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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상학 하기를 배울 수 있는가? 레스터 엠브리 (Lester Embree) 최일만 박수근 , < 독서 > (1950 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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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하기를 배울 수 있는가?

레스터 엠브리(Lester Embree) 저 최일만 역

박수근, <독서> (19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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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정을 담아 추억하는 친구 허버트 스피겔버그(Herbert Spiegelberg)에게 이 텍스트를 바친다.

그의 저작의 반향은 여기에서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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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하기를 배울 수 있는가?

레스터 엠브리(Lester Embree) 저 플로리다 애틀랜틱 학

2012 [email protected]

초판 2012. 10. 14.

이 소책자를 동료들, 특히 학생들과 주저 없이 공유해 주세요. 이 책의 개선을 위한 의견과 제안을 환영합니다!

***

www.reflectiveanalysi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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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수천 편에 달하는 문헌들을 보면, 현상학적 텍스트를 해석하는 기량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상학은 텍스트의 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심적 또는 지향적 과정과 그 안의 지향된- 로의-사물 또는 마주쳐진- 로의-사물인 현상에 한 반성적 관찰, 분석, 그리고 형상적 기술(記述)이다. 이

러한 종류의 것은 수천 편 가까이 되지도 않는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이념들』(1913)과 같은 저작에 있는 방법론적 기술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왜 그럴까?

『이념들』만이 아니라 『존재와 시간』(1927), 『존재와 무』(1943), 『지각의 현상학』(1945), 『제2의 성』(1949) 등의 예를 보면, 우리의 전통에서 볼 때 거장이라고 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겸손함으로 인하여 그러한

거 한 저작으로 현상학을 실제로 생산하기를 시도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안이 있다.

그것은 내가 “반성적 분석”(reflective analysis)이라고 부르는 장르로 약 3000 단어 정도의 간결한 시론을 쓰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학술연구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런 분석들은 권위자에 한 언급이 적거나 없어도 된다.

문헌에 한 참조가 있다 해도 약간이면 되며, 주석, 인용 등도 드물어도 된다. 그러나 그 분석들은 주요 용어

에 한 명확화를 포함해야 하며, 세심하게 선택된 예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반성적 분석”은

어떤 사태 자체에 한 것이다.

나의 희망은, 학생이 반성적 분석을 공부함으로써 참조된 사태 자체에 한, 즉 어떤 현상에 한 약간의

반성적 분석을 할 동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그 기술을 검증하려고 시도하고, 그러한 분

석이 그릇된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수정하고, 그것이 불완전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것을,

역시 현상학적으로 확장할 동기를 학생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홀로 연구하는 개인이 그러한 노력을 함으로써 그의 반성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모든 정상적인 성인은 이미 자기 자신과 타자의 심적 삶에 해 반성하는 약간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또한 나는, 학생들이 홀로 반성적 분석을

공부하고, 그 후 소크라테스적 방식으로 진행하는 교사와 만나는 방식의 교수법을 통해 이러한 향상이 성취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책자의 장들의 문단마다 번호가 붙어있는 것은, 수업 중의 토론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기량과 자신감이 증진됨에 따라, 자기 자신의 반성적 분석을 집필하는 시도를 하고 그것을 호의적인 동료

들과 공유해야 한다. 겸손한 본 반성집(集)이 그런 것이다. 나는 여기 있는 열 편의 반성적 분석의 저자이다. 나는 이 반성집을 학생들 및 관심 있는 동료들에게 복사해 줄 것을 장려한다. 이 반성적 분석들은 본래 다양한

상황에서 쓰인 것이며 내용 상 겹치는 부분이 상당하므로, 각 장을 분리하여 지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이것이 너무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첫 두 장은 다른 장보다 더 광범위하다. 나머지 부분

을 충분히 연구한 후 다시 돌아와 첫 두 장을 다시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현상학 하기를 실제로 시도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독자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쓴 새로운 반성적 분석을 나에게 보내달라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저작에서(우리 과거의

거장들에게서만이 아니라) 발견된 반성적 분석들도 보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어 외의 언어일 수도 있다.

교육은 흔히 그 지역의 언어로 이루어지며 이때 그 지역 언어로 된 반성적 분석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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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포부는 더 많은 반성집을, 특히 타인이 행한 반성집을 출간하는 것이다.

이미 아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반성적 분석이 포함된 두 텍스트를 출간한 바 있다. 이 텍스트들도

이용될 수 있다(아래에서 별표가 뜻하는 바는, 그 출간물을 Amazon.com 또는 킨들에서 입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Análisis reflexivo. Una primera introducción a la Fenomenología / Reflective Analysis. A First Introduction to

Phenomenology, dual language text, trans. into Castelian by Luis Román Rabanaque (Morelia: Editorial Jitanjáfora, 2003, 543

pp.). Original English separately as Reflective Analysis (Bucharest: Zeta Books, 2006, 196 pp.; 2 nd edition, 2011)*; Translations:

Лестер Эмбри Рефлексивный анализ. Первоначальное введение в феноменологию, trans. Victor

Moltchanov (Moscova: Triquadrata, 2005, 223 pp.); 使える現象� (Tokyo, 2007); Analiza refleksyjn, (Warsaw, 2006); 思性分析:

現象學�究入門 (Taiwan, 2007; also from Peking University Press, 2007, second printing 2008); Analiza Reflexivă (Cluj

Napoca: Casa Cărţii de Ştiinţă, 2007); Analyse réflexive, trans. Mathieu Trichet (Bucharest: Zeta Books, 2009)*; Analisi

riflessiva. Una prima introduzione all’investigazione fenomenologica, trans. Angelo Bottone (Roma: Edizioni Studium S.r.l, 2011)*;

Análise reflexiva: Uma primeira introdução na investigaçã fenomenológica, trans. Antonieta Lopes, scientific reviser. Pedro Alves

(Bucharest: Zeta Books, 2011)*; [Catalan translation forthcoming; Refleksiv analyse; Ei første innføring i fenomenologisk

gransking. Translated by Kåre S. Fuglseth (Trondheim: Tapir akademisk forlag, expected 2012); Lithuanian translation seeking

publisher.]

Environment, Technology, Justification. (Bucharest: Zeta Books, 2008, 173 pp.);* Ambient, Technología, y Justificación,

trans. Luis Román Rabanaque (Bucharest: Zeta Books, 2010), 210 pp. [publication in Chinese and Japanese hoped for].

제타 북스에서 나온 이 책들의 페이퍼백 판본이나 전자 도서 판본을 어떻게 주문할 수 있는지는 이 저작의 맨 뒤에 설명되어 있다.

레스터 엠브리 델레이 해변,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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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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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반성적 분석이란 무엇인가…………………………………………………………………………………9

II. 타자에 한 반성………………………………………………………………………………………….17

III. 간 접 적 마 주 치 기 를 반 성 적 으 로

분 석 하 기 … … … … … … … … … … … … … … … … … … … … … … … … . . 2 3

IV. 전적인 비반성성…………………………………………………………………………………………...29

V. 기 억 에 한 약 간 의 반 성 적

분 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 3

VI. 꾸며내기……………………………………………………………………………………………………...3

9

VII. 그러함으로부터 하면 좋음, 해야 함을 도출하기……………………………………………………….45

VIII. 규 범 의 정 당 화 를 반 성 적 으 로 분 석 하 기 … … … … … … … … … … . .

… … … … … … … … … … … … … … … 5 1

IX. 반 성 적 분 석 을 글 로 쓰 는 방 법 에 한 반 성 적

분 석 … … … … … … … … … … … … … … … … … … … … . 5 7

X. 반성적 분석을 가르치는 방법…………………………………………………………………………….65

맺음말: 반성적 분석의 필요성……………………………………………………………………………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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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반성적 분석이란 무엇인가?

1. “반성적 분석”(reflective analysis)이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에 의해 1900년에 시작된 사

상의 조류인 현상학의 다른 이름이다. 후설은 엄 한 학문인, 그렇기에 “~학”이 될 자격이 있는 형이상학 또는

제1철학을 전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여러 분과학문에서 이용될 수 있는 접근법으로서의 현상학이 애초에 무엇인지를 더 잘 전달해 주는 말은 “반성적 분석”이다.

2. 소위 현상학의 부분이 사실상 텍스트에 한 학술연구인 오늘날, 이러한 접근법의 기량을 이해할 필

요가 있을 뿐 아니라 기량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현상학적 주장이 평가될 수 있고, 현상학적 탐구가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본 소론에서 나는, 이 일반적 접근법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현상학 내에서의

글쓰기 또는 현상학에 한 글쓰기는 부분 철학의 전문가들이 동료 전문가들에게 전달하지만, 나는 또한 다

른 분과학문의 전문가들에게, 그리고 특정 분과학문에 전념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말을 걸고 있다. 그리고

나는 철학에 한 어떤 지식도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이 입문적 스케치를 수업에서 토론하는 것은 유용할

것이며, 내가 문단에 붙여놓은 번호가 토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된 어떤 문제들은 교수들에게도 낯설 것이다.

4. 여기에서 기존의 전문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신 나는 진행 과정에서 전문적 표현들을

약간 도입할 것이며, 늘 그렇지는 않더라도 개는 그것을 소위 “강조 따옴표”로 표시할 것이다. 이 전문적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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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들은 흔히 평범한 단어로부터 발전될 것이며, 예시를 통해 명확화될 것이다. 잘 이행된 반성적 분석은 좋은

예시를 포함한다.

5. 우선, 우리가 다음과 같은 태도에 있다고 가정하자. 이 태도에서 우리는, 위의 사진에 그려진 것을 흐트러진 침 위쪽 벽에 그림이 걸려있는 방 구석이라고 기술(記述)할 수 있다. 벽, 침 , 이불, 베개, 그림은 문화적

상으로서, 이들이 훨씬 더 자세하게 기술될 수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제 익숙한 태도 변경을 통해서, 우

리가 방금 시작한 태도가 곧바른 태도, 또는 더 나은 말로는, “비반성적” 태도임을 인지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주 많다. 여기에는 (가) 위의 삽화 속에 있는 것이 우리에게 주되게 시각적으로 보이며 만져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촉각적인 것으로 마주쳐지게 되는 “주어짐의

방식”(manner of givenness), (나) 더 큰 상황의 부분인 그 장면이 “현출들”(appearances)을 통해서 보이기 때문에, 우

리가 더 가까이 다가가거나 물러서면 벽의 그림이 더 크게 보이거나 더 작게 보이겠지만, 그림 자체는 같은 크기를 유지한다고 생각되리라는 점, (다) 저 그림은 어떤 긍정적 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구겨진 담요는 조금

추하다는 점, (라) 흐트러진 침 는 그것을 정돈하는 의지적 행위를 요구한다는 점이 포함된다.

6. 이전에는 간과되었던 “사태들”(무엇이든 하나의 사태라는 의미에서)을 우리가 관찰하고 기술할 수 있는

그 태도는 "반성적" 태도라고 불릴 수 있다. 이 두 번째 태도에 의거함으로써, 내가 한 것처럼, 침 , 벽 등이 주되게는 보인다고, 그것이 시각적 현출들을 통해 보인다고, 그것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가치를 가진다고,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것에 해 행위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7. 그려진 방의 구석을 보면서 다른 각도의 반성을 함으로써 우리는 “상관관계”(correlation)를 인지할 수 있

다. 여기에서는 방금 구별한 것들과 관계되는 (가) 시각적으로 지각하기, (나) 가치평가하기(valuing), (다) 가능한

것을 의지하기라는 구성요소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 번째 각도의 반성에서, 우리의 자아 또는 이드(id)에

귀속된다는 것을 우리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성향과 같은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비반성적 태도와 반성적 태도 등이 있다. 그리고 또한, 시각적 지각하기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공을 벽에 던져서 그것이 침 에서 튄 후

방에서 튈 때 우리가 체험하게 될 청각적 지각하기는 시각적 지각하기와 다르다. 그러나 이 청각적 지각하기는,

우리가 손을 벽을 쓸어 내리는데 뭔가가 현재적으로 현행화되지는 않는 경우 우리가 가지게 될 촉각적 지각하기처럼, 하나의 가능성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경우 현행화된 “경험하기”에서 그 경험하기 자체도, 그 안에서

“경험된-것으로서의- 상”도 “지금”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무엇 안에서 일어난다. (“지금”이라는 말이

더 나은 것은, “현재”(present)라는 말은 아래에서 다른 기술적 목적으로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각적”이라고 특징짓는 것이 가장 좋다.

8. 한편으로 지각적 경험하기는, 실재적 사태와 관련하여(“실재적 사태”는 시간 속에 있지만, 단어의 의미

같은 “이념적 사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 장에서 이념적 사태에 해 이 이상 말할 필요는 없다.) “상기하

기”와, 다른 한편으로 “예상하기”와 조된다. 상기적 경험하기에서, 체험하기는 지금 흘러가는 것으로 관찰되지만 그 속에서 체험된 것은 과거에 있다. 예상적으로 체험하기에서 예상된 것은 보통 미래의 가능성이나, 반면에 그것에 한 예상하기는 지금 속에서 흘러 가는 것으로 관찰된다.

9. 방금 구별한 실재적 사태 경험하기의 세 가지 종 외에, 위에서 그려진 우리 방 구석 장면의 다른 면모

들과 상관적으로, 긍정적 가치평가하기와 부정적 가치평가하기 사이의 차이, 또한 비현행적 지각하기 및 의지하기와 현행화된 지각하기 및 의지하기 사이의 차이가 암시되었다. 가치평가하기와 의지하기, 그리고,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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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믿기는 “정립하기”(positing)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무엇의 종들이다. 더 일반적으로, 경험하기와 정립하

기는 우리가 “마주치기”(encountering)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무엇의 구성요소의 일종이다. “경험하기”를 이

모든 구성요소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려는 유혹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마주치기”를 사용함으로써 “경험하기”가 자유로워진다. 그리하여 경험하기로 종적으로 지각하기, 상기하기, 예상하기만을 포괄하는 것, 그리고 경험하기를 정립하기의 종으로서의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와

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10. 이 소론의 청자와 독자는 지금까지 기술한 사태가 내가 기술한 로인지 어떤지를 발견하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기술들은 “반성적 관찰”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무엇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도

역시 기술한 세 가지 각도를 가진다. 상관적으로, 마주치기, 마주쳐진- 로의-사태, 마주치기의 태도도 반성적-

관찰적으로 검증가능하다. 분류하여 윤곽을 간단히 그려 보면, 우리의 지금까지의 발견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마주쳐진- 로의- 상도 추가할 수 있다.)

마주치기

1. 정립하기

가. 의지하기

나. 가치평가하기

다. 믿기

2. (실재를) 경험하기

가. 예상하기

나. 상기하기

다. 지각하기

11. 이제 세 가지 질문을 함으로써, 지금까지 스케치한 것을 청자나 독자가 스스로 더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1) 상기하기와 예상하기에서 각각, 이전에-마주쳐진-것으로서의-사태와 마주쳐질-것으로서의-사태만을 알

아챌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과 내적으로 상관적인 과거와 미래의 마주치기 및 마주치기의 태도도 알아챌 수

있는가?

(2) 가치평가하기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뿐 아니라 때로는 중립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지하기는 꽤나

쉽다. 예를 들어, 우리의 그림은 그럭저럭 근사하고 구겨진 담요는 다소 추하며, 방 구석의 벽은 우리에 한

가치의 면에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유비적인 “양상”(이렇게 부를

수 있겠다.)이 의지하기와 믿기에도 있는가?

(3) 전통적 사고에서, 상상은 감각, 기억, 정서, 의지 등과 동위의 심적 능력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이것이

그릇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삽화에 있는 벽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림을 본다고 가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먹었다고 진정으로 기억할 수 없는 것을 어제 점심에 먹었다는 것을 기억한다고 가장할 수 있고,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가장할 수 있고, 우리가 진지하게 팔을 흔들고 있지 않은데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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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팔을 머리 위 공중에서 흔든다고 가장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위에서 구별한 “진정한” 정립하기와 경

험하기의 종류 각각에 해서 “허구적” 판본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상상은 다른 능력들과 동위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12. 여기까지, 우리는 반성적 분석이 마주치기에, 마주쳐진-것으로서의-사태에, 마주치기의 태도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음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 반성적 관찰의 범위를 더 넓힐 수 있다. 방 구석에 한 주되게 시각

적인 우리의 지각하기를 여전히 반성적으로 관찰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주목한 것 또는, 더 나은 말로는, 그 안에서 “초점을 맞춘 것”과 관련하여 변화가 생기는 약간 다른 일련의 마주치기를 생산해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림에 초점을 맞추고, 두 벽이 어떻게 구석을 이루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창살처럼 된 머리판에 초점을

맞추고, 한 베개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베개에 초점을 맞추고, 시트와 담요 더미에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매트리스에 초점을 맞춘다. 일곱 번의 초점 맞추기가 있다. 이 초점 맞추기들 간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관련하여 가장 충격적인 점은, 이들이 “심적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은 무엇 안에서 시간적

연속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들 각각은 잠시 지속되었다가 다른 초점 맞추기가 이를 뒤따르는데, 이 초점 맞추기도 마찬가지다.

13. 지각하기 속의 초점 맞추기와 관련하여 서로 차이가 나는 이러한 지각하기들은 때로 “심적 과정”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상당히 중립적인 표현이며, 후에 적절하게 변양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마주치기”

라고 부르기를 선호한다. 이 표현은, 무엇과 마주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주치는지 하는 물음을 곧바로 제기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초점에 있어서 차이 나는 일곱 마주치기들은, 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심적

삶의 흐름 너머에 있는, 또는 더 나은 말로는, “외적으로 초재적인”(outwardly transcendent) 사태와의 마주치기이다.

이 점은 명백한 만큼이나 흥미롭기도 하다. 그러나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이 마주치기들이 심적 삶 내에서, 또는

더 나은 말로는, “내재적으로 그 안에서”(immanently in) 어떻게 서로와 마주치는가 하는 것이다. 마주치기가 미래의 마주치기와 내재적으로 마주칠 때, 그것은 “미래의 마주치기에 해 예지적(protentive)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과거의 마주치기와 마주칠 때, 그것은 “과거의 마주치기에 해 파지적(retrotentive)이다”고

말할 수 있다.

14. 후설은 그의 스승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를 따라 Intentionalität[지향성]이라고 불렀으며, 나는 나의 스승인(그리고 후설의 제자인) 도리온 케언스(Dorion Cairns)를 따라 “지향적임”(intentiveness)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주목할 만한 속성이 있다.1 “예지적임”과 “파지적임”은 이 속성의 종이다. 아마도 우리가 처음에 발견하는 것은, 지금 일어나는 마주치기가 심적 삶에 초재적인 사태에 해, 가령 침 위의 베개에 해 어떻게 지향적인가 하는 것이겠다. 그와 비슷한 것은 달리 없다. 그러나 일단 잠정적으로, 마주치기가 그 안에서 마주쳐지는 사태를 “의미있게 지시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저 말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를 발견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15. 어떤 잘못에 해 반박을 함으로써, 이 소론의 청자나 독자가 지향적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상가들은 소위 “기억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젊은

날의 한 장면을 상기할 때에는 상기하기와 함께 지금 실제로 이미지가 있으며, 이 이미지가 과거의 장면을 나

1 본 소론을 넘어서서 몇 종류의 지향적 종합을 기술하는 반성적 분석을 위해서는, Dorion Cairns, 「후설의 지향성 이론」(“The Theory of Intentionality in Husserl”), Journal of the British Society for Phenomenology, 32 (1999): 116-124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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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내거나, 재현한다는(represent)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성할 때, 우리는 그런 이미지를 발견하지 못하며, 왜 그

런 것을 믿었는지 모르게 된다. 반성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지금 일어나는 상기하기, 과거 내의 지나간 상기된-것으로서의-장면, 그리고 상기하기는 아무 것도 사이에 두지 않고 과거의 사건에 해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후설이 했던 것처럼, 지향적 마주치기를 “노에시스”(noesis)라고(형용사형은 “노에시스적”(noetic)), 마주쳐진-

것으로서- 상을 “노에마"(noema)”라고(형용사형은 “노에마적”(noematic)) 부르는 것이 가끔 유용할 것이다. 그러

면 노에시스적 반성하기, 노에마적 반성하기, 곧바른 상기하기가 있다. 상기에 한 기억-이미지 이론보다 더

나쁜 것은, 색 없는 광자의 사태로 하는 지각된 “실재적” 사물과 지각하기 사이에 우리가 어떻게든 재현을 가지고 있다는 지각이론이다. (어쩌면 광자는 존재하며, 보기의 원인이겠지만, 보기의 상은 아닐 것이다.)

16. 이제, 방금 분석한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도해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를 설명하겠다. 하지만 도해를

그리는 일은 이 소론의 청자나 독자에게 남겨두겠다. 우선, 마주치기는 짧은 세로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선은 심적 삶의 흐름에 초재적인 상을 가리키는, 위를 향하는 화살표를 가지며, 파지적임과 예지적임을 표현하는 왼쪽 화살표와 오른쪽 화살표를 가진다. (세로 화살표의 꼬리로 태도를 나타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17. 둘째로, 심적 삶의 흐름의, 말하자면, 강둑을 나타내기 위해 가로선을 그을 수 있다. 그리고 흐름 속에

서 연속되며 서로서로에 해, 그리고 우리 사진 속의 흐뜨러진 이불 같은 초재적 사태에 해 지향적인 일곱

마주치기를 흐름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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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리고 셋째로, 우리의 흐름은 이제 오른쪽의 미래에서부터 현재를 지나 왼쪽의 과거로 흘러가는 것

으로 생각될 수 있다. (“자연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심적 삶의 시간적 흐름을 경험된 자연의 시공간의 일부로

여긴다. 그러나 이 믿음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19. 이제 소개된 접근법과 개념들을 가지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1890년에 “내성적”(introspective)

라고 불렀던 옛 방식으로 탐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소론의 청자나 독자는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실

제로는 여기에서부터 다른 많은 것들을 전개할 수 있지만, 내성적 또는, 더 나은 말로는, 현상학적 심리학을 시작하기 위한 요구조건은 충족되기 시작할 수 있다.

20. 위의 설명에서 전부는 아니라도 체로는, 복수형(“우리”와 “우리의”)을 사용하였다. 이는 단지 문체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침 , 벽, 그림 등이 있는 장면은 본래 우리에게 객관적인 것이다. 또는, “객관적”

이라는 말은 함의를 너무 많이 지니고 있으므로, 차라리 우리는 그것이 “공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 이상의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있거나, 적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마주치고 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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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또한 서로를 경험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또

는 덜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마주치기를 공유하는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지 하는 매혹적인 문제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방 구석과 마주친다. 나와 함께 내 방의 구석을 보고 있는 내 친구가 이불과 그림을 나와 다르게 평가한다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나는 그녀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리라고 가정하며, 그 반 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반 되는 선호를 가진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호들은 같은 기본적

사태에 해 지향적이며, 다만 립적 가치를 가지고 지향적일 뿐이다. 내 친구는 나의 심적 삶의 흐름에 초재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공통적인 또는 공유되는 심적 삶을 가진다. 그 안에는 서로에 한 경험하기라는 종이 있으며, 이것은 반성적으로 식별될 수 있다.

21. 본래 우리가 공적 사태를 공유하는 태도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이러한 태도에 안이 있

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한 답은, “상호주관적 태도”가 “자아론적 태도”(egological attitude)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다른 사태들은 어떤 개별 인격과의 관계에서만 고찰된다. 이는 조적으로 “사적”(私的)이라고 불릴 수 있다. 내 친구는 “공동주체”(co-subject)였다가, 나에 한 그저 또 하나의 상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제, 내 방 구석의 그림에 그려져 있는 것이 나에게만 어떻게 나타나는지

물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적으로, 그것이 나의 친구에게만, 또는 어느 개별 인격에게만 어떻게 나타나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22. 그러한 자아론적 환원은 심리학적 탐구를 위해 필요하며, 그래서 개별적 자기에 한 탐구만큼이나

개별적 타자에 한 탐구에도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반성적 분석은 자아론적 태도에서의 자기관찰에 제한

된다고 현상학자들이 믿는 일이 너무나 흔한 것 같지만, 이는 잘못이다. 개별적 자기관찰처럼 개별적 타자관찰도 있을 뿐 아니라, 집단에 한 관찰도 있을 수 있다. 사회학과 역사학에서는 심리학에서 탐구되는 개별자들보다 집단이 기초적이다. 우리가 위에서 분석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철학 또는 과학 이론에 관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에는 이러한 지적으로 아마도 충분할 것이다. 과학적 결과의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어쨌든 자

아론적 태도에서 상호주관적 태도로 돌아와야 한다.

23. 설명의 이 지점에서, 청자나 독자가 시험해 보도록 짧은 기술을 또 하나 제공할 수 있겠다. 침 위의

베개를 볼 때, 우리는 우리 지각하기 속에서 베개의 한 면이 우리를 향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의 경험하기의 “현전적인”(presentive) 구성부분 속에서 지향되고 있다는 점과 우리를 향하지 않는 면은 “부

현전”(appresented)되고 있다는 점도 인지할 수 있다. 간단히 베개를 뒤집기만 하면, 부 현전되었던 바깥쪽이 현전되고 이전에 현전되었던 면은 부 현전된다. 이를 기반으로, 그것이 본래적 어떻게 수립되는지 하는 질문으로는 들어가지 않고서, 우리는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신체(자세, 몸짓, 생산물 등을 포함해서)가 그녀의 심적

삶을 “부 현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는, 부 현전된 것이 그녀에게 항상 현전되는 것처럼 우리에

게 현전되게끔 하는 관점은 없다.

24. 여기에 사용된 삽화에 해 조금 더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소론을 쓸 때 나에게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며, 내가 기술한 마주치기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소론의 청자나 독자에게 그것은 물론 사진이며 우리의 기술은 말로 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에 재현이 아니라 재현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기량이 우리에게 있다

는 점을 나는 이용해 왔다. 그러나 반성적으로 분석할 때, “재현적 경험하기”가 층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관찰될 수 있다. 그리하여 하위층은 재현(말이나 그림)에 해 지향적이고 상위층은 그 재현이 재현하는 사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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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향적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조를 간과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그것은 간접적 경험하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제공된 다른 기술들과 마찬가지로 이는 확증되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정정되어야 하고, 청자나 독자는 자신의 반성적 분석을 통해 저 기술들을 확장하여야 한다.

25. 이제 태도에 해서도 말을 해야겠다. 이 소론의 서두에서 소개했던 것들로부터 시작해야겠다. 비반성적 태도든 반성적 태도든 둘 다 “관조적”이라거나 “관찰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저 태도들에서 우리는 단순히

사태를 바라보며, 우리가 보는 것을 보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태도들은 다른 두 종류의 태도와 비되는데, 이 태도들에도 종이 있다. 가장 기초적인 종류의 태도는 “실천적”이다. 실천적 태도로서 그것은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흔히 거기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지만 때로는 무언가가 일어나도록 그냥 놓아 두려 하기도

한다. 관조적 태도에서는 사고하기와 경험하기가 주되지만, 실천적 태도에서는 의욕 또는 의지하기가 주되다.

