을 들여다보면 서로간의 경계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18년의 역사 속에서 지금은 대단히 능수능란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이런 속에서 회사가 간부들한테 02년부터 1써클 갖기 운동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되면서 그전에는 사무실과 현장이 구분되었는데, 지금은 통일되어가고 있다… 부딪치면서 인간적 관계를 강화시키고 있다. 각종 써클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과장이고 차장이고 하니까… 현장조합원하고 실제로 부딪치면서 격이 해소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장이 안정되어 보인다. 저희 부서는 써클이 대단히 많다… 얽히고 섥혀서 과거의 관리자와 조합원의 구분이 무너지고 있다… 다양한 써클 활동들이… 노동조합활동을 무너뜨리는 것 같다… 실제로 효과적인 현장관리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원 P-1) 조합원들이 회사의 동우회 활동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사실 직제 개편할 때 회사가 향우회⋅동호회를 강화시킨건데… 회사로부터 지원도 받고, 관리자들이 들어가 있고… 일부 조기축구회에는 활동가들도 들어가 있는 정도인데 그마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대의원 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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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측은 대의원 선거나 임단투 총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현재 사측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는 조합원의 숫자가 3분의 1정도가 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에서 이러한 개입은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각종 선거에서도 회사가 노무관리로… 타겟을 정해서 낙선운동 진행하고… 대의원들의 선거행태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부서장 회의에서 우리 부서장이 나 때문에 대단히 곤혹을 겪고, 그리고 나서 내가 1차에서 1등했는데… 떨어뜨려라 지침이 내려오고… 2차에서 꼴등했다. 그러면서… 그 양반은 고과 까먹었던 거 다 회복했다. (임원 K-2)

여섯째. 현장투쟁을 수행한 활동가들을 징계하고 해고하는 한편, 고소 고발 및 손배 가압류를 걸고 있다59).

03.07. 아산공장 대소위원 6명 해고, 4명에게 정직 3개월 징계 03.07. 아산공장 활동가 21명에게 1인당 3천~7천만원 손해배상 04.03. 3공장 소위원 1명 해고, 대의원 2명 정직 1개월 징계 04.09. 모듈화 반대를 위한 잔업거부로 의장 1부 대표 2명 고소 고발 04.11.25. 아산본부 본부장 외 4명의 노동조합간부에게 고소 고발 04.11.26. 판매본부 부산지부 지부장 외 4명의 노동조합간부에게 해고, 7명의 간부에 대해 징계 05.06.24. 안전사고로 라인정지한 5공장 대소위원 5명 고소 , 손해배상, 징계 05.09.09. 현재 총 219명의 비정규직이 해고 내지 징계, 손배, 가압류에 처해있음

일곱째. 경비대를 동원하여 첨단 장비를 이용해서 활동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소지품 검사 등을 통해 일상적 통제를 행하고 나아가 물리적 폭력을 가함으로써 활동가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현장에서 희망 만들기, 03.07.24] “지난 6월 아산지부에서는… 대의원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차량을 투입하였다… 아산지부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 사측은 대량 징계와 임금 가압류, 고소 고발을 통해 아산문제를 매듭짓고자 해지만 부당징계 동지들이 천막 농성을 전개하자…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천막농성장을 침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실노회 신문, 04.03.29] “노란 봉투 투쟁위 동지들이 출근 투쟁을 시작하려 했으나… 갑자기 달려든 경비들과 충돌이 발생… 한 동지는… 실신하여… 긴급 후송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카메라 기자에게 달려들어 비디오 카메라를 파손시켰으며… 투쟁위 지도부까지… 발로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자주 노동자 신문, 04.05.04] “아산공장은 노동조합 간부와 하청지회 간부들에 대한 미행, 감시, 사찰 업무

59) 이 외에도 많은 사례가 존재하지만, 미처 모든 사례들을 수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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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는 경비대를 설치 운영하였다… 또한 출퇴근시 정문과 쪽문에 검사대를 설치하고 소지품 검사를 실시했다… 더 나아가 식당입구에 사측의 무인카메라가 24시간 작동되고 있다… 노동조합 간부들의 식당 홍보 투쟁에서 하청지회의 중식투쟁, 일상적으로 식사하는 조합원까지 사측의 감시 사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노동자의 길, 05.03.22] “ 최근 1,2,3,4,5 공장에 지원실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지원실장으로 발령받은 자들의 면면이 기가 막힌다. 판매본부에서 노동조합 탄압의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 졸지에 임원으로 승진되어 전진배치된 것이다. 이들 중에는 무술유단자와 폭력전과자까지 있다. 지원팀은 현장을 탄압하고 활동가들을 감시하고 사찰하던 곳이었다. 그런 지원팀을 지원실로 강화하여 본격적인 현장탄압을 시작하려는 것이다.”[노동자의 길, 05.06.14] “지난 5월 25일 1공장 생산라인에 안전문제가 발생하여 담당 대의원이 대책을 요구하며 라인이 정지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관리자가… 라인 가동만을 우선시하며 대의원에게 무력을 행사하고 폭언을 일삼은 일이 발생했다.”[민주노동자회 유인물, 05.07.13] “3월 8일 본관 항의서한 전달과정에서 사측은 유례없는 폭행으로 대응하였고, 1공장 부대표가… 3주가 넘도록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 다음날 전직 위원장이 집회 중 경비의 구타로 실신하여 병원에 긴급 후송되었다… 또한 중식 시간 시트 사업부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참가한 교육위원을 폭행했다.”[공동 소위원회, 05.09.09] “윤여철과 그의 졸개들이 울산공장을 오면서… 3공장 중간 관리자들은 80년 광주진압 충정훈련을 했고, 전 공장은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서 소위원회 의장이 지원팀 과장에게 무차별 폭행당했다.”

여덟번째. 조합원과 가족에 대한 기업 문화 전략을 통해 기업의식 강화를 시도한다.

[노동자의 길, 02.04.09] “지금 문화회관 주위에는 벚꽃축제가 한창이다… 한마음 교육이라고 해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또 조합원 부인을 대상으로 행복한 가정 만들기라는 교육을 한다고 한다… 한마음교육을 보면 노사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목적으로 항상 투쟁의 시기를 앞둔 4,5월경에 실시한다… 더 큰 문제는 조합원 가족 특히 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다… 결국 남편들의 월급경쟁을 가정에서 부추키고 ‘집안이 잘 되기 위해서는 협조적인 노사관계가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5공장 대의원회, 02.05.02] “4월 18일부터 단체협상이 시작되었지만, 현장은 단체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러한 원인은 조합원 해외연수, 한마음 교육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5월 중에는 우리들의 부모와 자녀까지 각종 행사에 동원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이 주관하는 이러한 행사들은 신경영전략의 하나인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위한 방안으로 실시되고 있다.” 문화회관으로 부인 불러서 교양 교육시키고 애들 불러서 과학교실이니 하면서… 고립시키는 거다.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하고 집에 가보면 부모들이 니네 회사 그렇게 잘하는데 왜 니네 데모하냐고 할 정도로 주위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 공세를 하다보니까… 조합원들은 그렇게 말려들어간다. 부모, 자식, 부인 이야기를 듣고 개인주의로 빠져버리는 거죠. (임원 C-1)

이제까지 살펴본 현대 자본의 다양한 공세는 구조조정의 실제 효과와 함께 조합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조합원들이 ‘고용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데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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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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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한 조합원들의 변화

조합원들이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해 영향 받고 있다는 사실은 먼저 그들이 끊임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고용안정을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98년 이후에 조합원들이 변화된 양상을 보면 내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무사히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많이 없다는 것이지요… 고용안정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결국 있을 때 많이 벌자는 의식이 많아진 것 같아요. (임원 Y-1)98년 이전까지 주로 임금, 복지, 근로조건 등이 요구의 중심이었는데 98년부터 급속도로 고용안정문제가 핵심이지요… 98년은 조합원들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지요. 그전에는 회사에서 짤릴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소위원 P-1)처음에는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이라고 생각하고 인력충원을 비정규직으로 할려고 했었어요… 지금은 일거리가 늘어나도 ‘맨아워 그대로 하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인력 충원 아무도 받지 말자’고 해요. 자기 고용만 보장되면 인원을 받아서 편하게 일하면 되는데, 그렇게 안 될 거라고 보고 아예 신규인력 자체를 안 받는거죠. (대의원 Y-2)

이러한 ‘고용이데올로기’의 영향은 조합원들의 정서를 변화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고, 요구사항을 변화시키게 된다60).

1) 조합원들의 개별화와 실리화

활동가들의 면접에서 조합원의 변화에 대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지적이 예전에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이 살아있던 조합원들이 점차 그러한 의식들이 사라지고 개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61). 또한 자신의 임금만을 중요시하게 됨에 따라 특근을 능동적으로 요구하고 있고62), 자신의 고용을 위해 비정규직의

60) 그러나 조합원들이 변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활동가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조합원들이 변했다기 보다는 상황의 변화로 인해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활동가들의 활동 여부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일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원 K-3 : 예전만큼 투쟁이라든지 이런 걸 안하니까 관심이 좀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모일 때는 잘 모여요… 대의원이 끌고 가기에 따라 의식이 바뀌는 것 같아요. 우리는 상태가 괜찮은 거 같아요.

▷소위원 K-4 : 우리 공장은 신입사원이 대거 입사해서 대부분이 젊은 신입사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주 활동적입니다.61) 그러나 조합원들이 개별화되는 이유가 ‘고용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다고 판단하는 활동가들도 존재한다. ▷대의원 A-3 : 인간적인 관계는 아직까지 유지가 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옅어졌다… 이제는…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소주

한잔 할 기회가 적어졌죠. 예전에는 오토바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니까 소주 한잔 했지만… ▷임원 J-1 : 그렇게 많이 변한것 같진 않은데… 과거에… 통근버스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술이나 하는게 자연스럽

게 이루어졌거든요. 요즘은 개인차를 들고 다니니까 특별하게 약속을 안 하면 그런 것들이 쉽지 않지요… 그러면서 대단히 의식 자체가 가족중심으로 되는 것 같다… 같이 모여 집단적으로 공감대를 가지고 이야기하는게 옛날만큼 많지는 않다.

62) 그러나 이에 대해 조합원들이 어쩔수 없이 특근을 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현자 노동자 신문, 00.07.19] “요즘 전 공장은 휴일마다 특근과 철야로 밤낮이 없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돈도 돈이지만 회사 측

의 이런저런 눈치도 봐야하고, 동료들의 형편도 맞춰야 하기에 14시간에 이르는 철야특근을 마지못해 한다. 지금 우리는 주당 62시간 노동이 거의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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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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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63). 이러한 세 가지 측면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조합원들이 개별화됨에 따라 단결력이 저하되고 있다64).

회사에 대한 애착이나 직장에서 미래를 찾는 것이 희박해졌다… 일 있을 때 돈벌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간연속2교대제 같은 거나 일자리 나누어서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이 잘 안 먹힌다. 개인적인 사고로 자기를 축소시켜 나가는 것 같다. (소위원 H-1)98년에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그런진 몰라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서로 눈치를 많이 봐요. 자기 혼자만 생각하고 개인주의적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서로 공유가 잘 안되요… 조금이나마 반장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옛날에는 조합원끼리 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아요. … 기준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느냐에요. 임단협 말고 바깥에서 비정규직 악법 같은 거 가지고 투쟁한다면 나하고 상관이 없는데 왜 거기에 우리가 가야 하냐고 생각해요. (소위원 L-1)언제부터인가 보면… 그룹, 그룹되어 있어요. 조・반장 중심의 한팀, 지역중심 한팀, 입사년도가 비슷한 팀 한팀, 소위원 대의원 중심의 한팀. 말 그대로 끼리 끼리 노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 안해요. 개별화되어간다고 생각해요. (소위원 K-5)개별화되었다… 집단적 가족적 분위기에 있던 조합원들이 고용안정투쟁을 거치면서 서로 파편화되고 있다. … 나이가 높아지고 근속이 높아지면서 가정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금은 동료들보다 지역동네 동료나 가족하고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소위원 P-1)

둘째. 조합원들은 자신의 임금 확보를 우선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잔업・특근을 선호하고 있다.

98년 전에는 옆에 동료가 형편이 어려우면 잔업 네가 해라 했는데, 지금은 서로 자기가 차지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여요. 깨놓고 말해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의원 K-1)98년 이전에는 지금처럼 철야, 특근이 없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주말이면 낚시도 다니고 등산도 다니고 하면서 조합원들끼리 많이 놀고 친해지고 했다던데요. 98년 이후에는 주말에 놀러 가자고 해도 철야, 특근 있으면 안 가는 추세에요. (소위원 K-1)동료애 이런게 98년 이전에 비해 현격하게 없어졌다. 대의원들이 특근 짤라 버리면 욕하고, 특근 있을 때 돈 번다는데 왜 짜르냐, 일 있을 때 벌자 이런 분위기다.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분위기죠. 쉽게 말해 정년까지 내가 회사에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죠… 특근 많이 따오는 대의원이 인정

63) 그러나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 떄문에 불안해 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활동가들도 있다. ▷임원 C-1 : 98년 구조조정을 통해서 고용불안을 많이 느끼고 있고… 해외에서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종을 똑같이 생산하게 되면

서 물량이 줄어들고 고용불안을 많이 느끼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되니까 조합원들이 역으로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고용불안을 느끼는 거 같아요. 그 노동자들은 임금도 낮고 젊기 때문에 오히려 회사에서 그들을 자기들보다 더 원하는 게 아니냐고 보는 거죠.

64) 그러나 이와 다른 평가를 내리는 활동가들도 존재한다. ▷대의원 Y-1: 같은 반 내에서의 식구라는 개념… 우리 식구라는 개념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다만 반 전체에 5~10% 인원은

전체 분위기에 무관하게 나는 나대로 간다는 인원이 간혹 있지요. ▷소위원 L-2: 같은 반 조합원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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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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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그런 현장이 되어버렸어요. (대의원 K-2)[자주노동자 신문, 02.09.04] “요즘… 어느 사업부 할 것 없이… 빨간 날짜는 빈틈없이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한 달 특근이 5~8개는 우습게 넘고 있다… 현장의 대・소위원들도 특근에 있어 어떠한 큰 사안이나 큰 명분 없이 특근거부가 조직되는 것은 예전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 원칙적 문제제기에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근을 희망하는 현장의 요구 또한 만만치 않아 현장의 대소위원들의 입장이 곤란한 지경까지 온 것이다.”[실노회 신문, 03.02.26] “대의원 대회에서 일요 특근을 안하기로 결의했지만 일부 공장에 특근이 이루어지면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이 조직력 훼손을 우려할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조합원들은 특정사업부나 부서의 특근소식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집행부나 대의원, 활동가를 대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심지어는 급여수준은 노동조합 지침에 따르는 정도에 반비례한다는 자조적인 비난이… 고개를 들고 있고, 특근하지 말자는 대의원에게 ‘왜 우리만 희생양이 되어야 하냐’고 따지는 조합원도 많다고 한다.”[자주노동자 신문, 03.10.22] “계속되는 철야 특근은 시급제 노동자들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갉아먹어 이제는 ‘내 철야 내가 하는데 노동조합이 뭔 상관이냐’, ‘너거 마음대로 철야 거부하냐’는 등의 반발 때문에 현장의 간부와 노동조합은 철야를 함부로 제한하지 못한다.”

셋째.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집단적 투쟁의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옛날에 비해서 상당히 이기적이지요.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직접적이지 않는 것은 냉소적이고요. 예를 들면 반 안에서 작업공정이라든가 이런 부분만 봐도, 예전 같으면 공정 일하는 부분이 본인이 손해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전체를 위해서 같이 움직였는데 지금은 그게 없는 편이고, 비정규직 불파투쟁과 관련해서도 현장에서는 상당히 냉소적인 것이 사실이고요. 지금 당장 나하고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당히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거 같아요. (대의원 K-2)

2)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상실과 회사의 통제에 대한 ‘강요된’ 순응

활동가들은 98년 이후 노동조합과 회사 측의 현장 장악력에 있어 많은 변화가 생겼음을 지적한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고용을 지켜주지 못한 노동조합에 대해 예전만큼의 신뢰를 가지지 않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회사의 통제에 더 잘 따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이나 투쟁에 대한 참여 하락으로 연결된다65). 65)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참여가 저조하게 된 이유로는 이 외에도 투쟁의 관성화, 조합원 주체들의 소외, 현장과 지도부의

분리 현상 등 다양한 진단이 존재한다. ▷소위원 P-2 : 단협하는데 안건을 보면 조합원들이 다 안다 이거죠. 3개는 붙고 4개는 떨어지겠네 하고. 처음 노동조합 할 떄는

임금 10만원 올려준다 그러면 진짜 10만원 오르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고참들은 10년도 넘었으니까 다 알아버린 거죠. 올해는 파업이 길어지겠네 등등 미리 판을 다 알아버리니까 안 오는 기라… 고참들을 움직이게 하는게 힘들죠… 해외연수 없다고 협박도 해보고 막걸리 한잔 살테니까 갑시다 하고 꼬시기도 하고… 맨날 머라카니까 요샌 많이 바뀌긴 했죠.

▷소위원 C-1 : 98년 이전에는 그래도 조합에서 뭐 정책이나 파업프로그램을 하면 그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했는데 98지나고 나서는 조합원들이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는 거에요.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을 하더라도 대충 어느 선에서 끝날거다 다 아는거죠. 그러면서 조합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앞에서 활동가들이 선동해도 별로 조합원들이 피부에 와 닿는게 떨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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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노동조합이 자신의 고용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한 참여가 줄어들고 있다.

98년 이전에는 활동가들을 믿고 따라주는 편이었는데, 98년 터지고 나서는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으로 되서 집회도 옛날처럼 참석하지 않고 활동가들을 예전처럼 잘 안 믿죠. 지금은 사람들 의식이 노동조합에 잘 보이는 것보다는 회사에 잘 보여야 노란 봉투를 안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임원 J-2)예전에 물량이 확보되었을 때는 노동조합에 대한 단결이나 집회에 적극적이었는데… 물량 부족이 장기화되고 고용불안 의식을 느끼다 보니까 노동조합에 참가하는게 위축되어 있어요…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랄까 하는 부분이 상당히 약해졌죠. (소위원 L-2)98의 영향이 조합원들을 극심한 이기주의로 몰았다. 돈의 노예가 되는 영향도 미쳤다.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된 계기였다… 이로 인해… 있을 때 돈 벌어서 내 살 길 찾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2000년 이전에는 한자리 수였던 과로사가 2000년 이후에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옆에서 픽픽 쓰러져서 죽는 것을 보면서도 일을 하고 있다. (임원 K-1)아는 형님이 그러는데 자기도 98년 당시에 소위원 활동 열심히 했는데 제일 먼저 짤리는 부분이 활동가였다고 해요. 지금 활동 안하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해요… 소위원 하는 것도… 앞장서서 하지 말라고 해요. (소위원 L-1)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신뢰하지 않는다. 98년에 투쟁했지만 안 되더라 하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조합원들이 있을 때 벌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투쟁하자고 하면… ‘싸워봤지만 안 되더라’라는게 영향을 미치고 있더라. (임원 L-1)고용문제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에서 뭘 해도 안 믿는다. 심지어 단협조차 안 믿는다. 2004년에 해외공장 관련 강화된 조약이 있었지만 별로 중요한 이슈로 주목받지 않았다. 00년 완전고용합의서도 마찬가지다. (대의원 L-1)

둘째. 회사의 기준에 의해 정리해고 대상자가 선정되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회사 측의 통제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있다.

회사 관리자들 말을 안 들으면 정리해고 대상이 되고 그랬으니까… 노동조합에서 고용안정 이런 거 얘기해도 안 믿는 거 같고 오히려 회사 쪽에 기대는 것 같아요. (대의원 Y-2)1공장이 언제나 물량이 풍부하거든요. 자기가 몸이 불편해도… 월차 한번 안내요. 쉽게 말하면 98년도 거치면서, 그 당시 고과가 나쁘거나 하면 해고당하고 했으니까, 관리자들이 뭐 누구한테 될 수 있으면 월차 좀 내지마라 교육도 하고, 자기 몸 아파도 자기 의사 표시를 잘 못하죠. (소위원 C-1)98년까지는… 조합원들 사이가 참 좋았어요. 98년 딱 터지고 난 뒤에 끝나고 난 그 시기부터 투쟁한 사람 안 나온 사람 구분되고, 끝나고 나니까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회사 쪽 이야기를 잘 듣는거죠. 그러다보니까 서로 경쟁이 되는 거죠… 반장들한테도 인사고과 잘 보여야겠다 하고 반장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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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더라도 예전에는 끈끈한 동료애로 먹었는데 지금은 회식이니까 한잔하고 간다 정도고. 옛날이 그립죠. (임원 J-2)98년에 고용문제가 왕창 터진거고, 조합원들이 보는 시각도 회사도 노동조합도 고용문제에 대해 믿음을 못 가지는 거다. 조합원들이 회사의 눈밖에 안 날려고 하면서 현장통제력을 노동조합이 잃었고 회사는 조・반장을 통한 장악력이 커졌다. 있을 때 벌자는 생각이 강화된 측면이 크다. 그러다보니까 물량에 따른 고용문제가 더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의원 L-1)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조장이나 반장이나 관리자잖아요. 그들에게는 되도록 눈 밖에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배적이에요. 아무리 부당한 요구를 해도 겉으로는 그냥 하는 거예요… 저는 선거구에서 조장이나 반장과 많이 싸워요. 한참 싸우고 나면 조합원들이 진짜 잘해줬다, 시원하다는 말을 많이 하죠. (대의원 J-1)

3) 물량에 따른 불안과 물량 확보에 대한 열망

현재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잔업 특근을 보장받으려고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최대한의 잔업 특근을 통해 ‘벌수 있을 때 돈을 벌어놓자’ 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잔업 특근이 있는 한은 자신이 결코 ‘짤릴’ 염려가 없다고 생각한다. 잔업 특근의 확보는 결국 물량의 확보와 직결되게 된다. 물량이 있어야만 잔업 특근을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일차적 요구는 바로 ‘물량 확보’로 향하게 된다.

첫째. 조합원들은 물량이 줄어들게 되면 임금이 대폭 감소할 뿐 아니라 정리해고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

생산물량이 고용을 보장한다는 생각을 98년 이전에는 조합원들이 안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팽배해있어요. 98년 이후에 회사는 계속 시도를 해왔고, 공장별로 이루어진 일들이 그렇게 만들어왔다고 생각해요. 생계에 대한 타격을 받는 일이라든지. (대의원 A-2)갑자기 일거리가 없어져 특근이 없다, 잔업이 없다고 하면 바로 피부로 와 닿아요. 일거리가 없으면 집으로 가야 되니까요. (소위원 L-1)조합원 스스로 고용불안을 느껴요. 98년 정리해고 때 만여 명 나갔잖아요. 자동차가 계속적으로 물량이 정해진 게 아니잖아요. 불경기 타면 생산이 없는 건데… 해외공장 생겨도 물량이 줄고… (임원 J-2)해외 공장이나 내수침체가 이루어졌을 때, 잔업이나 특근을 못하니까 임금불안이 심하고 또 그것이 고용의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죠… 꼭 회사 측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서라기보다도 98년 이후 전반적인 정서가 그렇고, 한 번씩 나오는 회사 측 유인물을 보면 또 경기가 어려워지는구나 하고 고용불안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는 거죠. 거기서 1/4분기 매출액이 줄었다는 이야기 같은 거 들으면 아무래도 불안하고… (임원 Y-1)현재 조합원들의 생각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량부족이 장시간에 걸쳐서 되다보니까 고용불안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것이지요. (소위원 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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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이후에는 고용 문제가 직접 닥치게 되죠… 일단은 정리해고가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요. 구체적으로 회사에서 어떻게 한다기보다는 해외공장을 짓는다거나 하면 당연하게 우리 차 만드는 대수가 줄어들다 보니까 그렇게 느끼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정리해고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요. (소위원 K-3)객관적으로 고용이 불안해서가 아니라… 제가 볼 때는 고용이 불안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조합원들은 불안하다고 느껴요… 심리적인 거 같아요. 잔업이 줄어들면… 휴가 가고 정리해고 수순으로 가는게 98년도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잔업 안하면 그 다음에 휴가 가는거 아닌가 불안하고, 그 다음에는 또… (임원 L-1)물량이 없어서 8-8 돌아가거나 하면… 주위의 비정규직이 하나씩 떠나게 된다. 계약해지로 다 떠나고… 2차밴드는 다 나가는 수준이 된다. 그런 걸 조합원들이 보지 않겠나? 걔네들 자리 비었으니까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생각하게 된다. (소위원 H-1)조합원들은… 물량이 없으면 짤릴 거 같다, 정리할 수 밖에 없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물량이 줄어든 만큼 나갈 텐데, 그게 비정규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투쟁하면… 그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비정규직들 못 짜르면 결국… 나이 많은 내가 나가야 한다는 불안감. 게다가 단협에서 입사 역순 이것까지 없앤 거니까. 게다가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게 회사다. (대의원 L-1)[실노회 신문, 04.03.29] “특히 4공장 스타렉스 생산라인은 재고가 수만대에 달하며… 신차투입 계획도 2007년도나 예상하고 있어… 잔업 특근이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어도 하루하루 고용불안의 요소는 참기 힘들다고 조합원들은 이구동성이다.”

둘째. 조합원들은 생산 물량이 자신의 고용을 보장한다고 생각하고, 물량 확보를 열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은 사측에 대한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산량이 고용을 보장한다는 의식, 이게 조합원들 머리 속에 박혀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에요. 여기서 생산량이 8시간에 대한 생산량이 아니라 잔업은 기본이고 특근이 4, 5개 할 수 있는 물량을 의미하는 거죠, 수습이 안 될 정도에요. (대의원 A-2)고용문제는 곧 생산물량 문제이거든요. 지금 각 공장 사업부 별로 물량문제로 싸우고 있어요. 각자 10시간씩 물량을 확보해야 하다 보니 많이 싸우지요… 물량이 없으면 UPH 다운되고, 그러다 보면 잉여인원이 생겨서 비정규직이 남게 되요… 물량을 나눠먹기 위한 여건이 되지 않아요. 자기 물량을 확보해야 하니까 다른 공장에 나눠 주는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임원 S-1)공장 별로 극명하게 물량이 차별화되고 있다. 차별화되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르니까 내 앞가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업부는 적어도 노사관계가 안정될 필요가 있고 협력을 적당히 가야하는, 물량이 자본의 논리들이 그대로 접목이 되는 그런 부분이 있다. (임원 P-1)

물량 확보에 대한 조합원의 이해관계는 생산량 달성이라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현대자동차 자본은 생산계획을 달성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생산계획은 보통 생산설비가 허용하는 최대량으로 설정된다. 문제는 이러한 생산계획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아가 더 많이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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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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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 인원 충원이나 노동시간 단축, 휴식 시간 확보, 노동 강도 저하의 요구들은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이러한 사측의 생산 우선주의는 최근 들어 목표한 생산량에 타격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 대단히 공격적인 반응으로 드러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이전까지 노동조합의 힘으로 쟁취했던 작업중지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66).

[5공장 대의원회, 05.07.05] “지난 6월 24일 5공장에서… 중대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라인 가동을 정지시켜 놓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여, 노사가 재발방지 협의를 한 후 다시 라인을 가동시키는 것이 단협과 관례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이다. 그러나 사측은… 사고 당사자에 대한 징계만을 운운하고… 협의 자체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관리자를 동원하여 라인 가동을 시도하고, 이를 저지하는 대소위원들에게… 폭력사태를 유발했다.”

한편 현대 자본은 최소 설비에서 최대 생산이라는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부가적인 이득도 확보하게 된다.

[자주노동자 신문, 03.03.19] “차가 안 팔려 생산차를 주차할 공간이 부족한데도 사측은 전 공장에 대해 생산량 증가를 위한 볼륨 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나 1, 4공장은… 생산량을 올리게 되면 공정간 거리가 확보도 안될 뿐더러 작업자들끼리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여서 안전사고는 당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 회사가 생산량을 증가하려는 속셈은… 재고확보 차원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를 03년 임단협 시 생산량을 미리 확보해서 노동조합의 힘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주장도 한다… 파업에 대비해서 협상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조합원들의 변화에 대해 큰 영역으로는 세 가지 영역, 작게는 일곱 개의 변화지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활동가들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자.

3.2.3.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한 활동가들의 변화

앞서 조합원들이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해 변화된 모습들을 살펴보았듯, 활동가들도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해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고용이데올로기 자체에 의한 직접적인 변화이기도 하고, 조합원들에 의한 간접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한편 역으로 활동가들의 변화는 조합원의 변화를 이끌어 내거나 촉진하기도 한다.

66) 작업 중지권과 관련된 내용은 ‘근골격계 직업병 공동연구단. 2002. 노동강도 강화와 근골격계 직업병 대응 6장과 7장, 도서출판 현장에서미래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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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고용이데올로기와 조합원과 활동가의 삼각 축은 서로 서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지금의 현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1) 조합원들이 활동가에게 미친 영향

조합원들을 기반으로, 또한 조합원들을 위해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조합원들이 활동가들의 변화를 가장 잘 추동할 수 있는 기제는 선거(대의원 선거와 집행부 선거)이며, 현재 그러한 영향력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지점은 비정규직 문제이다.

(1) 선거를 통한 영향

조합원들이 개별화・실리화 되는 한편, 활동가들이 활동의 자신감과 원칙을 잃어가면서, 이 두 경향은 상호작용을 통해 활동가들의 활동 양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 중에서도 선거는 이러한 왜곡된 활동가 상을 만들어내고 고착화시키는 주요한 통로로 작동하게 된다.

98년 이후 두드러진 것은 고용불안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일 있을 때 벌자는 생각이 팽배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선호한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이러한 조합원 성향을 맞추다보니까 운동적 관점을 잃어버렸다. 조합원들 기호를 맞추어주고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밟아간다고 본다. (임원 P-1)실제 대의원 선거를 해봐도 물량을 많이 확보해오겠다는 사람이 당선되는 사례가 많아요. 그 다음에 잔업 특근을 많이 보장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당선되는 사람이 많다. 특근을 보장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대의원 되기가 많이 어렵다… 대의원들이 특근 거부를 하면 조합원들 반발이 많이 심해서 거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렇게 되면 힘은 사측이 가질 수밖에 없다. (임원 J-1)직영을 안 뽑고 하청으로 대신하고, 그 과정이 고용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 것이고, 그러면서 작업자들이 요구를 하죠. 기왕에 충원할 것 하청받자고 조합원들이 요구를 하게 됩니다… 대의원들도 어차피 표를 먹고 사는 입장이니까 그렇게 합의를 합니다. 그러면서 하청이 엄청 들어오게 되는 거죠. (대의원 (A-3)한 달 특근 10개 받아와도 1개 짤라버리면 선거 때 대의원 떨어져요… 다음에 또 대의원 할라 그러면 그런 거 안할 수는 없지요… 현장에서도… 운동적인 관점에서는 막아야 된다고 하지만 막상 그것 가지고 회의할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든지, 아니면 특근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든지 얘기하는거. 조합원들이 원하니까 여론이 원하는데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주장하는 것이지요… 조합원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조합원들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대의원 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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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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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활동가들은 변화한 조합원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을 겪고 있다. 조합원들의 요구 변화와 자신들의 활동 원칙 사이에는 끊임없이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선거라는 공간을 통해 그러한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2) 비정규직 문제에서 활동가에게 미치는 영향67)

최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68). 그런데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전면적으로 결합하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하지 않은 채 관망하는 자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투쟁에 거리를 두는 정규직 조합원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대의원 연임을 위해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거나, 혹은 조합원들로부터 고립될 것을 두려워하며 조합원들의 의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못한 채 개인적 차원의 연대 활동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관망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여러 원인들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정규직 노동자들은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 때문에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힘든 공정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맡아하고69), 물량 변동이나 모듈화로 인해 배치전환이 생길 경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이동하거나 계약 해지 되는 등 정규직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었던 것이다70).

정규직하고 비정규직하고 일 같이 할 때는 친하게 지내요… 하지만… 정규직들은 속으로는 만약에 모듈화 같은 것이 들어오면 비정규직은 당연히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소위원 L-1)우리는 경기가 좋으면 좋고 나쁘면 아주 나빠요, 편차가 심해요.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이번 맨아워 협의할 때는 비정규직이 나갈 수밖에 없구나, 당연히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임원 J-2)

67) 05년 불파투쟁의 의미와 그 속에서 보여진 고용이데올로기의 영향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지점이지만, 시기상의 문제로 미처 다루지 못하였다.

68) 한편 현재 현대자동차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최근의 한 유인물을 보면, “지금 현재 직접 생산라인에는 비정규직의 비율의 45%를 넘어서고 있는게 현실이다.”(농성단 소식, 05.03.15)

69) 그러나 비정규직이 힘든 공정을 맡는 것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나 다른 것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대의원 A-3 : 과거에는 신입사원을 년수 별로 계속 받아왔기 때문에 선후배간에 알게 모르게 룰이 있었어요… 장기근속자 경우

에는 쉬운 일로 빼줍니다… 고정으로 ‘형님 이거나 하이소’ 하고 비슷비슷한 또래들이 로테이션 돌죠. 근데 그게 짤리고 십 몇 년 뒤에 비정규직들이 들어와서 힘든 일로 가게 되죠. 비정규직들은 이해할 수 없죠. 정규직들은 임금은 더 많이 받아가면서 힘든 일은 자기들이 하는거죠. 그러면 정규직들은 ‘나도 니 나이때 그거 다했다’ 그럽니다.

▷소위원 K-2 : 신규는 없고 비정규직들이 들어오는데…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추가 인원에게 일자리를 나눠줄 때는 제일 힘든 일 , 그때까지 자기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일하던 것을 다 주게 된다… 그런데 조합원들 인식이 ‘야 느그들 힘들다고 하는데 옛날에 우리 입사할 때 그보다 더했어. 지금 철야근무 그게 철야인지 알아. 철야는 아침 8시에 들어와서 다음날 8시에 퇴근하는거야. 우리는 그렇게 참고 일했단 말야.’

70) 그러나 활동가의 노력에 따라 이러한 결과는 달라질수 있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임원 L-1: 제가.메인 콘베이어다 보니까 대부분 신입사원이에요… 비정규직을 똑같이 대우해주려고 했어요. 모두 다 로테이션을

돌아요…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대의원 K-1: 비정규직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현장 활동가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많이 틀려지는 거 같아요. 실제로 우

리 선거구를 놓고 보면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는 없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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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길, 02.05.07] “2000년 이후 UPH는 끊임없이 증가하여 2년이 지난 지금 시간당 생산대수가 30% 이상씩 증가한 상황이다. 그동안 사측은… 일방적으로 UPH 상승을 밀어붙여 보고 현장의 문제제기가 있으면 M/H 협상을 통해 전환 배치와 하청투입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문제는 실질 노동강도가 증가되고 있음에도 현장 조합원들은 노동강도 강화를 몸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의 체감 노동강도 강화가 비저규직 노동자에게로 이전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조합원들은… 노동강도 강화를 적당히 수용하면서 하청투입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98년 구조조정과 같은 경우가 다시 발생한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많으면 자신은 무사할 것이라는 심리적 안도감이,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용인하고 나아가 요구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상태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한 노동조합 강화’를 선택하기 보다는, ‘비정규직의 온존을 토대로 한 신체적・심리적 이득’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합원들의 변화는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제약으로 작용하게 된다.

98년 경험이라는 것이 활동가들도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조합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되니까 조합원들도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많이 바뀌는 것이고… 이후에 경기가 회복되고 나서는 활동가들도 스스로 활동의 원칙이나 운동의 대의보다는 현장 조합원 정서에 맞는 심부름적인 역할을 많이 했다고 봐야죠… 특히 신규고용이 창출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보고… ‘어차피 저 사람들은 평생직장으로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에 고용위기가 오면 나가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활동가들이나 조합원들이 생각하면서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지요… 자본에게 대응하지 못하고 수세적인 차원에서 조합원 정서하고 같은 선상에서 자본을 바라보게 된거죠. (대의원 Y-1)사람이 빠지면 비정규직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히 되어버렸더라구요. 젊은 사람들이 새로 입사는 안 들어오니까 다 비정규직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대의원들도 그걸 인정해주고. (대의원 A-1)현장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 물어보면 한결같다. ‘한자리가 비었는데 정규직을 받을까요? 비정규직을 받을까요?’ 하면 자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로 ‘당연히 비정규직이 와야지’ 한다… 활동가는 직영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죽어가는 목소리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그럼 너희가 내 자리를 지켜줄거냐?’라고 한다. (소위원 K-2)비정규직하고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 나보고 ‘니 미쳤나?’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왜 해야 하나’고 반문이 날라온다. 이야기 해봐야 답이 없는 것 같다. 98년 구조조정의 휴유증이 아닌가 한다. 자기 자신이 설움을 당해보니 자기 고용이 일순위이고 비정규직이 이순위이고. 그래서 조합원들이 활동가한테 요구하는게 비정규직 처우개선 이야기를 많이 한다. 비정규직은 우리들 안전장치로 두고 그네들의 처우는 개선해주자고 말한다…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철폐 외치는데… 그럼 뭐하러 16.9% 가이드라인 합의 해줬냐고 한다. 모순 아니냐고 하면 활동가들이 할 말이 없다. (소위원 K-2)

전체 노동자의 분할을 확립하는데 있어, 조합원들의 고용불안과 실리화를 부추기고 그것을 활용하는 자본의 공세는 조합원들에게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이는 활동가들의 대응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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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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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활동가가 조합원에게 미친 영향

위에서 본 것처럼, 98년을 계기로 조합원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버렸다는 걱정이 많다. 아마도 현재의 상황을 대단히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처럼 많은 사안들에 있어 활동가들이 조합원의 정서에 의해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그렇다면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현재의 상황은 조합원에게 활동가들이 일방적으로 영향 받은 결과일까? 그렇지 않다. 활동가들은 단순히 조합원에 대한 방치나 방관과 같은 문제 회피적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문제점들을 악화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 활동가들의 잘못된 활동으로 인한 신뢰 상실

조합원들의 활동가들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활동가들 스스로의 변질과 원칙 상실의 측면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노동조합 차원의 신뢰 상실뿐만 아니라 활동가 개개인의 지향성과 투쟁성에 대해서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05년도에 제기된 입사비리 문제로 크게 부각되었지만, 이러한 금전적 문제뿐만 아니라 활동 전반에 대한 신뢰 상실과 연관되어 있다.

[실노회 신문, 03.02.26] “지금 노동조합 간부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각종 선거에서 표를 구걸하고 당선만 되면 임기동안 회사와 조합원 사이를 오가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해결한다. 노동조합의 각종 의결 기구에서 의결된 사항이 마치 누가 보고라도 한 듯 금방 정보가 회사 측에 누출되고… 빨간 조끼만 입으면 정문은 아무 때나 통과할 수 있도록 회사 측은 방치하고 있고… 조합원들도 이젠 활동가를 존경하지 않는다.”[공동 소위원회, 05.04.13] “언제부터인가 대의원은 야간 근무를 하지 않고 특혜를 누리는 자리로 전락하고 있다… 모사업부는… 대의원 당선되고 장갑 끼는 것 못 봤다는 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자주노동자회 유인물, 05.06.02] “윤리강령 제정으로 대의원들의 특혜를 차단하고 현장활동을 혁신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대의원 야간 근무하기, 회사와 술 안 마시기, 각종 회의결과 조합원 보고하기 등 하나씩 바꾸어야 한다.”[공동 소위원회, 05.06.08] “대의원들은 선거 때에만 투사가 되고… 당선되면 작업장에도 투쟁 현장에도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인 근태 문제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각종 합의를 소위원, 조합원의 참여 속에서 합의하고, 합의서는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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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조합원들의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에 대한 신뢰 상실은 98년의 패배나 그 이후의 구조조정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점 등의 커다란 사안에서부터, 활동가들의 일상적 활동과 개인적 지향성의 문제와 같은 미시적 사안까지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 것이다. 특히 최근 부각되고 있는 대의원들의 근태문제를 비롯한 일상적 활동의 문제는 조합원들의 즉자적 반감을 유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조합원과 활동가들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분리하려는 사측의 공세에 활동가들이 제대로 대처를 못해서 생긴 것들이다.

(2) 활동가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 물량과 잔업・특근 확보

많은 활동가들 역시 조합원들처럼 고용안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인식이 ‘고용이데올로기’의 한계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활동가들 역시 98년의 패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또한 역시 ‘물량이 곧 고용’이라는 왜곡된 관점을 가지게 된다. 활동가들마저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물량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 물량 확보를 위해 다른 것들을 양보하게 되는 결과로 드러나고 또한 더 나아가 오히려 조합원들에게 물량이 곧 고용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물량 확보 투쟁과 신차 확보 투쟁에 조합원들을 매몰시키는데 일조해 나간다. 활동가들 스스로 왜곡된 물량확보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먼저 고용안정에 대한 활동가들의 인식과 조합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현재 조합원들 정서에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분이 고용인데요. 이 고용에 대한 내용은 노동조합이나 활동가들이 유포한 측면이 굉장히 강해요… 원래는 8시간도 못하는 상황이 와야 고용불안이라고 할수 있지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가지는 고용불안의 실체는 기존에 하고 있던 내용에서 임금이 줄게 되면, 현재 하고 있는 총 노동시간이 줄게 되면 바로 고용불안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생각이 굉장히 잘못되어 있지요. (대의원 Y-1)회사는… 항상적인 위기설을 조합원에게 주입하는 거죠. 이것에 덧붙여…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덩달아 조장한다… 노동조합활동가나 대의원 소위원 현장조직들은 위기의 근거로 한 공장에서 특근이 6개 있었는데 다음달에 4개로 줄었으면 벌써 불안하다고 하는 거에요. 특근이 하나도 없으면 ‘위기 심각하다’고 하고 4공장처럼 잔업마저 없으면 ‘대대적인 고용위기가 눈앞에 와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조합간부나 활동가들이 그래요… 무의식적으로 고용이라는 화두로 조합원을 몰아넣고 있는 거지… 이 속에서 조합원들은 ‘내가 언제 짤릴지 모르는데 연대투쟁이 당장 뭐냐’ 그런 거죠… 회사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고… 조합원들의 심리가 모든 문제가 고용문제로 직결되니까 활동하는 현장 제조직들도 조합원들의 관심과 표를 의식하기에 조합원들의 관심이 가장 많은 쪽으로 자극하고 건드리죠. (소위원 P-1)노동조합도 위기다 라고 그래왔다… 문제는 노동조합이 뭐 이것이든 저것이든 못 막으면 다 죽는다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고용이 어떻게 변해서 죽고 임금이 어떻게 변해서 죽고, 해외생산이면 어떻게 죽고, 진보 정치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해결하지 않으면 정규직 다 죽는다고 얘기한다. 문제는 그걸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위축되는 방식으로 가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간다. (임원 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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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 책임이 큽니다. 활동가들이 만들어가고 쉽게 젖어들어 가는 거죠. 내 물량을 지키는 거에 내 공장 일 좀 하는 거에 활동가들이 매몰되어 있다. 노동조합은 크게 뭉치자고 이야기하면서도, 협상할 때는… 자기 선거구만 챙기려고 한다. (대의원 S-1)활동가들이 문제인데 부서 합의서 써오는 것이 월 특근 몇 개 보장 그런 거다. 마치 특근을 따오지 않으면 고용이 불안한 것처럼, 특근을 따온 것이 엄청 대단한 것으로 내세우고 있다… 합의서 보면 월 특근 몇 개 보장, 10-10을 보장한다는 합의서를 쓴다… 생활도 좋아지지만 더불어 일 많으니까 짤릴 일은 없다는 안정감을 느낀다는 거다. (임원 L-1)[공동 소위원회, 05.03.14] “인도에서는 제 2공장을 신설하여 투산도 생산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투산 생산이 본격화될 시 5공장이 고용불안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에서 상용차 합작이 본격화되면 전주공장과 4공장은 문을 닫아야 하는 판국이다. 미국 공장이 가동되고 신차 생산이 이루어지면 아산공장과 2공장이 고용불안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터키 공장 증설로 … 1공장 또한 고용불안으로 직결된다… 이것은 98년도 대량으로 감행된 정리해고 구조조정보다 더 위력적이고 교활한 신 구조조정이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고용 문제 외에 노동시간 증가, 노동강도 강화, 신규 충원 미비 등의 문제를 쟁점화 시키고 막아내는 투쟁을 벌여나가는데 제약이 된다.

