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와 화가들 · 뛰어나게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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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學碩士學位請求論文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와 화가들 Painters and their Patrons in the Renaissance 2008년 2월 仁荷大學校敎育大學院 歷史敎育專攻 宋 知 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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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敎育學碩士學位請求論文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와 화가들

    Painters and their Patrons in the Renaissance

    2008년 2월

    仁荷大學校敎育大學院

    歷史敎育專攻

    宋 知 英

  • 敎育學碩士學位請求論文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와 화가들

    Painters and their Patrons in the Renaissance

    2008년 2월

    指導敎授 : 尹 承 駿

    이 論文을 碩士學位論文으로 提出함

    仁荷大學校敎育大學院

    歷史敎育專攻

    宋 知 英

  • 이 論文을 宋 知 英의 碩士學位論文으로 認定함

    2008년 2월

    主審 (인)

    副審 (인)

    副審 (인)

  • - i -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와 미술가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후원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

    해 다양한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미술은 이미지 전

    달이 용이한 까닭에 후원자들의 재정적 지원이 두드러진 분야였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화가의 위치는 단순한 장인으로 간주되었던 이전보다

    상승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주문자에게 예속된 상태였다. 본고에서 다룬

    세 명의 화가도 마찬가지였다. 피에로 데 메디치는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빠른 베노초 고촐리를 후원하여 메디치 궁의 예배당을 「동방 박사의 행

    렬」이란 벽화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성모 마리아의 일생」과 「세례요

    한의 일생」을 그리게 하였으며, 여류 예술후원가 이사벨라 데스테도 피

    에트로 페루지노로 하여금 「사랑과 순결의 싸움」이란 작품을 완성하게

    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후원자들은 화가들이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돕는 데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화가

    의 작업에 종종 시시콜콜 간섭하였으며, 화가는 그들의 요구에 맞춰 자신

    의 주관을 상당 수준 억제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여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후원자의 예술애호정책 덕분에

    자유로운 지적, 정신적 활동을 전개하였다고 추정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

    가 있다. 후원자는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

    술적 재능과 순응적 자세를 동시에 갖춘 화가를 찾았으며 그에게 까다로

    운 주문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르네상스 미술

    의 후원자는 화가에 대한 지원을 통해 예술을 진흥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화가를 부리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 - ii -

    목차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1

    Ⅰ. 피에로 데 메디치와 베노초 고촐리․․․․․․․․․․․․․․․․․․․․․․․․․․․․․․․․․․․․․․․․․․․․․․․․․․․․․․․․․․․․․․․․․․․․․․․ 4

    1) 속필 화가 고촐리․․․․․․․․․․․․․․․․․․․․․․․․․․․․․․․․․․․․․․․․․․․․․․․․․․․․․․․․․․․․․․․․․․․․․․․․․․․․․․․․․․․․․․․․․․․․․․․․․․․․․․․․․․․․․․․ 4

    2) 까다로운 피에로와 「동방박사의 행렬」․․․․․․․․․․․․․․․․․․․․․․․․․․․․․․․․․․․ 6

    3)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 12

    Ⅱ.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와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14

    1) 미켈란젤로의 스승 기를란다이오․․․․․․․․․․․․․․․․․․․․․․․․․․․․․․․․․․․․․․․․․․․․․․․․․․․․․․․․․․․․․․․ 14

    2) 지오반니의 경건주의 미술관․․․․․․․․․․․․․․․․․․․․․․․․․․․․․․․․․․․․․․․․․․․․․․․․․․․․․․․․․․․․․․․․․․․․․․․․․․․․․․ 15

    3)「성모 마리아의 일생」,「세례요한의 일생」․․․․․․․․․․․․․․․․․․․․․․․․․․․․․․․ 17

    4)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 23

    Ⅲ. 이사벨라 데스테와 피에트로 페루지노․․․․․․․․․․․․․․․․․․․․․․․․․․․․․․․․․․․․․․․․․․․․․․․․․․․․․․․․․․․․․․․ 24

    1) 후작부인 이사벨라의 도덕적 미술관․․․․․․․․․․․․․․․․․․․․․․․․․․․․․․․․․․․․․․․․․․․․․․․․․․․․․ 24

    2)「사랑과 순결의 싸움」․․․․․․․․․․․․․․․․․․․․․․․․․․․․․․․․․․․․․․․․․․․․․․․․․․․․․․․․․․․․․․․․․․․․․․․․․․․․․․․․․․․․․․․․․․․ 26

    3)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 30

    맺음말․․․․․․․․․․․․․․․․․․․․․․․․․․․․․․․․․․․․․․․․․․․․․․․․․․․․․․․․․․․․․․․․․․․․․․․․․․․․․․․․․․․․․․․․․․․․․․․․․․․․․․․․․․․․․․․․․․․․․․․․․․․․․․․․․․․․․․․․․․․․․․․․․․․․․․․․․․․․․․․․․․․․․․․ 32

    참고문헌․․․․․․․․․․․․․․․․․․․․․․․․․․․․․․․․․․․․․․․․․․․․․․․․․․․․․․․․․․․․․․․․․․․․․․․․․․․․․․․․․․․․․․․․․․․․․․․․․․․․․․․․․․․․․․․․․․․․․․․․․․․․․․․․․․․․․․․․․․․․․․․․․․․․․․․․․․․․․․․․․ 35

    도 판․․․․․․․․․․․․․․․․․․․․․․․․․․․․․․․․․․․․․․․․․․․․․․․․․․․․․․․․․․․․․․․․․․․․․․․․․․․․․․․․․․․․․․․․․․․․․․․․․․․․․․․․․․․․․․․․․․․․․․․․․․․․․․․․․․․․․․․․․․․․․․․․․․․․․․․․․․․․․․․․․․․․․․․ 36

    Abstract․․․․․․․․․․․․․․․․․․․․․․․․․․․․․․․․․․․․․․․․․․․․․․․․․․․․․․․․․․․․․․․․․․․․․․․․․․․․․․․․․․․․․․․․․․․․․․․․․․․․․․․․․․․․․․․․․․․․․․․․․․․․․․․․․․․․․․․․․․․․․․․․․․․․․․․․․․․․․․․․․ 38

  • - iii -

    그림 목차

    그림 1.「동방박사들의 행렬」제단부분․․․․․․․․․․․․․․․․․․․․․․․․․․․․․․․․․․․․․․․․․․․․․․․․․․․․․․․․․․․․․․․․․․․․․․․․․․․ 7

    그림 2.「동방박사들의 행렬」․․․․․․․․․․․․․․․․․․․․․․․․․․․․․․․․․․․․․․․․․․․․․․․․․․․․․․․․․․․․․․․․․․․․․․․․․․․․․․․․․․․․․․․․․․․․․․․․․․․ 8

    그림 3.「동방박사들의 경배」․․․․․․․․․․․․․․․․․․․․․․․․․․․․․․․․․․․․․․․․․․․․․․․․․․․․․․․․․․․․․․․․․․․․․․․․․․․․․․․․․․․․․․․․․․․․․․․․․․․․ 11

    그림 4.「성모 마리아의 탄생」․․․․․․․․․․․․․․․․․․․․․․․․․․․․․․․․․․․․․․․․․․․․․․․․․․․․․․․․․․․․․․․․․․․․․․․․․․․․․․․․․․․․․․․․․․․․․․․․․․ 19

    그림 5.「방문」․․․․․․․․․․․․․․․․․․․․․․․․․․․․․․․․․․․․․․․․․․․․․․․․․․․․․․․․․․․․․․․․․․․․․․․․․․․․․․․․․․․․․․․․․․․․․․․․․․․․․․․․․․․․․․․․․․․․․․․․․․․․․․․․․․․․․․․․․․․ 21

    그림 6.「즈가리야에게 나타난 천사」․․․․․․․․․․․․․․․․․․․․․․․․․․․․․․․․․․․․․․․․․․․․․․․․․․․․․․․․․․․․․․․․․․․․․․․․․․․․․․․․․ 22

    그림 7.「사랑과 순결의 싸움」․․․․․․․․․․․․․․․․․․․․․․․․․․․․․․․․․․․․․․․․․․․․․․․․․․․․․․․․․․․․․․․․․․․․․․․․․․․․․․․․․․․․․․․․․․․․․․․․․․ 27

    그림8.「미덕의 승리, 미덕의 정원에서 악덕을 쫓아내는 미네르바 여신」․․․․․․․․․․․․․․․․․․․ 28

  • - 1 -

    머리말

    15,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기본 시대정신은 인간 중심의 세계

    관을 옹호하고 실제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의 가치를 개발하고

    그 위상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에 기초한 새

    로운 문명과 문화의 길이 열렸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르네상스 인들의 새로운 관념은 특히 미술 분야에

    서 두드러졌다. 미술 창작은 인간성을 고귀하게 해주는 일로 평가되게 되

    었으며, 화가는 스스로 탐구적인 자세로 과학과 이성 세계를 섭렵하면서

    창조 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기운은 미술에 있어서 재료

    및 기법 등에 새로운 표현 수단을 찾게 하였다. 그리고 15세기 말엽에 이

    르러 예술가들은 길드 조직의 모든 구속에서 거의 해방되었고, 화가는 다

    른 지식인들과 상호협동하면서 일할 수 있는 개인 자격의 자유로운 지식

    인이 되었다.1) 그에 따라 화가의 위상 역시 이전까지의 단순한 장인보다

    상당히 상승된 모습을 띠게 되었다.

