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多껀 「전정 -...

14
˛多껀 전정 g」 朋鮮常諡問答 4 : 枷肄 :爺 ㎙珤㎋ 町一 缸팖 ㎃杻噓 , :山 ⋯⋯ 九九 ,二 一一 七九 η 六二 년년 ) 中朱次 ,一 歷七五년 中宗 光海 立祖 二子 二八二 宜祖孫 鹿 三四 四七五 (新 르논 四五七년 ˘ 仁祖次子 氏朝鮮 一一七 (內 大輯 十五 ˘ 宗子 頭宗 무론 내려 오논 독자 固有自在하 였읍 득한 민족도 또한 마는 물올 무슨 固有 僭仰 맹이 하는 룽한 볼교 같은 교가 종교를 , = t ="陜 十三 五二 0 , 一五 一干 ^ 度州 十二 州海等 三九 肝川 "陵 ⅲ勝 , = 三四 州趺 五七 , _七 Λ 交河炙 蛾州Ψ 十五 三四 州崇 四六 六0 四九 越浚 三四 四五 度川 礎― 十五 , ,四 州袋 ㅁ卉 一≡ ⅲ陽 六八 五三 川裕 세제 一두 으로 생겨서 명케 土宰神 =하 으로 等神 들올 계시 라는 성의 精缸 사는 ,‘ ⅢⅢ Ⅲㅃ馹馹馹 Ⅲ馹 咽Ⅱ刪 馹ㄿ땜 撥擲堆 搗쌥 좽⅛ 倒坍 헒싹 I」 나라와 같은 것이 더니 로부 나와 상올 디럽히 시게 렵기 한분 바로 받자와 으르 어머리 하늘 상올 계시 에시 시매 다스 에게 신은 늘로 돌아 시니 이멓 늘과 같은 노 라교 라도 생기 급도 善神 위력 잠교 세게 明化합 실현 시키 직직 하논 것이니 룩한 다하 결과 복충 한다 大綱領 道는 특별한 조 상과 명세 ) 이니 정성 러니 뒤에 유교 · 블교 구별할 필요 가 기매 Jㄺ 차차 대개 계니 Jㄺ 합은 세계 하논 의미 나타 입니 Jㄺ 여러 한문으 게지 쓰논 종교 진면 마만킁 려지 되기 마는 꾸준 속하 내려 말씀 약하건 신앙 명칭 Jㄺ 부루 L요 圭旨 天道를 었는 족교 · 불교 서서 유교 · 뒤에 나란 였느 라교 입니 朝鮮民族拔 來歷율 信頂합으 旨를 근본은 君으로 부 나은 입니 搜君 道를 치위 라는 (粗 옷하 자가 音올 이니 한문 글자 야무 알야 ) 天道 善神界 이니 天道 Jㄺ 켜서 또한 러서 Jㄺ 하논 귿 자도 란하 Jㄺ 사롤 , 피에 국가 관한 會謖 決處 하는 것이 , 大祭 L라 하고 교구 L이 하교 濊國 憐天 L이 하는 흠올 마는 , 으로 논 라ㅛ 명의 듯한 엡이 라는 이며 , 무수 켜서 명이 그 득하 합은 또한 天上 명계 하는 것이 祭天 大슘휼 八㎝會 라는 루으 設行하 弓裔 泰封 씨의 승하교 仲多 다하 行하 샹하 φ 글자 볼교 , 상은 Γ L의 音相 似한 였올 으르 · ' 불교 하고 아무

Upload: others

Post on 20-Jul-2020

2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최多껀 「전정 g」朋鮮常諡問答

4

挫뼁쬐셥鐄㎮璃瑀

:

弄蕣

㎾㎿枷肄一晞岬=±㎷:爺㎽

㎙珤㎋町一사肝缸팖㎃杻噓, :山

ㅡ∴⋯一⋯⋯⋯

五六대

歷九九,二

년⌒

一一麻㏂

〓七九斑

η六二㎛

년년

)

中朱

次子

Ⅲ ,一

八대

歷七五년

中宗孫

ㅡ대

歷六七八년

光海샤

立祖二子

十四대

歷二八二년

宜祖孫

鹿

三四대

歷四七五년(新

降後르논

四五七년˘

仁祖次子

一一七대

歷五

一九년(內

大輯

十五년˘

孝宗子

頭宗子

전에는

무론

조선

민족의 청신척

기둥이 뇌

내려오논

독자의 신앙이 固有自在하였읍니

信 仰

다。 아득한

옛날에논

조선

민족도 또한

극히

숫된

신앙올

가졌었겠지마는

그것은

물올

으며

첫장

넘기

되논

때에

조선에는

무슨

固有僭仰이

있었읍니까

태양

숭매

알맹

하는

민족

교와

볼교와

외국

교가

교를

반들

가것

, 弘唯 =

十t

率="陜

十三

五二

拐川光陵

– 一0

商脇∴焌

袈 ,

一五

一干^

度州宜浚

十二

拐州海等村

三九

五七

肝川

"陵

ⅲ勝孝陵

炬 , =

三四

拐州趺陵

五七

拐州杻浚

十ⅱ

六七

拐川赤坡泂

倧 , _七

五Λ

交河炙浚

一 ○

蛾州Ψ陵

十五

三四

拐州崇陵

四六

六0

商脇明陵

三七

拐州僚陵

五二

八三

拐川元陵

二四

四九

水原越浚

三四

四五

度川仁陵

礎—

十五

, ,四

杻州袋陵

ㅁ卉

十四

一≡

ⅲ陽茗陵

四四

六八

拐써洪陵

五三

協川裕浚

조선

엣날

사란

이 세제

一두충

중의

빛과

터운

기운

근원

최고 土

神=하

느닝

로시

러 아드님과

허다한

等神들올

데리고 계시고、

하충인

압흑계에논

ㄱ귓것」이라는 악성의 精缸

이 들어 있교、

그 중간에 우리들의 사는 인간

쎄상이

있다고 생갹하며、

또 이 싸상에는

,‘ 信 仰

ⅢⅢ相ⅢⅢⅢⅢㅃ馹馹馹Ⅲ馹咽Ⅱ刪馹ㄿ땜梱撥擲堆쨈杻杻때冊떫搗쌥Ⅲ짊좽⅛倒坍쐐

맴却錮헒싹

I」

나라와

임금

같은

것이 없고、 샤람끼리

르 무더기져

살더니、 하계로부터 악의 세력

나와서

세상올

디럽히고 사란올

성가시게

굴어서

어지렵기

끝 없거늘、

하느님의 아드님

한분이 이롤

바로찹겠다

하사、

야버님의

락올

연고 능력올

받자와

가지고 인간으르 내

려오셔서、 악의

세력올

핍쏠어머리교 하늘

으로써

세상올

안돈하교 계시다가、

인간에시

아드닌을

낳으시매

세상

다스리는

소임올

드님에게

맡기고、

당신은

도 로 하늘로 돌아

가시니 이멓게

하늘과

같은

질서를

인간애

노라교 나라도 생기고 임급도 세웠다

하며、

또 인생은

상계

善神의 위력올

잠교 하계

표의

재해를

물리쳐서

세게를

明化합이 그 목

적이요 국가논

그것올

실현시키는

조직직

력으로 존재하논

것이니、

거룩한

의무를

다하키

위하여

우리는

모롬치키

칭결과

근로

복충의 덕올

한껏까지

발휘하여야

한다

그 신앙의

大綱領이었움니다。

道는

본래

天理 인생의 당연한

규멈올

나가는

것으 로서、 특별한

이론과

명목이

아니하고 다반

조상과

자손이 서로 전하

이르기를、 이렇게

합이 쿄ㄺ의

뉘닛광명세계

)

일올

합이니라교 하여

정성스레

지컬

뿐이

러니、 뒤에

유교 ·

블교 둥이 들어옴에

미쳐서

그것들과

구별할

필요가

생기매 Jㄺ

뉘」라

말이

차차

道의

이롬치럼

쓰이게

되었옵ㅚ

다。 대개

㎡ㄹ은

광명과

및 신이요、

ㄱ뉘」는

계니 Jㄺ

뉘」라

합은

광명 세계

곧 신의 듯

대로 하논

세상이란

의미롤

나타내는 말입니

다。 뒤에 Jㄺ

의 뉘」란

말이 여러 가지로 변하

교 또 이것올

한문으 로 이렇게지렇게 쓰논

운데 ㄱ一 종교적

진면목이 열마만킁

가려지게

되기는

하였지마는、

그 교캥이 생병은 꾸준하

게 계속하여 시방까지 내려움니다。

이상의 말씀올

요약하건태、

조선에는

에르

부디 교유

신앙이 있어、

그 명칭은 Jㄺ

의 뉘」

뒤에

변하여 「부루L요

그 圭旨는

天道를

현합에

있었는데、

이 민족교는 유교 ·

불교에

앞서서

있어 오교、

또 유교 ·블교 들어은

뒤에

도 그대로 나란히

존립하였느니라교 합입니다。

朝鮮民族拔의

來歷율

듣려

주시오

天道를

信頂합으로써

宗旨를

삼는

조선

신앙의 근본은

國祖 檀君으로부터 나은

입니다。 搜君이란

말이 이미 天道를

실헌하는

치위에 있는

어른이라는 뜻임니다(粗

君의 말 뜻

여기 셜명하지 옷하거니와、 다만

이 글자가

헷날의 音올

적은

것이요 檀이니 君이니 하는

한문 글자의 뜻에는 야무

상관

없는 것만올

알야

두십시오

)

이른바

天道란

것은

天上 善神界의 생괄

범이니、

天道의

실현이란

것은

곧 인간의 천

게화쉐

不外합니다。

그린페

天上 神界를

멧날

에 Jㄺ

의 뉘」라

얼컫교 내켜서 天道의 실친과

및 ㄱㅗ 실친의 담임자를

또한

다 ㎡ㄺ의 뉘」라

고 일러서 Jㄺ

의 뉘」의 말 뜻이 매우

어수선하

여섰으며、

또 ㎡ㄺ의 뉘」의 ㎡ㄹ이 면하여 ㄱ박」

도 되고 ㄱ발」도 되고 ㄱ발」은

또 ㄱ부루」로 변

하기도 하여、

그것올

료시하논

귿자도 픽 혼

란하여첬움니다。

대지 Jㄺ

의 뉘」의 행사

중에는

一 년에

한 변

씩 하느님께

제사롤

드리교

,

이 기피에

국가

민족

진체에

관한

대자를

會謖

決處하는

것이

특별히 충대한

것인데

,

이 大祭를

옛날

부여

국에시는

ㄱ迎鼓L라

하고、

교구려국에서는 ㄱ束

盟L이

하교、 濊國에서논

ㄱ憐天L이

하는

처럼、 따로 이흠올

지어 쓰기도 하였지마는

,

보통으로논

이것올

쿄ㄺ의 뉘」라ㅛ 일컬으니、

광명

세계

있는

듯한

오엡

며,

제사

무수

燈올

켜서

상애

그득하게

합은

또한

天上 꽝명계휼

표상

하는

것이었옴니다。

祭天大슘휼

신라

중떱

에논

八㎝會라는 이루으로써

設行하여、

弓裔

泰封國과

王씨의

고려조젊셔

다 이것올

승하

교、

교려조에는

매년

仲多에

국가의

힘올

다하여

이를

設行하여

君民

샹하가

즐거웅올

함께

하니、

대개

八悶φ라는

글자는 볼교에셔

로되

,

Γㄺ의

뉘L의

似한 것올

취하였올

따롬으르서、

신라 ·

교려

의 八朋台는'