세 번째 종류의 태도에서는 가치평가하기가 주되다. 이 태도는 “향유” 또는 즐김의 태도라고 불릴 수 있다. 이

세 종류의 태도에 속한 것들이 어떻게 더 세분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실습이 된다. 청자나 독자가 반성적 분석을 이용하여 이러한 실습을 해보기를 원할 수도 있겠다.

26. 마지막으로, 심적 삶과 세계에 해 몇 가지 지적을 해야겠다. 현상학에서 전통적으로 “자연적 태도”

라고 부른 것은 “세계적 태도”(worldly attitude)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자연이 기초적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세계에는 자연 이상의 것이 있으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세계가 어떻게 “사회적-문화적”

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계가 내 방 구석의 침 같은, 가치와 유용성을 가진 문화적 상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세계에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동물도 있다는 점이다. 기초적으로

공간적, 시간적, 인과적 관계 속에서 관계된 사태들이 이루는 거 한 하나의 체계가 있으며, 이 체계는 심적 삶을 포함하며, 이러한 심적 삶은 적어도 다른 것과의─우리의 신체와는 직접적으로, 다른 사태와는 간접적으로─인과적 관계를 가진다고, 세계적 태도에서 우리는 믿는다.

27. 후설과 그를 바로 뒤따른 사람들은 세계적 태도에 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에 상관

적으로, 모든 것이 언제나 “세계 내의” 무엇이라는 것을 부정하였다. 심적 삶에 해 반성할 때 잠시 우리는 심적 삶의 세계-내적 지위에 한 믿음을 보류하거나 그 믿기를 중립화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이 안적인 “초월론적 태도”(transcendental attitude)를 견지할 때, 심적 삶은 비세계적이다. 그리고 심적 삶은 초월론적 제1

철학에 필요한 토 놓기 기능을 해줄 수 있다.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반성적 분석을 통해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나는 철학에 한 지식은 가정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반성적 분석”이라고 부른 접근의 다양한 비철학적 적용 방법을 다른 분과학문의 동료들이 보게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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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타자들에 대한 반성

1. 타자 또는─더 나은 말로는─”타자들”이라는 복잡한 쟁점은 현상학에서 오랫동안 주제가 되어 왔다. 예를 들어 알프레드 슈츠(Alfred Schutz)는 타자들이 자기 자신의 행위를, 자신을, 서로를, 그들의 행위를, 그들의 집단을, 그들의 산물을, 그들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적으로,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일차적 수동성에서의 의미전이와 부 현전(appresentation)을 통해 자아가 어떻게 타자들

을 본래적으로 구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본 분석의 주제는 후설의 슈츠의 관심사 사이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타자들과 마주친다는 점, 그리고 타자들이 자신의 행위, 생산물 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추상적으로 제쳐둘 수 있다는 점은 단순히 가정해 두겠다. 신 여기에서 관심사는, 도 체 타자들이 반성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그럴 수 있는지이다. 이 물음의 의의는 본 상설이 진행되면서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2. “타자들”이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분리된 개별자들 뿐 아니라, 집단도 지칭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또한 비인간 동물도 지칭한다. “관찰”은 곧바르거나 반성적일 수 있다. 곧바른 관찰에서, 자아는 사태에 한 그녀 자신의 마주치기, 마주쳐진-대로의-사태, 또는 그녀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오

히려, 여기서는 오직 사태만이 주제가 된다. 철학과 학문의 어떤 전통에서는, 관찰이 곧바르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점은 반성하기를 배우는 데에 난점을 낳을 수 있다. 현상학적 전통을 포함하는 다른 전통에서, 반성은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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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핵심이다. 한편에서는 곧바른 또는 “자기-망각적” 관찰,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반성적 관찰 사이의 차이

에 한 주제화, 분석, 기술(記述)은 그 자체로 이미 반성을 요구한다.

3. 현상학의 역사에서 부분의 관찰은 자기관찰이다. 여기에서 마주치기과 마주쳐진- 로의- 상은 그것에 한 반성하기와 같은 심적 삶의 흐름에 속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성의 유일한 유형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관심사는 “타자들에 한 반성”이다. 이때, 반성된 것이 “반성하기”와 같은 심적 흐름에 속해야 함을 “반성”

이 자동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고, 관찰 일반을 “반성적으로” 만드는 점은, 전문용어로 "노에

시스-노에마 상관관계"라고 불리는 것을 주제화한다는 점이다. 자기 관찰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이 사태와 어떻게 마주치는지를, 그리고 상관적으로, 사태가 어떻게 그것이-자기-자신과-마주쳐지는- 로 마주쳐지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조적으로, 타자들에 한 반성은 타자들이 사태와 어떻게 마주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상관적으로, 그들에-의해-마주쳐진-것으로서의 사태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에 반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반성적으로 관찰된 타자들 자신은 곧바르게 자기망각적일 수 있고, 아니면 자기반성적일 수 있고, 아니면 그들

자신이 타자들을 반성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는 그들을 반성적으로 관찰하는 누군가가 저 타자들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이것도 타자들에 한 반성을 통해 확실해질 수 있다.

4. 근 철학의 수 세기에 걸친 재현주의로 인하여, 혹자는 타자들에 한 반성의 실행가능성조차 인정하기를 꺼릴 수 있다. 그러나 수업을 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생이 주목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몽상을 하고 있는지, 방에 있는 다른 것(가령 다른 학생)에 주목하고 있는지 등을 인지했을 것이다. 더욱 섬세하게,

가르치려고 하는 그 내용에 주목하고 있는 학생들을 관찰하여 그들이 (가) 이해하고 있는지, (나)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지, (다) 이해하지 못함에서 이해함으로 이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라) 점점 더 당혹스러워하고 있는지가 드러날 수 있다.

5. 반성적으로 타자들 안에서 아주 일반적으로 관찰하기를 추구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돌리기 전에, 여기에서 추상적으로 제쳐두고 있는 것,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해석과 타자의 해석에 해 말할 필요가 있겠다. 그

리고 이 추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 있는, 타자들에 한 관찰에 해서도 말할 필요가 있겠다. 후자 자체는

어떻게 특징지어져야 하는가? 타자-관찰은 타자들과의 마주치기를 전제한다. 이는 생명체(특히 감각과 운동의

기관을 지닌 생명체)가 지각되거나 기억될 때 가장 명확하게 일어난다. 그런 것들이 직접적으로 경험될 때, 즉,

현전할 때, 심리는 그것들 “속에서” 부 현전된다. 그리고 직접 체험된 것들은 (어느 정도) 이 타자 심리의 지배

하에 있는 신체나 유기체로 파악된다.2 타자들과의 이러한 일차적 마주치기에는 더 많은 내용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한 가지 요점만 더 언급하면 되겠다. 이는, 그러한 일차적 마주치기는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에고(ego) 또는 자아는 이러한 부 현전 과정의 수행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실상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6. 조적으로, 여기에서 타자들에 한 반성이라고 불리는 관찰은 이차적 마주치기의 한 유형이다. 이것은 습관적이 될 수 있고, 심지어 특정 집단(예를 들어, 정신의학자들)에게는 마주치기의 전통적 유형이 될 수도

2 영어에서 문자 그 로는 “감정이입”(empathy)으로 옮겨지는 Einfühlung이라는 후설의 표현을 여기서 피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언급할 수 있겠다. 이것의 전문용어적 의미는 본질적으로 인지적인 것인데, 현상학자들이 이로부터 일상적이고 지배적으로 정감적-가치적인 의미로─이러한 의미에서는 감정을 통해 타자의 감정으로 감정이입한다─미끄러진다는 말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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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는 하지만, 본래 그것은 자아가 관여하는 작동(operation)이다. 그것은 일차적 마주치기와 같은 현전적/부

현전적 구조를 가진다. 그러므로 타자의 신체와 심리를 구별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는, 심지어 그녀의 생체가

그녀에게 현전되는 로 그녀의 생체를 주제화할 수도 있다. 의사들은 때로 이렇게 한다. 그러나 원칙상, 타자-

관찰에서 초점이 놓이는 것은 타자 심리다. 이러한 형식의 관찰에 해서는 지금 더 논할 것이다. 먼저 타자의

자기해석의 문제를 고찰해야 한다.

7. 타자들의 행위, 자아, 생산물 등에 한 그들 자신의 해석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실지로 꽤 신뢰할만한 접근이다. 많은 문화 연구자들은 참여적 관찰 및 언어와 텍스트에 한 연구의 과정에서 정규적으로 이러한 접근을 이용한다. 그러나 타자가 부정직하지 않은지, 자기기만적이 아닌지, 또는 그저 자기관찰과 자기보고에 서투르지는 않은지가 의문스러울 수 있다. 예의 바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여러 사소한 것들에 해 부드

럽게 거짓말 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리고 많은 직업들은─예를 들어, 중고차 판매─더 뛰어난 기만술을 요구한다. 자기 자신을 기만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 기회에 논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 자신의 마주치기, 자신의 마주쳐진- 로의-사태를 관찰하는 기량은 정도 차가 몹시 크다. (심지어 일부 자칭

현상학자들은 이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8. 그러나, 그리하여 그들이 표현하는 자기보고와 자기해석의 신뢰성을 의문시한다면, 어떻게 이 의문을

해결하고, 방금 한 것처럼, 타자들의 자기해석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실지로 꽤 신뢰할만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신뢰성의 근거 중 하나는 물론 자기보고의 내적 일관성이다. 다른 근거는 자기해석과 상식의 정합성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방법은, 타자들에 한 반성을 통해 비해석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과 보고

가 얼마나 들어맞는지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화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누군가가 화가 난 것으로 관찰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은 부정직, 자기기만 등을 인지할 결정적 근거다. (자신에 해, 그리고 타자들에 해 정직한지, 그리고 자기해석의 기량을 잘 발달시켰는지도 인지할 수 있다.)

9. 이와 유관한 또 다른 고찰이 있다. 타자들의 자기보고는 이러저러한 언어로 표현된다.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언어들이 완벽하게 동형이 아님을 이미 안다. 마주치기 및 마주쳐진- 로의-사태에 한 주요 사항들은 여전히 일상적 토착어로 표현될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언어는 오도할 수 있다. 그리고 동료 현상학자들이 검증을 추구할 수 있는 기술(記述)을 표현하기 위하여 전문적 용어를 발달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는 흔하다.

10. 주로 자기관찰을 통해 정제된 일군의 용어를 이제, 상식적 해석을 추상한 타자들에 한 반성을 인도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반성적 관찰의 주제적 관심사를 위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과 표현이 필요하다. 후설의 용어는 Erlebnis[체험]이다. 이것은 프랑스에서는 흔히 vécu로, 카스티야어에서는 vivencia로

번역된다. 영어에서, 분석적 전통에 있는 사람들은 “심적 작용”(mental act)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는 현상학에는

문제적인데, 왜냐하면 논의 중인 과정의 부분은 수동적이거나 자동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상학적 전통에서 일부는 “경험”(experience)을, 다른 일부는 “살아진 체험”(lived experience)을 쓴다. 후자는 살아지지 않은 체험이 무엇이겠냐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도리온 케언스(Dorion Cairns)는 Erlebnis를 번역하기 위해 처음에는 “알아차림”(awareness)을 사용했다. 다음에는 “주관적 과정”(subjective process)을 썼는데, 그는 이를 그의 최 의 실수로

여겼다. 최종적으로 그는 번역을 위해서는 “심적 과정”(mental process)을, 자신의 탐구를 위해서는 “지향적 과정”(intentive process)을 선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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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러나 여기에서 사용될 일반적 표현은 “마주치기”(encountering)이다. 이 말은 과정을 함의하며, 무언가

가 마주쳐짐을 암시한다. 게다가, 인지적 마주치기로, 그뿐 아니라 가치적 마주치기, 의지적 마주치기로 세분화하기도 쉽다. 지성주의(intellectualism)를 피해야 한다면 이는 바람직하다. (여기에서 “지성주의”는 경험하기, 사고하기, 믿기에는 습관적으로 초점을 맞추지만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는 상 적으로 무시함을 함의한다.) “마주치기”는 일반적 개념을 표현하며, 더욱 세분화된 개념과 표현을 위해 수식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

정적으로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마주치기만이 구체적이며 “기억하기”, “의지하기” 등의 용어들은 마주치기

내의 추상적 구성요소를 지칭한다는 점이다.

12. 또한 핵심적으로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모든 마주치기는 기초적 구성요소 전부를 필연적으로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어떤 마주치기를 지각하기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것의 경험하기(즉, 지금

있는 사태에 한 것, 간접적 사태가 아니라 직접적 사태에 한 것) 유형을 강조하고, 그 마주치기에 마찬가지로 포함되어 있는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를 덜 강조하는 것이다. 실제 마주쳐진- 로의-사태는 언제나

지각되거나, 기억되거나, 예상되거나, 재현된 것이다. 그리고─적어도 일부 양상에서는─또한 믿어지고, 가치평가되고, 의지된다. 예를 들어, 지각된- 로의-사태와 그것의 상관적 지각하기를 마주침의 추상적 노에마적 그리

고 노에시스적 구성요소로 보지 않고 구체적인 것으로 본다면, 이는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이다.

13. 마주치기 내의 구성요소 간의 가장 일반적인 구별은 한편에는 “정립성”(positionality)과 다른 한편에는

“경험하기”(experiencing)라고 불릴 수 있는 것 사이의 구별이다. 사실, 가장 일반적인 용어로서 “마주치기”의 또

다른 장점은, 이를 통해 “경험하기”가 자유롭게 남겨져서 더 좁은 개념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이다. “경험하기”는 심지어, 수나 보편적 본질 같은 이념적 사태들과의, 일종의 “직접적“ 경험하기인 마주치기에도─반면에 “간접적” 경험하기는 지시적, 모상적, 또는 언어적일 수 있는 표상을 기반으로 하여 사태에 지향적이다─전문용어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타자들에 한 본래적 마주치기와 반성은 둘 다 간접적이다. 항상 명시적으로 이를 의식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그렇다. 경험하기는 아주 풍부한 유형과 면모를 가지기에, 전통적으

로 경험하기에 열중한 것은 이해할만한 일다. 불운한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14. 그것이 불운한 일인 것은, 정립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그렇기에 무시되거나 덜 강조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립의 가장 명백한 종은 정서적-가치적 정립이다. 구어적으로, 이것은 좋아하기, 싫어하기, 사랑하기, 미워하기, 무관심하기 등의 문제이다. 이러한 표현은 종종 비합리성을 함축한다. 서양 철학에서 이러한

현상이 열렬하게 분석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가 되어서부터였다. 그렇기에 “가치평가하기”(valuing)라는 인공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믿기와 마찬가지로, 가치평가하기도 긍정적, 부정적, 또는 중립적일 수 있다. 그리고 마주쳐진- 로의-사태에서 상관적으로 긍정적, 부정적, 중립적 가치를 식별할 수 있다. 이

세 종류의 정립 모두에서 그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양상의 굳건함은 다양한 정도를 가진다. 즉, 의지하기에서

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결단성이, 믿기에서는 확실성과 추정성이, 또한 굳건한 가치평가와 유동적 가치평가가 다양한 정도를 가진다.

15. 이러한 분류체계가 타자들에 한 반성을 인도하는 데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 이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의문은, 타자들─집단적으로든 개별적으로든, 비인간이든 인간이든─안의 마주치기에서 그리고 마주쳐

진- 로의-사태에서 반성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냐는 것이다. 가능성을 신속하게 수립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시를 기술하는 것이다. 이 스케치는 시작에 불과하다. 더 깊은 탐구는 더 정제된 기술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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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6. 방금 열거한 구성요소의 종류들을 마주치기에서 그리고 마주쳐진- 로의-사태에서 추상적으로 식별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는 마주치기가 내재적 차이를 결여한다는 것은 아니다. 마주치기 내의 주요 차이를 인지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최상의 단어는 “주됨”(predominance)이다. 그래서, 구체적 마주치기는 때로는 주되게

의지적이며, 그런 점에서 그것을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그 마주치기에 믿기와 가치평가하기의

구성요소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들도 있지만, 의지적 구성요소가 주될 따름이다. 유사하게, 지각하기가 경험하기의 구성요소 내에서 주되면서, 이와 함께 부속적으로 기억하기와 예상하기도 일어날 수 있다.

17. 이 지점에서 비인간 동물에 속하는 몇 가지 예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어렸을 때 나에게는 개가 있었다. 매일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 그가 나를 보고 기뻐한다는 점은 나에게, 내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명백했다. 우리는 내가 돌아옴을 원인으로 하여 내 개의 심리에서 일어난 나와의 마주치기와 마주쳤던 것이라고,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그의 심리와의 우리의 마주치기는 그의 소리와 움직임에

한 우리의 감각적 지각하기에 토 를 두고 있었다. 나에 한 그의 마주치기에서 주된 정립 유형은 가치평가적이었다. 그리고 그 양상은 긍정적이었다. 그가 나를 가치평가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에게 긍정적 가치를 가

지고 있었다는 것도 명확했다. 그리고 또, 나에게 그 개가 있었던 때에 한 번은 내가 아파서 침 에 있었던 것을 상기할 수 있다. 무슨 병이었는지는 상기할 수 없지만, 집이 조용했고 의사가 여러 번 왔다는 것은 상기한다.

더욱이, 내 개가 슬퍼했다는 것도 상기한다. 이는 그의 자세와 움직임에서 즉시 부 현전되었다. 이 경우, 나를

중심에 둔 그 상황을 향한 그의 태도는 가치적이고 부정적이었다.

18. 마주치기 내의 경험하기 구성요소에 관심을 두면, 이 두 경우 모두, 지금 있는 사태를 경험하기라는 지각하기의 넓은 의미에서(이 의미는 부 지각하기(apperceiving)도 포함한다), 지각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각적이지만은 않았다. 그 지각하기가 긍정적, 부정적 가치평가하기를 동반했기 때문이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나에 한 내 개의 마주치기는 지각적이라기보다는 예상적이었을 수도 있다. 내 개는 인사를 받고, 그의 귀를 긁

어주고, 나가서 놀기를 “고 하고” 있었을 수 있다. 이는 그가 나와 문 사이를 뛰어갔다 뛰어오는 데에서 현시된다.

19. 내 개의 상기하기와 마주치는 경우에 관해서라면, 그와 내가 익숙했던 장소를 떠났던 후에 다시 돌아왔을 때, 무언가가 바뀌지 않았는지를 보려는 듯이 그가 일종의 합동 조사 순회를 했던 사례를 나는 상기한다.

이는, 예상되며 익숙한 것이 현전하는지 부재하는지를 인지하기 위한 기반으로서의 기억하기를 수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내가 나의 과거의 마주치기를 상기할 때 내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상기의 작동

속에서 과거 사건에 주목하기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실로, 최소한 한 인간 타자가 상기하는 자로서, 즉 능동적으로 기억하는 자로서 마주쳐지는 때가 있다. 또한 그녀가 과거의 사건이 그녀의 주목

에 들어오게끔 하는 경우도 있다. 두 경우 모두, 현재 상황의 면모들에 한 주목의, 정지는 아닐지라도, 감소가

있다. 더욱이, 그런 때에 타자 안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주목은 흔히, 가능한 행위에 한 심사숙고에 동반되는

것과 같은 계속적 목적성을 결여하는 것 같다.

20. 방금 스케치한 사실들은 과거의 타자들에 한 일차적 마주치기였고, 그리고는 상기 속에서 이루어지

는 그들에 한 반성이었다. [타자들에 한 반성의] 가능성의 수립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이 소론의 청자나

독자가 이러한 종류의 사례들을 꾸며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 소론의 청자나 독자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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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사태와 마주친 것을 기억한다고 가장하거나, 심지어 현재 그런 사태를 마주치고 있다고 가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 기술들은 상당히 일반적이다. 그것은 타자 내에서 부 지각된 마주치기, 이 마주치기의 근본적 유형들과 정립의 양상들, 그리고 이와 동시발생적인 경험하기의 유형들과 관련된다. 타자들에 한 반성의 가능성과

관계된 물음뿐이라면, 미묘한 세부사항은 불필요하다. (이 말은, 더 노력한다 해도 그리고 적절한 사정이 있다

해도 더 세분화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21.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타자들 안의 가치평가하기 및 경험하기와 마주칠 수 있다는 점─그리고 이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수립하기 위해 이제 충분히 논했다면, 정립의 다른 종은 어떤 것인가? 타자들을 결단력을 가지고 추구하는 자로서 반성적으로 관찰하고, 그들이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도 어느 정도로는) 관찰하고, 그리고는 그들의 직접적 목표뿐 아니라 그들의 수단도 일부 반성적으

로 관찰할 수 있는가? 이것은 너무 명백하여 예시를 들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스포츠가 많은 예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제안하겠다.

22. 분석을 위해, 이미 언급된 양상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의지하기는 긍정적이다. 이는 타자들이 하는

일을 지지해주기를 포함한다. 어떤 의지하기는 훼손적이다. 그리고 파괴적인 의지하기도, 창조적인 의지하기도

있을 수 있다. 타자들에서 우리가 반성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주되게 의욕적인 마주치기의 가장 흥미로운 양상은 아마도 의욕적 중립성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 타자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기로 결단을 하거나,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데, 엮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는 개 가치평가적 구성요소 내의 무관심과 결합될 것으로 보인다.

23. 믿기는 어떤가? 자기관찰적인 이론적 태도에 있다면, 믿기 및 체로 그 믿기를 정초하며 동기부여하는 경험하기가 마주치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주의는 아닐지라도, 지성주의의 산물일 수 있다. 가치평가하기 및 가치뿐 아니라 의지하기 및 상관적인 마주쳐진- 로의- 상 내의 유용성이나 실천적 특징도 무시하는 (또는 덜 강조하는) 오늘날의 실천적 그리고 이론적 분과학문의 많은 식자들

의 경향에 저항한다면, 다른 말로 하자면, 본래적으로 문화적 사태인 것을 그러한 사태로서 준수한다면, 믿기란 구체적 문화적 마주치기 내의 정립의 세 가지 주요 유형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24. 다른 인간에서 마주쳐진 것으로서의 믿기에 관해서라면, 이 타자가 때로는 확실한 것으로 마주쳐지고

때로는 의심스러운 것으로 마주쳐진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확실성의 정도는 부정적 형식으로도, 긍정적 형식

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나는 다시 명백한 것으로 여긴다. 확실성은 굳건한 믿기이다. 그러나 “의심”은

일상적 영어에서, 심지어 철학적 영어에서도 애매하다. 의심하기는 “불신하기”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또한 중립적 믿기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영어에서 “회의주의”도 마찬가지로 애매하다. 중립적 양상은 종종 가치적 중립성 또는 무관심을 동반한다.

25. 또 다른 질문은 상상, 또는 더 나은 말로, 꾸며내기(feigning)에 관한 것이다. 자기관찰을 통해, 진지한 마주치기의 모든 구성요소가 유사-(quasi-), 마치-처럼(as-if), 또는 가장하기(pretend) 판본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기억한다고 가장하고, 지각한다고 가장하고, 가치평가한다고 가장하고, 의지한다고 가장하는 등을 할 수 있다. 꾸며내기 또는 가장하기는 흔히 놀이로 현시된다. 예를 들어 강아지도 확실히 놀이를 한다.

26. 말했듯이, 이 소론에서 “타자들”은 개인은 물론 집단도 포괄한다. 그리고 적어도 작은 집단에서는, 그들이 공동의 수단을 통해, 집단의 성원들에게 통틀어 같은 사태인 지각하기, 예상하기와 가치평가하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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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목적을 추구한다는 것이 즉시 반성적으로 관찰될 수 있다. 이는 팀 스포츠에서, 그리고 한 무리의 개의

사냥에서 두드러진다.

27. 타자들에 한 반성은 인지적 또는 인식적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명시해야겠다. 우리는 언제나 이미

일상적 삶 속에서 타자들과 마주치고 있지만, 타자들에 대한 반성은 이에 추가되는 것이다. 이것에서는 믿기

구성요소만이 주된 것이 아니다. 또한 경험하기에 관심을 두자면, 타자들에 한 반성은 허구적인 방식으로든

진정한 방식으로든 지각적이거나 상기적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타자들 내의 마주치기와 마주쳐진- 로의- 상에 한 지각하기나 상기하기는 믿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데, 이때 지금이나 과거의 현행적인 경우에 한, 즉 사실에 한 믿기만이 아니라, 형상(eidē) 또는 보편적 본질에 한 믿기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이겠다. 방법론적으로 정교화되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제시된 사례들은 타자들에 한 반성의 형상적 종과

유를 명확히 하려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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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간접적 마주치기를 반성적으로 분석하기

서론 1. 사태에 한 직접적 마주치기와 간접적 마주치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나머지 근 철학과 마찬가지

로 현상학의 역사에서도 직접적 마주치기가 강조되어 왔다. 이는 인식론적 이유 때문이다. 간접적으로 마주친

것과 직접적으로 마주친 것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 직접적으로 마주친 것이 궁극적으로 결정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직접적 마주치기를 통해서보다는 간접적 마주치기를 통해서 엄청나게 더 많은

사태와 면식을 가진다. 이에 따라, 그러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간접적 마주치기가 이해되고 그 의의가

인정될 필요가 있다.

2. 이어질 설명에서는, 먼저 마주치기가 일반적으로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려고 시도할 것이며, 일부 전통

적 학설을 반박할 것이며, 그리고 나서 직접적 마주치기와 간접적 마주치기 사이의 차이를 탐구할 것이다. 이

주제와 관련된 방 한 문헌들이 있지만, 이 소론은 학술연구 저작도, 심지어 문헌비판적 학술연구 저작도─이것으로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다─아니고, 독자가 검증하고, 수정하고, 확장하도록 이끌려는 겸손한 연구이다.

여기에 뭔가 독창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용어, 장르, 그리고 마주치기 내의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의

정립적 구성요소에 한 이차적 강조이다. 이 접근법은 현상학적일 것인데, 이는 “반성적 분석”이라고 특징지어질 수도 있다.

3. “분석”(analysis)이란 “떼어 놓기”를 의미한다고들 한다. 여기에서 “분석”은 분석되는 사태 내의 구성요소들을 구별하기만이 아니라 또한, 그 결과도 의미한다. 이 결과는 특수적 용어로도 일반적 용어로도 기술(記述)

될 수 있다. 여기에서 그것은 일반적 용어로 기술될 것이며, 특수자는 유적, 종적 보편적 본질의 예시로서만 참조될 것이다. “반성적”(reflective)이라는 말은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마주치기의 과정에 해 이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을 가리키지만, 이는 곧바로 마주쳐진- 로의-사태도 포함하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분석되는 것은 이중적 주제를 가진다. (실상, 마주치기의 작동 층 내에서의 “자아”의 참여가 반성된다면 사중적 주

제가 있다. 하지만 지금 목적을 위해서는 반성된 상황의 이러한 측면은 무시할 수 있다) 현재 목적을 위해서는,

자연적, 또는 더 나은 말로는, 세계적 태도(worldly attitude)를 떠날 필요도 없다.