    미술이 이렇게 혁신적인 바람을 타게 된 데에는 14, 15세기 급격히 증

    가한 후원자들의 경제적 지원이 큰 몫을 하였다. 이탈리아 역사에서는 르

    네상스 시대를 전제 군주의 시대 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들 전제 군

    주는 새 시대의 변화된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각기 다른 지역성을 띤 화려

    하고 다양한 문화를 산출하였다. 어느 한 궁정의 위세는 군의 지휘관부터

    음악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수 인재를 끌어 모으고 그들의 재능

    을 활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었다. 군주들은 궁정에 모여든 각종 인재의

    재능을 고무하고 이들로 하여금 고급문화를 산출토록 부추기는 정책을 펼

    침으로써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의 명성을 높이고자 노력하였다.2)

    특히 미술 분야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이므로 군주를 비롯한 상류 지도층 인사들은 이 부

    1) 임영방,『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문학과 지성사, 2003), pp.77-78.

    2) 같은 책, pp.139-140.

  • - 2 -

    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본고에서 살펴 볼 베노초 고촐리와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그리고 피에트로 페루지노는 그들의 주목을 받았던 대표적

    인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예술가에 속한다. 그렇다면, 르네상스시대 이

    탈리아에서 화가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었던

    것인가?

    이에 관한 연구는 근래에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어 그 내막을 좀 더 자세

    히 알 수 있게 해준다. 곰브리치는『예술 후원자로서의 메디치가』를 통

    해 바사리가 쓴 로렌조의 예술가 후원에 대한 내용이 왜곡되었음을 당시

    여러 기록과 비교하며 지적하였다.3) 또, 체임버스는『이탈리아 르네상스

    의 후원과 예술가들』에서 후원자와 예술가가 주고받은 편지나 계약서를

    통해 그 관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 바 있다.4) 그런가 하면, 길버

    트는『이탈리아 예술 1400-1500』에서 예술가에 대한 처우가 군주들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5) 이러한 연구 저작

    들을 통해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후원의 양상과 질적 수준 등을

    후원자의 기호라든가 재정 상태등과 연관 지어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이은기의 논문6) 외에 별다른 연구 성과를 찾아보기 힘

    든 실정이다. 이은기의 연구는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자를 다뤘다는 점에

    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연구 대상이 메디치 가문에 한정되어 있고, 시

    각 또한 후원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데 맞춰져 있어 후원자와 화가에

    대한 전체적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 그의 연구는 특히 화가에 대한 후원

    의 의도라든가 화가의 작품 완성 과정에 있어 후원자의 역할에 대한 충분

    한 이해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 보인다.

    3) Gombrich, E. H., The early Medici as Patrons of Art(Italian Renaissance Studies, Londen, 1960), p284.

    4) Chambers, D. S., Patronage and Artists in the Italian Renaissance(Italian Renaissance Studies, Londen, 1970), pp.95-96.

    5) Gilbert, C. E., Italian Art 1400-1500(Culture and Society, Princeton,1987), p.69.6) 이은기, 「메디치가의 미술 후원과 정치적인 목적」,『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6호(서양미술사학

    회, 1994)

  • - 3 -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자와 화가의 관

    계를 좀 더 포괄적으로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예술 후원과 관

    련한 주요 내용과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를 알려줄 수 있는 계약서 및 편

    지가 전해지는 세 개의 사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피에로 데 메디치

    의 후원을 받아 베노초 고촐 리가 그린 「동방박사들의 행렬」,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의 지원으로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가 완성한「마리아의 일

    생」, 이사벨라 데스테가 후원한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사랑과 순결의

    싸움」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후원자의 주문사

    항을 확인하고, 주문사항이 작품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파악하겠

    다. 이를 통해 후원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작품들을 예술적 관

    점에서 분석하여 봄으로써 후원자들의 행동이 “사람이나 단체, 작품, 예

    술 등을 뒷받침하거나, 용기를 북돋거나, 장려하는 후원자의 행위”7)라고

    정의되는 후원 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소략하나만

    이 작업을 통해서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후원자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문에서는 먼저 주문자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위해 화가를 어떻게 선

    택하고 후원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이어서 후원자의 지원 하에 각 화

    가가 그리게 되었던 작품의 내용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끝으로는 후원자

    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얻기 위해 화가에게 주문한 사항 및 그 주문 내

    용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7) Onions, C. T.(ed.), The Oxford universal Dictionary (Oxford, 1955), p.1449.

  • - 4 -

    Ⅰ. 피에로 데 메디치와 베노초 고촐리

    1) 속필 화가 고촐리

    베노초 고촐리(1420-1497)를 후원하였던 메디치 가문의 피에로

    (1416-1469)는 국부 코시모가 죽자, 가문의 수장 겸 피렌체의 통치자 자

    리를 물려받았다. 피에로는 5년간의 짧은 통치를 하였으나, 당대의 예술

    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예술에 끊임없는 지원을 베풀었다. 피렌체에 남

    아있는 피에로 시대의 거의 모든 예술품들은 그를 위해 혹은 그의 언질을

    받고 제작되었다.8)그 중 메디치 궁의 예배당 벽에 빙 둘러 그려진 프레스

    코들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이 역시 피에로의 주문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피에로는 베노초 고촐리라는 화가를 선택하여 이 작품을 그리

    도록 후원하였다. 당시 뛰어난 화가로 소문나 있던 레온 바티스타 알레르

    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산드로 보티첼리 등이 있었으나, 피에로가

    고촐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촐리는 위대한 화가 프라 안젤

    리코의 제자이자, 당대의 뛰어난 설명화 화가였으며 무엇보다도 빠른 속

    도로 지칠 줄 모르고 작업에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고촐리는 너른 공벽에

    혀를 내두를 만큼 빠른 속도로 아름다운 프레스코를 그렸다고 전해진다.9)

    피에로가 당시 인기 있는 화가들 중에 베노초 고촐리를 선택한 것은 그의

    뛰어난 그림 실력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화가들 보다 빠른

    속도로 그림을 완성시키는 모습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제 왜 피에로가 그림을 빠른 속도로 완성시키는 고촐리를 화가로 선정

    하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당시 메디치 가문의 상황에 대

    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1438년 말엽에 이르러 국부 코시모는 다른 국가

    들에게 자신이 피렌체의 실세임을 확실히 부각시켰고, 자기 나라 사람에

    게는 대외 문제를 자신에게 맡김으로써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것 또한 주

    8) 영, G. F.(이길상 옮김), 『메디치』(현대지성사, 2001), p.120.

    9) 같은 책, pp. 123-124.

  • - 5 -

    지시킨 때였다. 즉, 1438년 말엽에는 권력을 갖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대

    외문제는 점차 그 나름대로 처리하도록 맡겨졌다. 그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사이의 공의회가 거의 일 년 간 진행되고 있던 페라라로 가서 교황

    유게니우스를 상대로 막후 교섭력을 발휘하여 공의회 장소를 피렌체로 옮

    기게 했다. 이로써 자신의 도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늘려주었고, 교역량을

    증가시켰으며, 부가적으로 학문 증진 등 여러 가지 유익을 끼쳤다. 공의

    회는 1439년 2월 장소를 페라라에서 피렌체로 옮겼다. 메디치 가문의 정

    치 수완을 발휘한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 종교회의에 참석하기 위

    해 당시 유럽 종교계와 정계의 거물급들이 피렌체를 방문하였다. 10) 피렌

    체는 이 큰 역사적 사건에 힘입어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공의회는 코시모에게 커다란 기회가 되었다.11) 메디치 가문은

    이 종교회의를 통해 피렌체의 중심 가문을 뛰어넘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

    으로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결국 메디치 가문이 역사상 위대한 일, 1439년 피렌체 종교회의를 해

    냈다는 것을 최대한 빠르게 세상에 알리기 위해 피에로는 속필화가 고촐

    리를 택한 것이었다. 즉 피에로는 고촐리의 미술적 역량이나 화풍 보다는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빨리 완성하여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

    서 그를 선택했던 것이다.

    피에로의 후원을 받은 베노초 고촐리에 의해 메디치 궁의 저택 안에 위

    치한 가족 예배실 겸 귀빈들의 접견실로 쓰인 예배실의 벽화가 1459년

    부터 장식되어지기 시작하였다. 빠른 속도로 훌륭한 작품을 그렸던 고촐

    리는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지 2년 만인 1461년 「동방박사의 행렬」을

    완성하게 된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 박사의 행렬」은 인물화가

    뛰어나게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인물 하나하나의 묘사가 생동감있게 표

    현되었다고 보여 진다.12) 또한 멀리 산꼭대기의 성과 뒤쪽의 사람 등의

    10) 고종희,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한길아트, 1998), p.78.