불교하고 아무 관계 없논 헷날

Page 2: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朗鮮常釜

'퇴

‘‘‘

7 俉 仰

㎡ㄺ의

뉘」의 유풍올

지키는 갓아었윰니다。

이씨 초선이 매포된

뒤에논

볼교를

배척하는

통에

八關會란

것도 뀜슐려시 페지되었지마는

그 중심 사실은

고쳐 유교의 문자를

빌어 그대

로 존속된

것이

분병하니 곧

ㄱ府君」의 숭배

그것입니다。

멧날에 정부

이하

데소 콴쳔

어디든지 府君堂이란

것이 있어、

해마다

큰 게

사를

바치교、

또 관리가

새르 임명되변

仕進

하는

첫 막에

먼지

이 神堂에 에배함이 定式이

였으며、

또 시골시는

동네마다

해마다

부락

체의 大祭를

設行하논테、 이 이롬올

보통으 르

ㄱ府君굿」이라

합은

시방도 에와

같은

바입니

다。 이 府君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곧 ㎡ㄺ

의 뉘」가

쪼 그라들어서 ㎡ㄺ안L이

되교、

다시

변하여 ㄱ부근」이

된 것올、

한문에

神을

의미

하논

府君야라논

문자를

벌어다가

쓴 찻임니

다。

ㄱ府君」이란

것온

곧 八關을

표시하는

字形에

볼외하는 것이었웁니다。

그러던

이씨 조선에서는

前代의 八斑會처럼

표면상

국가의

대졔천으로 設行한

것은

엾었

멈하되、 「밝의

뉘」를

숭베하는

고유

신앙의

진통은

公私없이

꾸준하게 치켜 나왔음이 분

명합니다。 ㎡ㄺ의

뉘L의

교풍이 국가의 공적

澄로 페한

뒤에

다만

민간

신앙으로 남교、

巫祝의 굿으르 행하게

되었지바논

,

粗君

이래

의 구원한

道統이

오롄

동안

무서운

의래

문화

시달림올

받으면서도 그 명맥이 지녀 나온

것은 사란으 로 하여금 만속 문화의 검잘잔 합

못내 경탄하게 합니다。

固有信仰의

가장

隆盛하던

시기는

언제입니까

민즉척

자각과

통일

의식이 왕성할

래에는

드시 전붕에 데한

반성과

교유

신앙으로의 蹄

嚮이 深切하여짐이 통례니、

우리 民族史上에

신라의 통일

운동기가

정히 그러한

시철이

었욥니다。

교구려 ·

백제

·

신라의 三四이 솥빨

같이 나란히 섰올

비에 신라가

가창

뒤멀어

지교 또 갸장

약한

나라이었으나、

그 사이에

서 名君哲相이 뒤대어 나서、 반도의 통일은

리 손으로 한다는

氣槪갸

높았논데、 재二四대

貝興王의 때에

헷날

교유

신앙의 단체를

월씬

걍화하여 국민의 精神揀咸올

오로지 이

맡기고、 국가의

괼요한

인재를

이 가운데

서 추려시 샜읍니다。

어떻게 하였느냐

하면、 귀인의 도련님 가운

데서 형상이 아롬담교 聰蕙가

뛰어난

이를

라서

神人의 表象올

삼교、

이 이를

중심으르

걍고한

교단을

조직하여、

국민

도덕의 연마와

國風歌樂의 숭상과

국토 순례의 修行올

勉勘

하는

중에、

그 인격과

수완이 드러남올

기다

려서 그를

국갸의 樞要한

지위에

둥용하는

도입니다。 이 교단의 중심된

聖童올

風月圭라

源花라

花郞이라

國仙이라

仙郞이라

하논

여러 가지 이롬으로 부르고 이 교단에서 지키

신조와

및 덕목음

風月通라

風流敎라

花賂

道라

仙風이라

교 일켤으니、

그 어원은

다 ㄱ부

루」에서

나온

것잉니다。

ㄱ부루」논

무몬

㎡ㄺ의

뉘:의

뻔신한

말입니

다。 이

교단에

에속란

동무들욤

風月徙

·

花郞

·

仙徒라

고 불러시

.

이메들은

국갸의

대사

담임할

뽑힌

삑성으로시

큰 자각과

긍지를

가쳤으며、

사신에

있어서도 鼠興王 이후

로 文

武王代의

몽인

사멉

성취발

배에

이르기까지

년 동안에

온갖

방변으 로 큰 팜동올

하던

물이

최다

「부우L

교단의

츈신이었으며

,

史訌

적혀

있는

바흘

보건대

,

花郞의

수갸

一 而ㄱ

여에

이르렀었다

하니

,

그 덜거지가

얼마나

고 그 중에서

名人물이 열마나

쏟아져

나왔었

논지

데강

김작이

될 것 아닙니까。

ㄱ부루」의

敎田에서

精神

練成에

쓰던

方法은

무엇

이었읍니까

신라

말년의 데문학가

桎玟速이란

이가

磅반

이라는

.유

명한

花郞의 사척을

맏하려는

비두

대걍

아래와

같은

의미의 셔문을

기록하였

움니다。 가르뢰、

ㄱ우리나라에는

신통한

道가

있으니 부루의 가르칩이 그것이다。

그 내용

애는

유교 ·

붐교 ·

도교의 요지가

다 들어 있

이、

인생뿐

아니라

만율올

교화하기에도 아무

부족타

할 것이 없다。

그 일부뷴올

말할지라

도 집에시논

孝道하고 나라에논

忠誠하라는것

孔子의 道와

같은

것 아닌가。 권리 좟지 아

니하논

의무를

다하고、 이론

캐지

않는

실행올

주쟝합은

老子희 道와

같지 아니한가。 악한

이변

무어라도 하지

말교 선한

일이면

어떻게

라도 하라고 합온

佛陀의 道와

같치

아니한가」

하였움니다。

이로써:살

피진대 ㄱ부루」의 道가

고ㅙ의 민

족져

종교에서

횬히

보는

것 같은

유치하고 펀

혐한

가르칭이

아니라

괘우

고둥으르 :말

달한

윤리적

종교요、

또 그 연원은

민족

섕팔에서

나왔올

법하여도 그 내용은

세계적으로 시행

하기에

可合한

것임올

알 수 있음니다。

엣날

에논

이 道의 내력과

내용올

진하는

변둣한

搭이 있었옴이 史記애도 척혀

있진마」= 그련

것이

다 없어져서

「ㅗ 자세한

것올

알 수 없음

심히

유감입니다。

다반 .ㅛ

侈行 방볍에 관하여 단편적 사실이

전해

오논 것올

보건대、 가로되

ㄱ花郞 아기를

맏들교 몽무들이 구롬같이 모여서、

도외로써

시로 떤마하며、 가무 음악으로써

써료,

娛樂

하머 山水를

및아서 어디까지도 돌아다폈느니

라」 하섰논데、 이것올

가거고 花郞과 :빚

그 동

무들의 사죄에

'

칭험하건대、

그네들의 헌써 연

성하던

도먹직 조목은 첫게 국가에 대한 절대

희쟁 녕신°ㅣ요、

그 다음 단체

생콸에 필요

한 신의요、

그 다옴봉무들끼괴의 互抑겅신이

요、

그 나용

싸회척: 녈합에

돼한 동겨씽이였

음니다。

가무

음악은

교태의 어느 교단

생팔에도 따

라다니는

것이지마는、

특히 ㄱ부루」 교단에서

가무

음악에

신비한

笠力이 있옴올

믿어셔

국가

섕괄의 추진은

세로에

자연

현상의 억제

에까지 이 법올

적용하니、

그러므로 신라시태

에는

渶詩나

梵唄띰씨 이외의 우리 고유한

노래

성행하교、

그 유명한

작자는

다 이 교단에

속한

사란이였옵니다。 또 샨수의 놀이를

힘썼

하는

것은、 심상히

구경차로 다니논

것아니

라、 불교 ·

기독교 ·

회회교 둥에셔 교도의 겅싱

나다내기

위하여

교조의

聖璜에

순레하는

것처럼、 ㄱ부루」 교단에서

聖地 표場으로 치는

국중의 명샨대친올

몰아다니뎐서

종교 情緖의

만족과

함계

국토 의식의

훈련에

이바치하논

행사이던

것입니다。

시방

關東의 여러 勝地로부터 금강산에

쳐서

四仙이니

永郞

·述郞이니

하는

신라

仙郞

들의 놀교 갔다논

명소가

많이 있으니、

태저

곰강산은

신라

최고의 釜山으로서、

일대는

花郞敎圈에서

순레를

행하먼

주요한

코오

스에

當하였먼

것입니다。

또 그네들의

순레

하던

영소에는

종교적

성지의

외에

名祖先烈

의 史蹟地도 많아저 그것이 국민

정신의 臨地

敎育上에

응용된

것도 여러 가치

사실에서

상되논

바와

같습니다。

이상에

말씀한

바는

그떼

문척상에

나타나논

사실로써

살펴 알 수 있는

花郞의 敎璉

방법입

니다。

엣날

「무루」致의

끼친

자취에

시방

눈으로

보끄 마.

음으로

느껍는

것이

무엇입니까

ㄱ부루」의 大迫는

초선

나라가

배포되기 친부

티 있어셔、

오래오래 지커나오논

긴 전봉인

비록

이리 부대끼고 저리 밀려서 후세에

그 변둣한

면목이 가려첬올

떱하되、

그 영향

혼적은

여러 방면에 많이 박혀 있움니다。

그 가운데 두드러치고 또 재미있논

사실

한두

가지를

말씀하건데、 하나논

천국

안에

있논

표적

떵샨의 이롬입니다。

즈선

안에시 한

방올

데어가지고 그 곳의 대표가

될 뱐한

고 높은

산에논 대개

그 이음에

白자가

붙어

있고、

그렇치

야니하면

「ㅗ 상봉에

ㄱ부루」라논

이음이 따라다님니다。

친국에

으뜸되는

白頭山의

白자가

이미

것이요、 평안도 쏙의 데표되는

妙香山의 百名

太伯山이요、

그 상봉은

「비로」봉이요、

경도 쪽의 태표져

高山에

長山山 ·

小白山

·

問白

·白雪山 ·白亦山

둥이 사、교、

京畿에

白梨

山이 있고、 龍円山의 上袈이 ㄱ비로」峯이요、 京

城의 圭山이 白⅞이요、 충청도 녹 俗推山의 상

봉이 ㄱ비로」峯이요、 걍원도의 금강산

·

五垂山·

雪嶽山 ·

雉岳山

등의

상봉이 죄다

「비로」卒이

요、 경상도에

太白山

·

小白山이 있으니、 이

'1lⅢ

1::-:I,ⅲ

Iㅣ

I :ㅣ

,1I,IIㅣ

I1나

" 'ㅣ

-

,

|

I

!

,

'