마주치기 일반

4. 현상학의 중심개념은 후설(Edmund Husserl)이 “Erlebnis”[체험]라는 용어를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이 용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어로 번역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은 “경험”(experience)이라고 번역하고, 다른 학자들은 “심적 과정”(mental process)라고 번역하며, 또 다른 학자들은 “살아진 체험”(lived experience)을 사용한다. “경험”은 Erlebnisse 속에서 식별가능한 가치평가하기와 의지하기 구성요소를 덜 강조한다. 이에 해서는 아래에서 반론을 하겠다. “심적 과정”은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 심리학적으로 보

인다. “살아진 체험”에 관해서라면, 살아지지 않은 체험이 무엇일지가 의문스럽다. 즉, 저 수식어의 이점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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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의문스럽다. “살아진 체험”은 후설의 Erlebnis를 옮기기 위해 프랑스에서 사용한 “expérience vécue”의 번역인

것 같다. 그러나 “살아진 체험”은 주관성과 과정을 함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점은 프랑스어 표현을 “죽 살아진 체험”(lived through experience) 또는 “살아있는 체험”(living experience)으로 옮기는 쪽이 더 잘 전달할 것이다.

5. 후설이 Erlebnis로 표현한 개념을 위한 앞서 언급한 영어 표현들에 항하여, 나는 영단어 “마주침”(encounter), 또는 더 나은 표현으로, “마주치기”(encountering)를 강하게 추천한다. 그러나 때로 나는 “지향적 과

정”(intentive process)도 사용한다. 이는 나의 스승 도리온 케언스(Dorion Cairns)가 자신의 탐구에서 선호하였던 표현이다. 그 이유는 가치평가하기와 의지하기 구성요소, 또한 믿기 구성요소도 넓은 의미에서 더 쉽게 함의될

수 있고, 또한 일반적 용어를 세분화하는 데에 이 구성요소들이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마주치기는 “가치적 마주치기”로서, 그 안에서는 무엇에 한 좋아하기, 싫어하기, 또는 무관심이 주되다. 다른 어떤

마주치기는 “실천적 또는 의지적 마주치기”로서, 그 안에서는 어떤 것의 연속적 또는 비현행적 존재를 향한 의지하기, 그것에 반 하는 의지하기, 또는 그것에 해 의지적으로 중립적이기가 주되다. 그리고 또 다른 마주치기는─후설의 용어를 사용하자면─”독사적”(doxic) 마주치기로서, 그 안에서는 믿기, 불신하기, 또는 무엇에 한

회의적 중립성이 주되다.

6. 방금 열거한, 일반적으로 테시스적(thetic) 또는 정립적 구성요소라고 불릴 수 있는 것들을 포함시킴에

더하여, 마주치기는 또한 실재 사태를 지각하기, 기억하기, 예상하기라는 경험적 구성요소, 그리고 개념과 보편적 본질 또는 형상(eidē)과 같은 이념적 사태를 경험하기라는 경험적 구성요소도 포함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현상학에서는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하기”라고 불리는 층을 강조해 왔다. 이는 Erlebnis를 “경험”이라고 옮

기는 것을 권장하며 그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다시금─그것을 “마주치기”라고 옮기는 것은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 구성요소를 포함시킬 것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7. 위에서 언급한 마주치기 안의 구성요소들과 상관적으로, 마주쳐진- 로의-사태도 반성적으로 식별되고,

그것이 어떻게 경험되는지와 관련하여 기술될 수 있다. 즉, 지각된-것으로서, 기억된-것으로서, 예상된-것으로서

또는 이념적으로-지향된 것으로서 기술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와 관련하여, 즉 믿어진-것으로서, 가치평가된-것으로서, 의지된-것으로서 기술될 수 있다. 후자와 관련하여, 사태는 그것 자체를 위해, 말하자면 목적으로서 의지될 수 있고, 다른 것을 위해, 말하자면 수단으로서 의지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의지된-

로의-사태가 가질 수 있는 내재적 “유용성”(use)과 외재적 유용성을 구별할 수 있다. 유사한 방식으로, 가치평가

된- 로의-사태가 가지는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를 식별할 수 있고, 심지어 믿어진- 로의-사태가 가지는

내재적 믿음 특성과 외재적 믿음 특성, 예를 들어 결과와 원인으로서의 특성을 식별할 수 있다.

8. 이 용어들은 이후의 논의에서 예시와 연관되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직접적 마주치기와 간접적 마주치기의 대조

9. 내 집에 약간 공사를 하는 데에 허가를 받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최근 나는 시의 해당 관청으로부터 지도와 평면도 사본을 입수했다. 그것은, 이 부동산 위의 어떤 위치에서 본다면 보게 될 광경을, 집의 지붕

과 토지의 나무는 제거하고 보여주는 것 같다. 거기에는 선이 있으며 울타리, 도로, 주위의 벽까지의 거리, 그리고 집 안의 방 사이의 거리가 나타나 있다. 북쪽 방향 역시 표시되어 있다. 그것은 흑백으로 되어 있으며 창, 가구, 나무, 잔디 등 많은 것은 그려져 있지 않다. 나는 면적 및 구조와 관련하여 그것이 비율적으로 정확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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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의심하지 않는다.

10. 이 지도는 내 집 및 거기에 딸린 토지에 한 일종의 “상적(象的) 재현”(pictorial representation)이다. 나는

그것을 봄으로써, 나의 집을 뭔가 색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우선 이것이 간접적 경험의 사례다. 반성적

분석을 통해 거기에 두 층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는 내 앞에 직접적으로 있는, 선이 그어진 종이를 보기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 집과 토지의 배치에 한 경험하기가 있다. 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도면과

마주치며, 도면과의 마주치기를 바탕으로 하여 나의 집과 마주치는데, 이는 보통 그렇듯이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이다.

11. 이러한 사례에서 반성적 분석이 밝혀주는 것은 또 무엇이 있는가? 우선, 나는 선이 그어지고 숫자가

쓰인 종이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내 앞의 탁자에 놓인 물리적 사물로 믿으며, 그것이 정확하며 실

로 매혹적인 재현이라고 긍정적으로 가치평가한다. 그것은 또한 시의 행정당국에 의해 공사가 허가된 곳이 어디인지를 나와 내가 고용한 일꾼들에게 보여주는 실천적 유용성을 가진다.

12. 그러나 이 도면을 통해 재현된 것도 자체로 마주쳐진다.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현관으로부터 복도를

지나 부엌과 식당으로 갔다가 침실로 갔다가 마침내 뒷문을 통해 정원으로 가는 경로를 눈으로 추적하는 것이

었다. 이 경로는 실용적이다. 이 경로는 어느 정도는 기억적으로 경험되지만 허구적 방식으로도 경험되는데, 이

방식은 지각적이거나 기억적인 만큼이나 예상적이기도 하다. 몹시 친숙한 것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재현된 익숙한 집의 평면도에는 집의 편안함도, 말하자면, 내가 집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가치평가하느냐도 속한다. 이러한 것에 친숙하지 않은 누군가는 이러저러한 면모들을 부정적으

로 가치평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두 번째 욕실이 복도에 너무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다.

13. 이러한 마주치기의 하부층은 주되게 시각적이다. 그러나 또한,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안이나 주변을 어떻게 이동할 수 있을지를 도면 위에서 손가락으로 추적하거나, 추적할 수 있음을 내가 의식하고 있을 때, 이차적으로는 촉각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부층을 반성적으로 구별하고 분석하지 않을 때, 주제적인 것은 묘사된

장소이다. 그것이 묘사된 장소라는 점은 “간과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주치기가 간접적이거나 재현적이라는 명시적인 의식은 없다. 평소와의 차이점은, 앞서 말했듯이, 부동산을 위쪽 높은 시점에서 본 것이며 지붕과 나무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전통적 재현주의에 대한 반론

14. 후설의 『논리연구』가 나온 지 한 세기(그리고 흄(David Hume)의 『인간 지성에 한 논고』가 나온

지 275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조차 여전히 고발할 가치가 있는, 경험에 한 전통적 설명이 있다. 이 설명에 따

르면 지각하기나 기억하기에서조차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로크(John Locke)가 “관념”(idea)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든 재현하는 외적 실재 자체와 다르다. 반성적 분석을 수단으로 이 설명에 이론을 제기할 수 있다. 반성적 분석은 우선,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무엇과 직접 경험된 사태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지각된 물리적 사물의 한 면, 가령 앞면은 언제나 현전하지만 내부나 뒷면을

포함하는 다른 면은 부 현전한다는 것은 물리적 사물에 해 참이다. 그러나 현전하는 것과 부 현전되는 것

사이의 관계는 소위 관념과 관념이 재현하는 실재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그 이유는 오직, 전통적 재현주의적

설명에서 외적 실재에 한 직접적 접근은 불가능한 반면에, 물리적 사물 주위를 돌아보거나 그 안을 들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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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면 부 현전된 부분이 현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 다음으로 전통적 재현주의적 설명은 다시금, 물리적 사물과 우리 감각기관, 가령 눈과의 거리가 변함에 따라 물리적 사물의 현출이 어떻게 변하는지로부터 유래할 수도 있다. 이 때 우리가 사물에 다가가거나 그리로부터 멀어지면 시각적 현출은 커지거나 작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물리적 사물을 지각하며 이는 그것의 물리적 크기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현상학은 현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전될 수 있는 모든 사태에─모든 것은 사태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관한 것이다)

16. 기억에 관해서라면, 전통적 재현주의적 설명이 가장 매력적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나에게는 개가

있었다. 먼 옛날 내가 어디선가, 아마도 학교에서 돌아올 때 그가 나에게 인사하러 캥캥거리며 신나서 달려오던 것을 나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이 경우 스키퍼를 내가 즐거이 기억하는 지금, 나

의 마음 속에 작은 사진, 심지어 일종의 작은 영상이나 비디오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또, 이제는 관념을 단어처럼 생각하고, 상에 한 언어적 지칭이 과거에 이를 수 있게끔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과거에 이르는 것은 현상학적으로는, 기억하기 작동의 지향성이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전통적 재현적 설명의 문제는, 반성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나의 심적 삶의 지금에 진행되는 기억하기의

작동이고, 상관적으로 그것의 지향적 상, 이제 60년 이상 전의 그때 돌아오던 길의 신이 난 개라는 점,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무 것도, 움직이는 그림도 정지한 그림도, 단어도, 기억 이미지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17. 상기와 지각에 한 재현주의적 설명의 (이를 예상으로 확장하는 것도 꽤 쉬울 것이다) 또 다른 원천으로 가능한 것은, 간접적 경험하기에 한 기술이 재현주의적 설명으로 일반화되어 모든 경험하기, 그러므로

모든 마주치기가 간접적이거나 재현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나는 스키퍼가 앉아 있으면 안 될 의자에 아주 위엄있게 앉아 있는 것이 찍힌 사진을 가지고 있다. 반성적 분석을 통해 나는 나의 마주치기의 하부층을 식별할 수 있다. 그것은 작고, 평면적이며, 다양한 색으로 된 종이조각을 보기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오래 전 의자 위에 앉아있는 내 개에 한 기억적 경험하기를 식별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정상적으로 나는 내

가 이 사진 보기를 바탕으로 내 개와 마주친다는 명시적인 의식 없이 내 개와 바로 마주친다. 하부층 및 사진의 재현성은 간과된다. 그러나 지각과 상기가 그런 것이라면 나는 반성을 통해, 사진을 통한 상과의 마주치기와 관련하여 기술할 수 있는 두 층을 지각과 상기 안에서도 구별하고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키퍼

기억하기에서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기억하기, 예상하기, 지각하기는 그런 식의 층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18. 전통적 재현주의적 설명에 한 이의제기는 이 정도로 하자.

반성적 분석 계속하기

19. 내 집의 건축학적 도면과 내 개의 사진의 사례는 간접적 마주치기의 종류에 속한다. 이 종류는 상적

마주치기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렇게 특징짓는 것은 경험적 하부층을 강조한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사진이 있거나 없는 스키퍼 상기하기에 한 나의 스케치가 내가 얼마나 그 개를 사랑했는지를, 그러므로 그 개가 나에게 긍정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음을 넌지시 알려 주기를 희망한다. 더 나아가, 나는 그 개의 역

할이 도우미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어머니가 그 개를 어렸던 나에 한 보호책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을─내가 지금 상기하건 , 그 개는 아주 보호를 잘 하는 개였다─나는 후에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적어도 그녀에게는 실용적이고 의지적인 것이었다. 반면에 나에게 그 개는 단순히 같이 놀기에 유용했다. 그리고 물론 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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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리 모두가 의심할 여지 없이 믿었던 심리물리적 실재였다.

20. 소위 순수한 유형의 간접적 경험하기가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말을 통해, 다른 하나는 암시(indication)

를 통해 일어난다. 나는 체로 기술적(記述的)인 본 글을 읽는 진지한 독자들이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내가 말해 온 사태가 내가 말하는 그 로인지 어떤지를 반성적으로 관찰하려고 노력하기를 희망한다. 예를

들어, 넓은 의미에서의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가 마주치기 내에서 구별 가능한 구성요소인가? (여담이지

만, 내가 “넓은 의미에서”라는 단서를 포함시킨 것은, “자아”가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으로 관여하는 작동에서만

그러한 구성요소들이 식별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습관적인, 심지어 자동적인 마주치기에서도,

후설이 sekondär[이차적] 그리고 primär Passivität[일차적 수동성]라고 부른 것에서도 식별 가능하다.)

21. 그리고 다시, 넓은 의미에서의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가 긍정적, 부정적, 중립적 양상을 가지고

있는가? 방 건너편에서 지각되는 의자에 한 긍정적 믿기로부터, 비 속에서 젖지 않으려고 우산을 쓰려는 시도를 지나, 어떤 스포츠 회의 결과에 관한 무관심에 이르는 아홉 가지 명확한 예시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더욱이, 지각하기, 기억하기, 예상하기는 이들의 상이 그 상에 한 마주치기의 지금, 과거, 미래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 구별 가능한가? 그 상에 직접적으로 지향적이라는 특성을 이들이 공유하지 않는가? 이러

한 간결한 실습을 반성해 보면, 소리 듣기와 표시 보기, 표시가 전달하는 의미 생각하기, 그리고 그리하여 의미

있는 표현이 지칭하는 것인 사태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간접적 마주치기이다. 표현이 구성되는 지각하기와 사고하기는 그 속에서는 보통 간과된다. 이때 주제화되는 것은 지칭된 사태이지만, 그때조차도 그 사태는 지칭된-사태로서 주제화되지 않는다. 어떤 반성적 분석을 통해서만, 사태에

한 읽기나 듣기가 일종의 층 구조와 결부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오히려, 사태에 한 듣기나 읽기에서,

우리는 지칭된 사태와 단순히 마주친다. 우리는 믿기, 좋아하기 그리고/또는 싫어하기, 심지어 그 사태의 발생을 지지하거나 반 하는 데에 이끌리기를 간과한다. 또는 적어도, 진지한 텍스트와 관련해서는 사태가 이러하다. 허구적 문학은 조금 다른 경우로, 여기서는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간접적 마주치기의 두 번째 종

은, 인공적 언어, 예를 들어 수학적 기호의 사용도 언어로 간주된다면, “언어적 마주치기”(linguistic encountering)라고 불릴 수 있다.

22. 간접적 마주치기의 세 번째 종이 있다. 이는 “암시적 마주치기”(indicational encountering)라고 불릴 수 있다. 내가 한때 가르쳤던 학에 동료가 하나 있었다. 그의 일정은 어느 정도 나의 일정과 중복되었으며, 나는

학 생활 및 더 넓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에 해 그와 담소를 나누는 것을 즐겼다. 내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습관처럼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모퉁이 근처를 걸어, 그의 문 아래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지를 보곤 했다. 불빛이 새어 나온다면, 그것은 그가 거기 있다는 꽤 신뢰할만한 암시이며, 나는 체로 그의

문에 노크를 하고 한담을 나누었다.

23. 그런데 내 동료의 문 아래의 불빛은 언어적 표현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사진처럼, 그것이 재현하는 것을 닮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적 분석을 통해, 나는 언어적, 상적 마주치기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층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문 아래의 불빛을 지각하기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무실 안의

동료와 마주치기가 있다. 상적 마주치기와 암시적 마주치기는 의미작용이 필연적으로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에

서 언어적 마주치기와 다르다. 그리고 그림과 그려진 사태가 닮았다는 점이 반성을 통해 밝혀질 수 있는 반면에, 예를 들어, 내 동료는 문 아래의 빛살을 닮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적 마주치기와 암시적 마주치기는 서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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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다.

24. 이 분석은 단순한 경우에 초점을 맞추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순수한 복합체와 혼합된 복합체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순수 언어적 복합체에서, 언어적 재현에 해서 말하고, 이해하고, 듣고 쓸 수 있다. 그러면

언어적 재현에 한 언어적 재현이 있게 된다. 상적 재현의 상적 재현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혼합된 복합체에 관해서라면, 내가 복도 저편 내 친구의 방 아래의 불빛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 말로 기술되어 있을 수 있

다. 그러면 암시적 마주치기의 경우에 한 그림과 언어적으로 마주칠 수 있다. 그러한 복잡성이 정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려면, 영화와 비디오를 통한 마주치기를 생각해 보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서는 언어, 사진, 분위기를 암시하는 음악을 함께 기반으로 하여 사태와 간접적으로 마주친다. 그리고 또 다시, 그러한 마주치기는 언제나 반성적으로 식별 가능한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 구성요소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

*

* *

25. 서두에서 지적한 것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끝을 맺도록 하겠다. 예를 들어 칼라하리의 부시맨에게, 적어도 그들이 문명을 접하기 전에는 그리고 그들이 글, 사진, 라디오, 텔레비전을 전혀 모르던 때에는, 간접적 마주치기가 오직말, 동물의 자취, 아마도 흙 위의 약간의 긁힌 자국, 그리고 물론 다른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부현전된 심적 삶을 통해서만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된 사회의 사람에게는, 책, 잡지, 라디오, 영화, 텔

레비전, 컴퓨터를 거친 간접적 마주치기를 통해서 세계 내의 사태와 면식을 얻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의 반성적 분석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물론 이는 이후의 반성적 분석을 통해 수정되고 정제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간접적 마주치기는 직접적 마주치기보다 오류와 기만에 빠지기

훨씬 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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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전적인 비반성성

1. 1988년 1월, 모한티(Jitendra Nath Mohanty)와 나는 “현상학과 인도 철학” 컨퍼런스 후 뉴 델리에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에 같이 앉아 있었다. 학회에서 그는 시간에 한 어떠한 알아차림도 없이 무엇을 의식할 수 있는지 어떤지에 해 친구와 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생각하지도 않고 즉각,

나는 이념적 상에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며 그럴 때에는 시간적인 어떤 것도 잊을 수 있으리라고

제안했다. 지텐은 특유의 웃음을 지었고, 우리는 다른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2. 시간이 좀 지났지만, 나는 이 기회에 저 제안에 한 후속 고찰을 하고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생각을,

정확히는, 현상학적 반성을 하고 싶다. 나는 태도(attitude) 개념에 한 해명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시간을 의식

하지 않은 채 어떻게 무언가를 의식할 수 있는지를 기술하려 한다. 권위자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내가 느꼈다면,

나는 우리 공통의 친구인 아론 구르비치(Aron Gurwitsch)가 전개한 주변 의식(marginal consciousness) 학설에 의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사태 자체의 권위가 더욱 중요하다.

3. 이어질 내용은 문헌학적 실습이 아니라 현상학적 실습이다. 이는, 내 설명을 다른 사람이 검토할 수 있

고 심지어 내가 이후에 반성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는 언급된 종류의 심적 삶의 사례들을 진정한 또는 허구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이어서 형상화(eideating)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사태가 내가 기술한 로라는 것이 명증화된다면(evidenced), 나의 설명은 확정될 것이다. 내 설명에 잘못이 있거나 불완전한 점이 있다면, 독자가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수정하거나 보완하기를 권장한다.

4. 많은 현상학자들은, 반성에서 맨 처음 발견하는 것이 과정, 또는 심지어 감각적 지각 작용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우리 시 의 철학을 병들게 하고 있는 자연주의의 산물이라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

공학, 자연주의적 과학, 특정 유형의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자연화된 세계관을 가지게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반성에서 맨 처음 발견하는 것은 태도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그것의 정립적 구성요소를 통해 특징

지어진다. 미국의 남자 학부생에게 프로 미식축구에 한 태도를 묻는다면 그의 전형적인 답은, 그가 프로

미식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 태도이며, 지각적이라기보다는 가치평가적이다.

5. 그 이상의 연구와 반성이 즉각 밝혀주는 것은, 그런 학생은 주로 텔레비전 보기를 통해 재현적으로 그

러한 경기 하기와 마주쳤다는 것, 그러므로 그것은 경기자들에 한 사회적 관찰이라는 것, 그러므로 바로 이러한 두 가지 면에서 이미 또 그것은 감각적 지각하기 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그는 아마도 좋아하기라는 정립적 정서적 구성요소를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이다. 상관적으로, 그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로 미식축구는 좋다.”

6. 정서적 태도는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의 시간성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미식축구의 예에서 시간성은 모호하다. 즉, 경기가 현재, 과거, 미래에 있는지, 아니면 그런 모든 시간이

언급되고 있는지 미규정적이다. 그러나 반성을 해 보면, 미식축구 경기가 일어날 때에는 물론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이러저러한 과거의 경기를 즐거이 기억하거나, 또는 덜 규정적으로, 언젠가 과거에 미식축구 경기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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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더 근사했는지를 바로 기억할 수도 있다.

7. 향수, 후회, 죄책감, 수치, 긍지는 쉽게 예증이 될 수 있는 회고적 정서적 태도들이다. 미래를 향하는 태도는 희망, 공포, 걱정 등을 포함한다. 전망적 태도와 회고적 태도 외에, 지금 상을 향하는 태도도 있다. 그 학생이 경기를 보고 있는 동안 그에게 물어보면, 그는 아마도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다.

8. 시간 내의 상을 향하는 주되게 정립적인 다른 태도가 있다. 그 중 실천적이거나 의지적인 종류는 파

괴, 방지, 감소 등을 위한 노력을 목표함으로써 부정적일 수도 있고, 창조, 보존, 증진 등을 위한 노력을 목표함으로써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현재나 과거의 상을 직접적으로 지향하는 실천적 태도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의 보존이나 회복을 의지하면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말이다.

9. 많은 자연주의적 과학과 근래의 철학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자연주의적일 뿐 아니라 지성주의

적인 방향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사고하기, 믿기, 명증화하기를 위해서 태도의 정서적 구성요소와 노력적 구성요소에 한 관심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정서적 태도와 노력적 태도에 경의를 표하였으므로, 이제 더 많은 지적 태도들로 관심을 돌릴 수 있다.

10. 상식적 사고하기 단계에서, 문화적 분과학문 및 형식적 분과학문과 자연주의적 분과학문에서 사고하

기 단계에서, 그리고 심지어 부분의 철학에서 사고하기 단계에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을 사태라고 부를 것인지, 그것에 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 그것을 믿을지 말지, 그리고 그 믿음을 명증화하기를

통해 어떻게 정당화할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되게 인지적인 태도가 만연할 때에도 여전히, 느끼기와 추구하기를 배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11. 아주 일반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상이 있다. 실재적, 또는 더 나은 말로는, 시간적 상이 있다. 초월론적 현상학자에게 이것은 집, 자동차, 추잉 껌 등만큼이나, 비세계적 지위를 가진 심적 삶도 포함한다. 그리고

이념적 상이 있다. 평범한 성인은, 잠재적으로만 그렇다 해도, 다양한 종류의 이념적 상과도 친숙하다.

12. 이념적 상과 명시적으로 친숙해지는 일은 흔히 논리학 입문 강좌에서 일어난다. 이를 통해서 특정

판단 및 판단으로부터 건설된 이론들이 가지는 논리적 형식을 인지하는 데에 능숙해질 수 있다. 또한 보편적

또는 형상적 형식, 단어, 또는 사태연관이 예화하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 능숙해질 수 있다. 그것이 강사가 지지하는 논리학파에서 인정되는 그렇지 않든 간에 그럴 수 있다.

13. 또는 산수를 조금 생각해 보면, “하나, 둘, 셋”이라는 수의 이름은 개념, 실상 형식적 개념을 표현한다.

무엇을 센 것인지를 말로 구체화하지 않을 때에도, 그것은 기호를 통해 쉽게 다시 표현될 수 있으며, 이들은 심지어 1+2=3, 3-2=1이라는 식으로 조합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하나, 둘, 셋”을 통해 표현된 형식적 개념에 의해

예화되는, 또는 사태를 세는 과정에서 본래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사태에 부여되는 하나임 또는 단일성, 둘임 또는 이중성, 셋임 또는 삼중성이라는 형식적 보편자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14. 태도들 사이의 또 다른 구별을 언급해야겠다. 프로 미식축구에 해 학생에게 묻는다면, 그는 반성할

수 있다. 그저 습관을 근거로 답한다거나, 실로, 남들이 흔히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또는 그가 그렇게 말하리라고 오랫동안 기 를 받았기 때문에 답한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아무리 짧고 피상적일지라도, 그의 태도를 향하고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고, 그리하여 약간의 명증화하기를 통해 정당화

를 하여, “나는 미식축구를 좋아한다”라는 문장이나 그와 상관적이고 등가적인 “미식축구는 좋다”라는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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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식인들, 특히 인문학 또는 사회과학의 일부 학파에게 반성은 상당히 습관적이다. 이들은 자연과학자

들이 보통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가, 별이 그에게 어떻게 나타나며

그에 의해 어떻게 정립되는지에 해, 또는 그가 별을 알아차리는 수단이 되는 도구를 통해 또는 도구 없이 별이 어떻게 지각되는지에 해 노심초사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의식적 삶의 독사적 구성요소 속에서 구성된 믿음 성격이 있고, 그의 생각하기 속에서 구성된 천문학적 사태연관이 있고, 그리고 어떤

상이 어떻게 암묵적으로 좋거나 나쁜지, 또는 적어도 근사한지, 평범한지, 추한지가 있다.

16. 어떤 유형의 학문에 있는 그러한 비반성성 외에, 일상적 삶에 비반성성이 있다. 운전할 때, 주되게 시각적인 길 마주치기에 상관적으로 길이 어떻게 현전되는지를 반성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특히 운전하다가

지루해졌을 때(그리고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을 때!)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는 특이한 경우다. 개는 마주

치기와 마주치기의 구성요소뿐 아니라, 마주쳐진- 로의 상도 무시하거나 간과한다. 그러면 초점에 들어오는

것은 길과 다른 차뿐이다. 반성해볼 때 명증화되는 것은, 전적으로 비반성적인 태도이다.