    11) 영, G. F.(이길상 옮김), 위의 책, pp.67-68.

    12) 조르조 바사리(이근배 옮김),『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탐구당, 1986), p.459.

  • - 6 -

    표현이 원근법으로 표현된 것도 살펴볼 수 있어 공간을 지각하는 사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까다로운 피에로와 「동방박사의 행렬」

    피에로가 베노초 고촐리에게 1439년 피렌체 종교회의 를 주제로 한

    작품을 완성하기위해 어떠한 주문을 하였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이 주문

    사항이 그림에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자. 이를 통해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

    를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피에로와 베노초 고촐리의 관계를 잘 파악 할 수 있는 편지를 살

    펴보자. 이 편지는 벽화를 그리던 도중 고촐리가 주문자인 피에로에게

    보낸 것이다.

    오늘 아침(1459년 7월 10일) 로베르또 마르뗄리를 통

    하여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를 보고 내가 그린

    세라피노가 적당한 자리가 아니어서 당신 마음에 안든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는 구름들 사이에 그렸는데

    이것은 날개 끝만 보일 뿐 거의 안 보이는 정도입니다.

    거의 가려져있기 때문에 그림을 전혀 왜곡시키지 않으

    며 오히려 아름다움을 더 해 줍니다. 다른 하나는 제단

    반대편에 그렸는데 이 또한 감추어져있습니다. 로베르또

    마르뗄리도 이 세라피노들을 보고는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당신이 명령한 대로 하

    겠습니다. 작은 구름 두 쪽이면 그것을 없앨 수 있습니

    다. 13)

    13) 이은기, 앞의 책, p.12.

  • - 7 -

    이 편지는 고촐리가 피에로에게서 작품 속의 세라피노 위치가 마음에 들

    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후, 피에로에게 보낸 답장이다. 이 편지

    를 보면 고촐리는 피에로에게 세라피노의 위치를 설명하며 그를 설득시키

    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피에로가 명령한 대로

    하겠다는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가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후원

    자의 의견을 따르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후원자의 간

    섭이 화가의 창조적인 역량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 「동방박사들의 행렬」 제단부분.

    그리고 또 다른 편지인, 로베르또 마르뗄 리가 3일 후의 편지에서 “지금

    상태도 전혀 나쁘지 않으니 그냥두자”고 설득한 결과인지 문제의 세라피

    노들은 현재 둥근차움 양쪽의 구석에 그냥 남아있다. 비록 고촐리의 의견

    대로 세라피노들은 현재 그냥 남아있지만, 앞의 편지에서 살펴 볼 수 있

    었듯이 후원자의 간섭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박사의 행렬」이란 작품 속에서도 주문자의 간섭이 반영된 부분을

  • - 8 -

    볼 수 있다. 이는 그림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고, 이에 앞서 그림 속에 반

    영된 주문사항이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국부 코시모가 자신이 고용한 화가에 대해서 작품의 소재는 물론 물감,

    도구, 심지어는 사용법까지도 참견하였던 것처럼14) 피에로 또한 작품을

    주문할 때 까다로운 조건을 많이 내걸었다.

    우선 피에로는 메디치 가문을 종교화 속에 모습을 드러내도록 주문하였

    다. 15) 이러한 주문 내용은 이 시기의 절대주의 군주가 통치하는 궁정의

    군주들의 모습이 통치자 초상화의 형식으로 그려진 것과는 다른 형태의

    주문이었다. 그리고 피에로는 고촐리에게 작품 속에 그려질 인물을 선정

    하여, 이를 그대로 고촐리에게 그리도록 하였다. 선정한 인물로는 메디치

    가문의 로렌조, 피에로, 코시모 등이 있었다. 그리고 비잔틴과 서로마의

    통합을 시도한 피렌체 종교회의의 인물을 선정하여 동방의 황제 요한네스

    8세 팔라이올로구스, 동방교회의 대주교 주세페를 그리도록 하였다. 또한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대표로 밀라노의 스포르자(Sforza), 리미니의 말레

    테스타(Malatesta)등을 그리도록 하였다.16)

    그림 2. 「동방박사들의 행렬」

    14) 조선미, 『화가와 자화상』(예경, 1990), p.27.

    15) 고종희, 앞의 책, p.77.

    16) 이은기, 앞의 책, p.9.

  • - 9 -

    이 인물들은 그림 속에 반영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나이 순서대로 그렸기 때문에 가장 연장자인 동방박사가 맨 앞에 있고,

    그 다음은 중년의 동방박사가,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동방박사가 행렬을

    따르고 있다. 가장 어린 동방박사 발타사르가 코시모의 손자이자 장차 위

    대한 자 로렌조로 불리게 된 로렌조 데 메디치이다. 중년의 동방박사 멜

    키오르는 동방의 황제 요한네스 8세 팔라이올로구스이며, 가장 늙은 동방

    박사 가스파르는 동방교회의 대주교 주세페로 그려졌다.

    메디치가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코시모나 피에로는 어린 로렌초를 따르는

    어린 동방박사가 이끄는 행렬의 맨 앞쪽에 있는 수행원의 모습으로 그려

    졌다. 코시모는 갈색 말을 타고 있으며 얼굴을 반 측면으로 그려졌다. 품

    위 있는 벨벳 옷에 빨간 모자를 썼다. 그 옆에 비단으로 수놓은 옷을 입

    고 흰색 말을 타고 있는 인물이 아들 피에로이다. 어린 로렌초의 모습은

    실물 그대로가 아닌 이상화한 모습이며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메디치가가 무궁할 것임을 암시하고자 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동방의 주교와 황제를 그린 것은 이들이 종교회의 개최 기간에 피렌체를

    방문한 최고 거물급 인물들이었으므로 이들을 동방박사로 벽화에 그려 넣

    어 역사적인 의미를 강조하려 한 것이다.

    다른 인물들을 살펴보면, 앞줄에는 밀라노와 페라라 군주의 후계자나 친

    척 같은 정계 인물들이 그려졌다.

    그림의 가장 왼편에 보이는 말을 탄 나머지 두 사람은 피렌체와 정치적

    으로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의 인물들이다. 맨 왼쪽에 중년의 모

    습을 하고 있는 사람은 리미니의 군주 시지스몬도 말라테스타이다. 메디

    치가는 리미니 군주인 시지스몬도와 연맹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특별히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옆에 있는 젊은이는 밀라노의 군주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아들 갈

    레아조 마리아 스포르차이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최고의 강대국

    가였다. 밀라노 공국의 후계자를 예우함으로써 두 국가 간의 우호관계를

    과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 - 10 -

    그 외에 작품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뒤쪽에는

    당시 콘스탄티노플 몰락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온 많은 그리스 학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앞에서 말을 끌며 걸어가는 대머리의 중년 남자

    가 보인다. 서로 다른 색상의 스타킹을 신고 있는 복식이 흥미롭다. 말을

    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신분이 낮은 것 같으나 전체 행렬을 이끄는 역할

    을 맡고 있는 만큼 메디치가가 꽤나 신임한 사람이라 추측할 수 있겠다.

    코시모와 피에로 사이에 흰 띠를 머리에 두른 남자가 있다. 이 사람은

    1429년에 출생한 코시모의 서자로 추정된다. 옆모습으로 그려졌으며, 뽀

    족한 코와 꽉다문 입이 인상적이다. 코시모와 하녀 사이에서 태어나 교황

    청에서 1458년부터 59년까지 일했고 후에 피렌체 근교의 프라토라는 도

    시의 한 교회에서 주임신부로 활동했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피에로가 선정한 인물들이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

    된 것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선정된 인물은 메디치 가문에 미치는 영향

    력의 정도에 따라 그 위치 또한 다르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주요 인물을 보면, 평소 건강이 좋지 못했던 피에로는 자신의 아들을

    내세워 작품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피에로 자신과 그의 아버

    지 코시모는 뒤를 따르고 있다. 동방의 황제와 대주교는 로렌조와 같은

    동방박사로 표현되었다. 작품을 주문할 때, 인물을 선정하고 그 위치까지

    주문하는 후원자의 모습을 통해 과연 화가가 작품을 위한 구상을 시도하

    긴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작품에 대한 피에로의 간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물 선정뿐이 아니

    다. 세부적인 사항도 피에로가 까다롭게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방박사의 행렬」을 보면 귀족적인 의상을 입은 로렌조와 화려한 말안

    장을 볼 수 있다. 베노초 고촐리는 피에로의 주문에 따라, 더할 나위 없

    이 우아하고 고풍스런 양식을 그렸다.17) 피렌체에서 길드중심의 공동체적

  • - 11 -

    인 성격이 약화되고 가문의 세력들이 커가던 15세기 중엽, 궁정 취향의

    회화가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보여 진다. 또한 피에로가 고촐

    리로 하여금 귀족적인 의상과 말안장을 강조케 하는 것은 메디치가의 라

    이벌인 스트로찌가를 의식한 거의 의도적인 주문이라고 볼 수 있다.