I

i

Page 3: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朝鮮常識問答 ,3

9 俉 仰

들이 각각 -

方의 대표직

지위에

居합은

무론

이거늘、 이것이 최다

白이나

ㄱ비로」라논

이롬

가지교 있음이 기이합니다。

응당

말씀하시겠지오。

황해도의 九月山、

칭도의 鷄龍山、

전라도의 智異山

같은

대표척

샨악에는

그 혼직이 없지

아니하냐

하설

줄 압

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ㄱㅗ 대신

九月

山의 상봉은

思皇峯이요、 鷄龍山의 상붕은

天卒이요、

智異山의 상뽕은

天王牢이라

하여

한결같이 天자、 皇자、

王자의 이롬율

가지고

있음올

아시겠지요。

이러한

天자

계통의

이롬이

결코 우연한

아니라、

실르 다른

데서

ㄱ白」이라

하는

것、

ㄱ비로」라고 하는

것과

바챤가지

의미의

것입

니다。 통틀어

말씀하교 보면、

조선

교대의 신

앙에

친신은

산악올

통르로 하여 인간에

왕래

합으 로써、 샨악은

곧 인간에

연창하여 있는

界의

일부니라고 하여、

一 지방에

있는

최대

최고봉이

신앙의 표적으 로 일반에게 숭배되교、

이러한

샨과

峯올

㎡ㄺ의

뉘」의

샨이라교 일컬

었옴니다。

이 ㄱ밝의 뉘」가

다른

데서와

같이

변하여

ㄱ밝안」도 되교 ㄱ박」도 되고 ㄱ발」도 되

고 ㄱ부루」도 되는데、 ㄱ박」이된

것올

한문으 로

것이 太白이니 小白이니 하는

白이란

것이

며、 ㄱ발」과

「부루」로 된 것올

後世의

볼교 승

러가

블교 겅진

속에

있는

音相似한

문자를꺼

내다가

쓴 것이

「毘盧」 ㄱ비로」라논

것멤니다。

要하건대

옛날

말에 Jㄹ

샨이라

하고 ㄱ부루L

봉이라

하먼

것이

시방

白山이니

ㄱ비

로」뽕이

하는 먈의

본체요、

그 의미는

神山 ·

山이라

고 하논

것이었움니다。 북방의

白頭山으

로부터

남방의

智異山 天王牛에

이르기까지의

동안에

있논

포든 대표적

산악에는

옛날

神政

時代↑

교ㅑ칵瑄㎙↓예

신앙직

의미로 치은

롬이 그 山容石態와

함계

그대

로 流傅하여

겨늘、 다만

사랸만이

、ㅗ 내력올

잊어머리

고 의

의를

보르 고 지낼

따롬밉니다。

산악

이릉의

이야기가

너무

지리하였으니까

다른

것 한

가지를

극히

간단히

말씀할

짓 같

으변、

시방도 보통

가졍에서

淨한

곳에

따로

그릇올

두교 거기

처음

섕긴

새 곡식올

담아

두였다가、

그 다음

햇곡식

날 떼에

묵은

쌀올

꺼내어서

먹올

하여

교사지내

교 새 곡식욜

아넣는

신양이

있어、 이

그훗올

ㄱ부룻단지」라

교 햐는데、 이것이

또한

민간애

남야

있는

ㄱ부

루」신양의

한 고풍입니다。

粧君의

古敎는

近來에

어꽝게

되었읍니까

檀君에서 나온

초선

교대의 神道는、 신라

후에

花郞

國仙의 국가척

활동으로써 꽃이 핀

뒤에、

그 종교적

방면온

차차

불교에게

눋리

교 교화적

방면은

유교에게 비앗기교서、

고려

시절에는

다만

국가의 태펑율

창식하는

의식

으로 화하교、

이씨 초선에서는

「ㅗ 流風艅韻이

겨우

민속

巫N의

갸운데

일어저

있디니、

t

祖 ·

仁祖의

사이에

기무

ㅅⅢ盤올

치러서

심이

불안에

따지고

,

이어

共糾 ·

正祖 이후매

서방으툐부러 天土莩이 듣어와시

깅신계가

란하여짐에

미쳐

민촉의

점신직

빤발력이

개를

쳐들어서、

여러

가지

신양

권상올

낳으니

동학

운동이

ㅗ 중의

하나요、

南苽胡에

자추

국의

侵陵올

맏고 마칩내

국운이 키윰어김올

짇잠을

수 없게

되매、

민족

졍신이

크게

興俯

하여서

마칩매

션봉적

교유

신양의

부홍올

라논

기풍이

난로 디하였옴니다。

機迎에

옹하여

光武

一 ○닌에 羅喆

·

둥이

粗君狡의

η光올

佈明하

고、

이어

倧敎라

교 名號를

바구어서

크게

國祖 숭배에

依하는

진옹

皮持를

추창하여、

一 代인심의

冊하논

바가

되었으며

및 떵합

이후

로 일본의

탄암이

심하여지매、 후계사

金狀이 敎의

본거

白頭山陰의

祖輟어 만수

르 옮겨서、 란강

湃괭배한

조국

꽝斗

순몽의

징신직

지주가

되고

이어

허다한

파란을

치르면서

古道의

血光에

든든한

步武를

내커 나왔움니다。

大倧敎란

부슨

뜻입니까

粗君의 神道물

大侏이라

일퀸옴은

,

하나는

敎門올

부홍하는

光武 ·

隆熙

어간에

있는

떠한

시대 사정에

인한

것이거니와

ㄸㅗ 하나는

倧이란

字義가

敎堆를

端的하게

표현하기에

당하기

떼문인

줄 압니다。

侏은

교대의

神人

의미하는

字요、

또 人과

宗올

합하여

구성

자형을

보진대 人의

祖宗되는

神人힘올

시하였음이

분명하니、

이러한

神人은

桓君이

되질

밖에

없움니다。

또 충교 이론상에

있어서는

神人의 同格이

그 교둥인

계단이요、

또 神人의

合 , 이 그

究忘의

蹄趣인데、

控君

古道는

이론이

아니

사실에

있어

神人無間올

출발점

또 귀착

점으르 하는

디이니까、

이 실지에

부합하는

명칭온

倧으로써

가창

적절하다

할 것이며、

大의

字논

道의

존엉성올

보인

것인

양합니

다。그

러나

倧은

결국

한문올

빈 것이니까、

、ㅗ 원명을

찾아야

하챘지오。

■ 郞塞錄아란 것온 어떠한 물건입니까

종교의 문호 안에논

예연자(先

知者)라

있이서、 神笠올

感通하여 비래사를

세상에

널리 일러준다교 합이 보통이니、 기독교의 성

가운데

있는

ㄱ에레미아」 ㄱ에스갤」 같은

이 또한

그러한

종류옙니다。

조선의 고대

神道에도 이러한

부면이 있어

檀君 때에

神誌라는

이가

秘詞를

남긴

길이 후세에

진해

오교 신라

말년의 道詵

고려 말년의

無學과

같은

名僧이 일면으 르

다 에연자로 드러나교、 이조의 상엽에는

師古(格

菴) ·

李之茴(土

亭)이

다 유명한

예연자

이었욥니다。

^鄭

鑑錄)이

것은

요하건내 중떱 후

조선

의 민간에

성행하게 된 국갸

운명 ·

生民

存亡에

대한

예연서의

얼종이니

,

이씨

조선의

선조인

이담이

代興者될

鄭씨의

祖先인

鄭鑑이란

이로 더불어

錄 씨

이후의

조선의

홍방

接 세를

推歡하여

이씨의

鄭 陽

멎맥

년 다음애는

씨의

鵝龍山

멎맥

년이

고、

그 다옴에는

趙씨의

伽倻山

멎백

년과

范씨의

完山 몇백 년과 王씨의 어

디 멎뻑 녠이 변변히 계송말

것올

논단하는

중간에

인체는 무슨

재난과

연제는

어떠한

愛이 있어、

世延民狀이 어ㅝ하미라는

것을

레차레 예언한

기록업니다。

시방

世間에

通行하는 ^鄭

檻錄)이

것에논

이 李鄭問答의 외에

道詵 ·

無孕

·

土亭

·

格奄

托名한

에연

문서를

灸縮ㅔ쩐하여서 ㅅ

,ㄱ

誠古

全巢올

통들어 ^鄭

鑑錄)이

라고 부르고 있움니

다。 조선이나

중국과

같이 冶亂與亡에

몹시 부

대끼논

국정에서는

말 수 있으변

來頭琳를

리 김작하여 避凶趨古할

길올

얻였으변

하논

것이 인정의 그럼직한

요구니、 이에

대웅하여

생긴

것이 초선에셔는 ^郊

鑑錄)이

요、 똑

이 포

양으로 중국에는 ^椎

古圖說)이

것이 있어셔、

일반

민간에

깊이 신앙되고 있옴니다。

그러변

郡鑑과

빚 ^鄭

鑑錄)의

내력온

어떠

하나

하진대、 郞鑑과

李湛이란

이는

다 실제

인물이라

할 慂媛떰거가

엾으뎌、

또 조선

교래의

에언서르 역대 실록

같은

데 그 명목올

전하

것이 수십 종이모되、

^鄭

躇錄)이

것은

그 가운데 보이지 아니하u꺄

、 ^郞

拮錄)이

것이 생긴

지는

그리 오랜

것 같지 아니합니

다。

다반

이씨 조선이 鄭씨의 혀명올

만난다는

운명셜은

宜祖朗

진으르부터 행하여、

宜祖

丑의 鄭汝立 逆謀란

것이 신르 이를

뻐겅으르

하였었으며、

그 뒤 光海君

·

仁祖 이하의 포든

혁명

운동에는

鄭씨와

筠龍↓

I」

그럼자가

반드

,Y

Page 4: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朝鮮常識問答 60

어론거

겨의

에외가

고,

특햐

巳의

洪福

榮의

獄事에

논 ^鄭

錄)이

분명히

나오니、 대개 ^鄭

鑑錄)이

것은

祖朝로부터 正祖朝에

이르는

어느 시기에

명:

운동상

펄요로셔 자료를

민간

신앙

방뎐에

取하여 미래 국토의 희방척 표상으르 만들어

것인

양합니다。

세상에셔 문제삼는

바는 ^鄭

鑑錄)에

적혀

있는

에인이 맞느냐

아니 맞느냐

하논

첨에

교、 가끔

여기에

대한

질문을

우리갸

받숲니

다마는、 원래

神託이니 에연이니 하는

마위논

直規秘傳에 속하논

,

것이니까、

샹식의 표준으

로써 이를

논의할

대상이 되지 아니하되、

맞는 근거가

있다

할치라로 에인저의 通習

회미한

문자와

멍둘한

표현올

홑겸 맛보기

로 보 교 옳다

아니하다논

것이 어떻게

위험한

일임은

누구든지

생각해야

할 것임니다。

다만

가치 ^鄭

鑑錄)의

근뵨

정신이 무엇인

것만

우리가

섕각하여 보건대

,

대지 ^鄭

擡錄ˇ은

壬辰

·

丙子

大雜

이후

李씨의

조정에

데한

중의

신뢰심이

극도 로 박약하굣

창래에

대하

암담한

정올

이기지

뭇할

츠음에、

량시의

애국자가

민충에게

회방과

慰安올

주기 위하

여、 李씨가

결딴나도 鄭씨도 있고 趙씨·

范씨·

王씨도 있어서、 우리 민족의 생명은

久逮코 불

떨하느니라

하는

신녕을

심어 추려 한 열정이

^鄭

檻錄) 진편에

일관하여 호르는

것 아닌가

니다。

南朝蚌이란

무엇입니까

언제

어디를

물론하고 현실의 국토와

인생

불반족과

苦惱로 충만되어 있어시 생명의

의욕올

현실체에시

충족하게

하는

수는

철대

로 없논

교흣

허다한

국민과

및 사상가들이

다투어 觀念의 위에

이상

사회를

만들어내어시

우선

위안올

얻고 또 회방올

붙이는

일이 많

습니다。

중국

사란이 華胥國과시국이니 蓬萊島니 하

는 것울

만들고、 인도 사람이 喜見坡올

반들고

헤브류우인이 ㄱ에텐

동샨뇨ㄹ 만들고

,

도교에

서 上淸玉京올

말하고、

붙교에저 安妾淨土를

말하고、 기독교에시도 영생의 친당올

말하고、

근세의 사상가에는

토마스 모어는 ^유

토피야

)

그리고、 컁파넬라는 ^태

양의 도시)를

그리

고、 허어버어트 조오지 웰즈는

仝」태 유토피아

>

그린

둥、

헝색색

이상

세계갸

죄다

류의

헌실

섕팔

블만

족합

나타낸

것업

다。

이 가운데

조선

사람이 또한

그 쟁팔

의욕의

관녕척

표상으 로서

여러 가지

선경

秘鄕올

만들

어 나오다갸

근세에

이르러시

連쓰한

내우

환애

민족

생똴의 고늬가

심각하교、

이에

대한

위겅자

총의 무책 무능이 더욱

뭔실척

희망올

엷게

함과

함께

민중의 心目이 점첨 초현실척

관념 세계로 진향하여 희방올

미래에

붙이는

이상

사회를

구상화하기 시작하고

,

그것이 빤

드시 ^鄭

鑑錄>으

르 디묻어 셔로 표리가

되었

유니다。

그래서

누가

챵작하교 누가

발전시킨지를

르게 우리의 앞에는

南胡鮮이 있어서 비가

具人이 나와서

우리를

그리로 꿀어들여다

가、 시방

부데끼고 줄리논

모든 것이 다 엾어

지고 바라고 하고자 '하

모든 것이 저질로 성

취하는

좋온

세월를

가지게 된다

하논

신덤이

민중의 사이에

확고하게 수립하였읍니다。

조선이 어디 있느냐、

그 헝태는 어떠하냐、

연제

어떻게 玭前하느냐

등에

데하여는 명맥

지시가

없으며、 자끔 그것옴

구체척으로 맏

하는

이가

있으되

그 진하는 바는 또한

단편

척이요 또 匯旺不 - 합니다。

正祖朝의 태문호 朴燕腔이란

이가

許生이라

초인올

내세위서 그 르 하여금 長畸

·

厘円의

사이에

있는

무인도를

개척하여 맏씽스러운

없고 먹올

것 주체하지 못하는

사피흘

만묻게

것 같음도 남초선의 一 표상이머、 純祖 辛

未의 亂에

洪卄來가

西迫

인심올

선동하논

「이제

국세가

蒼茹하고 민생이 도탄인데

辛으 로 濟世의 聖人이 日月¼下 君王沛上 伽

倻洞

紅衣島에 降生하여

鐵埼

— ○만으 로씨

상올

澄淸하게 되었나」 함도 ^郡

鑑錄)의

신양

이용한

一 행동이였읍니다。 兩來

다시 뻑이

년에

세태가

디욱

맏 뭇되고 인심이 점첨 현설

' 信 仰

ⅢㅃⅢㅃ떼

'--!#,ㅏ

";:I」

Iㅣ

;ㅣ

i

,

I

I

i

!

i

i

,

I‘

.-ㅣ

*”

-,

로서

乖推피티하는

대로 남조선

신앙이

그대르

보편

深固하여겨시、 드디어

이 신양올

내용으

로하는

비밀결사가

성립하교、 내켜서

그 실현

위하는

혀명 운동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

옴니다。

대지

납조선이란

것은

본래

조선

민족의

,苦

대한

정신져

반발력으 로부터 –만들어변

- 이상

사회

표상이니、 이것을

語義上으르 살

피진대

조선어에

南올

ㄱ얇」 곧

진방으로 새기

니、 남조선이라

함은

곧 진방에

있는

조선

영원의

조선을

나타낸

것에

불외합니다。 연

게까지고 푀방으로 품는

조선이

곧 남조선입

니다。

.