17. 시간에 한 감각 없이, 시간 속에 자리잡은 것으로서의 상, 현재, 과거나 미래로서의 상, 또는 똑같이 유지되든 변화하든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것으로서의 상에 한 알아차림 없이, 무엇을 알아차릴 수 있

는가? 필자에게 이는 어려운 일 같다. 그는 반성하는 습관이 너무 들어 있다. 그러나 그는 반성하려는 그의 경향이 특이할 정도로 강하고 또한 습관적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를 훈련시키거나 남으로부터 훈련을 받음을 통해 일부러 전적으로 비반성적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또한, 오직 1+2=3과

같은 비시간적 이념적 상을 향하기만 하는 특수한 태도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 가능성은 명확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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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상기하기에 대한 반성적 분석

상기하기에서 내 관심은 탈락되었다가 내게 새롭게 붙잡힌 과거의 경험으로 돌아간다.

나는 단순히 내가 경험한 과거의 사물만을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 전체를

상기한다─과거에-현전했고 부 현전한 배경, 그리고 과거의 지각자로서의 나 자신.3 서론

1. 도리온 케언스(Dorion Cairns)의 유고에서 뭔가 다른 것을 찾던 와중에, 나는 상기에 한 언급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memory)은 적게 등장하고 “기억하기”(remembering)나 그것의 변형, 특히 “나는 기억한다”

는 더 많이 나오는 반면, “상기”(recollection)나 그것의 변형은 빈번하게 등장하다. 연구에 따르면 “상기하기”는

캐언즈의 가장 중요한 지적, 예를 들어 “상기하기는 무엇을 상기하기이다”(037936)의 주제이다. 그렇기에 이 분

석의 주제를 명명하기 위해 “상기하기”를 사용할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하기에 한 캐언스의 흩어져있는 지적들은 흔히 지나가면서 언급된 것이며,

체로 언제나 간소하다. 위의 제사(題詞)가 가장 포괄적인 진술로 보인다. 아래의 상설에는 유고로부터의 몇

쪽의 인용이 있겠지만, 케언스의 출간물로부터는 다른 한 번의 인용 그리고 두 번의 참조만이 있을 것이다. 여

기에서 내가 표현하는 것은 그로부터 내가 현상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나의 스승이

그의 스승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과 관계했던 방식이 이런 방식이다. 그것은 즉, 텍스트의 해석을 표현하지 않고, 그의 스승의 글의 도움을 받아 그 자신이 반성적으로 관찰, 수정,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3. 지속적 예시가 유용할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개념적 틀을 명확히 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내가 9살쯤이었던 때 일어난 어떤 일을 상기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일은 보호소에서 온 근사한

개가 나에게 생기고 한 달 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 개는 두 살 정도였고, 이미 스키퍼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개는 우리가 그의 새 가족이라는 것을 금세 받아들였고, 우리는 그 개를 근처에 풀어놓을 수도 있었고, 저녁 시

간이 되면 그 개가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키퍼는 우리 집 앞에 머무르며,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 보곤” 했다.

4. 내가 특히 생생히 상기하는 것은, 내가 학교에서 걸어 돌아오는 것을 스키퍼가 보고선 캥캥거리며, 짖으며, 거의 넘어질 정도로 꼬리를 심하게 흔들며 나에게 달려와,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핥으려 하다 거의 나를

쓰러뜨릴 뻔 했던 일이다. 물론 나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나를 사랑했던 가족이 있었지만, 내가 상기할 수 있는 가장 큰 무조건적 사랑의 표현은 언제나 스키퍼가 해준 것이었다. 내가 멀리서 해병 에 있는 동안 스키퍼가 차에 치일 때까지, 스키퍼와 나는 십 년 동안 친구였다. 약 65년 전 오후 학교에서 집으로 오던 길에 내가

어떻게 인사 받았는지를 나는 여러 번 상기해 왔다.

3 도리온 케언스의 유고, 037275쪽. 이후로는 괄호 안에 6자리의 쪽번호를 써서 본문 내에 삽입하여 인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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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의 스승 케언스가 남긴 상기하기에 한 흩어져 있는 지적들에서, 그는 이러한 예를 들고 그것을 물

리적 사태에 한 감각적 지각하기에 한 상기하기로 제한했을 것이다. (011120. 011066를 참조하라.) 이는 확실히 사태를 단순하게 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심적 삶에 해 반성할 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문화적

사태(나의 예에서 그것은 생명이 있는 문화적 사태, 사랑 받는 개이다.)와의 마주치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 점을 시작에서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후설의 “Erlebnisse”[체험]에 등

한 표현으로 케언스가 최종적으로 선호한 영어 표현, 또한 내가 받아들이는 표현인 “지향적 과정”(intentive

process)을 때로는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선호하는 “마주치기”(encountering)는 경험하기(이 중에서 감각적

지각하기가 가장 중요한 종류이다)만이 아니라 테시스적(thetic) 또는 정립적 구성요소도 포함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구성요소는 넓은 의미에서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라고 불릴 수 있으며, 또한 독사적

(doxic), 가치적, 실천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케언스처럼 감각적 지각하기와 물리적 사태에 해서만 말한다면, 많은 것을 추상하게 된다.

6. 상관적으로 케언스의 분석에서 물리적 사태는, 살아있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구체적 문화적 상으로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으로부터 그가 추상한 것이다. 이들은 문화적 상으로서 목적 그리고/또는 수단으로서

의 유용성, 내재적 그리고/또는 외재적 가치, 믿음 성격들을 본질적으로 포함하는 상이다. 이 모든 것들은 저

사태와의 마주치기 속에 있는 관련된 종류의 정립하기와 상관적이다.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상기되는 것은,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그 사태에 지향적인 마주치기 그리고─모든 것이 사태라고 불릴 수 있는 넓은 의미에서─마주쳐진-것으로서-사태이다. 그리고 상기된 것으로서의 무엇에 한 상기하기에 해 반성을 함으로써 인지하

게 되는 것은, 그것도 마주치기라는 점, 그리고 상기된 사태는 상기적으로-마주쳐진-것으로서의-사태라는 점이다. 이후의 내용에서 마주치기는 개, 그것을 정초하는 경험하기의 유형에 의해 구별될 것이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것에 한 지각하기 또는 소위 “공감”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 지각적, 상기적 또는 예상적인 것으로,

또한 반성적으로 관찰적인 것으로 구별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하기 유형이 세분화하는 전체 마주치기

가 언제나 그러한 단순화된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다. 내가 “마주치기”라고 표현하는 개념으로 내가 포착하려

하는 모든 것을 나의 스승도 잘 알아차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013065)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에 용어를 제시한 적이 없다. “지향하기”가 어쩌면 그런 용어이지만, 나는 그가 이 용어를 그러한 결과까지 해명한 것을 보지

못했다.

7. 오래 전 스키퍼가 나에게 인사했던 일로 다시 돌아가자. 그가 달려올 때, 확실히 그는 시각적으로 나를

지각하였다. 그러나 또한 그가 했던 일을 추구하는 동인이 된 것은 긍정적 가치평가하기였다. 나는 또한 그가

다가올 때 내가 느꼈던 기쁨을, 그리고 상관적으로 그도 얼마나 나에 해 기뻐했는지를 상기한다. 더욱이, 오래 전 샌프란시스코의 길에서 그 날 오후에 일어났던 일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나의 상기하기에서 주된 것은 나의 기쁨, 즉 강렬한 긍정적 가치평가하기이다. 한마디로, 스키퍼와의 먼 과거의

마주침에 한 상기적 마주치기가 있다. 이후로 내가 상기하기를 말할 때, 상기하기 및 그 속에서 상기된 것은

마주치기와 마주쳐진- 로의- 상이라는 관점으로 암묵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나의 스승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시작에서부터 이를,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명

확히 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지각된 것을 “피지각자”(percept)이라고 부르듯이 상기된 것을 “피상기자”(recollect)

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어색하더라도 “피상기자”(recollectum) 또는 “피상기자들”(recollecta)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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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 이러한 설명의 중요성은 결국에 가서는 인식론적인 것으로 드러날 것이나, 그것의 부분은 하나의 분석을 이루는 검증 가능한 일련의 구별들이다. 그러나 우선 지반을 정비하기 위해, 내가 좀비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공격할 필요가 있겠다. 이것은 소위 기억 이미지의 이론이다. 이것은 수 세기 동안 근 철학과 심리학을 감염시켜 온 재현주의의 한 종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상기하기 작용과 동시에 일어나면서 과거 사건을

표하는 이미지 또는 재현이 있다. 확실히, 재현적 경험하기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내가 나의 개에 한 사진을 볼 때 내가 그에 해 가지는 경험하기가 그렇다. 그리고 재현적 경험하기에 한

상기하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험하기가 재현적이라고 믿는 것은 중 한 오류다.

9. 넓게 지지되는 이 그릇된 이론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를 나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짐작하기로

는, 언어적 표현, 그림, 또는 여타 재현이 공간적으로 그리고/또는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물을 지칭할 수 있다는 점, 그러나 현상학자가 초점을 맞추는 심적 과정은 그런 사물에 지향적일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에 동기가 있다. 그러나 후자는 잘못이다. 어쩌면 그것은, 심적 과정을 감각적 지각하기에서 심적 과정에 긴하게 동반되는 생체 과정으로 착각하고, 지칭을 어떤 방식으로 인과적 연관으로 환원하는 “사물적 사고”에 근

거할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상기하기는 감각적 지각하기처럼 체화되어 있지 않음에도 그렇다. 그리고 어쩌면

기억 이미지는 소위 지각된 것으로서의 사물과 물리학에서 수학적으로 이해된 것으로서의 사물─이쪽이 우선시된다─사이의 양립가능성으로부터 생길지도 모른다.4

10. 죽임 당했다가 죽은 자들 사이에서 여러 번 다시 살아난 이러한 이론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우선, 과거

사건에 한 직접적 접근이 없다면, 기억 이미지가 과거 사건에 정확히 상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또, 65년 전 그리고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곳으로부터 약 3000 마일 떨어진 곳에서 있었던 스키퍼와의 사랑스러운 마주침을 내가 상기할 때, 혹자가 말하듯, 상기하기의 작동과 동시에 “내 머리 속에서” 돌아가는 짧은 필름 따위는 없다. 현상학적으로, 나는 지금이든, 내 머리 속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기억 이미지를 발견하지 못한다.

반성적 분석

11. 현상학적 설명은 명시적인 전제와 결론을 가진 논리적 설명이 아니며, 현상학적 방법은 또한 논증적이 아니라 기술적(記述的)이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처음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무엇을 확장시키고,

필요하다면 수정하여, 마침내 해당 사물에 한 더 깊은 이해를 가지게끔 하는 데에 사용되는 일련의 구별들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12. 첫 번째로, 상기하기는 곧바르거나 반성적이다. 곧바른 상기하기에서는 이전에 마주쳤던 것, 예를 들어 나를 향해 길을 달려 오는 스키퍼가 관찰되며, 그것과의 마주치기라든가 그것이 어떤 식으로 마주쳐진- 로

있는지는 간과된다. 그러나 반성적 상기하기에서는 이전의 마주치기가 주제로 들어올 뿐 아니라, 또한 마주쳐

4 어쩌면 많은 동료들이 언어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도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표현하기와 이해하기 작동을 상기할 수 있으며, 또한 거기에 결부된 다양한 종류의 구문론적 작동도 상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탐색하는 것은 본 분석을 과도하게 확장할 것이므로, 그러한 과제는 다른 날을 위해, 그리고/또는 다른 탐구자를 위해 남겨놓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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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로의 마주쳐진 것도 주제로 들어온다. 이 경우엔 분석하고 기술할 것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스키퍼가 나

의 체화된 자신에게 접근하는 와중에 그의 시각적 외견이 커져가고, 그의 기쁜 듯한 소리의 청각적 외견이 점점 더 커지는 방식을, 그리고 내가 그와 마주치는 동안 그가 나에 해 가지고 있던 단순한 실존과 강렬한 가치도 분석하고 기술할 수 있다. 후설주의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이라고 말한다. 본 분석은

위에서 처음에 마주치기와 마주쳐진- 로의-사태 개념을 명확히 할 때 이미 이러한 관점에서 묘사하였으며, 또

한 이러한 관점에서 세 하게 확장될 수 있다. 더욱이, 이전에 마주친 것을 상기하는 것이 때로는 사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념적으로는 가능하다. 반성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둔 채로, 강조점은 곧바른 상기하기에 두는 것이 흔히 편리하다.

13. 두 번째로, 실재에 한 모든 마주치기와 마찬가지로 상기하기는 진정할 수도 있고 허구적일 수도 있

다. (케언스를 따라 “허구적 지향하기” 라고 하는 것이 “상상”(imagination)보다 선호할만하다. 거기에는 그 안의

상(image)에 한 언어적 암시가 없기 때문이다.)5 나는 스키퍼와 나의 마주침을 진정으로 상기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옆에서, 그러므로 나와 다른 견지에서, 다른 조망에서, 다른 현출을 통하여 목격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웃이 길 건너편에 있는 것을 쉽게 꾸며낼 수 있다. 그리고 또, 움직이는 차 안에서 바라

보기 때문에 변화하는 현출을 가지는 누군가를 꾸며낼 수도 있다. 또한 나는 진정 상기된 것을 허구적으로 향상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스키퍼가 종을 걸고 있어서 그가 다가오면서 종이 울렸다고 가장할 수도 있다.

14. 세 번째로, 과거의 사물은 “점점 더 과거로” 연속적으로 사라져가며, 미래에서 예상되는 사물은 일어나기 전에 “점점 더 곧” 오게 된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사물과 미래의 사물 사이에는 후설이

“주어짐의 방식”이라고 부르는 것의 차이가 있으며, 이는 반성적으로 식별될 수 있다.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멈춘 직후에도, 즉 그것이 “인상적”(impressional)이었다가 과거가 되기 시작한 후에도 그것을 잠시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기하기는 이전에 마주친 사태 및 그것과의 마주치기가 해방되었거나 탈락한 후

다시 취득될 때에 일어나는 일이다. 스키퍼가 나에게 인사하는 것을 내가 수 년 동안 상기해 왔듯이, 이는 여러

번 일어날 수 있다. 후설의 용어로, 상기하기는 그래서 일차적 기억이 아니라 이차적 기억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처음 상기된 것이 나중에 상기될 것에 비해 더 선명하고 포괄적이다. (016486)

15. 네 번째로, 후설은 일차적 수동과 이차적 수동, 그리고 에고(ego)를 가지는, 또는 내가 관여하는 심적

작용을 구별한다. 케언스는 수동성을 “자동성”(automaticity)이라고 부르기를 선호했으며, 나는 더 나아가 이를

작용이라기보다는 “작동”(operation)이라고 부른다. 이는 능동적 작동과 수용적 작동이라는 추가적 구별을 더 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상기에는 언제나 많은 것이 자동적으로 이미 있으며, 사건의 본래적 두드러짐, 예를 들어

스키퍼와의 마주침이 상기하기의 작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듯이(037280), 자동적으로 파지된 것과의 유사성과

조가 상기하기의 작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037277) 이러한 맥락에서 시험적 관찰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15살 이후로 가진 많은 자동차들에 관하여, 내가 그것을 어떻게 언제 획득했고, 또 그것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상기해 보려고 내가 노력해보았을 적에, 내가 한 것은 상기하기의 능동적 작동이었다. 그러므로, 과거의 탐색 또는 탐험인 상기하기와, 마음에 일어나며 때로는 작동을 자극하는 기억들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5 비시간적인 이념적 상의 경우, 그것은 곧바르게 상기될 수 없지만, 명증화하기를 포함하여 그것을 지향하는 과정은 시간 속에 있으며 상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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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다섯 번째로, 상기되는 것은 공간적, 시간적, 인과적 차원을 가진 문화적 무 에서 상기된다. 예상되는

무 나 상기되는 무 가 그렇듯이, 이들도 세계적(worldly)이며 그러므로 자연 이상의 것이다. 우리는 사태를, 스스로를 현전시킨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것을 부 현전시키는 것으로서 경험한다. 여기에는 이전에

마주쳤던 것을 넘어서기에 상기할 수 없는 시간, 장소, 원인이 있으며, 또한 들리기만 했던 사태의 감촉과 소리도 있다. 다른 사정이 같다면, 이전에 과거에 있었던 상기하기의 사태와 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지각하기의 사

태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더욱이, 다른 사태와의 관계 하에서 어떤 사태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과, 상기된 것과의 관계에서 사태들의 시간을 동시적인 것, 직접적 또는 매개적으로 더 이른 것, 더 늦은 것으로, 그리고 심적 삶을 초월하는 것 그리고 심적 삶에 내재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17. 여섯 번째로, 케언스는 사건의 계열은 그것이 본래적으로 일어났던 그 구체적인 순서로만 상기될 수

있으며, 말하자면 역방향으로 상기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분리된 부분들이 본래 순서의 바깥에서 상기될 수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037279) 예를 들어, 스키퍼가 나에게 뛰어오는 것이 먼저 상기되고 나서 그가 나를 알아채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 두 번째로 상기될 수는 없다. 내가 첨언하고 싶은 것은, 상기된 것과 예상된 것은

흔히 비교할 가치가 있다는 점, 그리고 예상된 일련의 사건, 예를 들어 계단 오르기는 어떠한 순서로도 구체적

으로 예상될 수 있다는 점, 특히 꾸며낸 경우에는 더 그렇다는 점이다. (그러나 맹목적이지만 여전히 진정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는 어떤 방향으로도 꾸며내질 수 있다. 예상은 종종 상기를 거울처럼 비춘다.

예를 들어, 일차적 예상과 이차적 예상이 있다. 그러나 늘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예상은 순방향으로도 역방향으로도 흐를 수 있다. 더욱이, 예상하기를 상기하고, 상기하기를 예상하고, 예상하기를 예상하고, 상기하기를

상기하고, 진정한 지각하기를 상기하기를 꾸며내는 등을 할 수 있다. 실로, 이전에 현행화되었으며 미래에 현행화가능한 상기하기의 지평 및 그리고 같은 “피상기자”에 한 다른 마주치기의 지평이 상기하기의 모든 작동과 함께 언제나 있다.

18. 여섯 번째로, 일차적으로 자동적인 과정에는 관여할 수가 없고, 이차적으로 자동적인 습관적, 전통적

과정에는 관여할 수 있기는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는 반면에, 상기하기와 같은 작동은 능동적 그리고/또는

수용적이며, 그리고 능동적 또는 수용적으로 개입하는 에고를 가진다. 자아는 심적 삶에 초재적이지만, 바깥쪽이라기보다는 안쪽에 있다. 그녀를 반성적으로 상기하는 것은 진정으로도, 또한 허구적으로도 가능하다. 케언스는 이렇게 쓴다. (Erlebnis를 “알아차림”으로 옮겼다)

에고의 자기동일성은 파지 속의 자기동일성에 지나지 않는 것, 습성적 명증(evidence)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알아차림이 상기되는 한, 그것이 현재의 알아차림 속에서 주어진다. 상기되는 알아차림이 인상적이었을 때에는 저 알아차림 속에서 에고가 현행적 또는 가능적으로 살아있었는데, 그 에고가 이제는 “과거”로서 주어진다는 점은 명증적이다. 현재의 의식에서, 인상적으로

주어진 에고와 상기적으로 주어진, 파지된 에고는 짝지어져서 명증적 동일화 종합을 이룬다. 지금

기억하는 자아는 그때 지각하던 자아와 같다. 이러한 정초된, 자기동일적, 지속적 에고는 명증 속에서 반성적으로 포착될 수 있다.6

6 (018091). 동일화 종합에 관해서는, Dorion Cairns 저, Lester Embree, Fred Kersten, Richard M. Zaner 편집, 「후설에서의 지향성 이론」("The Theory of Intentionality in Husserl"), Journal of the British Society for Phenomenology, 32 (1999): 116-124를 참조하라. 이는 Dermot Moran, Lester Embree 편집, 『현상학: 철학의 비판적 개념들 』 (Phenomenology: Critical Concepts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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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전체 장은, 후설의 용어로 말하자면, 에고-사유작용-사유 상(ego-cogito-cogitatum)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인식론적 의의

19. 도리온 케언스가 정의했고 내가 동의하는 바에 따르면, 인식론은 사태에 한 비판적으로 정당화된

믿기에 관한 것이다. (가치의 이론과 윤리학은 각각 가치평가하기와 의지하기에 헌신하는 평행 분과학문이다

(023095)) 정당화의 문제는 결부되는 믿기 유형에 한, 이 경우에는 상기하기에 한 이해를 전제한다. 아마도

우선은 위의 분석이 충분할 것이다. 케언스의 흩어져있는 짤막한 지적들은 또한 종종─완전한 명칭으로 부르자면─상기적 마주치기와 지각적 마주치기를 비교하고 조하는데, 이는 유용하다. 그러면 둘 다 그 안에서 지향

된 사물에 한 직접적 경험하기를 포함하지만, 지각하기는 원본적이고 상기하기는 파생적이다. (031518) 더 나아가, 둘 다 “근원독사적”(proto-doxic)이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지각하기가 믿기인 바로 그 로, 상기하기도 믿기라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 하자면, 직접적으로 현출하는 것에 한 알아차림은, 의심하기나 불신으로 양상화되지 않는 한 유지되는 단순한 긍정적 믿기를 정초하며 동기부여한다.

20. 초견적 정당화(prima facie justification)를 넘어서기 위해, 즉 상기된 무엇에 한 정당화나 정당화 불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더 많은 그리고 더 나은 상기하기에, 그리고/또는 어떤 경우에는 지각하기에 호소할 수

있다. (011151) 모호한 것을 더 명확히 하려는 노력이 언제나 있다. 반복적인 상기하기는 심지어 몇 년이 지나더라도 확증하는 기능을 해 준다. 이는 예상된 사물이 인상적이 되거나 명확하게 상기될 때, 예상된 것이 확증되

거나 취소되는 방식과 비슷하다. 과거에 한 믿기가 취소되면, 달랐음에 한 믿기가 있게 된다. 지각에서 원본적으로 현전하는 것이 상기된 것과 상충할 때에는 전제가 더 우세하다. 그러나 상기된 것은 부 현전된 것보다는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010946)

21. 지각에서와 마찬가지로, 상기에서도 착각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물은 처음에는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가, 더 많은 상기하기, 그리고 어쩌면 심지어 지각적 마주치기를 근거로 하여서만 착각인 것으로 인지된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스키퍼는 처음에는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것으로서 마주쳐졌다가, 마침내는 나를 지나가서, 내 뒤에서 접근하고 있던 이전의 주인에게 인사했을 수도 있다. 나에게 인사하는 스키퍼를 상기하기와

관련해서는, 나는 상기에서의 착각의 예시를 하나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착용하고 있는 돈

주머니에 100달러를 넣었다는 것을 상기했는데, 다른 누구도 돈주머니에 접근할 수 없었음에도 돈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기억은 착각으로 거부될 것이다. 착각과 여타 문제가 부재한다면, 상기하기는 점점 더 많은 확증적 상기하기에 의해 비판적으로 정당화되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상호주관적으로,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정당화된다.

22. 진정한 상기하기는 이전의 현행적 특수자, 예를 들어 그 잊을 수 없는 때의 스키퍼의 행동에 한 믿기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허구적 상기하기, 예를 들어 길 건너편에서 지켜보고 있는 꾸며내진 이웃에 관한 상기하기는 가능성에 한 믿기를 정당화한다. 상기된 현행성은 또한 과거의 현행적 사태의 가능성을 정당화한다. 명확하고 분명한 진정한 상기하기와 허구적 상기하기는 이제, 그 안에서 지향된 사태의 현행성 그리고/또

는 가능성에 한 명증화하기(evidencing)이며, 이를 근거로 그 사물에 한 명제적 진리가 있을 수 있다.

Philosophy), London: Routledge, 2004, I: pp. 184-192로 재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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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꾸며내기

가능적 심적 과정의 우주 전체에 걸쳐, 비허구적 과정의 특수한 종류 각각에 상응하는

허구적 과정(상상-과정, 마치-처럼(as-if) 과정)의 종류가 있다. 그러므로: 허구적 지각하기는

지각하기에, 허구적 상기하기는 상기하기에, 허구적 그림 C임의 과정은 그림 C임의

과정에 상응한다. 비슷하게, 허구적 좋아하기는 좋아하기에, 허구적 의지하기는

의지하기에 상응한다. (도리온 케언스(Dorion Cairns), 1959년 12월 15일)

1. 이것은 텍스트에 한 학술연구가 아니고, 어떤 사태 자체에 한 탐구에 근거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전개된 유래가 되는 통찰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제사(題詞)

에서 표현되었듯이, 나는 도리온 케언스의 뉴 스쿨 강의를 통해 저 통찰을 가지게 되었다. 반성적 분석의 경우,

독자가 스스로 관찰하고, 해당 사태가 표현된 로인지 어떤지를 살펴보는 것은 장려된다. 이것은 문헌학이 아니라 현상학이다.

2. 나는 위의 제사의 논제의 방어로 [후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먼저 몇 가지 용어를 확립할 필요가 있

겠다. 부분의 사람들은 이 탐구가 “상상”(imagination)에 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표현의 전문용어적 사용에 반 한다. 이 표현이 죽은 은유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죽은 은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죽었다는 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은유가 죽었는지를 전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심적 또는 지향적 과정의 직접적 상이 언제나 상(象, image)이며 물론 상은 다

른 것을 신하거나 재현한다고 믿고 있다는 의혹을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상, 가령 유명인의 사진을 꾸며낼 수도 있고, 이 경우 그 꾸며낸 상은 재현이며, 그것에 의해 재현된 것 즉 유명인이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어떤 사람을 직접적으로, 즉 끼어드는 재현을 수반하지 않고 꾸며낼 수는 없는가?

3. 어떤 사상가는 “상상하기” 신에 “그리기”(picturing)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리기는 오히려 더욱

명백하게도 재현적이다. 이러한 오도적 표현을 사용하는 주된 동기는 재현주의(representationalism)이다. 이것은

근 서구 인식론에서 때로 “관념의 길”이라고 불리며, 존 로크(John Locke)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까지

거슬러간다. 이 재현주의에 따르면, 심적 또는 지향적 과정과 그것의 상 사이에는 언제나 “관념”이 있다. 이러한 교설은 1739년에 데이비드 흄(David Hume)에 의해 반박되었으나, 이를 인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20세기의 시작 무렵 후설이 다시 그것을 반박했다. 모든 지향적 과정이 재현적이라는 논제는 재현된 사물 자체에 한 직접적 접근로를 가로막는다. 만약 그렇다면, 재현이 재현된 사물을 재현하는지 어떤지, 그리고 어떻게

재현하는지를 판단할 견지가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하여, 그것은 불가능한 입장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 ,

지향적 과정의 어떤 종류, 예를 들어 사진과 관련된 과정은 재현적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 거기에는 적어도 원

리적으로는, 재현과 비교될 수 있는 재현된 사물에 한 직접적 또는 현전적 접근의 가능성이 있다.