회사가 물량이 없다, 8-8로 가야한다, 한달 정도 휴가를 가야한다 뭐 이렇게 하면 어떤 싸움을 해도 회사에서 가자는 데로 가거든요. (대의원 Y-2)[노동자의 길, 02.05.07] 과로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잦은 장비고장 등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빈번한 잔업과 특근 때문이다. 이는 차가… 잘 팔리고 조합원들의 자발적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현실적 근거 속에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하청투입의 제도화와 연동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다… 사측은 주도권을 잡고 잔업 특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의 길, 02.08.14) “지금 전 공장이 철야 특근으로 밤을 새고 있다… 각 사업부별 공장장에게 경쟁 심리를 조장하여 생산량 달성에 순위를 매겨 미달성 사업부 공장장은 잘라버리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집행부에서는 각 사업부 특성에 맡겨 사업부 대의원회에서 알아서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건강권을 포기하고 과로에 목숨을 걸도록 하는 아주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조합이 이렇게 휴일 특근 철야를 부추기는 양상은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01년 울산공장에서는 총 19명의 과로사가 발생하였다… 올해도 벌써 7명의 조합원이 과로사로 목숨을 잃었다.” [자주노동자 신문, 03.10.22] “1공장의 U/P 상승과 관련하여 회사와 협의 중 또 한명의 조합원이 과로사로 사망함으로써 올해 1공장에서만 2명이 과로사로 떠났고, 현장의 노동강도는 날로 더해만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측은… 오로지 생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조합원이야 죽던 말던 UPH를 올려 차를 한 대라도 많이 만드는 것만이 사측의 관심사이다… 생산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 볼륨업을 하자는 사측의 주장은 말이 안된다… 1공장 대의원회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노동의 희망, 03.11.05] “생관 2부 조합원이 과로로 쓰러져 중태인 상황이다. 2공장의 경우 지난 9, 10월달 철야 특근 현황을 보면 단 하루의 휴일도 없다. 토・일 철야 특근을 연속적으로 강행해왔다… 조합원들은 철야특근은 조합원 자율을 빙자한 강요라고 말한다. 대의원회서 특근 결정하고서는 현장에서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라 하는데, 내가 빠지면 동료들이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야특근을 할 수밖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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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자율을 빙자한 강요의 특근은 거부되어야 한다. 그리고 철야특근을 인정해주는 것이 사업부 대표나 대의원의 능력의 기준이 되는 현실을 끝내야한다.”

활동가들은 고용안정 투쟁으로서 물량 확보 투쟁과 신차 확보 투쟁에 나서게 된다. 물량을 많이 따는 것이, 자신의 공장에 신차를 들여오는 것이 조합원을 위한 길이고 바람직한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에쿠스 같은 곳은 12년차 되는 사람들이 월급 가져가는 거 보니까 100만원이 안되더라… 고용불안을 느낄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거로 어떻게 먹고 사나… 공장끼리 같은 동기들 연봉 비교하면 많게는 천만 원 차이가 난다… A공장에서는 B공장에 잔업이라도 하게 물량을 달라고 하고… C공장에서는 B공장 물량 나눠서 하자고 대자보 붙이고, B공장 조합원들은 상관없다고 무시하고… 노노갈등으로까지 비춰지기도 하고요… C공장 대의원들은 자보 붙이고… 물량 이관 하라고 유인물 뿌리고. (대의원 A-2) [노연투 신문, 03.11.20] “4공장 소형버스부는… 현재 1만 4천여 대의 재고를 확보하고도 억지춘향격인 철야를 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그레이스 차종 광주공장 이관 시부터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의원회는 향후 불어닥칠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막아내고자 본관 점거 농성도 전개한 결과 대체차종으로 2공장 생산차종인 트라제를 구걸하면서 투입하였다… 사측은 중장기적 생산계획으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노동의 희망, 04.03.25] “4공장 조합원들이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02년 말 대의원과 아무런 협의 없이 스타렉스가 터키공장으로 물량이 이관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휴가를 가야할 판이다… 4공장 대의원과 소위원들은 물량확보를 위한 대책위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단체협약 32조에 따라… 해외로 이관된 물량은 다시 반입되어야 한다.” [자주노동자 신문, 04.04.07] “3공장의 경기 조건을 따져보았을 때 조기에 신차를 투입해야 함에도 회사는 아직 신차투입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현장의 요구도… 신차를 조기 투입하여 3공장이 겪고 있는 판매부진으로 인한 심각한 물량부족을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지금 대체로 물량부족을 심각하게 겪고 있는 사업부의 경우 신차투입을 통한 해결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점을 볼 때 신차 투입요구는 정당한 요구라 할 수 있다.” [엔진소위원회 04.04.29] “엔진공장 고용위기가 닥치고 있다… 엔진생산이 향후 2년간 현재의 생산대수를 유지하거나 줄어들 계획인데… 이것을 방치한다면 2년 이내에 심각한 고용위기 닥칠게 뻔하다… 물량을 지켜내고 고용을 지켜내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자주노동자 신문, 04.05.19] “승용 3공장의 물량부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사업부 간 물량의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나 차이를 보이고 있어 피부로 느끼는 고용불안의 정도는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물량부족으로 인한 고용불안은 전적으로 회사의 책임이며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줘야 한다.”[민노투 신문, 04.09.08] “4공장 조합원들이… 수개월째 8+10 근무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4공장 고용안정대책위가 구성되어 단협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4공장 물량부족 사건의 발단을 보면, 지난 2000년 그레이스 차종을 기아 광주공장으로 이관할 당시 사측은… 신규모델 투입을 약속했으나 일방적으로 신차 개발을 취소하였고, 02년에는 수출물량을… 일방적으로 터키로 이관했다… 사측이 이 문제에 대해 진정 책임지는 자세라면 8+10의 근무형태가 계속 이어져서는 안된다… 사측은… 타 사업부에 대해… ‘4공장을 봐라. 일이 있을 때 특근 등 열심히 일을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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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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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러한 왜곡된 관점은 투쟁의 와중에서도 잔업 특근을 계속하는 모습, 투쟁을 하면서도 사측의 생산계획은 모두 달성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노동자의 길, 03.11.04] “지난 금요일 1공장 대의원회는… 토요일 철야 특근 실시를 전격적으로 결정하였다… 기존 입장을 선회하여 급박하게 철야특근을 인정한 것은 설득력이 없는 결정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인원이 부족하여 업체인원을 투입하는 등 조합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오류를 범하였다. 또한 전국의 수많은 노동형제들이 노동탄압에 맞서 죽음으로 항거하는 시점에 목요일 하루 잔업을 거부하고도… 철야를 함으로 인해 잔업거부 투쟁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우를 범하였다.”[자주노동자 신문, 04.12.01] “11월 16일 총파업 투쟁이 부분파업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집행부는 27일 28일 특근을 했다. 투쟁하면서 특근했다는 소리는 투쟁을 억지로 했다는 소리와 동일하다… 이 말은 투쟁을 안하겠다는 소리와 동일하다…”[노동자의 길, 05.03.22] “지난주 3공장 대의원회는 치열한 논쟁 끝에 철야근무를 하기로 결정했다… 잔업을 끊은 사업부 대표가 고소고발 되고 강병태 소위원이 해고가 결정되었음에도 철야를 강행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 철야는 재고 비축 철야로서… 투쟁해야 할 시기에 철야를 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 할 수 없다.”

이제까지 살펴본 모습들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주 40시간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연간 3,000시간에 육박하는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주간연속 2교대제나 노동시간 상한제, 특근 거부 추진71)등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어떠한 의미 있는 성과도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은, 고용안정은 곧 물량확보라는 인식, ‘물량이 없으면 당연히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전면적으로 맞서서 깨지 못하는 활동가들의 상황과 연결된다.더 나아가 이러한 활동가들의 활동 방식은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는 사측의 현장 통제 전략, 즉, 잔업・특근을 시혜적으로 ‘베풀거나’, 혹은 고분고분 하지 않으면 ‘뺏어버림’으로써 물량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관리하려는 전략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노동자의 길, 04.04.14] “작년 3공장 조합원들은 주말에도…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다. 또한 일이 많을 때 한푼이라도 벌어놔야, 나중에 일거리가 없고 회사에서 내팽개치더라도 최소한의 준비를 위해 죽을 둥 일을 했다. 사측은 조합원들의 불안한 심리와 주말 특근에 맞춰진 생활임금을 이용하여 생산물량이 없다는 핑계로 17대 대의원들을 시험하면서 현장을 사측이 원하는 대로 만들려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이용하여 사측이 물량을 조절할 경우 파업 한번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이대로라면 사측에 의하여 눈치도 채지 못하고 현장권력이 잠식당할 것만 같다.”[민노투 신문, 04.09.22] “지난 8월 회사는… 유인물을 통해 인원은 충분히 투입했는데 생산은 하지 않는다

71) 특근 거부에 관련해서는 다소 상반된 주장도 존재한다. [자주 노동자 신문, 03.11.05] “현장에서의 선전문과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점점 조합원들이 실리만 원한다라고 하면서… 조합원

들이 가지는 서글픔과 비참한 마음을 모르고 조합원들을 돈만 밝히는 실리주의자로 왜곡하고 있다… 조합원들을 과로사로 내몰고 특근으로 내몬 것은 활동가들의 지도력 부재와 미래가 없는 정체된 활동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돈만 밝히는 실리주의자가 아니라 활동가들이 나태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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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놀자판 사람들로 몰아부쳤다. 더불어 잔업 특근이 회사로부터 폐기되는… 생산포기가 단행되었다. 이로 인해 조합원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대의원회는 투싼 전용생산에 따른 추가 인력 투입과 컨베어 수당에 대해 자신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게 합의하게 되었다.”[5공장 대의원회, 05.07.05] “사측은 안전사고로 인한 라인 정지에 대한 어떠한 면책합의도 없다며, 5명의 대・소위원들이 고소 ․ 고발, 손해배상,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5공장 전체 조합원들에 대해 잔업과 특근을 취소하겠다며 협박했다.”

또한 굳이 사측의 전략이 아니더라도, 특근이나 잔업의 필요성 때문에 투쟁이나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도 만들어지게 된다.

단체협약에 체결되어 있는거랑 상관없이 회사가 하고자 하는 정책들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 인제는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거죠. 활동가들하고 조합원들이 엄청나게 큰 사건인거는 인식을 하는데, 어떤 투쟁이 벌어지고 이러면… 특근을 끊고 좀 있음 잔업을 끊고 이러기 때문에…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고용이데올로기’는 결코 조합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활동가들도 똑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며, 활동가들이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는 문제이다. 특히나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조합원들의 고용을 위한 활동가들의 치열한 투쟁이나 헌신적인 활동은 의도와는 별개로 오히려 고용이데올로기를 악화시키는 결과로 드러나기도 한다.

(3) 비정규직 문제

현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활동가들은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노력들은 최근 상당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으며, 대의원들이 오히려 조합원들의 의식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고용에 대한 내용은 노동조합이 활동가들이 유포한 측면이 굉장히 강해요… 대의원이 나서서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달라고 주장하는 예도 많아요. 고용을 지킬 수 있다고 본거죠. (대의원 Y-1)모듈 외주화 관련해서 정규직과 상관없다는 이유로 비정규직들을 잘라내는 상황이 있었어요. 대의원들이 합의해 준건데, 집행부도 개입할려면 할 수 있었는데 막지 않았다는거죠. (대의원 Y-2)회사가 비정규직이 우리들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활동가들 전체가 조합원을 조직해서 열 명 단위로 토론을 가지고 하면 효과가 있을 텐데 그렇게 안하고 있죠. (대의원 P-1)회사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면 직영자리 다 짤린다고 선전한다. 우리는 거기에 맞서 이론을 펼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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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는 교육을 시키면서 논리를 강화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그렇게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 교육이 4시간씩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피치가 다운되면 정규직만 다른 부서로 전환 배치되고 비정규직은 갈 수가 없어요… 회사가 그런 이데올로기를 사용하면 난감하다. (대의원 K-1)

이처럼 활동가들은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조합원들, 그리고 조합원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도록 선동하는 사측에게 무기력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의 요구를 즉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증가하도록 만들고 있다. 조합원과 활동가 모두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활동가 핑계를 대고 활동가들은 조합원 핑계를 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 사이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획책하는 진짜 주범인 자본은 갑자기 없어진 듯한 양상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4) 활동가들의 조합원들 실리화 경향의 가속화

앞서 조합원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가능한 한 임금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하고, 임금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조합원들의 실리화 경향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활동가들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조합원들이 그렇게 변한 것은 활동가들 잘못이예요. 임단투를 하면서 매번 돈 잔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돈만 많이 받으면 된다. 그리고 공장별로 물량문제에 대해서도 그랬다… 98년 이전에는 몸 편한 공정을 선호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현대자동차의 임금체계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72)이긴 하지만 노동조합과 활동가의 잘못이 커요. (대의원 K-1)임원선거 때 공약집 들여다보면… 그 때 각종 제조직 신문 보면… 돈 얘기고… 완전히 스포츠신문이다… 변동급 강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임단협 타결 시점 되면 알 수 있다… ‘돈을 많이 따오는 우리 집행부가 최고다’ 그렇게 주장해왔다… 대의원회가 특근을 결정하고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런 욕구를 총족시키면서… 조합원들이 예전에는 부끄러웠던 거였는데, 이제는 죽는 사람이 있어도 지금은 정당화해주니까 조합원들도 특근을 안하면 대의원 죽일려고 하지요. (임원 K-2)활동가들이 예전과 같은 경제투쟁을 계속하면서 활동가들과 조합원이 동반상승하는 그런 노동조합활동을 게을리 했다고 봐져요. 98년 상황과 그 후 활동가들의 안일한 대처가… 좀 개인주의화되고 이기주의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사안사안의 투쟁에서 분열되고 분화되고, 파가 많은 것이 질곡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있다고 보고. (임원 Y-1)

72) 현대자동차의 임금체계는 기본급이 대단히 낮고 할증률은 대단히 높은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잔업과 특근을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서 개별 노동자의 임금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 문제는 이런 조건임에도 역대 집행부들은 이러한 임금체계에 대한 개선 노력보다는 오히려 성과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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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임금의 문제에서도 활동가들은 조합원의 왜곡된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임금상승률이든 성과급 확보든 잔업 특근의 확보든, 활동 성과는 조합원들에게 얼마나 돈을 많이 안겨주느냐로 결정된다. 문제는 그것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활동이 낮은 기본급과 높은 변동급이라는 임금 체제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그러한 자신들의 활동 자체가 노동조합의 조직적 힘에 긍정적인 영향 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3.3. 역대 집행부 활동을 통해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의 변화 과정

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 과제들은 98년 이후 모두 ‘고용’으로 대체되었다. 임금이 고용으로, 노동조건 개선이 고용으로, 계급적 단결이 고용으로 변하게 되었다. 고용은 다른 무엇을 포기해서라도 사수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용을 위한 그 노력들은 오히려 고용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98년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서의 노동조합의 패배 이후 조합원들은 극도의 고용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집합적・계급적 힘을 통해 자신들의 권익과 생존을 보장받던 기존의 방식을 포기하고,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본에 대항해가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개별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위계화 전략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잔업 특근의 요구와 비정규직 확보 요구 등의 실리추구 움직임으로 나타나게 되며, 이러한 ‘조합원들의 보수화’는 ‘대의원들의 보수화’로,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전반적 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조합원들의 불신과 공포를 차단하지 못하는 한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이 불신과 공포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가?’로 모아지게 된다.이러한 고용불안과 ‘고용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으며,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를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자 한다.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속에서 커다란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사안들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를 통해 노동조합 집행부 차원에서의 활동이 고용이데올로기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아 왔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다음 그림은 역대 집행부의 활동을 중심으로 고용이데올로기의 발생과 제도화,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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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2.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의 확산 과정

위 그림은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현대자동차의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낳고, 이는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 상실과 사측의 일상적 구조조정 시도와 맞물려 조합원들의 노동시간 상승(잔업・특근 선호)과 비정규직 선호라는 변화를 초래하였다.이러한 조합원들의 변화는 활동가들의 변화를 야기하였고, 두 현장주체들의 변화는 완전고용 합의서 체결로 드러나게 된다. 이는 고용을 위해 다른 것을 양보하는 전략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가시적 양보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완전히 해결해내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고용 문제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더욱 상실하게 만든다.그 결과 현장의 변화에서 자본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고, 활동가들은 변화된 조합원들을 거스르기 보다는 그들을 인정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활동을 재구성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게 된다. 이에 따라 이후 사측의 구조조정 요구에서 고용 문제만을 우선시하고 다른 사안들은 부차화시키는 경향이 현장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한편 이러한 모습들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의 활동 양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특히 역대 집행부 활동 과정에서 7・5 연대 총파업 철회, 산별 추진과 실패, 사회공헌기금 추진 등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대응의 향방을 결정짓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대응들은 기존의 경향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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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 현대자동차 현장에는 물량 확보가 곧 고용 안정, 회사의 발전이 곧 고용안정이므로 회사 발전을 위해 양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자리잡게 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확대, 직업병과 노동재해의 만연, 다시 말해 ‘노동자의 몸과 일상 그리고 삶’이 황폐화되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고용불안감이 더욱 일상적으로 만연하고 있다. 이제 각 과정들에 대해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3.3.1. ‘고용이데올로기’의 발생

1) 발생 배경 - 신경영전략73)을 통한 노동자 개별화와 통제의 내면화

단결을 바탕으로 한 집합적 행동만이 자본에 맞설 수 있고 자신의 노동조건과 삶의 조건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음을 노동자들 스스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실천으로 옮겨서 커다란 성과를 얻은 것이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이다. 87년 대투쟁 이전까지, 자본에 전적으로 순종하더라도 그 보상의 수준이 절대적으로 낮은 -비록 저항함으로써 일자리를 뺏기거나 심지어는 목숨까지 위협받았던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닐지라도- 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단시간 내에 폭발적으로 단결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가져온 성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 시기 ‘노동자는 하나’였으며, ‘대중과 활동가는 하나’였다.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은 반격을 모색한다.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가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협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동자 단결의 선행조건 중 하나인 ‘동질성’을 공격하고 노동자들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동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자본은 그러한 보상을 차별화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요구와 단결을 바탕으로 한 공동 행동이 모든 노동자에게 명백하게 이로운 것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개별 노동자들에게 ‘다른 이들은 순응하지 않는 조건에서 나만 순응하는 것’이 더 이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들을 다시 불신과 경쟁의 관계로, 수동적 주체로 만들기 위한 자본의 공세가 전면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90년대 초반 이후의 성과급제, 능력주의 인사관리, 팀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신경영전략’이다74).

73) 신경영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팀. 2000. 구조조정과 현장통제 대응전략, 노동전선’ 을 참조.74) 98년보다는 오히려 이 시기를 중요시하는 의견도 있다. ▷대의원 L-1 : 98년이 큰 계기가 된 것은 맞다. 그러면 그전에는 안 그랬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들어오면서 노동조

합이 주춤하던 시기… 특히 회사가 인사정책으로 밀고 들어올 때…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풀려야 하는데 보류되고 회사는 밀고 들어오면서 조합원들이 자기들 살 방향을 찾은 거다. 98년 이전부터 고과에서 내가 상급자로부터 플러스를 받느냐 마이너스를 받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회사는 고과정책을 강화시켜왔고, 성과급도 계속 시행해왔는데 집단대응하지 못하고 개별대응하고 개별적인 자기 처신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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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생 -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패배75)

이러한 과정에서 97년 IMF가 발생하게 되고 현대자동차에서는 98년 정리해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의 단결을 바탕으로 한 집합적 행동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98년의 구조조정은 90년대 초반 이후의 신경영전략으로 인해 흔들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던 노동조합의 힘과 노동자들의 단결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패배 이후 일시에 ‘개별적 고립’과 ‘수동적 반응’을 선택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이 모두 돌아서게 된다면 자기 혼자만 피해를 입게 된다는 생각으로 인해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이러한 공포는 단순히 98년의 1회적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노동자들의 행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번 불신으로 간 상황에서 쉽사리 신뢰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투쟁 시작 이전부터의 일관된 양보교섭. 둘째, 투쟁 과정에서의 조합원에 대한 방치, 셋째, 투쟁 이후 평가의 부재. 이러한 세 가지 문제점이 고용이데올로기의 발생과 지속을 용이하도록 만들게 된다. 특히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문제는 투쟁의 ‘결과’보다 바로 투쟁의 ‘과정’에 있다. 즉 단순히 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해결책을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에서 찾게 된 것이 아니라, 투쟁 과정에서 보여준 집행부와 활동가들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며, 이후에도 그러한 점들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 사회를 뒤흔든 IMF와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노사정 위원회 참여를 통한 정리해고 수용이라는 상황이 커다란 한계로 작용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아무리 조건이 나빴다 하더라도 주체의 잘못된 판단과 행보에 대해서는 확실히 평가해야 한다. 집행부는 처음부터 일관된 양보교섭을 시도했으며, 공장 점거 투쟁이 지속되었던 36일 동안도 자발적으로 분출되던 투쟁을 내버려두거나 오히려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집행부는 독자적으로 사측과 합의를 결정하고, 조합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였다. 이것은 당시 집행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은 대세라는 인식과 노동조합의 힘으로는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에 갇혀, 구조조정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기 보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힘을 쏟은 결과였다. ‘투쟁을 통해 이겨낼 수 없다’ 혹은 ‘피해를 최소화해야한다’라는 판단은 IMF 직후부터 시작된 위기 국면과 정리해고 합의까지 계속해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대응은 소위 ‘합리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합리성’은 제한되고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다른 경로를 스스로 봉쇄함으로써 대중저항의 역동성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 갇힌 것이었다.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대단히 특수한 조건이었던 98년 구조조정 당시의 대응양식들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는데 있다.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결과’에 논란이 집중되었을 뿐, 그 ‘과정’은 거의 평가된 바 없다. 이는 98년 투쟁에 대한 활동가들의 ‘침묵’과, 그로 인한 오류의 반복이다. 현대자동차의 활동가 대부분은 ‘무엇’이 ‘왜’ 문제인지를 집단적으로 고민하거나 공유하지 못한 채, 98년의 기억을 개인의 아프디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활동가들은 98년의 투쟁 과정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채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당시 위원장이 마지막 순간에

75) 98년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앞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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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 결정에 대해 ‘어려운 처지에 대한 감정적 동일시’, ‘아쉬움’, 혹은 ‘추상적인 비판’을 가할 뿐이다.98년 투쟁은 해당 시기 한국의 자본의 역량과 노동의 역량이 여실하게 드러난 투쟁이었으며, 그 평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98년 투쟁이 가지는 위상과 그 이후에 미친 영향에 비해, 그것에 대한 평가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안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 안에서도 많이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 속에서 98년의 평가와 반성은 전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서로간의 책임 떠넘기기나 마지막 순간에서의 결정에 대한 논란이 주로 등장했을 뿐이다76).98년에 대한 평가와 반성의 부족은 이후 그 패배의 결과에 따른 현장의 변화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장애물이 되어, 그때와 똑같은 오류들, 즉 ‘양보교섭’과 ‘조합원에 대한 방치’를 계속 반복하게 만들었다.이제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98년 구조조정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자. 먼저 98년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대한 평가 중 동의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98년 투쟁에 대해 크게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 4.2%, 성공도 실패도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37.2%,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이 51.2%이다. 활동가들의 반 정도가 98년 투쟁을 실패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실패의 원인으로는 지도부의 잘못과 민주노총 상층부의 잘못이 비슷한 비율로 나오고 있다.

응답 내용 빈도 퍼센트무응답 33 7.3① 실패 : 지도부잘못(비민주성,투쟁력부족,전술상의 오류 등) 105 23.3② 실패 : 민주노총 상층부 잘못(정리해고수용,전국전선부재..) 102 22.6③ 실패 : 조합원 잘못(집회 소수참여, 사측에 동조 등) 24 5.3④ 성공도 실패도 아님 : 어려운 조건에서 최선 다한 투쟁 75 16.6⑤ 성공도 실패도 아님 : 긍정적, 부정적 측면 모두 존재함 93 20.6⑥ 성공 : 정리해고 최소화 이후 대상자 전원복직 14 3.1⑦ 성공 : 유혈충돌방지와 노동조합 조직 보존 4 0.9⑧ 성공 : 이성적 합의를 통해 일보후퇴 이보전진함 1 0.2합계 451 100.0

표3-1. 98년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대한 평가

다음으로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결과가 현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순서대로 두 가지를 고르도록 하였다. 가장 많은 활동가들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팽배’라는 조합원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으며, 그 뒤로 ‘평생일터 개념이 무너지고’, ‘상시적 고용불안감’이 발생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76) 예컨대 98년 11월 6일 노동조합소식에서 집행부는 집행부 불신임을 주도하고 있는 하나의 현장조직에 대해 그들의 노선이 노사정 위원회에 들어가 정리해고 법제화를 수용한 만큼 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왜’ 패배했는지 보다는 ‘누구 때문에’ 패배했는지가 논쟁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2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발간사에서 “공권력과 대치한 상황에서 ‘정리해고 결사반대’라는 구호 하나만을 외치며 결사항전 했을 때, 저 개인적으로 ‘투사’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피해는 과연 복구가 가능한 것인지 돌아서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는 투쟁주체와 요구 그리고 투쟁의 역동성 등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단지 ‘마지막 순간에 합의를 했어야 했나 하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논의로 국한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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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없어졌다는 것을 지적한 활동가에 비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답한 활동가의 수가 훨씬 적은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들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패배로 인해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진단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고 있다. 당시 집행부의 태도와 활동에 대한 신뢰 문제일 수 있으나, 노동조합 자체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은 아니라는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영향 두번째 영향빈도 퍼센트 빈도 퍼센트

무응답 28 6.2 28 6.2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팽배 148 32.8 54 12.0② 특근,철야 등 초장시간 노동심화 8 1.8 41 9.1③ 노동조합에 대한 믿음,신뢰 깨짐 27 6.0 45 10.0④ 회사에 대한 애사심 없어짐 75 16.6 71 15.7⑤ 평생일터 개념 무너짐 78 17.3 97 21.5⑥ 상시적 고용불안감 51 11.3 65 14.4⑦ 싸워도 안된다는 패배감 5 1.1 9 2.0⑧ 저임금 비정규직의 확대양산 25 5.5 30 6.7⑨ 활동가들의 보수화 6 1.3 11 2.4합계 451 100.0 451 100.0

표3-2. 98년 투쟁의 결과 현장에 미친 영향 (순서대로)

3) 99년 무급휴직자 복귀 전까지의 현장

정리해고 강행 이후 1300여명의 무급휴직자들이 복귀할 때까지인 1년~1년 6개월 동안 현장은 사측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노동강도는 이전보다 엄청나게 증가하였으며,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갈 정도의 엄격한 현장 통제가 이루어졌다. 또한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에게 무보수 특근을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노동조합소식 98.11.24). 현장에 남아있던 조합원들은 어떠한 불만도 표시하지 못 하면서 묵묵히 일만 할 뿐이었다77).77) 이 시기의 현장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글이 있다. “경제위기 이후 배치전환과 노동강도 강화등이 사용자 일방적으로 이루

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예를 보면 고용조정 이후 회사는 인력감축에도 불구하고 기존 생산라인 편성효율을 유지 또는 증대함으로써 대부분 생산부서에 있어서 평균 20%수준의 노동강도 강화를 전제하고 있다. 또 기아차의 경우에는 1998년 생산량은 77만대였다. 그런데 그간 만오천명이 퇴사하여 99년 인원이 약 2/3이 되었는데 생산량은 85만대 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강화된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의 주된 방법은 라인 재배치이다. 예를 들어 생산이 부진한 차종 라인의 인원을 다른 라인으로 추가 투입하면서 동시에 이 라인의 생산량도 늘이는데 이 때 인원투입보다 더 높은 비율로 생산량 증가가 이루어진다. 이 때 노동조합이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에서는 공정조사위원회를 가동하여 노동강도 강화여부를 조사하고 이에 대한 노사협의도 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노사협의회 과정에서 회사 측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회사에서는 과거의 편성효율이 65~70%에 불과했다고 하면서 이것을 90%이상으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을 막으려면 조합원들이 현장투쟁을 하거나 라인을 정지시켜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노동강도가 높아도 새로이 사람이 들어오면 나중에 고용불안의 원천이 될 것을 우려하여 문제제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말에 의하면 노동강도가 상당히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합원의 문제제기는 많지 않다. 현장관리의 강화도 노동강도 강화의 한 요인이다. 기아차에서는 작업장에 개인별 불량상황과 근태가 모두 공개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것이 추후 고용조정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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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발간사] “공장에 살아남은 조합원들도 임금삭감의 고통과 WIN21이라는 현장통제 수단에 의해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숨막히는 압제에 시달렸다.”

대부분 무급휴직을 받았던 활동가들에게 그 1년간의 현장 풍경은 그다지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활동가들은 단지 열악했던 현장이 자신들의 복귀와 함께 일정하게 개선되었고 노동조합의 현장 장악력이 회복되었다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아있던 조합원들에게 그 1년은 결코 그렇게 사소한 기간이 아니다. 이들은 1년여 동안 사측의 통제에 완벽히 순응해야 했으며, 엄청난 노동 강도를 견뎌야 했으며, 어떠한 불만도 제기할 수 없었다.

1년 반 있다가 현장에 들어오니까 의장 컨베이어 타는 사람들이 2시간 30분 동안 화장실을 한번도 못가는 거에요. 98년 이전 같으면 조장을 불러놓고 화장실도 가고 그랬거든요… 저는 현장이 완전히 초토화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조합원들의 의식상태나 현장권력이 어디로 갔는지가 보였던 거지요. (대의원 A-2) 현장이 완전히 무너지고 나니 우리에게 뒤따라 오는 것은 작업편성율을 사측의 의도대로 올리는 것, 현장이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누구하나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한동안 노동운동이라는 자체가 어려웠다. (소위원 K-2)근무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조차 통제받고, 작업장에 의자도 없었고 반장의 거의 왕 수준이었고, 상당히 뭐 휴식시간에 뭐 하는것도 불가능했고… 작업장에서 유인물이나 신문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였고요. 현장에 남아있던 조합원들도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한 듯이 여기고 있었고 조・반장이 한마디 하면 대꾸도 못하고요. (대의원 K-2)

98년 투쟁 당시 동료 조합원들이 투쟁할 때 사측의 회유와 강압으로 인해 산과 들로 야유회를 떠났던 많은 조합원들은78) 투쟁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잃어버린 1년’ 동안을 지내면서 스스로에 대한 정당화와 합리화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활동가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달라진 조합원들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노동조합소식 99년 6월 24일] “지난 고용안정투쟁 이후 현장의 조직력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났고 얼마 남지 않은 활동가들도 무지막지한 탄압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조합원들은 활동가들의 이야기보다 관리자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게 현실이다. 지금 현장의 모습은 대의원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없고 대의원들 또한 자신감의 상실로 현안문제에 나서지 않고 관리자들과 적당한 타협점 찾기에 바쁘다.”

의 기준이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조반장 등 현장관리자로의 승진이 주로 고참순으로 되고 일단 승진이 되면 계쏙 그 지위를 유지한 반면 근래에는 승진도 능력위주이고 임기제이다. 이 때문에 현장관리자들은 그 직위를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회사 측의 지침을 관철하는 데에 매우 적극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고용불안은 기업 내에서의 권력관계를 상당히 변화시켰으며, 자본은 그것을 기반으로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노동통제를 실행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 (정이환, 1999, 경제위기와 한국 노사관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8~29P)

78) 투쟁에 결합했던 조합원과 사측에 의해 동원되었던 조합원간의 갈등은 무급휴직자들의 복귀 이후 드러나게 된다. ▷소위원 K-2 : 98년 이후는 분리되었다. 투쟁했던 동지와 사측에 끌려갔던 동지들 간 한동안 반목하고 회식도 같이 못하는 것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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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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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이후 회사 측에 순응하거나 침묵했던 이들과 그것에 맞서 싸웠던 이들,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의 정신적/물리적 격리는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조합원과 활동가들은 서로 ‘다른 존재’가 되기 시작한다.

3.3.2. ‘고용이데올로기’의 확대 재생산

98년 구조조정 투쟁의 패배로 발생하게 된 ‘고용이데올로기’는 99년부터 시작된 현대자동차의 고속 성장과 무급휴직자 복귀 이후 노동조합의 현장 장악력이 급격한 회복세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고용이데올로기는 오히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재생산되기 시작한다.“직장 다니고 있을 때 많이 벌어두자”라는 심리로 변화된 고용불안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의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된다. 조합원들의 당면 요구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변화시켜내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조합원들의 패배의식과 무력감으로부터 기인하는 실리주의가 오히려 노동조합의 힘을 통해 관철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곧 ‘조합원에 대한 방치’를 의미했다. 99년의 무급휴직자의 복귀와 함께 노동조합의 현장장악력이 회복되었다는 활동가들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으나79), 회복된 노동조합의 힘은 98년 이전의 힘과 그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98년 투쟁에서 정리해고 합의를 추동했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와 ‘피해를 최소화해야한다’라는 ‘양보교섭’의 논리는 계속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소수(비정규직)의 희생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인다거나,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노동조건의 악화를 용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듭되는 양보교섭은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더욱 더 확산시키게 된다. 조합원들은 더욱 더 개별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하면서 노동강도 강화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전체 노동자의 분할과 위계화 전략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조합원들의 변화가 다시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활동 폭과 깊이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1) ‘고용이데올로기’의 제도화- 2000년 완전고용합의서 체결

무급휴직자들의 복귀와 함께 노동조합의 힘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회사 측은 98년 구조조정 강행에 따른 후과에 직면하게 된다. 더 이상 자본의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고, 노동자들의 회사에 대한 귀속감은 이미 허물어져 있다는 점이 사측으로서는 큰 골칫거리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인원이 부족하여 도저히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회사 측으로서는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조

79) 한편 집행부는 현장 장악력 회복과 무급휴직자 복귀의 선후 관계를 이와 다르게 평가한다. “8대 집행부는 출범과 동시에 부당노동행위 사례를 취합하고 현실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했다. 현장통제를 완화시켰고 빼앗긴 임금과 후생복리를 원상회복시켰다. 이로 인해 1년 6개월 무급휴직 받은 조합원들의 조기복직의 계기가 되었으며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회복해 나갔다.” (12차 회계연도 사업 보고서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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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원들의 정서를 달래고, 또 한편으로는 신규 인력을 충원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 집행부는 고용안정을 위해 ‘현실적인’ 혹은 파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노동조합소식, 00.02.25] “노동조합은 구조조정을 위한 3대 원칙을 회사가 수용할 경우 모든 구조조정 협의에 임할 수 있음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노사공동결정의 원칙을 제외한 2가지는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회사와 노동조합 집행부는 ‘완전고용합의서’를 체결하게 된다. 다시는 기존의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하지 않겠다는 합의였다. 그런데 이 합의서에는 노동조합의 양보도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전체 노동자의 16.9%까지는 비정규직 투입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급속한 생산량 증대에 따라 주야맞교대로 매일 10시간 노동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도 특근을 반복하고 있던 2000년의 현실에서도, 조합원들은 언제 또다시 정리해고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회사 측은 바로 이러한 조합원들의 심리를 이용한다. 새로운 인력충원을 비정규직으로 한다면, 이후 정리해고의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기존의 정규직들의 고용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선전하기 시작한 것이다.98년의 패배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하고 개별 기업 차원의 투쟁의 역동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노동조합 집행부80)는 조합원들의 최우선적인 고용안정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측과의 완전고용합80) 이러한 자신감 상실은 집행부가 회사 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대해 맞서 싸우지 못하고 이후 투쟁으로 보류하는 모습에서 잘 드

러난다. 집행부는 구조조정에 맞서 싸운다 하더라도 성과를 얻기 힘들며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현장 장악력에 훼손만 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 하에 집행부는 완전고용합의서 체결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품사업부 반대 투쟁의 예를 살펴보자. 부품 사업부 양도 반대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던 와중에서 ‘회사가 일방적으로 부품사업부 조합원 1,386명중 전적확인서에 서명한 1,299명에 대해 2월 1일부로 현대정공으로 인사발령을 내린 것’에 대해 집행부는 다음과 같은 발언들로 태도표명을 하였다. “회사는 노동조합에 무모한 투쟁을 요구하지만 노동조합은 기존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준비할 것이다. 회사가 자행하고 있는

강제발령사태도 사전에 충분히 감지된 사항이지만 회사는 최대한 자제했어야 한다. 회사 측은 전직발령을 함으로써 현장 제조직이나 조합원들로부터 노동조합의 결단을 촉구하는 공격을 받게 하고, 아울러 노동조합이 기존에 세워놓았던 계획에 혼선을 주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자본의 그런 얄팍한 수에 넘어갈 조합원은 한명도 없으며 노동조합 역시 사측의 비열한 작태에 대해 속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3월말 4월초 총력투쟁에 만반의 준비를 기해나갈 것이다.” (00년 2월 1일 노동조합소식),

“집행부가 부품사업 양도 저지투쟁을 2000년 임투, 413총선, 자동차산업 해외매각저지 등과 연계하여 투쟁한다고 하니 노동조합의 투쟁의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당장 총파업에 돌입하면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지는 싸움이다. 회사는 집행부의 지도력에 타격을 주어 완성차 4사의 공동투쟁 전선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한다. 회사 측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00년 2월 3일 노동조합소식)

“부품사업 양도 관련으로 지금 당장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한다는 것은 사실상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부품사업 양도문제를 포기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집행부가 3월말 4월초로 투쟁을 집중하는 것은 자동차 4사 10만 조합원의 투쟁력으로 합법적인 공간에서 모든 문제를 돌파하자는 것이지 결코 투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00년 2월 11일 노동조합소식)

“현대차의 구조조정은 부품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획되어 있어 노동조합의 대응방법에 변화가 필요하며 시기집중을 통한 전면적인 투쟁을 준비해야한다.” (00년 2월 15일 노동조합소식)

“오늘 구조조정 중단을 위한 노사협의가 열린다. 이것은 양도를 위한 협의가 아니라 중단을 촉구하는 협의가 될 것이다.” (2월 16일 노동조합소식)

한편 집행부에 이러한 모습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가가 존재한다. [의장1부 A조 소위원, 00.06.08 유인물] “부품사업부 양도 등 고용불안의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에게 98년

고용안정투쟁 이후 패배주의를 떨쳐버릴 수 있는 강력한 노동조합의 부활은 절실한 바람이었다… 2000년 단체교섭에서 조합원은 협상팀이 사측과 어떠한 협상을 하는지를 지켜봐야만 하는 관객이었다…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요구하면 어떠한 투쟁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집행부의 2000년 단체교섭은 처음부터 투쟁을 포기한 채 시작됐다. 교섭초기… 기간동안 있었던 유일한 대응은 순환 잔업 거부 뿐이었다… 집행부는 사측의 교섭기피, 불성실한 교섭태도 등을 수없이 비판했지만 그때마다 말뿐인 협박이었으며 사측에게는 전혀 협박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자노동자신문, 00.07.19] “집행부는… 부품사업 정공이관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공언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진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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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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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서의 체결이 조합원들의 고용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하게 된다81).

[실노회 신문, 02.05.09] “2000년… 완전고용합의서가 탄생하는 데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당시… 전 조합원들의 가장 큰 바램은 고용안정이었다. 98년과 같은 사태는… 다시 일어나서 안된다는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완전고용보장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완전고용합의서의 가장 큰 의미는 첫째 다시는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며 둘째 조합원 고용과 관련된 문제는 노사가 공동결정한다는 점이다.”

집행부가 이렇게 판단하게 된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면 98년 구조조정의 패배가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98년 구조조정 투쟁의 패배는 당시 집행부에게 개별 기업 노동조합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을 갖게 하고 이러한 판단은 부품사업부의 양도과정에서처럼 집행과정에서 일관된 ‘투쟁의 보류’로 드러난다. 개별 기업에서 파업을 비롯한 강력한 투쟁으로 대결하기보다는 ‘협상’과 ‘위원회’를 통해 회사 측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자동차 4사와의 공동투쟁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과를 확신할 수 없는 투쟁보다는 안정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집행부는 협상을 통해 제도적 장치를 쟁취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집행부가 고용안정과 동일한 의미라고 보는 ‘구조조정의 3대 원칙’ 쟁취를 사측이 원하는 하청투입 인정과 맞바꾸게 된다.

[13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2000년 임투에서는 고용불안 문제를 종식하기 위해 완전고용보장을 합의하였다.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조여오는 구조조정과 모듈화, 플랫폼 통합, 기아․현대 통합 등으로 발생하는 고용불안을 고용안정위원회에서 사전 정보제공, 노사공동결정, 완전고용보장의 원칙에서 해소시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맞교환은 사측이 원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집행부가 능동적으로 추진한 경향이 있다. 이것은 98년의 패배로 형성되었던 한계를 넘어서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인 고용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물론 실제로 98년 패배 이전에도 비정규직의 비율은 16.9%와 유사한 수준이었다. 또한 3대 원칙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비정규직이 그 이상 확산되지 않을 것이며, 조합원들의 고용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이 역시 ‘합리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맞거래는 머지 않아 사측이 ‘구조조정의 3대 원칙’을 철저히 짓밟아버림으로써, 노동조합에게 어떠한

어 있었고, 조합원들은 집행부를 믿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설사 싸울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3말 4초 투쟁을 준비하고 있던 집행부는 싸움에 나설 마음이 없었다. 99년 임단협에서 집행부에 실망한 조합원들은 구조조정 반대투쟁에서 뭔가 확실히 보여주기를 바랬다. 이런 측면에서… 2월 초에는 전면적인 투쟁이 충분히 가능했다… 4월 23일 경 노사 최고위층이 만난 자리에서 밀도 높은 협의와 대략적인 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같으면 밀실야합이라고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00년 임금교섭 기간 동안 조합원 대중의 투쟁은 예년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잔업거부, 부분파업으로 일관하면서 지도부는 대중의 힘으로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상태였다. 이를 입증해주는 것이 5월 초 쟁의조정신청을 포기한 데서 알수 있다. 이 때 합법적인 투쟁만 준비했더라도 민주노총의 5말 6초 투쟁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럼에도 조정신청을 내지 않은 것은 민주노총의 총파업 일정에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의도 때문이란 분석이다.”