남조선은

세게

각국에

나타난

유레에

하여

여러

가지

특색이

있음올

우리가

주의해

합니다。

①은

타국의

이상

사회들은

대개

주콴관념적

산물이거늘

우리

남조선

사상은

캑관적

사실

충동에저

자연히

성립한

점입니다。 바꾸어

발하면、 져것들은

일시

一 인의

작자와

意匠이

있거늘、

여기는

그린

것이

없고 으밴

동안의

여사저

오구가

민족

진체의

심중에.퍼

꼼더꼼

표상화하여

가논

것입니타。

:

②논

다른

모든 사뙤

이상온

完整固定하여

對궈紵栯㏉避拙托蚓때

수 있논 진업나다。

곧 어느 지기 여느 계

어느 형태의 이상을

실현하었올지라도、

조선

"미

래의 조선은

의연히 우리 前頭에

으니까

남조선이란

것은

영왼히 완성될

기한

이 없으며、

조선인의 이상이 자라는

대르 인

류의

사상이 나갸는

대로 남조선의 내용도 항

무한한

진보 발전올

계속할

약속으 로 있움

니다。

③은

다른

종류의 이샹

사회들온

본래 한 공

중누각이니까

忽現忽消해도 그만인

것이지마

논、 우리의 남조선은

진보한

형태에

있는

민족

운명의 판결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어디까치

고 행동척으르 실현에

매진하지

아니하면

것입

。 어

시기

있어

민족

실현

남조선

시기

사회

혁명의 성취가

남조선이며、

그리교 문

파의 원리와

인류의 양심에

기본한

그비그래

항상

노선이

죄다

한토막한토막의

남조선

것입니다。

남조선

신앙은

기왕에

있어서도 幾多의

사적

소임올

치렀지마논、 이컷을

의식적

지표

로 쓰는

금후에

거기

대한

기대가

디 클 것올

우리는

쟁각합니다。

束串=天

道致는

어명게

생겼읍니까

壬辰倭亂과 丙子胡亂 둥 외환에 대한 조청

의 무능합과 당론 투쟁과

세도 겅치

둥 내청에

나타난

仕宦 계급의 올험치함은 마원ㅙ 민충

으로 하여금 기성

국가에

대한

信倚心올

샹실

고、 먼중

자신의

믿으로+터

북반쳐

올라오

힝으로써

신사회를

진섣하논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감각하게

하는

경향이

哲宗

·

宗의

사이에

이미

극도에

달하였는데、

이메

一 변에는

중국올

거쳐

물어온

키득교 신앙이

친주학

ㄸ工 서학의

이롬으로써

한참

민간에

투하여

가서、 말하지변

사상져

國雖來의

느낑

가치게

하는 점이

있었읍니다。

사회적 .

졍신척

兩忠雖올 ,

手로 타개하

리라는

弘碩올

품고셔

信行의

관문올

뚫키에

애쓰던

度州

士人

崔濟思(水

ㅛ)가

哲宗

庚申

仝灸9 四월

五일에

ㄱ天道L의

계시률

연이가

치고 ㄱ侍天圭」의

길이야말

로 신친지

개벽의

열쇠라

하여、 감연히

그 신념올

멘중의

사이

선포하교 이롬하되

동학이라

하니、

대개

서학에

대하여

국민

고유의

신덤임올

내세운

것이며、 친주

곧 裡君

이래

진봉

신앙의

핵심

ㄱ하느님」올

붙잠은

점애서、 ㄱ동학」의

이름

헛되지

아니하였움니다。

사상이

겅히 기대의

、요구애

져응함으로

써、 怒涕의

力로써

민중의

사이에

퍼져

갔지

바는、

그 세력 결성이

위정자측의

주목올

≠세우만의

,

濟愚는 바킴내 잠허시 道에 殉하고、

准時亨

(海

月)이

ㄱㅗ 道統을

전하여 교단의 長育올

洛遯軟

行하논 가운테、

교도충의 全奉準°ㅣ

교의 밀면

Page 5: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朝鮮常識 Fnn 答

2

홅玩螢珌敎誥若

'1옆

眷흡

사회적

겅향을

행동화하여、

高宗

甲午에

ㄱ除暴救民」 운동올

진라도 古阜곱ㅜ에

일으켜서

다반

조선뿐

아나라

동양

全局에

一 大震姐을

으며

、 빛

이 의거가

국제

마찰의

실돼에

돌아

교、

교의

명맥이

로 숨올

밖에 엾으매、 時亨의 후계자인

孫秉熙

(羲

庵)갸

일본으 로 진너가서 李祥憲이란

익명

으 로 조야에 動作하여 국제

조류를

타는

신국

타개를

꾀하다가、 翅日의 戰이 열림과

합께

국내에서의

행동올

재개하기에

착수하였더니

그 앞찹이로 나선

李容九의

배반올

뱐나서 雄

岡가

좌철하교、 光武

一 ○년

一 월에

孫 자신이

급거히 일뵨으 로부터 귀국하여

흑켁질담한

勞를

졍리할새、 동학올

교쳐 친도교라

이르교

시세에

순응하여 교도의 政敎

횬동올

戒筋게직

하교、 오로지

內省自新의 방향으로 졍진하니、

이 기간은

동학의 사쾨

행동

면에 있어셔 ,

否運이였으나、

그 교리 발진、

교단

鹵成얘

어서는

도리어 天與의 一 好機이었움니다。

그러나

친도교는

오히려 친도교인만의 친도

교에 그지고、

그 존재의 의의가

특수의 한계

벗지 뭇하더니、

교단

경영의 여력이 일반

교화

사엽으로 넘겨나와

홀러서、

사회적

화의 인연이

생기고、 다시 己未

三·

一 운동의 중

추진력이

됨에

미쳐서

교가

드디어

조선의

친도

교 로 천하에

인식되

었옵니

三·

一 은둥

이후의 친도 교에는

교단

발진상의

갖가지 약속이 있었진마논、 거기에 대한

인식

행동이 아직 충분한

것 같지 아니하며、

다반

ㄱ天道L의

본원인

친주의 실체를

조선의 구원

천통에서 파악하려 하는

경향이 차차

권저

하여 감은

반가운

현상이라

할 것입니다。

Π

類似宗致란

것은

무슨

意味압니까

유사종교란

말은

블교 ·

기독교와

같은

기성

대종교의 외에

아직 국한

특수한

졍도 또 형

태로 존재하는

교단올

갸리키논

것이니、

정의

여하에

따라서는

대종교 ·

친도고와

같은

것도

아직 유사종교 로 칠 수가

있으며、

이 양자논

조선

안에서

이미 벼젓한

신앙

단체의 실질을

갖추었으니까

별문제로 하교、 이 이외의 소소

교단은

우선

유사종교의 계열로 귀속할

없올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가

주의할

첨은

조선에 있

모든 유사종교는

그 歸向한

바 진통적

검꽈

발생한

바 사피직

배경이

거의

다 通=

一 致하여

天道

신뢰、

난조선

現前에

있으니、

이것들이 능히

名相由ⅱ를

초월하여

大原애

태한

반성

자갹올

깊게

고、

醉化昇華를

둡한

다옴이

괸겸에논

선조선직

일태 민즉교

형성하

고、

다시

교리 확충에

맡미암는 윤리

세계교 르까지 발진한

약속에

들어

있음을

우리논

믿수니다。

도매체

인류의 문화

생팔에

있이서 충교가

떻게 되느냐도 문제요、

또 조선인의 정신직 구

심력이 능히 완전한

귀일청을

성립시킬

만하

겠느냐도 문제라

하셌지요마논、

우리는

종교

는 불멀의 깃이요、

조선인도 조선

청신옹

지니

어서만

인류

의식을

바료 붙잠게

될 것올

믿욤

으 로써

조신

문화의 全系列

가운데 있는 종교

표상올

결코 등한시하지 못합니다。

儒 學

田 搖敎는 언제 들이와 어떻게 行하였읍니까

유교는

支那

교레의

사상

·

신양

·

정치석

·

수양상

규범올

一 四0○

년 전 챰의

平縣人 孔子(名

丘、 字

仲尼)의

인격파

이녕으

로써

종함

정리한

敎円이니、 그 대용이 인생에

切近한

학문힘으로써

一 에 유학이라교 이루니

3 儒 秊

山■ㅁㅐ"Ⅲ

ⅢⅡㅃⅡⅢ

:ⅲ

田”

-Iㅔ

""I,ㅏ

:r

다。 儒논

字形上으로 보면

世의 需要에

응햐는

人올

나타내였으니 대개

도덕 ·

학에 '르

인민

지도하는

師表的

인물이 鏑의 본질압니다。

그리교 儒의 行은 ^大

學)에

표시하여

있는

誠意正心、 修身琦家、 治國平天下에

다한다

것입니다。

孔子가

古道를

집대성한

뉘 孟子

·

荀子가

論올

약간

천개한

외에、 漢·唐의

間에는

학자가

訓誥훈只旿浙 °ㅣ외Φ를

일삼더니、 宋儒

뷸교의

향올

받야서

그 哲理的

발진에

致力하여、 유

교 드디어

성리학올

이루니、

程朱의

學이

것이요、 程朱

중심와

宋學에서

오히려 精到하

못한

부분은

조선의 李滉(退

溪)애

이르러

완성을

보니、 滉은

실로 유교 철학의

大成者

이며

따로 程朱學의 밖에시 유심론죄

경향올

취한

一傍系에

淮汪學이

셌:어:서

로 꾀티어

학외

대용을

충실하게

하고 있읍니다。

어디시든지 支那의 문화와

학술이 들어걀

에는

유고가

따라

들어갔다고 볼 수 있으니까、

유교의 조선

천래가

戰國 秦漢의 間에 있을

추상치

못할

것 아니로되、 만일

유학

機關

설림을

표준으로 한다

하면、

유교의 진래

연대는

매우

降下될

밖에

없읍니다。 유교의 국

림대학을

國學

혹 大學이라

이르니、

그 창팁

이 고구려에서는

小歟林王 一一년兮횬↓、

一 六○

0년

츰 못되논

진에

있었고、 백체는

史에

문이 없으나、 小獸林王과

동시인

近肖古王 진

후에 그 五經博士의 일본에

이른

者 있으니、

역시 유학의 무슨

시셜이 있은

양하교、

신라

월씬

뒤멀어져

통일

후인

神文王 一 ,년

矢↓

창림올

보니、

의외로 너무

遲晩한

느낌°ㅣ

있움니다。

대개

삼국시태에는

文敎가

다 불교 충심이어

유교의 존재가

두렷하지 못하고、

五經과

것도 유학보다도 문학직

의미로 공부함에

그쳤

음이

그때의

실정

입니다

교려에

내려

도 유학의

生이

고쳐

치치

교、 진

작부

國學과

文廟統

軒㎋

˘

시설이

있었으되、

그 蕭條不桭소추石한

포양은

烈王

安裕(晦

軒)의

詩에

ㄱ香燈處處皆祈佛、

絲管

家家競祀神、

唯有數間夫子廟、 滿庭秋草寂無人」

이라

하였옴과

같습니다。 安裕의 손애 儒學

興의

초석이 놓이고、

또 朱子學이 수입되어서、

그 동지와

및 문하의

혐력으 로 유학이

신줄발

하였다가

,

교러 망에

鄭券周(圃

晦)가

나서

宋學에

篤工올

쌍아

동방

性理쭈의

祖로 일켠

되었움니다。

이씨

조선에

들어와서는

전태 崇佛의

반동으

로 유학이

국켁척으 로 崇奬되어서、

마칭내

신계에

있는 독재자의

지위를

가지고 明宗朝

李滉이

나서

精深透徹하여

斯文의

泰斗가

고、

그 풍화가

국내외에

ㅛ편하였으며、

뒤에

李珥(栗

谷) ·

金呂協(擬

岩) ·

李珉(星

湖) ·

奇正銀(薇

沙) · m恐

(良

薛) 둥

醇佈가

代마다

起하여、 시러금 유학의

聳光올

꾸준히

保維하

였으벼、 국말에

있어셔

柳麟錫

·

崔益鉉(勉

Y

郭鍾錫(倪

宇) 등의

얘국운동온

별개의

의미에

儒者의

권의를

발휘하여

자못

人慈휼

强케

하였움니다。

또 평안도는

商族之區요、

합경도는

弓馬之

鄕이라

하여、

儒術

文學에

외어

있디니、 仁宗

朝에

蚌于浹(遯

庵)이

平璵애

교、

姙宗朝에

橙愼(鶴

庵)이

會ψ에

나서

天亢올

깨천으로부

텨 또한

다 橘化田內애

들어왔움니다。

田 朝蚌에도 程朱 以外의 玭派가 있었윱니까

조선의

유학은

敎椎的으로 程朱卑

하나를

강하여、

조금만

異㎀를

세우면

身家에

치경이었치마누、

그 가운네도 약간의

異派

없지

아니하었읍니다

'

中宗朝의

徐敬德(花

㎻)이

秕渠學⌒岵拓㏆斜√和

때아w=싸

,떴

ㅓ帑ㅓ

i1ㅓ

.ㅓ

退溪 李滉

Page 6: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嘲鮮常橄F.,答

4

뉘다앉γㄹ 土하

교、

舶宗朝의

鄭珥斗(霞

谷)가

陽 시는

동시에

萸西兩睡m#旽

J애

역대

艾敎에

明學茄瑪虹俯旽♂㎽,枾γ렴圭하

고,

純祖朝의: 金正 유용한

稀賢올

桭祀하니、

이것올

文朋從祀라

巾綬

例)으ㄹ

N潾

■ 陞庶“ㄸ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로 승무한

이는

이하의 十八인이니、

보통

十八

國畢에논

으례히

文廟률

메풀고 孔子튿

모 儒賢이라고 이룹니다。

娃名

崔致遠

鄭夢周

金宏弼

鄭汝昌

趙光祖

李彦迪

金따序

金長生

宋時烈

宋浚吉

朴世采

욥 푤 좋 줆쫓 쫓 훑 퐁 홀홑: 흩 ⅝ 숲흑황쓸끝字

屢 畢끓 播壤 渙 盡琴 뮨漫醬 藿= 嗇擢稈 敬

唜 奎奎 姦茶 莞 番 姦 整唜莞 歪 姦 姦⅛唜蒼 詮Π

時代

及 略=

신라

碑文王時

翰林、 方言으 로 九脛올

解하고 또 吏道를

깃다。

신라

ㅍ康王時

翰林學±、 唐에시

挫第하여 艾名이 內外를

動하다。

高斑

忠烈王時

大擧士、

유학올

芷興하고 宋甲윰

전래하다。

교려말

大從완으 로서

순국

.

