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단 2011-1호 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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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만에 한국 땅을 밟았고,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도 반환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국외소재 한국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데는 철저한 우리문화재의 유출 경로 파악 등‘조사’를 통해 이뤄진 결실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의‘국외소재 한 국문화재 조사연구’사업은 해외에 있는 우리문화재를 되찾거나 활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반기호에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 문화재연구 조사∙지원 사업에 대해 소개한 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외소재 우리문화재에 대한 조사연구 사업과 함께 동남아시아 등 외국 문화 재연구에 대한지원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중대표적인 미술문화재연구실의‘국외소재 한국문 화재 조사연구’사업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몽골의 암각화∙사슴돌∙비문’학술조사 지원 사업 에 대해 집중 조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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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만에 한국 땅을 밟았고,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도 반환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국외소재 한국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데는 철저한 우리문화재의

유출경로파악등‘조사’를통해이뤄진결실들이다. 그런의미에서국립문화재연구소의‘국외소재한

국문화재조사연구’사업은해외에있는우리문화재를되찾거나활용하는데중요한역할을하고있다

해도과언이아니다.

상반기호에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 문화재연구 조사∙지원 사업에 해 소개한

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외소재 우리문화재에 한 조사연구 사업과 함께 동남아시아 등 외국 문화

재연구에 한지원도적극적으로펼치고있다. 그중 표적인미술문화재연구실의‘국외소재한국문

화재 조사연구’사업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몽골의 암각화∙사슴돌∙비문’학술조사 지원 사업

에 해집중조명해본다.

06┃ 07상반기호+ 2011

주제|국립문화재연구소의해외문화재연구조사∙지원사업

기고 1

_ 외규장각 도서 145년만의 귀환으로 본‘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 연구’사업의 의미

기고 2

_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몽골의 암각화∙사슴돌∙비문’학술조사 지원

│오춘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관∙사진│미술문화재연구실기고1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연구’사업의 의미

외 규 장 각 도 서 1 4 5 년 만 의 귀 환 으 로 본

1866년 겨울 인천 앞바다. 한 달 동안 강화도를 유린했던 프랑스 제국군 를 태운 전함들이 유유히 사

라진다. 동방의 약소국인 조선의 백성들은 프랑스 전함에 실려 가는 나라의 보물들을 힘없이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2011년 봄 인천 앞바다. 우리가 지은 세계 최고의 공항에 우리나라의 비행기가 당당히

내려앉는다. 145년전빼앗겼던우리의귀중한보물들을싣고.

1. 해학반도도병

2. 청자철채퇴화삼엽문매병, 고려 12세기, 일본네이라쿠미술관소장

3. 국립문화재연구소가발간한국외소재한국문화재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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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09상반기호+ 2011

지난6월11일오후. 조선의법궁인경복궁근정전앞에서성 한

행사가열렸다. 145년전프랑스군 에약탈했던우리의소중한보

물『외규장각의궤(外奎章閣儀軌)』가돌아왔음을축하하는행사 다.

성 하게열린이행사에는우리국민과함께 통령, 문화체육관광

부장관, 문화재청장, 자크랑프랑스전문화부장관, 재불서지학자인

박병선박사등이참석해소중한우리문화재의귀환을축하했다.

‘외규장각의궤.’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단어이지만, 얼마 전

까지도 문화재환수에 관심있던시민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공무원들에게나익숙했던말이었다. 더군다나1970년 박병선 박사가프랑스 국

립도서관에서방치되다시피하던이책들을발견해세상에알리기전까진우리에게잊혀진, 어쩌면기억된적도없는존재 다. 그리고다시40

년가까운시간이흘러서야고국의땅을밟을수있게되었다.

발견에서귀환까지40년. 수많은우여곡절끝에돌아오게되었지만, 귀환과정에서가장중요한사건을꼽으라면그것은‘발견’이다. 이위

한발견이없었다면, 반환을위한노력도시작할수없었다.