4. “상상”과 “그리기”가 오도적이지만, 다행히도 더 받아들일만한 다른 표현들이 있다. “꾸며내기”(feigning),

“꾸며내다”(to feign)는 그 모든 형태에서 사용될 수 있고, “허구적(으로)”(fictive(ly))도 사용될 수 있다. 이에 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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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동사 “가장하다”(to pretend to), 형용사 “가장된”(pretend), 명사 “가장하기”(pretending),7 더 나아가 “유사-“(quasi-)

라는 수식어는 더 안전한 것 같다. 다양한 등가적 표현이 있으므로 상설(詳說)에서 약간의 문체적인 변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나 탁자 위에 서 있는 고양이를 시각적으로 꾸며낼 수 있고, 즉 그 고양이가 거기에 있다고 가장할 수 있고, 그 가장된 고양이의 허구적 색에 주의를 계속해서 기울일 수 있으며, 그 고양이는 실재가

아니지만 유사-실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고양이를 꾸며내는 중에, “마치” 그 고양이가 실제로 또는 진

정으로 거기 있는 것”처럼”, 나는 그 고양이의 색을 바꿀 수 있고,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그 고양이가 움직이는

것을 꾸며내거나 할 수 있다.

5. 허구적 상, “허구”(fiction)나 “허상”(fictum)을 논할 때에, 허구적인 것에 반 되는 것은 “유사-실재”와

조하여 “실재”(real)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실적”(factual) 또한 매력적이나, 이 표현은 현상학에서는 “형상

적”(eidetic)과 조되기 위해 남겨 두어야 한다. 위의 제사(題詞)에서 나타나듯이, “비(非)-“(non-)를 수식어로 쓰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진정한"(serious)이 부분의 맥락에서 잘 들어맞는 것 같다.

6. 전통적으로 심리학과에서, 그리고 일상 영어에서, 상상은 여타 심적 능력에 속하는 하나의 심적 능력

또는 기능으로 간주되었으며, 실로, 감각, 기억, 판단, 정서, 의지 등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여기

에 있는, 그리고 나의 스승 케언스의 강의에서 뽑은 위의 구절에 있는 논제에 따르면, 저것은 잘못이며, 진지한

지향하기의 모든 유형에 상응하여 허구적 판본이 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나는 마릴린 먼로가 나의 고등학교 신입생 축제에서 나의 데이트 상 였다고 가장할 수 있다. 즉 말하자면, 내가 실제로, 또는 더 나은 말로는,

진정으로 상기할 수 없는 무엇을 내가 허구적으로 상기한다는 것이다.

7. 이 논제를 지지하기 위해 나는 꾸며내기와 꾸며내진- 로의- 상의 종류의 예시를 몇 가지 기술하겠다.

그리고 이 설명의 청자나 독자가 나의 기술을 검증하려는 시도를 하도록 장려하겠다. 그러므로 방법론적으로

나는 반성적 분석을 요구하며, 거기에 더하여, 전문용어로 “현상학적-심리학적 판단중지(epochē), 환원, 순수화”

라고 불리는 것에 내 청자나 독자가 의지할 것을 요구한다. 단순히 말하자면, 예를 들어 우리는 광자, 음파, 뇌

신경학적 과정 등을 믿을 수 있으며, 이들이 적어도 감각적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들을 믿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다양한 유형의 꾸며내기 또는 가장하기 그리고 그것의 허구적 또는 유사-실재적 상관자에 가장 효과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러한 구성요소들로부터 잠정적으로 추상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다.

8. 감각. 현재 목적을 위하여, 다섯 가지 감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인간은 “시각적 동물”

이므로 우리는 시각으로부터 시작하되, 보는 능력보다는 지향적 과정 즉 보기에 초점을 맞추겠다. 많은 사람들은 모든 가장하기가 시각적 꾸며내기의 문제라고 생각하나, 이는 큰 실수다. 우리가 앉아있는 책상 건너편의

책 위에 고양이가 서 있는 것을 시각적으로 꾸며낼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꾸며내진 것을 “시각적 상”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럴 정도로 무지하지 않다. 꾸며내진 것은 무엇을 재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 나는 그것을 허구적, 가장된, 또는 유사-실재적 사물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7 가령, 경멸하는 상사로 가장하는 경우가 그렇듯이, 때로 “꾸며내기”와 “가장하기” 둘 다 속이려는 의도를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의도를 가진 의미는 배제된다. Dorion Cairns, 「지각하기, 기억하기, 상-알아차림, 꾸며내는 알아차림」 (Perceiving, Remembering, Image-Awareness, Feigning Awareness), 『현상학: 계승과 비판: 도리온 케언스 기념 소론집 』 (Phenomenology: Continuation and Criticism: Essays in Memory of Dorion Cairns), (F. Kersten and R. Zaner 편집, The Hague: Martinus Nijhoff, 1973에서 이러한 속이지 않는 의미에서의 “꾸며내기”가�어떤 사전은 이러한 의미를 고어(古語)로 본다�형용사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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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그것이 다른 무엇을 신하지 않음을 인지하겠다. 고양이가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꾸며내고서, 우리가

그 고양이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가장할 때, 그 고양이의 꾸며낸 크기는 변하지 않지만, 그 고양이의 꾸며내진 로의 현출은 커졌다가 작아진다는 점은 아마도 흥미로운 점일 것이다. 그러면 시각적 상만이 아니라 그것의 시각적 현출도 꾸며낼 수 있는가?

9. 듣기. 다음으로는 가르랑거리는 허구적 고양이를 꾸며낸다고 가정하자. 이제 우리는 “청각적 꾸며내기”

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아마도 눈을 감으면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앞뒤로 몸을 기울인다고 가장할 수

있다. 그러면 가르랑 소리 자체는 커졌다 작아지지 않지만 커졌다 작아지는 허구적 청각적 현출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어쩌면 사정은 고양이의 꾸며내진 냄새의 경우도 비슷할 것이다. 미각과 촉각에 관해서라면, 접촉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가 어떤 냄새가 나는지 말하는 것이 어렵듯, 고양이가 어떤 맛이 나는지도

말하기 어려움을 발견한다. 그러나 내가 고양이의 털이 복슬복슬한 등을 쓰다듬는다고 촉각적으로 가장한다면,

나는 곧바로 허구적 촉감을 꾸며낼 수 있다. 허구적 소리와 허구적 촉감은 허구적 시각과 명확하게 다르며, 그러므로 모든 꾸며내기가 시각적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다.

10. 상기하기. 보기, 듣기, 냄새 맡기, 맛보기, 만지기를 지각하기의 유형이라고 부른다면, 과거의 허구적

피지각자만이 아니라 또한 꾸며내진 과거의 지각하기에 한 허구적 상기하기를 인지하기가 더욱 쉬울 것이다. 가령 내가 이미 언급했던, 축제 때의 꾸며내진 데이트 상 에 한 꾸며내진 보기가 그렇다. 오늘 나는 나의 허구적 데이트 상 에 한 나의 기쁨을 상기한다고 가장할 수 있다.

11. 예상하기. 우리 부분에게 허구적 상기하기보다는, 미래의 과정 및 거기에서 허구적으로 지향된 것

을 꾸며내기가 더욱 빈번할 것이다. 다음 식사의 어떤 메뉴의 맛을 예상적으로 꾸며낼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것은 레스토랑에서 결정하는 동안, 그리고 또 꾸며내진 미래의 맛보기를 하는 동안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지각하기처럼 상기하기와 예상하기의 진정한 유형에 한 허구적 판본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앞서 언급한 오감과 관련하여 더 세분화될 수 있지 않은가?

12. 반성하기. 이제 또, 반성하기 또는, 더 나은 말로, “지향적 과정에 한 진정한 반성적 지각하기”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은 감각적이 아니다. 이는 과거와 미래의 진정한 또는 허구적 지각하기의 경우에 이미 지적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비감각적 지각하기가 있다. [이미] 표명한 것으로 아마도, 감각 및 그것에

한 반성과 결부된 진정한 지향적 과정에 상응하는 다양한 유형의 꾸며내기에 한 반성적 관찰 및 분석을 독

려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지향적 과정을 허구적으로 지각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은가?

13. 심적 삶은 지각하기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함한다. 비재현적 또는, 더 나은 말로, “현전적 지향적 과정”(presentational intentive process), 예를 들어 지각하기, 상기하기, 예상하기를 청자나 독자가 스스로 살펴보고 그리하여 문제되는 사태가 어떠한지 통찰해 보는 것을 독려하도록 위에서 충분히 질문을 던졌다면, 이제 다음으

로 “재현적 경험하기”(representational experiencing)를 고찰할 수 있겠다. 그것은 암시(indication), 그림, 텍스트와 관계될 수 있다. 전통적 심리학 분과에서는, 여기에 결부되는 능력 또는 능력들에 한 전통적 명칭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세 유형에 결부된 지향적 과정은 두 층을 가진다.

14. 암시적 경험하기. 누군가가 얼굴을 찡그린 것을 본 것을 근거로, 그 타자 안에서 지향적 과정을 부

지각(apperceive)할 수 있다. 보이는 얼굴의 배치와 지향적 과정 사이에 유사성이 없기 때문에, 체험은 “암시적”(indicational)이다. 즉, 찡그림이 반감을 암시한다. 지금의 분석의 일반적 목적을 위해서는 간단히, 찡그림을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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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내고 또 그와 함께 그것이 타자 안에서 암시하는 것을 꾸며내는 일이 가능한지 어떤지를 물어볼 수 있다.

15. 상적(象的) 경험하기. 재현과 재현된 것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면, “상적 재현적 경험하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표현을 엄 하게 시각적인 경우만 지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음반에서나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타자의 목소리 뒤의 감정을 부 현적적으로(appresentatively) 경험하는 경우가 예가 된다. 그러면, 진정한 경우에 일어나는 것과 정확히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묘사하는” 소리를 쉽

게 꾸며낼 수 있지 않은가?

16. 언어적 경험하기. 그리고 또, 우리는 타자로부터 “언어적 표현”을 경험한다. 때로 우리는 진정으로 소리 듣기, 표식이나 몸짓 신호를 보기, 점자의 경우라면 돌출된 점을 만지기를 기반으로 하여 타자의 사고하기를 경험한다. 이러한 유형의 재현은 진정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꾸며낼 수도 있지 않은가? 특히 언어적

표현에 해서라면, 그것이 어떻게 사고하기를 지시하는지, 소리, 표식, 몸짓 신호, 점자가 어떻게 생산되는지가

한 가지 문제이고, 표현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즉 명명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17. 허구적인 그리고 진정한 재현적, 현전적 경험하기에 해 이제 예비적으로 충분히 논했다고 해도, 현상학자들이 “정립”(positionality)이라고 부르는 것의 허구적 유형과 진정한 유형은 더 분석되어야 한다.

18. 믿기. 개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흔히, 전통적 심리학 분과에서 “판단”은 주로 믿기의 문제이다. 우리는 명제와 증언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초점은 상을 “믿기” 에 있다. 체로 우리는 진정으로, 또한 긍정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가령 달이 치즈로 되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불신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를 허구적으로 불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허구적 형식과 진정한 형식

의 믿기를 인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믿기의 그러한 유형에 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믿기 구성요소를 한편으로는 현전적, 재현적 경험하기와 구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형식의 정립하기(positing)와 구별하기를 요구한다. 이 탐구의 일반적 논제와 관련하여, 또 다시 상상은 판단이나 믿음과 동등한 능력이 아니다.

진정한 경험하기에 평행하는 허구적 경험하기와 재현하기가 있듯이, 진정한 믿기에 평행하는 허구적 믿기가

있다.

19. 정서. 강의에서 케언스는 옆집 아가씨의 예를 사용했다.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녀를

사랑한다고 가장할 수 있는가? 이것은 허구적인 종류의 긍정적 정서일 것이다. 불편한 일이겠지만, 또한 예를

들어 자기 어머니를 미워한다고 가장할 수는 없는가?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부정적 정서적 과정 외에도, 가령

정치적 후보에 해 무관심하기를 가장할 수는 없는가?

20. 의욕. 정서나 믿음만이 아니라 의지에 해서도 허구적이거나 진정한 긍정적, 부정적, 중립적 형식이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설거지를 추구하고, 쓰레기 태우기를 추구할 수 있다. 전자는 깨끗한 접시를 긍정적으로 의지하기이고 후자는 소실된 쓰레기를 부정적으로 의지하기이다. 이 사례들이 진정한 의지하기라면, 이제

이들에 한 허구적 판본을, 어쩌면 조적으로, 더러운 접시를 부수고 쓰레기를 씻는다고 가장하면서 꾸며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다시, 케언스의 강의에서 내가 상기하는 다른 예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운동이

있다. 여기에서는 의지적으로 중립적이 될 수 있고, 행성의 운동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추구하지 않을 수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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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 분석은 더 진행될 수 있다. 아마도 의지하기와 관련해서는 허구적 목적과 수단에서 시작하고, 가치평가하기와 관계해서는 허구적 내재적 및 외재적 가치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위 상상이라는 것이 감각, 믿음, 정서, 의지와 동위의 능력이 아니라, 지각하기, 믿기, 느끼기, 의지하기에 평행하는 허구적 판본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논의를 제공한 것 같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반성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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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그러함으로부터 하면 좋음, 해야 함을 도출하기

1. “하면 좋음”(ought), 즉 규범 또는, 더 나은 말로는, 가치평가적 명제(evaluational proposition)를 “그러함”(is),

즉 이론적 또는, 더 나은 말로는, 인지적 명제(cognitional proposition)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

다는 것은 이제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출의 문제에 바쳐진 많은 노력들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희미하게 보았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도출가능성은 직접적으로 논리적인 것과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2.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이 이러한 종류의 명제들을 어떻게 구별했는지는 널리 제 로 인식되지

못한 것 같다. 이어지는 소론에서, 규범 또는 가치평가적 명제에 한 그의 설명을 우선 “해야 함”(shall), 즉 명령, 또는 더 나은 말로는, 의지적 명제(volitional proposition)라고 불리는 것에 한 설명으로 보충하겠다. 그 다음엔 선술어적(prepredicative) 의식적 삶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명제로부터 가치평가적 명제의 도출, 다음으로는 의지적 명제의 도출의 정당화를 반성적-분석적 방식으로 탐구할 것이다.

3. 지속적 예시를 드는 것이 유용하겠다. 몇 년 전 필자는 가능하다면 언제나 한 층계참까지, 또는 두 층계참까지 걸어 오르는 것이 심장의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는 기사에 설득되었다. 후에, 자주 걸어 오르는 것이 승강기를 타는 것의 안이 되며, 특히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이는 전기를 절약해 주고 엘리베이터의 수리

및 교체의 필요를 감소시킨다는 생각, 즉 자원을 보존해 준다는 생각이 그에게 떠올랐다. 건강적 이점에다 그

러한 환경적 이점에도 설득되어 그는 할법하다면 언제나 계단을 이용하는 버릇을 들이기를 추구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선호와 선택, 그리고 이들이 예시하는 형상(eidos)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

4. 『논리연구』(1900)의 「순수 논리학을 위한 서설」의 제 2장에서 후설의 설명이 강변하는 바는, 여기에서 가치평가적 명제라고 불리는 것, 예를 들어

계단을 이용하면 좋다

라는 것은 인지적 명제, 예를 들어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라는 것과 동등하다는 것이다.

5. 전통적으로 가치판단이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후자는 예를 들어

토마스는 계단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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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명제만큼이나 인지적 명제다.

6. 후자의 경우, 전체 즉 “토마스”는 주어항을 통해 포착되었고 부분,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의 어떤 활동은 술어항을 통해 포착되었으며 주어에 해 진술되었다. 가치판단의 독특한 점은 가치가 진술된다는 것, 즉

긍정되거나 부인된다는 것이다.

7. 「서설」의 자구는 넘어서되 후설의 정신은 넘어서지 않도록 한다면, “인지적 명제” 및 “가치평가적 명

제”와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의지적 명제”라고 부는 것이 가장 좋을 명제, 예를 들어

너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도 유사하게 분석될 수 있다. 언어적으로, “하면 좋음”은 흔히 통상적 영어에서 그저 조언을 표현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지 않고, 명령을 간접적이고 예의 바르게 표현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명확성을 위하여, 화자

안의 가치평가보다는 의지하기를 암시하는 표현을 만들 때에는 엄 하게 “해야 함”을 사용할 수 있다. 행위가,

그러므로 의지가 논의될 때 배경적 가치평가에 한 언급을 듣는 일은 드물지 않다. 우리가 좋은 것을 엄 하

게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기 때문에 올바른 것이 된 올바른 목적을 추구한다.

8. 토마스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의 인지적인 등가 명제는, 아마도 어색하겠지만,

토마스의 계단 이용하기는 유용하다

이다.

9. 이러한 정식화는 어색하게 생각될 것이다. 독자는 곧장 “무엇을 위해, 그리고/또는 누구를 위해?”라는

물음으로 이끌리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좋다”는, 말하자면 “유용하다”만큼은 그리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좋다”가 더욱 친숙하기 때문, 또는 “좋다”는 즉각 정립 성격을, 즉 내재적 가치를 지닌 사태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지로는 외재적 가치를 지닌 사태를 지칭한다. 우리는 내재적, 외재적 가치만큼

이나 내재적, 외재적 유용성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사용이 친숙하지 않고 그래서 어색하더라도 그렇다.

10. “그러함” 또는 인지적 명제, 즉 “S는 p이다”라는 형식의 명제는 시험해볼 수 있다. 그래서, 사태가 암시된 로일 때 그리고 오직 그 때에만, 예를 들어 토마스의 계단 이용하기가 건강 및 행성의 보존을 위해서일

때 그리고 오직 그 때에만, 저 주장이 참이다. 아마도 이러한 숙고를 통해서 또한 “인지적 명제”라는 표현이 더

욱 매력적이 될 것이다. 가치평가적 규범과 의지적 명령의 인지적 등가 명제는 오직 인지적일 뿐이지만, 가치평가적 규범과 의지적 명령은 그렇지 않다. 규범은 수용되거나 거절됨에 따라서, 명령은 복종되거나 그렇지 않음에 따라서 사건의 진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11. 후설이 하면 좋음에 해 당 사각형을 구상했듯이, 해야 함에 해서도 구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러나 도출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언어적인 수준 아래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출발점으로는 보편 긍정 형식과 특수 긍정 형식의 명제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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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의식삶이 언제나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의식삶이 언제나 진술을 포함하

는지, 또는 심지어 사고하기를 포함하는지는 필자에게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친구 토마스가 일과적으로 승강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제적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삶 속의 사례처럼,

타자의 삶 속의 사례에서 반성을 시작할 수도 있다) 경험자가 어떤 상황에 들어설 때, 가령 사무용 건물에 들어설 때,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모두 높은 층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상 적

으로 높은 층으로, 가령 세 층 또는 그 이상의 층으로 이끌리는 경우를 제쳐둔다면, 계단 이용하기에 결부된 것은 무엇인가?

13. 계단 마주침 승강기 마주침은 노에마적으로, 즉 마주쳐진- 로의-마주쳐진-선택지에 해 진정으로나 허구적으로 반성될 수 있는 사안이다. 또한 노에시스적으로는 지향적인 것으로서의 계단/승강기 선택지 마

주치기가 있다. 나중에는 돌아와야 할 것이지만, 이 시점에서는 이 마주침이 Akt[작용]인지, 또는 더 나은 말로는, 내가 관여하는 작동(operation)인지, 아니면 이차적 수동성인지, 또는 더 나은 말로는, 습성적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네 가지 상관적인 노에시스적, 노에마적 층은 어쨌든 반성적으로 관찰되고 문제시되는 그 마주침

속에서 추상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 그것은 경험, 믿음, 가치평가, 의욕이다.

13. 승강기-계단 선택지를 마주치는 알아차림, 또는 더 나은 말로는, 경험하기는 감각적 지각이다. 감각적

지각하기 및 지각된 로의 상에 한 현상학을 여기에서 복송할 필요는 거의 없다. 믿기와 믿어진 로의

상은 조금 더 흥미롭다. 반 상황을 향하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부재하므로, 감각적으로 지각된 것은 긍정적

확실성을 가지고 믿어진다. 부분의 경우, 경험자는 승강기와 계단을 1층으로부터, 지각 상의 비현전적이지

만(non-presented) 부 현전되는(appresented) 부분 즉 건물의 다른 층으로 이끄는 것으로 지각한다. 이는 건물에 앞으로부터 접근할 때 건물이 다른 면을 부 현전하는 것으로 지각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시에, 승강기와 계단은 다른 층으로, 그러므로 건물 내의 여러 복도와 방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즉 그리로 가는 길이라고 믿어진다.

14. 엄 하게 말해서, “승강기”, “계단”, “층계”, “건물”, “층”, “복도”, “방”과 같은 표현은, 감각적 지각하기의

추상적 층 내에 있는 마주쳐진 것으로서의 마주쳐진 것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기능적인, 유용한, 또는 가장 좋은 말로는, 실천적인 문화적 상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엄 히 말하자면, 이것은

의지하기 층을 지시하며, 이 층은 현재 분석에서는 지금까지 추상되어있던 것에 속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이상, 혼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면, 순수하게 감각적으로 지각된 것으로서의 객

체에 해서는 색, 형태, 냄새, 소리, 재질 등만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15. 여기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어떤 사람이, 아마도 기술자와 의사로부터의 전문적 조언에

한 신뢰를 통해, 승강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것이 환경과 건강에 좋은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때는] 시공간적인 것을 넘어서서, 그 사람이 자기가 가려는 층, 복도, 방으로 가는 길로

서의 승강기/층계 선택지와 마주치게 되는 건물이라는 복합적 감각적 상에 한 인과적 규정까지 포함하게

될 뿐 아니라, 그 마주치기가 일어나는 그 사람이라는 유기체에 끼치는 효과도 있다. 더 나아가, 건물 안에서

한두 층을 오르기 위하여 승강기를 타는 사람의 수가 몇 년에 걸쳐 줄어든다면 승강기는 에너지를 덜 필요로

하고 더 오래 갈 것이라는 점을 믿기를 위해서 감각적 지각하기를 넘어서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같은 것이 같은 상황에서 심장에도 적용된다는 점은 필연적인 것 같다. 이 논의로도 이후에 돌아올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우리는 지각하고 있는 것 이상을 믿을 수 있다고 지적해 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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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가치평가로 돌아가 보자. 즉 승강기/층계 선택지와 마주치기의 노에시스 및 상관적 노에마 속에서 반

성적, 추상적으로 관찰 가능한 가치평가하기와 가치 구성요소로 돌아가 보자. 그러면 층계는 1층에서 2층 또는

3층에 이르는 더 선호되는 길이다. 달리 말하자면,

계단이 승강기보다 더 좋다.

17. [위에서] 떠올랐던 “누구에게?”라는 질문은, 위에서 암묵적으로 가정되었던 비반성적 태도에서는 어색할 수 있다. 반면에 그 질문은 여기에서는 유용하며, 언급된 믿음을 근거로 반성적으로 답될 수 있다. “지구에, 그리고 토마스에게.” 적어도 그는 승강기보다 계단을 선호하며, 그는 더 건강한 지구와 심장을 높게 가치평

가하기 때문에 그리한다. 더 잘 표현하자면, 더 건강한 심장과 지구는 긍정적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가능하다면 언제나 한두 층은 계단을 오르는 것은 승강기를 타는 것보다, 심장 및 지구와의 관계에서 더 높은 긍정적 외재적 가치를 가진다.

18. 추상적으로 관찰 가능한 의욕적 층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유용성”이라는 단어는 “가치”와 유사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 경우, 수단은 목적, 목표, 또는 내재적 유용성을 지닌 상과의 관계에서 외재적 유용성을

가진 상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더 건강한 심장과 지구와 같은 어떤 항목은 그것들 자신을 위해서 의지되며,

승강기나 층계와 같은 다른 항목들의 유용성은 첫 번째 종류의 항목들을 위해서, 즉 목표 또는 목적, 상관적 내재적 유용성을 지닌 항목들을 위해서 의지된다. 의지하기와 의지된- 로의-의지된-것 그리고 가치평가하기와

가치평가된- 로의-가치평가된-것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은 종종 이들을 혼동하게끔 한다. 그러나 세심한 반성과 용어사용을 통해 이들은 구별될 수 있다. (마주쳐진 로의 상 내에 내재적 믿음 성격과 외재적 믿음 성격이 있는지 여부, 즉 그것 자체를 위해 믿어지는 상과 그것 자체를 위해 믿어지는 상을 위해 믿어지는

상이(가령, 결과와 원인 또는 그 반 ) 있는지 여부에 한 흥미로운 문제를 여기에서는 추적할 필요는 없다.)

19. 외재적 유용성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일 수 있으며 다중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계단을(또는 승강기를) 이용하기는 건물에 들어서는 사람에게는 건물의 어떤 층으로 가는 직접적 수단이고, 복도는 간접적 수단이며, 목표가 방에 있는 어떤 사람을 방문하는 것이라면, 이동의 목표인 방은 또 다른 간접적 수단이다. 그러나

방문자의 건강과 지구 또한 목표다. 인간의 궁극적 목표의 문제를 여기에서 추적할 필요는 없다. 층계도 복도

로 가는 수단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고, 그러면 복도는 직접적 목표이다. 그러나 그러면 상 적 목표와 궁극적

목표를 구별하고, 행위의 범위에 한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즉 그 사람이 복도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지, 또는 방에 가기 위해, 또는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의지하기 및 그 안에서 구성된 목적 유용성과 수단 유용성이 아니라, 가치평가하기 및 내재적, 외재적 가치에 해서도 유사한

구별을 할 수 있다.

20. 어떤 태도 변경을―여기에서 이것을 탐구할 필요는 없다―통해, 비술어적 삶이 명제를 생겨나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상, 그리고 형태나 생명 활동과 같은 상의 자연주의적 규정을 믿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근원적 종류의 인지적 명제일 수 있다. 또는 그것은 가치평가적 명제, 예를 들어,

토마스는 계단을 이용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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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수 있다. 또는 의욕적 명제, 예를 들어

토마스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일 수 있다.

21. 이들은 마주치기들과 태도들을 지시하는데, 이들 안에서는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가 돌아가면서 주되다. 특히 “해야 함”은,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사태의 창조, 파괴, 촉진, 저해, 보존, 보호, 또는 적어도 어떤 변화를 목표로 한다.

22. 해야 함도 하면 좋음도, 토마스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타인이 토마스에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주어 명사를 “우리”(one) 등의 명사로 바꿀 수 있다, 등등. 위에서 보였듯이, 가치평가적 명제와 의지적 명제는 시험해볼 수 있는 인지적 등가 명제를 가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명제들이 어떻게 본래적 형식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로부터 시선을 떼어 놓아서는 안 된다. 그 본래적 형식은, 가치평가하기와 의

지하기가 주된, 또한 지식을 목표로 하지 않고 각각 사건의 경과와 복종에 영향을 끼치기를 목표로 하는, 상과의 선술어적 마주치기로부터 생겨난다.