束方理η의

祖르 이묜다。

조선

成宗時

遺逸、

金宗直의

문인으 로 燕山

戊午에

被禍。

同、 同。

同中宗朝

孺臣、

유교척

급진

개석을

피하다가

被禍。

同明宗朝

右樊成。

同中宗朝

吏判、 宣祖朝

大提擧、 束方

一 代의

儒宗。

同中宗朝

俑臣、 仁宗의

貼官、 湖南

締η의

先珥。

同宜珏朝

吏兵判

,

大提擧,

^

學輯要) 共他률

撰하다。

同宜租朝

遺逸、

孕과

德이 卒珥와

幷稱하였다。

同宜丑朝

逍逸、

仁祖朝

刑判、

胡蚌

淮學의

宗。

同宣租朝

文科僉正

,

卒珥

親炙

,

壬k亂

起堆殉國。

同宣租朝

遺逸、

孝宗朝

祖判、

沙溪의

子。

同孝宗의

師로서

殊遇률

받고、

蔽宗朝애

西人의

領袖이었다。

同孝宗朝

吏判

,

宋時烈과

同宗

同琺으로 兩宋의 稱이 있다。

同肅宗朝

左識政、

老少分論의

際에

和解에

苦心하다。

이상의

遐擇은

仙稀ψ上으 ㅗ 可覩할

점이

교 또 錐論

이후에논

거기

야빈

舛가

없지

니하나、 다 ,

代의

멋인임은

들림 없움니다。

■ ,院

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흡院의

名은

肛 玄,의

晦에

생기니、

본래

궁중에

있는 薔徘외,

綸修處블

일컫던

것인

데、

宋代에

지방의

"人

士子의

공부하는

處所를

만들거놀、

조겅에시

기기

무슨

柑院이

이름을

주고 그 설립자르씨

助敎를

삼으

니、 이

르부터 자阮이

학교의

柯이

되어서 瞼

·

石鼓 ·

졌姬

·

白ㄸ洞 둥의 四大캅院이

들리

고、

더육

江山 南康

五老¼下의 白旺

洞書院은

朱子가

이륜

재홍하여

山旺泂段롬

고 士子를

데리

교 강몬한

끗으로서

天下애

知名하게

되었음니다。

조선에서는 :宗

三六년兮,쁘

)레

경상도 뾰

基郡守

用世隅이

그 완내인

小白山下 白袈洞

竹溪에

교려

유교의

중흥자

安裕의

苗居

옴올

알고、 거기 祠宇을

세위 추추로 항사를

행하

고、

또 開水합제

鈿淋 三머여

근올

연어

판 돈으로 經幇올

구잉하여

地方 諸生의

공부한

커리룰

삼으니

,

당시에

이를

白I洞

昔脘이라

고 일러시、

즈선에

있는

뽐院의

–효시

되었움니다。 뒤에

李退溪갸

뾰基

郡守로 와

이를

보 고 私人의 깅영에 맡겼다가논

中廢

염려가

있으리라

하여、

이에

白鹿洞

故酊

처럼 조첨으르부터 賠額頒苔싸ㅕ뱐시하교、' 아울

러 田土를

붙여셔 학생의

依箝虛가

되게

합시

사교 청하여

,

道伯의 奏閔에

의하여 明宗이 紹

侈甘晥이라고 賜額하교、

^四

各五經

) ^性

理大

全ˇ 둥 서척욜

頒賜하고、

또 學田 ·

奴婢를

부하니、

조선에

있는

서원

賜額이 이에

始하

였움니다。 이로부터 선현의

향사와

士林의

岩묩

위한다논

서원의 설럽파

아울러、 국가

인외

철차인

賜額의

칭원이

四방에저경쟁적으

르 일어나서、

그 수 六八O魚

뺘㎼巴、 莩祀

ⅲ외

수 一 三四九명翁硏居도 肛ℓ의

많옴에

놔다랐

는데、

그것들섹

질게튿

보컨대、 寒賢譁푸÷

차 :됫

융로 시교、

그민

棚*勞

功의

賤爭凋파

佈者의

합찹

소굴로 화하여、

末流의.폐

勝官할

수 없기에

이르렀옵니다。

그러나

특권계급의

錯綜한

관계

때문에

여키

손율

대는

이가

없더니、 高宗

초에

宜大院君이

橓政이

되면시

단연히

斧敍올

려서、

,

人쑈祀꽈

崇奉無謂의 것올

一 *毁

하고、 펄요성이 밌는

것으르 四七由뱐을

남겨

댓은

찐씰로 宿弊俄扶의 일대 쾌거이었읍

니다

.

存留

四七 서원은

下와

같습니다。

所在地

名秤

ㄹ主

授 道 田城府

Ⅲ城 崧陽*院

文忠公 鄭σ周

磁仁郡

挺仁 深谷甘院 文正公 趙光祖

坡川郡 坡써 坡山i院

文簡公 咸珥

Ⅱ州郡 Π州 江 渶 剩 文正公 宋時烈

ㅃⅢ

甛=肛

Ⅲ"柶

‘‘

ⅲ +

江華郡

江華

廣州郡

依川

金浦郡

金浦

抱川郡

抱川

胎興郡

果川

安坡郡

陽城

始興郡

果川

卨陽郡

高陽

忠淸北道

뎠州郡

忠州

淸州郡

淸川

忠淸南道

詮山郡

連山

治山郡

魯妓

扶餘郡

鴻山

全怪北道

井邑郡

泰仁

全羅南道

長坡郡

長城

光州郡

光州

斑尙北道

皮州郡

度川

皮川郡

度州

連坡郡

玄風

安束郡

硅安

安束郡

安束

榮州郡

頗興

善山郡

善山

尙州郡

尙州

尙州郡

尙川

皮尙南道

咸陽郡

咸陽

東萊郡

束萊

晋川郡

晋州

固坡郡

岡城

居틈郡

居逞

烈 祠 女忠公

金尙容

節 祠 文正公

金尙宙

牛渚幇阮

艾烈公

趙 寇

髓淵善晥

文璵公

李德뽄

四忠落脘

忠軾公

金昌樂

德坐落晥

忠貝公

吳斗寅

쪼江묩晥

艾烈公

朴泰輔

功 祠 莊烈公

權 慄

烈 祠 忠愍

林斑茱

忠 祠 忠愍

李瓜群

遯琺落院

女元公

金長生

啓岡宙院

文正公

尹 煌

烈 同 文暝公

尹 奐

武城苗晥

文昌侯

崔致遠

筆捿苗脘

女正公

金텨厚

忠 祠 忠烈公

高敬什

西岳書晥

弘孺侯

薛 聃

玉川菩晥

文元公

李彦迪

道束φ院

艾敬公

金宏弼

陶山宙院

文旽公

李 滉

屛山욥晥

艾忠公

柳咸筵

紹侈宙晥

文成公

安 裕

金烏=晥

忠烈公

吉 再

興妊蕃院

女正公

失浚吉

玉洞齒院

ㄸ咸公

黃 흉

藍溪숍院

文ㅄ公

鄭汝昌

樂安簧院

忠烈公

宋象賢

烈 祠 艾烈公

金千鎰

烈 祠 忠武公

李舜臣

忠 洞 忠剛公

李減源

海 道 海州邪

海州

聖 祠 淸忠候

伯 萸

平山郡

不山

師 祠 莊姉公

中烘撫

延白郞

白川

文禽苗㏏

文成公

莩 珥

殷栗郡

長淵

瓜陽吝η

文純公

朴沚采

平安南遮

平”府平坡

△武깩祠石쑈

φ如=外

明四將

安川邢

安州 !

祠 忠莊公

南Ⅱ興

永柔郡永柔

△三忠祠諾茁亮

·

岳飛

·

文天群

平安北迫

定州郡

定州

姉 祠 忠烈公

郊菩

宰ι郡炒杏山

△酬忠祠柑뾰休”

·

松奐惟敢

原 道 寧越郡

寧越

彫姉짭院

忠止公

朴彭年

金化郡

金化

忠烈땁魄

忠烈公

洪命耉

致原郡

鉞尿

忠 祠 忠武公

金」河

咸錢南迫

北古郡

北甘

老德宙晥

文忠公

李恒面

(△

팠 폰인

짓온 ㅖ에 〃"왼

것인니다

)

成均棺온

무엇입니까

支那 고대의

교육

제도에서

충양에

있는

고 學府를

大單이라

이르 교 거기

稚極의

칭을

샤용하니

庠序상써도 , 이요、 肝雍ㅝ⅝도 一

이요、 太學도 一 이요、

그리고 ㄱ咸均」도 一 이

었읍니다。

그것들의

명의와

유래에

대하여

說이

많지마L∶

다른

것은

그멤

두고 여기

均의

어의반올

찾아

보건대 량시의

대학은

北束西南의

五學院으 로씨

구성하여、 남방의

成均이요、

成均에서는

음악에

말미압는

도야를

맡았는데

,

당시의

대학

교유은

악이

중심이어서

대학의

주입

교수를

大司樂이

교 호칭하는

터임으르씨、

움악학원인

咸均

태학의

대표적

명칭올

짓고、

지방

태학

#꾹

Page 7: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朗鮮常註問答

‘‘

i 度: ㅑ

유이랸

말올

戍均之法이라

일렀다고 합니다

.