4. 아미타삼존도, 고려 14세기, 미국브루클린박물관소장

5. 2006년미국메트로폴리탄박물관현지조사장면

6. 흑칠채화모란문각게수리

7. 백자청화운룡문호, 조선18~19세기, 프랑스세브르국립도자박물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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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의여정 _ 국외소재한국문화재조사연구사업

국립문화재연구소미술문화재연구실은1992년부터해외에흩어져있는우리문화재

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해외의 우리 문화재에 한 반환운동이건, 홍보

사업이건, 연구활동이건 그 어떤 활동도 문화재 현상에 한 기초자료 없인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이 중요한 기초자료를 만들어내는 일이 국립문화재연구소의‘국외소재 한

국문화재 조사연구 사업’이다. 이 사업으로 지금까지 미국, 일본, 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등 해외 8개국 50여 개 소장처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 2

만 4,000여 점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중에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

은귀중한문화재도여러점있음을확인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해외의 우리 문화재는 모두 14만 264여 점으로 추산된다. 이 문화

재들이 어떻게 해외에 있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아마도 도난되거

나 팔려나간 경우가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 옛날 우리의 국력이 14만

점에 달하는 우리의 문화재들을 제 로 지켜내지 못했단 점이다. 현재 우리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개인 포함)들은 우리 문화재의 유출 경위에 해서 밝히려 하지 않

는다. 다만, 그들이 소장하게 된 경위만 제한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그 내용은 부분

구입이나 기증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장 경위보다 유출 경위가 중요할 수 있겠

지만, 지금그것을파악하는데에는현실적한계가많다. 불법반출된우리문화재의환

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재가 어디에 어떻게 있

는지아는것이우선적으로중요하다. 이번에반환된외규장각의궤처럼말이다.

근래에 진행하고 있는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연구 사업은‘조사’자체에만 그

활동을 국한하지 않는다. 물론‘조사’가 가장 중요한 활동이겠지만, 조사와 더불어 우

리 문화재를 소장∙관리하고 있는 기관 관계자들에게 우리 문화재의 의미와 분류 등

에 한 설명을 해주어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가 제 로 관리되고 알려지도록 도와주

고있다.

MOU 체결 _ 조사결과물의자주적활용보장

199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연구 사업

은올해로20년째를맞는다. 최근까지의조사는해외의각소장처별로우리문화재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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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조사∙기록하고책으로엮어내는데중점을두었다. 그러나지금은인터넷시 . 보

고서 발간만으로 해외 우리 문화재 조사 성과를 알리고 공유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

다. 이를해결하기위해국립문화재연구소미술문화재연구실에서는해외의각소장기관

과별도의협약을맺는일도병행하고있다.

최근엔 국을 표하는 국박물관(우리에게세계3 박물관중하나인‘ 박물

관’으로잘알려져있음) 및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과각각MOU를체결하 다. 국

박물관과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은 국내에서가장많은한국문화재를소장하고있

는 표적기관들이다. 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250년의역사를자랑하는

국최고의박물관으로1,600여점의한국문화재를소장하고있고,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은 장식미술 분야의 수준 높은 소장품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800여 점의 한국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두박물관에 해현지조사를실시하고그결과를한국어와 어를병기한보고서로

발간하는한편, 내용을CD로제작하고, 웹사이트에공개해보다많은사람들이공유토

록할예정이다.

보듬기 _ 해외문화재보존처리및홍보지원사업

14만점에달하는우리문화재가모두우리나라로돌아올수는없다. 14만점이모두

불법적으로반출된것이아니며, 불법반출이명백하게드러난다하더라도이를돌려받

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다. ‘외규장각의궤’도 발견 후 돌아오기까지

40년가까운시간이걸렸음을우리는잘알고있다. 돌아올기약없는우리의문화재14

만점. 이들을어떻게해야할까.

해외에는 그 로 두거나 조사만 하기엔 아까운 우리의 문화재들이 너무나 많다. 이

문화재들은해외소장기관의입장에선단지이국적인유물의하나일수있겠지만, 우리

에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주는 효과적인 홍보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두

지않으면해외에서그저그런나라의그저그런유물로취급받기십상이지만, 우리가관

심을 두고 활동하는 만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 더 잘 알려질 것이며, 그만큼 우리나라

의국격도높아질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에서는 2005년부터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보존처리 지원사업을, 2007년부터 해외의 우리 문화재 홍보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지

금까지 미국∙러시아∙헝가리 등지에 있는 우리 문화재 53점에 한 보존처리를 지원

하 으며, 도록발간, 브로슈어 제작 등 미국, 일본, 러시아의 5개 기관에 홍보지원 사업

을 추진했다. 앞으로도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들을 알리고 보호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해야할일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해외문화재 조사사업은

올해로 20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2만 4,000여

점의 우리 문화재를 조사∙기록하 고, 수십 권

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하지만, 앞으로 조사해야

할 문화재도 11만 점이 넘는다. 단순히 지나간 시

간을 참고하여 남은 시간을 계산하면, 앞으로 남

은수량을모두조사∙기록하는데에는거의100

년이라는시간이걸릴것이다. 물론이기간은받

아들이기 어려운 기간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서도 이 사업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충분히 인지

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의 내실을 유지하면서 조

속한 마무리를 위한 여건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

이다.