    메디치가의 라이벌인 스트로찌가에서 주문한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들의 경배」(도판 5)는 귀족취향의 국제고딕양식을 대표하고

    있으며,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한껏 귀족적인 분위

    기가 넘치는 왕의 행렬을 그렸다. 호화스런 말 장식과 값비싼 옷감으로

    지은 의상, 그리고 이국적인 동물들로 부유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밝은 색채와 아낌없이 사용된 금박으로 묘사되었다.18) 피에

    로는 고촐리를 선택하여 스트로찌가 못지않게 부유함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 3. 「동방박사들의 경배」

    「동방박사의 행렬」에서 주목해야할 또 다른 사항은 화가의 자화상이

    다. 비록 피에로의 주문사항은 아닌 듯하지만, 화가의 자화상을 보면 이

    17) 리처드 터너(김미정 옮김), 『피렌체 르네상스』(예경, 1990), p.121-123.

    18) 이은기, 앞의 책, p.9.

  • - 12 -

    역시 후원자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고촐리의 자화상

    은 세 번째 줄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베노초 고촐리의 창의적

    인 생각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닌 일종의 유행이자 흐름으로 생각된다.

    15세기 중엽부터 성자들의 모습으로 분한 주문자들의 초상화가 지속되면

    서 화가 자신이 성자들을 따르는 종자나 성직자들로 분하여 그려지는 경

    우가 많았다. 다른 인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림의 내용을 제약하

    지 않는 위치에 그려지곤 했다.19) 고촐리는 피에로에게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질 위치를 의논한 후, 비교적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초상화를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인다.

    반 측면으로 그려진 마른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거울을

    보고 그린 전형적인 자화상의모습이다. 그가 쓴 빨간 모자에는 “OPVS

    BENOTII D”라하여 베노초의 작품 이란 의미의 서명이 있다. 20) 군

    상 속의 자신의 모습을 명시하였다 할지라도, 베노초 고촐리의 얼굴 표정

    은 다른 인물들의 매력적이고 미소를 띤 우아한 얼굴에 비해 너무 딱딱하

    고 준엄하고 냉정해 보인다.21) 화가의 신분이 전에 비해 높아졌다고 하더

    라도 까다로운 주문 과정 속에서 그 당시 화가 자신의 개인적인 기분이나

    심경을 확연히 드러내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여 진다.

    3)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

    피에로는 1439년 피렌체 종교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베노초 고촐리에게

    작품을 주문한다. 그가 고촐리를 고용한 가장 큰 이유는 빠른 속도로 그

    림을 완성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피에로는 고촐리에게 그의 화풍을

    발휘하여 작품을 완성시키기 보다는 피에로 자신의 주문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길 바랐다. 그래서 인물선정에서부터 세부적인 사항까지 꼼꼼히 주

    문을 한다. 고촐리도 피에로의 주문을 충분히 받아 들여 작품 속에 주문

    19) 조선미, 앞의 책, p.27.

    20) 고종희, 앞의 책, pp. 77-84.

    21) 조선미, 앞의 책, p.27.

  • - 13 -

    사항을 그림으로 그려나간다. 그리고 후원자의 까다로운 주문 속에서 고

    촐리는 자신이 가진 화가의 재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고촐리에게는 이러

    한 후원이라고 불리는 주문 과정이 익숙한 과정인 듯 보인다. 메디치 가

    문과 고촐리와의 인연은 「동방박사의 행렬」이란 작품 이후에도 그 인연

    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6년 후에 고촐리는 메디치가의 주문으로 산 지미

    냐노에 있는 산 아고스티노 성당의 프레스코들을 훌륭히 그려낸다. 고촐

    리는 이 거대한 작품을 4년의 시간을 걸쳐 완성하였으며, 이 벽화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를 소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17장면으로 묘사했

    다.22)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피사에 있는 캄포 산토 성당에

    그린 프레스코들 또한 메디치가와 관련이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바사리

    가 “대가들을 다 모아놓아도 기가 질리게 만들 만한 작품”이라고 말할 정

    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노아 때부터

    솔로몬에 이르는 구약성경 역사 전체를 묘사하고 있다. 고촐리는 구약 성

    경의 산림 배경에 토스카나의 포도원 배경을 대입했고, 구약성경의 인물

    들에 메디치가의 구성원들, 학자들, 화가들 같은 당대의 여러 저명인사들

    의 초상을 대입했다. 23)

    고촐리는 국부 코시모와 아들 피에로를 거쳐 로렌조에 이르기까지 메디

    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으며, 1497년 피사에서 죽어 자기가 아름답게 꾸

    민 캄포 성당에 묻히기까지 메디치 가문은 그의 그림 인생과 함께 한 것

    으로 보인다.

    비록 피에로와 고촐리의 관계가 오래토록 이어졌지만, 후원자와 화가라

    는 관계 속에서 후원자가 화가의 미술적 재능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도

    록 뒷받침 하였던 후원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22) 영,G. F.앞의 책, pp.123-124.

    23) 같은 책, p.124.

  • - 14 -

    Ⅱ.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와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1) 미켈란젤로의 스승 기를란다이오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는 15세기 후반, 피렌체에서 가장 인기 있던 화가

    였다. 이 사람은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르네상스

    화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법과 재능을 두루 갖춘 거장이었다. 그의 벽화는

    관람자의 눈높이에 있는 것부터 3,4층 정도의 높이에 이르기까지 크기,

    위치 그리고 설치된 장소가 다양하다. 그의 그림을 보면 화가가 그림 속

    의 인물이나 배경을 관람자가 서 있는 시점에 따라 원근법으로 표현하였

    다. 15세기 화가들이 그토록 정복하고자 했던 원근법을 그는 통달하고 있

    었던 것이다. 당시 회화의 거장이었던 그는 1475년에서 79년 사이에 프

    란체스코 사세티로부터 주문을 받아 산타트리니타 교회의 사세티 예배당

    벽화를 그렸다. 이 후, 기를란다이오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갔으며 최고

    의 인기작가가 되었다. 24) 그리고 그는 로마로 건너가 프란체스코 토르나

    부오니의 후원을 받게 된다. 프란체스코의 부인이 출산하다가 죽었는데,

    프란체스코는 기를란다이오에게 묘석의 정면 전부를 그림으로 장식하고

    템페라로 작은 그림을 그리도록 부탁하였다. 기를란다이오는 네 개의 장

    면을 그렸는데, 모두가 찬탄하였다고 한다. 기를란다이오가 돌아갈 때, 프

    란체스코는 고향에 사는 친척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에게 기탁하였다. 프란체스코가 지오반니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교황이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퍽 기뻐하더라는 것이다. 25) 당시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고 있던 기를란다이오는 프란체스코의 추천으로 인하여 또 다른

    후원자인 지오반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지오반니의 후원을 받게 된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는 1498년에 산타 마

    리아 노벨라 성당 제단이 있는 곳에 성모님의 일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

    24) 고종희, 앞의 책 pp.86-96.

    25) 조르조 바사리, 앞의 책, pp.529-530.

  • - 15 -

    기 시작하였다. 14개의 칸을 「성모의 일생」과「세례요한의 일생」이라

    는 두 가지 주제로 장식하게 하였다. 각기 7편씩 벽화로 장식되었으며

    1490년에 제작을 마쳤다.

    미술사적으로 기를란다이오의 「성모마리아의 일생」과 「세례요한의 일

    생」은 그림에 있어서 촉각적 표현과 빛의 효과를 효율적으로 이용되었다

    고 보여진다. 그림은 매우 기량있게 그려졌고 채색은 밝고 매혹적이며,

    경쾌한 색깔의 사용은 인정할 만하다. 또한 이 그림에서도 원근법이 적용

    되어 그림을 보면 눈에서 멀어짐에 따라 점점 정확하게 축소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6) 특히 「성모마리아의 일생」중에 「성모마리아의 탄

    생」은 방안을 비추는 들창의 표현이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든다.

    또한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웃게 하려고 애쓰는

    여성의 자세에서는 우아함이 느껴진다.

    2) 지오반니의 경건주의 미술관

    기를란다이오(1449-1494)의 후원자인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는 로마에

    서 메디치가 은행의 대표를 지냈으며, 교황청에 보석을 판매하는 등의 사

    업을 했던 인물이다. 토르나부오니 가문은 피렌체의 귀족 가문으로 사세

    티가보다도 훨씬 명망이 높았다. 후원자인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의 누이

    인 루크레지아 토르나부오니는 바로 피에로 데 메디치의 아내이자 코시모

    의 며느리요, 위대한 자 로렌조의 어머니였다.27) 이러한 귀족 가문은 가

    문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가문이 다른 가문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이기 위해 서로 앞 다투어 예술분야에 대한 후원을 하였다.