81) 이러한 판단은 집회에서 조합원들에게 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한 말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청투입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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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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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도 남기지 못하게 된다. 계속되는 사측의 원칙 위반에 그 때마다 사과를 얻어내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미래를 여는 노동자회 신문, 00.07.11] “구조조정 3대 원칙은 회사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있다… 그레이스 차종 매각과 관련해서… 공식사과 말 한마디로 무마시키고 있다… 회사 측은 앞으로… 끊임없는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조합에 공식적으로 통보하고 협의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더 이상 노동조합이… 일방적인 구조조정 추진에서 뒷북만 치는 신세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16.9% 가이드라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이 문제라는 입장도 존재한다. 또한 그 당시의 상황적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노회 신문, 02.05.09] “2000년 완전고용합의서가 사내 하청 비율증가의 원인인 것처럼 왜곡되게 해석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한 술 더 떠서 사내 하청투입을 공식 허용했다는 주장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사내 하청비율의 증가는 완전고용합의서에 원인이 있는게 아니라 이를 위반한 회사에 있으며, 또한 지켜내지 못한 노동조합도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00년 완전고용합의서는 사내 하청비율 16.9%라는 상한선 통제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조합원들의 고용보장 장치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공장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사업부 대의원들은 공장 간의 정보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누가 어디서 얼마만큼 투입해서 사내 하청비율 상한선이 초과되는지 알 수도 없으며 통제도 불가능하다. 이를 노동조합 집행부에서… 강력한 통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97년만 하더라도 하청 비율이 16.9%였어요… 99년에… 16.9% 하청투입에 대한 합의를 합니다… 당시는 그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어요. 경기가 나아져서 채용의 필요성이 발생하면 직영을 투입해야한다는 의미였는데, 그 의미가 현장에서 무너진 거죠. M/H 협상을 현장에서 하면서 조합원과 대의원들 동의 하에 무너진 거죠. (대의원 A-3)그 때 의미가 상한선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정규직 이기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외주화되고 하청으로 넘어가는 것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어떻게든 그걸 제한해야겠다고 생각했었고… 그 당시 집행부가 고민 안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비정규직 관련한 고민도 하고 있다… 그 때는 전체 노동계급의 문제나 그런 걸 판단할 여력을 가지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상태가 개별 활동가들의 끈기 있는 활동으로 유지되는 상태였지, 실제로 조직된 힘으로 움직이는 노동조합이 아니었다. 그런 조건에서 또 자신의 고용에 관한 문제를 깊이 있게 고민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도 당시에 반대는 했지만 그런 걸 감안해 줘야 한다. (임원 K-2)16.9%는 잘한 거다 그 이후에 자꾸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은 조합원과 대의원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다보니까 16.9%가 깨진 거다. (임원 C-1)당시 비정규직이 고용조정 이후 무분별하게 들어와 있었고… 심각한 상태였죠. 어떻게든 마지노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대의원 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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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의 여러 열악한 조건들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완전고용합의서 체결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회사 측의 비정규직 도입에 동의하고, 나아가 심지어 그것을 요구하는 비극적 현실을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했다82). 이는 조합원들의 요구에 대해 그것을 전체 노동자의 관점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구에 조응해서 오히려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생각들을 정당화시키고 강화시키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한 최선의 결정’은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83), 조합원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더욱 더 강화시키게 되고, 이후에도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투쟁에 계속 질곡으로 작용하게 된다.이와 같은 완전고용합의서에 대한 현장조직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미래를 여는 노동자회 신문, 00.07.11] “현장의… 6개 조직은 모두 하청투입 반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집행부는… 비정규직 투입을 합의서 내용에 포함시켜 임금, 구조조정 3대원칙, 현안문제 등… 묶어서 조합원 총회에 부쳤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조합원들로부터… 찬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현자노동자신문, 00.07.19] “00년 교섭이 낳은 가장 큰 문제는 완전고용보장 합의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 숨어있는 하청투입의 전면화를 꼽을 수 있다… 노동조합은 사상 초유의 하청투입에 대한 공식 합의라는 오점을 남기게 된다… 연초부터 회사가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비정규직 인력의 채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집행부로서는 하청 투입을 허용하되 현장 조합원으로부터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조합원의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합의서가 있어야 했다… ‘사전정보제공의 원칙’은… 지켜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합의이며, ‘노사공동 결정의 원칙’은… 사실상 회사의 손을 들어준 합의이다. ‘여유인력 발생 시의 조치방안’은… 아무리 직영조합원의 고용이 중요하다 해도… 하청에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를 내보내고 그곳에 현자 노동자를 파견할 수는 없다. ‘고용유지를 위한 노사 상호 협조 사항’은… 단협 33조에 대한 해석을 임의로 바꿈으로써… 오히려 정규인력 충원 시까지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게 됐다.”[노동자의 길, 00.07.21] “지난 임투에서 하청화를 인정하면서 이후 현장은 상당히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M/H 협상과정에서 부족인원은 하청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대의원과 소위원간의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지난 임투 과정에서 이미 이러한 문제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집행부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고 직영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하청 투입을 인정한 것이다… 16.9%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업부나 지부별 혼란 없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노동자의 길, 02.05.07] “16.9%의 기준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하청비율의 차이가 천차만별로 나타나고 있으며 심각한 경우는 이미 50%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3공장의 경우는 모듈화 도입과 함께 신규인원

82) 물론 이것이 당시 집행부가 의도적으로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으로 사용하고자 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3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서 “이제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은 한계에 봉착했다. 8대 집행부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노사협의회 구성 등 낮은 단계부터 시작했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소외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당시 집행부 역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사내 협력업체 처우 개선 관련 노사협의는 가시적인 성과가 발생하고 있다. 집행부의 기본원칙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상회할 수 있도록 처우개선을 하고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점진적으로 조직화를 진행시킬 예정이다. 현재 사내협력업체 처우는 직영기준 84% 수준이며 이번 재조정으로 87% 수준으로 맞추고 2001년 재조정으로 90%까지 맞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들의 결정으로 인해 그러한 고민이 정규직의 고용안정 확보에 의해 후순위로 밀려났으며, 훗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가 정면으로 대치되는 결과를 낳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83) 분명한 것은 당시 집행부 시절에 무급휴직자와 정리해고자, 징계해고자, 그리고 식당 아주머니들의 복직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징계해고자와 특히 식당아주머니들의 복직은 해당 주체들의 치열한 투쟁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투쟁 과정에서 집행부와 이 주체들의 관계는 갈등과 협력과 대립의 관계를 넘나들게 된다. 이처럼 최소한 정규직에 한해서는 당시 집행부는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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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원 없는 전환 배치와 하청투입으로 일관… 하면서 더욱 하청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사측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함께 일하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그 공정을 점차 외주화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완전고용합의서 체결 2년이 지난 지금…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노동조합이나 활동가들이 현대자동차의 일시적 호황이나 하청투입에 대한 조합원들의 선호를 이유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이다. 정규직 중심의 사고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노동조합과 활동가들 스스로 매몰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하청투입의 합의는 이 시기 집중되었던 ‘신차투입’과 ‘UPH 상승’, ‘모듈화・외주화’의 시작과 맞물리고, 대의원들의 M/H 대응에 대한 미숙, 구조조정 대응에서의 집행부와 대의원 간의 체계 불안정과 맞물려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한편 98년의 고용위기를 낳게 한 원인이 신자유주의이며 그것은 초국적 자본의 수탈로 기인한다고 판단하게 된 집행부는, 특히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의 해외매각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게 된다. 집행부는 ‘대우자동차가 해외 매각되면 현대자동차가 망한다’라고 판단하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대우자동차의 해외 매각을 막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현대자동차 자본이 역대 최고의 순이익과 실적을 기록하고 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98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집행부는 회사 발전에 대한 끊임없는 기대와 우려를 갖게 되고, 이는 회사의 민주적 운영을 요구하는 것과 함께 도요타 자동차의 예를 들면서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84). 당시 집행부가 투쟁으로 인한 ‘대립적 노사관계’를 회피하고 ‘대등한 노사관계’를 추구하는 노선을 가지게 된 것은, 이처럼 현대자본의 발전이 곧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직결된다는 관점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것은 대우차 해외 매각 문제나 부품사업부 매각 문제에 있어 지속적으로 사측에게 회사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경영참가에 대한 의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집행부는 경영참가를 통한 고용안정을 모색하고85), 이러한 경영참가의 중요 기제로서 우리사주 조합을 제시한다.

[12차 사업보고서] “99년도 단협요구안은 정리해고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우리사주제 등 간접적인 경영참가를 통한 고용안정에 역점을 두었다.” [노동조합소식 99.11.16] “우리사주의 보유가 경영참여를 위해 꼭 필요하다.”

84) 한편 도요타 자동차를 모범 사례로 제시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이후 종종 등장하게 된다. [5공장 대의원회, 03.02.19] “일본 도요타의 회장은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은 최대죄악이라고 하였다… 도요타의 불가사의한 경쟁

력의 해답은 종업원에 대한 안정적인 고용보장과 안정적인 임금보장에 있다… 회사는 기업경영의 목적을 도요타와 같이 바꿔라. ‘인간존중이념’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모습을 띠는 시장경제의 실현’으로.”

85) 집행부를 배출했던 현장조직은 이러한 관점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실노회 신문, 03.04.09] “노동조합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공동화 현상 및 고용안정에 위협 요인을 제기하는 해외자본이동에 대한

노사합의를 03년 임단투에서 중요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책임질 단협을 쟁취하는 일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또 합의서를 위반할 경우 책임을 묻는 조항도 꼭 삽입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경영참여를 통한 고용안정확보가 최선의 방법이다.”

[실노회 신문, 04.04.28]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는 해외공장 생산으로 인한 고용의 절대적 불안 요소에 대한 해결책이며 노사공동발전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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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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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완전고용합의서 등에서 드러나는 집행부의 한계는 단순히 집행부 차원의 한계가 아니며, 당시의 객관적 노자간의 힘 관계와 운동진영 역량의 한계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IMF를 겪은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던 시기에,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이루어지고 폭압적인 탄압이 자행되는 정세 속에서, 노동조합의 공식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1,300여 명의 부품사업부 조합원 중 1,200여명의 조합원이 동의서를 작성하는 정서 속에서, 노동조합의 6개월에 걸친 교섭 요구 끝에야 겨우 사측이 교섭에 응하고 제시안을 받아볼 수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투쟁이 조직력 붕괴를 야기할 지 모른다는 판단은 충분히 가능하며, 충분히 ‘합리적’이다.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조건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집행부의 한계는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조합원들의 ‘고용이데올로기’로 유발된 잘못된 요구를 활동가들이 오히려 능동적으로 제도화하고 고착화시킨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현장의 엄청난 변화로 드러나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한계는 깊이 있는 평가나 반성 없이,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이 시기의 대응 양식은 이후 집행부들 뿐 아니라 (특히) 대의원들의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완전고용합의서의 체결이 당시 집행부만의 한계가 아니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 전체의 한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고용합의서에 대한 활동가들의 설문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완전고용합의서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았다. 완전고용합의서에 대해 70% 가까운 활동가들이 그 당시에도 찬성했고 지금도 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많은 활동가들은 완전고용합의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그것을 반대하고 있는 활동가는 18.7% 정도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응답 내용 빈도(명) 백분율(%)무응답 51 11.3① 그 당시 찬성, 지금도 찬성함 308 68.3② 그 당시 찬성, 지금은 반대함 49 10.9③ 그 당시 반대, 지금은 찬성함 8 1.8④ 그 당시 반대, 지금도 반대함 35 7.8합계 451 100.0

표3-3. 완전고용합의서에 대한 입장

다음으로 비정규직 16.9% 가이드라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 당시 가이드라인에 대해 반대한 활동가는 25.7%임을 알 수 있다. 그 외의 활동가들은 찬성하거나 혹은 별 다른 입장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가이드라인은 비정규직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본 활동가가 17.1%이고 ‘상한선’인 점을 지적하는 활동가가 9.3%인 것이다. 이것은 활동가들이 16.9% 가이드라인에 대해 ‘하청 투입을 합의함으로써 비정규직 양산을 야기했다’는 평가와 다른 의미로 평가하고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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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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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내용 빈도(명) 백분율(%)무응답 28 6.2① 조합원 고용 지킬 수 있는 완충장치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음 91 20.2② 상한선이었기에 정규직 이기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42 9.3③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강력히 반대했다 116 25.7④ 비정규직 확산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77 17.1⑤ 조합원들의 고용 위해 그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2 9.3⑥ 심각한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55 12.2합계 451 100.0

표3-4. 비정규직 16.9% 가이드라인에 대한 입장

다음으로 16.9% 가이드라인에 의해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는지를 질문하였다. 86.2%의 활동가들이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에 답한 것으로 볼 때, 16.9% 가이드라인이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확대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빈도(명) 백분율(%) 유효백분율(%) 누적백분율(%)

유효

① 매우 그렇다 177 39.2 41.5 41.5② 그렇다 191 42.4 44.7 86.2③ 그저 그렇다 22 4.9 5.2 91.3④ 아니다 30 6.7 7.0 98.4⑤ 전혀 아니다 7 1.6 1.6 100.0합계 427 94.7 100.0

결측 24 5.3합계 451 100.0

표3-5. 16.9% 비정규직 가이드라인에 의해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는가

다음으로 16.9% 가이드라인이 문제가 된 것은 그 선을 지키지 못한 대의원 책임인지를 물었다. 16.9% 합의로 인해 비정규직이 확대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였을까? 크게는 완전고용합의서의 본질적 문제, 그리고 이를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활동가들의 54.2%는 본질적 문제보다는 그것을 적용하는 대의원의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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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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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명) 백분율(%) 유효백분율(%) 누적백분율(%)

유효

① 매우 그렇다 74 16.4 17.5 17.5② 그렇다 156 34.6 36.8 54.2③ 그저 그렇다 74 16.4 17.5 71.7④ 아니다 98 21.7 23.1 94.8⑤ 전혀 아니다 22 4.9 5.2 100.0합계 424 94.0 100.0

결측 27 6.0합계 451 100.0

표3-6. 16.9% 비정규직 가이드라인이 문제가 된 것은 대의원 책임인가

다음으로 16.9%가이드라인 이후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생각하게 되었냐는 질문이다. 59.9%의 활동가가 16.9% 가이드 라인 이후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빈도(명) 백분율(%) 유효백분율(%) 누적백분율(%)

유효

① 매우 그렇다 84 18.6 19.8 19.8② 그렇다 170 37.7 40.1 59.9③ 그저 그렇다 52 11.5 12.3 72.2④ 아니다 79 17.5 18.6 90.8⑤ 전혀 아니다 39 8.6 9.2 100.0합계 424 94.0 100.0

결측 27 6.0합계 451 100.0

표3-7. 16.9% 비정규직 가이드라인 이후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생각하게 되었는가

2)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경향적 특징

완전고용합의서를 이끈 집행부의 집행 과정에서 드러났던 경향은 이후에 활동의 기조와 태도, 그리고 방안 등을 일정하게 달리하는 두 집행부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완전고용합의서를 이끈 집행부의 특징은 98년 구조조정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공통적인 특징이 된다. 앞서 ‘고용이데올로기에 의한 현장의 변화’에서 살펴보았던 여러 현상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지속되고 발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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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집행부는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가장 중요시하고, 조합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에 활동의 중점을 둔다. 그 결과, 고용만 보장된다면 사측의 구조조정 요구와 계획에 대해 가급적 충돌을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발생한다. 둘째, 회사의 발전 혹은 물량의 증가만이 현실적으로 조합원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이후 회사의 안정과 발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로 인해 예컨대 회사의 생산량 증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응을 안 하거나, 못하게 된다.셋째, 조합원 대중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 투쟁이 아니라 활동가들의 고립된 투쟁이 등장한다86). 투쟁에 있어서 활동가들과 조합원의 분리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집행부들이 투쟁을 계획하고 집행하는데 있어 커다란 제약으로 작용하게 된다.넷째, 개별 기업 노동조합의 힘으로는 구조조정을 막거나 현대자본과의 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개별 기업 노동조합 차원을 넘어설 수 있는 완성차 공동투쟁, 산별노동조합과 정치세력화, 사회공헌기금 등 다른 경로를 모색한다. 다섯째, 구조조정 사안에서 경영 참가, 노사공동위, 노사 공동결정, 단협 상의 합의 문구 삽입 등 회사와의 협상을 통해 노동조합의 권익을 확보하고자 한다. 여섯째, 성과급이 커다란 쟁점이 되고 성과급 요구 투쟁이 주요하게 배치된다. 특히 당시 집행부의 성과급 요구 원칙인 순이익의 3:3:4 원칙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과급 요구의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의 모든 집행부가 이 원칙에 의거해 요구하고, 모든 현장조직이 이 원칙에 의거해 집행부를 비판하게 된다.일곱째, 집행부의 역할과 대의원의 역할 사이에서 혼선이 발생하게 된다. 98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각종 구조조정에 대처하는데 있어, 대응의 두 축인 집행부와 대의원은 유기적인 체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구조조정 대응에서의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게 된다.이처럼 98년 이후 2000년까지의 시기는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패턴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98년 투쟁의 패배와 노동운동의 공백기라는 명백한 한계 속에서, 노동조합을 재건하고 노동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였다. 98년을 계기로 많은 것들이 달리진 조건 속에서, 활동의 방식들을 새로이 만들어나가는 시기였다. 이때부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은 이전과는 많은 지점에서 달라진 경향들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이후의 노동조합 운동은 이 시기에 굳어진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86) 이후의 여러 집행부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5공장 대의원회. 02.04.12] “투쟁의 주체인 조합원의 요구가 결여된 목표는 현장의 주체적 투쟁동력을 조직하는데 한계가 있다.

조합원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요구안을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마무리 단계에서 임금인상효과만 가지고 투쟁의 성과로 오판하고 중요한 요구와 목표는 쉽게 정리해버리는 실수를 반복해왔다… 조합원들의 수동적인 자세는 투쟁의 파괴력을 반감하고 사측의 분열공세에 쉽게 조직력이 와해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02년 임투 승리를 위해 분임토의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

[5공장 대의원회. 02.04.16] “본임토의는 노동조합 활동에 있어 가장 민주적인 절차이며 요구와 책임을 조합원 전체가 함께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같이 투쟁하고 성과를 같이 나누자는 요구는 조합원들의 의식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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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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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반신자유주의 전선 형성의 시도와 좌절 - ‘고용이데올로기’에 대한 직접적 해결 모색과 그 실패

98년 정리해고 합의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2000년 완전고용합의서 체결에도 강하게 반대했던 현장조직이 다음 노동조합 집행부를 맡게 된다. 현대자동차 내의 많은 현장조직 중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좌파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이 현장조직은 투쟁을 통해 패배감과 무력감을 떨쳐버리고 반복되는 양보교섭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울산 화섬 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계기로 촉발된 전국적인 투쟁에서 집행부는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할 것을 밝힌다. 전국적 차원의 계급투쟁의 전선 구축을 통해 신자유주의 공세를 막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가지는 위상으로 인해 이 집행부의 연대 총파업 결정은 민주노총 전체 투쟁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집행부는 민주노총 연대 총파업을 예정일 하루 전에 철회하고 만다. 현장의 조합원들의 동의가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정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통합사업부 소위원회. 01.07.04] “어제 투쟁지침을 확정한다며 소집된 확대운영위에서는 파업에 돌입하는 사업장이 얼마 안될 것 같다는 이유로 우리도 총파업을 할수 없다거나 부분파업으로 전환하자, 위원장에게 위임하자 등 난상토론만 벌이다… 휴회하였다고 한다… 집행부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보궐선거에서 현 집행부를 지지했던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운동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서 당당히 투쟁하는 집행부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제 확대운영위는 애정을 갖고 지켜보던 조합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승용2공장 대의원회. 01.07.05] “이번 현자노동조합의 행동은 분명 전국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현자노동조합의 총파업 철회 결정은 7월 총력투쟁에 큰 동력 손실이고 끊임없이 정부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민주노총에 대한 치명적 손상인 것이다… 통합 임단투에 대한 임기 때문에 이번 7월 5일 투쟁의 수위를 낮췄다는 것은 참으로 어설픈 변명이다.”[기명 활동가 30명, 01.07.12] “6월 21일 임시대대에서… 대의원 동지들의 만장일치 쟁발 결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7월 4일 확대운영위의 총파업 철회 결정은 조합원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노동조합의 기강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중대한 사건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총파업 철회 후 엄청난 혼란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집행부를 비롯해 총파업철회를 주도한 운영위원들은 한마디 공개사과 조차 없이 ‘조합원들의 정서’, ‘내부의 현실적 조건을 감안한 선택’이라며 모든 책임을 조합원에게 떠넘기며 총파업 철회를 정당화하고 있다… 집행부가 지금도 통합 임단투만을 말하는 것은 지금도 민주노총 총력투쟁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명백하다.”

당시 집행부는 이전 집행부와 정치적 성향이 크게 달랐지만, 7・5 총파업 철회의 논리에서는 이전 집행부들과의 공통점이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철회의 이유는 첫 번째로 전국에서 총파업을 수행하는 사업장이 현대자동차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는 점과, 두 번째로 투쟁으로 인해 노동조합의 공백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였다. 또한 세 번째로 총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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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철회는 통합 임단협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87). 이러한 관점은 정리해고 합의를 받아들였던 관점이나 부품사업부 이관을 방관했던 관점과 동일하다. 개별 기업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한계를 강조하고, 투쟁으로 인한 조직 붕괴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활동가들의 공통적인 자신감 상실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집행부에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중심에 둔 통합 임단투이고 현장 동력론이었으며, 총파업은 이를 위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물론 당시의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에게 있어, 전체 노동자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 특히나 무엇보다 ‘파업’을 벌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그것은 98년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 당시 별다른 연대 없이 고립되어 싸워야만 했던 경험88)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힘든 현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집행부는 파업 결정을 내렸을 뿐, 그 파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여내지 못했다는 점은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을 조직하기 위한 정면돌파를 기피하였다. 따라서 조합원들의 변화를 전제하거나 이끌어내기 위한 총파업투쟁 참여철회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터다.IMF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체 노동자들은 계속되는 희생과 양보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이는 경제의 실물 지표는 급격히 호전되고 있었음에도 민중들의 생존권은 더욱 더 위협받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바꿔야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위한 계기를 찾아내는 것은 모두들 실패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운동 전체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98년 이후 최초로 벌어질 수 있었던, 신자유주의라는 ‘주어진 조건’ 자체를 반대하는 전국적 투쟁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또한 현대자동차 현장에서 한편으로 제도화되고 한편으로 내면화되고 있던 ‘고용이데올로기’를 변화시켜낼 수 있는 계기로서 전국적 투쟁전선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회한을 단지 몇몇의 활동가들에 의한 비판과 반성으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무겁다89).그러나 결국 총파업의 철회로 인해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길, 완전고용합의서가 추구하던 고용안정이라는 목표는 같았지만, 그것을 획득하는 길은 완전히 달랐던 해결방안 모색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에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에서 이러한 다른 길에 대한 모색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이는 연대투쟁과 계급적 실천을 강조하던 활동가 집단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으로,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고용문제에 있어서 투쟁을 외치는 활동가들도 신뢰하기 힘들다고 여기게 하는 악영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7・5 연대 총파업 철회에 대한 활동가들의 생각을 알아보자. 먼저 2001년 7・5 민주노총 연대 총파업 철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다. 49.4%의 활동가들이 총파업이 필요하며, 했어야 했다라고 답하고 있고, 17.5%의 활동가들은 총파업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하기로 약속한 것인 만큼 약

87) 집행부는 통합 임단협을 통해 단협의 ‘협의’ 문구를 ‘합의’ 문구로 개정하는데 주력했다. “통합 임단투를 통해 여러 가지 구조조정 관련된 내용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사측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14차 사업보고서)

88)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주체적 행위에 대한 평가가 부재한 상태에서 ‘왜곡되고 불충분한’ 경험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 이전까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 미흡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집행부가 연대투쟁이나 전국전선 형성에 있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89) 물론 당연하게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먼저 선도적으로 투쟁했다고 가정한다 할지라도, 그 총파업이 반드시 전국적인 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총파업 철회 역시 ‘합리적’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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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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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지켰어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한편 20.6%의 활동가들은 철회를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어려움을 답하고 있다.

응답 내용 빈도(명) 백분율(%)무응답 51 11.3① 총파업은 전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에 철회는 잘못이다 223 49.4② 총파업에 동의하지 않지만, 한번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79 17.5③ 총파업 결정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총파업 철회는 어쩔수 없었다. 93 20.6④ 총파업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철회한 것은 잘한 것이다 5 1.1합계 451 100.0

표3-8. 7・5 민주노총 연대총파업 철회에 대한 평가

다음으로 일반적인 민주노총 차원의 파업이나 연대 투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민주노총의 파업이나 연대투쟁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답한 활동가가 53.7%이고, 조합원의 정서에 따라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고 답한 활동가가 29%로서, 최소한 절반이 넘는 활동가가 민주노총 파업이나 연대 투쟁에 대한 참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응답 내용 빈도 퍼센트무응답 29 6.4①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242 53.7② 조합원들의 정서를 알아본 후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131 29.0③ 현실적으로 개별 노동조합이 그러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힘들다 36 8.0④ 그러한 연대투쟁은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참여해서는 안된다 11 2.4누락 2 0.4합계 451 100.0

표3-9. 민주노총의 파업이나 연대투쟁에 대한 의견

3.3.4. ‘고용이데올로기’의 우회적 해결 모색과 실패

‘고용이데올로기’로 인한 조합원과 활동가들의 변화는 노동조합의 현장 장악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가져오게 된다.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는 계속해서 커져갔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의 여러 현장조직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활동가 모두에게 있어 현장의 변화는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였다. 역대 집행부들 또한 이러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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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변화시켜내고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그러나 이 방안들은 ‘고용이데올로기’를 없애거나 감소시키는데 실패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에서 ‘고용이데올로기’로 개념화한 현상들에 대해 역대 집행부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집행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현장의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된 상태였으며, 제시된 해결책들은 그러한 악화된 현장을 개선하는데 별다른 효과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은 현장 바깥의 어떤 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고 기다렸을 뿐, 그 해결책 속에서 활동가들 스스로의 역할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또한 한편으로 그러한 해결책의 실패는 이미 ‘제도화’되고 ‘내면화’ 되어버린 ‘고용이데올로기’ 의 커다란 영향력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1) 2002-2003년 산별 전환 추진과 실패

당시 집행부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당면한 문제점들을 기업별 노동조합에서 산별 노동조합으로 전환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하였다. 집행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고령화 문제,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 과로사 문제 등 해당시기 거의 모든 당면 과제들의 대안으로 산별노동조합을 주장하고, 조합원들에게 산별노동조합으로 전환하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했으며, 실제로 산별노동조합 전환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집행부가 산별을 주장한 이유는 기존의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에서는 위와 같은 당면 과제들을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6차 사업보고서] “산별노동조합은… 거시경제정책에 대항하고 반노동자정책을 저지할 수 있는 조직력과 교섭력, 그리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급적인 노동자들의 조직체이다… 현자노동조합의 기업별 형태가 조합원들의 고용안정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제는 단일노동조합에서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이처럼 집행부가 산별 노동조합으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특히 98년 투쟁의 패배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산별노동조합이 아니라 기업별 노동조합이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90). 이러한 산별노동조합 전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현장조직은 없다.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현장조직들의 풍토로서는 매우 이례적이게도 모든 현장조직이 방법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산별전환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였다. 예전에 간혹 관점에 따라 어용으로 평가받기도 했던 조직을 모태로 하고 있는 실리주의적 노동운동 노선을 가진 현장조직 역시 산별노동조합 전환에 찬성 입장을 밝힌

90) 특히 3개 현장조직이 하나의 현장조직으로 합쳐져서 건설된 집행부에는 7대 집행부를 지냈던 현장조직이 속해있었고, 10대 집행부의 98년 투쟁 평가에는 이들의 관점이 많이 반영되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7대 집행부는 12차 사업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 적이 있다. “산별노동조합으로 전환해야할 당위성과 필요성이 노동계 안팎에서 요구되고 있다. ‘거대노동조합 건설’과 ‘정교한 의사소통 구조 건설’의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99년 임단협에서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고, 동시에 고용을 보장받음과 함께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고용안정 관련 협약 내용을 강화하고, 고용안정 기금을 조성하여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것과 대폭적인 권한을 산별노동조합으로 이양하는 방법을 찾는 길 뿐이다.”,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노동의 대응은 기존의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 “현재의 노사관계에서는 어떤 기업별 노동조합도 견딜수없다. 98년 투쟁에서 확인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한계이다.”

한편 14차 사업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난 시절 뼈저리게 느꼈던 단위노동조합의 한계성을 극복할수 있는 산별노동조합 건설,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조합원의 권익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 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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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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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91).

[노연투 신문. 03.06.16] “산별노동조합은… 기업별 노동조합체계에서 임금, 후생복지, 노동조건, 노동통제 대응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는 계급적 단결로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임금과 고용, 복지를 지향하는 노동조합 체계가 바로 산별노동조합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조합원 총회에서 산별 전환이 부결됨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고, 2년여 동안 집행부가 집중한 사안이 수포로 돌아감에 따라, 결과적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진전에 별다른 기여를 못하게 된다92).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산별 전환이 가결되었느냐 부결되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설령 산별전환이 가결되었다 하더라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갖고 있던 문제점들이 모두 해결될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성격 변화의 과정과 문제점의 원인을 지적하지 않은 채, 또한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산별전환만을 꾀하는 것은 구성원들은 그대로 둔 채 노동조합의 조직형식과 체계만을 바꾸는 것에 불과했다. 산별 전환은 분명 지향해야할 방향이며, 노동조합의 조직형식과 체계 변화는 분명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기업별 노동조합에서 산별 노동조합으로 변화한다면, 조직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운동 진영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용이데올로기’에 대한 어떠한 대응책도 제시할 수 없었다. 조합원과 활동가 모두에게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았던 고용이데올로기 문제’는 노동조합 조직 형식과 체계 변화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집행부가 산별 전환에 집중하기 위해 현장에서의 쟁점 사안들에 개입하는 것을 보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입의 방식에서도 이제까지 사측의 위반과 무시로 인해 계속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던 노사공동위나 노사협의회를 통해 쟁점 사안들을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해당 시기 계속해서 발생하였던 구조조정 쟁점들에 대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대응을 하기보다는, ‘산별로 가면 해결할 수 있다’고, ‘산별로 가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집행부의 구조조정 대응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다.

[15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하도급 및 용역, 신기술 및 공장 이전등으로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조합원의 장기적 고용안정을 유지시키기 위한 노사공동위원회 활동, 하청비율 기준 마련을 위한 노사특별위원회 활동을 추진한다.”

91) 물론 산별 추진에 있어 방법상의 차이점들은 존재하고 있다. [자주노동자 신문, 03.05.29] “제조직의 입장은 몇가지로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모든 활동가들이 산별노동조합 전환을 주장하면

서도 의견통일이 안되는 이유는 조직형태와 조직체계 등이다.”92) 03년 임단투의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함께 치러진 산별노동조합 전환문제는 노동조합 역사상 가장 낮은 쟁의행위 찬성률(전체 대

비 54.8%)과 함께 산별전환도 62% 찬성에 그침으로써 부결된다. 그러나 산별 전환을 찬성한 조합원이 60%가 넘으며, 약 1600여명의 조합원들만 더 찬성을 했다면 전환이 가능했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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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중요한 것은 신제품 개발이든 물량 이관이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조사와 정책진단이 있을 때만이 혼란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향후 사안에 따른 ‘초기 정보제공원칙’ 준수를 더욱 강력히 요구하여 사업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향후 발생될 문제에 대해 사전에 보완하고 간담회 등을 통한 대책 수립을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러한 대응 방향은 고용안정합의서를 이끈 집행부의 구조조정 3대 원칙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사점은 구체적인 대응 양상에서도 드러나게 된다. 예컨대 경차아웃소싱과 해외공장 설립과 같은 구조조정 사안들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경영참여 등을 통해 노사 대등한 공동결정’을 모색하고 있다93). 이와 같은 대응 방식의 결과에 대해 집행부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16차 사업보고서] “자본의 해외이동으로 인하여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단협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전반적으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에 주된 목표를 두어 일정부분 쟁취하였다.”

이와 같은 대응 방식에 대해서는 3대 구조조정 원칙의 충실한 실행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평가와 무대응과 무기력을 비판하는 부정적 평가가 존재한다.

[의장 1부 소위원회, 01.12.13] “우리는 이번 임단협에서 구조조정 관련 협의를 반드시 합의로 쟁취해야 한다. 사측은… 구조조정 심의의결 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번 임단협에서 사활을 걸고 합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확실히 확보하여 더 이상 고용불안의 근원을 없애자는 데 있다… 집행부는 심의 의결이라는 문구 수정이 아니라 합의 문구 쟁취를 해야한다.” [5공장 대의원회, 02.04.16] “미국 현지공장과… 플랫폼 통합과 모듈화… 아스토와 비스토를 위탁생산, 5공장의 TN카 투입, 공장합리화 공사합의 불이행 등 사측의 일방적인 생산방식과 구조조정은…고용불안과 이윤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경영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체협약 20조는 노동조합의 요구로 사측은 자료를 제공하도록 되어있다. 집행부는 자료공개를 요구하고, 공개된 자료를…면밀히 분석하여… 고용보장과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의 길, 02.05.07] “회사 측은… 미국 앨리배마 공장과 중국 현지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집행부의 이해할수 없는 침묵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단체협약 29조 2항… 지키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통보받고 동의를 해준 것인가?”[자주 노동자 신문, 03.05.29] “공작사업부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은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고 고용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에 대한 대중투쟁이다… 집행부는 사측의… 구조조

93) 집행부는 공동결정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6차 사업보고서] “현대차 그룹이 승승장구 발전한다는데 노동조합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현대차그룹의 해외 현

지공장 신설과 기존 해외공장 증설은 향후 국내 자동차산업의 심각한 고용불안과 공장폐쇄 등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해외 등 자본이동에 대해 노사간 공동결정을 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조합원들의 고용과 직결되어 있고, 국내 자동차산업의 공동화를 자초할 위험에 대비하여 노동조합이 해외투장에 대해 개입하고 통제권 확보가 필요하다… 회사의 일방적인 해외투자에 따른 자본이동에 대한 노동조합 차원의 개입과 통제권을 단체협약 내지 특별협약을 통해 반드시 확보해야한다. 2003년 임단투에서 요구된 특별협약에는 많은 부문에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있지만, 향후 해외공장 차종투입, 투자금액 결정, 이익분배금 등에 대한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보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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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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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정책에 대해 투쟁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고 미온적인 자세와 대처로 일관했다. 사측이 단협(5조,19조,20조,28조,29조)을 정면으로 위반했고… 03년 임단투 한가운데 도발적으로 18차 19차 노사공동위원회의 합의사항을 파기했다.”[4공장 소위원회, 03.07.24] “05년이면 해외공장이 본격 가동된다. 국내 공장은 내수만 담당하면 되는 공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며, 향후 물량부족으로 조합원들 고용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된다… 03년 임단투의 핵심인 자본이동・경영권 이동에 대한 노사공동 결정 확보 없이는 투쟁이 종결되어서는 안된다. 죽어도 노사 공동결정 쟁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용을 보장하는 길이요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사수하는 길임을 모두들 알아야 한다.”

한편 당시 집행부에 이르러 집행부와 대의원 체계상의 문제가 구체화 된다. 집행부의 방침을 해당 대의원이 따르지 않거나 정면으로 위반하는 사례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집행부는 ‘신규인원 투입 시에는 정규직으로 충원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세우지만 이러한 원칙은 현장에서 강제되지 않고 해당 대의원의 독자적 판단에 맡겨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잇따른 과로사로 인해 집행부는 일요일 특근 거부 지침을 내리지만, 이 역시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현장에서 사측의 영향력을 계속 커지고 있었다. 특히 역대 최저의 쟁위 행위 찬성률은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한편 이러한 현상의 원인과 관련한 지적들이 이미 02년부터 제기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승용3공장 소위원회, 02.06.04] “협상에만 매몰되어 조합원의 동력을 끌어내기 위한 투쟁전술이 부족하다… 지금까지의 투쟁을 살펴보면 본관집회, 대소위원 출근투쟁 몇 차례가 고작이다… 중앙 쟁대위에서는 투쟁수위를 높여서 잔업거부를 기본으로… 조합원이 주체가 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실노회 신문, 02.07.05] “회사가 갖은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있다. 올해 단체교섭… 찬반 결과가 나온 직후 회사는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표결 결과 찬성률이 가장 저조한 3공장장과 지원3팀장을 해임시켰다. 그리고 찬성률 1위를 기록한 시트공장장을 승진시켰다… 현장 노무담당자들이 목숨을 걸고 설쳐대고 이들의 영향력이 우세한 사업부의 가결률이 높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민노투 신문, 03.03.12] “ 이번의 노동탄압 분쇄를 위한 쟁위 행위 찬반투표에서 보여준 사측의 행위는 자주권 침해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임금협약 관련 총회 이후 상대적으로 높은 쟁위행위 찬성으로 인해 부서장이 경질될 게 계기가 되어 나타나는 이러한 회사 도발은…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노동조합의 대의원마저 회사에서 지명하는 자만이 당선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수 있다.”[노연투 신문, 03.06.30] “첫째, 03년 임단투 결렬에 따른 조합원 찬반투표가 최악의 사태에 이른 것은 사측의 노골적인 총회 개입과 더불어 집행부의 투쟁전술에도 문제가 있었다. 투쟁의 주체인 조합원들이 투쟁의 목적의식을 정립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이 충분치 못했다. 여기에 집행부는 그저 틀에 박힌 일정 속에 조합원의 공감대 형성없이 총회로 가져갔다. 둘째, 산별노동조합 건설은 당초 심한 인식의 편차가 발생했다. 내부적 입장정리도 없이 그저 가고 나서 문제점은 보완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작금의 상황은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만만치 않다. 여기에 보수언론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징후가 03투쟁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산별전환 투표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저조한 찬성률의 주 이유는 요구안에 대한 교섭 과정의 쟁점화 미흡, 시간에 쫓기는 쟁대위 지침이 한 몫을 했다는 평가가 있다. 사측의 대응은 준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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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로 다가오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보편화되어있던 관리자에 대한 업무 로테이션이 지금은 없어서 인간적인 대면이 이어지고 있다. 소위 십수 년을 함게 생활하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측의 관리자들이 며칠씩 퇴근하지 않고 이념공세를 펼친다면 노동조합의 간부는 더욱 더 열심히 현장을 누비는 대응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실노회 신문, 03.08.13] “03년 임단투는 3개의 진기록을 세우며 마무리되었다… 쟁위행위 찬반투표가 사상 최저치인 60.54%로 통과되고… 임단협만을 갖고 장장 3개월 보름간의 투쟁을 했으며… 잠정합의에 대한 찬성은… 80.2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연투 신문, 03.08.14] “03년 임단투가 시작되기 전에 사측은 충분한 재고 물량을 빼돌리면서 비축했고, 순환파업 등의 부분파업이 진행됐지만, 결국에는 재고만 소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힘있고 위력있는 파업투쟁은 한 번도 못하면서 그저 생색에 불과한 투쟁에 일관한 나머지 조합원들은 지루한 파업투쟁에 식상해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긴장감을 찾아 볼수가 없었고 주변 사업장 수준으로 빨리만 끝나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지도부는 뭔가 돌파구를 뚫기 위하여 적극적인 투쟁전술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집행부는 조직력을 배가시키는 파업투쟁이 아닌 형식적인 파업을 배치하면서 조직력은 급속히 저하된 경우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년 조합원 참정권 행사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측의 투표 개입을 차단하도록 해야한다. 즉 투・개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노동의 희망, 03.11.05] “임단투의 가장 큰 목표는 대중을 일상적으로 투쟁하고 강화 단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자노동조합은 수년간 그 훈련을 게을리 했음을 몇 번의 조합원 총회결과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조직된 정규직의 투쟁이란 없고 오로지 위원장의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천해야할 투쟁조차도 신분보장을 이유로 회피하며… 일부 대의원은 조합원의 자발적 투쟁을 저지하며 사측과 테이블로 해결한다… 조합원은 더 이상 불만이 없다. 그저 줄어든 잔업과 특근만이 불만이고 요구사항이다. 물량확보가 임기연장을 보장하는 최대 선거 홍보물이 되고, 조합원의 경조사가 가장 큰 활동영역을 차지한다. 회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고 조합원의 술시중을 치러야 조합원들이 인정한다. 지난 수년간 조합원은 투쟁시기가 되면 투쟁의 각오보다는 지도부의 투쟁시기와 전술, 투쟁 기간까지 점치는 점쟁이가 되어버렸다. 어느 땐 노동조합으로 어느 땐 사측으로 붙어야 되는지 그 시기를 계산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이후 집행부의 임단투 전술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고 특히 04년의 투표 방법의 변경으로 이어진다. 예전 사업부 별로 개표하던 방식에서 모두 모아서 한꺼번에 개표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것은 조직적 단결을 꾀하기 위한 노동조합차원의 대응이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되지만, 커져가는 사측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집행부의 산별 전환 추진은 이전까지의 집행부들과 많은 공통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별 기업 체계에서의 패배와 이후 몇 년간의 거센 구조조정 공세는 활동가들에게 자신감 상실과 무력감을 안겨 주었고, 상황을 변화시킬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되었다. 98년 이후 끊임없이 가져온 회사와의 교섭에서 교섭력의 한계를 절감한 집행부는 교섭력의 확대를 고민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산별전환 추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산별 전환을 통해 집행부가 추구하고 있던 노사공동위를 비롯한 노사 공동결정이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산별 노동조합이 정당하고 지향해야 할 것이라 할지라도, ‘선언’과 ‘선전’을 중심으로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은 잠깐이고 노동조합 체계만 바뀌면 앞으로 ‘좋은 시절’이 찾아 올 것이라는 호소는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불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 후퇴하고 패배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체계만 바뀌면 전황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은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미래를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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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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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할 수 없는 모험을 하기에는 이미 조합원들은 충분히 불안해하고 있었고, 또한 충분히 ‘합리적’이었고, 충분히 기존 체제에 순응하고 있었다. 결국 산별 전환은 이루어야 할 미래의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고, 그 동안에도 ‘고용이데올로기’는 계속해서 커져 나가고 있었다.

2) 2004년 사회공헌기금 요구

04년 3월, 자동차 완성사 4사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무’를 위한 대국민선언을 발표했다94). 주된 내용은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1대 집행부는 이것을 자동차산업발전을 추진해내는 공동기금으로 활용하고, 이익의 일부를 사회공헌을 위해 환원함으로써, 노사의 사회적 책무를 구체화하자는 취지라고 밝힌다.

[노동조합소식, 04.04.09] “자동차완성4사 노동조합이 하나 되어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요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사회적 책무 이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사회공헌기금은 순이익 5%를 자동차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하여 고용안정을 이루도록 하고 영세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개선하는데 주로 사용할 것이다.”