더불어, 해외의우리문화재에 한보존처리지

원이나홍보지원사업등을통해해외의우리문화

재가 더 안전한 환경에서, 더 잘 알려지고 지속될

수있도록꾸준히노력할예정이다.

8. 2011년 6월 1일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박물관간의MOU 체결

9. 백자청화산수문합, 조선 19세기후반, 일본네이라쿠미술관소장

10. 청자삼감쌍어문 접, 고려 12세기후반~13세기전반

‘동아시아 유목문화 연구’의 일환으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몽골 과학아카데미

국립고고학연구소가 공동으로 2006년 불간 아이막(Bulgan Aimag), 흡수골 아이막(Huvsgul

Aimag) 지역에서 26기의 사슴돌과 비문을, 2007년 우부르항가이 아이막 보그드 솜의 테브시

올(Ovorkhangi Aimag Bogd sum Tevsh uul)에 있는 암각화에 한 탁본조사를 실시하

다. ‘몽골의 암각화ㆍ사슴돌ㆍ비문’공동 학술조사를 통해 한국의 청동기시 암각화의 기원과

시베리아, 몽골, 중국 북부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암각화 문화권과의 비교 연구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 다. 2008년에는‘몽골의 암각화∙사슴돌∙비문 탁본조사’성과를 모아 국내∙외 특별

전을 개최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관련 기술 분야 협력 강화 및 연구소의 국제교류 연구 활

동에 한 적극적인 외 홍보를 하 다.

∙사진│정민호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기고2

한국과 몽골 등 동북아암각화 비교연구 자료 확보 성과

국 립 경 주 문 화 재 연 구 소 ,

‘ 몽 골 의 암 각 화 ㆍ 사 슴 돌 ㆍ 비 문 ’ 학 술 조 사 지 원

12┃ 13상반기호+ 2011

바위그림 속의 삶과 꿈

바위그림은 동굴벽화와 함께 표적인 선사시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선사시 특유의 미의식은 물론 전통과 예술 정신이 짙게 배어

있는예술적성과물로매우중요한가치를지니며유물사관, 종교관, 문화등이농

하게녹아있다.

바위그림은 일반적으로 암각화(巖刻畵)라고도 한다. 선사시 예술은 흔히 벽 예

술품(parietal art)과 지닐예술품(mobile art)으로 나뉘는데, 바위그림은 주제가 다

양하고 그림의 상징성이 풍부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물론, 일반고고학유물로밝힐수없는정신생활까지엿볼수있는자료라할

수있다.

이들 바위그림은 중앙아시아에서 동부 시베리아와 중국 몽골 등의 동북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등세계곳곳에분포하고있다. 우리나라에는1970년 초고령의양

전동 암각화와 울산의 반구 암각화가 학계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

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석기 시 에 이르러 처음으로 등장하며 울산 반구 와 천

전리각석을비롯해모두16곳의유적이보고되고있

으며, 주로한반도의동남부지역에편중되어있다.

바위그림은선사시 에그려진그림도있고, 또지

금도 그려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몽골이나 우리나라

의 경우 예외 없이 바위그림들은 지형적으로 특이한

장소의 바위에 그려지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물과

가까운 곳, 별봉, 동남쪽으로 향한 바위 등과 같은 지

형적 요건이 갖추어진 곳이 바위그림의 장소로 선택

된 것이다. 바위그림은 시 상황, 조형관 등의 변화

와 더불어 다양한 양상으로 추구되어 왔으며, 그 속

에는 그림의 의미, 역할, 형상의 변화 과정이 그 로

남아 있다. 또한 바위그림들은 계속해서 앞 시 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모색을 해 온 것이다. 그 과

정에서 그림의 의미나 역할은 변화되었지만, 새기거

바위그림은일반적으로암각화(巖刻畵)라고도한다. 선사시 예술은흔히벽예술품(parietal art)과지닐예술품(mobile art)

으로나뉘는데, 바위그림은주제가다양하고그림의상징성이풍부해당시사람들의생활모습을사실적으로보여주는것은

물론, 일반고고학유물로밝힐수없는정신생활까지엿볼수있는자료라할수있다.

1. 몽골사슴돌이보이는유적지풍경

2. 울산반구 암각화

3. 몽골테브시올바위그림(말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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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는 표현 방법은 그 로 남아 오늘날 우리들이 향유하는 미술이라는 장르를

확립시켜놓았다.