성균의 字羲에

대하여는

결합

있는

것올

咸하여

ㄱㅗ 過不及올

均平하게 합이라

하기도

하며、

또 음악에

調子를

맞추는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일변

대학생의 선발

방엎은

인생 八

세면

王公

이하

爪人의

자제까지

다 소학에

어가

이를

마치고、 十五세면

친자의 諸子와

人의

邁子와

民의

준수한

者만이 대학으 로 진

입한다

합이 통셜인데、 후세에

태학생이

많아

수친

넘게

되태

대에

이르러

.급

콴리의

자제를

위하는

國子學올

따르 메푸

니、 國子라

합은

周代에

귀족의

過子를

태첩

하여 부르던

이롬으로서、

國子莩이라

합은

친용

대학올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北

이후

隋와

唐의 때에논

國子學

이하의 여

러 학교를

抱理하는

관서를

만들교 이것올

子寺

흑 國子監이라

이르니、

이렇게

園子툐은

본래

유학

訓專

본위의 교욱

행정

판청이던

이치마논

후에는

國子學

·

國子監

할것없이 다

뒤섞어서

대학의 -

명으르 쓰게 되었움니다。

要하진대 대학이니 國子니 成均이니

하는

국가가

콴리 양성올

위하여

중앙에

걸치

하논

최고 학부의 롱명임니다。

조선에서는

럽대학올

고구러

·

신라에서는

國學이라

하고、

고려에서는

처음

國子監이라

하다가

國學

成均

監으로 고치고、 이어 監율

館으로 교쳤디니、

이조의 太祖 成均館올

仍匿하여 유생

敎誨의

任올

字케 하여 국먈에 이르고、

이제까지 그

이롬이 남아 있움니다。

■ 四學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成均缸을

국빕대학이라

하변

그리로 들어가

준비를

시키는

관림학교가

四學이란

것임

니다。 곧

이씨

조선에시

ㅛ려의

東西學堂制를

변통하여 都城內를

동 ·

시 ·

·

·

북의 五

부로 구획하고、 각구에 ,

학교를

두고 이를

·

서학

·

중학

·

남학

·

북학이라

하교、

총킹

에논

五부

학담이라고 얼컫던

것인테、 艾宗胡

북학올

없애고 동 ·

서 ·

·

남의 四학으 로

교쳐서、 약간

홍페를

치르면서 뉘에까지 게속

하였움니다。 정원은

각 맥 인이었움니다。

시방

둥대문

대에

있는

束孕洞과

중앙방송국

쥐의

西卒峴과

萸十字橋、

南下川避의 中學洞은

그 학교의 소재치이던

곳입니다。

鄕校란

것은

무엇입니까

지방에

있는 유학

기관올

鄕枝라

이르니、

공림학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기원이 고

려 仁宗時에

있으되 충간에

쇠미하여 유명무

실에

가깝더니、 이조 太祖 원년에 諸道의 按

察使에게 명하여 학교의 홍페로씨

守令

考課

(성

걱 교사)의

,

目올

삼은

뒤에、 府

·

·

郡·

縣의 소재치에는

반드시

향교를

설치하여서

아느 고올에고 없는

데가

없이 되었읍니다。 그

재도는 얼흔 만하던

서十위

成ηm을

소규모

로 축뵨한

깃에

불외합니다。

이조 억태의

鄕小에

태란

권장은

심히

至한

것이

있어서

太宗朝 襁近의

鄕孕봐目、

祖朝

李珥의 鄕孕之制、 孝宗胡

宋浚古의

鄕η

之規

둥 建白이

있논

족촉

그것을

詐施하였었

진마는 실게에는 이러한

벼규갸

室文으 로 돋

아가

고、 鄕小온

매개

지방

유생의

지위

새럭

다투는

戰拐으 로 화하여벼랬움니다。

鄕孕

유생의

정윈

수는

府牧엔

九○

인、

都述府엔

七○

인、

郡에는 五0인

柝에는 三○

인이였

움니다。

揮奐이란

것은 무엇왈니까

멧난

처욤

학하

村는

先聖

先師

ㅄ㎹

앞에

芹*의

疝올

올리

교 敬

倂의

誠올

피니、 이것온 #英

이르고 또 揮奠이

라교도 하었움니다。

揮꽈

筽은

다 놓는다

이니 간단하게 茶脇올

놓고 지내논

제사란

입니다。 후에는

보몽

뮨표에서 춘추

兩次로 孔

子와

및 「ㅗ 配祀者에게 致灸하논

것올

석젼이

하여、

그 시기는 唐에서논 춘추

兩仲의 上

丁η巴

혹 上戊日올

쓰고、

이후에논

오로

지 上丁올

썼는대、

ㅗ선에도 역시 上丁올

씀이

통례이며、

그 체글도 후세에논

寀屈뿐

아니라

魚肉 所果를

다 올머서 古技를

떠난

뚜렷한

典이 되었옴니다。

.

7 冊 *

■ 居τ란 것은 무엇입니까

齊란

것온

엣날

학교의 기숙사니、

'居

齋라합

성균관

·

四學

·

鄕校

둥에

숙식하면서 勉學

합올

이름입니다。

居齊하논

이를

居僚生

·

齊儒生

·

癖儒라교 일켠습니다。

齊논

明倫堂

슈娥J의

앞에

좌우

두 체롤

깃교 左萸에

있는

것올

東齊、 右西에

있는

것올

西僚라

이르며、

븍히 성균관에는

上下齊의

別이 있어시、

生員·

進士 둥 유자격자는

上僚에

居하고、

그냥

學햐는

者는

下南에

居케

하였옴니다。

居齋논

擧仗事目이란

것에

의햐여 避取

도 批陟되며,

居齋儒生의 생괄

규범으 로는 學齡이란

것이 있

이에

遂由하는

멉이었움니다。

그리교 齊生

活에는

詳學

·

考試

·

賞冊

둥의 각개

규정이 있

었옴니다。

儒敎의

朝鮮에

준 形狂은

어황습니까

유교논

그 내용이 상식척

·

현실척의 생콸

리요 또 동양

고유의 것으르서

우리 실제

괄에

시투른

것이 없고 또 최근 五、 六맥 년

동안

우리의

유얼한

윤리척

기준으 로시、

당창

우리 쟁팔규범이 거지반

”ㅗ 속에

있논

만큼

영향의 深廣합이 다른

敎學의

比가

아님니다。

이제

ㄱㅗ 상세한

것을

논급할

겨를이 없거니와

가창

두드러진

두어

가지를

말씀하진대、

(첫

째) 도덕의 명목올

배운

것입니다。

조선

고유의 윤리에도 무론

君父에

충성하교 가족

화목하고 隣保가

셔로 사랑하고 신심올

교 악행을

저지르지

아니해야

한다는 사실척

규정은

선명하게

있었지바는、

이것올

무어라

부르고 또 어멓게 설명하논

재주는

본래 없

것이거늘、 유교논

우리에게

孝梯忠信、 仁

琺楗智

둥의

명목올

갸르치교、

또 그 심리척

기초와

사회척

가치를

알려주였으며、

아울러

三綱이니 五倫이니 하는

도딕 체계의 구성

방멉올

얻게 하였읍니다。

이렇게 그것애

명확한

인식올

가지는

것이 그 힘올

늘이

고 겅도를

높임에

크게 유조하였음은

무론압

니다。

Π둘쩨ㅂ 인생뿐

아니라

사회

생팜의 규띰올

것입니다。

조신인은

진작부터 농업겅제기

르 물어와서

ㄱㅗ 쟁원

양식에논

사회성

·

공몽

정신이 심히 농후하였지마는

그것올

형식화하

여 條理 명백하고 체계

정연한

사회

질시를

능력은

열른

쟁기지

못하였던

것인데、

교의 祖樂刑政에

매한

인식과

채용이 늠올

라서

우쩍 문콰

사회의

실실울

갖추어

오니、

부여와

고 초선이 근 一 一친 년 진에

이미 支

那와

비둥한

사회

상태에

있었음율

支那

古史

진합은、

ㅗ 지리척

위치가

가장

支那에

첩하여

유교 문화에

대한

뾰受가

에민 :도

신속

하였던

까닭일

것입니다。

∩세째U 문학의 빨달입니다。 데지

유교와

학은

그것이 그태로 문학이요、

또 한문은

練蒲俄

含吝深稚한

첨에시 인류의 반든 문에

최고봉이거늘、

유교의 경진은

ㄱㅗ 燈古

·

·

展大

·

妓妙한

대표척 작퐁들이니、

유교의

보급이 그내로 문학의 박달올

의미함은

량인

일입니다。

이상의 디ξ가지는 유교 로시

춤은

선묻올

든 것이거니와、

그 반면에

찐딥지

아니한

엉향이 적지 아니합도 우리

기억할

될요가

있움니다。

가명 유교의 名分論이 우리 사희에 계급차

심하게

한 것과

烟文姸膣가

우리의

생팜올

擇 奠 祭

Page 8: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朋마箝識問答

3

煩瑙번씨하게

하고 생활

의식올

형식화

방향으

로 이끌어가서、

어느 틈 비실게적 .

비가치척

의 생팔

양식에

얽어매고、 특히

冠婚喪祭와

순 형식적

에절이

桎格枷鑛진곡가져처럼 우

리의 포든 것올

구속

상해하였음과、

渶文學

보급이

타면에서논

고유

사상파

독립 문학

자유로운

발달을

阻磎하여、 다른

문화의

수르는

민족

문학의 재산이 너무

빈약하교、

심지어 국어

記寫의 獨自 符號

곧 國字의 창

작이 세계에

가창

뒤멀어지게 된

것 같음은

유교에시 잉은

큰 폐해가

아니랄

수 없움니

다。

'

諸 敎 :

■ "=는

언저

어⅝거

듣어왔옵니까

블교는

一一五○0년

의 엣날에

中印度의

띨라

國 淨飯王의

太子로 탄생한

悉達多가

생의 무상합에

느껴、 出家

苦行하여

究竟의 正

兜올

얻고 佛陀가

되어 중생올

교화한

敎門이

니、 佛陀라

합은

俺者의 堪요、 볼교라

합은

되는

敎門의 義임니다。

佛을

擇迦牟尼라교

이홉은

擇迦

종족에서

난 聖人이란

뜻입니다。

붙교의 요령은

佛과

法과

僧의 三安에 귀의

하여、 每迷開梧친비쩌오를

목직으로 慈悲

精進올

실천하는 데 있읍니다。

迷라

합은

사람이

邪心 ·

忘셈에

가려져시

·

인생의

실체를

보롬이요、

悟라

합은

正迫

수행과

心忠誡의

단련으르써

최고 진리의

一 固滿한

경계를

감득하여

합리직

생환에

락하는

상태입니다。

교는 ,ㅗ

내용이

초월적인

동시에

包橓的

이어서、 어떠한

국민과

어떠한

대상이라도 다

안아듣여서

이르는

곳마다

위대한

감화역올

미치

고、

특히

동방의

諸國에

대하여는

겅신

팥의

진면에

일대

비악올

주었움니다。

佛陀의

減度하신

뒤에

傳通이

사방으 로 행할새、

북으

로 유를한 ,

派가

동으 로 꺾여서

支那의

後渶

으 로 들어온

것이

대개

西紀紀元 一 세기

전후

일이요、

그 別派

흑 除流가

震域으로 들어

것이

다시

수세기

뒤의

얼입니다。

문헌의

위에

나타난

바르 맏하변

,

교구려

ㅄ林王 六년兮횬↓애

당시

北支那의

領有者인

秦王 荷堅이

佛像

·

經論올

送來하여、

劍寺道

僧한

것이

볼법

東傳의

始요、

또 그 十二년

후인

맥제

近仇首王 一 ○년(ㅊ

巴에

인도승

羅難陀가

支那의

晋으르부터

내도하여、

반도

남방이

또한

佛法올

얻고 이 뒤 반 세기

외를

치난

신라

訥祗王의

代애

西域僧

墨胡

子가

鷄林으 로 와서

블법이

차차

민간에

행하

였으나、

교유신앙과의

마찰올

말미암아셔

弘通

姬利치

뭇하

교、

패려와

法興王의

十五년盆

夭)에

이르러 與尹⋯의

殉ㅛ올

계기로 하여、 붇

멉이 비로소 公行,올

인ㅗ니

,

이에

진역

부가

붇교의

교ㅛㅝ

속으르 站收되었옴니다。

이로부터

一 一0 수년만인

뼉제

聖王 三○년盆꾸

)

불상과

經卷을

일본으로 ㅛ내어서

海萸의

불교룔

개쳐하니、 이것이

볼교 진포의

束板잉

니다。

ㅁ 異次碩의 殉法한 이야기물 듣고 싶습니다

교구려 ·

맥제

·

신라

산국의

가운데

신라의

불띰이

가장

뒤진

것은

,

국도가

치우쳐

있는

반큼

芋勞가

그러하다

한 것이지마는

,

고구러

미하여

뼉제는 一 C

수년밖에

뒤지지

아니

하였거눋

교十러 뻐제

양국에

비하어

신라가

세기나

뒤쳤다

함은

둑수한

이유가

없이는

그렇게

충둥진

리기 없움니다

'

그러면

「一 이유

무엇일까。

異次頓의

殉法란

이아키논

여기

데하여

시사를

우리에게

줍니다。

一凹史記)의

진하

바를

嫉하건대

,

法興王의

대에

불맵올

行하교자

하되

조신들이

佛은

국땜이 아니라

하여

얼른 眈從치

아니하터니、

十五년에

異次

頓年페 瓠邨°

l)이

왕게

여쭈어

로되

「청컨대

머리를

베어

씨 衆識를

청하소서」 왕이

로되

ㄱ道를

홍하

그자

하여

먼지

무죄한

이룸

죽임이

가하라」 대납하여

가르되、

ㄱ만일

迪를

행케

될자태

一 死를

야끼오리까」 왕이

이에

,' iII 'i

甛fㅏ

‘’