    15세기 피렌체 최고의 정치가나 권력자들은 상인 출신으로서 부의 축적

    을 통해 귀족의 반열에 오른 신흥귀족들이었다. 설령 귀족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 하더라도 상업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하지 못하면 귀족 행세를 하

    26) 버나드 베른슨(최승규 옮김), 『르네상스 이태리 화가들』(한명, 2005), pp.175-176.

    27) 고종희, 앞의 책, pp.86-96.

  • - 16 -

    기가 힘들었으니 돈이 신분을 좌우하던 시대였다. 교회에 기부를 하거나

    미술활동을 후원하는 행위는 명예로운 시민의 덕목으로 평가되었다. 따라

    서 15세기 피렌체의 부자들은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기본이고 교회의 재

    건축이나 증축을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냈다. 그리고 미술품으로 교회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당시 피렌체의 시민들은 교회

    에 기부금을 많이 내면 가족 예배당을 할당받을 수 있었고, 이 예배당을

    미술가들에게 의뢰하여 앞 다투어 아름답게 장식했다. 28) 지오반니도 인

    기화가인 기를란다이오를 후원하여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화를 장

    식하게 한다.

    지오반니는 수도자 집회소의 수도원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본 건물

    의 그림이 파손되어 버린 일을 알게 되었다. 그 성당에는 안드레아 오르

    가아나가 그전에 그린 작품들이 있었는데, 지붕을 잘 간수하지 못하여 습

    기 때문에 완전히 파손되어 버린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이것을 다시 수

    리하던가 새로 그릴 것을 원하였으나, 보호자였던 릿치 가족들이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막대한 경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고, 그

    렇다고 이 공사를 타인에게 이양한다면 그들의 권리와 선조로부터 물려받

    은 문장(妏章)도 잃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오반니는 릿치 가에

    게 모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할 것을 약속하고 적당한 방법으로 보상하되

    릿치 가의 무기들은 성당 안, 눈에 띄고 영예로운 장소에 진열하기로 약

    속하였다. 이것이 수락되고 엄격하게 합의가 작성되었다29)

    그는 후원의 목적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자선 행위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집과 가문을 고귀하게 하고, 성당과 예배소를 향상시키기 위하

    여” 자신의 비용으로 후원한다고 적고 있다.30) 이를 통해 성당과 예배당

    의 치장을 위한 후원은 신앙심의 표현과 자선행위 및 가문을 고귀하게 하

    기 위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선 행위와 교회의 향상을 위

    한다는 목적은 의례적인 문구라 하더라도 가문을 고귀하게 한다는 목적은

    28) 같은 책, p.85.

    29) 조르조 바사리, 앞의 책, pp.529-530.

    30) 이은기, 앞의 책, p.14.

  • - 17 -

    분명한 표현이었다.

    지오반니는 고귀한 가문임을 드러내기 위해 격식에 맞는 화려함이 필요

    하다고 것과 거액의 돈을 지출하면서도 그것이 적절한 쓰임새일 때는 사

    람들의 감탄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상황과 격에 맞는 과

    시적인 쓰임새 중 하나인 후원을 통하여 가문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하였

    다. 이러한 지오반니의 생각은 그의 미술 후원에 반영되었다. 그래서 지

    오반니는 자신이 후원하는 성당을 화려하게 치장하였고, 이로써 가문의

    위신과 권위를 높아지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지오반니는 이전의 후원자들

    이 한 것보다 더 큰 규모로 더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하였다. 이로써 이

    미 자리 잡고 있는 가문보다 자신의 가문이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

    다고 선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대의 인기화가인 기를란다이오를 선택하고 후원함으로써, 그의

    인기 화가로서의 위치를 활용하여 지오반니는 세간의 이목을 주목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과 가문의 대외적 위치를 상

    승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했을 것이다.

    3)「성모 마리아의 일생」,「세례요한의 일생」

    지오반니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에게 자신의 가문이 대외적으로 잘 드

    러나기 위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화를 완성하기까지 어떠한 주문

    을 하였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이 주문사항이 그림에 반영되었는지 살펴

    보자.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오반니와 기를란다이오는 다음과 같은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서를 통하여 이들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 (마리아 일생에 관한 열네 가지 이야기와 다른 성인

    그림들의 위치를 자세히 정한 후) 푸른색을 칠해야하는

    곳은 깊은 바다 푸른색(Ultramarine)을 사용해야 하며,

  • - 18 -

    기타 세부나 배경이 덜 짙은 푸른색을 칠해야 하는 곳

    은 독일 푸른색(German azure)을 사용해야 한다. 대리

    석을 나타내는 모든 사물은 대리석 색깔을 칠해야 하며

    아름다움과 품위를 나타내야 하는 곳을 질 좋은 금을

    사용해야 한다. ․․․ (기타 색을 지정함) ․․․ 천장과 아치와

    기둥의 안팎에는 지정한 사물, 건물, 성, 도시, 산, 언덕,

    평원, 물, 바위, 의복, 동물, 새와 짐승 등 (주문자)지오

    반니가 좋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종류라도 정한 색과 금

    으로 그려야 하며, 문장을 어떠한 부분에 요구해도 지오

    반니가 바라고 좋아하는 대로 넣어야 한다. ․․․ 또한 계약

    자는 위에 언급한 이야기와 사물의 드로잉을 먼저 지오

    반니에게 보인 후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 ․․․31)

    지오반니는 기를란다이오에게 일일이 위치와 색을 지정해 주고, 모든 요

    구 사항을 다 수용하도록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그려질 내용과 간단한 스케치를 보이도록 한 점도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구체적이고도 까다로운 계약 이외에도 계약서에 쓰여 있

    지 않은 요구가 또 있었다. 토르나부오니의 가족과 친지들을 그림 속에

    등장시키라는 조항이었다. 32) 기를란다이오는 지오반니의 주문사항에 따

    라 모든 장면에서 당대의 인물들이 등장시켰다.

    우선 「성모 마리아의 일생」중 「성모 마리아의 탄생」에 지오반니가

    색을 지정하여 주문한 사항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자.

    31) 임영방, 앞의 책, p.363.

    32) 같은 책, pp.362-364.

  • - 19 -

    그림 4. 「성모 마리아의 탄생」

    먼저 주문의 내용 중에 푸른색과 금색이 지적되었다. 황금색과 군청색이

    지적된 이유는 그 당시에는 황금색과 은색, 군청색이 가장 값비싸고 사용

    하기 까다로운 물감이었기 때문이다.

    군청색의 경우에는 양질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었다. 양질의

    것은 중동 레바논 지역에서 비싸게 수입하는 청금석 가루를 물에 섞어 물

    감을 뺐다. 그 중 첫 번째 빼낸 물감이 선명한 보랏빛 청색의 군청색으로

    서 가장 좋고 비싸게 취급되었다. 하지만 질이 나쁜 것은 독일 청색으로

    믿을 수 없는 재료인 탄산구리로 되어 있어 빛깔이 흐리고 변하였다.33)

    기타 세부나 배경이 덜 짙은 푸른색을 칠해야 하는 곳은 독일 푸른색

    (German azure)을 사용해야 한다. 고 명시하여 그림의 내용 중에 중요

    하지 않은 부분에 헛되이 비용이 추가로 지불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보

    인다.

    이 주문사항은 주인공 루도비카의 뒤에 있는 토르나부오니가의 사람들이

    가장 좋은 푸른색인 보랏빛이 나는 푸른색의 옷을 입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양질의 레바논 푸른색을 써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했던

    33) 같은 책, p.364.

  • - 20 -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름다움과 품위를 나타내야 하는 곳을 질 좋은 금을 사용해야 한

    다. 고 명시하여 그림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토르나부오니 가문의 사

    람들은 황금빛 옷을 입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탄생」의 주인공인 루도

    비카의 모습에 이 주문 내용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인들

    의 황금빛 옷 뿐 만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또한 금칠

    로 장식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보면 금빛 글씨로 고급스러운

    벽위에 “NATIVITAS DEL TVA GENITRIX VIRGO GAV DIVM

    ANNVNZIAVIT VNIVERSO MVNDO”(오, 성처녀 마리아여 당신의 탄생

    은 모든 세상이 기쁨을 예고하리니)라는 라틴어가 씌어져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지오반니의 또 다른 주문사항인 그림 속에 토르나부오니가문 사람들을

    등장시키라고 한 주문이 「성모 마리아의 탄생」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자.

    「성모 마리아의 탄생」은 한 귀족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

    다. 갓 태어난 성모 마리아를 여인들이 목욕시키고 있고, 산모인 성 안나

    는 침대에 누워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주인공은 왼편에 서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이

    여인은 바로 지오반니의 외동딸인 루도비카로, 그녀가 성녀 안나를 방문

    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기를란다이오는 지오반니의 주문에 따라 그의

    외동딸, 루도비카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그렸던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중 지오반니가 지정한 색의 주문이 반영된 부분은

    「방문」이란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인 보잔나 델리 알비치

    는 가문의 문장인 비둘기와 불타는 태양을 섬세하게 수놓은 황금빛 가운

    을 입고 있다.34) 그리고 당시 여인들 사이에 유행한 아름다운 금발의 헤

    34) 타임라이프 북스 (윤영호 옮김), 『천재들의 시대』(타임라이프북스, 2004), p.81.