집행부가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2003년 임단투 시기의 언론의 대공장 노동조합 죽이기였다. 집행부를 비롯하여 여러 현장조직들은 ‘사회적 책무를 통해 보수언론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개별 기업 이기주의 혹은 정규직 이기주의에 대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의 비판이다. 집행부는 ‘그동안 현자노동조합이 전국적 투쟁의 선봉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사의 현안에만 국한됨에 따라 질타를 받았는데, 다시 계급적 운동의 틀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행부는 이러한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설치라고 주장한다. 전체 노동자의 심화되는 양극화와 함께 정권과 언론의 대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현대자동차 활동가들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왔으며, 사회공헌기금이 이를 위한 타개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이 방안은 회사에게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으므로 쉽게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95). 94) 사회공헌기금은 집행부 차원의 계획이 아니라 금속 연맹의 계획하고 자동차 완성 4사 노동조합이 모두 동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회공헌기금 추진이 당시 집행부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04년의 정세적 상황과 한국 전체 노동운동 진영(최소한 금속연맹에서)의 노선을 반영하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95) 집행부는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의 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노사간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한다. 대기업의 이익은 수많은 부품업체와 하청업체와의 사회적 관련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기금을 조성하여 사회를 위해 써야한다. 둘째, 산업정책에 기여를 함으로써 고용을 보장한다. 제조업 공동화 등으로 고용의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단시간 고질의 노

동을 통해 산업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기 위한 기금을 설치해야한다. 셋째. 심각하게 왜곡되는 노동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비정규직의 급증은 장기적인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기금을 조성하여 비정규직의 보호를 비롯하여 기술훈련 등 숙련을 통한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이뤄야 한다. 넷째. 내수시장의 침체에 대한 일정한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들이는 것보다 자동차회사의 사회적인 여론을

통해 국민적인 공감을 확산한다면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수 있다. 다섯째. 최근 대기업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고립화 우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안이다. 대공장 노동조합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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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소식, 04.04.30] “완성차 회사들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훌륭한 광고의 역할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회사의 부담만 늘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 세월 대공장 노동조합들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켜왔다. 이제부터는 산업차원에서 기금을 만들고 그것이 산업발전은 물론이고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여 전체 노동자를 위해 노력하자.”

집행부는 04년 임금협상을 통해 이러한 사회공헌기금을 일정정도 쟁취하게 되고,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17차 사업보고서] “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중 산업 발전기금은 자동차 공업협회와 금속연맹 자동차분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를 이룸으로써, 연맹 차원의 산업공동화 방지와 직업 안전망 확보를 위한 기금 마련의 논의 틀을 마련하였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의 구체적 방안마련을 위한 기금의 재원확보를 이루는 성과를 이루었다.”[노동조합신문, 04.07.08] “사회공헌기금이 산업공동화와 고용불안에 대처하고 산업전체의 전망을 예측하여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 줄 것이며, 단기적인 문제에 집착해왔던 그간의 노사관계에서 중장기적 산업전망에 기초하여 기금을 운영하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노동조합소식, 04.07.09] “2일 체결된 노사공동협의체는 자동차산업의 공동화 방지와 고용안정이 목적인 것으로 고용안정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노사 모두 합의정신에 따라 난제들을 풀어간다면 국내자동차 산업발전과 조합원의 고용안정 모두를 풀어나갈 수 있다… 현자노동조합은 노사협의체가 계속 강화될 수 있도록 앞으로 계속 노력하겠다…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조성에 대해 노동조합 요구안이 모두 수용되면서, 자동차산업 공동화방지와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당초 목표가 모두 달성되었다.”

현장조직들은 사회적 책무 이행과 그것의 방안으로서의 사회공헌기금에 대해 대부분 찬성의 입장을 보이게 된다96). 따라서 사회공헌기금 자체 보다는 조성된 기금액의 크기 정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자의 길, 04.07.06] “노동조합에서 지역사회의 약자를 위해 10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는 것은 발전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로 볼수 있다. 대기업 이기주의를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것이다.” [민노투 신문, 04.07.14] “사회 공헌 기금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유지를 위한 각종 연구와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가기 위한 다양한 사업재원을 조성하자는 취지가 있다. 또한 왜곡된 노동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대기업에 걸맞지 않게 고작 10억원에 불과한 기금을 조성한 부분은 실질적인 성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

위와 같이 당시 집행부 역시 이제까지의 집행부들과 많은 공통점을 드러낸다. 먼저 사회공헌기금 요구와 노사공동협의체, 자동차산업 노사협의체의 신설은 이제까지의 역대 집행부가 요구해온 ‘경영참

임금인상 투쟁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이 사회적 연대를 앞장서서 추진해야한다.96) 사회 공헌 기금에 대해서는 대부분 찬성하지만, 그 외의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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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또한 역시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투쟁을 통한 고용안정이 아닌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으며, 기업 혹은 산업의 발전이 고용을 보장한다는 인식에 동의하고 있었다.집행부는 사회공헌기금을 국내 산업 공동화와 비정규직 확산을 막아내는 실질적인 조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현대자동차의 막대한 순이익이 바로 그러한 국내 산업 공동화와 비정규직 확산을 추진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구조를 변화시켜내지 않는 한 국내 산업 공동화와 비정규직 확산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과연 그것이 정말로 그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의 의문을 제외하고서라도, 설령 순이익의 5%를 비정규직 노동자와 부품업체 노동자들에게 돌려준다 한들(실제로는 해당 기업에게 돌려주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원래 그들의 것을 현대 자본이 부당하게 빼앗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또한 무엇보다 그 당시는 빼앗긴 것을 되찾고자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부품업체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해서 분출되고 있던 시기였다. 정말로 사회공헌기금의 취지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부품 업체에 투자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직업 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기업이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고 국가가 발전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은 하기 힘들었다. 최소한 현실에서 투쟁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04년 임투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굵고 짧은 투쟁”이었다. 이러한 투쟁 전술은 사회적 책무 이행전술과 함께 03년 투쟁이 미친 영향의 결과였다. 약한 수위의 장기간에 걸친 투쟁으로 인해 정권과 보수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되고 한편으로는 현장의 동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던 경험이 다른 방식의 투쟁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집중적인 투쟁을 통해 쟁의기간을 최대한 짧게 가져가고자 하는 이러한 새로운 투쟁 방식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노동자의 길, 04.07.06] “현자노동조합은 처음부터 투쟁기조를 굵고 짧게 임한다는 방침을 세워서 조합원들로부터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쟁위행위 투표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투쟁 동참의 열기도 뜨거웠다… 심야 마라톤 협상이나 독대를 하지 않고 현장의 조합원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대낮에 모든 협상을 하였다… 관행처럼 여겨오던 잔업거부를 시작으로 부분파업, 전면파업의 수순을 확 바꾸어 처음부터 총파업을 단행한 것은… 조합원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실노회 신문, 04.07.07] “현자노동조합 5일간의 파업은… 대기업 노동조합의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투쟁이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임금인상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사실상 이번 투쟁은 집회에만 몰두한 투쟁이었다…. 이제 노동조합의 투쟁도 변화를 가져가야 할 때이다. 임단협 투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투쟁만이 우리의 투쟁을 정당화 할수 있다.”[민노투 신문, 04.07.14] “정규직 중심의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져있다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공감대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본격적인 총파업 투쟁을 시작한 시점에서… 갑자기 잠정합의를 해버림으로써…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동지회 신문, 04.07.15] “민주노총의 방침과 완성 4사의 공동요구 및 비정규직의 문제를 비롯한 핵심적인 요구에 대해 공동으로 요구하고 투쟁하자며 약속해 놓고 마무리는 따로 해버리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현자노동조합의 04년 임단협을 지켜보면서… 조합원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제적 전투주의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노동자의 길, 04.07.28] “짧고 굵게한 투쟁은 조금만 늘어지는 투쟁을 할 경우 자본과 정권의 총공격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선택한 전술이었다. 이를 통하여 소기의 성과(조합원과 함께 하는 협상, 관행적인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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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전술 혁신, 단협사항 쟁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투쟁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임투의 조기종결은 비정규직 투쟁에 장애로 다가갔다. 또한 전국투쟁전선이 형성되기 전에 임투가 종결되면서 담장을 넘는 연대는 어렵게 되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자동차 완성 4사가 집중적으로 주장했던 사회공헌기금은 분명 일정한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었으며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역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투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듯한 무력한 현실에서,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당위와 의무감은 자본이나 정부도 받아들일 것 같은 ‘합리적’ 제안을 찾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공헌기금은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는 기업에 속해 있으면서도 끊임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거기에 더해 생존권 위협까지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 기업에 의해 구조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부품 산업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고용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3.4. 구조조정 쟁점사안들의 구체적 진행 양상

98년 수량적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고용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들과 고용안정을 위협함으로써 자신의 이윤을 높이려는 자본의 갈등은 첨예화되었고, 이후의 일상적 구조조정 시기에서 고용안정을 담보로 한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의 ‘양보’와 자본의 ‘관철’이 존재했다. 이 결과 현재에는 정규직의 고용불안과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이라는,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고용불안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이 두 개의 고용불안은 같은 선상에 놓여있지만, 다른 층이기도 하다. 또한 ‘빼앗기지 않아야 할 것’과 ‘쟁취할 것’의 차이이기도 하다. 구체적 구조조정의 과정들을 살펴봄으로써 고용안정의 요구가 현실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양보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해 드러내고, 그 결과 ‘총 고용보장’이라는 약속을 얻은 대신 노동강도 강화, 장시간 저임금 구조화, 내부 노동시장의 분절화, 조합원들의 개별화를 내 주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주로 모듈화 ․ 외주화 영역과 해외생산 영역에서의 구조조정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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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모듈화・외주화

1) 노동조합이 예상한 현대자동차의 외주화 ․ 모듈화 관련 진행 방향

“외주화・모듈화”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상세히 설명된 것은 제13차 회기년도인 99년 9월 1일부터 00년 12월 31일까지의 사업보고서에서였다. 제13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99.9.1~ 00.12.31)에는 모듈화를 레이져 용접, 플랫폼 통합 등과 함께 “악마의 신기술” 중 하나로 칭하기 시작한다. 사업보고서에는 모듈화는 생산비 절감을 통해 생산성과 품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부품의 전문화・대형화로 인해 동기식 생산시스템이 야기되고 이는 당시 800여개의 부품업체 수를 200여개로 급감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정규직 인원이 격감하게 되면서 정규직의 고용이 불안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동시에 노동조합은 프론트 앤드 모듈의 예를 통해 인원은 50~60% 절감, 생산성 10%, 품질 20%, 중량 10% 절감되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선진메이커의 의장조립인원은 모듈화로 인해 현대자동차의 1/3 수준이고 모듈납품단위는 7개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97). 플랫폼 통합, 모듈화 등의 급속한 기술재편과 신기술, 자동화로 인해 신차종 설계 시 현재보다 20~30% 인력이 감소되는 설계를 하기 때문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상시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98).제14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01.1.1.~01.12.31)에서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구조조정의 특징 중 두 번째로 모듈화를 꼽았다. 부품산업이 대형화되고 모듈화 되면서 부품 공용화를 확대하고 기아현대 납품업체 수를 대폭 축소하면서 부품업체가 대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현대모비스가 부품전문업체로 가동 중이고 한국프랜지가 구 기아정기인 카스코를 인수하면서 종합 자동차 부품업체로의 성장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모듈화는 앞으로 전 차종으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더불어 노동자들은 매우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구조조정의 세 번째 특징으로는 변속기 사업부의 이설 문제를 짚고 있다. 현대파워텍 서산공장이 설립되고 현대자동차는 변속기 부문의 물량을 현대파워텍으로 조금씩 이전하면서 고용불안을 조장할 것이고, 결국은 변속기 사업부 자체를 현대파워텍으로 분할 흡수시키려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99).제15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02.1.1~02.12.31)에서는 모듈화의 문제점이 보다 자세하게 지적된다. 조립공정의 간소화 및 부품의 조립기능이 일정 정도 저임금에 기반한 부품업체로 이전 될 수 있어 노동비용의 절감이 가능해 질 수 있으며, 모듈 단위로 차종 동시개발이 가능하므로 개발공정의 중복이 감소되어 개발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모듈 공급업체가 특정 모듈을 집중 생산할 경우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어 가격을 더욱 낮출 수 있게 될 수 있다고 보며, 비용절감과 유연생산체제를 위해 부품업체 재편은 모듈 생산을 둘러싸고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며, 이는 향후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야기시키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고용불안이라는 근거 외에도 모듈화로 인한 필요인원이 축소되면, 이는 곧 UPH 증가로 이어져 노동강도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100).

97) 제13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17398) 제13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17799) 제14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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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주화・모듈화 흐름은 세계자동차 독점자본들이 추구하고 있는 유연생산체제를 양적, 질적으로 더욱 심화시키는 ‘통합적 유연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노동조합은 파악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동강도 강화와 인원절감, 이윤 극대화를 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101).

2) 노동조합의 대응방향

모듈화가 처음으로 상세히 소개되고 동시에 현대자동차 구조조정의 방향이라고 예상하였던 제13차 회계연도, 즉 99년 9월 1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차원의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듈화를 포함하는 외주화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개입하여 여유인력 발생 방지 대책 수립을 통해 신차 양산 1년 전 부품개발 계약 이전 단계에서부터 개입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102). 그러나, 제14차 회계연도, 즉 10대 집행부 때에는 고용불안을 부르는 구조조정을 저지시켜야 한다며 임단투에서 해결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임단투에서 노동조합이 외주화・모듈화와 관련하여 목표하는 바는 “구조조정 전반에 걸쳐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명문화”(제14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중 p.179)하는 것이었다. ‘신기술 도입 및 공장 이전, 기업양수, 양도 시 합의’ 등과 같이 전방위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사측의 다양한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기 위해 단협상에 ‘합의’조항을 명문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히면서, 이와 같은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이 이후 경영과 생산량 결정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응방향을 밝히고 있다103). 결국 노사협의회 실무협의 결과, ‘전공장 플렛폼 통합과 모듈화에 의한 물량외주화 반대 건’에 대해서 노사는 “단체협약 및 완전고용보장합의서에 근거하여 노동조합에 사전통보하고 협의절차를 준수하도록 한다.”(제14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중 p.261)고 합의하였다.

3) 외주화 ․ 모듈화의 실제 진행방향과 결과

2000년* 00년 3월 3공장 모듈화 반대투쟁 건 9차 상집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함.결과: 3공장 모듈화 관련 협약서104)가 합의됨. 또한, 노사협의 후 사전정보제공의 원칙, 노사공동결정100) 제 15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211-212101) 제 15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213102) 제 13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176103) 제 14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179104) [모듈화 관련 협약서]1. 향후 3공장 생산량 감소로 인해 여유인원 발생 시 모듈화로 인한 인원수에 대해 3공장 자체 수급한다.2. 향후 3공장에 투입될 신차(모듈화 등)와 관련하여 대의원회와 사전협의하며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3. 생산량이 감소하여 구조조정이 불가피 할 경우 XD 샤시모듈화 부품에 한해서는 3공장에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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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원칙, 완전고용보장의 원칙을 준수하기로 함.

2001년* 01년 6월 1공장 모듈화를 동반한 합리화 계획(614명 감원)에 대해 ‘합리화’ 반대 투쟁 진행함.105)결과: 2001년 1/4분기 노사협의회 요구안건 중 9번째로 “전공장 플랫폼 통합과 모듈화에 의한 물량 외주화 반대 건”이 있었고, 실무협의 결과 “단체협약 및 완전고용보장합의서에 근거하여 노동조합에 사전통보하고 협의절차를 준수토록 한다.”고 합의.

2003년* 03년 4월 말, 회사는 향후 2년간 엔진부문 50만대 증설, 변속기 부문 40만대 증설 계획을 발표. 그러나 이를 외주화, 하청화 하려는 시도에 대해 공작사업부 투쟁106)에 돌입함.결과: 5월 21일 사측이 공식사과와 함께 노동조합요구안을 수용107).

4. 모듈화 적용 관련된 작업공정 인원에 대한 작업배치는 단협에 준해 합의한다.(2000년 3월 24일, 3공장 대의원 대표 박용주, 의장3부 이사대우 위진동, 3공장장 상무이사 권수원)

105) 당시 나왔던 유인물 및 신문내용 [노동자의길, 01.06.19] 1공장 모듈화 반대 투쟁 승리하자 [실노회, 01.06.20] 승용1공장 15일부터 ‘합리화’ 반대투쟁. 614명의 인력을 절감하는 모듈화는 필연적으로 외주화와 자동화를 동

반하게 된다. [현자노조신문, 01.06.07] “승용1공장 대의원회는 회사 측 생기본부에서 제출한 의장부의 모듈화, 자동화에 대해 문제점을 보완하

고 인력감축을 하기 위한 모듈화는 인정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외주화를 통한 모듈이 아닌 사내에서 직영이 일할 수 있는 모듈화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자노조신문, 01.06.21] “사측은 1공장 대의원회가 계속적으로 요구한 성실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는 요구에 대해 두 번에 걸쳐 합의서를 통해 1공장 대의원회와 모듈화, 자동화, 외주화, 인력운영계획에 대해 재검토하여 추진한다라는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진행하여 대의원회의 강력한 이의 제기로 노사마찰을 빚고 있다. 또 사측은 협상장에서 성실한 노사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단체협약 위반이라고 자신들이 스스로 시인해놓고 1공장 대의원회와 조합원들을 우롱하고 있다.”

[현자노조신문, 01.08.23] “1공장 대의원회는 이러한 사측의 일방적으로 진행한 모듈화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가지고 투쟁하여 사측이 처음 계획한 일곱가지 모듈화 적용계획에서 2개는(도아인너 모듈, 헤드라이닝) 철회시키고 2개는 사내모듈(프론트 스트러트, 리어 서스펜션), 나머지 3개(그래쉬패드, 프론트엔드, 연료탱크 컴플리트)는 부품 수 축소에 맞춰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에 발생될 문제의 소지들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사측과의 1차 합의서에 사측의 무리한 생산증대에 대한 대책으로 공사문제 및 라인증설, U.P.H 등의 사안들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는 합의사항을 넣어 놓았다.”

106) 당시 나왔던 유인물 및 신문내용 [공작소위원회, 03.04.25] “회사는 향후 2년간 엔진부문은 50만대 증설, 그리고 변속기 부문은 40만대 증설 계획을 설명했다. 그

러나 울산에는 부지 문제로 인해 외주나 하청이 예상된다. 나아가 공작사업부 자체가 하청화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물량 외주화 계획 폐지하고 울산에서 생산하라.”

[자주노동자회, 03.05.14] “울산공장이 껍데기 조립공장으로 변하고 있다. 물량이관 형식으로 내부분열,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변속기 생산을 파워텍으로 이관 하려다가 공작사업부의 철농투쟁에 부딪혔다. 물량이관은 플랫폼, 모듈화,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공작 비대위, 03.05.19] “공작사업부 투쟁을 물량확보를 통해 특근을 더 하려는 이기주의적 투쟁으로 바라보면 안된다. 고용안정투쟁이다.”

[자주노동자회, 03.05.19] “사측 98년 이후 노동강도 강화시키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모듈화를 통해 외주화를 진행시켜왔다. 모듈화를 통한 부품 납품이 문제의 핵심이다. 파워텍은 변속기 공장이며 소재사업부 물량을 빼앗아갈 것이다. 공작사업부와 소재사업부의 투쟁은 결국 울산공장 사수투쟁이다. 핵심부품의 이관은 결국 울산공장을 껍데기로 만들려는 심산이다.”

[노동자의길, 03.05.20] “공작사업부 투쟁은 고용안정 사수 투쟁이다.” [공작 비대위, 03.05.22] “엔진 변속기 아웃소싱 중단하고 파워텍과 기아 화성으로 빼돌린 신기술 및 생산량을 울산으로 유치해야

한다.” [자주노동자회, 04.05.04] “엔진․변속기 사업부 물량외주화 음모는 고용안정합의서를 위반하는 것이다.” [자주노동자회, 04.05.19] “변속기 사업부에서 본 것처럼 사측은 조합원의 고용안정보다는 이윤을 위해 순간순간을 모면한다. ‘현

대자동차 해외법인 생산량은 울산에서 공급한다.’는 노사공동위원회 합의조항은 사측 해외생산계획을 볼 때 이미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임단투속보, 03.05.13] “단협과 노사공동위원회의 합의내용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항이다… 노동조합은 사측에 보내 공문을 통해 노사간 맺은 단협과 노사공동위원회의 합의사항을 위반하며, 변속기의 파워텍 생산설비 등은 단협 제 28조, 29조를 위반하는 행위이므로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 촉구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현재 파워텍에서 진행 중인 HT 변속기공장 건설을 노사공동위에서 모든 문제가 종결될 때까지 중단할 것’임을 공문을 통해 보내 왔다… 사측의 일방적인 엔진, 변속기의 합의사항 미이행에 따라, 어제부터 공작대의원회는 본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노동조합은 엔진, 변속기 부분과 관련하여 공작대의원회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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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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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년 6월부터 1공장, 엔진사업부, 변속기사업부에서 크고 작은 모듈화 반대 투쟁이 진행되고 합의가 이루어짐* 3공장에서 모듈화 반대 투쟁이 진행되고 합의가 이루어짐108). 결과: 3공장 대의원회와 3공장장과 합의서를 작성함109).

2004년* 4월, 모비스 지부 모듈화 관련 설명회 진행됨* 4월 중순, 아산 NF 모듈화가 이후 신차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본조에서 계속적으로 확인함* 6월, 의장부 모듈화와 연동되어 차체, 프레스 외주화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됨.* 7월 20일, 모듈화 관련 소책자 현장배포.* 8월, 5공장 모듈 관련 합의 불이행* 9월 1공장 MC카 모듈화 반대투쟁110)결과: 1공장 합의서 작성함111).* 11월 25일, 모듈화 ․ 외주화 관련 사측과 실무적인 논의 진행함.* 12월 20일, 사측의 일방적인 진행에 대해 문제점 지적. 이후 모듈 관련 진행시 노동조합과 협의 속 진행 요구함.

2005년 * 2004년 5공장 모듈 관련 합의사항 사측의 불이행112)

107) 다음은 5월 22일 현자노동조합신문을 통해 공개된 합의된 내용「엔진관련」 ▶현대차 소요 U엔진 생산은 년 10만대를 기본으로 유지하고 생산 초과시는 별도 합의하며, 현대차 생산/판매차량에는 현

대차 생산 엔진을 공급한다.▶베타엔진은 2002년 생산 기준량 기준으로 2006년까지 유지하고, 2006년 이후 생산량은 노사가 합의한다. 단, 기아차 LPG 생산 전량은 베타엔진 조립과에서 생산한다.▶알파II 엔진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총 생산능력인 32만대로 한다.

「변속기관련」 ▶자동변속기 공장 조합원의 고용보장과 생산량 확보를 위해 2002년도 생산량을 유지하며, 향후 현저한 생산량 증감 발생시 대책을 노사간 합의하며, 현대차(해외법인 포함) 생산량은 울산공장 생산기종에 한하여 울산공장에서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존 신세대 자동변속기 45만대 라인의 대형 5속 5만대의 H-T 개조를 2006년 1월에 추진하고, 조립라인에 대해서는 H-T 자동변속기를 10만대 능력으로 설비투자한다. ▶신 소형 자동변속기는 H-T 신설 10만대 라인에 공류하여 2005년 1월에 양산한다. ▶CVT(무단변속기)의 공장 신설 필요시는 현대차 소요분에 대해서는 울산공장에 우선적으로 설비투자한다.

108) [자주노동자회, 03.06.11] “3공장 대소위원회는 모듈화, 외주화 관련 합의하였다. 단협을 위반하고 모듈화를 시행하던 중, 5개 모듈 중 3개는 없애고 2개는 공정개선하기로 하였으며 “앞으로 노사가 심의 ․ 의결하여 결정한다.”는 문구에 합의하였다.“

109) 합의서; 3공장에서 생산되는 향후 차종의 외주화 및 모듈화의 변경 사항에 대해서는 노사가 심의의결하여 결정한다.(03. 06. 10)

110) 당시 나왔던 유인물 및 신문내용 (노동자의 길, 04.09.21) 승용1공장 MC카 모듈화 설명회가 있었다. 고용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니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자주노동자회, 04.09.22] “MC카 외주화 모듈화 시도에 맞서 사내 모듈화 쟁취하자.” [모듈화, 외주화를 반대하는 승용1공장 조합원, 04.11.17] “승용1공장 노사는 MC카 모듈, 외주에 합의하였다. 대모듈 10개 중 3

개만 사내, 나머지는 외주화로 결정되었다. 이런 과정은 일자리 감소 -> 고용불안 -> 생존권 위협으로 나아간다. 현대자동차는 조립공장으로 전락하고 모비스의 덩치만 커지고 있다. 이는 곧 심각한 정리해고와 고용불안이 올 것이라는 뜻이다. 사업부별, 부서별 대의원회 협상방식은 백전백패다. 노동조합 차원의 단일한 대응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111) 합의서1. 의장 MC 모듈화 관련 작업자 여유 인원에 대해서는 고용보장한다.(04. 10. 1 현재원 기준)2. TIRE, WIPER, DR SHIELD는 사내 작업한다. 3. 상기 3 ITEM을 제외한 7 ITEM의 부품별 작업 항목은 유첨의 모듈화 ITEM 도표를 참조한다.4. C/PAD, FEM, RR SUSP'N 등 관련 설비에 대해서는 이후 의장부 대의원회와 협의하여 시행한다.5. 본건 관련 의장A,B조 대표에 대한 고소, 고발은 9/25일한 취하 하도록 조치하며, 민,형사상 및 취업 규칙상 일체의 책임을 묻

지 않는다. #첨부: 모듈화 공수 및 인원 변동 내역(04. 9. 2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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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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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주화 ․ 모듈화에 대한 인식

모듈화는 외주화와 한몸과 같은 패키지적 관계를 맺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서 이해해보면, 곧 완성차 공장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 및 노동강도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듈화와 관련하여 입장을 공개적으로 제출한 현장조직들은 모두 조합원들의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역시 “외주화 반대”로 대응방향을 가닥 잡고 있다. 실제로 합의내용을 살펴보면, 모듈화 자체를 막아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울산 1,3,5 공장의 경우, 모듈 항목을 축소시키거나 외주화를 사내모듈로 전환시키는 선에서 자본과 합의를 하였다. 이는 노동자들이 모듈화라는 구조조정의 일환을 신기술 도입의 일환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제13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서는 앞서 밝혔듯이 “생산비 절감을 통해 생산성과 품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프론트앤드 모듈의 경우 “인원은 50-60% 절감, 생산성 10%, 품질 20%, 중량 10% 절감”되었다고 밝히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모듈화라는 신기술이 생산방식의 ‘발전’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또한 선진메이커의 의장조립인원은 모듈화의 효과로 인해 현대자동차의 1/3 수준이라고 말하면서 자동차업체에게 모듈화는 대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당연히 모듈화에 호응하지는 않는다.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느끼는 고용불안감의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로 모듈화를 꼽고 있다. 노동조합에서도 모듈화는 고용불안, 더불어 노동강도 강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듈화를 도입하는 거의 모든 경우에서 어떻게 하면 외주화를 사내모듈로 전환시키고, 조립라인에서의 필요인원 축소에 따른 잉여인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가 노사협상에서 쟁점이 되며 이는 M/H 협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614명의 인력 절감 효과를 노린 사측에 맞서 01년 6월 15일부터 벌어진 1공장 합리화 반대투쟁은 당시에 낙후된 작업환경으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자 공장 전부분에 대해 모듈화를 동반한 ‘합리화’를 시도하면서 발생했다. 외주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02년 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동희오토’라는 경차 완성차 공장을 만들고 울산 공장의 경차라인을 통째로 전출하려는 시도를 확인하면서 본격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02년 말에 벌어졌던 아산지부의 EF 소나타 LPG 물량이관 저지 투쟁은 각 공장별 플랫폼 완성으로 라인별 복합양산체제 구축이 완성되어 물량 이관이 손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 공장별 물량이관이 쉬워지면 회사는 물량을 가지고 현장통제를 할 수 있게 되며, 공장별 경쟁을 유발시켜 노-노 갈등을 야기하고 현장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경차 완성차 외주화 문제는 04년 초까지 계속 쟁점화되는데, 이와 같은 외주화 시도는 노동조합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고 기존 정규직의 노동조건과 고용을 불안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확인된 것에 다름 아니다.

112) 당시 나왔던 유인물 및 신문내용 [노동자의길, 04.07.28] “5공장 사내모듈 합의 이행하라. 조합원 고령화 대책과 근골격계 예방 차원에서 정책적 대안으로 사내모

듈화에 합의” [현자노조신문, 04.09.23]“지난 2003년 7월 5일 체결된 노사공동위 합의서에는 ‘신차 투입 시 1,000평의 공간을 확보하여 사내모

듈을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공간부족을 이유로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으려는 시도. 특히 2003년 9월 30일에는 위 사항을 보완하기 위해 세부사항 합의서까지 체결되어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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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년 4월 말에 사측은 향후 2년간 엔진부문은 50만대 증설, 그리고 변속기 부문은 40만대 증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조합원들에게 설명한다. 울산은 부지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외주화나 하청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자, 공작사업부는 이와 같은 논리로 핵심부품을 외주화시키면 공작사업부 자체가 외주화 될지 모른다면서 투쟁에 돌입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물량을 더 많이 따내서 특근을 더 많이 하려는 이기주의적인 투쟁이라는 입장도 있었지만, 공작비대위나 자주노동자회 그리고 노동자의 길에서는 고용안정 사수 투쟁이라며 공작사업부의 투쟁을 옹호하였다. 자주노동자회는 울산공장이 껍데기 조립공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물량이관을 모듈화나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노리는 바는 노동조합의 조직력 와해라고 판단한다. 파워텍으로 변속기 생산을 이관하려는 것은 모듈화를 통해 공작사업부의 물량을 충분히 뺏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며, 특정 사업부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전 공정이 모듈화 될 수 있는 만큼 울산공장 사수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03년 6월부터는 1공장, 3공장, 아산공장, 엔진・변속기 사업부 등에서 크고 작은 모듈화 관련 투쟁과 합의가 진행된다. 그와 동시에 각 현장조직에서는 모듈화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기 시작한다. ‘노동의 희망’은 모듈화의 본질은 결국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라며 노동자들은 해고와 전환 배치 속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예상하며, 신차투입 시 초기에 모듈화 관련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모듈화로 투입되는 신차는 물량확보에 의해 고용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기존 공정이 사라지면서 불안감이 확대되기 때문에 사업부 별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노사합의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매번 어기면서 모듈화와 외주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하자 현장에서는 사내모듈화가 제시된다. 5공장의 경우에는 04년 7월 말에 “조합원 고령화 대책과 근골격계 예방 차원에서 정책적 대안으로 사내모듈화에 합의”했다. 1공장의 경우에도 MC카 관련 모듈화에 대해 사내모듈화를 요구했다. 대부분의 현장조직들은 모듈화 ․ 외주화가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며, 동시에 일자리를 감소시켜 고용이 불안해진다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04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모듈화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내용보다는 모듈화 반대 투쟁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이 많아졌다. 일부는 모듈화가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규정하였다. 사측이 이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인위적인 정리해고를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배치전환을 통해 조립라인에 있는 조합원들을 최소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모듈화 초기 단계부터 노동조합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의 실질적인 경영참여가 필수적이며, 모듈화는 비정규직 양산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이 과제로 제기될 것이라고 예상되기도 했다. 공작소위원회는 모듈화 비율이 1% 상승되면 1,000명 기준으로 19명의 잉여인원이 발생한다며, 향후 24%까지 올리겠다는 사측의 계획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팔짱끼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적극적인 대응을 주장하였다. 또한 기존의 사업부별・부서별 협상방식으로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며 노동조합 차원의 단일한 대응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1공장 조합원들 역시 호소하였다. 사측이 단협과 노사협의회 합의사항까지 어기면서까지 도발적으로 모듈화와 외주화를 추진하자, 부서별, 사업부별, 사안별 대응방식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113).113) 모듈화에 대한 현장조직들의 입장 [노동의 희망, 03.11.05.] “모듈화 본질-노동자에 대한 공격) 완성차 업체의 조립라인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한편 노동자들은 해

고와 전환 배치 속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부품업체는 완성차 업체의 비용절감 요구로 인해 노동강도를 강화시킬 것이다. 외주화를 동반한 모듈화는 자본에게 커다란 이익이다. 노동조합은 사측의 모듈화 시도에 대해 초기에 대응해야 한다. 5공장에서 신차투입 초기에 모듈화 관련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노동자의길, 04.04.14. 모듈화의 영향] “99년 현대 모비스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04년부터는 통합모듈 생산단계에 돌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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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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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결

사업보고서를 통해서 확인한 바, 노동조합은 01년 말에 이미 모듈화와 외주화가 노동자의 고용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차원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대응방침은 앞서 밝혔듯이 00년 3공장 모듈화 반대투쟁에서 비롯된 고용안정위원회 운영규정에 명시된 것처럼 ‘합의’ 조항을 만들어서 사측 마음대로 모듈화를 도입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그리고 단협을 통해서 ‘합의’ 조항은 명시되었으나, 사측은 합의 노력도 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무시한 채 외주화와 모듈화를 추진한 다음, 이후에 사과하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잇속을 챙겨나갔다. 03년 7월에는 5공장 모듈화 관련하여 신차 투입 시 약 1,000평의 공간을 마련하여 사내모듈을 추진한다고 합의하고, 같은 해 9월에는 위와 같은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세부사항까지 합의하였지만, 사측은 공간부족을 이유로 합의사항을 불이행하였다. 이렇듯 단협에 명시된 사전 정보 제공의 원칙, 공동결정의 원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현장 차원에서 모듈화 반대투쟁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어떠한 합의도 공문구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노동조합은 각 공장 별로 진행되던 모듈화 반대 투쟁을 모아 전조직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공장별 대의원회에 이관된 역할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아래 총체적인 판단과 대응을 공장별 대응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모듈화・외주화 관련 투쟁이 합의문에 의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사측의 약속하고 어기는 공세적 도발에 의해 확인되고도 남는다. 합의문을 지키고 강제할 수 있는 현장에 대한 노동자 통제력이 관건인 것이다.‘모듈화, 외주화’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의 조직력 와해 시도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문제제기의 초점이 정규직 조합원들의 ‘고용 보장’에 맞추어져 있었다. ‘고용’에 방점이 찍힌 대응은 정규직에게는 전환 배치로 귀결됐고, 비정규직에게는 정리해고로 귀결되었다. 모듈화・외주화를 사내모듈로 수용하면서 고용을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이는 정규직 노동자로 국한되고, 그나마 고용이 유지된 정규직 노동자 역시 전환 배치로 인해 고용불안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다. 전환 배치된 정규직 노동자 역시 추후에 유휴인력 계산속에서 필요 없는 인력으로 여겨지면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정리해고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거나 계속적인 전환 배치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모듈화로 인한 노동조건의 악화, 작업조건의 변화, 부품 부피의 증가로 인한 자동화 시도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되고, 이는 특정 공정 자체를 외주화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다. 큰 문제는 외주화를 동반한다는 사실이며 이는 고용불안을 야기한다. 모듈화로 투입되는 신차는 물량확보에 의해 고용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기존 공정이 사라지면서 불안감이 확대된다. 사업부에 국한되지 말고 노동조합 차원으로 대응하자.”

[노동자의길, 04.05.11] “모듈화란 “차체에 직접 부착하는 부품들을 기능단위 별로 사전조립하여, 이렇게 조립된 모듈을 한 번에 차체로 부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에게는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수익성의 증대만을 목표로 하는 자본에게는 외주화가 당연히 동반된다. 부품의 부피가 커지면서 이동과 적재가 이전보다 불편해지면서 자동화도 수반된다. 이는 UPH 상승과 혼류생산으로 인해 기존 노동자에게는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진다.“

[자주노동자회, 04.09.08] “모듈화를 일개 사업부/부서만의 문제로 치부되서는 안된다. 한 개 부서에 모듈 적용하면 160명 일자리가 없어진다. 노동조합 무력화 시도이다.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

[전민투, 04.09.08] “모듈화는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사측이 도입하려는 이유는 인위적인 정리해고를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배치전환을 통해 조립라인에 있는 조합원들을 최소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집행부 대응이 미온적인 이유는 모듈화 단계 초기부터 사측과 합의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경영참여가 요구되며 모듈화는 비정규직 양산과 관련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으로 맞서야 한다.”

[공작소위원회, 04.10.04] “모듈화 핵심은 외주화다. 모듈화 비율을 높여 잉여이원을 만들려한다. 모듈화 비율이 1% 상승되면 1,000명 기준으로 19명의 잉여이원이 발생한다. 향후 24%까지 올리겠다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있는가? 물량이 많아지고 신차가 투입될수록 우리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바로 모듈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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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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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합이 사내모듈화를 외주화・모듈화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주어진 조건에서 합리적 대안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없는 조합원들의 총고용에 대한 사측의 헛된 합의와 보장을 이유로 일정 정도의 구조조정은 인정하겠다는 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3.4.2. 해외생산

1) 한국의 자동차산업과 해외생산

자본의 해외생산 추진 이유는 가격경쟁력 확보부터 시장 확대, 시장과 생산의 탄력적 대응, 생산의 세계화, 노동조합 배제 등 다양하다. 이러한 해외생산의 확대는 대부분의 경우 국내 생산비중의 축소를 야기하고, 나아가서는 생산기지의 이전으로까지 귀결될 수 있어 산업공동화와 이 땅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감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자본 역시 이러한 자본의 움직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현대자동차는 이미 미국, 중국, 인도, 터키 등지에서 해외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에서 수요가 자본이 해외생산을 통해 확대한 물량만큼 늘어나지 않는다면, 국내 생산량은 필연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또다시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더군다나 전 세계 자동차기업의 연간 생산능력은 약 7,000만대 정도인데, 02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을 살펴보면 약 5,500만대 정도로 1,500만대 정도의 과잉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114)에서 자본의 해외생산은 국내 생산과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80년부터 97년까지 18년 동안 자동차산업은 내수시장과 수출신장으로 인해 연 평균 20.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97년 이후부터 자동차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온 것은 바로 수출이었다. 이러한 내수 정체 및 부진은 소비자의 전체적인 소득수준 후퇴로 인한 구매욕구의 저하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에 기인하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내수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구분 90년 95년 00년 01년 02년 03년생산 1,321 2,526 3,115 2,946 3,148 3,178내수 954 1,556 1,430 1,451 1,622 1,318수출 347 979 1,676 1,501 1,510 1,815

수출비중 26.3% 38.8% 53.8% 51.0% 48.0% 57.1%

표3-10. 한국 자동차산업의 생산 및 수출 현황 (단위: 천대)

자료출처: 한국자동차공업협회 (http://www.kara.or.kr)

114) 박유기, [현자노동조합 2003년 임,단투가 남긴 과제], 연대와 실천 8월호, 영남노동운동연구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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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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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생산 내수 수출2004년 3,469,464 1,093,652 2,379,563

2004. 1~7월 1,944,903 631,861 1,296,0712005. 1~7월 2,168,967 635,158 1,524,589

표3-11. 수급총괄 (단위: 대)

자료출처: 한국자동차공업협회 (http://www.kara.or.kr)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수출물량은 축소되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내수 비중의 정체 및 축소와 수출 비중의 확대는 한국 자동차업계로 하여금 해외생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만들었다.

2) 현대자동차와 해외생산

(1) 현대자동차가 해외생산을 추진하는 배경

해외생산은 현대자동차가 2000년에 GT-5라는 성장전략을 제시하면서 그 의미와 맥락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GT-5는 2010년까지 500만대 생산과 판매를 이뤄 세계 5위 자동차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현대자동차의 계획이다. GT-5는 확대전략(생산의 확대, 판매의 확대, 시장의 확대)을 전제하고, 이를 위해 플랫폼 통합과 모듈화를 도입했고, 비정규직의 확대로 대변되는 노동 유연화를 추진했다115). 회사는 해외투자를 통해 첫째로, 양적 경쟁력(생산대수, 매출액, 상품 라인업 등)과 질적 경쟁력(품질, 원가, 생산성, 기술력 등) 확보, 그리고 둘째로,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적 경쟁력이 중요한 것은 원가절감 및 기술력 등 지적보유자산의 공유측면에서 규모와 범위의 경제 효과 및 선도업체로서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유지 등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며,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는 질적 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환경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국내 판매 편중과 생산의 집중으로는 환율, 유가의 급변동과 같은 경영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116).국내시장에서는 GM과 르노가 대우자동차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여 국내 생산거점을 마련하여 시장쟁탈전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선진기업으로 인정받는 이 같은 회사들이 국내에도 생산거점을 마련하는 이유는 오로지 경쟁력을 더욱 탄탄히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현대자동차 역시 이와 같은 관점 속에서 해외투자에 나서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제조업 공동화를 이유로 자본의 해외진출

115) [해외생산 현황과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노동조합 내부자료, 2004116) 노사저널 통권 241호, 2003년 3월 1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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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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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막는다면, 이는 결국 경쟁력 악화로 인한 국내 자동차산업의 동반몰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이유를 밝히면서 해외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면 국내 자동차산업 역시 방어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를 피고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해외잠재수요의 증가추세가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해외공장을 건설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한다117).

(2) 회사가 주장하는 해외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

지금까지는 현대자동차가 해외투자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조건이었다면, 어떤 이점이 있기에 회사는 그렇게 해외투자를 주장하는 것인가?회사는 첫째로, 현지 진출국가의 비교우위 활용으로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사의 예를 빌려오자면, “미국에서 생산 및 R&D의 현지화를 추진할 경우 상품, 생산기술, 첨단기술 측면에서 현지의 높은 기술력 및 저금리 활용에 낮은 비용으로 자본 조달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투자하는 현지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기술, 노동 등 생산요소와 저렴한 자본비용, 부품산업의 비교 우위 등을 경쟁력 강화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다양한 부문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규모 확대를 통해 마케팅, 구매, 생산 등 다양한 부문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와 지식 노하우의 공유에 의한 회사전체의 경쟁력 강화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판매력과 마케팅 테크닉을 전 세계에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각 공장별 생산기술이나 노하우의 공유를 통해 기술력, 생산성, 품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셋째로는 제품의 기술 경쟁력의 강화를 이야기한다. 생산된 차를 판매하는 해당 국가의 소비자들의 요구를 신속히 반영함으로써 제품의 현지화를 촉진시키고 이를 위해 기술개발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논리이다.넷째는 현지 고객만족도 증가 및 브랜드 이미지 향상이다. 현지공장을 건설할 시 수출을 할 때보다는 납기가 감소되고, 원활한 A/S 부품공급 등으로 고객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다섯째로는 글로벌 자산 포트폴리오를 통한 리스크의 분산을 해외생산의 좋은 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업구조가 일부 특정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해당지역의 경영환경 변화는 기업전체의 사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출할 경우 이를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어체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118).