喆 敎

군신율

불러 다시

문의한대

,

여친히 반태

하논

가운테

異次頓만이 가로되、

ㄱ블띱이 오묘

하여

不可不行하여야

하리이다」 왕이

가로되

ㄱ衆人외'말

이 다

블가다

하거늘

너 혼자

가타

하니、

본보기를

내리라」 하고 吏에

내어맡겨

목올

베게

한대、 異次頓이 臨死에

가로되

ㄱ내

법을

위하여 죽는

것이니、 佛이 만일

神이

있으시면

반드시

異蹟이 있으리라」 '하

디니、

빚 베매 목 멘 자리에시 血이 솟아나논테 그

벗이

희기

젖과

같은지라、

보논

이가

다 기이

하게

섕각하여

다시

佛事를

혈뜯는

이가

없었

다교 합니다。

태저

法典王 ·

眞興王의 당시로 말하면、

라에서

샴국

제패의

의욕이 왕성하여

국민

신올

가다등는

동시에

고유

신양에

대한

인식

이 한창

深厚하던

시기이배、 외래

신앙인

교가

이러한

기운에

반발되어서

민간에서의

渣行은

보르되

국가의

공인올

얻기는

심히

면하였으리라교 볼 수 있는데、 異次頓의 殉法

이야기논

횔지 이러한

정세를

반영하여 내

외 사상의 서로 충돌하논

一 단면올

보여 주는

것인

양합니다。

여하간

異次頓의

이야기는

후세

불교도의

게 감사하는

표척이

되어저、

그 香火를

받들

기 위하는

結社가

생기고、

그 사적올

岡傳하

紀念石憧이 분묘 소재지인

柏栗寺(度

州)에

건립되어

이게에

진합니다。

臼 佛敬의 俺盂븐 우려메갰 어띠한 杉,⅛

주었읍니까

불교의 傳通이 초선의 문화에

끼친

영향은

진실르 심태 무한한

것이 있었욥니다。

불교가

大宗敎의 威神力으로씨

우리 소박한

교유

신앙

啓發

長養합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진실르

당연한

일이니까

따로이 말할

것없거니와、 거

키 ㅂㅜ수하여 생긴

문화적

효과가

허다한

가운

가창

충요한

멎 가지만올

들어 말씀하진대

(첫

째)는

조선인은

볼교로 말미압아서

칠학

알았옴니다。

대지

불교는

극히

실천척인

敎門인

동시에、 극히 사변척인

내용이어서、

일면만올

메어서라도 녁넉히 인류

사상상

일대 精華일

수 있움니다。 조선인의

본질

원래

淺淡

낙친주의러니、

볼교를

얻은

精深透徹한

思究

방범올

알아셔、

마옴과

눈이

차차

形而上的의 방뎐으로 열리고、 옳은

의미에

있는

사상

생촬올

가지게 되었다

할 것

입니다。

Π둘쩨) 불교의

속애는

신앙

생콸올

莊俄하는

펄요상으로부터 회화

·

조각

·

옴악

·

무용

·

–죽 ·

肄鍊

'Y련

온갖

에술이

들어 있고、

그것

印度

·波斯

·

大夏

둥 서역 諸國 내지

역대의 技能올

휘몰아

가진

것인톄、

블교

따라서

이것들이 獲域으 로 전래하여

그 기

술과

및 재료의 개발올

보니、 우리나라에

의미

있논

예술

있게

교의 덕이라고 할 것입니다。

(세

쩨) 조신인의 셍콴

의욕온

뵨레 固陋苟ㅛ

하여시 耕盤衣負경작외식으료 一 隅에

筍安하논맥

성이러니、 불교의 평둥싱 ·

보편성에

慈發됨으

르부터 法緣을

따라시 지나에 유학도 하고 서

역에

구땜도 하여、

차차

용기斗

재능올

세계

의 무대상에 발르하며、 彼丈夫、

我丈夫의 의

기로씨 남해

시친에

쵱행 콸보하는

이가

서르

꿉치를

이으니、

이렇게 豁達방답한

기상과

渾한

포부는

진실르 뷸교 들어온

뒤에

비로소

보게

된 바입니다。

또 그 다옴에 문학과

같음은

支那文化、

히 유학의 보급에

따라시

개발된

것으로 언뜻

생각하기 쉽지마는、 이것도 실상온

불교의

진과

미ㅊ 승려의 노력올

맏미앙야서

보급

발달

것밈은

고태에

있는 문학

교육의 주권이 伽

門에

있온

사실에서

살피김과

같습니다。

우러나라의

代表的

名僧은

누구누쿠욉니까

교 傳

一 六○○년

동안에

高僧

大德이

느 대에

고 엾지

아니하

였거

니와

이재

문화와

및 민족

생괄상

크게

공헌

약간

말씀하기르 하떤、

먼지

교구려는

법올

얻은

직후로부터 이내 교리에

정동하논

이가

많이 나셔

다만

국내뿐

야니라

그 교화

지나·일본

둥에

漸被하니、 迫郞온

華鮟

·

論의

학식으로 梁의

武帝에게

존경올

받고 一

대의

宗匠으로 馝學의

任에

당하였으며、

恕晃

端湘棚遡辯허"

Page 9: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때뱌常識問答 70

iII: 壬: 표:

有部의 學으르 睛의 代에、

波若은

天台의

학으로 唐의 代에 다 저명하였으며、

그 일본

으르 건너간

이 가운테

惠慈는

聖德太子의 스

승이 되어 그 德器를

성취하고、

慧灌은

일본

있는

一≡㎚宗의 祖가

되고、

鎣徵은

佛典뿐

아니라

五經에 通하고 기예에

精하여

일본의

문화에

허다한

공척올

끼치고 또 유명한

法隆

寺의 뼉화가

그의 소착으 로 진하교、 道頭은

授의 여가에 ^日

本世紀) 若干卷올

撰하여 그

文史에

기여합이 컸었옵니다。

맥제에는

謙益이 남 먼저

海路로 중인도의

常伽那律寺에

이르러서

五部律의 梵本올

가져

다가

ㄱㅗ 七二권올

譯出하여、

백제

律宗의 祖

되교

,

일면

法올

일본에

진해

준 뒤로 彗

·

日羅

·

惠聰

이하

학문

·

기에 양방면

승으 로 일뵨에

진너가서

ㄱㅗ 문화의

계발에

이가

허다한

가운데、

觀勒은

三論의 學匠

으르저 널리 諸學에

롱하여

역범 ·

친문

·

지리·

方術의 畵를

彼土에

천하교 또 초대의 僧正

任하여

僧尼의 갇독에

당하교、

道藏온

渡한

뒤에 ^成

箕論麻) 十六 권올

지술하여

成安宗의 권위가

되고、

尼인

法明아

또한

道力으로써

ㄱㅗ 상하의 尊信올

받았욥니다。

신라에논

볼교를

교학으로 뿐 아니라

정치 .

외교 둥 국가

활동상의 대방편올

삼기도 한 반

각 방면의 명승이 더 많이 나온

가운데

일찍

교학으 로써

드러난

이논

圓光이니、 揀

유학하여 大 ·

小乘에

碑涉하고、 咐와

고국

에서 講筵을

열어 명성이 높았으며、

이어 元

曉는

나서부터 慧解絶倫하고 艾辭汪溢왕ㅑ학

여、

各宗

諸經에

걸친

八0여

부의

論流를

고、

그 대부분이 진작

지나와

얼본에

傳行하

여、 ㄱ海東流」의 이롬으로써

見重하며、 높이 一

乘圓敎의 立脚地에 셔서 紛披多岐한

블교를

同하니、

世에셔 「ㅗ 敎旨를

海東宗、

또 芬드宗

이라교 일컬었으며、

元曉와

동시에

慈藏은

唐에 유학하여、

法俗

양방변에

걸친

문물

의 수입애

힘쓰 고、 돌아와서는

大國統에 任하

여 승려의 綱紀를

떨치고、

이내 通度寺를

하고 戒壇을

쌓아서

계율의 道몰

넓히니、

볼교의 箴範이 이로부터 청연하였으며、

曉·

兩公에

이어

義湘이 나서 唐에

이르러 智

額의 門에

들어가

華嚴의 妙旨를

받고、

同學

受首法藏으로 터불어 불교 철리의 최교봉

華嚴宗의 대성에 立力하였으며、

동시에 回

測은

唐에서 玄裝을

스승으로 하여 窺基르 터

볼어

한가치

唯識學올

연수하여 둘이 각각

相宗의 一 門路씩을

열었으며、 이 밖에

惠通은

密敎를

진하고、 廣德온

떰불올

펴교、

貝表는

占察을

행하고、 法朗온

禪風올

열어시

유명들

하며、 阿離耶跋曄

·

急業

·

玄恪

·

쁑輪

·

玄泰·

無漏

·

元表

·

慧超

등온

다 서역의 游方佾으 로

자취를

남기고

,

디욱

慧超는 ^往

五天竺傳) 三

권을

치슐하여

학계의 珍貨를

이뒀으며、

말년

迫詵은

術僻으 로 여러 가지

與墳올

진하였

우니다。

고러조는

붇교가

거의

국교 비수든한

지위

처하여

명승이

쏟아져

났으되、

참으로 敬

門의

偉器라고 한 이는

미교저

많지

못한

운데

초염에

諦漑이

天台宗의

敎秤올

宋으 르

往傳하여、

府末

五代의

난숭에

泯滅만띤에

돌야

天台의

歡뼈을

재홍한

깃은 특괼한

만한

이며、

文宗 왕자로서

뮨가한

乖天(大

쑈Ⅲ㎚

)

널리

諸宗에

훙하

고、

두히

天台敎漑의 중

홍에

致力하머、

航鹿 入宋하여

洪流을

두우

고 들아와

效藏椰慊윤

두교 본국과

ⅲㅈ 近·

·

일본에

있는 朮ⅲ을

都聚하여시 ^綴

戚糾

)