  • - 21 -

    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더불어 이 여인들은 화려한 금빛 겉옷과 함께 보

    석이나 가죽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그림 5.「방문」

    또한 이 그림에도 지오반니가 주문한대로 토르나부오니가문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방문」은 성모 마리아가 임신했을 때 세례자 요한을 임신 중

    이던 엘리사벳을 방문하였다는 성서의 한 구절을 그린 것이다. 중앙에는

    성모님과 엘리사벳이 만나서 두 손을 반갑게 맞잡고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세 여인들 가운데 가장 앞에 있는 여인의 복장은 단연 그녀가 주인

    공임을 말해준다. 그녀는 바로 로렌초 토르나부오니의 아내이자 주문자의

    며느리인 보잔나 델리 알비치이다. 그녀는 1488년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

    했다. 그 뒤를 따르는 중년의 여인은 디아노라 토르나부오니로서 후에 피

    렌체 통령이 된 피에르 소데리니의 부인이다. 35)

    이처럼 기를란다이오는 지오반니의 주문사항에 따라 토르나부오니가문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림을 완성시켰다.

    이제 「세례요한의 일생」에 나타난 지오반니의 주문사항이 어떻게 그림

    에 반영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35) 고종희, 앞의 책, pp.97-100.

  • - 22 -

    그림 6. 「즈가리야에게 나타난 천사」

    우선 「세례요한의 일생」중「즈가리야에게 나타난 천사」란 그림을 살

    펴보면, 토르나부오니가문의 몇 몇 사람들과 천사는 고급스런 푸른색과

    금색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즈가리야에게 나타난 천사」는 토르나부오니가문의 사람들이 대

    거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 당대 주요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

    다. 이 그림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교하고 개성있게 표현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당시 피렌체의 중요한 정치가와 토르나부오니가 사람

    들이다. 오른쪽 앞에 있는 세 사람은 줄리아노 토르나부오니, 조반니 토

    르나퀸치, 그리고 잔 프란체스코 노르나부오니, 그 맞은편 역시 토르나부

    오니가의 사람들이다. 왼쪽에 그려진 주문자 지오반니와 그의 오른쪽에

    그의 형제들이 그려져 있다. 기를란다이오는 지오반니의 주문사항에 따라

    토르나부오니가문의 사람들이 등장하도록 하였고, 결국 이 작품은 토르나

    부오니가문의 집단 초상화의 전형처럼 보인다.

    토르나부오니가문의 사람들 아래에 있는 반신상들은 당대의 철학자들로

    서 마르실리와 피치노, 크리스토포로 란디노, 데메트리오 그레코, 그리고

    아뇰로 폴리치아노이다. 여기 그려진 철학자들은 메디치가에 모여서 학문

  • - 23 -

    을 논하고 철학을 연구하던 사람들인데 36) 지오반니 토르나보오니는 자

    신의 예배당에 메디치가와 관계된 사람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여기서도 역

    시 간접적으로 메디치 가문과의 관계를 보여주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4)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에게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화를 그려놓을 수 있도록 후원하였다. 하지만, 지오반니는 재정

    적 뒷받침이 되지 못하여 화가의 능력을 보일 수 없는 가난한 화가를 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인기 있는 화가인 기를란다이오를 후원하여 대외적

    으로 과시하고,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 또한 선전하려고 하였다. 따

    라서 기를란다이오의 화풍은 지오반니로 하여금 그를 선택한 이유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오반니는 작품을 주문할 때, 자

    신의 이미지 연출을 위해서 특별한 색을 지정해주거나, 토르나부오니가문

    의 인물들이 등장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주문하였다.

    기를란다이오는 지오반니의 요구에 맞춰 작품 활동을 했다. 완성된 성당

    벽화를 보고 지오반니는 만족하였고 기를란다이오에게 후하게 보수를 하

    여 황금 1200듀카드를 주었다고 한다.37) 그리고 기를란다이오는 지오반

    니와 인연을 계속하였고, 피렌체시에서 얼마 멀지 않은 테르졸레 강가에

    있는 지오반니 토르나부오니의 별장 카사 막케렐리의 예방에 초상화를 그

    렸다.

    까다로운 주문사항이 그대로 그림에 반영되었다는 것은 후원자가 화가의

    역량이 펼쳐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그

    리고 화가도 후원자의 요구에 맞춰 순응적 자세를 취하며 작품 활동을 하

    여야만 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36) 같은 책, pp.100-102.

    37) 조르조 바사리, 앞의 책, pp.529-530.

  • - 24 -

    Ⅲ. 이사벨라 데스테와 피에트로 페루지노

    1) 후작부인 이사벨라의 도덕적 미술관

    이사벨라(1474-139)는 16세에 이웃나라 만토바의 곤자가 가와 결혼하

    여 프란체스코 2세 후작의 부인이 되었다. 22세 때인 1496년부터 만토바

    궁의 스투디올로를 본격적으로 구상하였다.

    이사벨라는 1496년 처음 두 작품을 궁정화가인 안드레아 만테냐

    (1431-1506)에게 주문하였다. 만테냐는 독자적으로 작품을 구상하여 연

    작으로 「파르나서스 산」(1497))과 「미덕의 승리, 미덕의 정원에서 악

    덕을 쫓아내는 미네르바 여신」(1502)두 점을 제작한다. 하지만 독자적으

    로 작품을 구상하였던 만테냐에게서 조차도 당시 화가의 위치가 느껴진

    다. 만테냐는 만토바 군주에게 “내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는 기로가 나의

    유일한 희망은 오로지 당신의 환대뿐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38)

    이사벨라는 만테냐 작품에 이어서 스투디올로를 장식할 또 다른 작품을

    위해 로렌조 코스타를 선택하였다. 그를 선택한 이유는 이사벨라와 집안

    간이고 코스타의 후견인인 안톤갈레앗쪼 벤티볼리오 데 볼로냐가 추천했

    기 때문이다. 군주가 미술가를 지명하는 것은 궁정인 집안과의 관계, 개

    인적인 연관성에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한 화가였던 보티

    첼리는 피렌체 주재 이사벨라의 대리인을 통하여 서재 장식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거절당했다. 보티첼리는 이사벨라가 거느리고 있는

    예술가 무리에 속해 있지도 않고 연관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름이 나 있던 화가 피에트로 페루지노(1450-1523)는 이사벨라의

    스투디올로를 장식하게 될 화가로 선택된다. 39) 페루지노가 스투디올로를

    꾸미게 된 것으로 보아, 이사벨라가 거느린 예술가 무리 중 한 사람일 것

    이라 추측된다. 이를 통해 이사벨라가 페루지노를 선택한 것은 그녀와의

    38) 임영방, 앞의 책, p.144.

    39) 같은 책, pp.186-189.

  • - 25 -

    개인적인 연관성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사벨라 역시 이름

    없는 화가를 후원하여 작품을 완성하기 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 얽혀있

    고, 화가로서 이름 나있는 페루지노에게 작품을 주문하여 대외적으로 자

    신을 선전하고자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사벨라는 선택한 화가를 통해 자신의 스투디올로를 꾸밀 그림이, 부인

    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흠잡을 데 없는 도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길

    바랐다. 따라서 이사벨라는 신화그림을 주문하였고, 이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이 종교화나 보석류에 제한하여 미술을 후원하였던 것과는 다른 모습

    이었다. 미술애호라는 개인의 취미라는 단순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를

    이사벨라의 성격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궁정사회

    에서의 회화나 조각은 그것을 앞에 두고 신화이야기의 실마리를 끌어내는

    사교의 매체였으며, 외교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드

    러내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사벨라의 교육적인

    신화내용은 후작부인으로서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40) 이는 이사벨

    라의 개인적인 취향이기보다 후작 부인이라는 사회적 여건과 역할 속에서

    택해진 주제라고 볼 수 있다.

    후작부인이라는 사회적 위치 속에서 그림속의 내용은 당연히 자녀의 교

    육을 담당하고, 부인으로서 정숙해야 하는 배우자의 미덕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 결국 이사벨라가 주문하여 그려진 그림은 대외적인 이미지

    를 위한 것이었다. 후작부인으로서 교육적이면서도 정숙한 모습을 표현하

    고자 하였으며 이를 작품을 통해 드러내기 위해 후원을 하였다.

    이사벨라가 선택한 페루지노는 여러 차례 서신을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계획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도덕적 내용이 담긴「사랑과 순결의 싸움」

    (1505)이라는 작품을 힘겹게 제작한다.41)

    미술사적으로 페루지노의 「사랑과 순결의 싸움」은 우수한 채색을 통해

    40) 이은기, 「이사벨라 데스테의 미술후원과 성격」,『미술사논단』11호(한국미술연구소, 2000),

    p.147.