(3) 현대자동차의 해외공장 증설계획

117) 노사저널 통권 242호, 2003년 3월 21일 (금)118) 노사저널 통권 243호, 2003년 3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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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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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는 89년에 캐나다 부르몽 공장을 건설하면서 해외 진출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연간 2만대 생산에 그치는 등 실적부진으로 93년에 가동을 중단하였고, 완전 철수하였다. 이처럼 해외생산에 대한 악몽을 가지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과거처럼 생산설비만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와 부품업체까지 동시에 해외로 진출시켜 국내에 있는 완성차 공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위상의 공장을 만들고 있다.119)

한국 미국 중국 인도 터키 총계현재 1,850 - 50 150 60 2,110향후 1,850 300(05) 300(06) 250(04) 60 2,760

표3-12. 현대자동차 해외공장 증설계획 (단위: 천대)

3) 해외생산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 및 대응

(1) 해외생산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

2002년에 현대자동차가 미국 앨라배마에 해외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노동조합도 해외생산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처음으로 제출하게 된다. 당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집행부는 집행기간이 2년 6개월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해외생산 대응과 관련하여 02년과 03년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크게 8가지 이유로 해외생산을 반대하고 있다120). ① 향후 국내시장 점유율 하락 예상과 세계 자동차시장 성장 둔화예상 : GM대우와 르노삼성이 2005년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50만대까지 늘리면서 후삼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 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 역시 01년 75.2%에서 05년 63%, 2010년에는 52%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세계 자동차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 자동차 시장은 빅3의 판매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향후 중국과 아시아자동차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북미, 유럽, 일본 자동차시장의 성장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② 현대차의 해외투자, 자본이동은 국내 산업공동화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므로 국가적 동의가 필요 : 고용 창출 효과가 커 사회 안정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제조업이 해외로 진출하면 한국산업의 공동화가 예상된다. 더 많은 이윤을 찾아 헤매는 것은 자본의 속성이지만, 국가경제의 버팀목인 산업 근간을 이전하게 되면 그거야말로 공멸의 길이나 다름없다. 119) 제 15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253120) 제 16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435-438에서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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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생존권에 지대한 영향 초래 : 현지생산으로 인해 수출물량이 줄어 총생산 물량감소로 인한 국내 공장의 가동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는 자연스럽게 조합원들의 고용불안, 노동시간 단축, 임금축소 등등에 대한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④ 현대 ․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무분별한 해외투자는 현대차그룹의 금융비용증가로 인한 유동성위기 유발 : GT-5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회사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런 전 방위적인 투자를 위해 추가투자 소요금액이 수조원의 추가차입비용이 발생하여 이로 인한 금융비용이 매년 수천억 원씩 증가하여 경영부실 심화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⑤ 미국, 중국 대규모 신규 판매시장 확보 불가 : 현대자동차는 미국 현지공장에서 연간 25-30만대 생산과 판매를 기획하고 있는데, 북미 시장의 터줏대감인 빅쓰리는 판매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장기 무이자 할부판매까지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그리고 중국 시장 역시 세계 자동차업계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인데 현대자동차는 2010년에 100만대 생산 및 판매를 기획하고 있다. 이는 2010년 중국 시장의 예상수요인 330~350만대의 약 30%에 가까운 수치이다. 2000년 기준 중국의 자동차 생산업체는 118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무식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⑥ 자동차 부품산업의 붕괴와 몰락가속화 : 대형 부품업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진출을 시도하게 되면서 현대모비스, 만도 등 대형 부품업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영세 부품업체들의 생존기반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⑦ 총수의 독선적인 경영형태와 임원들의 무능과 무책임 상존 : 선진 자동차업계와 같이 세계 각 지역별 관리시스템을 통해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자동차는 지나치게 총수 1인과 상층 집중의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다.⑧ 현지 생산차종 가격, 품질경쟁력 상실로 현대차 존립문제 대두예상 : 북미 공장에서 생산된 차는 일본이나 미국 브랜드와 비슷한 원가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품질 마케팅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는 낮은 가격과 풍부한 편의장치인데 2~3년 사이에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뀌게 할 만한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 전문가들은 북미공장에서 생산한 차량들을 높아진 가격에 월 평균 2만대씩은 팔아야 수지를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이는 확실히 보장할 수 없는 문제이다. (2) 노동조합의 대응121)

① 회사의 해외투자규모 및 전략공유 강제와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한다 : 노동조합은 회사의 경영전략에 대해 회사가 제공해주지 않는 한, 독자적으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또한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의 판단 기준 역시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해외생산이 국내 산업공동화, 즉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이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하고 해외투자에 따른 자본이동에서 노동조합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121) 제 16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p.440 중에서 부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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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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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노동조합이 해외투자에 따른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 이 역시 첫 번째 대응방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자본이동 과정에 대한 ‘참여’의 수준을 넘어서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통제권의 핵심내용은 ⑴해외투자사업 타당성여부 및 해외투자 금액 결정사항, ⑵국내공장시설투자(연구투자포함)계획 결정사항, ⑶국내, 해외자본 투자비율 및 생산량, 투입차종 결정사항, ⑷경기 불황 시 해외공장 라인폐쇄 우선순위 결정 사항, ⑸국내자동차산업발전과 산업공동화방지를 위한 노/사/정 협의기구설치 결정에 관한 사항, ⑹국내, 해외 사업에 따른 이익잉여금 분배 결정사항, ⑺조합원의 단협에 의한 종신고용, 임금, 복지 등 생존권보장 결정에 관한 사항, ⑻경여에 대한 최고 경영진의 책임제 도입 결정에 관한 사항, ⑼기업의 사회적, 지역적 책무에 관한 결정사항, ⑽사회공헌재단 설립결정에 관한 사항 등 총 10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③ 해외생산으로 인한 산업공동화의 문제는 현대자동차만으로 국한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민주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정부와 현대차 그룹을 압박할 수 있는 투쟁을 만들도록 한다.

(3) 회사와 노동조합의 교섭 결과

현대자동차 노사가 2003년 단체협약을 체결하자 보수언론과 재계는 ‘심각한 경영권 침해’라는 둥, 곧 회사가 망할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다. 01년 단협까지는 해외생산과 관련한 조항이 없었지만, 2002년 회사가 미국 앨라배마에 10억불을 투자하면서 신설공장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드러내자 노동조합은 2003년 단체협약에서 해외 현지공장과 관련한 단협조항을 신설122)하게 되고, 2005년에는 해외생산과 관련된 단협 제 32조를 개정123)하게 된다.122) 2003년 단체협약 중 제 32조(해외 현지공장) 회사는 미국, 중국 및 기타 해외 현지공장 설립 및 합작과 관련하여 제반 사항은

다음과 같이 시행한다.1. 현재 재직중인 정규인력은 제 25조에 따라 58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국내외 경기 변동으로 인한 판매부진 및 해외공장 건

설과 운영을 이유로 조합과 공동결정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2. 회사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산업의 공동화 방지 및 종업원들의 고용보장과 임금 및 통상적 노동시간을 보장하기 위하

여 국내공장의 생산물량을 2003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이에 따른 제반설비와 연구시설을 유지, 보장하며, 국내외 자동차시장의 경기 변동으로 인하여 공급에 비해 수요부족과 판매부진 등을 이유로 국내 생산공장을 노사공동위원회의 심의, 의결없이 축소 및 폐쇄할 수 없다.

3. 회사는 국내 당사 공장에서 생산하는 완성차 및 부품(엔진, 변속기)은 해외 현지공장 또는 합작사로부터 수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4. 회사는 국내외 자동차시장의 환경변화 대응과 글로벌 경영체제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력 확보와 질적(독자적 기술력 확보, 품질강화, 브랜드 이미지개선)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선진업체 수준의 비율로 연구개발 투자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며, 국내 연구소의 통합목적과 기존업무를 보장하고 외주처리, 하도급 및 용역전환으로 인한 축소 등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을 수립할 시 사전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 의결한다.

5. 회사는 세계경제의 불황 등으로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부진이 계속되어 공장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해외공장의 우선 폐쇄를 원칙으로 한다.

6. 회사는 조합에서 해외공장 관련 각종 제반 자료를 요청할 경우 10일이내 제공하고 필요시 설명회를 개최하여 충분히 설명하며, 조합은 회사가 기밀로 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단, 회사는 조합에서 해외 현지공장 방문 요청시 회사 부담으로 방문하되, 시기, 방법 등 구체적인 사항은 별도 노사협의 한다.

7. 회사는 해외공장의 경영전략, 투자정보 등 구체적 계획에 대하여 조합에서 요청할 시 성실히 협의한다[별도회의록] 회사는 해외공장 건설에 따른 국내자동차산업 발전과 산업의 공동화 방지를 위한 제반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자동

차공업협회 주관의 완성차 회사 노사 상설협의기구 구성을 요청하고, 동 기구 구성후 논의, 결정된 사항은 성실히 준수, 이행토록 한다.

123) 2005년 개정된 단체협약 중 03년 단협에 없었거나 개정된 조항 회사는 미국, 중국 및 기타 해외 현지공장 설립 및 합작과 관련하여 제반 사항은 다음과 같이 시행한다.

*3. 회사는 해외 공장 신설(CKD공장 포함)및 해외공장 차종 투입계획 확정시 조합에 설명회를 실시하고, 해외공장 신설 및 차종 투입으로 인한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사공동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친다.

*6. 회사는 차세대 차종(하이브리드카, 연로 전지자동차) 개발 후 생산공장 배치는 시장 환경, 수익성, 생산성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되 국내공장에 최대한 우선 배치,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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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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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산과 관련된 조항은 모두 조합원들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앞서 노동조합이 사측의 해외생산의 무리한 추진과 관련하여 우려되는 8가지 지점을 언급하였는데, 고용(생존권) 문제는 여덟 가지 중 세 번째 우려지점이었다. 금융비용증가로 인한 유동성 위기 문제, 상층 중심적인 의사결정 구조, 자동차 부품업계의 몰락 문제 등등도 애초에는 중요하게 다루어졌지만, 단협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03년에도 그리고 05년에도 ‘고용’이 최대이자 유일한 관심사라는 사실은 신설되었던 조항과 이번에 개정된 조항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4) 소결

지금까지 해외공장 건설과 관련하여 노동조합과 회사가 싸운 적은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해외에서 생산되는 차량은 국내에서 더 이상 팔리지 않던 모델이었거나, 단종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완공된 앨라배마의 현대자동차 공장에서는 연간 30만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추어져 있으며, 더군다나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종(NF 소나타)를 우선 생산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수출되던 물량은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만큼 필연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해외공장 건설문제가 산업공동화와 결부되어 자신들의 고용문제와 직결된다고 여기고, 해외공장 문제에 관심을 많이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러한 조합원들의 걱정은 03년 단체협약 중 해외공장과 관련하여 신설된 조항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해외공장 등을 이유로 국내공장을 노동조합과 심의・의결 없이 축소 혹은 폐쇄할 수 없다는 조항, 그리고 해외에서 생산된 부품의 역수입 금지 조항, 신차종 국내 생산 우선권 부여 조항, 해외공장 우선 폐쇄 조항 등 조합원들의 고용문제와 직결되는 부분에 있어서 또다시 경영참가로 해결하려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고용을 최우선순위에 놓다보니 심지어 반노동자적인 ‘해외공장 우선 폐쇄’ 조항까지 만들었다. 국내 노동자들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해 해외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은 자본이 하던 것처럼 노동조합이 국적을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갈라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내 노동자든, 해외 노동자든 현대 자본에 의해 착취당한다는 사실은 똑같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은 현대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는 만국공통적인 사실 때문이지 국적이 같기 때문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국내 노동자들과 거리가 있을 뿐, 해외공장의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팍팍한 현실은 국내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동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며, 이러한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124).정리해서 말하자면, 해외생산 문제는 단순히 생산량 증가, 해외시장 확대 등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해외공장 신설 및 증축 문제는 국내 공장의 ‘조직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와해시키고 그로

*8. 회사는 조합에서 해외공장 관련 각종 제반자료를 요청할 경우 10일 이내 제공하고 해외고장 생산 현황(CKD, 엔진, 변속기 포함)에 대하여 매월 초 조합에 통보하고 필요시 설명회를 개최하여 충분히 설명하며, 조합은 회사가 기밀로 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단, 회사는 조합에서 해외 현지공장 방문 요청시 회사 부담으로 방문하되, 시기, 방법 등 구체적인 사항은 별도 노사협의 한다.

124) “해외생산이던 국내생산이던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또 하기는 하는데, 외국 놈들이 들어와서 착취하나 외국에서 가서 착취하나 그 공장의 노동자들의 통제력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물량의 문제의 접근이나 이런 것으로 하면 안된다.”- 활동가 면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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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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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 노동조합의 조합원에 대한 통제력을 붕괴시키려는 구조조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회사 측은 해외투자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켜야지만, 국내 공장 역시 안정적인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자본의 관점에서 조합원들에게 해외생산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마치 GT-5에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고용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회사가 실질적으로 노리는 것은 정반대다. 경제는 항상 유동적이기 때문에 자동차 생산물량을 언제나 일정한 수준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세계 곳곳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 사이에서 물량을 상황에 맞게 기동적으로 이관할 가능성이 많다. 물론 단협 상에는 이러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조항(제32조 2항)이 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회사가 물량을 가지고 ‘장난 칠’ 수도 있다. 물량에 따라 노동자들의 소득이나 생존권이 좌지우지되는 자동차업계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이는 또다시 세계 곳곳에 위치한 공장의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각 공장 별로 대립시키는 분열 효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이와 같은 회사의 시도에 대해 노동조합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이 궁극적으로는 물량에 따라 생존권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대해 제대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125). 그렇지 못한다면 ‘벌 수 있을 때 벌어둬야지’라는 고용 이데올로기는 더욱 확대・강화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물량에 종속되게 된다. 현대자동차라는 자본은 해외생산을 통해 내부 노동시장을 분할재편하고 나아가 지구적 차원에서 유연생산체제를 공세적으로 전개하려고 하는데, 활동가들이나 노동조합이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하지 않는 대응을 통해 사측의 논리에 결론적으로 힘을 실어줘서는 안 된다.

3.5. 요약

지금까지 ‘고용이데올로기’라는 새로운 용어의 개념을 제시하고, 98년 이후의 현대자동차 현장의 변화를 이 ‘고용이데올로기’와 연관하여 설명하였다. 이 글에서는 현장의 변화를 크게 회사, 조합원, 활동가의 3주체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고용이데올로기가 발생하고 확장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회사의 대 노동 공세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현대 자본은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직간접적 탄압을 가하고 있었으며, 노동자들의 분열과 분할을 꾀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파괴하려는 이데올로기 공세와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 잦은 생산량 변동과 노동자들 간의 물량 경쟁을 유발하는 정책, 합리화 공사를 신차투입과 결부하는 정책은 실질적으로 고용이데올로기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이 밖의 다른 공세들은 활동가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조합의 집합적 힘을 저하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고용이데올로기를 심화시키기 위한 간접적인 공세들이라고 할 수 있다. 125) “고정급을 강화하고 변동급을 낮추는 방법들, 고용이나 물량변동에 의해서 자신의 생계가 불안한 요인을 낮추는 방법들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 활동가 면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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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살펴본 것은 조합원의 변화이다. 고용이데올로기로 인해 조합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보았다. 첫째, 조합원들이 개별화됨에 따라 단결과 집합적 행동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었다. 둘째, 잔업 특근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노동시간이 상승하고 있었다. 셋째, 자신의 실리가 걸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고 있었다. 넷째, 노동조합이 자신의 고용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하락하고 있었다. 다섯째, 회사 측의 통제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섯째, 물량이 줄어들면 고용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일곱째, 물량 확보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고용이데올로기의 원인이자 또한 결과이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은 조합원들의 위와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이 변화들은 더욱 더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고 출구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세 번째로 살펴본 것은 활동가들의 변화이다. 특히 고용이데올로기 속에서의 조합원과 활동가들의 상호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조합원들은 특히 선거를 통해서 활동가들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실리를 확보해주기를 기대했고, 대의원 선거에서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을 뽑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활동가들은 자신의 생각과 실제 행동에서 괴리를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조합원들과의 관계 설정에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변화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비정규직 문제였다. 비정규직으로 인해 신체적/심리적 이득을 보고 있었던 정규직 조합원들은 활동가들에게 많은 제약으로 작용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어렵게 만들었다.그런데 조합원이 활동가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활동가들도 조합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앞서 살펴본 조합원들의 변화는 회사의 유연생산체제를 구축하려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로 인한 것이었지만, 활동가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첫째, 활동가들의 지향성 동요, 활동의 원칙 상실, 사측에 의한 포섭과 같은 활동가 개인의 문제들은 활동가들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활동가들이 물량 확보와 잔업 특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고용 문제외의 다른 여러 쟁점들을 부차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이것은 투쟁의 방식에도 일정한 변화를 낳고 있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모습은 조합원들의 고용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 활동가들이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를 확대시키는 모습을 보여 왔다. 활동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확대하려는 사측이 공세와 그러한 공세에 동조해가는 조합원들에 맞서기 보다는 그것에 무기력하게 대응하거나 오히려 능동적으로 신규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충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커다란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조합원들의 실리화 경향을 가속시키고 있다. 집행부 차원에서든 대의원 차원에서든 활동가들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조합원들에게 실리를 많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실리를 챙겨주는 방식이 변동급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켜 장시간 노동을 감내케 하고, 노동자들의 개별적 차이를 확산시킴에 따라 노동자들의 단결과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집행에서의 중요 지점들과 고용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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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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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먼저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는 신경영전략의 시기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는 노동자들의 개별화와 통제의 내면화를 위한 기반을 닦음으로써 고용이데올로기 발생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다음으로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시기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는 1만여 명이 회사를 떠나는 수량적 구조조정이 관철됨에 따라, 고용이데올로기를 발생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시기의 특징적인 경향들은 이후의 노동조합 운동에서 계속 발견되게 된다.무급휴직자 복귀 이전까지의 시기는 많은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나 있는 상태에서, 현장에서는 회사가 완벽히 힘의 우위에 있었다. 이 시기동안 조합원들은 ‘고용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게 된다. 이 시기동안의 조합원과 활동가의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격리는 두 주체의 분리 현상을 낳고 있으며 이후의 노동조합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00년 완전고용합의서 체결의 시기는 노동조합의 힘을 다시 회복해나가는 시기였다. 또한 현대자동차의 생산량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완전고용합의서의 체결은 ‘고용이데올로기’를 제도화하게 된다. 이러한 고용이데올로기의 제도화는 이후 노동조합 운동의 패턴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렇게 확대 재생산된 고용이데올로기는 해결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01년 7・5 연대 총파업의 시기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는 98년 이후 전국 노동운동 진영에서 지속된 패배와 양보의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시기였다. 가장 선도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철회함에 따라, 그러한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고용이데올로기의 극복은 실패로 돌아간다. 02~03년 산별 전환 추진과 실패의 시기는 노동조합의 힘의 회복이 거의 완성되는 시기이자, 동시에 사측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는 모순적인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행부는 노동조합 체계를 변경함으로써 현장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현장에 대한 방치와 맞물려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고용이데올로기의 극복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04년 사회공헌기금의 시기는 노동조합의 힘은 회복되었지만, 외부에서의 정부와 언론의 공격이 거세지고, 내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행부는 사회공헌기금을 요구함으로써 현장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기금의 대상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게 되고, 고용이데올로기의 극복에 기여하는데 이르지 못한다.그 다음으로 구조조정의 구체적 진행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외주화・모듈화 영역과 해외생산 영역에서 구조조정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인식과 대응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제까지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조합원의 고용 문제가 보장되면 다른 쟁점들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나아가 고용 문제조차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활동가들 스스로 점점 기존의 대응 방식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모습들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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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나가며

최근 각 언론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미국 최대의 자동차 부품 업체인 델파이의 파산 소식을 전하면서, ‘귀족 노동조합’를 흠집내려는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주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한국일보, 05.10.10] “델파이는… 미국자동차노동조합(UAW) 소속 근로자에게 시간당 27달러의 임금을 지급하고 퇴직근로자 4,000여명에게도 매년 4억 달러를 들여 부분임금과 의료복지 혜택 등을 주기로 했었다… 또한 GM측은 2007년 중순 이전 델파이가 파산할 경우 은퇴자의 의료 및 연금 혜택을 책임질 것을 합의했었다. GM측은 이 비용이 1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차 1대당 평균 1,500달러의 직원 복지 혜택 비용 부담을 안고 있는 GM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동아일보, 05.10.11] “델파이의 경영진은 해외 부품업체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과 각종 혜택을 포함한 급여 수준을 기존 시간당 65달러에서 20달러 수준으로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우리가 이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맨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미국 자동차 업체의 노동자들은 임금을 시간당 27달러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3만원은 넘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고임금 귀족 노동자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시급이 얼마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임금 외에 각종 혜택을 포함한 급여 수준은 65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 자동차 업체의 노동자들이 시간당 받는 돈은 실제로 7만원이 넘어가는 것이다. 세 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퇴직한 노동자들에게도 의료 및 연금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일 텐데, “회사가 파산할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는 하락이 없었고, 파산한 이후에도 조건의 하락을 위해 회사와 노동조합이 협상을 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은 또다시 시간급 근로자와 엔지니어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돌보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한겨레, 05.10.10)”라는 사실이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구조조정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위기라고 해서 정리해고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126) 회사가 적자가 났다고 해서 회사가 위기인 것은 아니다. 하물며 회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해서 회사가 위기인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생산물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회사가 적자가 나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위기도 아니며 정리해고가 올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이전까지의 수년간의 막대한 이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발생할 적자를 예상하고 1만여 명의 노동자가 회사를 떠나야 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임금 삭감에 노동강도 강화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더 큰 불행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때의 상황이 당연한 수순이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126) 가장 대표적인 예로 폭스바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고 심지어 100만대의 재고가 누적되었던 폭스바겐에

서도 단 한명의 강제적 정리해고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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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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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난 60~70년대에는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말이 종교였다면, 이제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종교는 ‘고용이데올로기’라는 제단 위에서 희생물을 바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임단협 투쟁을 주로하면서, 모듈화와 외주화 대응투쟁, M/H투쟁, 고용안정 쟁취투쟁, 경영참여 확보 투쟁 등을 통해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까지 이러한 방법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데 있다. 경영참여는 이윤보장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나마 제한적이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조차 무시되고 공격받는 등 투쟁으로 쟁취한 단체협약을 무력화시키려는 자본의 공세는 지속되고 있다127).

[4공장 대의원회, 05.03.02)] “사측의 단협위반, 노사합의 위반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사합의 파기의 핵심은 중단없는 구조조정이다. 노사합의와 단협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현실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산자여 따르라, 05.04.04] “사측은 일방적으로 단협을 파기하고 있다. 간부 취업규칙 일방적 제정, 입실론 엔진 역수입, 5공장 사내모듈 합의서 파기, 4공장 스타렉스 물량 환원 합의서 파기, 해외공장 증설 및 신차관련 단협 일방적 파기. 농성장 폭력 침탈을 통한 비정규직 노동조합 위원장 납치 및 구속, 사업부 출정식을 이유로 1,2,3,5공장 사업부 대표 고소고발, 5공장 및 상집간부 11명 고소고발,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 방기,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행사, 아산공장의 전환 배치를 빌미로 한 판매와 정비 직군전환 시도. 이것들이 사측이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일방 통행하고 있는 행동들이다.”

노동조합 집행부가 임단협을 하면서 엄청난 노력 끝에 처음 제시안보다 많이 하락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만족할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게 된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결코 지켜지지 않는다. 사측의 끊임없는 단협안 무시에 대해 사업부 차원에서 혹은 대의원 차원에서 투쟁이 벌어지게 되고, 다시 양보된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진다128). 그러나 이러한 합의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실제로 관철되는 것은 사측이 밀어붙였던 것보다 더 후퇴된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도 집행부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결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129). 집행부는 다시금 다음 임단협 기간 중에 이에 대한 시정을 요127) 00년 4공장 합의 파기(03년까지 스타렉스 후속차종으로 LCV 차종 투입 합의, 이후 04.06.22에 다시 합의서를 작성하게 됨),

01년 12월 5공정 고용안정 위원회 확약서 체결과 02년 5월 위반, 03년 5월 엔진 변속기 단협 위반 후 사과 및 합의후 04년 5월 다시 위반, 03년 6월 아산공장 차량 투입비율 합의 불이행, 03년 11월 4공장 단협 31조 위반(스타렉스 터키 공장 이관), 04년 6월 투싼 중국 공장에서 공동 생산 일방적 결정, 04년 8월 과장급 이상 비조합원에게 별도 취업 규칙 제정함으로써 단협 위반, 04년 9월 입실론엔진 역수입으로 단협 32조 위반후 역수입 합의, 05년 6월 엔진 변속기 역수입 명문화 및 03년 물량 유지 파기 요구 등.

위와 같은 위반 사항 중에서 사측이 가장 자주 어기는 것들은 역설적으로 바로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최고의 성과라고 자부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단체협약 29조(신기술 도입 및 공장 이전, 양수 양도에 대해 회사는 해당 사유 계획 수립 즉시 노동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간 심의 의결한다)가 그러하다.

128) [실노회 신문, 03.03.26] “회사는 전주 상용차 공장 합작을 추진하며 단체협약 8조(승계의 의무)와 29조(노동조합에 통보후 노사공동위원회 심의 의결)이라는 절차와 과정을 위반했다… 회사는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또 한가지 심각한 문제는… 단협과 완전고용보장합의서를 위반하는 결정을 했는데도… 대의원 대회에서는 사후추인이나 다름없는 표결을 통해 ‘조건 강화’를 결정했다… 이처럼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단체협약을 위반한다면… 단체협약은 무용지물이 되고 조합원들의 고용은 아무도 책임질수 없다… 올해 단협에서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위반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만들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129) 최근 이런 악순환을 인식하는 입장들도 등장하고 있다. [승용 3공장 소위원회, 04.05.18] “현대차는 무모하리 만치 해외 공장 증설과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98년처럼 또다시 구조조

정의 칼날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단협 31조는… 모든 제반사항을…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 의결한다고 되어 있다. 과연 단한번이라도 사측은 약속을 지켰는가? 절대로 아니다. 단협 문구를 아무리 잘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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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면서 임단투에 나서게 되고,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합의안을 쟁취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와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게 되고 다음 임단협 기간에 집행부는 또다시 합의안을 요구하게 된다. 사측이 합의안을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해지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대응 방식은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밖에 없다. 합의 자체가 문제는 결코 아니지만, 지금의 현실은 노동운동 진영이 ‘합의’라는 대응 방식을 택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을 생략한 상태인 것이다. 합의를 통해 고용안정을 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은 앞뒤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침체의 원인이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에 있다면 해결방법은 간단한다.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결책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님을 지난 7년간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 고용불안의 해소를 기대할 수 있는 어떠한 전망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 시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에서 가장 주요하게 그리고 가장 많이 외치고 있는 고용안정 쟁취 주장은 그에 상응하는 투쟁에 대한 기획과 결합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현장의 고용불안을 증폭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왜곡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시기 고용안정이라는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계급적 복원을 위한 새로운 주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을 상호 경쟁적인 개별 임금노동자로 분할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제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명백히 제한된 한계 내에서의 협상을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지배질서를 내면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포섭 기제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피지배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결국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기제들을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것은 98년 이후 모든 집행부에서 지속되고 있는 ‘양보교섭’과 ‘조합원 방치’와 ‘합리적 판단에 기반한 합의’를 중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고용이데올로기’를 분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고용이데올로기의 분쇄’가 논리나 정책, 이론, 선전으로 해결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87년의 승리로 인해 노동자들의 의식이 변화했듯이, 그리고 98년의 패배로 인해 노동자들의 의식이 변화했듯이, ‘고용이데올로기’는 구체적 실천으로 인해 변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를 위해 미약하나마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주체들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운동의 목표와 방식에 관한 것이다. 주체의 문제에 있어 먼저 활동가 재생산 체계가 정비되어야 한다. 98년 이후 거의 사라졌던 활동가들의 양적・질적 재생산이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로 대의원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특정한 대의원의 역할이 사업부의 역할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곳에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현재 대의원 체계가 대의원에게 너무나 큰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대의원의 활동이 개개인의 지향과 태도 그리고 능력에 의해 너무나 크게

측의 자본이동에 대한 노동조합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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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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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으며, 대의원들을 견제하고 통제하며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으며, 대의원 개개인의 역량을 집합적 힘으로 모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누가 결정권을 가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활동가 개별이 아닌 활동가 전체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전체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이다. 세 번째로 조합원과 활동가의 소통을 통한 선순환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의 참여 확대를 모색하고 조합원과 교류하고 교육하고 조직할 수 있는 방안들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활동가와 조합원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활동가의 변화, 조합원의 변화, 활동가와 조합원의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 모두가 수반되어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실질적 이해와 지향에 대한 정치적 복원은 일상의 공동행동과정에서 축적해 나가야 할 신뢰 즉, 동지애의 복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운동의 목표와 방식에 있어 자본의 이윤을 키워 나눠먹기 식의 관행을 극복해야 한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중심이자 잣대로 삼아 전체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회사의 막대한 이윤축적은 노동조합에 대한 공세와 해외공장의 구축, 문어발 확장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노동자들에게 해악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일본 도요타와 닛산, 이탈리아 피아트 등의 경험이 여실히 말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그 곳의 노동자들은 피나는 노력 끝에 회사가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게 되었을 때,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으로 노동조합이 붕괴되거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해버리거나, 자동화 설비 확충으로 인한 구조조정이 발생하거나, 이후 무분별한 투자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 현대자동차에서도 일정 부분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은 회사의 이윤에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보상과 시혜적 성과 즉 실리를 중심으로 저항해 왔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전혀 줄여내지 못했으며, 장시간노동을 스스로 감내할 만큼 임금상승 역시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평균적인 삶을 누리기에는 턱없이 미흡하였다. 파업을 통한 생산과 이윤에 대한 타격은 미미하였으며, 그나마 파업은 곧 특근에 의해 보충되었고 연간 생산계획은 언제나 초과 달성되었다. 신규인력의 충원은 소규모로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훨씬 더 적은 임금으로 훨씬 더 힘든 일을 하게 되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협력업체들을 재편하고 사실상 지배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극도로 열악하게 만들고 관리함으로써 자신들의 순이익을 높여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와 착취로 인해 얻어진 막대한 이윤축적에 대한 방치는 회사에게는 자신감을 그리고 활동가들에게는 무력감과 불안감을 가져다주면서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노동강도 완화 투쟁을 통해서, 기본급 인상 투쟁을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통해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 투쟁을 통해서 현대자동차의 부당한 이윤착취에 맞서 노동자 몸과 일상 그리고 삶을 잣대로 삼는 일상적 대중저항을 통해 노동자들을 옭아매는 ‘고용이데올로기’를 실질적으로 넘어서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것이며,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것이며, 당연히 누려야할 건강권과 행복권을 되찾는 것이다. 나아가 현대자동차 노동자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과 행복을 지키는 것이며130), 전 세계 노동자들의 생존과 행복을 지키는 것이다131). 130)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 자동차 산업은 단순히 하나의 개별 산업의 지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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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사 관계에 있어 자동차 산업의 지위는 여타 산업을 선도하고 해당 국가의 전반적인 조건과 상황들의 틀을 잡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는 해당 국가의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척도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기에 각국의 자동차 산업의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단지 개별 기업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산업에 미칠 정도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임금 인상 투쟁에 있어,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 투쟁에 있어 언제나 자동차 산업의 노동조합들이 선두에 서서 그러한 성과들을 획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런 성과들이 다른 산업으로까지 공유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세계 어디에서든 자동차 산업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해당 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전진이 전체 노동자의 전진으로 이어질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결고리들을 복원하는 것이고 ,그러한 고리들을 바탕으로 선순환을 시작하는 것이다.

131) 최근 미국과 유럽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특히 무엇보다 거세지고 있는 자본의 공세는 최근 들어 약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성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같은 품질 심지어 더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반값에 공급하는 현실에서, 자신들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자신들보다 2배를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구 저편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미국과 유럽 노동자들이 현재의 노동조건을 계속 유지해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일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지금의 임금과 지금의 노동강도와 지금의 노동시간을 유지한다면, 결국에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에 수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현대자동차의 노동조건은 더욱 더 열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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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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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활동가

4.1. 들어가며

앞에서 9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정리해고 반대투쟁, 그리고 98년 투쟁 이후 지금까지 현장에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고용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이번에는 자본의 통제 방식의 근거가 되는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하여 노동자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이를 근거로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일차적 주체로서 선진 활동가들을 살펴보려고 한다.연구 방법은 주체들의 태도와 판단에 근거하여 서술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는 주로 면접조사와 설문조사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활동가들의 경우 활동 영역별로 46명(대의원, 소위원, 현장조직 활동가, 교육위원, 정책 개발 연구위원, 노동조합 집행부, 신세대 활동가)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하였고, 대의원, 소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설문조사에는 461명이 응해주었다. 한편으로 조합원들의 태도와 판단을 알아보기 위하여 2005년 노동강도 평가 조합원 면접 및 설문조사에 본 과제의 내용을 포함시켰으며, 2004년에 진행한 <근무형태개선을 위한 프로젝트> 과정에서 진행하였던 조합원 면접조사 결과 중 관련 내용을 참고하였다. 이 조사를 진행하면서 ‘노동강도 평가를 하는데 고용이데올로기와 활동가 분석을 왜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해오는 이들이 있었다. 충분히 제기할 만한 의문이며, 애초에 이러한 문제가 제기될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진들이 고용이데올로기와 활동가를 분석하고자 했던 것은 다음의 이유에서였다.노동강도 강화의 일반적인 양상은 노동시간을 연장⋅유연화하거나 시간당 노동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예외가 아니어서 장시간 노동, 자본의 입맛에 맞추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노동시간, 고도의 노동밀도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현장 노동자들에게 이런 문제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골병들고 일년 내내 피로가 가실 날 없이 살면서도 ‘이 정도면 견딜 만 한 것’이거나, ‘힘들어도 살아남으려면 견뎌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옆 동료가 과로사로 쓰러지고 나서야 특근을 조금 줄이는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의 핵심 원인으로 고용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따라서, 현장을 장악해버린 자본의 고용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응과 이를 바꾸어나가야 할 주체들의 변화를 거론하지 않고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그 어떤 대응 방안도 현실화되기 힘들며, 이런 현실적 문제를 포괄하지 않고서는 노동강도 평가를 완성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의 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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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로기로 고용이데올로기, 그리고 현장권력을 쟁취하는 활동의 주체로서 활동가들을 다루게 된 것이다. 지금껏 노동(조합)운동이 내걸어왔던 ‘고용안정’이라는 슬로건은 노동자간 경쟁을 부추기고, 노동자들의 계급성을 탈각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이제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계급적 복원을 위한 새로운 슬로건으로 대체하여야 한다. 그리고 ‘고용안정’ 슬로건을 넘어서는 노동자 대항 이데올로기를 복원하고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에 앞장설 활동가들이 자각하고 실천해야 한다.현대자동차는 활동가들 다수가 10년 이상 노동조합 활동을 해 왔으며, 자동차 공장 중에서도 가장 ‘구력’ 있고, 화려한 활동 경력을 가진 활동가들이 모여 있으며, 노동운동의 선배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노동자로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온갖 경험과 투쟁과 실천을 해왔던 동지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활동가들은 뒤돌아보기가 필요하다. 98년 이후 2005년까지 고용문제가 부각되면서부터 노동자들이, 그리고 활동가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이에 맞선 대응방향과 실천투쟁 양상은 어떠했는지, 무엇이 가로막혀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인지,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마음이 같은지, 무엇 때문에 계속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지금 상태로 계속 간다면, 노동해방이라는 희망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에서는 활동가들의 돌아보기, 자기 자리 찾기, 자신감 찾기, 이념적 방향성 찾기를 위하여 기본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방향이다. 물론 면접이나 설문조사에서 얻은 자료들은, 최대한 객관화시켜보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관적이라는 한계는 있다. 면접에 응한 동지들의 수만큼, 설문에 응답한 동지들의 수만큼 주관적일지도 모른다. 또한, 활동가 자신과 그를 둘러싼 조건 중에 주요한 몇 가지 주제만을 다루기 때문에, 모두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노동운동 주체들의 객관화와 돌아보기가 다양한 경로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러한 노력과 기풍과 방향에 이번 시도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활동가 상태와 진단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뉜다.

4.1.1. 98년 이후 주체들과 현장의 변화

한국 노동운동 변화의 전환점은 IMF 외환위기 이후로 볼 수 있으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는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실패 이후 주체들의 변화가 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98년 이후 주체들의 변화양상(조합원의 변화, 활동가들의 변화)과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았다.또한 98년 이후 현장(작업장)의 변화와 상태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조합원들이 판단하는 현장변화와 활동가들이 판단하는 현장변화, 조합원들의 고용불안감에 대한 활동가들의 판단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현장이 침체⋅악화되었는가를 평가하고 그 원인을 진단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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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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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현장 요구에 대한 활동가들의 판단과 대응, 그리고 조합원들이 바라보는 활동가

현장의 요구 사항에 대한 활동가들의 입장과 태도, 대응 양상을 살펴보고, 활동가(대의원, 소위원)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를 조사하였다.구체적으로 살펴본 내용은 현장 여론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 조합원들이 활동가에게 주로 요구하는 사안,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활동가들의 판단과 대응, 활동가가 노동자의 원칙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사안, 조합원이 바라보는 활동가, 활동가 스스로 평가하는 활동가 등이다.

4.1.3. 활동가들의 일상활동 및 현장조직 활동

활동가들의 일상활동을 파악하기 위하여 활동을 위한 정보 취합 경로, 특별히 비중을 두고 있는 활동, 영역별 일상활동 양상, 노동조합 정책과 방침을 조합원들에게 전달하는지 여부, 그리고 조합원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결의를 모아내기 위하여 바꾸어야 할 것 등을 질문하였다.대공장의 경우 다수의 현장조직이 존재하며, 활동가 상당수가 현장조직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활동가들의 활동 양상을 파악하는데 현장조직 활동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현장조직 활동 여부, 현장조직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선택한 이유, 바람직한 현장조직의 역할에 대한 생각, 본인이 속한 현장조직의 장・단점, 현장조직의 분화양상과 변화, 조직 내부의 보스 문화, 지도력 등에 대하여 조사하였으며, 현장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를 알아보았다.

4.1.4. 활동가 재생산

먼저, 이미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 어떠한 계기로 활동을 하게 되며, 활동하는 과정에서 활동력을 북돋거나 반대로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지금까지 활동가 재생산 과정의 특징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신진 활동가 발굴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본인이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본인의 활동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와 떨어져 있었던 시기, 활동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때와 회의를 느낄 때, 활동 과정의 어려움 등을 알아보았다.다음으로는 신세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98년 이후로 신입사원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조건상 활동가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구세대/신세대 간 차이가 커서 상호 이해의 차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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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의 폭이 커진 문제를 극복할 방향을 찾기 위한 것이다. 이에 활동가들에게 신세대에 대한 다양한 생각, 신세대 조합원의 특징, 신세대 활동가들의 활동경로, 구세대와 신세대의 노조 참여율, 회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 구세대/신세대 활동가간 겪고 있는 어려움, 신세대 조합원들 조직화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질문하였다.

4.2. 98년 이후의 변화 양상 :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 조합원, 활동가, 그리고 현장의 변화

4.2.1. 98년 이후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의 변화

현대자동차 자본의 노무관리 방식은 98년을 기점으로 변화하였다. 98년 이후, 기존의 노무관리 방식은 더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노동자들이 ‘평생 열심히 일만 해왔는데 회사가 조금 어렵다고 잘라버리다니’라는 회사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집단적으로 경험했을 뿐 아니라, 또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장의 침체된 분위기를 적극 활용하려는 자본의 의도 역시 새로운 노무관리 방식의 도입을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그 결과 98년 이후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은 위기론 유포 방식, 공격적 방식, 맨투맨 방식, 위기론 유포 방식으로 나타났다.위기론 유포 방식이란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던 ‘고용이데올로기’ 공세와 같은 맥락으로, 상시적인 고용불안 심리를 유포하여 현장 노동자로 하여금 마지못해, 그러나 자발적으로 자본의 통제에 복종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공격적 방식이란 노동조합에 대한 사측의 상대적 자신감을 기반으로 한 공격적이고도 공세적인 방식을 뜻한다. 여기에는 중간관리자 뿐 아니라 대의원마저도 자본이 좌지우지하며 현장을 관리하거나, 조합원과 대의원 사이의 괴리감을 조장하여 대의원을 현장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방식, 그리고 현장성과 계급성을 지키려는 활동가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여 싹을 잘라내는 동시에 현장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공포 정치 등이 포함된다. 끝으로 맨투맨 방식이란 조합원을 일대 일로 만나 세밀하게 조직하고, 공장 안은 물론 공장 밖의 활동까지, 노동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까지 관리의 대상으로 삼아 소위 ‘인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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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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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론유포 -상시적인 고용불안 상태를 현장에 유포. - 95년 이후 활동가 포용전략으로 노조간

부들의 권력화, 귀족화를 통해 활동가와 조합원들을 분리(98~99년은 경직)- 포섭되지 않는 활동가에게는 불법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아 활동가를 현장에서 고립-중간관리자들을 상대로 한 다물교육-조합원들은 고용문제에 대해 회사를 불신하지만 집단적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적 해결을 모색하기 때문에 회사와의 관계에 몰입

공격적방식

-대의원들을 조정하여 현장을 통제⋅관리-폭력이 난무. 노골적인 단협 위반-공개적이고 공세적으로 사측의 논리 선전-활동가 사찰과 폭력

맨투맨방식

-조합원 면담 강화-조합원 자녀 초등학교 입학 시 학용품 선물-동우회, 향우회 적극 개입, 지원, 관리-인간적 관리 : 옛날 과장님이 지금은 형님-회식, 모임에 중간 관리자 적극적인 참가

표3-13. 98년 이후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 변화

98년 이후 등장한 노무 관리 방식은 중간 관리자가 아니라 대의원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가령, ‘노동자의 대표’인 대의원이 잔업・특근 ‘많이 따오기’에 열성을 기울이는 현실을 보자. 이런 식의 대의원 활동은 외형상 현장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 자본은 중간 관리자를 통해 잔업과 특근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대의원이 알아서 잔업・특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시간 노동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골치를 썩힐 필요도 없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장시간 노동을 거부하며 투쟁하지 않고132), 오히려 더 많은 물량과 더 긴 노동시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몇 차례 협상에 나가서 밀고 당기기를 하며 곤란한 듯한 제스추어를 적당히 취하기만 하면 된다. 협상 결과는 ‘노동자의 요구’로 포장될 뿐, 결국 자본이 계획한 생산 목표는 저절로 관철된다. ‘손 안대고 코풀기’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쓰인다.이런 방식의 노무관리가 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본의 고용이데올로기가 현장에 만연하여 조합원 대중의 요구가 자본의 의도대로 왜곡・변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더 많은 물량과 더 장시간의 노동을 요구하는 현장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거부하는 잔업・특근 거부 투쟁이나, 비정규직 도입을 반대하는 파업 투쟁 등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대신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물량을 빼앗길 수 없다거나, 특근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들이었다. 자본은 노동강도 강화를 강요하는 자본에 맞서 인간다운 삶을 주장하던 전체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몰고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현장 깊숙히 침투시킴으로써, 노동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노동강도 강화에 순응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하여 이른바 ‘활동가’들조차 길들이는 부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노무 전략은 사측이 현장활동가 즉, 대의원들을 거의 장악했다고 봐요. 분리정책을 하고 있고 먹혀 들어가고 있고, 별로 의식 없는 활동가들이 대부분이라 사측의 논리를 주입시키고 동의하게 만드는 회사가 존재해야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논리를 가지고 대의원들을 상대해요. 준비되지 않은 대의원은 쉽게 넘어가고 동의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회사는 자신 있고 강한 방식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 같아요. 자기들의

132) 1988년에 만들어진 영화 <파업전야>에서는 일요일 특근을 강요하는 사측과, 이를 거부하고 공터에 모여 축구를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민주노조 건설이 본격화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휴일을 줄이는 것은 곧 자본의 이해에 부응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자본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해온 현실에 저항하면서 ‘노동자는 임금 노예가 아닌 당당한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은 이처럼 민주노조운동을 상징할 만큼 본질적이고 중요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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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를 가지고 치고 들어온다고 봐요. (활동가1)

이것은 기존에 사측의 입장을 대리하여 현장을 통제해온 중간 관리자들 대신 ‘노동자를 대표하는’ 대의원을 움직임으로써 노골적인 통제와 이에 맞선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자본의 현장 통제를 달성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자리잡아감에 따라 노동자의 요구와 저항을 조직해야 할 대의원의 역할과, 그렇게 조직한 현장의 힘이 반영되어 형성되어야 할 대의원의 ‘권위’는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현장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의원들을 조정하면서 현장을 조율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대의원이 현장의 질서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것처럼, 대의원들 하는 것 보면 거기에서 비리가 발생하는 것이지. (활동가1)결국 현장에 가보면 조, 반장, 대리, 과장을 통해서는 문제가 해결 안되는데 대의원을 통해서는 해결이 되거든요. 노조나 대의원이 하는 일이 아니라 회사가 하는 일인데도요. 그러니까 채용비리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활동가2)

부서현안 협상하다가 대의원이 한번 치고 나서, 나가서 회사 측과 한잔 하고 오면 현안 문제 다 풀려버려요. 처음에는 싸운다 싸운다 해놓고서요. 어제 회의 기조하고는 정반대로 합의해버리고 다 풀려버려요. (활동가3)전화해서 오늘 시간 좀 내 주이소 해서 처음에는 몰랐어요. 그래서 나갔는데 조용한데 가서 술한 잔 합시다 하면서 일식집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래도 됩니까? 하니까 괜찮습니다 아니오 됐습니다 했더니 도저히 안되겠으면 커피나 한잔 합시다 하더라고요… 돈으로 치대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현장에 대해서 동우회든 향우회든 속속들이 침투하려고 하는 것이 있지요. (활동가4)

사측은 노동자의 현장 권력은 철저히 짓밟으면서 ‘빨간 조끼’의 권위만을 배타적으로 승인함으로써 노조 간부의 권력화・귀족화를 조장하였다. 이는 대의원의 역할과 권위의 왜곡을 부채질하였고, 그 결과 현장 조합원들과 활동가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최근의 채용 비리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미 ‘대의원들이 라인을 타지 않는다’, ‘출근도 안한다’, ‘장갑 끼는 걸 못보았다’는 냉소와 불신, 거리감이 현장에 만연해있다.