23. 상과의 구체적 마주치기가 경험하기,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욕이라는 추상적 구성요소로 노에시스적-노에마적으로 분석되었을 때, 심리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및 여타 문화 과학자들은 원인과 목적을 통한 설

명을 탐색하려는 데에 더 이끌릴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정당화의 물음을 추구하는 데에 이끌릴 것이다.

그러므로 방, 복도, 층계, 승강기 등이 있는 건물을 믿기는 같은 건물, 그리고 유사한 건물에 한 이전의 지각

및 현재 지각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다. 유사하게, 한 선택지를 의지하기는 선호적 가치평가하기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그것은 정초된 것 그리고 동기부여된 것으로서 반성적으로 명증화된다. 예를 들어, 병보다는 건

강을 의지하기는, 병보다는 건강을 높이 가치평가하기에 의해 정당화된다.

24. 그러나, 믿기가 가치평가하기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제안에 부분의 철학자들은 아마도 저항할 것이다. 아마도 이는, 가치 및 가치체계가 믿음 및 믿음체계보다 훨씬 더 다양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며, 이러한 견해는 과학에 한 강조 및 종교적 믿음과 상식적 믿음 체계의 엄청난 다양성에 한 무지가 빚어냈을 것이다.

여기는 정당화에 한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할 곳이 아니며, 가설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강기보다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실제로 심장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엄 하게 과학적으로 밝혀진다면, 이를 학습한 부분의 사람들은 승강기를 더 자주 이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의지하기가 새롭고 더 잘 정당화된 믿기에 의해 정당화된 가치평가하기에 의해 정당

화되었다고 인정할지도 모른다.

25. 승강기 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심장과 환경의 건강으로 이끈다는 것을 믿기가, 그러한 효과에

한 내재적 가치평가하기를 정당화하고, 그래서 층계 선호에 한 외재적 가치평가하기를 정당화한다면, 그리고 정당화된 가치평가하기가 의지하기를 정당화한다면, 의지하기의 정당화가 정당화된 가치평가하기로부터

직접적으로, 믿기로부터 간접적으로, 궁극적으로는 관계된 유형의 의식, 즉 명증화하기(evidencing)로부터 도출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주된 것인 마주침으로부터 인지적 명제가 생겨남과 마찬가지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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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기와 가치평가하기가 주된 것인 상 마주치기로부터 의지적 명제와 가치평가적 명제가 생겨난다면, 비

(非)술어적 심적 삶에 한 반성을 통해, 해야 함과 하면 좋음이 그러함으로부터 도출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을 주로 응용 논리학으로 보는 철학적 경향 속에서, 가치평가적 명제와 의욕적 명제를 인지적 명제로부터 그저 논리적으로 도출하려는 시도의 동기가 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가능성에 한 모호한 감각이었을 것이다.

26. 진리는 정당화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건강”이라는 단어는 가치 내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 내포는 추상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의지적인 것으로서의 선택이 가치평가적인 것으로서의 선호와 구별될 수 있다는 점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실권자가 종종 “하면 좋음”을 사용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내리고 있고 그러므로 “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은 거듭 말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작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은 수행하기에 우리가 자아로서 관여할 수 있는 반면에, 심적 삶의 훨씬 많은 부분은 개인에서는 습성적이고 집단에서는 전통적이다. 그러므로 후설이 “이차적 수동성”이라고 부른 것을 변화시켜서 그것이 더 잘 정당화되게끔, 즉 문화가 더 정당화되거나 합리적이 되게끔 하려는 노력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계단 이용하기가 좋으며 또한 유용하다고, 그러므로 올바르게 좋으며/좋거나 유용하다고 말함으로써 그러

한 주장 뒤에 정당화가 있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 또는 “하면 좋음”이 종종 이것도 내포한다는 점을 첨언할 수 있겠다.

*

* *

27. 요컨 , 하면 좋음과 해야 함이 그러함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명제들은 정당화된 믿기로부터 현상학적으로 도출된 정당화된 가치평가하기와 의지하기를 암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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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규범의 정당화를 반성적으로 분석하기

서론

1. 「순수 논리학을 위한 서설」 (Logische Untersuchungen [1900])에서 후설(Edmund Husserl)은 규범이 무엇인지에 해 상당히 기억할 만한 분석과 예시를 제공한다. (이 분석과 친숙하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가장 유관한

구절에 한 번역이 이 소론의 부록 1에 있다.) “전사는 용감해야 한다”는 “용감한 전사는 좋다”와 동등하다. 명백하게도, 이는 규범을 가치 판단으로 변형시킨다. 후설은 이러한 동등성을 곧바른 태도에서 표현할 뿐이다. 즉,

규범이 어떻게 구성되고 정당화되는지는 분석하고 기술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설명과 관계된 그러한 반성적 분석을 다른 후설 생전의 출간물에서는 보지 못했으며, 그의 유고로부터 편집된 저작에서 그러한 분석이 나

타난다 해도, 나는 그것과도 친숙하지 않다. 어쨌든, 본 설명은 후설의 텍스트에 한 해석이 아니라, 성숙한 후설식(式)의 약간의 구성적 현상학을 하려는 짧은 시도, 즉 반성적 분석이다.

2. 아래 첫째 부분에서 나는 후설의 예시를 생생하게 발전시키려 시도한다. 둘째 부분에서 나는 후설의 명제의 순수하게 가능한 지시체를, 그러한 사례가 구성되는 마주치기(encountering)의 구성요소로 가는 실마리로

삼는다. 그리고 셋째 부분에서 나는 어떻게 규범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짧게 고찰한다.

총격전에서 행동하기 3. 현재 분석의 청자나 독자가 전투를 해 본 적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다음과 같은 상황에 한

짤막한 뉴스나 허구적 영화적 묘사를 보았거나, 그러한 상황을 가능성으로서 쉽게 꾸며낼 수는 있을 것 같다.

총격전에서는 서로의 사정거리 안에 있는 두 전사 집단이 있다. 이들은 소총을 쏘며, 바위나 나무와 같은 사물

뒤에 숨는다. 각 집단의 구성원들은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을 죽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동기는 적어도 “죽거나 죽임 당하거나”라는 것이다. 소총을 효과적으로 조준하고 발사하기 위하여, 전사는 자신의 머리의 일부를

노출해야 하며, 그러므로 자신이 피격될 위험부담을 져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용감하다. 자신의 머리를 낮추고서 쏘지 않거나, 소총을 조준하지 않고 쏘는 것은 비겁하다. 처음으로 총격전을 하는 전사의 경우라면, 또

는 어떤 유형의 물리적 또는 심적 부상을 입고 있다면 겉보기의 비겁함은 이해되고 용서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하고 숙련된 전사의 경우에 무엇이 용감한 것이며 무엇이 비겁한 것인지는 명확하다.

4. 이러한 예를 참조한다는 것은, 명제들이 형성되고 연결되는 심적 삶의 층 아래의 사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지칭된 사태의 관계된 유형도 함께 지향된다. 이 유형은 명확화되지 않은 보편적 본질 또는 형

상(eidē)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예는 암묵적인 일반적 영향력을 가진다. 자유 상상 변경(free-phantasy variation)을

통해, 이전에 모호하게 주어졌던 형상은 더욱 명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는 충분히 명확한 것 같다. 전사의 용감함(비겁함)의 그러한 예시와 마주치기를 근거로 하여, “전사는 용감해야 한다”

와 “용감한 전사는 좋다”라는 명제를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들의 동등성을 정립할 수 있다. (“전사는

비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비겁한 전사는 나쁘다”도 정식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후로 이 상설에서는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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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가치평가를 우선시할 것이다.)

5. “용감한 전사는 좋다”라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전사 및 용감하다고 간주되는 종류의

행동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숨기, 쏘기, 피격되기는 전사의 행동이며, 잘 조준하고 쏘기 위하여 적의 총격에

자신을 노출시키기는 용감한 전사의 행동이다. 어떤 전사에 해 용감함이 긍정될 수 있다. 그러면 “용감한 전사”라고 불리는 주어가 그것에 해 진술되는 객관화된 긍정적 가치 또는 “좋음”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알아보

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의 명제와 “전사는 용감해야 한다”라는 명제―이 명제는 같은 사태를 지칭하며 등가적이지만, 첫 번째 명제와 동일하지는 않다―의 등가성 또한 알아보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후설은 이 사태를 더 추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6. 물론, 내용을 추상하고 명제적 형식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S가 p이거나, p를 하거나, p를 가지

면 좋다”는 “p이거나, p를 하거나, p를 가진 S는 좋다”와 동등하다. 이 조합의 첫 번째 명제는 규범의 형식이며,

적어도 많은 영어권 철학에서는 종종 “하면 좋음”(ought)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타자 그리고/또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추천이며, 명령, 지시 또는 “해야 함”, 가령 “그 는 용감해야 하도다!” 같은 것이 아니다. 통상적 어법에서 이들이 때로 혼동되더라도 말이다. 이 경우 실제로 명령인 것이 “예의 바르게” 추천으로서 표현

된다.

규범의 구성(constitution)

7. 지금까지 말해진 것은 곧바른 또는 비반성적인 태도에서 말해진 것이다. 즉, 이념적 사태도 실제적인

사태도, 진정한 사태, 아니면 허구적인 사태도, 종합 속 등에서 그것이 어떻게 지향되었는지에 한 참조 없이

방금 기술되었다. 반성을 통해 발견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에드문트 후설이 Erlebnisse[체험]라고(그리고 덧붙여서, 그리고 아마도 더욱 섬세하게, 지향된- 로의-사태라고) 부른 것이다. Erlebnis라는 후설의 표현은

영어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를 들어 “경험”(experience)과 “심적 과정”(mental process)과 심지어 “살아진 경험”(lived experience)으로 번역된다. 후자는 “expérience veçue”를 어색하게 기계적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안적으로 “지향적 과정”(intentive process)과 “마주치기”를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내가 보기에 이 두 표현은 모두, 사고하기와 경험하기뿐 아니라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의 양상도 포괄하기에 더 적합하다.

8. 궁극적으로 사뮤엘 알렉산더(Samuel Alexander)를 따라서, 나는 “-하기”(-ing) 단어와 “-됨”, “-해짐”(-ed) 단어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 마주치기뿐 아니라, 총격전을 하는 전사들을 포함하는 마주쳐진- 로의 사태도, 반

성을 통해서 진정으로 또는 허구적으로 관찰하고 그 후 분석하고 기술할 수 있는 사람은 현상학자만이 아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후설이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이라고 부른 것을 실행할 수 있다. 노에마(noema)와 관련해서라면, 주어짐의 방식으로서, 가치로서, 유용성으로서의 그러한 사태들이 식별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전적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노에시스(noesis)에 초점을 맞추겠다.

9. 사태의 구성(constitution)을 분석하기 위해서, 마주쳐진(또는 지향된) 순수하게 가능적인 사태를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한 실마리로 삼는다. 그리고 그것에 한 진정한 또는 허구적인 마주치기에 해 반성한다. 후설이 제공한 명제를 실마리로 삼는다면, 상관적 사고하기와 판단하기에 한 반성적 분석으로 이끌릴 것이다. 이보다 더 나은 것은, 명제가 가령 총격전 중인 전사를 지칭할 수 있는 경우를 실마리로 삼는 것이

다. 그러면 적어도, 반성적으로 꾸며내진, 용감한(또는 비겁한) 전사와의 마주치기의 사례가 있다. 그녀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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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거기서 보고 있는, 총격전 중인 그녀의 동료 전사는 저 마주치기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아니면, 동료 분

원과 다른 자료―요즘 이러한 자료에는 인공위성 비디오도 있다―에 의한 증언에 의존하는 수상 위원회(또는

군법회의)의 임원이 저것과 간접적으로 마주칠 수도 있다.

10. 나는 지향적 과정에 한 약간 단순화된 분류법이 이러한 분석을 위해서는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8 이러한 분류법에서는 구성요소에 두 가지 유가 있다. 경험하기의 수준에서, 수상 위원회(또는 군법회의)에

의한 직접적 경험하기가 있다. 충격전 중의 동료 분 원에 의한 마주치기는 상 적으로 직접적이고, 실제로 외적으로 지각 가능하다. 부 현전적으로만 그렇다 해도 말이다. (나는 이 경험하기를 “공감”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한다. 너무나 많은 영어권 후설주의자들이 이 단어의 영향을 받아서, 이러한, 내가 선호하는 로 부르자면,

“타자-경험하기”를 경험적 과정이라기보다는 지배적으로 가치평가적인 과정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는 것을 내

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사는 자기-경험하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마주치며, 실로 현전적으로 그렇게

한다.

11. Erlebnis[체험] 속에서 식별가능한 구성요소의 두 번째 종류는 테시스적(thetic) 또는 정립적인(positional)

것이다. 바라기(wishing)의 문제를 제쳐둔다면, 세 가지 종이 있는데,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한 정립하기와 경험하기가 Akte[작용]일 수 있는 만큼이나 일차적,

이차적으로 수동적일 수 있다는 점도 현재 목적을 위해서는 무시될 수 있다.) 믿기에 관해서는 난점이 없는 것

같다. 동료 분 원이 자기 소총을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목격되었다면, 그녀는 용감하다. (다른

방식이라면, 그녀는 비겁하다.) 여기에서는 목격하기가 일단 그것을 믿기를 정당화하며, 그래서 Evidenz[명증]이

다. 나는 그것을 “명증화하기”(evidencing)라고 옮기기를 선호한다. 일상적, 법적 영어에서sms “증거”(evidence)가

지향적 과정이 아닌 것을 의미하는 일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후설은 어디선가 “Evidenz ist Erlebnis”[명증화하기는 체험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후설에게 Evidenz는 가령, 피고의 지문이 묻어 있는 칼과 거기

남아 있는 희생자의 피가 아니고,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연구소 기술자가 가진, 그것을 보는 체험이라는 것이

다.

12. 분석되고 있는 이 사례에는 의지하기 구성요소도 있다. 그 전사는 용감하게 행위하기를 스스로 의지할 수 있고, 그녀의 분 장이 그녀에게 그러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규범의 구성을 위해 핵심적인 것은

결부되는 가치평가하기이다. 선술어적으로, 전사는 그녀 자신의 용감한 행위를 승인할 수 있고(또는 자신의 비

겁함을 탐탁하지 않게 여길 수도 있고) 그녀의 동료 분 원 및 그녀에게 상을 수여할 위원회도 (또는 군사법정도) 그녀의 행위를 가치 있게 볼(또는 가치 없게 볼) 수 있다. 그녀가 그녀의 용감한(또는 비겁한) 행동에 해

진술되는 좋음(또는 나쁨)를 가질 수 있는지 여부에 중심적인 것은 가치평가하기이다. 다른 말로, 행동의 가치는 가치평가하기에서 구성되며, 그녀의 행동과의 마주치기에서 지배적인 것은 가치평가하기이다.

정당화의 물음

13. 이제, 어떻게 용기(와 비겁)이 선술어적으로(preprecatively) 마주쳐지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게 논했다

면, 이어서 후설의 명제 수준은, 주어를 범주적으로 형성하기, 객관화하기, 좋음과 나쁨을 진술하기를 통해 획

8 부록 2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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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전사의 행동이 좋다고(또는 나쁘다고) 말하고 실로 그런 행동에 참여하라고

(또는 참여하지 말라고) 추천될 수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분석은 아직 정당화의 문제를, 즉 용기가 옳거나 합리적이고 비겁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다루지 않았다.

14. 내가 후설을 이해하는 바로는, 정립하기가 명증화하기에 정초되며 그것에 의해 동기부여될 때 정립하기는 정당화된다. 그것이 직접적 자기-경험하기이든,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타자-경험하기이든, 분석되는 사

례에서 명증화하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경험하기가 있다. 과거의 마주치기에 의해 사람들은 잘 처신하도록 그리고 자기 자신과 타자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치평가하도록 언제나 동기부여된다. 이때, 비판적 검토는 동기부여만을 고찰할 것이 아니라, 또한 가치평가하기 구성요소가 명증화하기에 의해 정초됨을, 그리고 상관적으로, 반성적으로 식별 가능한 가치를, 그리고 가치평가된 사태의 주어짐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헌신적 평화주의

자라면, 타자들이 그녀를 죽이려 할 때조차 당신은 타자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살아있음이 타자들에게

가지는 가치를 높이 평가함은 강한 동기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전사에게는, 적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발포를 할 필요를 명증화하기와는 느슨하게 관계되어 있을 수 있다.

15. 적어도 이러한 맥락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동료 분 원과 수상 위원회(또는 군사법정)의 평가하기가

전사의 행동을 명증화하기를 통해서 동기부여만 된 것이 아니라, 또한 그 명증화하기에 탄탄하게 정초되어 있는 방식이다. 더 구어적으로 말하자면, 이 타자들은 그 상황에서 행동이 어땠는지를 진정으로 또는 허구적으로

“실제로 보기”라는 기반 위에 그들의 가치평가하기를 놓을 수 있다. (판결하는 자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두 번째 규범이 여기에 있다. 이것도 비슷한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을 것 같으나, 여기에서는 추적하지 않

겠다.) 그리고 후설이 「서설」에서 했던 것처럼, 정당화된 그러한 가치평가하기에 바탕을 두고 판결자는 두

종류의 명제 및 또한 그것들 사이의 등가성을 형성하고 표현해 나아갈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전사가 비겁하지 않고 용감하면 좋다는 것은 옳다. 그리고 이제, 하면 좋음이 정당화됨으로써, 구성적 현상학자는 “해야 함”

을, 즉 명령 또는 지시를 탐구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하면 좋음이 어떻게 구성되고 정당화되는지만을

보여주기를 추구했던 짧은 반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16. 요약하자면, 본 분석은 하면 좋음 또는 규범이 가치판단을 함축한다는 점을 후설로부터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의 순수하게 가능적인 지시체를, 그 지시체가 선술어적으로 구성되는 마주치기의 구성요소로 이끄는, 특히 명증화하기와 가치평가하기를 포함하는 구성요소로 이끄는 실마리로 삼아서 나아간다. 그리

고 마지막으로, 부여된 가치가 구성되는 가치평가하기를 명증화하기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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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전사는 용감해야 한다”, 이것은 오히려, 용감한 전사만이 “좋은” 전사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에 담겨있

는 것은, 좋다와 나쁘다라는 술어가 전사라는 개념의 범위를 자기 아래에서 나누므로, 용감하지 않은 전사는

“나쁜” 전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판단이 유효하므로, 전사에게 용감할 것을 요구하는 모든 사람은 이제 옳다. 같은 근거에서, 전사가 용감하다는 것은 또한 소망할 가치, 찬양 받을 가치 등이 있다. 다른 예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즉 이를 중단하는 사람은 더 이상 “좋은” 사람이 아니며,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곧바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연극은 에피소드들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좋은” 연극, “옳은” 예술작품이 아니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또한 우리의 긍정적 가치평가, 긍정적 가치술어의 승인을, 충족되어야 할 조건에 의존시킨다. 이를 충족시키지 않음은, 상응하는 부정적 술어를 자신에게로 끌어 당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음 형식을 같은 것으로, 적어도 등가적인 것으로 정립해야 한다.

“A는 B여야 한다”와 “B가 아닌 A는 나쁜 A이다”, 또는 “B인 A만이 좋은 A이다”. (Edmund Husserl, Logische

Untersuchungen. Erster Band. Prolegomena zur reinen Logik, E. Holenstein (Ed.), Den Haag: Martinus Nijhoff, 1975,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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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열일곱 (?) 지향적 과정 구성요소의 분류 바라는 (?) 반(反)-의지하기 의욕적 중립적 의지하기

정립하기 반(反)-가치평가하기

가치평가적 “무관심” 가치평가하기

반(反)-믿기 독사적 중립성

마주치기 믿기 “사고하기” “언어적” “경험하기” 간접적 그리기 암시하기 지각하기 직접적 기억하기 예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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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반성적 분석을 집필하는

한 가지 방법에 대한 반성적 분석

1. 본 분석 및 관계된 텍스트의 배경 이야기를 재빨리 하겠다. 혹자가 그랬듯이 나 역시, 오늘날 텍스트에

한 학술연구를 하기보다는 실제로 현상학적 탐구에 관여하는 우리 현상학 전통의 동료들이 몹시 드물다는

것이 염려스러워졌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 부분의 현상학자들이 주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 전통에서 이전에 써둔 것에 해서 말하거나 쓰는 것이며, 그때 사용하는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에 한

연구에서 사용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현상학자들”이 현상학자이기나 한 것일까.

2. 이에 응하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단순한 용어로 쓴, 내가 이해하게 된 바 로의 현상학 일반에서의 기본적 접근법에 한 작은 책을 출간했다. 그 접근법은 “반성적 분석”(reflective analysis)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 책에서 이 접근법은 그 책 자신에게도 사용된다. 내 책의 제목은 『반성적 분석』이다. 이 책은 주로 철학을 하는 학부 고학년 및 석사 초기의 학생들을 향한 것이지만, 나는 다른 더 높은 소양

을 가진 사람이나 철학 외의 분과학문의 사람들도 그 책을 읽기를 희망한다.

3. 나의 텍스트를 지도할 기회가 있었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장의 말미에 있는 질문과 도해가 도움이 된다는 점, 그리고 학생들이 단순한 용어법의 의의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기 자신의

반성적 분석을 산출하려고 노력할 때엔―이처럼 그들이 반성적 분석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희망이다―그들이 따라 해 볼 수 있을 더 구체적인 연구를 갈망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육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몇 년에 걸쳐 쓴 반성적 분석들을 이 반성집(集)으로 그러모으게 되었다. 이 반성집 또한 교육에 유용할

것이다.

4. 나는 현상학적 글쓰기를 위한 하나의 장르를 주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글쓰

기는 체로 수치, 텍스트, 인용, 주석 및 여타 학술연구에 유의미한 도구들에 한 참조를 피하며, 신 주로

사태 자체의 권위만을 환기시킨다. 반성적 분석의 저자는 독자가 그 분석을 같은 종류의 사태에 한 그녀 자신의 반성하기를 통해 확인하고, 수정하고, 그리고/또는 확장하기를 요구한다.

5. 더 나아가, 반성적 분석은 가능한 한 단순한 용어법으로 쓰인다. 그리고 그것은 간결하여, 개 3000 단

어 정도의 길이이다. 이 정도 길이의 텍스트는 수업에서 토론하기 전에 학생들이 공부해올 수 있을 뿐 아니라,

학회에서 동료 전문가들에게 약 30분 내로 읽어줄 수도 있다. 그러면 토론 시간을 가지고 다음 1시간 분량의

발표 전에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질 여유도 있을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전문적인 학회에서는 동료들이 질문을 해 줄 것이라고 기 할 수 있겠지만, 교사들에게는

일군의 질문들을 개발하여 미리 배부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이 답을 준비해 올 수 있으며, 그 답으로부터 교실에서 토론을 시작할 수 있다. 내 작은 책에는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교수들이 그들 자신의 교육적 상황에 맞도록 그들 자신의 질문을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학생들은 그들의 스승들이 스스로 준비한 반성적 분석에 감명을 받으므로, 그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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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음으로 나에게 떠오른 착상은, 나의 텍스트를 읽고, 서평하고, 그리고/또는 번역함으로써 나의 텍스트

와 친숙해진 십 수 명의 동료들과 접촉하여,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다른 교과서를 위해 분석들을 작성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동료들 중 몇몇은 현상학적 연구에 관여한다는 이러한 도전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두 동료는 어떻게 진행할지에 한 약간의 제안을 부탁했다. 본 분석은 그러한 요청에 응하기 위한 나의 시도이다. 여기에서 나는 나 자신이 어떻게 반성적 분석을 작성하는지를 기술(記

述)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방식일 뿐이지, 유일한 방식이 아님을 강조하겠다.

8. 1단계―쟁점을 찾아라! 어떤 분과학문에서 잘 준비를 갖춘 사람이라면, 그의 분야에서 생겨나는, 반성할 만한 쟁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사회적-문화적 세계들 속에서 살며, 이

세계들은 크고 작은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 면모들이 또한 반성을 요청한다. 예를 들어, 전자의 맥락에

서 간호학과 관련해서는, 치료하기와 돌보기가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이 유명한 화제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상당히 훌륭한 이 주제는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는 너무 크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독자들도 일상을 통해

친숙할, 아마도 이전에 반성해보지 않았을, 그러면서 10여 쪽 내에서 뭔가 흥미로운 말을 할 수 있을 소박한 화제이다.

9. 현재의 상황에서 적합한 쟁점으로 나에게 떠오른 것은, 어떻게 우리가 “영구적 홈”9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질 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임시적 홈”도 가지느냐는 것이다. 이 표현들이 지칭하는 것은 진행과정에서

더 명확해질 것이다. 이 쟁점은 일상으로부터 오며, 은유적으로 명명되었으며, 하나의 분과학문에 귀속되지 않으며 여러 분과학문과 유관할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사태들이 마주쳐지는지에 한, 그리고 그것에 한 마주

치기에 한 약간의 반성적 분석이, 내가 반성적 분석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를 예증해 줄 것이다. 나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을 독려하고 안내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10. 참조 및 용어법의 틀과 관련하여, 나는 의지하기, 가치평가하기, 믿기 그리고 여러 종류의 경험하기가

그 안에서 식별될 수 있는 무엇을 가리키기 위한 넓은 전문용어적 표현으로 “마주치기”(encountering)를 사용한

다. 그리고 나는 상관적 유용성, 가치, 그리고 믿어지는 존재성격, 그리고 주어짐의 다양한 방식, 예를 들어 예상된- 로의-사태와 상기된- 로의-사태의 주어짐의 방식을 포함하기 위해 나는 “마주쳐진- 로의-사태”를 사용한다. 많은 동료들은 이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경험”(experience) 또는 “살아진 체험”(lived experience)을 사용한다.

그러나 때로 이 동료들은 분석에서 의지하기와 가치평가하기 요소를 늦게 언급한다.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

다.

11. 2단계―좋은 예시를 찾아라!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할 때에는 흔히 예시나 예증이 유용하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우 어떤 상설(詳說)은 예시를 전혀 포함하지 않아서, 무엇이 분석되는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다른 극단적인 경우 많은 상설들은 너무나 많은 예시를 포함하여 개념의 표현에 집중을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예술에 한 논의에서 때때로 어떤 동료들은 예시를 제공함을 통해서만 기술하려고 하는 것 같다. 개, 하나의 주된 예시를 들고 상설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그 예시로

돌아옴으로써, 예시가 가장 잘 예화해주는 그것에 주목하게끔 하려는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다. 때로 나는 나의 주된 예시가 될 구체적인 사례에 주목한 후에 나의 쟁점을 개념화하고 분석을 시작한다.