    41) 임영방, 앞의 책, p.189.

  • - 26 -

    빛의 효과를 효율적으로 나타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감청색 색소를

    잘 만들었던 페루지노의 재능이 작품 속에 여실히 녹아 있다.42) 하지만

    어수선한 인물들의 구성으로 인해 페루지노의 작품으로는 우수하다고 보

    기 어렵다.

    2)「사랑과 순결의 싸움」

    이사벨라는 페루지노에게 그림을 맡기도록 결정한 후, 만토바의 시인인

    파리데다 체레사라에게 자신의 의도에 적합한 신화이야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를 받아서 이사벨라는 간단한 스케치를 그려 내용과 함께 페루

    지노에게 전달하였다.43) 이사벨라가 피에트로 페루지노에게 자신의 스투

    디올로를 꾸미기 위해 어떠한 내용을 전달하였는지 살펴보자.

    ․․․ 우리의 시적인 구상은 ․․․ 음탕함을 상대로 한 정숙함

    의 싸움이다. 다시 말하면 비너스와 큐피드와 맹렬히 싸

    우는 팔레스와 다이아나이다. 팔레스는 큐피드를 정복하

    여 그의 금화살을 부러뜨리고, 은활을 발 밑에 던져 버

    린 채, 한손으로는 큐피드의 눈을 가린 띠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창을 들어 그를 죽이려 하는 모습

    이다. 이에 비해 다이아나는 비너스와 더욱 접근하여 싸

    워야한다. 비너스는 몸의 살갗이나 왕관, 환관, 또는 베

    일에 다이아나의 화살을 맞았다. 다이아나의 옷을 비너

    스의 횃불에 그슬리겠지만, 그러나 누구도 상처를 입어

    서는 안 된다. 이 네 신 이외에 펠레스와 다이아나와 연

    관된 정숙한 님프들은 당신이 원하는 어떤 자세로 해도

    42) 조르조 바사리, 앞의 책, p.600.

    43) 이은기, 앞의 책, p.143.

  • - 27 -

    좋지만, 판과 사티로스 그리고 수많은 큐피드들과 맹렬

    히 싸우는 모습이어야 한다. ․․․ 팔레스 옆에는 내가 원하

    건대 올리브 나무가 있어야 하며, 메두사 머리를 새긴

    방패를 들고, 나뭇가지 사이에는 펠레스에게 총명함을

    주는 올빼미가 있어야 한다.

    1503년 이사벨라가 페루지노에게 「사랑과 순결의 싸움」을 주문하면서

    보낸 주문안의 일부이다.

    그림 7.「사랑과 순결의 싸움」

    이 작품의 내용은 음탕함 을 이기는 정숙함 이다. 그리고 비너스

    와 팔레스로 대변되는 이 이야기는 원래의 신화보다 도덕화한 이야기이

    다. 44) 이사벨라는 「사랑과 순결의 싸움」에서 정숙함이 자신을 연상시

    키도록 주문하였다. 만테냐가 그렸던 「파르나서스 산」이 용병장인 남편

    과 자신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던 것처럼 「사랑과 순결의 싸움」에서도 그

    림의 내용이 자신을 연상시키도록 하였던 것이다.

    44) 같은 책, pp.144-145.

  • - 28 -

    그리고 만테냐의 또 다른 그림인「미덕의 승리, 미덕의 정원에서 악덕을

    쫓아내는 미네르바 여신」에서 영혼을 둘러싼 싸움을 주제로 하여 미덕과

    악의 화신으로 구성된 그림의 모습을 페루지노가 따르도록 주문하였다.

    그림 8.「미덕의 승리, 미덕의 정원에서 악덕을 쫓아내는 미네르바 여신」

    「미덕의 승리, 미덕의 정원에서 악덕을 쫓아내는 미네르바 여신」은 공

    작부인 이사벨라 모습의 팔레스가 승리를 상징하는 부러진 창과 방패를

    들고 있다. 그리고 순결의 여신과 함께 악이 득실거리는 정원 안에 뛰어

    든다. 그의 발아래에는 “게으름이여, 물러나라. 큐피드의 활은 부러졌다.”

    라고 쓰여 있다.45)

    페루지노에게도 팔레스가 큐피드를 정복하는 모습을 그리도록 했으며,

    팔레스의 총명함을 나타내는 올빼미까지 그리도록 주문하였다.

    이사벨라는 고전에 대한 지식을 빌어서 아이들의 교육자이며 정숙한 부

    인이라는 후작부인의 역할을 표방하려 하였던 것이다.

    45) 같은 책, p.146.

  • - 29 -

    이사벨라가 페루지노에게 보낸 다음의 주문안의 내용 역시 과연 페루지

    노의 창의력이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아름답게 하기 위해 강이나 바다 같은 물이 있어야 하

    고 그 곳에서는 판과 사티로스, 작은 큐피드들이 큰 큐

    피드들을 도우며, 어떤 큐피드는 강을 질러 수영하고,

    어떤 큐피드는 하늘을 날고, 어떤 큐피드는 흰 백조를

    타고 이 사랑스런 싸움에 함께 하여야 한다. ․․․ 46)

    그림 속의 주요 인물 뿐 만 아니라, 세부적인 인물 하나하나의 행동모습

    까지 주문한 것을 알 수 있다. 페루지노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림 속

    에 반영하였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팔레스와 큐피드, 다이아나와 비

    너스가 싸우고 있는 장면 뒤로 강으로 보이는 물이 보인다. 그리고 주문

    안의 내용처럼 강을 가로지르는 큐피드와 하늘을 나는 큐피드, 흰 백조를

    타고 싸움을 하고 있는 큐피드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아래의 주문안의 내용도 화가의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끔 만든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구체적인 안을 작은 드로잉과 함께 보내니 이

    설명과 그림을 통해 당신은 내가 원하는 바를 알 것입

    니다. ․․․ 만약 인물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면 당신이 원하

    는 대로 줄일 수 있지만 주요 네 신을 없애지 마십시오.

    ․․․ 그러나 다른 것을 더하지는 마십시오. ․․․47)

    구체적인 안 뿐 만 아니라 이를 작은 드로잉으로 그려 보냄으로써 화가

    46) 같은 책, pp.144-145.

    47) 같은 책, pp.145.

  • - 30 -

    의 역할을 더욱 축소시켰다. 화가는 그가 가진 기법으로 이 작은 드로잉

    을 이어 붙여 좀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리고 이사벨라는 인물의 수가 많다고 생각되면 그 수를 줄이라고 했으나,

    이사벨라가 보낸 주문안의 내용 이외의 것은 더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이사벨라가 화가의 재량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엔 그의 재량을 마

    음껏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알 수 있다.

    페루지노는 이사벨라의 이 까다로운 주문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현

    재 남아 있는 그림과 위의 주문사항은 일치하고 있다. 페루지노는 단지

    자기 그림이 걸릴 자리 옆에 이미 있는 만테냐 그림의 인물들 크기를 물

    었다고 한다.48) 이는 자신이 그릴 그림과 함께 걸릴 때 서로 어울리게 하

    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된다.

    3)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

    이사벨라는 궁정화가였던 만테냐와, 그리고 개인적 연관성이 있었던 페

    루지노와 코스나에게 자신의 스투디올로를 장식할 그림을 주문하였다. 이

    중 페루지노에게 보낸 주문안을 통해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다. 이사벨라가 보낸 주문안은 페루지노의 상상력이 거의 작용하지 못

    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지만, 페루지노는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

    만 1505년 완성된 그림이 스투디올로에 설치되었을 때 이사벨라는 페루

    지노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비너스를 누드로 나타내었기 때문이었

    다.49) 이사벨라가 화를 낸 이유는 페루지노가 자신의 재주를 과시하려는

    데에 신경을 써 그림에서 우화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

    었다.50) 페루지노는 이사벨라의 주문을 모두 받아들였지만, 피에트로가

    주관적으로 생각하여 그린 내용은 이사벨라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48) 같은 책, p.145.

    49) 같은 책, p.145.

    50) 임영방, 앞의 책, p.189.

  • - 31 -

    이를 통해 이사벨라는 페루지노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화가였음이

    중요했으며, 그의 화풍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사

    벨라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림의 회화적인 특성보다 신화의 내용과 그림을

    보는 이의 반향이었다. 51) 미술적으로 잘 그려진 그림이 아닌 후작부인에

    게 어울리는 미덕을 미화한 이미지를 원했던 것이다. 후작부인의 방에 있

    는 그림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여신인 비너스마저도 누드이기보다는 옷

    을 입은 여신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후원자는 화가의 창조적인 구성

    에는 만족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주문 사항이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되길

    바란 점을 볼 수 있다. 이로써 이 작품은 미술적인 면에서 좋은 작품으로

    는 평가되지 않고 있으며, 피에트로의 작품 중에 공간적 구성 등이 적절

    하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후원자는 예술 진흥을 위하여 화가의

    재능을 후원하기 보다는 화가에게 자신의 후원 목적에 맞게 작품을 주문

    하여 생산했던 것이었다.