지금 현재 대단히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을 분리시키기 위한 노무관리 정책으로 집중하고 있지요. 또한 귀족화시켜내죠. 활동가들을… 분리시켜내는 커다란 것이 노조간부들을 권력화 시키면서 귀족화하고, 분리시키고 있죠. 조합원들이 활동가를 불신하게 만들고,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거의 작업을 면제시켜주거나 근태관리 해주면서 출근을 안 하는 대의원들이 습관화돼서 출근을 늦게 한다거나 조기퇴근을 한다거나 사무실에서 관리자와 노닥거리는 등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요. 조합원들은 그런 활동가들을 불신하게 되고 활동가들은 현장에 들어가면 요구나 불신의 눈초리가 힘드니까 자꾸 바깥을 돌고 하는 거거든요. 회사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방향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지요. (활동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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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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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조합원들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하여 활동가들에 대한 감시와 사찰, 탄압도 예전보다 치밀하고 공세적인 양상이다. 또한 각종 현안에 대해 자본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유인물과 대자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현장에 배포되고 있다.

98년 이전에는 우리가 봤을 때 건성으로 했지만 지금은 아예 활동가들을 사찰해요. 이런 것을 다 적고 하는데 98년 이후에 현장도 똑같이 되고 있어요. 제가 2공장으로 갔는데 몇 시 몇 분에 어디에 갔다 왔는지 다 보고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활동가1)좋게 변한 게 아니라 예전에 비해 치밀해지고 공세적으로 바뀌었죠. 근래 예를 들면, 지금까지 안 해오던 폭력이 난무, 공세적인 형태, 맨투맨 형태로 많이 만나고 있어요. 옛날에는 숨어서 했는데 지금은 공개적으로 현장조직처럼 대자보도 때리고 공세적으로 변해서, 나쁜 쪽으로 변해서… (활동가2)고용을 늘리지 않는 성장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오래 전부터 진행이 되었지요. 회사 선전을 보면 … 공격적으로 나오는 게, 조합원들을 상당히 의식화 시켰다고 자신하는 것 같거든요. 그 대신 노조는 대단히 경직되어 있는 상태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 같고요. 실제 현장에 가보면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눈에 보이지 않아요. 과거와 다르게 현장에 가보면 현장관리자인 조, 반장 안하려고 합니다. 회사체계에서의 통제는 쉽지 않다는 것이거든요. (활동가3)

노동조합 활동가로서의 대의원의 역할이나 권위가 왜곡되고, 심지어 사측에게 장악당하면서 활동가들이 현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사이에 자본은 현장으로 깊숙히 파고들어왔다. 사측은 한편으로 대의원들을 현장으로부터 분리시켜가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중간 관리자들을 활용한 맨투맨식 노무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관리자들은 상가집이며 회식자리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아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학용품을 사주는 등, 자본과 노동의 어느 편이냐를 떠나 인간성을 강조하며 형님 아우의 관계를 맺는다. 현장 노동자들은 대의원보다 중간 관리자들과 ‘인간적으로는 더 가깝다’라고 느낀다.이러한 인간적 노무관리의 목적은 중간 관리자들로 하여금 조합원들과의 인간적 관계를 돈독히 하도록 하여, 일상적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에 대한 적개심이나 반발을 무마하는 동시에, 결정적인 순간에 ‘형님 얼굴을 봐서라도 한번만 참아주는’ 상황을 만드는데 있다.

요 근래 들어서 보니까는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조합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부서장이 그런 사람들 모아서 필통이나 학용품을 선물해 주고, 마 그런 식으로 하고 있더라구요… 관리자들이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그러는 거지요.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효과를 볼라고 하는 건데. 앞으로 효과가 안 있겠습니까. 앞으로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활동가1)다양하다. 진짜 다양하다. 예를 들어서 일대일에서는 인간성을 강조한다. 형, 아우, 상가집 찾아가고. 울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예전에 오지 않았던. 사업부장이 찾아오고… 또 하나는 집단적인 최면을… 98년 이후 뻑하면 회사위기론을 가지고 들어간다. 상시적인 일정 정도의 고용불안 상태를 현장에 유포시키고 있고, 집단 최면화되어 있다. 그걸 활동가들이 일정부분 재생산하고 있다. 이용당하고 있다. (활동가2)일상적인 인간관계가 대의원보다는 조반장과 가깝다… 대의원이 그 많은 사람을 쫓아다니지 못하니까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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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에는 열심히 간다. 근데 굉장히 일회적이고 단발적이죠. 그런데… 조반장은 항상 있는 사람들이다. 이 역할을 소위원이 해주어야 하는데. 소위원이 그렇게 못하죠. 사측도 싫어하고 인정을 안해주죠… 대의원들도 소위원이 열심히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소위원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자기 활동에 태클을 건다고 보기 때문에 단위 자체가 회사 조반장이 훨씬 더… (활동가3)

4.2.2. 98년 이후 조합원들의 변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직장을 그만두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거나,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었다.주위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하루 아침에 노란 봉투를 받고 회사에 나오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느낀 공포감이나,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켜주지는 못하며 투쟁을 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회의감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조합원들은 뿔뿔이 흩어진 개별 임금 노동자로서 자기의 살 길을 찾게 되었다. 노동자로서의 원칙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해서 득이 되면 노동조합 쪽으로 기울고, 회사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회사 쪽으로 치우치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변화는 고용불안감으로 인하여 안정과 생존을 모색하는 와중에서 나타난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모색의 결과는 오히려 고용불안감을 더욱더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한편, 조합원의 중대한 변화 중 하나는 투쟁에 대한 회의감이다. 그 배경에는 활동가들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활동가들이 98년 투쟁의 쓰라린 패배를 딛고 일어설 만한 투쟁을 배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면접 조사를 통해 파악한 조합원 의식 변화의 특징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화, 고용불안의 심화, 투쟁에 대한 회의, 사측을 의식하는 것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변화 내용 원 인개인주의/노조활동소극적

가장으로서의 책임 증가, 활동가들 불신, 98년 정리해고 여파, 공동체 붕괴(조합원 간 경쟁)

투쟁에 대한 회의 조합원 기대 저버리는 집행부, 정치의 축소판 같은 현장조직, 활동가들이 조합원보다 의식이 낮음.

고용불안 강화 평생직장 개념 붕괴, 활동가들의 언행 불일치, 98년 여파사측을 의식 의식적인 근태관리, 투쟁 동참에 따른 불이익 의식 기타 모르겠다 등

표3-14. 98년 이후 조합원의 의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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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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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내가 언제 나갈지 모른다. 평생직장이 아니다. 따라서 회사에 찍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개인화된다’, ‘조합이 없어서도 안되지만 참여하는 것도 과격하게 투쟁하는 것도 싫다’, ‘동료애가 많이 떨어졌다’, ‘대의원, 소위원 판단에 따르는 것보다 스스로 판단을 한다’등 조합원들이 개인주의, 이기주의화되었다고 진단하였다. 앞서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서 폭우를 뚫고 자리를 사수하면서 느낀 가슴 벅찬 동지애와 노동자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복원하지 못하는 사이에, 노동자들을 임금 노동자로서 개별화시키려는 자본의 공세는 어느덧 현장 깊숙히 침투해 있었다.

남 얘기 할 거 없고 제 자신부터 개인적으로 가죠. 조합이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참여하기는 싫고, 투쟁시기에 과격하게 투쟁할 때 앞에 서기도 싫고, 개인주의로 가야 된다, 왜 그러냐하면 현대중공업을 보고 있기 때문에… 집이 동구니깐 노동조합이 없어도 안되고 당연히 있어야 되는데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싫어하는… (조합원 1)많이 변했죠. 첫째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옛날처럼 그걸 안하죠. 너그는 해라, 우리는 구경만 할께 하는 사람들이 많고. 일단은 직장이란 게 평생직장이 아니고.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 거예요. 내가 언제 나갈지 모른다 생각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깐 일단은 회사에는 안 찍히는 게 안 좋겠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할거고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 그런 게 떨어질 수밖에. 그러다 보니깐 자연적으로 개인화 될 수밖에 없죠. (조합원 2)98년 이전 같은 경우는 동료애가 많이 있었는데, 퇴근하면서 막걸리도 한잔하고, 소주도 한잔하고 그런 게 많이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물론 신입사원도 회사에서 많이 안받다 보니깐 선후배간의 격차, 근속년수도 많이 차이가 나죠. 그러다 보니깐 같이 어울리고 동료애 같은 게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죠. 거의 반에서 반 회식이다 뭐다 하지만서도 반 회비다 뭐다 걷고 있지만 큰 그런 건 없고요. 빨리 해치워 가지고 집에 가야겠다가 거의죠. (조합원 3)98년 이전에는 현장 조합원들이 대・소위원 말에 대해 대체로 잘 따라 왔는데 98년 이후를 겪으면서 자기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98년 고용안정투쟁의 영향이라고 봐요.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 살길을 찾는다. 노조에 참여해서 득이 되면 노조에 참여하고, 회사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회사… 97년 이전에는 활동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직후에는 자기 판단을 근거로 하는 것 같아요. (활동가1)

또한 98년 이후 조합원들의 고용불안감이 강화・만성화되고 있다. 면접 참여자들은 이를 ‘노란 봉투가 언젠가는 또 내려올 것이다’, ‘밥줄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고용불안감의 원인을 대부분 98년의 대규모 정리해고와 이를 막아내지 못한 패배의 경험에서 찾고 있다.

98년 정리해고를 겪으면서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하면서 고용안정이라는 부분, 그 이전에는 피부로 느끼지 않았는데 98년 이후 고용안정이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었고, 조합원도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는 고용안정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그대로 되어 있고… (활동가1)조합원들이 98년 이후에 현대자동차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건강하더라도 무사히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많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98년도에 싸웠지만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나가면서 고용안정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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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 같아요. 회사가 어려우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겠구나 이렇게 무너진 것 같고. 그러면서 결국 있을 때 벌자는 의식이 많아진 것 같아요. (활동가2)

이에 고용안정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게 되고 이를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경향이 가속화되어 노동자의 단결과 저항은 사라지고 치열한 내부 경쟁과 노동강도 강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가를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98년 이후 7년이 지난 지금도 고용불안감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재생산될 뿐이었다.

98년도 정리해고로 머릿속에 노란 봉투라는 것이 박혀 있어요. 언젠가는 노란 봉투가 또 내려온다. 내려와서 정리해고란 게 있을 거다. 해외공장도 짓고 하니깐. 우리 밥줄은 항상 조심해야 된다. 아무리해도 잘릴 때는 잘려가더라 이거죠. 자식도 있고 노조에 대해서 대개 강경한 건 싫어하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에서 무조건 와서 일하지 마라 민주노총에서 뭐뭐가 있는데 오늘 잔업 거부한다, 특근 거부한다. 이런 걸 싫어하는 거예요. 나이도 40이면 애들 교육도 받고 해야 되는데 일도 없는 처지에서 그런 거 자꾸 하지 마라. 가정생활 유지가 안된다고요, 그런 생각이 많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노동운동에 대한 생각이 젊었을 때는 강경하게 하는데 나이 들면서 가정으로 기우는 것 같은… (조합원 1)그전에는 사람들이 고용에 대해서 종신고용 비슷하게 입사하면 정년퇴직 보장되고 일은 힘들어도 맘 편하게 현장에서 일을 했는데, 제가 볼 때는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해보면 구조조정 이후부터 각 반원들끼리도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반원끼리, 남의 불행이 자기 행복이다 그런 생각하는 사람 많거든요. 남이 사고 터져 인사고과 안 좋아지면 나는 반사이익을 얻는다는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조합원 2)

달라진 현장의 분위기 속에서 사측에 대한 의식도 변화했다. 노동자들의 개별화로 제 한 몸 추스르는 일이 가장 우선시되면서, 사측과의 충돌을 회피하거나 관리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것은 노골적인 탄압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98년에 사측에 의해 ‘정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학습된 결과이다. 인사고과가 좋지 않으면 또다시 정리해고 문제가 생길 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매사에 사측을 의식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98년보다 지금이 좀 달라졌거든요. 그때보다는 몸을 많이 추스른다고 해야 하나, 아부 아닌 아부도 좀 하고… 그렇게 되거든요. 월차 같은 것도 많이 안 쓰고… 조퇴, 외출 같은 것도 잘 안 하는 편이죠. 아부라기보다는… 계장들하고 한 마디 안 싸우고 그런 것도 있죠. (조합원 1)옛날 같은 경우는 쉽게 얘기해서 집회를 하면 스스로 동참을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러는데, 98년 이후에는 집회를 하거나 해도 동참이 별로 없어요. 자기 스스로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탄압은 없는데, 스스로 겁이 나는 거죠. 느끼는 거죠. 내가 파업 동참함으로 해서 회사한테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 같은 게 있을까 해서 그런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98년 이전에 노조활동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많이 나갔거든요. 정리해고로. 그런 거 보고 자기는 그렇게 안 되려고 그런 사람도 있고… 자기 스스로 회사 제재가 있을까 겁나고 나중에 어느 시기가 지나서 정리해고가 들어왔을 때 혹시나 인사고과가 들어올까 싶어서 (조합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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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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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노동자들의 투쟁성이나 현장의 일상적인 저항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98년 이전에는 조금만 부당한 점이 있어도 관리자들에게 따지고 저항하는 모습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조합 차원의 집회에 모이는 조합원 수도 줄어들었다. 그 배경에는 사측의 눈치를 살피느라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회피의 정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과 투쟁에 대한 회의로 참여를 ‘안하는’ 정서도 있다. 집회에서는 투쟁을 외치다가 돌아서서 양보로 마무리하는 노동조합의 모습을 한해 두해 지켜보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는 점차 불신으로 바뀌고, 어차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것이라는 예상이 번번히 현실로 확인되면서 조합원들에게 ‘집회를 하건 말건 달라지는 건 없다’는 투쟁에 대한 회의감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98년 이전에는 현장에서 보면, 활동가나 조합원들도 부당한 게 조금만 있으면 관리자들한테 따지거나 하는 게 많았었는데, 98년이 지나면서는 뭔가 모르게 자기도 관리자들하고 이렇게 따진다든가 대들고 그런게 좀 사라져서, 뭐, 대의원이나 소위원들한테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뭐 얘기하고. 요즘에 별 뭐 얘기 안 해요. (활동가1)지금은 주위의 동료나 본인도 집회하면 뭐하나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가고 있어요. 왜냐면, 모여서 집회하고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했는데, 나중에 위원장이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한해 한해 지나면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니까 떨어지는 것 같아요. (조합원 1)조합원들은 조합을 크게 좋게는 안 봅니다. 물론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조합이고 우리가 들어온 회사고 이렇지만 100% 노조를 믿고 있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옛날에는 노조에서 뭐 합니다 뭐 있어요 하면 좌라락 모였는데, 언제부터 모이세요 하면 모이는 사람 30% 안 됩니다. 지금도 현장이 그래요. 솔직히 배가 좀 불렀는 거 같아요. 일을 많이 해서 월급 많이 받아 갔으니까. 그런 측면도 있고, 노조도 한번씩 실수를 하잖습니까. 뭐 하겠다고 해놓고 돌아서기도 하고… 이런 거 한번씩 보이니까 현장에서 비판적인 세력도 있고 좋아하는 세력도 있고… (조합원 2)노조에 대한 불신이 많아졌어요. 알게 모르게. 내가 봐서는 조합원 의식 수준보다는 오히려 조합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낮지 않을까. 항상 조합원들이 앞서가거든요. 어떻게 될 거라고 하면 그렇게 되니까. 예측이지만 맞으니까. 불신이 많아지는 거죠. 안 좋게 예측하는 거죠. 요즘은 모이라면 잘 안 모여요. 그렇게 간다, 생각하니까. 98년 겪고 나서 사람들이 위축되었다고 할까? (조합원 3)

4.2.3. 98년 이후 활동가들의 변화

활동가들은 앞에서 살펴본 조합원들의 변화에 대해 어떠한 방향으로 대응하고자 했으며, 실천방향과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98년 이후 무급휴직 시기에 이미 현장은 급속하게 변화해버렸다. 많은 활동가들이 쫓겨난 이른바 ‘현장 공백기’였던 99년에 현대자동차의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현장에는 ‘일 있을 때 돈을 벌어두자’는 정서가 번져나갔다. 조합원들은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인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연장하여 늘어난 생산 물량을 다 감당하고, 그 대가로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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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현장 복귀 투쟁을 지도하고 이끌만한 노동조합의 대응력 부재로 더욱 가속화되었다.이후 무급휴직자와 정리해고자들이 복귀하면서 현장 권력을 되찾기 시작하였으나, 고용유연화 전선을 형성하는데 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고용안정이 모든 노동조합 활동 방향의 중심에 자리매김되었고, 이로써 현대자동차 활동가들은 자본의 고용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확대재생산에 일조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즉 노동조합 및 활동가들은 피해 최소화를 위한 양보교섭으로 방향을 설정하여 고용안정을 위해 소수의 희생(비정규직의 확대)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노동조건 악화를 용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 (직접 생산라인 내 사내 하청 투입을 16.9%까지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내용의) 완전고용합의서, 2003년 직영인원 충원 시 인원의 40%를 사내 하청노동자로 채우도록 했던 노사합의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그러나 이 양보교섭은 ‘고용안정’도, ‘고용안정감’도 가져오지 못한 채 오히려 현실의 불안감을 더욱 확산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이에 따라 정리해고 저지를 중심으로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리전으로 한판 격돌했던 98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전선을 복원하는 일은 점점 요원해졌다. 위축된 활동가들은 개별적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현장의 상황을 극복하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반신자유주의 저지 투쟁의 전선을 복원하고, 노동자 대항 이데올로기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그 현장 상황에 굴복하고 말았다. 조합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내몰려 마지못해, 그러나 자발적으로 노동강도 강화를 승인・수용하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노동자 내부를 분할하고 위계화시키려는 전략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노동조합과 선진 활동가들의 역량과 활동 폭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그렇다면, 선진 활동가들의 역량과 활동의 폭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몇 년간 반복된 결과, 지금 활동가들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는가. 면접을 통해서 살펴본 결과, 활동가들 스스로 이에 대하여 혹독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여기에 정리한 내용은 활동가들 스스로 내린 상대적 평가인 동시에 현대자동차 활동가들의 전체적인 변화와 자기 반성, 극복 지점 등을 담고 있다.활동가들 스스로 평가한 98년 이후 활동가들의 변화는 보수화, 관료화, 관성화, 대중 추수주의 등으로 요약된다. 즉 ‘대중정서를 등에 업고’ 보수화되어 가고 있으며, 투쟁의 원칙을 지키기보다 원활한 고충 처리를 통해 득표율을 높이는 등 노동운동이 아니라 대의원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가가 많아졌고, 회사 관리자들의 인간적 노무관리에 포섭되는 활동가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노사협조주의에 편승하여 운동의 원칙을 저버리고 사측에 기생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또한, 학습을 거의 하지 않고, 앞에 나설 때만 투쟁하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요령껏 적당히 타협하고, 오랜 활동 경험으로 타성에 젖어 활동을 ‘직업적으로’ 한다거나,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현장 실천과 투쟁의 성과를 남기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성과로 생색내거나 부풀리는 모습들도 98년 이후 활동가들의 변화 양상으로 지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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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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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양상 원인으로 지적된 사항보수화 - 대중정서를 등에 업고 간다

대중 추수주의 편승거래적 활동

- 회사 관리자들과의 인간적 친분- 관리자들의 회유, 사측과의 술자리 등- 일부 무급휴직의 경험에 의한 위축- 노사협조주의에 편승

관성화- 대의원 당선을 목표로 한 활동- 투쟁보다는 고충처리에 매몰- 공부를 잘 하지 않음

표3-15. 98년 이후 활동가들의 변화

대의원들이 활동가들이 보수화되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게 대중정서를 등에 업고 가는 거거든요. 택도 없는 결정을 하면 라인에서 가만히 안 있죠… 상호 작용하는 거거든요. 다 같이 맛이 갔다고 봐야지요… 예를 들면, 2공장이 텐텐(주간 10시간근무 : 야간 10시간 근무)에서 팔텐(주간 8시간 근무 : 야간 10시간 근무)으로 떨어졌어요… 대의원들이 협상을 어떻게 했냐하면 시트공장이 텐텐으로 가는 조건으로 비정규직을 14명 짤랐어요… 소위원이나 이런 사람들이 문제제기 하죠,. 비정규직을 왜 짤르고 텐텐가냐, 그렇게 얘기하면 조합원들 돌아서버리죠, 예년 같으면 불신임할 텐데 조합원들이 안 한다는 거죠… (활동가 1)지금 99년 이후 노무정책에 의해 활동가들 정신 상태가 완전히 해이해졌어요. 대충 인기성으로 해서 공부도 없이 대의원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아무 교육도 받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의원 되고 나니 관리자들이 나와서 술한잔 하자하고 과장이고 차장이고 예예 말 높여주니까 그러한 맛을 보니까… 자기 편안하게 생각하고 그런 것 같아요… 잘못하면 현중 꼴 분명히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활동가 2)일반적인 정서는 98년 이전이나 이후나 활동가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고요, 활동을 오래하면서 타성에 젖은 것이지요. 활동을 오래해 본 사람들은 그 사안에 대한 결과를 대충 예측하게 되고요. 그러다보니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게 되고요. 그리고 오래하면서 회사 관리자들과의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서 손쉽게 길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있어, 변절되는 활동가가 자꾸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자기 관리를 못하고 있는 것은 특정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조직적인 문제이고요. 크고 적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다시 태어나야 하지요. 이것을 계기로 할 수 있다면 해야지요. (활동가 3) 변화라는 것이 자기 스스로의 몫인 거죠. 관성화되고 있어요. 전부다. 대의원 ‘활동’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대의원 ‘당선’을 위한 활동을 제가 볼 때는 더 하고 있어요. 저도 대의원이지만, 대의원 앞에 놓고 난도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침에 출근해서 선거구 눈도장 찍고 어디론가 가는 거예요. 어디론가 간단 말이에요. 가는데 대의원실이 됐던 노조가 됐던 업무가 별로 많지 않거든요. 보통 점검회의가 10시에요. 그러면 10시까지는 별로 할 일이 없어요. 점검회의 때까지요. 라인타면 되는데, 그 두 시간을 안하는 거죠. (활동가 4)98년 이전에는 그나마 활동가들이 원칙적인 입장과 투쟁성이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고충사항 잘 들어주면 대의원 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 전에는 활동가들에게 근태협조가 잘 안되었어요. 그전에는 회사가 채찍을 주었다면 (지금은) 회사가 당근을 주고 있는데, 그 당근에 무너지고 있는 부분이 많아요. 도덕적 문제도 그렇고, 그 전에는 회의보고와 대회 등이 현장에서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또 활동가들이 일을 잘 안해요. 일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 부분에 불만도 있고, 노동하면서 이해와 요구를 받아 안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나마 계급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서 말과 행동이 통일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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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은 30~40% 정도이고, 그 정도는 건강하지요. (활동가 5)적당히 타협하고 투쟁도 하는 척하고, 그 정도의 모든 사안을 다 요령껏 하려고 한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생색내고, 엄청 부풀려서 과대광고하고요… 98년 이후로 서서히 대의원들이 관료화되면서 변한 것이고, 저는 이것도 일정한 회사의 정책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대의원 일 안 시키는 것보다, 현장을 대의원이 비움으로써 회사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몫이 더 크다. (활동가 6)IMF 이후에 그런 통제 속에서 일정부분 노사협조주의가 나오다보니까 편승해서, 대화에 물꼬를 트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사측에 기생하는 활동가들, 일정부분 주고받는 거래죠, 그런 부분들이 단편적으로는 싸워서 인원을 보충할 부분도 엉거주춤 넘어갈 수밖에 없는, 외주처리 해주는 그런 과정들이 발생한다. 그런 주체들이 대의원들이다. 그런 모습이 나오면서 관료화가 많이 되지 않나. (활동가 7)

4.3. 98년 이후 현장의 변화

직무 변화 정도와 고용불안감의 수준을 중심으로 98년 이후 현장의 변화를 살펴보고, 이와 함께 현장 침체 또는 악화에 대한 판단과 현장 침체 원인에 대한 진단 등을 파악하기 위하여 설문 조사 결과를 분석하였다. 조합원 설문 조사는 노동조건과 현장의 변화를 중심으로, 활동가 설문 조사에서는 직무 변화에 대한 판단과 조합원들이 느끼는 다양한 고용불안감에 대한 판단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4.3.1. 노동조건, 직무변화, 고용불안감

98년 이후 현장의 변화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조합원이나 활동가들 대다수(조합원 중 89.5%, 활동가 중 89.7%)가 현장의 모든 변화 중 가장 근본 원인은 고용문제이며, 구체적으로는 회사가 어려워지면 또다시 정리해고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98년 이후 (정규직의) 정리해고는 한 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리해고라는 최악의 상황이 다시 한번 올 수 있다는 상시적 불안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최근 몇 년간 노동조건 변화들 중 조합원들이 가장 많이 동의한 내용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정리해고를 할 것임(89.5%), 현장의 모든 일에 가장 근본원인은 고용문제임(86.6%), 특근과 철야가 줄면 고용불안을 느낌(74.9%), 일하는 시간이 늘어남(68.8%) 현장관리 및 통제 강화됨(49.2%)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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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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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33.7

43

24.2

68.8

27.9

27

49.2

89.5

86.6

74.9

0 20 40 60 80 100

 부서의 자동화가 늘어남

 부서에 신공정이나 새로운 작업이 늘어남

 부서의 하청인력이나 외주물량이 늘어남

 부서에서 파견(지원)이나 배치전환이 늘어남

 일하는 시간이 늘어남

 같은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의 양이 늘어남

 내가 일하는 부서의 작업속도 빨라짐

 현장관리 및 통제 강화됨

 회사는 어려워지면 정리해고를 할 것임

 현장의 모든 일에 가장 근본원인은 고용문제임

 특근, 철야가 줄면 고용불안을 느낌

그림3-3. 조합원들이 생각하는 현장의 변화 (단위 : %)

* 숫자는 전체 응답자 중 설문지 각 항목에 동의한(‘매우그렇다’ 혹은 ‘그렇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비율임.

활동가들은 98년에 비해 현재 외주화(97%), 고용불안감(95.8%), 자동화와 기술 변화(92.9%), 육체・정신적 스트레스(92.6%), 산업재해나 직업병의 위험(88.4%)이 늘어났다고 보고 있으며, 노동시간(74.1%), 작업속도와 작업량(73.8%), 현장 관리자의 통제(70.1%) 등이 뒤를 이었다.

92.9

97

63.5

74.1

73.8

88.4

95.8

92.6

31.1

70.1

67.4

0 20 40 60 80 100

자동화와 기술변화

외주화

배치전환(직간이동)

노동(작업)시간

작업속도와 작업량

산재나 직업병의 위험

고용불안감

육체, 정신적 스트레스

근무의욕과 사기

현장관리자의 통제

관리자의 노조활동 간섭

그림3-4.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현장의 변화 (단위 : %)

* 숫자는 전체 응답자 중 설문지 각 항목에 동의한(‘매우그렇다’ 혹은 ‘그렇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비율임.

Page 141: [2005]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p147~327)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286

현장의 고용불안감에 대해서는 활동가들 역시 대부분 ‘조합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94.2%), ‘앞으로 또다시 정리해고가 올 수 있다’(89.7%)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단순히 고용불안감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장차 올지 모를 정리해고에 대한 구체적인 위기감이 일상화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94.2

23

76.3

79.2

17.7

89.7

27.9

0 20 40 60 80 100

조합원들이 고용불안 느낌

조합원 고용불안 심함 -> 노조힘 강화

조합원 고용불안 심함 -> 회사측 힘이 강화

조합원 고용불안-사측의 각종 이데올로기 때문

조합원 고용불안이 심함-활동가들 때문이다

앞으로 또다시 정리해고가 올수 있음

노조는 조합원들의 고용을 지켜주지 못할 것임

그림3-5. 고용불안감에 대한 활동가들의 판단 (단위 : %)

* 숫자는 전체 응답자 중 설문지 각 항목에 동의한(‘매우그렇다’ 혹은 ‘그렇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비율임.

4.3.2. 현장 상태와 원인 진단

이러한 현장의 변화들 속에서 2005년 현재, 현장 노동자의 상태는 어떠한가? 설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활동가의 86.9%는 현장이 침체 또는 약화되었다고 진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활동가들은 현장이 침체 또는 약화된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면접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활동가들이 내리는 현장 침체의 원인 진단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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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287

원 인 내 용 결과/영향고용유연화 정착사측의 위기론

- 언론 등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음- 실제 물량 감소를 통해 위기감 느낌

- 비정규직을 짜르면서 고용불안을 해소함- 편히 일하고 많이 받는 것에만 연연함

활동가- 사측을 의식하여 현장투쟁을 하지 않음- 조합원들을 경제적 조합주의로 빠뜨리거

나 조합원들에게 끌려다님- 관성화

- 현장투쟁이 사라짐- 현장 조합원과 활동가의 악순환

조합원

- 편하게 일하고 많이 받아가려고만 함- 투쟁 경과를 예상하며 무임승차하려 함- 중간관리자와 인간적으로 돈독함- 활동가들이 투쟁을 대리하기만 바람

-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대신 임금으로 보상받으려 함

- 활동가들의 주장보다 사측 논리가 먹힘- 투쟁하자고 하는 활동가는 욕을 먹음

98년 투쟁경험 활동가들에 대한 불신 -

표3-16. 현장 악화와 침체에 대한 활동가들의 진단

첫째, 고용유연화가 고착화된 객관적 정세와 사측의 위기설(혹은 고용이데올로기) 공세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물량이 줄어들 때 비정규직을 해고하여 정규직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힘든 일은 비정규직에게 넘겨버리는 현실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노조가 생산에 대한 결정권을 상당히 갖고 있다고는 하나, 그 실상을 보면 사측의 고용이데올로기 공세에 고스란히 발목 잡혔으며, 현장을 활성화하는 힘으로 작동하지는 못하고 있다.둘째, 활동가들이 조합원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더이상 현장투쟁을 하지 않고, 투쟁하는 대의원보다 물량을 많이 따오는 대의원에게 조합원들이 표를 준다는 핑계로 대중의 꽁무니를 쫓고 있다. 이로써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을 경제적 조합주의로 빠뜨리며, 현장 침체의 주범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즉,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에게 끌려가는 것이 문제이다.셋째, 조합원들의 개인주의화, 실리주의화 경향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힘든 일을 비정규직화해온 점에 대해 돌아보지 않고, 예전에 비해 일이 편해졌다고만 생각하며, 그래서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사측의 모듈화나 외주화를 인정해주는 대신, 일을 널럴하게 하면서 한푼이라도 더 벌어가기를 바란다. 노동조합 집회에는 나오지 않고, 투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다 내다보면서 편하게 무임승차를 하려 한다. 노동조합을 신뢰하지도 않고 오히려 중간 관리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어, 잔업 끊고 나가자 하면 욕을 먹는다. 조합원은 대・소위원에게 대리투쟁을 바라고, 활동가들은 그걸 핑계삼아 대중 추수주의에 매몰되며, 이것은 다시 현장 분위기의 침체를 유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간다.넷째,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에서 대중의 분노를 배반한 집행부와 활동가들에 대해 불신이 깊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 진단 중에 활동가들이 첫번째로 꼽은 원인은 ‘조합원들의 무관심과 개인주의’(47.0%)였고, 그 다음으로는 ‘노동조합 집행부들이 대처를 잘 못해왔기 때문’(21.3%)이었다. 현장 침체의 원인을 주로 조합원들과 활동가들, 즉 현장의 주체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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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288

12.6%

6.7%

47.0%

4.9%7.5%

21.3%

0%

10%

20%

30%

40%

50%

무응답 언론 등 주변

환경에 영향

을 많이 받아

조합원들의

무관심과 개

인주의로 인

사측의 공세

가 성공함에

따라 사측이

원하는데로

가서

현장의 대의

원과 소위원

들이 별다른

투쟁을 못해

노동조합 집

행부들이 대

처를 잘 못해

왔기 때문에

그림3-6. 현장 침체의 원인

그러나 주체들의 대응이 미진했던 것은 현장 침체를 가속화시킨 요인들 중 하나임이 분명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아니다. 이 조사 결과는 ‘무너진 현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절실한 자기 반성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장을 ‘무너뜨린’ 주체와 힘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장의 침체는 이를 노린 자본의 의도와 기획, 그리고 이를 위한 치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 의도와 기획과 노력을 분쇄하기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현장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4.4. 현장의 요구에 대한 활동가들의 판단과 대응

현장의 변화는 조합원들이 활동가에게 요구하는 내용과 기준의 변화로 반영된다. 이에 대한 활동가들의 태도와 대응을 통해 현장 주체들이 형성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전선을 확인해 볼 수 있다.조합원들이 활동가에게 주로 요구하는 것은 고용, 임금, 복지, 비정규직에 관한 것이다. 고용에 대해서는 물량 확보, 잔업⋅특근 보장, 혼류 생산으로 공장 간 물량 차이 극복 등 실리적인 요구가 중심을 이룬다. 물량 감소는 곧 임금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임금에 대해서도 물량과 연동하여 비슷한 내용을 요구한다. 복지와 관련해서는 사소한 것부터 현장의 주요한 문제까지 모두 대・소위원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는 조⋅반장보다 해결이 빠르기 때문이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회사의 노무관리도 대의원을 통한 해결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합원들은 현장의 고충 사항에 대해 사측에게 요구하고 항의하여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대・소위원에게 요구하고 항의하여 그들을 통한 대리적 해결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물량과 연동하여 고용의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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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289

하는 요구가 주를 이룬다.그렇다면, 이러한 조합원 요구에 대하여 활동가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하는가? 조합원들의 요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를 파악하기 위하여 현장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과, 조합원들이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의 내용, 그리고 활동가들이 그 요구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 대응을 조사하였다. 이어서, 조합원들은 활동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조합원에게, 그리고 활동가에게 각각 질문하였다.

4.4.1. 현장 여론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

언론, 노측과 사측의 교육이나 유인물, 관리자, 대・소위원, 동료 조합원, 향우회・동우회 등 여러 요소들 중 조합원과 현장 여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순서대로 세 가지씩 고르도록 요구하였다. 그 결과 32.2%가 언론을, 21.7%는 대의원을, 19.1%는 노동조합 교육과 유인물을 첫 번째로, 순위와 무관하게 본다면 대의원(67.6%), 노동조합 교육과 유인물(65.4%), 언론(54.0%)을 가장 많이 꼽았다.

0% 10% 20% 30% 40% 50% 60% 70% 80%

무응답

언론

회사측 교육과 유인물

조반장 등 관리자

소위원

대의원

노동조합 교육과 유인물

동료 조합원

향우회나 동우회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세번째 2.4%12.9%10.2%11.8%5.5%14.0%20.8%15.5%6.9%

두번째 2.0%8.9%15.3%10.4%6.9%31.9%15.5%7.1%2.0%

첫번째 1.8%32.2%10.4%6.2%3.1%21.7%19.1%4.9%0.7%

무응답언론

회사측

교육과

유인물

조반장

등 관리

소위원대의원

노동조합

교육과

유인물

동료 조

합원

향우회나

동우회

그림3-7. 조합원의 생각이나 현장여론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요한 순서대로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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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290

여기에서 첫번째로 주목할 것은 현장의 여론을 형성하는데 대의원과 노동조합 교육・선전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와 판단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서 일차 책임은 역시 활동가들에게 있다는 사실과, 일상적인 교육과 선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시켜주는 결과이다. 두번째로 주목할 지점은, 소위원들이 현장 여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위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목한 경우는 전체 응답자의 3.1%에 그쳐, 동료 조합원(4.9%)이나 조⋅반장 등 관리자(6.2%) 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또한 현장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순서대로 세가지를 꼽았을 때 소위원을 그 중 하나로 꼽은 경우는 응답자들 중 15.5%에 불과하여 향우회나 동우회(9.6%)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이 적은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의 ‘실핏줄’이라고 하는 소위원들의 제자리찾기가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가를 알 수 있다.위 결과에서 시사하는 또다른 중요 지점은 언론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이다. 응답자들 중 절반 이상(54.0%)은 현장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세가지 중 하나로 언론을 꼽았으며, 특히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첫번째 요인으로 꼽은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2.2%로, 대의원(21.7%)이나 노동조합 교육선전(19.1%)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한편, 응답자의 연령에 따라서는 35세 미만의 경우 노동조합 교육과 유인물의 영향력을 1위로, 대의원은 3위로 꼽은 반면, 35세 이상은 언론의 영향력을 최고로 꼽았고, 대의원은 35~44세에서 2위, 45세 이상에서는 3위로 나타났다.

그림3-8. 조합원의 생각이나 현장여론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 (응답자의 연령별 차이)

35세미만

18.8%

12.5%

10.9%

1.6

%

12.5%

26.6%

7.8

%

1.6

%

언론

사측

교육

과유

인물

조반

장 등

관리

소위

대의

노조

교육

과유

인물

동료

조합

향우

회나

동우

35~39세

29.9%

12.0%

6.6

%

3.6

%

25.7%

18.6%

3.6

%

0.0

%

언론

사측

교육

과유

인물

조반

장 등

관리

소위

대의

노조

교육

과유

인물

동료

조합

향우

회나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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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291

40~44세37.9%

8.1

%

6.2

%

3.7

%

23.6%

14.9%

3.1

%

1.2

%

언론

사측

교육

과유

인물

조반

장 등

관리

소위

대의

노조

교육

과유

인물

동료

조합

향우

회나

동우

45세 이상

39.2%

9.8

%

2.0

%

17.6%

21.6%

9.8

%

0.0

%

언론

사측

교육

과유

인물

조반

장 등

관리

소위

대의

노조

교육

과유

인물

동료

조합

향우

회나

동우

4.4.2. 조합원들이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에게 요구하는 것

조합원들이 활동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고용안정, 임금, 복지, 비정규직 관련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고용과 관련해서는 고용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특히 물량을 중심으로 요구하고 있다. 물량을 확보해 달라, 잔업과 특근을 보장해 달라, 내부 유연생산성(혼류생산으로 물량차이 극복)으로 물량을 안정시켜 달라, 모듈화로 인한 인원 조정의 경우 비정규직은 상관없지만 반(정규직)만은 안된다는 것이 이에 속한다.

고용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를 요구한다. 당장 효과가 있는 것들을 요구한다. 그 다음에 활동가들에 대해 대단히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에 터진 채용비리, 거기에 활동가들이 걸려 있고, 걸려있지 않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으면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국민의식하고 똑같다. 투명사회를 요구하면서도 내 문제는 옆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과 똑같다. (활동가 1)

임금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눈앞에 닥치는 상황에 대한 임금의 보전을 요구한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물량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것으로 외화된다. 물량이 줄면 바로 임금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당장의 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량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생활 임금을 안정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권리 주장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량이 증가하면 노동시간을 최대한 연장하고, 생산량이 줄어들면 잔업・특근을 없앨 뿐 아니라, 아예 휴가를 보내거나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하는 등 노무비를 최소화하여 운영하는 자본의 ‘유연생산체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 보전을 위한 물량 확보 요구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임금의 유연화(시급제)와 생산의 양적 유연화를 배경으로 하여 생산의 유연화를 완성하려는 자본의 기획’을 완성하는데 일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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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292

있다.

고용, 다음은 임금문제인데, 그것은 물량의 문제예요. 생존권을 확보해 달라는 것인데 그 전에 특근으로 생활을 유지하다가 8:8이 되면서 특근 없어지고, 잔업 없어지면서… 저희는 실질적으로 급여체계가 변동급이 많거든요. 고정급이 적기 때문에 그 전에는 특근과 잔업까지 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생활비로 썼는데, 지금은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임금부족분을 확보하는 것이 많지요. (활동가 2)

복지와 관련해서는 조・반장을 통하여 회사에 요구할 사항들까지도 일일이 대의원에게 요구하고 있다. 조반장보다 대의원에게 이야기했을 때 해결이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에 길들여지면서 대의원의 역할은 현장을 대표하고 투쟁과 실천을 조직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심부름꾼’이자, 소위‘자판기’로 왜곡・변질되어 가고 있다.