9 [역자주] 야구의 홈(home base)을 은유적으로 빌려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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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단 쟁점을 붙잡으면, 좋은 지속적 예시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경우, 나는 자

주 다른 도시로 여행을 하여 호텔에서 잠을 잔 다음, 거기를 나가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다른 곳을 찾았다. 이러한 행동은 내가 사는 곳에서 하는 것과 유사하다. 즉, 잠을 자고, 나가서 모험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내 집은 나의 영구적 홈이라고 말할 수 있고, 내가 여행갈 때 내가 자는 호텔은 임시적 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구적 홈의 경우, 이차적 홈과 일차적 홈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것은 아마도 의복 같은 것을 간수

하고, 개 아침과 저녁을 먹고, 부분의 밤에 자는 곳일 것이다. 두 번째 것은 정규적으로 낮에 체로 시간을 보내며 또한 나가서 모험을 하고 돌아오는 사무실 또는 여타 장소일 것이다. 삶에는 하나 이상의 이차적 영구적 홈이 있을 수도 있다.

13. 나는 일주일 간 다른 나라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호텔이 나의 임시적 홈이었다. 나는 그리

로부터 여러 식당 및 내가 학생들과 만났던 교실을 포함한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다. 식당은 아니지만, 교실은

이차적 임시적 홈으로 생각될 수 있다. 영구적이든 임시적이든 홈은 다른 장소와의 관계에서 중심적인 장소이다. 우리는 그리로부터 나갈 뿐 아니라, 그리로 귀가하기도 한다.

14. “영구적”과 “임시적”이 상 적 용어라는 것은 이미 명확하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어쩌면 평생에

걸쳐, 일차적 영구적 홈으로 되풀이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기 할 수 있다. 반면에 임시적 홈은 잠시

동안, 어쩌면 하루나 심지어 그보다 더 짧은 기간 동안 쓰인다. 영구적 홈은 아주 친숙하지만, 임시적 홈은 덜

친숙한 경향이 있다. 다른 차이들도 있을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영구성과 본래성에 있어서 다양한 정도 차를

가진 홈들은 우리 삶에서 우리가 멈추고 통과하는 장소들의 체계에 속한다. 장소들의 다른 체계가 있다 해도,

그것들이 어떻게 구조화될 수 있는지를 여기에서 추적할 필요는 없다. 영구적 홈과 임시적 홈이 이 연구의 쟁점을 이룬다.

15. 3단계―주요 은유를 해설하라! 언어에서는 단한 은유들이 많이 생겨나며, 그 모두를 문자 그 로의 표현으로 환원하려는 노력은 무익하다. 그러나 적어도 주요 은유에 해서는 논해야 한다. 은유가 오도할

수 있을 때에든, 또는 은유를 논하는 것이 그밖에 상설의 목적에 기여할 때에든 그렇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홈”이라는 표현은 야구 경기에서 빌려온 것인데, 이것은 국제적으로 가장 친숙한 스포츠 중 하나다. 홈은 경기장에서 타자가 서서 그녀에게 던져지는 공을 치려고 노력하는 장소이며, 성공한다면, “홈”으로 돌아와서 점수를 낸다는 궁극적 목표를 가지고서 다른 세 베이스를 돌기 위해 출발하는 장소이다. 실제로, 2단계에서 이루어

진 분석의 시작은 이미 이 은유를 상당한 정도로 해설하였다.

16. 은유가 문자 그 로 지칭하는 것에 한 질문은 학생들을 위한 질문을 작성하는 데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석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유용하다. 그래서, 수비를 할 때, 즉 상 팀의 선수들이 성공적으로

공을 쳤을 때, 야구 선수들의 포지션은 어떤 종류의 장소들인가? 선수들이 타석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벤치는 어떤 종류의 장소인가? (공식적으로 “홈”이라고 불리는 곳보다 벤치가 더욱 홈 같을 수도 있는가?) 이

장소들은 어떻게 관계되는가? 이들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에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행된 활동들 외에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다른 스포츠에도 유사한 구조가 있는가? 예를 들어, 당구나 농구에도 “홈”이 있는가?

17. 4단계―반성하라! 이 단계에서 내가 하는 것을 나는 “반성”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숙고하기”, 또는

심지어 “사태에 해 고심하기”라고도 부르곤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이며, 불행히도 내가 가장 안내를

제공하기 힘든 단계이다. 주제로 삼고 있으며 예시가 예화하는 종류의 사태에 주로 결부된 것에 해 기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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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목표이다. 반성은 실제로는 주제를 선택했을 때 시작되었으며, 글을 다 쓸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내 경

우엔, 적어도 내 설명이 충분히 명확해져서 글로 써내기 시작할 수 있게 되는 때가 온다. 이는 말해져야 할 모든 것을 글로 쓰기 전에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현재의 경우, 영구적 홈과 임시적 홈이 어떤 종류의 장소인지에 한 논구는 본래는 인지되지 않았었고, 그리하여 내 상설에 한 첫 번째 검토에서 추가되었다.

18. 때로 반성적 분석은 명백하게 의미 있는 물음에 한 답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분석에서, 나는 관용

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한 답을 시도했다. 이 쟁점에 한 나의 숙고에서 내가 얻은 주된 통찰이 초점을 맞춘 것은, 어떻게 관용적이라고 해서 관용의 상이 되는 그 사람, 태도 또는 행동을 낮게 가치평가하기를 그만두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로 그러한 낮게 가치평가하기에 기반하여 행위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계속해서 낮게 가치평가하는 무엇에 항하는 의지하기를 단념시키는 것이 무엇인가에

한 물음에 접근할 수 있다.

19. 적어도 나에게는, 반성할 때 피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하나는, 그 쟁점에 해서 타인이 말한 것에

한 광범위한 고찰이다. 물론 우리는 항상 이미 타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왔으며, 그리하여 기꺼이 타인의 영향권 하에 머무른다. 그리고 학자들은 우리의 분석에서 그러한 영향의 효과를 흔히 식별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반성적 분석에서는, 무엇에 관하여 독자나 청자를 설득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내가 방금 그랬듯이!)

타인을 참조해서는 안 된다. 타인에 한 언급을 전적으로 방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성적 분석에서

저자는 타인이 말한 것을 상론하기보다는 쟁점이 되는 사태에 한 자기 생각을 말해야 한다. 더욱이, 동료 전문가들을 감명시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연구를 시도하도록 학생들을 안내하는 것이 우선이다.

20.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것은, 논리적인 방식으로 귀결을 연역해나갈 수 있는

명제를 탐색하는 것이다. 적어도 내 견해로 반성적 분석은, 엄 히 말해, 논증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적 서사(descriptive narrative)이다. 이러한 기술적 서사의 마지막에서 독자는 연역된 결론을 얻지 않고, 문제되는 사태에

한 더 깊은 통찰을 얻었다. 타인이 표현한 것에 한 학술연구처럼, “전제 사냥”과 “논리적 비평”이라고 불리

는 것을 피하는 것은 교육받아온 내용과 반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타인의 견해가 중심적이지도 않은 제3의 접근법이 있음을 제안한다. 신, 우리의 관심은 쟁점이 되는 사태에, 예를 들어

관용의 태도라든가 영구적 홈 및 임시적 홈과의 마주침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21. 숙고할 때에는 피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고 내가 생각하는 세 번째 것은, 내 책에 등장하는 일군의 구

별들을 서둘러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책의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기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현상학적 결과는 궁극적으로, 삶세계(lifeworld) 내에서의 사태와의 일상적 마주침으로부터 정제되는 것이라는 점,

사태들에 있는 모든 중요한 차이들을 내가 인지했을 수가 없다는 점, 전문적 언어도 비슷하게 일상 언어로부터

정제된다는 점, 그리고 어떠한 분석도 확정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나는 인식하고 있다. 나의 200

쪽 분량의 책도 표면을 스케치할 뿐이며, 언제나 더 깊이 파내려 갈 필요가 있다.

22. 5단계―예시와 관계하여 구별을 하라! 구별하기는 애초부터 수반된다. 그것은 말 그 로 마음 속에

개요를 낳을 수도 있고, 사태가 기술되어야 할 순서를 생각해 내고 있는 종이 위에 개요를 낳을 수도 있다. 나는 이 분석에서 단계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구별하기를 행했다. 구별하기를 혹자는 전혀 행하지 않고, 혹자는

언제나 행한다. 나는 사태가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나의 숙고가 덜 진행되었을 수록 구별하기를 행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늘 나의 노력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분석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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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어, 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가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때로는 구체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

으로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러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반성적 분석에 “분석”이라는 명칭을 주는 것은, 쟁점이 되는 사태의 면모들을 참조하면서 예시를 이용함으로써 명확해진 일련의 구별들이다.

23. 그리하여 영구적 홈과 임시적 홈 사이의 구별 너머에, 장소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있다. 명확하게도,

장소란 시간과 공간 내에, 예를 들어 설립된 때와 파괴될 때 사이에 이 거리나 저 거리에 자리잡은 무엇이다.

장소는 또한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이 특유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서 있거나 걸어 다닐 때 발이 닿는 두꺼운 카펫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영구적이나 임시적으로 그것을 떠났을 때 상기될 수도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리로 갈 때, 또는 조금 다르게, 그리로 돌아갈 때

예상될 수도 있다. 이 수준에서 장소에 해 할 수 있는 말은 더 있다. 이러한 수준은 “경험하기”라고 불릴 수

있다.

24. 시공간 속에서 장소나 다른 것을 지각할 때, 그것은 또한 확실성을 가지고 믿어진다. 그것을 의심할 동기가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런 동기가 있을 때까지, 예를 들어, 그것이 신기루나 그 밖의 착각이라고 판명될

때까지 믿어진다. 원칙적으로, 더 나아가 홈은 긍정적으로 가치평가된다. 홈이 감방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가

치평가될 수 있다. 그곳이 감옥 내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가, 그러므로 홈이, 넓은 의미에서 의지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머무를 호텔을 선택할 때 그것은 능동적으로 의지될 수 있으며, 주최측이 선택한 호텔을 수락할 때에는 수동적으로 의지될 수 있다. 이를 넘어서, 의지하기는

습성적이 되거나 심지어 전통적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오래 전에 일과에 따라 의지적으로 받

아들여졌다는 점을 반성을 통해 발견할 수도 있다.

25. 흥미로운 동음이의어를 사용하자면, 이러한 넓은 의미에 들어오는 사태는 “사용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홈은 쉬는 데에, 그밖에 다음에 다른 장소로 나가는 것을 준비하는 데에, 그러므로 더 큰 노력의

궁극적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기여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노력 내에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최초의 또는 계속적 움직임의 직접적 목표로서 사용될 수도 있다. 의지된- 로의-사태가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라고 불릴 수 있는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반성은 밝혀 준다.

26. 말했듯이, 때로 우리는 장소를 영구적 홈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임시적 홈으로도 사용한다. 이는 특수한 전문용어와 관계할 수 있다. 배는 모항(home port)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항구를 임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

다. 이는 비행기 및 공항과 비슷하며, 차의 경우에는 집에 있는 차고 및 직장의 차고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모든 장소는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홈은 그것들 간의 이동을 위한 경로를 수반한다. 우리가 장소 일반과 어떻게

마주치는지, 구체적으로 영구적 홈 및 임시적 홈과 어떻게 마주치는지를 반성적으로 분석한다면, 우리는 마주치기 및 수반되는 마주쳐진- 로의- 상에 해 많은 것을 발견하고 기술할 수 있다.

표 1.

장소

영구적 홈 다른 장소

임시적 홈 다른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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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구별들이 조합되는 도표는 때때로, 독자가 기술을 이해하는 것을 도울 뿐 아니라, 저자가 그것을 확장

시킬 동기를 줄 수도 있다. 도표를 그리는 중에 쟁점의 더 많은 면모들이 인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표 1과 관계하여, 홈이 아닌 다른 장소에도 영구적인 것과 임시적인 것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물을 수 있다. 또한, 일차적 홈과 이차적 홈을 수용하기 위해 이 도표는 어떻게 수정될 수 있을까?

28. 6단계―상설을 개정하라! 여기에서도 다시, 권위자를 언급하고, 텍스트를 인용하거나 끌어오고, 그밖

에 학술연구에 관여하려는 유혹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할 것은, 반성적으로 관찰될 수 있고 분석될 수 있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다. 독자나 청자가 반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이 기술하는 사태를 보고, 그리하여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설득되고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설득되지 않기를 몹시 희망한다. 사람들이 자기 삶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영구적 홈과 임시적 홈 그리고 여타 장소들이 있다. 이것은 경천동지할 통찰은 아

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역사적 문화 세계 속에서, 현상학자들이 “삶세계”라고 부르는 것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한 이해를 적어도 약간은 증진시켜 줄 것이다.

29. 집필 과정에서 사태의 새로운 면모가 시야에 들어올 여지는 결코 배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삶세계는

그것의 내용이 배울 수 있는 유용성, 가치, 믿음 성격을 지닌다는 엄 한 의미에서 문화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

다. 삶세계는 사회적이기도 하다. 이는, 어떻게 사회적 관계나 상호관계가 어떤 장소를 어떠한 유형이나 다른

유형으로 만드는 데에 역할을 하거나, 심지어 지배적일 수도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우리의 예를 이어가자면, 가족이 있는 곳이 홈이 아닐 수 있는가? 그러면, 실제로 귀가는 건물에 들어가기의 문제라기보다는, 떠났다가 배우자와 아이들과 다시 만나기의 문제가 아닌가? 떠나 있다는 것이, 야구의 이닝이 끝날 때까지 2루에

머무는 것, 그러므로 벤치나 경기장의 팀과 함께 있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집을 남과 공유하지 않고, 자기

책과 같은 소중한 것들과 함께 혼자 살면서, 가장 신경 쓰는 활동을 그 장소에서 수행한다면, 그것이 홈일 수

있는가? 가령 먹고 잘 뿐 아니라 또한 텔레비전을 보고, 학에서 수업을 하러 가기 전 아침에 반성적 분석을

작성하는 곳이 홈일 수 있는가?

30. 그러면 또한, 내보내졌다가 적에 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는 순찰 에게는 이동 중인 군사 형이

홈이다. 이는 함 및 정찰기와 비슷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임시적 홈은 경험되는 시공간 내에서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변화하는 장소를 가질 수 있다. 반면에 영구적 홈은 병영 또는 모항이다. 아니면, 어떤 영구적 홈은 마찬가지로 언제나 이동 중일 수 있는가?

31. 7단계―초고를 검토하라! 내 책이 가장 유용하리라고 희망하는 곳이 여기다. 그러나 책에 있는 나의

성과는 표면의 지도(地圖)에 불과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더 깊이 파 내려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타인이 그렇게

하는 데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기억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나는 그로부터 도출되어, 반성적 분석의 초고와 관련하여 제기할 수 있는 질문들을 제공하겠다. 이는 적어도 일반적 포괄범위에서 더욱 자신감을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ㄱ. 한편으로는 경험하기와 정립하기의 차이, 다른 한편으로 경험된- 로의-사태와 정립된- 로의-사태의

차이가 초고에서 유관하며 명시적인가?

ㄴ. 실재적, 또는 더 나은 말로, 시간적인 것을 경험하기와 이념적, 또는 더 나은 말로, 비시간적인 것을 경

험하기 사이의 차이가 유관할 때에, 이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가?

ㄷ. 실재적 사태와 관련하여, 지각하기, 기억하기, 예상하기 및 상관적인 지각된- 로의-사태, 기억된-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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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태, 예상된- 로의-사태 및 그들의 중요성의 정도가 고찰되었는가?

ㄹ. 넓은 의미에서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 및 그들의 상관자와 양상이 적절하게 관련된 때에 고려되었는가?

ㅁ. 연구에서 꾸며내기의 역할이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인정되었는가? 즉, 진정한 것이든 허구적인 것이든 개별적 사태에 한 주장과, 예시로서 그것들을 바탕으로 획득된 일반적 통찰 사이의 차이를 의식하고 있

는가?

ㅂ. 분석에서 정당화가 필요한 곳이 있는가? 있다면, 그 필요는 충족되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인가?

ㅅ. 학생이 그 상설을 따라 나아갈 때, 그녀가 점점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도록 그 상설이 구축되어 있는가?

32. 4단계와 5단계가 가장 중요하나 가장 덜 방법론적인 것 같다. 쟁점에 한 나의 분석이 글쓰기에 충분할 정도로 안정되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규칙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상황은 다양하다. 혹자는

출근길 운전 중에 착상을 얻고, 혹자는 불면증과 씨름하면서 얻거나, 이를 닦으면서 얻는다, 등등등. 내가 따른다고 생각하는 접근법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집필 및 7단계의 일곱 질문에 따른 검토는 숙고가

기본적으로 완료된 후에만 도움이 되리라는 점이다.

33. 당신의 진행 방식은 나의 진행 방식과 다를 공산이 크다. 이처럼 3000 단어 정도 내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지에 해 내가 놀란 만큼 당신도 놀랐는가? 서로와 그리고 스승과 토론하기 위해 다음 날

수업에 오기 전에 학생들이 그 정도는 숙달하기를 기 할 수 있다. 우리가 충분한 구체적 실습 및 방법론적 연

구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한 학기의 교육을 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현상학자들을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현상학자라는 명칭에 걸맞음은 그들이 자신의 반성적 분석을 집필함으로써 드러날 것이다.

첨언

34. 현상학에서 높은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위의 분석에서 내가 많은 중요한 것들을 명확히 하지 않음을

인지했을 것이다. 이는, 나의 관심사가 우리의 접근법의 기초를 조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곧바른

주제화와 반성적 주제화 사이의 차이에 한두 쪽을 할애하지 않는다. 신 나는, 내가 마주치기와 마주쳐진-

로의- 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한 분석이, 우리가 소위 “객관적 사태”와 어떻게 마주치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고서 그것에 해 우리가 바로 자명하게 토론하는 흔한 방식과 얼마나 다른지를 인지하는 정상적인 성인의 능

력에 의지한다. 그러나 나는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 요소를 마주치기 내의 경험적 요소와 구별하며, 상관적인 믿음 성격, 가치, 유용성을 마주쳐진- 로의-사태 내의 주어짐의 방식과 구별한다.

35. 더 나아가, 나는 내가 제공하는 분석이 세계적(wordly) 현상학에 속하는지 초월론적(transcendental) 현상학에 속하는지를 밝히지 않는다. 내 견해로는, 반성적 분석은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세분화될 수 있으며, 현상

학적인 경향을 지닌 분과학문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세계와 과학에 한 초월론적 토 놓기를 목표할 수도

있지만, 다른 판본의 철학적 현상학에는, 또한 철학 너머의 분과학문, 예를 들어 현상학적 간호학에는 다른 목적들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암묵적으로, 적어도 심리학적 판단중지(epochē), 환원, 순수화에는 의지한다. 경험되는 것이 광자, 음파, 그리고 생리학적 심리학과 자연주의적 과학의 주된 관심사인 여타 요소들을 통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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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될 수 있는지에 해서 나는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36. 비슷하게, 나는 자아론적 현상학으로부터 상호주관적 현상학을 도출하는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고,

Abbau-Aufbau[헐어내기-쌓아가기] 방법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능동적, 수동적 의욕적 작동 속에서 이차적 수동적 의지하기가 기원함에 한 언급을 제외하고, 위의 분석은 또한 하나의 정적(static) 현상학이기도 하다.

37. 그리고 다시, 현상학이 개별 인간 의식에 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의 전통의 부분의 동료들은 간단

히 당연시한다. 우리가 본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집단 내의 타자들의 삶과 개별적 삶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또는 인간의 삶이 비인간의 삶과 어떻게 다른지를 나는 분석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38. 여기서 그리고 다른 반성적 분석에서 나는 또한 암묵적으로 형상적 방법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인지에 해서는 오히려 별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에 의존한다는 점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특수 사태, 예를 들어 이러저러한 도시에 있는 이러저러한 호텔에 한 것에 불과하지 않고, 가장 세분된

수준에서조차, 여행해 갔으며 잠시 머물렀던 아무 장소의 아무 호텔에 한 것이라는 점에 의해 임시된다. 더

일반적으로, 영구적 홈과 임시적 홈의 형상(eidē)이 있다. 형상화에 한 후설의 기술, 그리고 자유 상상 변경(free phantasy variation)의 명확화 능력에 한 후설의 기술은,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까지 개발되어온 최선의 방법

론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정상적 성인은 자주 자발적으로 형상화 하며, 보편적 본질에 한 개념을 표현하는

일이 꽤 흔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러한 개념을 쉽게 이해한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절차를 곱씹는다면, 학생들이

배울 수 있기를 내가 희망하는 기본적 접근법의 기초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39. 기초가 되는 것은, 쟁점에 속하는 마주치기와 상관적 마주쳐진- 로의-사태를 세분된 용어와 일반적

용어로 반성하기, 분석하기, 기술하기이다. 이렇게 하는 법을 일단 배운다면, [이와] 결부되어 뒤따를 추가적 절차들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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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반성적 분석을 지도하는 한 가지 방법

서론

1. 이 연구의 제목은 애매하다. “반성적 분석”은 나의 책 『반성적 분석』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쓰인 책이지만,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사람도 스스로를 지도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 공부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제, 저 표현과 저 책이 지칭하는, 또는 다루는 접근법도 “반성적 분석”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이 시론(試論)은 어떤 책에 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연구 접근법에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제목은 정해졌으며, 이 소론은 반성적 분석과 관련된 지도법에 한 것이다.

2. 이 장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반성적 분석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이름이지만 방법론적이라는 점은 덜 명백한 이름인 현상학과 관련하여 넓게 퍼져 있는 지도 방식에 한 것이다. 이것이 저 접근법을 아주 잘 지도할 수는 없음을 주장할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부분은 저 접근법을 지도하는 방식에 한

것이다. 목표는 현상학에 한 학자들을 더 많이 낳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현상학자, 더 많은 현상학적 탐구자를 낳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오늘날에는 눈에 띌 정도로 많지 않다.

현상학에 대해 지도하기

3. 철학에서 현상학은 한 세기 이상 있어 왔고, 또한 철학 너머의 점점 더 많은 분과학문에서도, 무엇보다

도 우선 정신의학에서도 현상학이 만만치 않게 오래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엄 한 의미에서의 현상학자는 비율적으로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 이 점은 널리 인지되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인지될 가치가 있다.

4. 확실히, 현상학이 무엇인지에 해 바쳐진 책과 논문은 굉장히 많고, 이러저러한 과거의 위 한 현상학자들이 이러저러한 것에 해 쓰거나 말한 것의 이러저러한 면모에 해 동료들이 논하는 학회도 많다. 슬프게

도, 이러한 모임 중 일부의 모습은, 과거의 이러저러한 거장들을 마치 신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여기는 성경 공부 집단 이상이 아니다. 사용되는 일반적 접근법은 아주 관용적으로 말해서 “학술연구”이며, 생산된 문헌은 비교 연구, 편집, 해석, 서평, 번역을 포함한다. 현상학적 전통에 학술연구가 몹시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과거의 부분의 거장들의 저작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공통적 용어법이 거의 없고, 그저

같은 단어뿐 아니라 같은 개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요한 문제틀, 가령 타자에 해 경험하기를 고찰한다면, 과거의 거장들 사이에 의견 일치가 그다지 없다는 점, 그러므로 아마도, 학술연구에 관해서라면 비교

연구가 가장 필요하다는 점이 금방 인지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하자면, 학술연구의 저작은 이차 문헌에 한 기여일 뿐이다. 그것은 현상학에 한 것, 현상학에 관한 것이지만 현상학 안에 있는 것은 아니

다. 이 점이 저 연구되고 있는 거장들의 위 함의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슬프게도, 저 저자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흔하다.

5. 학원생과 초보 교수들은 아마도 학술연구를 생산하도록 가장 독려될 것이다. 그들이 치명적일 정도로 타인의, 특히 비현상학적 학파의 타인들의 평가의 영향권 하에 있다면, 자신의 분과학문에서의 어떤 쟁점이

나 방법에 해서 공공연히 독창적인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과거의 거장의 믿을만한 사상에 관해 논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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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전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논리학은 현상학적 방법에서 기껏해야 주변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나, 예를 들

어,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이 연구하는 것에서는 중심적이다. 그러나 분석적 철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말해야 할 나머지 것들에 한 관심을 그녀는 즉시 잃을 것이다. 또는, 심적 과정에 한 반성적 관찰에 근본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든가, 개별자들이 어떻게 사회적 집단의 성원일 수 있는지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내성주의자(introspectionist)로, 또는 사회학자로 일축될 수 있다―오늘날 부분의 영어권 철학자

들이 어느 쪽을 더 나쁘게 여기는지조차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격받기 쉬운 입장이라면, 학술연구를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리고 좋은 학술연구는 다른 관점에서도 의의가 인정되기 더 쉽다.

6.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현상학은 행해지기보다는 주로 논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에드문트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에 해서 다음과 같이 논할 수 있다. 저 가의 마지막 조교이자 공동 연구자가

어디선가 말했듯이, 이것은 후설의 『이념들』의 반복이며, 그것은 소르본느에서의 강연으로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의 가장 위 한 철학자를 예우하기 위해 구조화되었으며, 일찍부터 초월론적 현상학적 판단중지(epochē),

환원, 순수화에 의존했을 뿐 아니라, 또한 암묵적으로 자아론적 판단중지, 환원, 순수화에 의존했던 반면, 『이념들』 제1권 제1부의 눈에 띄는 주제였던 형상적 판단중지, 환원, 순수화는 “제4성찰”까지는 신기하게도 억눌

려 있었다. Wissenschaftslehre[학문론]의 기획을 엄격하게 다룰 뿐 아니라 특히 제1차 세계 전 이후의 독일의 끔찍했던 1920년 와 30년 시기도 다루는 『위기』로 인하여 버려질 때까지, 후설은 그것은 최후 진술로 생각했다. 전체 텍스트에 관해서라면, 사실 그것은 두 텍스트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첫 네 “성찰들”의 상당히 연속적인 분석이다. 그 중 네 번째 성찰은, 방금 내비쳤듯이, 실제로는 “성찰 I-III”에서 다룬 사례들에 한 다양한

부록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저작을 본질적으로 인식론적이고 지성주의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자세히 살핀다면, 거기에는 현상학적 가치 이론과 행위 이론에 한 암시들이 있다.

7. 위의 문단은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나 현상학을 어떻게 하는지를 그것이 보여주는가? 저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방법론적 진술을, 예를 들어 형상적 판단중지, 환원, 순수화를 계속해서 더 정교화하여, 초기부

터 후설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플라톤식의 보편적 본질을 볼 수 있음을 고수했으나, 플라톤과 달리 이 “보기”

는 그 보편적 본질 또는 형상(eidos)의 예시인 특수 사례에 한 진정하거나 허구적인 경험하기에 정초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주로 후설은 “순수 본질”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 한 명확화에서 소위 “자유 상상 변경”(free phantasy variation)이 하는 역할을 기술함으로써 형상적 명증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본질을 어떻게

보는지를 이것이 보여주는가?

8. 내가 방금 제공한 것과 같은 진술들을 독자들이 너무 많이 읽거나 들어서, 그/녀가 다른 종류를 생각해내기를 어려워하지 않을까 나는 두렵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의 추종자가 이 인물들이 숙고하지 않았던 사태에 한 아리스토텔레스적 또는 헤겔적 설명을 계속해서 제공하는 일은 드물다. 반성적 분석이 다루

는 것을 지도하지 않고, 반성적 분석 하기를 지도할 수 있는가?