몽골의 바위그림은 중석기시 , 신석기시 , 청동기시 , 초기철기시 , 고 와

중세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 조각 수법 중 새긴 바위그림은 넒은

지역에걸쳐분포하고있으며 부분청동기시 , 철기시 와관련이있다. 또한, 표

현방식에 따라 사실적으로 표현된 그림, 추상화된 그림, 동물을 양식화한 그림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 동물그림은 전 선사시 를 통해 바위그림의 가장 중요한 묘사의

상으로자리하고있다. 야생염소, 사슴, 맹수류, 말, 낙타, 소, 탐가(개별씨족을

표하는 문자로 가축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한 표식

이나 낙인으로 사용), 그리고 사람과의 활동상 등이

그것이다.

몽골의 바위그림

우부르항가이아이막보그드솜부근에동북쪽으로

갈라져뻗은‘테브시올’이라는산이있다. 테브시올

은 고비알타이 산맥의 줄기인 아르츠 보그드 산맥에

속하며 산꼭 기는 갈색의 평탄한 화강암으로 덮혀

있고 식생은 매우 빈약한 전형적인 고비지 의 산이

다. 1949년역사민속학조사단에의해야생염소, 뱀,

사람 등을 새긴 규모의 바위그림을 발견하 다. 수

백 점 바위그림 가운데 주종을 이루는 것은 여러 종

류의 동물과 사냥이나 목축 장면등 인간의 일상생활

을 반 하는 그림들이다. 동물을 모티브로 한 그림에

는 새끼를 밴 야생 염소의 배를 크게 그리는가 하면

4. 지난 2008년 7월 국립 구박물관에서 열린‘몽골의 암각화∙사슴돌∙비문 탁본조사’특별전

개막식테이프컷팅

5. 몽골테브시올바위그림탁본모습

6. 몽골오르틴암사슴돌 1호북면채탁완료모습

7. 사슴돌이있는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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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상반기호+ 2011

수사슴을암사슴과함께그리고, 말이나소의수컷생식기를강조하여표현하 다.

일상생활을모티브로등에짐을싣거나무언가를끌고가는소, 코뚜레가달린소,

낙타와 말을 끌고 가는 사람, 사람이 말을 타거나 말을 몰고 가는 형상 등 동물을 길

들여서목축이이루어졌음을시사하는바위그림이다. 또한, 울타리에동물이가두어

진모습, 야생염소를활로쏘는사람등수렵의모습들도흔히볼수있는장면이다.

물체를 상으로 한 그림 중에는 마차그림이 있다. 네 마리 말이 모는 네바퀴 달린

마차그림이나네마리말이매여있으며바퀴살이없는두바퀴에하나의축이있고

직사각형 모양의 좌석이 달려 있는 마차 그림 등을 비교해 보면 수레바퀴의 바퀴살

숫자가그림마다다르게표현되어마차의형태변화와발전을보여준다.

테브시 올에서는 청동기시 와 초기 철기시 의 바위그림뿐 아니라 신석기시

석기도 확인되었으며, 테브시 올 남쪽에는 히르기수르와 판석묘, 적석묘, 고 투르

크 비문 등 여러 시 에 걸친 유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이는 테브시 올을 포함

한주변지역에서선사시 부터현재까지여러시 에걸쳐사람들이거주해왔다는

것을보여준다.

사슴돌은일종의거석문화의일종으로서타원형의긴돌을네면으로다듬어전면

에문양을새긴기념물이다. 청동기시 와초기철기시 에걸쳐몽골과중앙아시아

에거주했던씨족과부족들이만든것으로주로몽골중부와서북부, 러시아남부지

역의 초원지 에 분포하며 약 700여 기가 알려져 있다. 그 중 550여 기가 몽골에서

확인되었다.

사슴돌상단부에는주로해와달을새기고그바로아래에점선이나띠를새겨중

앙부와의 경계를 표시하고, 중앙부에는 네 면에 걸쳐 사슴 여러 마리를 양식화된 기

법을 사용하여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새겼다. 하단부에는 허리(띠)를 두르고 띠에 무

기를 매단 형상을 표현하 다. 사슴돌에 묘사된 무기나 도구에는 전사의 무기인 단

검, 숫돌, 전투용 망치와 도끼, 활, 화살과 화살 통,

창, 방패, 곡괭이, 거울 등이 있고, 하단부의 띠는 여

러 가지 문양으로 장식하 다. 사슴 형상 신 혹은

그 사이에 말, 표범, 산양, 양 등 다른 동물을 묘사

하는경우도가끔확인된다.