대의원에게 요즘 요구하는 것이 일상적인 복지관련 문제들이예요. 에어컨 잘 나오게, 운동기구, 고충처리할 일 대의원이 잘 처리해주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요구하지요. 한번은 휴게실에서 이야기하는데 텔레비전이 안나온다고 하길래 반장에게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대의원에게 이야기하면 빠르다고 하더라고요. (활동가 3)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조합원의 생각은 ‘정규직화 해야 한다’에서 ‘관심없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지만,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요구는 대부분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자리매김하는 양상이다. 가령 노동자의 관점에서, 혹은 굳이 관점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가까이에서 함께 일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받는 차별이나 그들의 불안정성 자체가 부당하다고 느끼고, 비정규직 철폐나 정규직화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배타적으로 정규직만의 이해에 충실한 목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비정규직 문제는 (회사의 주장이) 틀린 내용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면 정규직은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를 하니까 조합원들에게 먹히는 것이지요. 개인적인 물타기, 심부름꾼 비슷하게 되어 간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어야 다음에 또 찍어주니까요. 노조는 임금 많이 받아주는 것을 최고라고 이야기하지요. 물론 조합원들 중에서도 비정규직이 너무 많아요. 비정규직이 많아지니까 더 불안해진다고 이야기하는 조합원도 많아요. (활동가 4)

그 배경에는 비정규직 철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협한다고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사측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연구조사 기간 내내 사내 하청 노동조합의 투쟁과 이에 대한 현대자동차 자본의 탄압이 이어졌는데, 그 기간동안 사측이 쏟아내는 선전물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투쟁이 정규직의 고용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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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293

4.4.3. 조합원 요구에 대한 활동가의 판단과 대응

앞에서 살펴본 조합원들의 요구에 대해 활동가들이 판단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다음 세 가지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첫번째, 원칙적 대응이다. 조합원들의 요구를 노동자의 원칙으로 판단하고 대응한다. 따라서 원칙을 주장하여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내거나, 설득을 하려 노력을 해도 설득되지 않으면 조합원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현장 속의 신뢰를 확인하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거나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저 같은 경우는 조합원들과 제 생각이 다르다고 하면 언성 높이고 하거든요. 논란도 많이 되고 말싸움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개인적인 부탁이라든지 그런 경우엔 시간이 있으면 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해 주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툭툭 튀고 하는 조합원들이 있거든요. 더 많은 조합원들은 그런 부분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활동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하느냐를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우리부서에서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고 판단은 하는데 안 그런 부서도 많지요. (활동가 5)저는 원칙을 이야기해요. 2공장에서 생산이 급박할 적이었는데, 사측에서 일을 안한 측면에 대해 무단결근, 무단이탈 때리겠다 하더라. 나는 현장활동을 올바르게 한다고 하는 편인데… 선거구 조합원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특근 거부하자… 했는데 조합원들이 한명도 특근하겠다고 신청을 안했다. 일상적인 신뢰가 있다고 생각한다. (활동가 6)저는 어차피 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주야간 이렇게 노동을 해야 하는데, 아니 특근 안해도 다 먹고 살 수 있는데 좀 적게 쓰고 아껴 쓰고하면 되는데 왜 굳이 할려고 하느냐 몸 상하는 거 생각 안하냐. 또 쉽게 말하면 가계 소비가 계속 맞추어져 왔기 때문에 안하면 바로 빠지고 하니까. 저는 그런 거 아닌 거 같거든요. 그런 얘기하면 특근 좀 말하면 이번 달 얼마 적자 났다고 죽는 소리 합니다. 참 때로는 참 감정적으로 얘기하고 어르고 달래도. 진짜 조합원들이 억수로 미울 때도 있습니다. (활동가 9)

두번째는 조합원의 요구에 따라가는 경우이다. 내적으로 갈등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 원칙보다는 자기 선거구의 ‘표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므로 조합원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 안는다. 활동가로서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므로 현장의 여론을 선도하지도 않고, 조합원들과 별다른 갈등을 빚지도 않는다. 현안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면접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고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모습이다.

힘든 부분이 그 부분인데, 조합원들은 현실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하거든요. 원칙을 얘기하면 그게 조합원들은 현실적인 시각으로 많이 보니까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의 벽에 하나하나 적응하다 보면 미래는 발전할 수 없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조합원 수준에 맞춰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현실에 맞춰 살다 보면, 이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면 그때 가서 깨려면 더 힘들다. (활동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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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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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름대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선거구 안으로 들어가면 조합원 요구사항에 대해서 이것 안된다고 설명 안하더라고요. 회사가 불파투쟁하니까 정규직 일자리 마련하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정리를 못해주더라고요. 휴가 가고 다른 규정으로 비정규직 갖다 놓더라고요. 한번 갔다 놓으면 빼기 힘들어요. 회사가 이용해먹고 노조는 발목 잡혀서 가고요… 한달 두달 가버리면 보통 3개월 갔다 놓는데 그때 회사 예네들 고용안정 이야기하면서 못 내 보낸다. 조합원들도 알아야 하는데, 조합원들은 쉽게 쉽게 보는거라. 제가 유피에이치 다운되면 다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요. 활동가들이 정리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어요. (활동가 8)대의원에 따라서 두 종류로 나뉜다. 복지 같은 경우를 잘하는 대의원이 있고, 당장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대의원이 있는가하면, 고용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은 음 원칙적으로 하면 욕을 많이 먹는다. 대의원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자기를 지켜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원칙적으로 하기보다는 .많은 타협을 한다. 사업부내에서도 타협을 많이 한다. 뭔가 자기 선에서 안되는 것을 집행부로 가져 가고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예전보다 줄었다. (활동가 11)

세 번째는 원칙이나 목표 없이 관성과 정체에 빠진 경우라 할 수 있다. 현장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려는 동기도 없고, 조합원의 요구를 쫓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사측이 도발하더라도 조합원들이 특별히 반발하지 않는 한 대응하지 않는다.

특별히 대놓고 뭐 바꿔보겠다고 하는 것은 별로 없으니까. 지금 원체 서로 활동을 안 하려는 입장이고요. 소위원 같은 경우도 잘 안돌아가거든요. 의장단도 했던 사람들만 체계가 굴러가지. 한 부서 안에 몇 분 되시는 분도 자기가 어떤 활동을 할 줄도 모르고, 회사 쪽에서 언론플레이 해도 실제적으로 조합원들하고 같이 대응하는 방안도 거의 떠났더라고요. 많이 묵시적으로 묵인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조합원들도 특별히 내놓고 인원 문제나 고용 문제 빼놓고는 특별이 뭐라고 질타하거나 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활동가 7)

다음은 조합원 요구 중에서 구체적으로 ‘잔업・특근보장, 비정규직으로의 충원’등 노동자의 원칙과 대안이라기보다는 사측의 고용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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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295

8.4% 10.4%

41.7%

8.0%

25.5%

6.0%

0%

10%

20%

30%

40%

50%

무응답 그러한 조합원

들의 요구는 당

연하며 충족시

키기 위해 노력

한다

그러한 조합원

들의 요구가 잘

못된 점이 있지

만 무시하기는

어렵다

조합원들의 요

구를 상황에 따

라 판단해서 다

르게 대응한다

조합원들과의

토론과 교육을

통해 이해시키

고자 노력한다

아무리 조합원

들이 요구하더

라도 옳지 않다

고 판단하면 무

시한다

그림3-9 조합원 요구(잔업・특근 보장과 비정규직으로의 충원 등)에 대한 대응

조합원들과 토론이나 교육을 통해 원칙을 이해시키려 노력한다는 경우가 그 다음으로 많았으나 전체의 25.5%에 불과하였다. 아무리 조합원들이 요구하더라도 옳지 않으면 무시한다는 입장은 가장 적은 6.0%로 나타났다. 반면, 조사에 참여한 대・소위원 중 41.7%는 ‘그러한 조합원들의 요구가 잘못된 점이 있지만 무시하기가 어렵다’고 응답하였고, 상황에 따라 조합원의 요구를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대응한다는 입장이 8.0%였다. 심지어 ‘그러한 요구는 당연하며,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도 10.4% 에 이르러 거의 60% 가량이 원칙을 지키고 현장의 여론을 이끌기보다는 소극적이건 적극적이건 대중 추수적인 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정규직 정규화와 불법파견 철폐에 대하여 조합원들이 어떻게 얘기 하냐면 100명 중에 10명이 빠져야 되면 10명이 다 비정규직이 빠지는 것을 조합원들이 알고 있거든요… 근데 다 정규직이 되면 자기가 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거든요… 현장에 들어가서 조합원들에게 원칙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없지는 않지만 많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조합원들한테 안좋은 말 들으니까요. 소위 말해 자판기 역할을 하는 대의원들이 되고 있는 거죠. 그런 추세로 가고 있는 것이지요. (활동가 12)

현장조직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원칙적 입장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이고 있었다. 가령 ‘조합원들과의 토론과 교육을 통해 이해시키고자 노력한다’는 답변은 현장조직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 중 33.3%로, 현장조직에 몸담은 적 없는 경우(21.2%)나 과거에 하다가 지금은 그만 둔 이들(17.7%)보다 높게 나타났다. ‘옳지 않은 요구는 무시한다’는 입장도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다만, ‘그러한 요구는 당연하며, 충족시키려 노력한다’는 입장은 현장조직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과 아주 미미한 차이를 보일 뿐이었다.대의원 활동 경험에 따라서도 대응 방식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대⋅소위원들 중에 한번이라도 대의원을 해본 적 있는 활동가들 중 26.7%는 조합원과의 토론이나 교육을 통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며(대의원 경험이 없는 활동가들 중에서는 21.8%), 9.1%는 원칙에 맞지 않는 요구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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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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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다고 응답하여(대의원 경험이 없는 활동가들 중에서는 3.4%) 비교적 원칙을 지키려는 태도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대중 추수주의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도 약 56%에 달하여, 대의원 경험이 없는 이들(약 66%)에 비해 10% 가량 낮되 여전히 절반을 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조직 활동여부 대소위원 경험현재활동중 과거에활동함 활동한적없음 있음 없음

무응답 3.9% 11.4% 8.6% 7.5% 8.3%① 그러한 조합원들의 요구는 당연하며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10.3% 11.4% 10.6% 7.5% 11.7%② 그러한 조합원들의 요구가 잘못된 점이 있지만 무시하기는 어렵다 36.8% 50.6% 45.0% 43.9% 44.7%③ 조합원들의 요구를 상황에 따라 판단해서 다르게 대응한다 7.4% 6.3% 9.3% 5.3% 10.2%④ 조합원들과의 토론과 교육을 통해 이해시키고자 노력한다 33.3% 17.7% 21.2% 26.7% 21.8%⑤ 아무리 조합원들이 요구하더라도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무시한다 8.3% 2.5% 5.3% 9.1% 3.4%

표3-17. 조합원 요구(잔업,특근 보장과 비정규직으로의 충원 등)에 대한 대응(활동경험에 따라)

이런 결과는, 현장조직 활동이나 과거 대의원 활동 경험이 현장 활동가들로 하여금 보다 원칙적인 자세를 견지하도록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경험을 가진 활동가들 중에서도 상당 수는 원칙보다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이것이 활동가들 전반의 공통된 문제라는 점 역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다음은 잔업⋅특근이나 비정규직으로의 인력 충원 이외에 노동운동의 원칙과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가 갈등을 빚는 여러 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 그 중에서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을 조사한 결과이다. 활동가들이 가장 어렵게 느끼는 항목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잔업・특근 줄이기’, ‘물량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총고용 보장’,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건 총파업’, ‘생산성 향상에 협조해도 고용불안 해소할 수 없음’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이를 다시 활동가의 연령에 따라 분석해보면, 45세 미만의 활동가들은 잔업⋅특근을 줄이자는 주장을, 45세 이상의 활동가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가장 어렵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응답자들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비율은 점점 높아지는 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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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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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35세미만 35~39 40~44 45세이상

무응답 14.1% 7.2% 5.6% 9.8% 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 23.4% 30.5% 31.1% 41.2% ② 물량의 노예가 되지 말자-잔업, 특근수를 줄이자 34.4% 34.1% 37.3% 19.6% ③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걸고 총파업을 하자! 6.3% 14.4% 7.5% 5.9% ④ 물량이 줄더라도 비정규직 포함 총고용을 보장하자 15.6% 10.8% 11.2% 7.8% ⑤ 생산성향상에 협조해도 고용불안은 해소될 수 없다 4.7% 1.8% 7.5% 13.7% ⑥ 어려움이 없다 1.6% 1.2% 2.0%

표3-18. 노동자적 원칙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 (연령에 따라)

4.4.4. 활동가에 대한 조합원들의 인식

조합원은 활동가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활동가=노동귀족’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대신해 희생하고 투쟁하고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같이 가지고 있으며, 급박할 때는 결국 활동가를 찾게 된다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반면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매우 패배적으로 해석하여 일종의 피해의식을 보여준다. 조합원들이 활동가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활동가들에게 질문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조합원 대신 싸워주는 대리자’였다. 조합원 대신에 싸워주고 무엇을 따올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조합원들은 ‘빨간 조끼’ 하면 재수 없다고 하면서도, 현장에 문제가 있을 때는 대의원을 찾아간다는 생각이다. 그 원인은 98년 이후 투쟁하지 않고 상층 교섭력에 의해 현안을 해결해온 방식이 누적된 결과라고 진단하고 있었다. 또한 인원이나 고용 문제를 제외하고는 조합원들이 활동가들을 질타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원칙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특근을 많이 따오고 조합원 다수의 요구를 쫓아가는 사람이 대의원으로 당선되기 쉽다고 평가하고 있다.또한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이 활동가들을 신뢰하지 않고, 동료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은 활동가들 스스로가 조합원보다는 사측이나 관리자들과 어울리고, 노동귀족이 되어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활동가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조합원들이 이런 활동가들 개개인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조합원들은 활동가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조합원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이상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의 시선 속에서 ‘불신’과 ‘권력화에 대한 비난’을 느끼는 동시에, 대리주의에 치우친 기대 심리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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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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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주의적기대

- 조합원 대신 싸워주고 뭘 따올 수 있는 사람, 자판기식 대의원- 빨간조끼하면 재수없어 하지만 현장문제 있을 때는 대의원 찾아온다. (대리주의)

← 98이후 투쟁을 배치하지 않고, 교섭력에 의해 해결하는 방식이 누적된 결과- 특별히 내놓고 인원, 고용문제 빼놓고는 뭐라고 질타하거나 하지 않는다.- 특근 많이 따는 대의원, 조합원 다수 요구에 부응하는 대의원이 당선이 잘된다.

불신- 비도덕적 ← 입사비리 문제- 신뢰하지 않는다 ← 조합원들이 활동가 개개인을 너무 잘 안다. 조합원보다는 사측

이나 관리자들과 어울린다. - 활동가=노동귀족, 술마시고 흥청거리는 활동가

권력화에대한 비난

- 활동가를 자신의 동료로 보지 않는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조합원들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표3-19. 활동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활동가를 이렇게 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합원들의 견해를 조사한 결과는 활동가들 스스로 느끼는 것과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조합원들은 대・소위원 활동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내용은 조합원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점, 도덕적으로 깨끗한 점, 소신있는 행동, 사측의 현장 통제나 부당함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점, 문제를 바로 바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점 등이었다. 물론 소위 고용이데올로기나 물량 제일주의에 매몰되어 ‘잔업특근 많이 따주니까 좋다’는 식의 평가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는 활동가의 기본적인 원칙과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애로사항이 있다 해서 이야기하면 바로 해결해줘요. (조합원 1)현재 대의원에 대해서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합니다. 대부분의 현자 대의원들이 지금은 예전의 열정적이고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개인화되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의원이 많이 있는데, 저희 선거구 대의원은 3선을 하고 있지만 열심히 한다, 조합원에게 귀도 기울여주고 애로사항이나 어려운 점은 해결해주고. (조합원 4)모든 결정 사항을 오픈해놓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얘기를 해요. 안 그런 대의원도 있겠지만. 현재 대의원은. 뭐랄까 강력하게 할 때는 하고 일을 조합원들 모아놓고 회사 측의 안 좋은 일 있다하면 이야기를 하고 하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잘하는 것 같아요. (조합원 6)활동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얘기를 해보면 어려움도 없고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우리 대의원은 열심히 하고 때묻지 않았다고 할까. 그래서 뽑은 거죠. 현자 대의원은 문제 있는 사람들 많아요… 우리 대의원은 자기 주관성 있고, 할 말 다하고, 소신 있고 그래서 뽑았죠. (조합원 7)그 사람들은 당연히 있어야하고 현장활동이 되어야 노동조합도 살아나고, 대의원이나 소위원이나 잘하고 있어요. 현장에 필요한 것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해요. 전달해줘요. (조합원 9)잘 하고 있죠. 피부에 와 닿는 활동을 많이 한다. 위에서 지시 하는 것을 받아 친다. 차 안나갈 때 청소하라면 컷 시켜버린다. 조합원들이 좋아한다. (조합원 10)잘하고 있습니다. 활동은 회사 흐름, 어려운 일 처리해주고 노동조합 정보 등 알려주고, 회사하고 물량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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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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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협상해야 하고 중요한 일 많이 하고 있지요. (조합원 12)

물론 부정적 평가도 있다.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활동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 점, 사측에 휘둘리거나 조합원을 핑계삼아 열심히 활동하지 않는 점,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점, 선거구에만 국한되어 활동하는 점 등을 부정적인 면으로 평가하였으며, 이런 문제점이 너무 오랜 대의원 활동으로 인하여 관성화・관료화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물론 ‘내 밥그릇을 챙기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운동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측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 답답한 것이 소위원, 대의원이예요, 거의 다가 회사쪽으로 끌려가는 식으로 옛날의 대의원들이 아니예요. 대의원은 조합원이 안 따라준다고 하고, 우리는 대의원이 열성적으로 안한다고 하죠. 같이 면담하고 협의하는 것을 조합원 입장을 생각해서 밀어붙이는 식으로 가야지 회사 이야기를 들어주면 해결이 안되잖아요. (조합원 13)글쎄요.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활동성과라든지. 대회에 갔다오면 자료를 첨부해서 조합원들에게 나누어줘야 하는데 활동내용에 대해서 잘 공지를 안하니까요. (조합원 14)좋든 싫든 조합원을 위해서 뛰어야 하는데 대의원 한 번 보려면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 임단투 때문에 대의원 보기도 힘들기도 하지만. 항상 조합원이 보려면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도 없고. 그런 게 미흡하고. 사소한 일이 터지더라도 얼굴을 못 보면 소자보라도 선거구 룸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해야 하는데 그런 모든 게 미흡하다고 보거든요. (조합원 15)노동조합 자체가 워낙 민주노총 산하에서 비중이 크다 보니까 자기 조합원들의 권익은 그렇게 많이 알뜰살뜰하게 챙기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서 대내외적으로 민주노총 그런데서 하는 거는 아주 끊임없이 참석을 잘 하거든요. 그러니까 지 밥그릇도 못 챙기는 게 남의 밥그릇 챙기는데 간다고 해서 솔직히 안 좋아하죠. 어떨 땐 실망이 많이 들기도 하고, 소위원인 내가 보기에도 그런데 조합원들은 더 하겠죠. (조합원 16)마음에 안듭니다. 대의원 되기 위해서 쓰잘데기 없는 행동을 많이 합니다. 이래 모임 가서 얼굴 비추고, 우리 조합원들하고 생각이 맞지 않으면 안 맞다고 해야 하는데 그걸 이용해서 움직이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 전 공장이 다 그래요. 활동가로서의 정신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대의원되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 이후에 좋으니까 대의원 하려고 하겠죠. 향우회, 계모임, 우리 반도 아니면서 반 야유회 따라와야 하고, 회식하면 따라가야 하고. 이게 대의원이 할 행동이 아니거든요. (조합원 17)별로 큰 활동은 못하고 있어요. 부서 내부 문제에 활동이 한정되어 있죠. 대의원 성향과 다른 주축을 이루는 활동가들 성향이 상반되어서 잘 안돼요. 대의원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냐에 따라 많이 달라요. (조합원 18)대의원이 한사람이 계속하고 있거든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거든요. 그들은 노동귀족이예요. 올해 대의원 했으면 다음에는 현장에 가서 일하고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번 하면 썩게 되어 있어요. 연임이 안되는 것에 대해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하는 분도 계시지만 3선 이상이면 다 어용이라고 생각해요. 조합에 올라가신 분들이 잘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10년 이상 현장에서 일 안하시는 분도 있거든요. 그 분들이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조합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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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00

활동가 스스로의 패배적 평가와 달리 실제 조합원들은 활동가에 대한 신뢰나 원칙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은 여전히 열심히 하는 사람, 원칙을 지키는 사람, 조합원들과의 소통과 공유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 때묻지 않은 사람, 등 기본적인 활동가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4.5. 활동가들의 일상활동 및 현장조직 활동

활동가들의 활동 영역은 크게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그리고 정치활동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현장에서의 일상 활동(대의원, 소위원 활동 중심)과 현장조직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4.5.1. 일상 활동

여기에서 말하는 일상 활동이란 본인의 위치에 따라서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나, 일반적으로는 작업장(현장)에서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과 조합원들과의 관계 형성 활동, 그리고 일상적인 학습 및 지식 습득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주요한 쟁점이 있는 투쟁시기(임단투 시기, 구조조정 투쟁)를 제외한 평상시의 활동 내용, 늘 지속하는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구체적으로 살펴본 일상 활동의 영역은 다음과 같다. 활동에 대한 정보 입수 방법, 활동 내용 중 비중을 두고 있는 것, 조합원들에게 노조 정책이나 방침을 전달하는 방식 등과 함께, 대소위원 활동 선전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조합원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와 결의를 모이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사측의 노무관리 방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대의원 활동 중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지 등이다.활동을 위한 정보를 모으는 경로는 노조・현장조직 소식지, 사측 홍보물, 대자보 등을 통한 방법이 가장 많았고(56.8%), 두 번째로 많은 것은 소속 현장조직 및 소모임 등에서 공급 받는 경우(10.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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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01

9.5%

10.6%

3.8%

7.1%

6.2%

5.3%

0.7%

56.8%

0% 10% 20% 30% 40% 50% 60%

무응답

노조/현장조직 소식지, 사측 홍보물, 대자보 등

소속한 현장조직 및 소모임 등에서 공급 받음

관심있는 부분은 노동단체 등을 방문해 자료를 구함

노조 대의원회의, 소위원회의, 교육 등을 통해 이해를 함

인터넷 등으로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함

조합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취합함

받아 보는 곳이 없음

그림3-10. 활동을 위한 정보를 모으는 방법

활동 내용 중 첫 번째로 비중을 두는 것은 조합원 고충처리 〉UPH⋅모듈화 협상 등 노동조건 개선활동 〉조합원 요구 수집 및 집행부 전달 〉조합원간 갈등 해소 〉집행부 결정사항 홍보 〉연대투쟁 〉조합원 경조사 참여 순이었다.

0% 10% 20% 30% 40% 50% 60%

무응답

조합원 경조사 참여

조합원 고충처리

조합원간 갈등해소

조합원 요구 수집 및 집행부 전달

집행부 결정사항 홍보

관리자 횡포개선

UPH협상, 모듈화협상 등

비정규직 투쟁

연대투쟁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그림3-11. 활동 내용 중 비중을 두는 순서

활동가들이 가장 비중을 두는 활동의 분포는 대의원 경험 유무에 따라, 혹은 현재 대의원인지 소위원인지에 따라 다르다. 한번 이상 대의원을 해본 활동가들은 UPH・모듈화 협상 등 노동조건 개선활동(23.5%)을 첫째로 중요하게 여기며, 그 다음이 조합원 고충처리(22.5%)라고 응답했다. 이와 달리 소위원 경험만 있는 활동가들은 첫째로 조합원 고충처리(24.8%), 둘째로 조합원 사이의 갈등 해소(22.8%)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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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02

대의원 경험 있음 대의원 경험 없음무응답 15.5% 7.8%① 조합원 경・조사 참여 9.1% 3.9%② 조합원 고충처리 22.5% 24.8%③ 조합원간 갈등해소 8.0% 22.8%④ 조합원 요구 수집 및 집행부 전달 11.8% 15.5%⑤ 집행부 결정사항 홍보 3.2% 6.3%⑥ 관리자 횡포개선 2.7% 4.4%⑦ UPH협상, 모듈화협상 등 노동조건 개선활동 23.5% 12.6%⑧ 비정규직 투쟁 0.5% 0.5%⑨ 연대투쟁 3.2% 1.5%

표3-20. 가장 비중을 두는 활동

다음은 활동가들의 일상 활동 양상을 조사한 결과이다.활동가들 중 85.3%는 회의나 다른 특별한 활동이 없을 때 조합원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82.0%는 가능하면 조합원의 경조사에 참여한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조합원들은‘대의원을 현장에서 볼 수가 없다’라고 비판하는 것일까? 아마도 설문에 응답한 대의원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라인을 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예민한 질문에 솔직하게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한편, 각종 협상 결과에 대해 조합원을 상대로 보고대회를 하는 활동가, 맨아워 협상결과를 사측보다 빨리 조합원들에게 알려주는 활동가는 응답자의 60.1%였다. 협상에 임하기 전에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경우는 57.8%, 연대투쟁을 잘하고 이와 관련해 조합원들에게 선전하는 경우는 54.8%였다.또한 활동가들 중 46.1%는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물량이나 고충 문제를 대부분 해결해주며, 44.1%는 자기의 생각과 조합원들의 요구가 충돌할 때 조합원의 의견을 따른다. 출근 후 선거구를 다니며 조합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의견을 수렴하는 활동가는 39.8%이며, 사측의 경영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활동가는 34.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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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03

응답 항목 그렇다 아니다나는 조합원의 경조사에 될 수 있는 대로 참여하는 편이다 82.0 2.6각종 협상 결과에 대해 조합원을 상대로 보고대회를 진행한다 60.1 12.9협상전에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마련한다 57.8 13.1출근하면 선거구를 다니며 조합원들과 인사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39.8 29.3회의 등 활동이 없을 때면 조합원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 85.3 0.5연대투쟁을 잘 하고, 이와 관련해 조합원들에게 선전한다 54.8 8.5물량, 맨아워 협상결과를 사측보다 빨리 조합원들에게 알려준다 60.1 11조합원들이 원하는 고충에 대해서는 대부분 해결해준다 46.1 14사측의 경영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34.7 27내 생각과 조합원들의 요구가 충돌할 때에는 조합원들을 따른다 44.1 23.8

표3-21. 일상 활동 양상 (단위 : 백분율)

이 중 특별한 활동이 없을 때 조합원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 성향은 35세 미만의 젊은 활동가들에게서 높고, 나이가 많을수록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반대로 사측의 경영 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을 공부하는 성향은 35세 미만에서 가장 낮은 반면, 40대 이상의 활동가들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연령 회의 등 활동이 없을 때면 조합원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

사측의 경영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35세미만 1.80 3.1935~39세 1.86 2.9940~44세 1.86 2.7345세이상 2.24 2.93

합계 1.89 2.92P(유의율) p=0.000 p=0.000

표3-22. 연령별 일상 활동 양상의 차이

* 위 수치는 항목마다 답변에‘매우그렇다’ 1점, ‘그렇다’2점, ‘아니다’3점, ‘전혀 아니다’4점을 부여하여 평균을 계산한 결과임.따라서 점수가 낮을수록 그 항목에 대하여 ‘그렇다’는 입장에 가깝고, 점수가 높을수록 ‘아니다’는 입장에 가까움

현장조직 활동 여부에 따라서도 일상 활동 양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장조직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각종 협상 결과에 대한 조합원 보고대회, 출근 후 선거구 순회와 의견 수렴, 연대투쟁과 선전, 사측보다 신속하게 협상 결과 선전, 사측의 경영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 공부 등에서 현장조직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보다 높은 활동성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과거 현장조직 활동을 했었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 활동가들이었고, 한번도 현장조직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경우 활동성이 가장 낮았다. 이런 결과는 현장조직 활동이 활동가들의 일상 활동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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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04

각종 협상 결과에 대해

조합원을 상대로

보고대회를 진행한다

출근하면 선거구를

다니며 조합원 들과 인사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연대투쟁을 잘 하고, 이와

관련해 조합원들에게

선전한다

물량, 맨아워 협상결과에 대해

사측보다 더 신속하게

조합원들에게 알려준다

사측의 경영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활동하고 있음 2.27 2.62 2.37 2.27 2.72

현재는 활동안함 2.68 3.00 2.58 2.59 2.89활동한적 없음 2.69 3.18 2.69 2.64 3.20

합계 2.48 2.87 2.51 2.44 2.90P(유의율) p=0.000 p=0.000 p=0.001 p=0.000 p=0.000

표3-23. 현장조직 활동 여부에 따른 일상 활동 양상의 차이

* 위 수치는 항목마다 답변에‘매우그렇다’ 1점, ‘그렇다’2점, ‘아니다’3점, ‘전혀 아니다’4점을 부여하여 평균을 계산한 결과임.따라서 점수가 낮을수록 그 항목에 대하여 ‘그렇다’는 입장에 가깝고, 점수가 높을수록 ‘아니다’는 입장에 가까움

일상 활동의 내용 중 사측의 경영 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에 대한 학습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조사 참여자 가운데 ‘그렇다’라고 대답한 활동가는 29.1%(매우그렇다+그렇다)에 불과하다.

16.2%

4.0%

25.1%

32.2%

20.2%

2.4%

0%

10%

20%

30%

40%

무응답 ① 매우 그

렇다

② 그렇다 ③ 그저 그

렇다

④ 아니다 ⑤ 전혀 아

니다

그림3-12. 사측의 경영전략이나 구조조정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98년 투쟁 이후 현장이 침체・악화되었다고 진단하였던 사실을 떠올린다면, 위의 결과는 활동가들이 현장 침체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현장을 장악해오는 자본의 공세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일에는 힘을 쏟지 않았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활동가들이 현장 침체의 원인을 조합원의 무관심과 개인주의, 혹은 노동조합 집행부의 잘못된 대처 등, 주체 내부의 문제에서만 찾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현장의 침체는 이를 노린 자본의 의도와 기획, 그리고 이를 위한 치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다시 일으키려면, 자본의 의도・기획・노력을 꼼꼼히 분석하고 대응 방향을 찾기 위해 활동가들이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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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05

다음으로 일상 선전 활동에 대해 살펴보자.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에게 노조 정책과 방침을 전달할 때 주로 유인물을 이용하거나 작업장에서의 일상적인 대화를 활용한다.

0% 10% 20% 30% 40% 50% 60% 70%

무응답

유인물 작업 및 배포

보고대회 등 설명회

작업공간에서의 일상적 대화

회식 및 술자리에서의 대화

전달을 거의 안함

둘째 16.0%9.1%20.0%37.5%15.3%2.2%

첫째 9.3%41.2%20.0%28.2%0.4%0.9%

무응답유인물 작

업 및 배

보고대회

등 설명회

작업공간

에서의 일

회식 및

술자리에

전달을 거

의 안함

그림3-13. 조합원들에게 노조정책, 방침 전달방식

그런데 조사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 정책이나 대・소위원 활동과 관련한 선전을 주 1회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8.6%의 활동가들은 임단투, 맨아워 협상 등 집중 투쟁 시기에만 선전을 하며, 10.2%는 월 1회 정도만 한다고 응답하였다.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현장을 장악하려는 사측의 공세는 일상적으로 현장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어오기 때문에, 지금처럼 취약한 일상 선전 활동으로는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자본의 공세가 갖는 본질을 파헤치고 현장의 대응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다각도의 일상적 선전을 강화해가야 한다.

14.4%

7.1%

18.4%21.3%

10.2%

28.6%

0%

10%

20%

30%

40%

무응답 거의 매일 주 2-3회 주1회 월1회 집중투쟁시기

그림3-14. 노조 정책이나 대・소위원 활동과 관련된 선전 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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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06

대의원 활동 중 어떤 면이 잘못되어 있다고 보는지를 조사한 결과, 활동가들은 사측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술자리를 가지는 경우가 가장 잘못된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조합원들과 주요 사안을 적극적으로 토론하지 않거나 조합원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21.8%), 대의원 업무를 마친 뒤에도 작업을 하지 않고 개별 행동을 하는 경우(12.7%) 순이었다.

0% 10% 20% 30% 40% 50% 60%

무응답

사측과 개인적인 만남, 술자리를 가짐

조합원들과 주요사안을 적극적으로 토론하거나 의견을 반영

하지 않음

대의원 업무가 끝난 뒤에도 작업을 안하고 개별행동을 함

모듈화, 해외생산 등 구조조정을 조합원에게 제대로 설명을

안함

노조 현안이 있을 때만 현장에 나타남

투쟁을 해야 할 때 조합원의 눈치를 봄

조합원이 요구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도 들어줌

맨아워 협상시 조합원들 이해에 편승해 비정규직으로 정리함

첫째 둘째 셋째

그림3-15. 대의원 활동 중 잘못된 점

한편, 일상적인 사측의 공세에 맞선 대응 방향이나 실천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에 조합원의 참여와 결의를 높이는 것 역시 현장 활동가들의 주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활동가들에게 지금의 현장 상황에서 조합원이 의사 결정 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물었다. 활동가들은 ‘선전에 그치는 활동을 극복하고 일상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38.6%), ‘조합원과 활동가들의 일상 활동 강화를 위한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해야 한다’(26.4%)는 두 가지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였다. 노동조합 본조 차원의 투쟁 기획을 강화하고, 그 집행을 위한 사전 수렴 과정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현안 대응이 부서와 선거구에 따라 단절되지 않도록 본조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각각 16.0%와 12.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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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07

6.2%

26.4%

38.6%

16.0%12.9%

0%

10%

20%

30%

40%

50%

무응답 조합원, 활동가들 일

상활동 강화 위한 소

그룹 모임 활성화

선전에 그치는 활동

을 극복하고 일상실

천을 강화해야

본조차원의 투쟁기획

과 집행에 대한 사전

수렴과정 강화

부서별, 선거구별로

단절된 현안 대응 본

조차원에 진행

그림3-16. 의사 결정 과정에 조합원의 참여와 결의를 모으기 위해 바꾸어야 할 것

이 결과는 조사 참여자들이 대・소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선거구 내에서 적용할 만한 해법을 중심으로 응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은 현장을 본부와 부서, 공장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 관계에 처하게 함으로써 단일한 흐름의 저항이 어렵도록 유도하며, 노동자 내부를 여러 갈래로 분할하려 한다. 이러한 자본의 의도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각 사안들을 전체 현장 차원에서 풀어가기 위해 노동조합 본조 차원의 대응 강화 방안 역시 절실한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5.2. 현장조직 활동

선진 활동가들의 모임인 현장조직은 조합원들의 선두에 서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이러한 활동의 결과를 조합원들에게 검증받고 신뢰를 얻는 활동가들로 조직된다. 90년대 이후 현장조직은 공공, 서비스 부문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되어 일반적인 조직 형태로서 자리잡고 있다. 현장조직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노조 민주화 투쟁위원회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입장과 경향이 분명한 조직으로 분화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현대자동차 현장조직들은 분화와 분열의 최고점까지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현장 노동자들은 ‘너무 조직이 많다’, ‘정치권처럼 되어가는 것 같다’라는 식의 냉소적 평가를 보내고 있다.최근 현장조직 운동은 몇 가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세상을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자본의 공세가 치밀해지면서, 현장에서는 조합원에게 설명하기도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활동가들은 활동 초기에 했던 학습, 투쟁 경험, 경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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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08

쌓아온 감각 정도로 근근히 유지하고 있다. 실력도 능력도 바닥을 치고 있는데, 재충전과 재훈련의 기회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입체적인 자본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단지 감각만 가지고 ‘저지하고 보자’,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수준의 대응을 모색하다가 패배적 사고에 빠져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올바른 실천 방안은 노동자의 원칙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조직은 일상적으로 꾸준히 학습하고 토론하여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현장조직 활동의 두 번째 어려움은 활동 전망이 없다는 점이다. 운동의 전망이 희미해진 자리에 이른바 ‘~되기’가 만연해 있다. 가령 대의원 되기, 위원장 되기, 시의원・광역의원・국회의원・구청장 되기 등. 현장조직 역시 집행부 장악을 위한 활동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선거 시기만 되면, 아니 선거 시기에만 바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활동의 전망이 사라짐에 따라 권력으로 집중되는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실은 ‘노동자 되기’는 뒷전인 것이다. 따라서 현장조직은 활동의 전망 속에서 자신의 현장 활동을 체계화하기 위한 학습, 특히 정치학습을 복원해야 한다. 세 번째 어려움은 활동가들이 재생산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을 중심으로 일이십년간 계속 활동을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새로 시작하는 활동가들은 거의 없다. 그 원인은 첫째,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입사원을 거의 뽑지 않아 현장 활동가의 세대 공백이 생긴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2002년 이후 입사한 젊은 노동자들과 기존 활동가들 사이의 세대 차이로 새로운 활동가를 조직하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현장조직들은 새로운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네 번째 어려움은 현장조직의 전국적 질서가 없다는 점이다. 98년 이후 고용 안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개별 사업장에 국한되고, 한 사업장 안에서조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진행되어왔다. 그 과정은 불안정노동 철폐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고용안정투쟁은 결코 자본의 고용이데올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현장조직의 전국적 질서를 만들어 유실되었던 총전선을 복원하는 일은 지금 현장조직 활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본 절에서는 현대자동차의 현장조직 활동에 대한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활동가들이 현장조직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현장조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현장조직의 바람직한 역할이나 본인이 속한 현장조직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현장조직의 분화 양상과 영향, 그리고 보스 문화의 영향과 폐해, 현장조직의 지도력 형성 과정은 어떠한지가 주요 내용이다.

1) 현장조직 활동을 하게 된 계기

1세대 활동가들은 노민추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장조직 활동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한발 먼저 의식화된 주변 활동가들이나 전체 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많은 활동가들이 새롭게 현장조직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과정은 주변의 활동가나 초기 학습모임 등 인맥을 통해 들어온 뒤 그 현장조직의 정체성에 대해 사후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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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09

2001년인가. 계기는 소위원을 하면서 또 좀 활동에 관심을 보이고 하면 여러 조직에서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거든요. 본인 스스로도 여러 조직이 있지만 활동을 폭 넓게 하려면 어느 조직에든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10여개 조직 중 관심 안 가지는 곳도 있고, 그나마 저 조직 정도는 다른 조직에 비해서 활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그 조직에서 물어보고 해서 가입하게 되지요. (활동가 A)노민추 활동이 처음이었어요. 당시에 1대, 2대가 어용 집행부 직권조인으로 조합원들을 배신하면서 3대 집행부를 진짜 대중의 힘으로 조합원의 이해로 제대로 한번 싸워보자 해서 민주세력을 연합해서 공동소위원회 이름으로 그때부터 선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지요. 이** 집행부 선거과정에 직접 참가하면서 그 이후로 현장조직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활동가 B)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따라다니다 보니까 조직적 성향과 목표는 무엇이고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지금 조금씩 배워나가는 것이지 그때는 모르고 들어갔어요. (활동가 C)시작하면서 했다고 보아야지요. 제 또래가 현장에 많아요. 왕창 뽑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노조활동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지금 현장조직처럼 강령도 없었고요.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뜻에서 모였기 때문에 현장활동하고 같이 시작한 것이지요. (활동가 D)03년도에 제가 소위원을 하다보니까 조직들이 워낙 많더라구요. 조직에서 활동하는 사람. 괜찮은 사람 포섭하려고 하고 제가 어떤 조직을 제 스스로 들어갔다기보다 주위의 조직원들이 다른 곳보다 우리 조직이 좋다 그런 식으로 해서 들어갔지요. 결국은 선거나 도와 달라. (활동가 E)

한편 2002년 입사자들은 종종 현장조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활동가들 중에서도 현장조직의 운영 방식이나 현장조직 운동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별로 안 들어가고 싶어요. 조직에 들어가면 조직에 얽매여서 자기 주관도 없어지는 것 같고요. 저희 대의원은 조직에 없어요. 조직에 있으면 안 찍어줘요. 조직의 성향이나 봤을 때는 일단 조직이라고 하면 하부층의 건의사항을 다 수용해주는 것도 있지만 그것도 별로 없고, 운영위에서 결정하는 것을 따르는 것 같더라고요.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일방적으로 이야기해야 하고 해서. (활동가 F)현장조직은 없습니다. 그런게 왜 필요할까 생각한다. 작은 정치판이다. 위원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활동가 G)

2) 현장조직 활동 여부

응답자 중에서 지금 현장조직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는 45.2%, 현장조직 활동을 했다가 지금은 그만 둔 경우는 17.5%, 현장조직 활동 경험이 없는 경우는 33.5%였다. 지금 현장조직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들은 연령별로는 35~39세나 45세 이상, 98년 투쟁 당시 무급⋅정리해고 대상자였던 사람, 대의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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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10

3.8%

45.2%

17.5%

33.5%

0%

10%

20%

30%

40%

50%

무응답 현장조직활동을 하

고 있다

현재는 하고 있지

않다

현장조직활동을 한

적이 없다

그림3-17. 현장조직 활동여부

현장조직활동여부연령 98투쟁 당시 상태 대⋅소위원 경험

35세미만 35~39 40~44 45세

이상대상자

아니었음무급휴직,정리해고

대의원 1회이상

소위원만 경험

① 활동을 하고 있음 44.1% 50.6% 39.5% 58.0% 44.2% 57.4% 66.1% 35.5%② 현재는 하지 않음 3.4% 14.2% 29.9% 12.0% 17.4% 18.8% 21.3% 14.2%③ 활동을 한 적 없음 52.5% 35.2% 30.6% 30.0% 38.5% 23.8% 12.6% 50.3%

표3-24. 현장조직 활동 여부 - 연령, 98투쟁 당시 상태, 대⋅소위원 경험에 따라

3) 해당 현장조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

현장조직에 몸담고 있는 경우, 그 조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몇 가지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 내용은 ①순수하게 후진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학습이나 자기 자신의 개발을 위해서, ②대중적인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③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인간적이어서, ④청렴해서, ⑤사무실에서 술을 절대 안 마시거나 대의원 2선 이상은 못하는 엄격한 내부 규율 때문에, ⑥현장조직을 재편해 나가기 위해, ⑦투쟁에 앞장서며 변함없이 활동하기 때문에, ⑧현장조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⑨분명한 이념적 지향 때문에 등이다.