    51) 이은기, 앞의 책, p.145.

  • - 32 -

    맺음말

    르네상스 시대 전제 군주들의 위세는 예술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

    아 그 재능을 맘껏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달려있었다. 특히 미술 분

    야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

    하는 것이므로 군주들은 이 부분에 많은 지원을 하였다.

    피에로 데 메디치는 베노초 고촐리를 후원하여 메디치 궁의 예배당 「동

    방 박사의 행렬」이란 벽화를 장식하였다. 피에로가 수많은 화가들 중에

    서 고촐리를 선택한 것은 그의 그림 실력도 뛰어났겠지만, 그가 그림을

    완성시키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피에로는 메디치 가문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사건인 피렌체 종교회의에 대한 내용을 하루라도 빨리 완성하

    여 그의 가문의 영광을 알리고 과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고촐리

    의 화풍이나 미술적 역량은 피에로에게 큰 관심이 대상은 아니었다. 그렇

    기 때문에 피에로는 고촐리가 그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 보다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자세한 주문이 작품으로 완성되길 바랐던

    것이다.

    후원자의 후원성향에 대해 알 수 있는 두 번째 작품으로는 지오반니 토

    르나부오니가 후원하고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가 완성한「마리아의 일

    생」,「세례요한의 일생」을 들 수 있다. 지오반니가 기를란다이오를 선

    택하여 작품을 완성하도록 후원한 이유는, 지오반니의 친척인 프란체스코

    로부터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하지만 기를란다이오를 선

    택했던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사세티 예배당의 벽화를 완성하였던 유명

    한 화가였다는 점이다. 기를란다이오의 유명세를 통해 지오반니는 자신을

    대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유명한 화가 기를

    란다이오를 선택하고,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화를 릿치가 대신 장

    식하도록 후원하여 그 가문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려 하였다. 따라서

    지오반니는 자신의 가문이 대외적으로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기를란다이

    오에게 세세하게 주문을 한다. 색의 선정과 색을 써야할 곳 등을 정했으

  • - 33 -

    며, 토르나부오니가문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하였다. 이러한

    주문사항은 그림에 하나하나 반영되었다.

    마지막으로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그린 「사랑과 순결의 싸움」을 후원한

    이사벨라 데스테의 후원성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사벨라는 만토바 궁의

    스투디올로를 장식하기 위해 궁정화가인 만테냐의 작품을 비롯하여 유명

    화가의 작품을 후원한다. 이사벨라가 보티첼리를 후원하지 않고, 로렌조

    코스타와 피에트로 페루지노를 후원한 것은 그녀와의 개인적인 연관성 때

    문이었다. 이사벨라는 페루지노에게 후작부인으로서 어울리는 미덕과 교

    양의 방법으로 미화한 이미지의 작품을 주문하게 된다. 주문 시에는 페루

    지노의 상상력이 작용할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주문을 한다. 페루지노

    는 이사벨라의 주문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그의 재주를 과시한 부

    분에 있어서 이사벨라는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이 작품은 페루지노의 작

    품 중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 작품을 후원한 후원자들의 공통점이라면 화가의 창조적 역량은 배제

    하고, 인물선정에서부터 인물의 위치와 색깔의 사용 등을 지정하여 까다

    롭게 간섭했다는 점이다. 비록 페루지노와 이사벨라의 의견충돌이 보이기

    는 하나,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세세한 거의 모든 계약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화가가 자신의 기량을 자

    유롭게 발휘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후원자들

    의 차이점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주문의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

    주문 시에 피에로와 지오반니는 자신의 가문의 인물을 등장시키도록 하였

    다. 따라서 화가는 인물들을 초상화처럼 표현하였으며, 더 나은 모습을

    위해 이상화시키기도 하였다. 반면 이사벨라는 자신이 직접 그림 속의 초

    상화처럼 드러나도록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품의 주인공이 후작부인의

    모습을 대변해 주길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내용을 살펴볼 때, 후원자는 자신의 주문 목적에 따라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의 개인적 기량이나 화풍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

    이 후원하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화가의 화풍보다는 화가

  • - 34 -

    의 작업 속도나 화가로서의 이미지가 후원자로 하여금 화가를 선택하여

    후원하는 주요인이 되었다. 결국 화가의 화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에, 후원자는 작품 속에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 화가의 생각보다는 후원자 자신의 생각을 적극 반영하고

    자 했다. 이는 화가와 주고받은 편지나 계약서, 그리고 작품을 통해서 확

    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의 후원자들은 화가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펼치

    며 작업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돕는 데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후원자의 간섭 속에서 화가는 자신의 주관을 상당부분 억제하면

    서 후원자의 요구에 맞춰 작품 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르네

    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후원자의 예술애호정책 덕분에 자유로운 지적, 정

    신적 활동을 전개하였다고 추정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보여 진

    다. 후원자는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술적

    재능과 순응적 자세를 동시에 갖춘 화가를 찾았으며 그에게 까다로운 주

    문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르네상스 미

    술의 후원자는 화가에 대한 지원을 통해 예술을 진흥하는 것보다는 자신

    의 목적에 맞게 화가를 부리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생

    각된다.

    본 연구는 기존의 르네상스 후원자에 대한 관점에서 탈피하여, 르네상스

    후원자의 다른 모습을 소개함으로써, 르네상스 후원자에 대한 이해를 넓

    혔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몇 가지의 작품

    속의 후원으로는 후원자의 모습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후원자와 화가의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기대해본다.

  • - 35 -

    참고문헌

    【단행본】

    조르조 바사리(이근배 옮김),『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탐구당, 1986)

    조선미,『화가와 자화상』(예경, 1990)

    안소니 블런트(조향순 옮김),『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론』(미진사, 1990)

    고종희,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한길아트, 1998)

    버나드 베른슨(최승규 옮김),『르네상스 이태리 화가들』(한명, 2005)

    영, G. F.(이길상 옮김), 『메디치』(현대지성사, 2001)

    리처드 터너(김미정 옮김), 『피렌체 르네상스』(예경, 2001)

    임영방,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문학과 지성사, 2003)

    타임라이프 북스(윤영호 옮김), 『천재들의 시대』(타임라이프 북스, 2004)

    【논문】

    이은기, 「메디치 가의 미술 후원과 정치적인 목적」,『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6호 (서양미술사학회, 1994)

    _____, 「이사벨라 데스테의 미술후원과 성격」,『미술사논단』11호(한국미술연

    구소,2000)

  • - 36 -

    1. 베노초 고촐리, 2. 베노초 고촐리,

    「동방박사들의 행렬」 제단부분 「동방박사들의 행렬」

    3.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4.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동방박사들의 경배」 「성모 마리아의 탄생」

  • - 37 -

    5.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6.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방문」 「즈가리야에게 나타난 천사」

    7. 피에트로 페루지노, 8. 안드레아 만테냐,

    「사랑과 순결의 싸움」 「미덕의 승리, 미덕의 정원에서 악덕을 쫓아내는 미네르바 여신」

  • - 38 -

    The Patrons and Painters of the Renaissance

    The patrons in the Renaissance sponsored various areas in the

    society to reveal their social status. Among the many parts, the

    supports for paintings were salient because they could easily

    convey their images through the paintings. Also, despite the fact

    that the status of the artists in the Renaissance was known to be

    ascended, they were still subordinated to the orderers.

    In these circumstances, Piero de Medici sponsored Benozzo Gozzoli

    who had fast speed in completing paintings, and decorated the Chapel of

    Medici Palace with the wall painting,「Parade of the Magi」. Also,

    Giovanni Tornabuoni sponsored the popular artist, Domenico Ghirlandaio

    and completed 「The life of the Virgin Mary」and「The Life of the

    John, the Baptist」. Moreover, Isabella d E̕ste sponsored Pietro

    Perugino and completed 「The Quarrel of Love and Purity」.

    When we look into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patrons and

    the artists who painted paintings, we can recognize the fact that

    the patrons in the Renaissance did not act as the ones who

    actually supported the artists to outstretch their creative

    competences. The artists at that time painted their works to meet

    the patrons' requirements. In other words, they had dissolved

    their attentions in the process of meeting their patrons'

    requirements.

    It's true that we cannot explain all the figures of the patrons in

    the Renaissance through the expression, ' patrons sponsored the

    artists' intellectual and mental activities to be shown liberally in

  • - 39 -

    their policy to love arts.' This is because the patrons were either

    very particular about ordering the artists to make images suitable

    for their aims or because they looked for the artists who were fit

    for their objects and got the images they wanted. Thus, through

    these figures of patrons, we can say that the patrons at that

    time were not the people who sponsored the artists, but were the

    ones who ordered and produced the artistic works that were fit for

    their supporting purposes.

    머리말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