몽골과 외국의 학자들은 주로 고고학적 측면에서

사슴돌을 연구하 다. 사슴돌 전반의 제작시기, 조형

기법, 사회적 의미에 한 새로운 논고들이 제시되었

는데 사슴돌이 후 에 등장하는 석인상의 초기 모습

이었을것이라는주장을제기하 다.

사슴돌은 체로높이1~4m, 폭30~100cm, 두께

20~50cm 내외로 쪼기, 새기기 등 다양한 방법을 이

용하여 제작하 다. 사슴돌은 여러 유구와 복합 유적

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기의 사슴들을

둘러싸고 수십기에서 수백기의 소규모 제사용 석조

물과 거 한 원형의 히르기수르(Hirgisuur), 판석묘

등과함께확인되는경우가많다.

우리나라의 암각화 연구

암각화가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 12월 동국 학교박물관 학

술조사단이 울주 지역 불교유적을 조사하던 중 울주

군 언양면 곡리와 천전리 태화강변 암벽에서 선사

시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를 처음 발견하면서부터다. 반구 암각화는 신석기말

청동기시 의작품으로추정되며폭약10m, 높이약3.5m의거 한절벽에200여

점의 각종 물상들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암각기법이 뛰어나고 잡을

짐승과사람, 도구를소재로어로∙수렵을생업으로하는전문집단의작품이란사실

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기의 면새김 그림들은 남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고 후기의 선새긴 그림은 성적인 표현이 사라지고 울타리, 그믈, 덧 등

다양한도구와탈이등장하는것이특징이다.

고래와같은바다짐승과어류는70여점이나되는데이중고래가40여점으로이

는우리나라에서최 의고래잡이항구인인근의방어진과깊은관련이있다고하겠

다. 육지동물은모두80점으로사슴류가가장많고호랑이, 멧돼지, 토끼등수십점

이 그려져 있다. 이외에 목책이 4점, 그물 2점, 배 4척, 기타 5점 등이 있다. 단일 암

벽에 이처럼 다양한 그림이 새겨진 예는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고 이를 새긴 기법은

면을쪼아서윤곽선을만들거나면전체를갈아서파내는방법으로유럽의신석기말

암벽 조각 수법과 비슷하다. 육지에서 사냥하는 장면과 관련된 인물상이 6점, 사람

얼굴모양이2점, 개체를파악할수있는뚜렷한인물이8점이나되고배에서고기잡

는사람까지합하면상당수의인물상이묘사되어있다.

반구 암각화의 조각기법 변화는 암각화 내용상에서도 나타나는데, 면각 표현

양식의 암각화 내용은 주로 배, 거북이, 고래, 물개 등 바다에 살고 있는 바다동물

이 주로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어로 생활을 했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선각으로 표현된 암각화의 그림은 그물, 호랑이 소, 멧돼지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수렵과 관계되는 육지동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자연환경으로

인한 변화 등을 그들의 정서에 맞게 점점 발전해가면서 수렵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마다 암각화 표현 상 달라도 연관성 있어

한국암각화가중앙아시아에서동부시베리아와몽

골 중국 내이멍구 동부지역에 이르는 삼림지역과 사

막 초원지역에 넓게 퍼져 있는 암각화들과 연관성을

갖고있는것은주지의사실이다. 우리나라반구 암

각화의 특징은 해당지역의 생활 여건 가운데 중요한

소재를 선택하 다는 것으로 고래와 육지 동물들의

표현은 수렵의 구체적인 정황에 한 묘사가 아니라

개별 상에 한형태와상징적특징표현을주로하

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암각화에서 보이는 상들의

특징은 역동적인 묘사와 생동감 있는 표현 그리고 구

체적인 정황까지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반구 암

각화와는 다른 점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몽골의 바위

그림은일상생활에서가장가까이접할수있는산양,

염소, 사슴, 말 등을 표현하 고 반구 바위그림은

고래, 사슴, 멧돼지, 호랑이 등 동물그림과 제사장의

여러가지모습에서보여지는생활기록화라는점에서

몽골, 시베리아 등지의 암각화와 문화적으로 큰 차이

를 가지고 있다. 제작 주체들이 농경 생활을 했던 반

면, 동북아시아의 암각화를 제작한 집단은 수렵과 유

목으로 경제활동을 위하 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활한 두 지역의 사람들

은 각각의 삶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들을 바위 위

에새겼던것이다. 문화재는크고작음을막론하고소

중한 문화적 유산이며 후손에게 물려 줄 유형의 가치

다. 그러므로문화의시원인암각화에 한우리의보

존자세는보다진지해야할것이다.

8. 울산반구 현황

9. 한국의암각화분포현항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