4) 바람직한 현장조직의 역할

바람직한 현장조직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활동가를 양성하고 투쟁을 모의하는 것,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것, 공조직(노동조합)이 못하는 역할을 지원하거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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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 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현장 내에 국한되어야 한다거나, 현장 바깥의 정치세력화 노력을 지지 엄호하는 역할로 국한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선거에 매몰되지 말고 대・소위원들을 바로잡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볼 때 그들이 집권한다고 해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것, 일하는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 나이를 먹는데, 소식지 모음이나 이렇게 해서 교육하고, 비정규직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나가는 정도이다. 정리되지 않은 나를 표현하는 것일 뿐. 단지 노동자이기 때문에 하는 것. (활동가 H)저는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행부는 일정정도 자본가들과 협상의 필요성 여부. 일정정도 협상은 필요하다고 인정은 하는데요. 그런 역할들-집행부가 하지 못하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밖까지 아우를 수 있는 연대-까지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대자동차 현장조직이 그것을 잘 못하고 있고, 현장조직이 집행권 장악을 위한 활동이다 보니까 현장조직 본연의 임무를 못하고 있는 거지요. 실제로 집행부에서 하는 다른 일을 현장에서 찾아서 하는 일 정도 수준이에요. 그러다보니까 표를 얻기 위한 현장 활동, 조합원들의 고충처리를 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전락해버렸지요. 오히려 좀 전에 이야기했듯이 바깥까지 책임지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 I)현장조직이란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에서 할 수 없는 사업들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실질적으로 노조가 회사와의 관계 속에서 조합으로서 수행할 수 없는 것. 불가능하다기 보다는 입장이 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전체적인 문제로 가져가야 한다는 판단이다. 현장조직운동이란 노동조합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집행부가 잘할 때 힘을 결집시켜주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발전하면서 현장조직 또한 비판기능과 참여할 수 있는 기능이 같이 있어야 한다. (활동가 J)

면접 조사에서 언급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좀더 많은 수의 활동가에게 설문을 한 결과,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하고 활동가를 양성’이라는 응답이 43.7%로 가장 많았다.

5.8%

16.4%

43.7%

5.5%

24.2%

3.3%1.1%

0%

10%

20%

30%

40%

50%

무응답 같은 생각을 갖

고 있는 사람들

과 연대할 수

있는 조직

자본주의를 극

복하기 위한 투

쟁을 하고 활동

가를 양성하는

조직

현장과 정치조

직 간의 연결고

리 역할을 하는

조직

노조활동 비판

하고 대안을 제

시하는 중심의

활동을 하는 조

대의원, 소위원

을 바로잡기 위

한 부서별 조직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활동

을 하는 조직

그림3-18. 현장조직의 바람직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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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을 선택한 응답자의 비율은 지금 현장조직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중 51.5%, 예전에 현장조직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중단한 활동가 중 44.3%, 현장조직 활동의 경험이 없는 활동가 중 35.1%로 큰 차이를 보여, 본인의 현장조직 활동 경험이 바람직한 현장조직의 역할에 대한 의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응답 내용현장조직 활동 여부

활동을 하고 있음현재는 하지 않음

활동한적 없음 무응답 2.5% 1.3% 7.3% 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조직 18.6% 13.9% 15.9% ②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하고 활동가를 양성하는 조직 51.5% 44.3% 35.1% ③ 현장과 정치조직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조직 4.9% 8.9% 5.3% ④ 노조활동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중심의 활동을 하는 조직 20.1% 29.1% 28.5% ⑤ 대의원, 소위원을 바로잡기 위한 부서별 조직 1.5% 1.3% 6.6% ⑥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활동을 하는 조직 1.0% 1.3% 1.3% p값 (유의율) p=0.012

표3-25. 현장조직의 바람직한 역할 - 현장조직 활동 여부에 따라

5) 현장조직의 장점과 단점

현장조직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자기 현장조직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물었다. 자기 현장조직에 대한 진단은 위에서 질문한 현장조직 일반에 대한 진단과 조금 다른 양상이었다. 가령 자기 조직의 장점을 평가할 때, 현장조직 운동의 바람직한 역할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조직으로 똘똘 뭉치는 단결력’이나 ‘열심히 투쟁하는 모습’, ‘책임감’, ‘분명한 사상, 이념’ 등을 나열하는 식이다. 자기 현장조직의 문제점 역시 현장조직 운동 일반의 문제점 진단과 거리를 보였다. 반면 현장조직 활동을 하다가 현재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현장조직 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에 대해 보다 선명하게 비판하였다.

처음에는 활동차이, 이런 활동해보자고 시작했지만 활동하면서 이것도 아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래도 계속하는 것은 인간적 동지적 그런 것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어요. 10여년을 같이했던 것이 영향을 미쳐요… 조직이 말은 무성한데 실천을 못하는 것이 그런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보니 결국 회의를 해보면 결론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안되는 것이지요.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고, 항상 그 자리이고요. 저는 그런 차원에서 현장조직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재조직하는 것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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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런데 그것이 안되더라구요. (활동가 L)문제점은 현장조직과 집행부와 그런 문제들. 현장에 있으면서 내 스스로 혼란에 빠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나 혼자서 혼돈에 빠지는 거지. 과연 민투위가 노조를 운영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과연 민투위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가만히 있었겠느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뿐만이 아니고 민투위 조직원이라면 한번 이상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좀 그렇지요. (활동가 M)현대자동차 동지들 중에서 열심히 하는 동지들 중에 무소속인 경우가 많다. 그 친구들 대부분 보면 조직활동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아는데 조직 내에서는 바꾸고 정화시키고 하기에는 힘들고 잘 안되고 하니까, 나가고 무소속으로 활동할란다. 그런 심정이죠. (활동가 N)누구나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모든 현장조직이 집행권력장악에만 주요 목적이 가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 이미 인적구조가 다 모여서 어용/민주도 아니고, 제 조직들이 이념이 달라서도 아니고, 도대체 11개 12개로 나뉘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 (활동가 O)현대자동차 현장조직이 먹어준다고 해야 하나. 현장조직 간판이라도 생겨야 한다는 것으로 그러는 것 아닌가. 대의원대회보다 제조직 의장단 결정이 더 위력을 발휘하다보니까 현장조직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데 바람직하지는 않는데 바꾸려는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활동가 P)

현장조직 운동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운동’과 ‘활동가를 재생산하는 조직’으로서 바람직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장조직 활동가들이 자기 조직에 대해 보다 냉철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6) 현장조직의 분화

현대자동차 현장조직들은 여러 갈래로 분화를 거듭해왔다. 분화의 계기와 그 영향, 그리고 앞으로의 분화 전망에 대해 활동가들의 의견을 물었다.분화 계기에 대해서는 패거리주의, 주도권 다툼, 조직 이기주의,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대답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평가는 활동가들 내에서도 조직 분화의 긍정성이나 필연성에 대한 공감대가 매우 얇다는 것을 의미한다.현장조직들의 분화가 초래하는 결과들 역시 ‘대중을 위한다고 하지만, 다 조직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조합원들의 불신을 유발하거나 공조직의 역할을 현장조직이 압도해버리는 부정적 영향을 주로 언급하였다.앞으로 현장조직들의 분화에 대해 활동가들은 다양한 차원에서 전망을 내놓았다. 신진 활동가들의 재생산과 역량 강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긍정적인 여지를 남겨 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 현장조직들 사이에 활동 방식이나 이념상의 특별한 차이가 없으므로 합종연횡은 계속되리라거나, 선거를 앞두고 오직 집행을 위한 연합이 이어질 것이라는 냉소적인 판단도 있었다. 또한, 사측의 암약으로 분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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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스문화와 지도력

지도력이란, 종합하여 정의하자면 ‘활동의 모범’이다. 활동가들은 솔선수범, 성실함, 단호함, 실천력, 결단력, 도덕성, 자기희생, 주장과 실천의 일치 등으로 지도력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지도력은 활동 속에서,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대중의 동의를 통하여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지도력이란 결국 ‘대중적 인기’와 다를 바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런 평가는 이른바 ‘보스 문화’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현장조직 활동가로서의 지도력이 ‘보스 기질’과 분명 다른 것이기는 하나, 실제로 활동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활동가로 꼽은 인물들은 각 조직 내의 ‘보스’로 지목되는 이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보스문화에 대한 활동가들의 의견은 노동조합 집행부 한번 하면 조직이 만들어지는 현실이 바로 보스문화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활동가들이 치열하지 못하고 자기 신념이 없으니 보스가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는 것이라는 등 주로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보스 문화가 일사불란함을 보장해 줄 지는 몰라도 조직 내 민주적 결정을 방해하고, 현장조직들의 분화를 유발하는 등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현실적인 판단과 ‘활동이 역규정 당하고 있어 억울하다’는 느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현장조직 내에서도 일상적 운영이나 조직적 결집력에 대해 평가가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 현장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

대의원이나 소위원 활동에 대한 평가에 비해 현장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는 냉소적이었다. 현장조직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 폐해를 지적하는 내용이 많았다. 가장 흔한 지적은 현장조직이 너무 많다는 것으로서, 이는 현장조직의 분화 과정이 별다른 근거도 없는 분열에 불과하다는 생각, 노동조합 집행 권력을 잡기 위한 행보라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런 판단의 근거로 선거 때만 활동하는 조직들이 많다, 대안 없이 선명성을 경쟁하듯 비판만 한다, ‘자기 조직 중심성이 너무 강하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조합원들이 비판하는 현장조직의 문제점은 활동가들이 지적하는 지점과 대동소이하며, 현장조직의 대중 지지도는 전반적으로 아주 취약한 상태이다.

전부 다 얼굴을 아니까 골고루 다 얘기하죠. 근데 신문 봐서 알겠지만 뚜렷한 주장이나 새로운 아이템이나 대응방식이 없어요. 똑같은 소리로 말하는 데 실제로 집행부가 노(No)하면 끝이죠. (조합원 A)조직 가입한 것도 없고, 지지하는 것도 없는데 노동조합에 대해서 비판보다는 협조하는 식으로 했으면 해요. 잘된 것은 칭찬하고 아니면 비판하고 했으면 하고요. 그 내용들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제 살 뜯어먹기라고 해야 하나 조직의 위신을 세우고 앞으로 집행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우리나라 당파싸움 식으로 나아가서 안타깝더라구요.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죠. (조합원 B)지금 같은 경우 각 조직이 1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서로 협조를 해야 하는데 꼭 정치권마냥 되는 것 같고, 활동하는 것 보면 조합원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 세력화를 하는 것 같고, 위원장한 사람들은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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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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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조합원의 입장으로 해결을 해야지 우리 사업장보면 민주노총 선봉대식의 역할을 하는 것 같고, 나이가 많아지고 있는데 나이에 맞게 해야 할 것 같다. 협조가 안되지요. 제대로 하지 않으면요. (조합원 C)목적은 하나라고 봐요. 생산직 조합원들 인간답게 사는 거라고 봐요. 제 나름대로 불만이 많은 것은 자동차에는 무슨 당이 그렇게 많은지. 다 외울 수도 없고 너무 많아서. 자기랑 안맞으면 일부가 뛰어나와서 다른 당을 만들고 하는 거는 잘못됐다고 봐요. 지금 현재 노조에서 이끌고 있지만 다른 한 두개 당이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물론 그게 발전성이 있거든요. 견제세력이 있어야 발전이 있지만 자동차는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안좋다는 생각이 들죠. (조합원 D)보통 각 조직이 평등사회, 자주권을 외칩니다. 그게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얘기는 아니거든요. 그러면 우리 조합원들이 뭘 원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하거든요. 우리 조합원들은 많다고 하는데 우후죽순 생겨나요. 그러면 활동가들이 잘못된 거죠. 많은 데 자꾸 생기는 건 자기 욕심이에요. 우리 조합원들은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지가 해야 대장이고 남이 하면 대장이 아닙니까. 조합원들도 안 좋아하고 나도 안 좋아합니다. 정파 계파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지 할 일도 못하면서. 먼저 대중을 앞에 세워놓고 대중이 원하는 이걸로 가야죠. 대중이 원치 않는 데 자꾸 만드는 건 활동가로서 잘못됐죠. 대중이 없는데 활동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조합원 E)안좋게 생각하죠. 쓸데없이 많으니까. 자기네들은 조직을 할려면 특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특성이. 근데 여기서 김씨에서 도망가 허씨 만들 듯이… 진짜 참신하게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모이면 괜찮은데, 동그란데 있다가 뛰쳐나가 또 만들고, 자동차는 9개가 넘을 거에요. 모르겠습니다. 더 결속이 안되는 거 같아요. 인원만 많죠. (조합원 F)어떤 활동이라기 보다도 자기네들 위원장 선거, 대의원 선거 있을 때 죽어라 하고 박터져라 나온다. 평상시에는 큰 활동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조합원 G)조직이 선명성도 있어야겠지만 너무 자기 과거사를 모르거든요. 오로지 집행부를 위해서 움직이는 그런 제조직들이 너무 많고 제일 중요한 것은 말바꾸기나 음모론이나 흔들기, 이런 것보다는 대안제시가 중요하거든요. 조합원들이 옛날하고 틀려 가지고 풍문, 루머 이쪽보다는 정확한 증거에 의한 대안을 제시해주고 “요번에는 회사 쪽에서 그렇게 요구하는데 다 깨놓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똑바로 받아들이고, 똑바로 전달하고, 똑바로 반박을 해야 하는데 그 소리를 하게 되면요 회사에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냐 그런 부분들이 조금 아쉽고, 또 그렇게 오해받을 짓도 합니다. (조합원 H)활동가들이 진짜 완전히 남을 위해서 투쟁하고 선봉에 서겠나 싶어요. 지들 싸움만 그런 식으로 하고 정계에 진출하려고만 하고. 자꾸 편한 것만 하려고 하고. 이미 대의원 알아주잖아요. 본인이 그렇게 돼. 시의원, 구의원 출마하지요. 그렇게 출마를 하면 재정사업해서 전단지는 뭐가 그리 많은지. 핸드폰 사업한다고 하고. 그거 하나를 떳떳하게 했냐고. 그게 그냥 못 들어오는데 어느 사람 통해서 들어오는 건데 그러면 뭐 먹은 거 아니냐고. 그러면 옆사람 피해를 안주냐고. 진짜 싸게 해오는 건지 그걸 해서 어디에 쓰는 건지. 자기들 회비도 내잖아. 전부 비리를 해서 자꾸 구, 시의원 하는 데 국회 출마를 하는데 그렇게 써 먹는 거 아니냐는 거지. (조합원 I)별로 탐탁치 않아요. 조합원들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자기 조직이 이익이 있으면 하고, 이익이 없으면 안하고 활동가들에게 이야기하면 자기 조직에 이익이 없으니까 신경도 안써 주고요. (조합원 J)필요하죠. 그런데 일률적이고 편율적으로 하고 너무 집권적으로 하니까 현장활동 방향에 너무 틀리니까. 요새 노동귀족이라고 말이 나오는데 조합원들이 그렇게 인식하는 상황이 문제가 있죠. 그 사람들 거의 10년간 일 안하고 활동만 하는 사람도 수두룩하고. 예전에 민주노총 교육을 갔더니 강사가 노조가 권력이 있냐고 물어봐서 저는 60%정도 권력이 있다고 했는데. 너무 권력화되어 가는 것도 문제가 있고. 권력은 있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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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너무 집권만 치중하는 게 약점이죠. 흩어졌다 뭉치고 그런 것도 집권을 위해서니까. 들어와서 같이 하자고 하는 것도 누구를 위해서 같이 하는 겁니까. (조합원 K)

앞에서 활동가들의 일상 활동을 평가할 때, 현장조직 활동가들이 조직 활동 경험을 하지 않은 이들보다 활동성, 의식성, 일상 활동의 성실성 등에서 모두 더 우수함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 조합원들의 반응이 이렇게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조합원들이 대・소위원 활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대의원 조직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선거라는 절차를 거쳐 만들어지며, 노동조합의 공식적 체계에 속한 채로 노조의 정책, 활동을 현장 내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선거에 의해 뽑히고, 매 시기 활동에 대해 평가받는다. 하지만 현장조직은 선거라는 절차를 밟지 않으며, 노동조합 공식 체계와 무관하게 일상 활동이나 투쟁 시기에 대중의 최선두에서 활동하는 동지들로 구성된다. 또한 조합원들도 대・소위원과 전혀 다른 것을 현장조직 활동가들에게 기대하며, 전혀 다른 잣대로 현장조직을 평가한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잘하고 있느냐’를 말하는 내용 속에 드러난다. 노동조합 체계 속에 있는 대・소위원들이 잘하고 있는 지점은 고충 처리, 현장 현안에 대한 신속한 대응 등이라고 하는데 비하여, 현장조직에 대해서는 사안의 외피에 속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준다거나, 노동조합을 견제하는 동시에 노동조합 투쟁에 실제 현장의 동력을 조직해내는 점, 자기 개인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전체를 위해 헌신하는 점 등을 이야기한다. 이런 평가는 앞에서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현장조직의 바람직한 역할-‘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과 활동가 양성’, ‘노동조합 활동 비판과 대안 제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합원들은 제조직들이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다하는 한, 현장조직의 숫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외곽만 보잖아요. 훌륭한 것 같아요. 나라면 못할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고. 자기 이윤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고요. (조합원 L)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있으려면 여러 조직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활동은 잘하고 있어요. 대의원들 모아서 토론하는 것이 장점이예요. (조합원 M)어쨌든 활동가들이 있으니까 움직이는 거니까 활동가들 자체가 자중만 잘하면 괜찮아요. 그건 별문제 아니예요. (조합원 M)현장조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정당이 많아서 서로 견제도 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많고 적은 것은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 (조합원 N)이념과 정서가 있으니까 정당이 있듯이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건전하게만 활동한다면 좋은 거지… (조합원 O)대・소위원 그런 역할을 거의 다 맡고 있고 같이 하고 있다. 모듈이라든지 이런 게 터지면 논의도 하고 토론도 하고… 어떻게 만들어 갈껀가… 각 조직도 있지만 조직 외적으로도 또 하는 게 있다. 각 공장마다 조직이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안하는 사람들보다야 낫다. (조합원 P)제조직은 많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이런 조직의 개인이기주의가 아니고 못하는건 질타하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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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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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공감대 형성해서 같이 투쟁할땐 투쟁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합원 Q)

현장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냉소와 불신은 그만큼 현장조직 활동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기대하는 현장조직의 임무는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현장조직의 역할과 대동소이하다. 지금 현장조직의 행보가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실망하는 것이다.

4.6. 활동가 형성과 강화에 대하여

현재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노동자적 입장과 실천을 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활동가 재생산에 대해서는 활동가들 모두 입을 모아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였으며, 이 일을 중심에 두고 활동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활동가 재생산은 신진활동가를 발굴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 활동가들의 거듭나기까지 포함해야 한다.활동가 재생산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이번 조사에는 각 활동가들이 활동을 시작한 계기와 활동력 상승・하락의 경험, 어려움과 보람, 신세대 조합원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신진 활동가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 등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이를 통하여 활동가 재생산을 위한 방법과 실천, 계기들을 만드는 실천적 대안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4.6.1. 신진활동가들의 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활동가들은 신진활동가들이 잘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 자체가 침체되었기 때문에(23.5%), 새롭게 들어오는 신세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운동에 관심이 없어서(22.8%), 기존의 활동가들이 새로운 활동가 재생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19.5%), 기존의 활동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18.2%) 등의 순서로 꼽았다. 노동조합 운동의 침체를 가장 큰 이유로 지적하는 배경에는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면 활동가들의 재생산도 잘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기대가 전제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 활동가들 자신은 어떤 계기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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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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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22.8%

9.5%

19.5% 18.2%

23.5%

0%

10%

20%

30%

무응답 새롭게 들어오는

신세대 조합원들

이 노동조합운동

에 관심이 없어

새롭게 들어오는

신세대 조합원들

은 대부분 추천

제로 들어와서

기존의 활동가들

이 새로운 활동

가 재생산에 관

심을 가지지 않

아서

기존 활동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현대자동차 노동

조합 운동 자체

가 침체되었기

때문에

그림3-19. 최근에 신진활동가들의 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4.6.2.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시기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노동조합 설립 이전에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골방학습, 독서모임 등을 통한 의식화나 현장에서의 저항을 통한 자연스러운 변화, 그리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감격과 충격 등이 주요 계기였다.

저는 무노조 시절에 들어왔기 때문에,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겪으면서 노조설립의 감격, 감동적이었고…85년(84년 입사)부터인데, 당시 현자 내에 독서모임이 있었다. (활동가 T)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로, 불만을 많이 해소하기도 했고, 그리고 노동조합이 생겼고, 생기자마자 앞장서서 했죠. (활동가 S)

굵직한 투쟁의 경험은 노동조합 설립 이후에도 여전히 활동을 시작하는 주요 계기로 꼽혔다. 대표적으로는 양봉수 열사 투쟁과 96~97년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 투쟁,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들 수 있다. 관리자들의 불합리한 처우나 열악한 현장 상황에 대한 반감과 저항 역시 노동조합 설립 이후에도 여전히 중요한 활동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학습 모임이나 독서 모임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는 노동조합 설립 이후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양봉수 열사 죽는 것 때문이었어요. 그것도 감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떤 놈은 죽더라도, 어떤 놈은 감방 가는 줄 알면서도 앞에서 싸우고, 싸우는 것 하면 내가 한몫 하는데 저 사람 용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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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19

평상시에는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 보면서… (활동가 U)96년 3월에 입사해서 96~97노개투 터지면서 눈에 띄었고 전** 동지가 같은 반에 있었고, 저는 그때 사실 신나게 했어요. 그 투쟁이 재미있었어요. 노동법 개악 투쟁 반대가 목표라기 보다도 그 투쟁이. 집단적인 투쟁이 재미있어서 시작을 했었고요. (활동가 X)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 했었거든요. 94년도 때 임투 할 때 현대자동차 신문에 많이 떴었거든요. 그 당시에 제가 70만원 받았는데 언론에서 220만원이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빨갱이라고 생각했어요. 220만원 받는데 왜 데모하냐 말이예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다가 들어와서 보니까 현실은 안 그렇더라고요. (활동가 Y)93년 그 당시에 출근하니까 해고자들이 신문 팔고 있더라구요. 머리띠 보고 빨갱이 새끼구나 생각을 했어요. 노동해방을 이야기하길래 웃기는 동네구나 생각했거든요. 막상 일을 해보니까 하급관리자들이 말도 막하고 일도 힘들고, 왜 일찍 나가는데. 뭐 이런 저런 것 하지 말라는 탄압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기본적인 것 있잖아요… 당시에는 화장실도 못 갔어요. 화장실 갈 때 하도 사람이 많아서 현장에서 그냥 쉬한 적도 많거든요. 또 월차내면 약봉지를 가지고 오라고 하고 진단서 끊어오라고 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불량내면 난리나지요. 콘베어 조금만 서도 날부리 들고 쫓아와서 구박하고, 활동하는 사람들하고 접촉이 있었고, 또 자연스럽게 맞다하고 관리자들하고 자주 싸웠지요. 대의원이라는 것, 소위원이라는 것 알게 되고 했지요. (활동가 V)무급휴직 복직하면서부터요. 99년 10월말에 복직해가 2000년 초부터 활동시작 했어요. 첫째는 회사에 대한 반감이고, 그런 것에서 시작이 된 것이지요. 소위원으로 시작했어요.(활동가 Z)자동차 들어올 때는 엄청나게 환상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편하고 잘 살 수 있겠구나 하고요… 처음에 야간을 했는데 와 정말 힘들데요. 10시간을 하는데 진짜 시계를 백 번은 더 쳐다보고, 그러면서 환상이 깨진 것이지요… 그쯤에 와 이래서 사람 사는 데가 아니구나 싶었는데, 그 때 노조를 접하게 됐어요. 그 때 저시급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동료들이 문제제기를 했는데요. 조합원 자격을 얻기 전이었어요. 쉽게 동의가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현장에 대한 불만, 일에 대한 불만 이렇게 어떻게 사나 하는 불만. 그렇게 하다보니까 노동조합을 찾아갔어요. 다른 곳에서 학습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힘든 노동조건 개선하기 위해서 스스로 느꼈어요. (활동가 W)

최근에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때의 불만과 투쟁 경험이 정규직 입사 이후에도 지속되거나, 기존 활동가들의 제안으로, 혹은 기존 활동가들에 대한 불만 등이 주요한 활동 계기였다. 열악한 작업 조건이나 관리자들의 비인간적 대우, 열사투쟁 등 강력한 현장투쟁의 경험 등은 이제 별다른 계기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변화는 사측의 현장 통제와 노무관리 방식 변화, 노동조합 운동의 침체 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장활동은 작년에 시작했고, 정규직에 들어오기 전부터 하고 싶었어요. 비정규직에 있으면서 불만이 많았어요. 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그런게 많았어요. 들어와서도 반에 대의원이 있으니까, 어떻게 하라고 이끌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활동하게 되었어요. (활동가 H)대의원 나오게 된 계기는 젊은 사람 생각을 전혀 반영해 주지 않는… 대의원, 소의원 등 활동가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했구요, 물론 사측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이런 것에 대해 젊은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에 문제를 느꼈어요. (활동가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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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20

위와 같은 면접 결과를 토대로 양적인 분석을 위하여 설문을 통해 다시 한번 조사한 결과, ‘특별한 동기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한 경우가 19.4%로 가장 많았고, 두번째로 많은 것은 임단투나 외부 집회 등에 참여하면서 시작한 경우(17.1%)였다. 그 다음으로는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이나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 과정에서 활동을 하게 된 경우로, 응답자의 14.1%가 이에 해당한다.

3.8%

12.9%

14.1%

19.4%

17.1%

10.1%

0.5%

13.8%

7.4%

1.8%

0% 2% 4% 6% 8% 10% 12% 14% 16% 18% 20%

무응답

87년 노조설립 및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95년 양봉수,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 과정에서

특별한 동기 없이 자연스럽게 참가하게 되었다

노조의 임단투나 외부 집회에 참여하면서

작업현장에서의 불만이 누적되어서

노동조합의 교육이나 홍보물을 통해서

주위의 권유로노조 간부, 대소위원, 동료 등)

대의원, 소위원 활동을 하게 되면서

외부 단체에 참가하거나 회사밖 선배, 동료의 권유

그림3-20.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된 계기

활동 시작의 계기를 나이와 98년 투쟁 당시의 위치, 대의원 경험 유무 등에 따라 보다 상세하게 분석해보았다. 40세 이상의 활동가들은 87년 노동조합 및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35~39세는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과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통해, 그리고 35세 미만은 주위(대의원, 소위원, 동료, 선배 등)의 권유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98년 투쟁 당시 무급휴직자나 정리해고자였던 활동가들의 경우는 95년 양봉수 열사투쟁과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가장 많이 꼽았다. 한편, 대의원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 중에서는 87년 노조설립 및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하는 경우가, 대의원 경험이 없는 이들은 특별한 동기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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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21

구분87년

노조설립⋅

노동자대투쟁

96년 양봉수

⋅98년투쟁

특별한 동기없음

임단투⋅

집회현장 불만 누적

노조 교육⋅

선전주위 권유

대소위원 활동

외부 단체등

기타

⑴나이

35세미만 10.0 13.3 3.3 10.0 36.7 13.3 3.335~39세 1.2 22.8 22.2 19.1 8.0 0.2 11.1 6.8 3.7 3.740~44세 21.2 9.0 18.6 0.5 12.8 7.7 6.4 0.6 3.245세이상 40.8 6.1 18.4 4.1 10.2 14.3 6.1

⑵98

당시상태

대상자 아님 13.5 10.7 0.7 7.2 11.3 0.6 14.4 7.8 1.6 2.2무급, 정리해고 9.1 27.3 14.1 16.2 7.1 11.1 7.1 3.0 5.1

⑶노조지위

대의원 경험 19.7 15.8 16.4 17.5 8.7 9.3 8.2 2.2 2.2소위원만 경험 7.4 11.4 20.8 17.8 13.4 0.5 15.8 7.9 2.0 3.0

표3-26.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된 계기 - 나이, 98년 당시 위치, 노조지위에 따라 (단위 : %)

* ⑴ p=0.000 ⑵ p=0.007 ⑶ p=0.021

이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투쟁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며, 주위 활동가들의 권유는 주로 투쟁을 경험하기 어려운 시기에 유효하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동가를 재생산하는 가장 유력한 ‘자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4.6.3. 활동력의 상승과 하강, 활동의 보람과 고충

활동가들은 본인의 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를 ①주요한 투쟁(96-97 노개투 총파업,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시트매각 저지투쟁 등)이 있을 때, ②초기에 열정적으로 시작할 때, ③주요 국면에서 노조활동이나 현장 활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했을 때(95년 5대 집행부 당시, 98년, 99년, 2000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직후, 해고투쟁 등), ④본인이 노동조합이나 현장 활동에서 일정한 직책과 역할을 가지고 활동했을 때 등으로 꼽았다. 투쟁의 상승기에 활동력도 고조되고, 사측이나 어용세력의 준동으로 노동조합 활동이나 활동 전반의 위기감이 강하게 조성되었을 때 생기는 긴장이 활동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시기들은 대부분 활동가의 몰입도가 높고, 그에 따른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이 왕성하며, 그 활동을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반면 활동에서 가장 침체된 시기는 대부분 입을 모아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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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22

지금이 가장 침체되어 있다. 내 할일을 못 찾고 있으니까. (활동가 1) 지금이 가장 내려가 있는 시기인 것 같고요. 대개 처음에 시작할 때는 초기에 가장 목표도 크고 왕성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계기만 주어진다면 선거구에 건강한 조합원이 생기면 모든 걸 털고 건강한 조합원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자꾸 회의를 많이 느끼는 거죠… 현실과 원칙 사이의 괴리감과 결국은 대중보다 훨씬 앞에서 혼자 깃발 들고 서 있는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거죠. 결국 대중들 속에 녹아들면서 알려 나가는 게 필요해요. (활동가 2)왜냐면 현장에 가도 전부 개인적이고, 이야기도 없고 하니까 힘이 안나요. (활동가 3)분명히 제 생각하기에는 이게 옳은 길인데, 다수 조합원도 옳은 길인데 대의원들이 무시해 버렸을 때, 합리적으로 결정해버릴 때, 그 때는 정말 하기 싫죠. 그러면 한달 동안 얘기 안해 버립니다. 말 안하고… 그러면 니 마음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이해해 달라고… (지금이 그런 시기인가요?) 네. (활동가 4)가장 떨어져 있던 시기는 지금인 것 같다. 개인 전망도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떨 때는 이러면서 내가 왜 이 판에 발 담그고 있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기아 사태 터지고, 그때 야간근무 마치고 가다가 이유 없이 눈물이 터져서 차 세워놓고 10분 가까이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다. 왜 그랬지 하고 생각해보니, 그날 야간근무하기 전에 기아자동차 일 터지고 나니까 나하고 십년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농담식으로 말하는데 “00, 니 얼마 받아 먹었노” 해서 “배불러 터지도록 먹었지”하면서 했던 것이어서 인 것 같다. 활동 속에서 내가 조합원 사이에 위치 점하는 것도 예전만 같지 못하고, 그러한 문제를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넘길 수 있는 위기인 것 같다… 아무리 농담이지만 활동가들이 그렇게 인식된다는 것이 그렇다. (활동가 5)전체 운동진영의 전망이 불투명하면서 활동가 개개인의 활동전망 역시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있다. 활동가 앞에 놓여진 현실은‘함께했던, 나의 활동을 지지하고 인정해줬던’조합원들과 먼 거리감이다.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개별적으로‘현장 조합원들 속으로 들어가 다시 처음부터 조직하고, 교육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거나, 활동가 개인의 품성이나 성실함을 강조하거나(다 떠나가 성실하자. 운동에 있어서 성실하자) 혹은 운동전반에 대한 비판과 회의감으로 현장에 대한 판단이 비관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현장은 더 이상 투쟁의 근거지로서 역동성이 넘쳐나는 곳이 아니다. (활동가 6)

활동력이 그리는 상승과 침체의 곡선은 개별 활동가들이 활동에서의 성취감과 회의감을 느끼는 시기와 거의 일치하였다. 활동가들은 크고 작은 투쟁에서 이겼을 때, 조합원들에게 인정받았을 때, 연대투쟁하여 승리했을 때, 목표를 달성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됐을 때, 운동이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반면, 노사협조주의 집행부가 들어설 때, 현장이 분열될 때, 조합원들에게 욕을 먹을 때, 투쟁이 협상을 통해 묻혀버릴 때, 98년처럼 배신감을 느꼈을 때,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경제투쟁이나 현안에 매몰될 때 회의감을 느낀다고 답변하였다. 그렇다면 활동가들의 고충은 무엇일까. 가장 두드러진 고충은 활동가 사이의 갈등과 이념적 방향성의 상실이었고, 가정 문제, 재정 문제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지금 활동가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혼란과 무원칙한 분열・대립을 극복하고 자본에 맞선 저항의 이념을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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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23

9.5%

13.7%

15.5%

3.3%

6.7%

6.4%

18.8%

9.5%

5.3%

5.8%

2.7%

2.7%

10.9%

3.5%

7.8%

2.2%

3.8%

4.7%

16.2%

9.1%

14.2%

6.9%

13.7%

7.1%

0% 5% 10% 15% 20% 25% 30% 35% 40%

무응답

재정문제

가정문제

건강문제

일의 과부하(중복)

능력개발의 한계

활동가 간의 갈등

노조운동의 전망 불투명

이념적 방향성의 상실

시간이 부족해서

활동가 간 대화부족

작업 조건

첫째 둘째

그림3-21. 활동의 고충

4.6.4. ‘신세대’ 조합원과 ‘신세대’ 활동가

공통의 조건, 공통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들은 특정 성향을 지닌 집단으로 묶인다. 공통의 조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현대자동차 활동가들은 87년 노조건설 1세대, 1세대를 통해 양성된 2세대, 조직 활동을 통해 가담한 3세대로 나뉘며, 조합원들은 2002년 이후 입사한 신세대와 그 이전에 입사한 구세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신진활동가를 재생산하는 토양은 바로 이 신세대 조합원들이다. 따라서 신세대 활동가 조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신세대 조합원의 특징과 조건을 분석하였다.

1) 신세대 조합원의 특징

면접을 통해 신세대 조합원들에 대한 활동가들의 평가를 조사하였다. 이에 따르면 신세대 조합원들은 구세대에 비하여 학력이 높아졌고,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하지만 회사에도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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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324

에도 관심이 없으며,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신세대의 문화는 구세대와 큰 차이를 보이는데, 가령 구세대가 노래방으로 모인다면 신세대는 PC방으로 모이고, 구세대가 스포츠 머리를 한다면 신세대는 염색 머리를 선호한다. 또한 신세대는 집단적 의식이 약하며,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이런 면접 내용들을 바탕으로 신⋅구세대 조합원들의 차이점을 비교한 설문 문항을 구성하여 보다 많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각 문항에 대한 동의 여부를 확인하였다. 그 결과, 60% 이상의 활동가들이 동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신세대의 특징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신세대는 경험이 부족하여 사측의 의도를 빨리 파악하지 못한다. 신세대는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솔직히 표현하지만, 개인주의⋅자기중심적이며 집단적 의식이 약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도 적다. 사측의 이데올로기에 쉽게 영향을 받고,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약하다.

65.7

68.7

72.7

39.3

85.2

59.5

49.7

67.7

64.2

73.2

57.6

0 10 20 30 40 50 60 70 80 90

신세대는 사측 이데올로기에 빨리 영향을 받는다

신세대는 노동조합에 관심이 없다

신세대는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신세대는 집회참석율이 저조하다

구세대는 사측의 의도를 더 빨리 파악한다

신세대는 대기업에 들어왔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신세대는 활동가들을 기득권이나 권력으로 생각한

신세대는 집단적 의식이 약하다

신세대는 평생직장으로 보지 않는다

신세대는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신세대는 노조가 개인적 실리를 챙겨주기를 바란다

그림3-22. 신세대 조합원에 대한 다양한 생각 (단위 : 비율 %)

활동가들은 신세대가 노조 활동 중 실리적인 경제투쟁에 더 관심이 많다고 본다. 구세대 조합원들에게는 막연하게나마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랴’는 사명 의식이 있는데 비하여, 신세대들은 활동이란 활동가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다. 대규모 투쟁을 경험한 바 없기 때문에 사측의 의도를 잘 모르고, 노무관리 정책에 쉽게 좌우된다. 그 저변에는 대기업에 들어왔다는 자부심도 있는 것 같다. 활동가의 존재 의미도 잘 모르고, 막연하게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소위 ‘라인을 끊는 행위’가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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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325

일부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참여 측면에서는 신・구세대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보기도 한다. 그들은 집회 도중 신세대가 빠져나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고참들이 먼저 도망가는 것이며 신세대들이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참여도의 저하는 신⋅구세대를 막론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노조활동 참여율에는 차이 회사에 대한 인식<차이 있다>- 구세대는 역사적인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 ‘우리 아니면 누가 하겠노’- 신세대는 비정규직 투쟁하자면 안가고, 임금투쟁하면 잘 따라온다. - 활동이라는 것이 특정 누가 하는 거라 생각한다. - 노조활동을 부담스러워한다. - 빨간 조끼는 보기도 싫고, 왜 라인을 끊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불안한데 노조가 웬말인가. - 신세대가 큰 투쟁을 못 겪다보니까 회사의 정책에 대해 잘 모른다. - 구세대보다 노조 집회 참여율이 떨어진다.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더 크다. - 추천인 제도로 들어온 비정규직 출신 신세대들은 노조활동에 참여가 크게 떨어진다. - 활동가를 기득권이나 권력으로 생각한다.

<차이 없다>- 집회참여에별 차이가 없다. - 고참들이 집회 도망가니까신세대도 같이따라하는 거다.

- 신세대가 사측 이데올로기엘 더 빨이 영향을 받는다. : 회사가 합리적이다. - 회사의 회유적인 노무관리의 변화로 영향을 받는다. - 노조나 활동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 경험에 의해 구세대가 사측의 의도를 더 쉽게 판단한다. - 대기업에 들어왔다는 자부심.

표3-27. 노조활동 참여율와 회사에 대한 인식

2) 신세대 활동가

이런 신세대 조합원들 가운데 활동가로 나서는 숫자는 매우 적다. 예전보다 사측의 탄압이나 통제가 노골적이지 않고, 일상적인 분노와 저항을 체험할 만한 투쟁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장조직들은 대부분 신규 활동가 조직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활동가들이 자기 주변에서 평소에 눈여겨 보아둔 신세대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정도일 뿐이다. 투쟁을 통해 운동을 결의하게 된다거나, 투쟁의 과정에서 현장조직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인간 관계를 통해 조직되고 있는 셈이다.이른바 ‘구세대 활동가’들은 신세대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문화의 차이, 경험의 차이, 세대 간 차이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가령 구세대 활동가들은 자신의 활동을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세대는 ‘부서의 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참을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비판한다. 한편 신세대 활동가들은 구세대들이 사측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태도를 갖는 점, 권위적인 질서를 이루고 있는 점, 자기들은 안하면서 후배들에게 하라고 말만 하는 점 등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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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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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조합원 조직화가 중요한 과제라는데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신세대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신입사원이 극히 일부 부서에만 들어왔기 때문에 주변에 조직할 신세대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활동가들은 신세대의 무관심이나 소극성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성과도 얻고 있다는 응답은 7.8%밖에 되지 않는다.

10.6%

20.0%

2.0%

30.6%25.3%

7.8%3.8%

0%

10%

20%

30%

40%

무응답 주변에 조직

할 신세대가

없다

조직할 필요

성을 못 느낀

신세대들이

관심이 없어

노력하고 있

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

노력하고 있

으며 성과도

얻고 있다

어렵지만 조

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그림3-23 신세대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있습니까?

4.7. 소결 - 활동가 재생산을 위한 몇 가지 제언

이번 조사를 통해 현대자동차 현장 활동가들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활동을 지속하는 동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활동가들은 투쟁과 집회에 직접 참여하여 얻는 경험들, 사측의 현장통제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불만에 일상적으로 맞서고 저항해온 경험들을 통해 노동운동을 시작한다. 활동 초기의 열정과 성취감을 지속시키는 힘 역시 자본과 날카롭게 맞서는 투쟁의 경험에서 나온다. 자본의 탄압이 거세거나 현장활동과 노동조합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도, 그 자체가 활동가들을 주눅들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으로 더욱 치열하게 활동하여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다시 한번 활동가로 조직되는 전화위복이 되어왔다. 크고 작은 투쟁에서 승리를 얻고, 현장의 신뢰를 확인하고, 운동이 전진하고 있다는 희망을 느끼면서 활동가들의 성취감은 한층 고조되고 신명을 얻는다.그러나 자본의 공세가 일상화되어 노동현장과 노동자의 삶 깊숙이 파고들면서, 또한 중요한 몇몇 계기들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올바른 방향을 실현하지 못하고 패배함으로써,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운동 전반의 동요 속에 활동가들 역시 현장활동을 힘차게 전개하기가 쉽지 않다. 현장에 대한 자본의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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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결과 …… 3장. 고용 이데올로기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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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전망의 불투명함과 이념적 지향의 모호함으로 힘겨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활동가의 재생산 역시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공세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 과정을 냉철하게 평가하여, 오류를 극복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활동가들은 현장의 침체 원인을 조합원들의 개인주의⋅실리주의에서 찾을 뿐, 그 바탕을 이루는 자본의 공세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신세대 조합원에 대한 판단 속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이의 차이, 문화의 차이, 경험의 차이 뿐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성별의 차이, 지역의 차이 등을 부각하여 노동자들을 갈래갈래 나누고 결국 한 개인 임금 노동자로서만 남게 하는 것은 정확히 자본의 이해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 차이를 넘어 개별화된 노동자를 조직하고 묶어세우는 것이 활동가의 역할이다.활동가 개인 혹은 활동가 집단에 대해서도 반성만 있을 뿐 정확한 원인 진단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만일 운동의 침체 원인이 정말로 활동가들의 안일한 관점이나 자세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활동가들을 모두 갈아치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러나 활동가들을 흔들고 공략해오는 자본의 공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자본의 공격에 맞서 현장에서의 저항을 조직하는 활동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데 대한 반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 역할을 못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활동가들의 발을 묶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그 진단을 위해, 우선 앞서 살펴보았던 ‘고용이데올로기’의 형성과 확대 재생산 과정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현장을 장악하려는 자본의 치밀한 기획과 집요하게 반복해온 공세, 그 본질을 드러내어 분명한 전선을 긋지 못하고 변죽을 울리기만 했던 노동의 대응, 그리고 그 결과 차츰 자본의 기획이 현실화되어온 과정들을 말이다.두 번째로는 노동조합의 투쟁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조합원이나, 그런 대중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활동가들의 모습에 가려서 잘 보지 못했던 주체 내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인해야 한다. 현장 활동가나 현장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냉소를 탓하기보다, 그 냉소의 배경에는 자본에 맞서 노동의 원칙과 전망을 지켜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 같지 않은 활동가들의 모습을 비난하기보다, 그런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반성의 잣대가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노동의 ‘힘’으로 남는다.이제껏 현장을 ‘살맛나지 않게’ 만들어온 원인이 자본에 있음을 확인하고, 그 공세에 당하고 무너진 패배자로서가 아니라 저항할 유일한 주체로서 현장 노동자에게 남아있는 희망과 힘을 확인하였다면, 그 저항을 일구어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실천의 무기를 찾아내는 일이 남는다. 일회적이고 일면적인 대응으로는 일상적이고 전방위적인 자본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다.그런 점에서 자본이 현장에 남긴 결과인 포괄적(총량적) 노동강도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증거로 적극 활용하자. 또한 이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노동자의 몸과 삶’을 현장에 꾸준히 알려나가자. 이것이야말로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버린 ‘고용’이나 ‘임금’을 밀어낼 노동자의 이데올로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