약간의 질문하기

9. 아마도 다음에 나오는 지도 방식은 소크라테스적일 것이다. 그것은 교사의 질문하기를 수반하며, 학생

안의 통찰을 발전시키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내 생각에는, 소크라테스도 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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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모호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들에게 예시를 줄 것을 청하고, 그것을 명확화했다. 그러나 나

는 이것이 효과가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접근법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반성적 분석』 내의 중심적 분석에 해 질문을 할 것이며 좋은 예시를 포함하는 답을 기 할 것이라고 말한 후,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다음의 질문 목록 외에도, 괄호에는 후속 질문들이 들어 있으며, 강사가 더 많은 질문을 발전시키는 것도

장려된다. 다음 질문 중 일부는 “함정 질문”, 즉 잘못된 가정을 가진 질문이다. 학생들이 그러한 질문을 주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 모든 종류의 경험하기와 모든 종류의 정립에 공통되는 것은 무엇이며, 이들이 종적으로는 어떻게 차이 나는가? (이 질문은 식물과 동물에 한 물음과 어떤 점이 닮았는가? 그러나 물음과 관련된 사태들은 구체적으로 다른가, 추상적으로만 다른가? 이러한 후속 질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진행하면서 나는

다른 학생들이 답하는 학생에게 동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주시하고, 흔히 그들 중 일부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예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2. 경험하기에 두 종이 있고 각 종에 세 하위종이 있다. 그러나 우선, 그 종들이 공유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다른가? (이들 중 어느 것에든, 결부되기는 하지만 관찰은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

가? 우리는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타자들 안에서 관찰할 수 있는가, 우리 안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가? 우리의 예시가 진정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도 허구적인가?)

#3. 직접적 경험하기로부터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경험하기의 세 유형 중에서 지각하기로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4. 지각하기는 상기하기 및 예상하기와 어떻게 다른가? (경험하기는 물리적 사태에 한 것일 뿐인가? 이

세 유형에서 매개물은 어떻게 다른가?)

#5. 간접적 경험하기에서 매개물은 직접적 경험하기와 다른가? (직접적 경험하기에 립하는 간접적 경험하기에 결부된 경험하기의 경우에는 무엇이 다른가?)

#6. 어떤 것을 두 번 상기한다고 하자. 그러면 상기된 것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두 가지 것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또는 그것들은) 어떻게 다른가? (같은 질문을 미래의 사태(또는 사태들)에 해서도 물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답(들)은 어떠한가? 예시를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는 것을 잊지 말라.)

#7. 세 종류의 간접적 경험하기의 상들은 직접적 경험하기의 상들이 그렇듯이 별개의 시간 구역에 있

어야 하는가? 여기서, 실재에 한 세 가지 유형의 경험하기와 세 가지 시간 구역이 있다면(3×3짜리 교차 분류표를 만들어 보라), 이중으로 결정되는 아홉 부류에 맞는 예시들은 무엇인가? (경험하기의 모든 상은 실재인가? 그렇지 않다면, 예시의 부류가 셋이나 여섯 더 필요한가? 그렇다면, 그것들은 무엇인가?)

#8. 믿음에 한 긍정적 확신처럼, 부정적 확신과 중립적 확신에도 정도가 있는가? 확신의 정도가 변할 수

있는가?

#9. 가치평가하기와 의지하기에 해서 같은 질문은?

#10. 좋아하기와 사랑하기는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가? 가치평가하기에 정도가 있는가?

#11. 의지하기를 의지할 수 있는가? 믿기를 좋아할 수 있는가? 이와 비슷한 다른 결합에는 어떤 것이 있는

가?

#12. 기억하고 지각하기를 좋아하고 의지할 수 있는가? 그러한 반성성이 나타나지 않는 마주치기가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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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가?

#13. 자기 자신의 유기체가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지각될 수 있는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촉각적으로? 사적(私的)으로?

#14. 자기 발을 보고 만지기 위해서 유기체 내에서 일어나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기 머리 뒤를 지각할 수

있는가? 어떻게? 만약 못 한다면, 어째서?

#15. 타자의 손을 만지기는, 자기 손을 만지기와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른가?

#16. 코를 막으면 냄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17. 침 와 의자는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가? 장갑과 신발은?

#18. 어떤 것과 유기체 사이의 거리가 줄어들 때, 어떻게 그것은 더 크고 더 시끄럽게 현출할 수 있는가?

#19. 어떻게 언어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 타자가 같은 사태를 지각함을 확신할 수 있는가?

#20. 어떤 것이 살아있지 않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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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반성적 분석의 필요성

지난 40년 동안 나는 아마도 한 해에 네 번 현상학 학회에 참가해 왔고, 각각에서 적어도 여섯 편의 발표

를 들어 왔다. 이것은 거의 1000편의 발표에 달하며, 게다가 나는 그 수십 년 동안 적어도 그 만큼 많은 수의 현상학적이라고 간주되는 학술지 논문과 책의 장들을 읽어 왔다. 그를 바탕으로 내가 공표할 수 있는 것은, 현상학적이라고 간주되는 이 표현물들이 실상 모두 실제로는 학술연구라는 것이다. 흔히 그 안에서는, 우리 전통의

과거의 거장들의 개는 어려운 저술에 한 예리한 해석들이 제공된다. 나는 그러한 학술연구를 듣고 읽기를

단히 즐기며, 나 자신도 학술연구에 수십 편을 기여했다. 거기에서는 도리온 케언스(Dorion Cairns), 아론 구르비치(Aron Gurwitsch), 알프레드 슈츠(Alfred Schutz), 또한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심지어 미국의 원형적 현상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를 논했다. 나는 기꺼이 이러한 학술연구에 참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위 한 과거로부터 최 의

혜택을 얻는 것을 돕기 위해서는 학술연구가 몹시 필요하며 언제나 몹시 필요하리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학술연구에 관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 거장들의 입장들의 면모들을 비교하는 연구가 더 많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내 생각에, 이것이 현상학을 더욱 촉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방금 언급한 것 거의 모두는 근본적으로, 학술연구라고 불리는 것이 가장 좋을 유형의 연구

이다. 나는 “학술연구”의 동의어로 흔히 “문헌학”을 사용한다. 이것이 “현상학”과 훌륭하게 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술연구 또는 문헌학은 이차 문헌이지, 일차 문헌이 아니다. 확실히, 내가 듣거나 읽어 온 많은 해석들은 이미 수립된 입장에 한, 개는 해석되는 텍스트의 저자의 입장에 한 헌신을 암시한다. 해석되는 입장의 이러저러한 면모에 한 반 는 드물고, 반 되는 저 면모들에 한 현상학적 안이 제공되는 경우, 말하

자면 현상학적 수정은 훨씬 더 드물다. 문제되는 사태에 한 기술을 심화하는 확장은 말할 것도 없다.

해석된 입장에 한 동의가 암시되는 경우, 문제되는 사태에 한 반성적 관찰에 바탕을 두고서 동의를

말하는 경우도 드물다. 나는 우리 전통 내의 친구들에게 이러한 점에서 부드럽게 이의를 제기해 보았다. 때때로 그들은, 타자에 의한 이러한 텍스트들을 해설할 때조차도 문제되는 그 사태를 볼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더 중요하게는, 왜 해석한 입장을 더 정교화해 나아가지 않았느냐는 후속질문을 내가

던지자, 일반적으로 내 친구들은 답이 없었다. 현상학적 반 , 문제되는 사태에 한 관찰에 바탕을 둔 반가 있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에도 답이 없었다.

어떤 해석에서 주장된 것이 저자의 저술에서 표현되었거나 함축되었다는 것이 발견된다면, 그러한 해석

은 해석으로서 참이다. (흥미롭게도, 이는 해석을 하고 있는 저자와 같은 저자에 의해서 일어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이전의 텍스트가 저자에 의해 분석될 때가 그렇다.) 학술연구에서 주장된 것이 해석되는 저자의 텍스트에서 발견될 수 없다면, 그러한 해석은 해석으로서 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문제되는 사태

자체에 해서는 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텍스트에 해 참이라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이미 생산된 텍스트와 관련하여 참이거나 거짓인 학술연구 또는 문헌학과 조적으로, 내가 “탐구”(investigation)라고 부르기를 선호하는―그리고 우리 전통에서 흔히 “기술(記述)”이라고 불리는―것에서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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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종류의 설명은 사태와 관련하여 참이거나 거짓이다. 문제되는 사태가 텍스트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추적할 수 있다. 텍스트란 무엇인가? 텍스트나 발화는 어떻게 사태를, 또한 다른 텍스트나 발화를 지칭하는가? 어떻게 어떤 텍스트는 텍스트 또는 발화와 관련하여, 또한 다른 사태와 관련하여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가? 그리하여 해석의 현상학 또는 해석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체로, 기술은 텍스트가 아닌 문제되는 사태에 해 참이거나 거짓이다. 그리고 현상학에서 그것의 진위는 문제되는 사태에

한 반성적 관찰에 바탕을 둔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의 요지는, 내가 우리의 전통에서 보낸 세월 동안 내가 듣거나 읽어 내려간 약 2000편의 표현물에서 그것의 저자가 “현상학”이라고 부르거나 부를 것의 부분은 현상학이 아니고, 오히려 학술연구나 문헌학이라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이 점에서 나도 어느 정도 떳떳하지 못하다. 나의 첫 번째 소론 이후로

는, 이제 내가 “반성적 분석”이라고 부르는 장르로 현상학적 텍스트를 생산하려고 노력해 오고 있으며 나중에

와서는 점점 더 많이 노력해 오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들은 사태 자체에 한 것이다. 이들의 집필 방식으로 내가 희망하는 바는, 청자나 독자가 실제로 “여기에서 해석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것을 과거의 위 한 인물들이 표현하는 곳은 어디인가?”라고 묻지 않고, 오히려 사태 자체에 의탁하여, 사태가 이러하다고 내가 주장하

는 바 로 사태가 그러한지 어떤지를 묻는 것이다. 주요한 권위자들에 한 언급, 인용, 각주는, 학술 연구 저작으로서 표현하는 바를 청자나 독자가 검토해보도록 지시하는 방식에 속한다. 반면에 문제되는 사태에 한 반성적 분석에 기초한 기술 또는 반성적 분석에서는 그러한 “학술적 장치”를 별로 집어넣지 않거나 전혀 집어넣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이해해 내려고 노력해왔던 약 2000편의 발표와 텍스트의 청중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나의 동료 전문가이다. 그들은 그러한 전문적 학술연구와 친숙하며,

그러므로 어떤 특정 전문분야, 학파, 적어도 분과학문에 속한다. 조적으로 학술연구가 아닌 텀구가 누구에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전문적 장치에 숙달되어 있을 필요가 없는 청자나 독자를 포함할 수 있다. 그

러므로 다른 전문분야, 학파, 또는 분과학문의 동료 전문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생각할 수 있다. 동료 전문가들은 제쳐 두자. 학생들이 듣고 읽는 모든 것이 학술연구라면, 학술연구를 하는 법

외에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거기에 더 많은 학술연구를 하는 방법 외의 것이 있는가? 학술연구의 방법이란 개 텍스트가 아닌 문제되는 사태에 한 반성적 관찰보다는 텍스트 해석이 아닌가? 우리의 장 한 전

통이 그저 특이한 유형의 20세기 철학사로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도

놀라울 것 없는 일이다.

나의 주장은,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문헌학이 아닌 현상학의, 또는 다시, 반성적 분석의 지도 및 집필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반성적 분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한, 그리고 심지어, 반성적 분

석에 한 접근법에 한 반성적 분석이라고 내가 상상하기까지 하는 텍스트 하나를 현재 열 가지 언어로 출간하였으며, 더 많은 언어로 출간할 것이다. (나는 카스티야어,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와 같은 세계적인 언어뿐 아니라 더 작은 언어로의 번역도 장려했다. 전문가와 전문가의 사이의 소통이 점점 더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부분 그들 지역의 언어로 지도를 하며 학생들

을 위해 그 언어로 된 문서 자료를 더 사용한다.) 나의 텍스트는 내가 배운 인물들에 해 한 문단에서 감사를

표했으며, 각주가 하나뿐이며, 인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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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확실히, 이러한 장르에 들어맞는 텍스트를 생산한 것은 내가 처음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에서는,

적어도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심리학의 원리』(1890)를 시초로, 그런 텍스트가 많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언하건 , 우리가 모방해야 할 우리 전통의 거장들은 학술연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나의 희망은 나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러한 논술문이 지도되는 것이다. 이는 학부 고학년생이나 학원생에게 하룻밤 전에 한 번에 한 편의 논술문을 배부하고, 그 후 강사가 소크라테스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함

으로써 세미나 시간을 이끄는 것이다. 그 질문은, 이 반성적 분석의 주제는 무엇인가? 이 주제에 더 좋은 이름이 있는가? 이전에 이에 해 숙고한 적이 있는가? 문제되는 사태의 진정한 예시나 허구적인 예시를 당신 자신의 심적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그것이 이러한 반성적 분석에서 기술된 로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어떻게 더 잘 기술될 수 있는가? 동료 학생들이 표현한 수정과 정교화가 참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지금까

지 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더 전진시킬 수 있겠는가? 즉, 추가적인 반성적 분석에 바탕을 둔 기술로 그것을 스스로 정교화할 수 있겠는가? 우선 우리 모두는, 우리의 심적 삶에 한 감각을 조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특히 도움을 받으면, 그 기량에 관한 광범위한 실습을 통해 그것을 정교화 해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미래에는 문헌학자보다 현상학자를 더 낳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 많은 현상학자가 필요하며,

반성적 분석은 이러한 필요를 충족하려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나는 현재 박사과정 학생을 지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만약 내가 지도했다면,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반성적 분석을 지도하고, 그리하여 현상학자가 되기를 지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그들이 일단 졸업을

한다면 종신 재직권을 가지게 될 때까지 주로 학술연구를 출간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그것은, 학술연구가 더

하기 쉽고 매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 다른 학파의 동료들이 이해하기 더 쉽기 때문, 다른 사람의 반성적 분석을 통한 확인을 요구하는 자기 자신의 반성적 분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정받은 권위자들에 쓴 구절들에 의해 지지되므로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일단 종신 재직권을 받고 나면 더욱 더 많은 현상학을 생산할 것을, 그리하여 현상학자가 될 것을 기억하도록 그들에게 조언할 것이다. 그들은 바로 현상학자

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그리고 많은 이미 공인된 전문가들이 현상학 생산하기를 때로 주저하는 한 가지 이유는, 과거의

거장들이 흔히 책 분량의 압도적인 분석을 생산했으며 우리 중 이를 모방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우선은 아마도 십 수 페이지 정도로 이해를 진전시킬 수 있는 사태에 해 반

성하기를 고려해볼 것은 촉구한다. 이렇게 하려고 나는 노력해 왔다. 어떤 것을 하는 습관이 깊게 들어 있는지,

또한 남들이 어떤 것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지도 문헌학보다 현상학을 하기를 주저하는 다른 이유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이로운 과거의 거장들이 어떤 것을 했는지를 다시 본다면, 우리는 길고 짧은 반성적 분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체제에의 순응에 저항할 용기, 교육받은 계속적 실습을 통하여 습관에 항하

여 투쟁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성적 분석이 실습을 요구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훨씬 더 많은 현상학과 훨씬 더 적은 문헌학에 한 이러한 촉구는 전혀 나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다.

작은 수업에서 소크라테스적 지도를 하기 위한, 사태에 초점을 맞춘 간결한 반성적 분석이라는 장르에 한 나의 명시적 촉구만이 독특한 것이다. 다음 세 에서 반성적 분석의 기량이 학습되고 행해지지 않는다면, 우리

전통은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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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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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저작

반성적 분석(Reflective Analysis) 제2판

총서사항: 현상학의 오솔길(Pathways in Phenomenology)

형태: 페이퍼백 & 전자도서 (pdf)

발행날짜: 2011년 12월

크기: 13 x 20 cm

면수: 200

언어: 영어

ISBN: 978-606-8266-24-4 (페이퍼백)

ISBN: 978-606-8266-16-9 (전자)

페이퍼백: 20 EUR (배송비 제외)

개인용 E북: 10 EUR

기관을 통한 온라인 접속: 100 EUR

『반성적 분석』의 기본 주장은, 현상학은 일군의 텍스트나 개념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접근법이라는 것이다.

현상학 하기는 관찰과 분석의 양상과 결부되는데, 이것을 더 잘 수행하는 법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일상적 예시를 사용하고, 지각하기와 사고하기( 부분의 현상학자들의 주요 주제)만이 아니라 또한 가치평가하기와 의지하기도 다루면서, 저자는 자신의 설명을 단계적으로 제시한다. 주요 구별을 요약하기 위해 많은 도표와 도해

가 사용된다. 그리고 이 책은 또한 독자가 스스로 이러한 접근법을 정교화하는 것을 돕는 연습문제도 포함한다.

이 텍스트는 학생을 위해 계획된 것이었으나, 교실에서 이 책을 사용하기 원하는 “강사를 위한 서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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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이 서문이 스스로 공부를 하기 위한 친절하고 유용한 “첫 번째 서론”임을 알게 될 것이

다. 이 저작은 철학자만이 아니라 모든 분과학문의 학생들에게 적합하다. 그리고 행하면서 배우기의 가치를 인정하며 각주보다는 예시를 선호하는 모든 독자에게 특히 환영 받을 것이다.

목차

강사를 위한 서문

서론

연습문제

제1장: 관찰하기

1. 함께 식사하기의 예

2. 규정의 몇 가지 유형

3. 문화적 규정

4. 관찰과 분석

연습문제

제2장: 보고하기

1. “관찰”의 몇 가지 의미

2. 듣기 좋은 성질

3. 기술적 보고와 설명적 보고

연습문제

제3장: 반성하기

1. 반성 일반

2. 지향된 로의 상과 지향적 과정

3. 자기관찰과 타자들에 한 반성

4. 반성적으로 관찰된 기분과 가치

5. 반성의 다른 상

연습문제

제4장: 의지하기, 가치평가하기, 믿기

1. 가치평가하기와 가치평가된 로의 상

2. 인지와 믿기

3. 의욕, 의지하기, 또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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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화적 성격과 상

연습문제

제5장: 경험하기

1. 직접적 경험하기

2. 간접적 경험하기

연습문제

제6장: 분석하기

1. 지향적 분석

ㄱ. 깜짝 헤어스타일과 맹목/직관 구별

ㄴ. 빈 벽과 연속적 삶

ㄷ. 문을 닫을까요?

ㄹ. 또 다시 소재 한 더미

2. 동기적 분석

3. 형상적 분석

연습문제

제7장: 검토하기

1. 문화적 정체성과 태도

2. 어떤 태도를 검토하기를 향해서

3. 세 가지 태도와 정체성

ㄱ. 젠더

ㄴ. 민족

ㄷ. 환경

맺음말 구입처: http://www.zetabooks.com/new-releases/lester-embree-reflective-analysis-second-edi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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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기술, 정당화(Environment, Technology, Justification)

입수가능성: 페이퍼백 & 전자도서 (pdf)

발행날짜: 2008년 12월

크기: 5.83 x 8.27 cm

면수: 175

언어: 영어

ISBN: 978-973-1997-14-8

책: 15 EUR (배송비 제외)

E북: 7 EUR

내 텍스트는 11개의 소론으로 되어 있다. (1) “생태계의 건강을 위한 행위”, (2) “식물의 구성”, (3) “자연의 가치의 문제”, (4) “환경주의를 비세계적으로 토 놓기”, (5) “기층문화의 구성”, (6) “과학적 기술의 합리성”, (7) “간접적 행위와 기술적 행위를 반성적으로 분석하기”, (8) “현출의 어디와 언제”, (9) “내재적 실존과 외재적 실존”,

(10)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기 못할 때는 언제인가?”, (11) “관용을 반성적으로 분석하기”. 이 소론 중에는 학

술연구를 포함하는 것도 있으나, 이들 모두는 전적으로 또는 주로 현상학적 탐구, 또는, 내가 반성적 분석이라고 부르기를―이쪽이 더 기술적(記述的)이기에―선호하는 것이다.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이전의 텍스트,

『반성적 분석』(Bucharest: Zeta Books, 2006)을 이어 간다. 직접적인 교육적 목적이 없는 동료들도 이 소론들을

읽기를 희망하지만, 내가 강하게 제안하고 싶은 바는, 이 소론들을 하룻밤 전에 공부하고(평균적으로 이 소론

들의 길이는 15페이지 이하이다) 작은 공부 모임이나 학 세미나에서 토론을 한다면 반성적 분석에 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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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반성적 분석의 기량이 증진되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토론의 지도자는 정규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사태 자체가, 기술된 그 로 관찰되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어떻게 더 잘 기술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기술이 잘 되었다면, 그 기술을 어떻게 이어가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 텍스트에서 문화는 광범위하게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그러므로 자연주의는 반 되고 있다. 불행히도 오늘날 철학자들이 흔히 분리하여 고찰하는, 환경과 기술(技術)의 중첩되는 개념들을 해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것

은 도덕적 쟁점이기에, 마지막 두 분석에는 더 일반적인 입장을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해 보였다. 현상학적 논술이란 예시의 기예이므로, 여기에는 자동차, 은행강도, 새, 부러진 다리, 정원, 호두까개, 공원, 길, 뱀, 택시 운전수, 나무, 트럭, 채식주의자 등에 한 참조가 있다. 부분 자아론적 현상학을 행하였지만, 상호주관성의 위치가 정규적으로 암시되며, 실상 모든 곳에서 노에시스-노에마 분석에 의존하였다. 그러므로 마주치기와 마주

쳐진- 로의-사태는 경험하기와 정립하기로 분석되며, 경험하기는 주어짐의 방식 및 현출을 가진 지금, 과거,

미래의 사태에 한 지각하기, 기억하기, 예상하기로 분석된다. 그러면 정립하기는, 구별되고 기술된 상관자 내의 확고하거나 유동적인, 또한 내재적이거나 외재적인 정립 성격을 가진 긍정적, 부정적, 중립적 (넓은 의미에서의)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 또는 행위로 분석된다. “기층문화”라고 부를 것이 권장되는 것의 선술어적

구성이 강조되고, 자아가 관여하는 작동과 이차적 수동적 습성과 전통 사이의 차이가 인지된다. 그리고, 이들이

기본적으로 표면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지향적 종합을 식별하기와 분화시키기에 해서도 말해진다. 마지막으로, 믿기, 가치평가하기, 의지하기 또는 행위가 어떻게 명증화하기에 의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한 기술에서, 인식론과 가치론을 넘어 실천론으로 분석을 진행시킬 필요가 강조된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간접적 행위의 하나의 형식이다. 그리고 환경주의는 오염, 인구과잉, 보존, 보전에 관한 정

당화된 정치적 행위에서 정점에 이른다.

목차

머리말

서론

1. 생태계의 건강을 위한 행위

2. 식물의 구성

3. 자연의 가치의 문제

4. 환경주의를 비세계적으로 토 놓기

5. 기층문화의 구성

6. 과학적 기술의 합리성

7. 간접적 행위와 기술적을 반성적으로 분석하기

8. 현출의 어디와 언제

9. 내재적 실존과 외재적 실존

10.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기 못할 때는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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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용을 반성적으로 분석하기 구입처: http://www.zetabooks.com/new-releases/lester-embree-environment-technology-justification-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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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정신주의, 음영, 의지하기, 지혜(Animism, Adumbration, Willing, and Wisdom)

총서사항: 현상학 워크샵 텍스트 제3권(Phenomenology Workshop Texts, vol. 3)

입수가능성: 페이퍼백 & 전자도서 (pdf)

발행일: 2012년 5월 15일

크기: 13 x 20 cm

면수: 180

언어: 영어

ISBN: 978-606-8266-33-6 (페이퍼백)

ISBN: 978-606-8266-34-3 (E북)

페이퍼백: 23 EUR (배송비 제외)

개인용 E북: 10 EUR

기관을 통한 온라인 접속: 100 EUR

이 논집의 목적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가장 가까운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 도리온 케언스(Dorion

Cairns)의 현상학의 독창성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복수형의) “연구들”이라는 말이 부제에 들어 있다. 이 연구들은 각각 독립적이며, 중요한 구절은 반복되기도 한다. 그리고 접근법에 있어서 이 연구들은 조금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른 것에 비해 일부는 소론에 가깝고 일부는 편집본에 가깝다. 케언스가 출간한 소론들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이 연구의 기반의 부분은 1960년 에 그가 한, 유명하지만 아직 출간되지 않은 뉴 스쿨 강의이다. 이들은 아주 광범위하게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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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작 내의 연구들은 그리하여 그가 어떻게 창조적으로 후설의 저작을 이어갔는지를 보여 준다. 철학의 이상

은 재편되고, 타자들에 한 구성의 설명은 수정되고, 의미전이의 기술(記述)은 확장되고, 힐레 자료(hyletic data)

의 이론은 재편되고, 현출처럼 감각도 음영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후설이 간과한 것 같은 신체의 면모들이 기술된다. 그리고 현출과 의지에 한 독자적 탐구를 모았다. 방법론적 기술이 첨부되어, 기술은 강조되고 논증은

거의 부재함을 더 명확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작해야 할 지점으로서 개별 인간의 심적 삶에 한,

그리고 물리적 사태에 한 감각적 지각하기에 한 초점을 이해하는 것도 저 기술이 도와줄 것이다. 이들이

외견상 자연주의적인 모든 강조를 설명하여 치워버린다면, 이 책 내내 등장하는 의지하기와 가치평가에 한

많은 참조는 또한 지성주의라는 의혹을 감소시킬 것이다. 더 나아가, 현상학을 유아론적이라거나 신체 없는 심적 삶에 한 것이라고 여길 근거도 여기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케언스는 Abbau-Aufbau[헐어내기-쌓아가기]

방법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심적 삶의 일차적 수동적 또는 자동적 하부구조의 중요성을 너무 늦게 인지하여,

자신의 개념을 완전히 조정하지 못했다고 견지했다. 후설이 평생 출간한 사상을 『데카르트적 성찰』과 『형식 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의 수준까지 올리려는 케언스의 노력을 안내한 것은 그러한 개념의 조정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영어에서 현상학을 위한 더 좋은 용어를 개발하려 애썼다.

목차

머리말

서론

연구 1. 지식과 사랑 너머의 지혜

연구 2. 후설의 "제5 데카르트적 성찰"에 관한 안적 방법과 주요한 발견

연구 3. 의미전이의 이론의 적용

연구 4. 힐레 자료에 한 후설의 교설의 재편

연구 5. 신체 내의 상

연구 6. 현출에 한 반성적 분석

연구 7. 의지하기와 의지에 한 기술

부록: 현상학적 방법론 구입처: http://www.zetabooks.com/new-releases/lester-embree-animism-adumbration-willing-and-wisdom-studies-in-the-phenomenology-of-d.-c.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