一 ○ 一 ○부、

四七

LU어

권올

간행한

것은

로 교계

분후의 위악이며、

충역에

知納이

나시

敎門의

속하에

榧然하여

ψ溪山에

修祁

社몰

메물고 독목한

一 ㎽宗을

釗ㅃ

稗拐한

진실로 空谷작←

1유

홍ⅱ의

느낌이

있으더、

유멍한

고려판

大珹經의

列成애

당하여

枝勘의

役을

描任한

守其의

勞도 가히

잊지

못한

이며、 먈염에

惠勘(懶

翁)과

甘懋(太

古)가

다 神

僧으 르 드러나

고、 득히

뀨懋가

後來

佛円의

비스롬한

지위률

첨한

것은

但史上 기이발

점입니다。

이씨

조선에서는

前柳

*佛

반동으 로 排仰

抑法의

策올

취하여、 裡林의

죄미봐

함께

물이

凋쩠조잔을

극하

고、

거우

己和가

앞에

楷溜瓘攄痒釪

거 諸 敎

고 有 ,이

뉘에

나시、 講肆강사갸

척막올

변하

교、

壬亂의 際에

있는

休靜(西

山大師) ·

惟政(泗

溟大師)의

師資가

특이한

行業으로 朴속의 –주

양을

받옴은

敎門의 外에

속하는

일이며、

놔雨의 詩황와

意恂의 茶頌은

더옥

물올

없논

일입니다。

李氏朝鮮에서는

팍연

抑佛만

하였옵니升

이씨

초전이 정치적

·

사회적

여러 가지

因由

르써

排佛崇儒외

策올

취한

것은

사l이

치마

는、

이는

國制

표뎐상의

일이요 그 황실르의

信仰外護는

잠시도 解弛해지지

아니하였으니、

만일

왕질의 실질직

보호가

없었다고 하면、

이조의 불교가

山中에걸방정

그뱐한

창염호사

누렸올

수 엾었올

것입니다。

우선

李太祖의 奉佛至誠은

擇王寺

·

太古寺·

海印寺

둥의 碑板

기타셰시

徵驗하≠●바와

으며、 定宗

· 太宗·世宗

·世祖가

한결같이

독실

崇佛者르서、 世宗朝에서

滿朝의

嵌爭올

치교 內碩堂욜

造成하며、

世宗朝에

시작한

裡쎄監ㅝ

i뒤

世祖

:成

宗의

여러

:대

걸쳐서

거창한

욜웍으르써

刊經

·譯經의

태따엽올

속하며、:太祖朝에

神德王后

榛氏의

κ陵올

華坊

北原⌒때斟㏃빤에

포시바、

그 명무을ⅲ

"하

興天寺를

陵의

東(피빠湘#

)에

이륙햐되

輪奐

윤완의

妾욜

극하고、 더옥

五曆塔의

金碧이 일

팡에

町與합은

一城의

강관올

이루뗬으며、

祖朝에

圓劈寺翁빼뱅를

都의

중양에

이륙할재

白玉 블상과

五만근 鍋鐘의

외에

태리석

多歷

塔을

遼然히

즈성하억、

그 意匠과

수멈이 ,

에술의

청화를

지어

시빵에

내려오며、

뒤에

도 언재든지

각 지방의 名藍亘利이 五맥 녀흐ㄹ

일관하여 초겅의 특수한

보호하에

명맥을

치한

것이 的然한

사실이니、

이조 어느 대에

이국에서와

같은

廢佛毁釋의 과거를

한 변

이나

보았옴니까。

다뱐

승려의 사회적

치위가

진태에

비하여

몹시

저하한

것만은

사실이지바는、

그 ㅡ 半의

貸은

또한

釋子

自身에게

있지

아니한가를

리는

생각합니다。

三 一 本山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倂合

–후 寺刹令이 지행될

때(辛

亥)에

사찰

할의 횔요상으르부터 멱사

·

치리 ·

경제

둥의

인연

관계를

살펴서

전국

사찰

중 三○

개사를

本寺라

하고、 其餘

一 三七 一 을 末寺라

하여、

本寺의

下에

매속시켜서

통제

연락의 使올

얻게

하였더니、 뒤

(甲

子)애

仙巖寺의

末寺이던

華嚴寺를

本山으로 승격하여 三 一 本山이 되였

옴니다。

이들

본산은

연합사무소 또 宗務院

등의 이

롬으로써

서울에

協進枝閘올

만들어저 포교 ·

興學

둥 要務를

처리하였읍니다。

三 一 本山은

하기와

같슘니다。

思 寺

裁 道

鹿

珠 寺

先 寺

燈 寺

住 寺

忠活北迪

谷 寺

忠淸南迫

風 寺

全羅北道

石 寺

興 寺

全雜南迫

羊 寺

腰 寺

簇 寺

Π

巖 寺 =

印 寺

度尙南迫

度 寺 =

魚 寺

Π

萃 寺

皮尙北ⅲ

海 寺

雲 寺

胞 寺

林 寺

葉 寺

海 通

佛 寺

明 寺

平安南适

興 寺

賢 寺

平安北近

爪 寺

原 迪

右 寺

精 寺

王 寺

咸鏡南迪

歸 州 寺

綬州邯

彦州而

水"郡

安池ⅲ

拐쎄邯

絳接面

江=郡

吉祥面

報쩠邯

俗雜面

公州郡

寺谷面

全州郡

所陽面

錦山邢

南二面

海南郡

三山面

長城郡

北下面

順天郡

松光面

求祛郡

用山面

順天郡

性琺面

陜川郡

伽倻面

梁 I-,邪

下北而

束萊邯

北 面

逋斌邯

公山面

永川邯

淸通面

莪城邪

丹村面

凹度郡

山北面

皮州郡

陽北面

倍川郡

用珍面

莢州郡

州南面

、平琪府

度上面

平原郡

公悠面

ψ遂郡

北薪峴面

高珹邯

梧岱面

商坡郡

西 面

平禹郡

珍宮面

安透郡

文山面

威州郡 萸川面

Page 10: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朝鮮常識間笞 72

■ 朝蚌 佛致에는 야떠어띠한 宗浜가 있었윱니까

볼교에논

허다한

經과

論이 있어 중첨이

로 다르니、 학자의 주로 공부하는 俓論의 차

이를

다라서

여려 가지 유파가

생겼음나다。 이

파별올

宗이라교 이르니、

높이고 의자한다는

뜻입니다。 볼교가

지나로 들어은

뒤 唐代에

르논

동안에

무릇

十,듭

本의 성립올

보니、

毘쪼宗

·

成安宗

·

律宗

·

三論宗

·

涅槃宗

·

地論

·

淨土宗

·

神宗

·

姬論宗

·

天台宗

·

華嚴宗·

法相宗

·

俱言宗이 그것입니다。

잠국지대로부터 훙일

신라시대애

걸쳐서

나애시

성립한

종파는

대개

교대 流入되어셔、

그 어느 것은

出藍의 발달올

성수하교 또 어

느 것은

다샤

獨自의 再分派를

만드니、

이를

메뎐

九山碑門이라

하여 禪애

九파가

분림하

였옴과

같으며、

또 어느 것은

명칭올

달리하

具言宗올

神印宗 ·

艾豆其宗이라고 일컬었

음과

같으며、

또 어느 것은

宗旨를

발천하여

독림한

명칭올

세우니、

元曉더

華嚴宗올

海束

혹 芬皇宗이라고 일컬었음과

같숨니다。

고려시대논

대개

신라의 문호를

그태로 켸

승하였으되、

分化와

및 명칭의 受易이 많이 행

하여、 異言宗을

또 推持宗 ·

陀羅尼宗이라

르고、

天台宗에

天台法事宗

·

天台琉字宗의 別

이 생기고、

華鮟宗에

또 法性宗

·

圓融宗 ·

門宗

둥의 名이 행하고、

萍宗에

ψ溪宗이 따

로 진팁되고、 이 밖에

내용

未詳한

中道宗

·

興宗이란

것이 있었움니다。

고려 말기로부터

이조 초기에 걸쳐서는

曹溪

·

摠持

·

天台法事·

天台梳字

·

華嚴

·

道門

·

慈恩

·

中道

·

神印 ·

·

始興의 十 一 宗이 行하여 慈思과

南山의 兩

宗名이 불었는데、

그 충에논

效宗의 연합도 행

하고 유명무실한

것이 있는

양하여、

보통에는

華嚴

·

慈思

·

中神

·

摠南

·

始興의 五宗올

五敎

이르고 曹溪

·

天台의 一 一宗올

따로 兩宗이

하여서

,

불교 전체를

거른할

떼에

에사로

ㄱ五敎兩宗」이란

먈을

쓰니、 대개

前Ψ한

十 ,

宗의 내에

天台法事와

天台硫字의 一 ,룔

天台로

합칭하고、 摠持

·

南山올

합하여 摠南이라

고、 中道·神印올

합하여 中神이라

하고、

道門

華嚴으로 섭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씨

조선의 억볼정책은

지철로 교세

萎靡시켜셔 門流의 幷立이 또한

희미하여

지니

,

이에

世宗 六년에 諸宗의 페합올

단행

하여

曹溪

·

天台

·

摠南의 一줍ㅆ울

합하여 神

宗올

만들고、

華嚴 慈思

·

始興

·

中神의 四宗

한하여 敎宗을

민듄어저

,

이로부터 초선의

불교는

禪敎

雨宗의 이롬

속에 포괄하게

어셔 이제에 이흄니다。

그리

고 韓뻐 맏년귀 사회척

뷸안의

파동이

山門에까지

친입하여서

拖仙의

운동이

일어난

새、 부쿄

의 충에시 얻본의

ψ洞i꽈

聯絲하이

圓宗의

징올

上방하논 ¼ 있교

,

이를

데항하

自衍 자릭을

주상하논

핀에서논

太古 普Δ

연원에

인하여

臨碑宗올

따료 내세워서

號가

한비

聆亂ㅗ란맏

삔하니니、

사찰렁이

야울리 부인하

고 구래의 細政 양송이란

칭올

재인졍하여

뭉파

가라앉았움니다。

원레

禪宗

사참과

敎宗

사참이

各立합올

원직

으로 하는

것이거놀

신제에

있어서는 ㄻ敎曲

宗올

명칭하는

것이

ㅛ용이

되어시、

祁敎

종의

宗은

宗의

본의를

脫離한

셈이

되어비랬

음니다。

道效는

朝따에

어헹게

行하였욥니까

도 교논

지나

고래의 신선

사상과

五行說

·

緯說⅛위씬 등

俗信과

봅교의 영향으 로 종교 비

스롬하여진

道家요ㄷ 老莊學派)說

이 시로 걸합하

성림한

敎円이니、 後渶의 張道陵에

發源하

여 北魏의 寇謙之애게 整岐되고、

疝輞의 득

73 播 敎

수한

보호르써

더옥

성태하여져서、

드디어 지

나에서

볼교와

태럽하는

일대 종교률

이루게 되

였움니다。

신선

사상이

조선으로 더불어

륵수한

관계가

있욤과、 樂浪

지방에

신선

신앙이

데단하였음

여기

발씀

말기로 하고 도교 성립 후의

선에

유통한

事墳올

보진대、

고구려 榮留王 七

년彿珤ξⅲψ에

使휼

唐에

보내어

도교를

킹하

여、 唐이

道士로 하여금 天尊像과

및 道法율

가지고 파서

老子휼

路케 한 ·것이 史에

있논

도교 初傅이요、 익 八년에는

ㄸㅗ 人올

唐에

내어

佛老敎法올

배우겠노라

하여、 唐帝의 許

연고 同 安截王 一一년彿밗ξ峨쫴↓에

國相

孫艾이

왕에게 권하되、 三敎에

一 올 결합이 불

가하니

도교를

請來하자

하여、

왕이

이를

請하매、

唐에시

道士 叔孫

둥 八인과 ^老

道德俓)을

送來하켜늘

佛寺를

비어 館接하교、

九년尖효e에

盤髓寺의

僧 昔德이

국가에

崇道埋佛합에

慨하여

백케의

地르 아주한

일이

있었으ㅚ、 고구려가

일씨

도교를

坡尙하

였음올

알 수 밌옵니다。

그러ㅘ

ㅢ교상

방편에

딸ㅝ짬논 :일

ㅅㅣ

쬐상인

양하여 ,ㅗ

뒤의

블 것온

거의

없옴니다

신라

시대에노

唐파의

문물

교류갸

성하였온

'뱐

도교가

상당히

유행하였옴직

하건마는: 그 분

수로논 ,ㅗ

형직이

헌저하치

아니하고、 다만

母神인

西述聖母를 , 에

仙桃聖母라

하여

세애

女仙的으로 숭매한

일이

있음과、

국가의

祀典에

五岳神올

숭봉함이 열마만큼

도 교척

채를

띤 사실르 주의되며、

말엽에

이르러 唐

가서

久留하먼

人에

金可記·崔致遠

둥이 仙

徒로서 드러났음은

아마

특레인

것 같습니다。

그리교 신라시대에

國仙이니 仙風이니 하던

다 교유

神道의

借名에

볼과한

것임은

잠스레

셜명할

것도 없움니다。

교려시대에

어와서는

宋朝

崇仙의 風이

조금씩 浸漸하다

가、 蕃宗朝에

宋의 敏宗이 道士를

보내어 法올

전하니、 이에

國都의

北에

福源觀올

세우교 三

淸像올

모셔

비로소 道覩

·

道士의 設이

있게

되었으며、

그러나

그 用은

국가와

군주의

祝에

그치고 일반에

대한

종교적

발진에

르지

못하였으며、 겨우

星辰

신앙、 符籍

사용、

守庚申 같은

약간

부분이 민속화합올

볼 겅도

이었음니다。 도교에서 행하는

祭祀

祈南는

醴지

=라

고 이르니

,

고려에는

淨事色이란

마올

이 있어서 이에

대한

進排를

맡았었움니다。

이씨

조선에서는

교려의

晳에

仍하여

도교의

宙醴를

행하듸、 이미 道ㄿ의 名올

쓰지

않고、

景福宮의 북에

昭格署를

두교 거기

太 一 殿 ·

淸殿

둥올

세우교、 天尊

·

星君 ·

神將

둥 수백

位를

봉안하여、 데로써

致薛합에

그치다가

또한

중페하였움니다。

시맛

三淸洞

·

星祭井·

昭格洞

등이

다 ㄱㅗ 유직입니다。

그러나

극가

시설올

떠나서

丹孕과

仙風과

내지

도교에

나온

습속은

진대에 비하여 많이 민간에 행

하고

,

壬亂 이후에 明ㅍ에게 매운

關羽 숭매

,

壬午受

후에

淸ㅅ에게 배운

扶箕

유행과

같은

문화

교류상의 재미 있는

현상이

一 遂에

있었

읍니다。

垂,致

언제

어멓게

등어왔옵니까

기독교는 ,

九五0년

진에

舟太國의 나

사롓 사람

에수(耶

靺)가

정의와

평화의 세계

실현하기 위하여 세운

敎門이니、 친지 만

율의 챵조자

ㄸㅗ 겁리자인

唯 , 神올

天父로 모

시교 예수를

죄악에

빠진

인류의 枚主 그리

스도로 믿교서、

그의 신앙꽈

사량과를

모뼘

으로 하여 天父의 聖旨에 합하게 섕괄합이 그

근본

교리입니다。

一 에 에수교라

함은

교조

이름에

인한

것이요

,

또 친주교 ·

聖敎라는

이름은

그 교리에 인한

것밉니다。

立敎

이래

二친년에

哲敎

·

新敎의 앙대 종파와

다시 허

다한

支派로 나뉘어시 세계에

진퍄하여、

인류

의 三분지 ,

이 ㄱㅗ 敎化下에

있고、 특히

근태

의 문명 강국이 다 、ㅛ 敎田에

속하여

,

교운의

융성합올

자랑하교 있옴니다,

교의 동방

初傳은

唐 太宗時에

ㄱ景敎」라

ㅡ 派가

長安에 와서 개교한

것이요、

元의

시대에는

교도의 빈변란

왕레와

함게

진파가

켜서

ㄱ也里可溫」이란

이롬으 로써

元代에

있논

여러

종교의 - 이었욥니다。

Page 11: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朝奸常識問答 74

元과

고려와의 친밀한

교섭으로부텨 생각하건

대、 이 敎門도 교려조에

어느 정도의 傳通이

있었음직하진마는

그 證迹올

찾올

수 없으며

이조의 明宗代에

그 敎 일본으로 진하벼、

祖壬辰에

來寇한

倭軍에논

小西行長

이하

수한

교도가

섞여 있었으므로、

敢士외

一 인인

그레교리오 세스페데스가

군대 위문올

위하여

조선에 내황한

일이 있었으되

조선인에게

영향은

드러난

것이 없으며、

壬亂에

포로

되어

갔먼

사람이

일본

혹 南洋

방변에서

교한

이가

많았으니까

그 刷還된

이 충에는

신자도 있었으련마는、

그 下落올

더믐울

수 없

으며、

壬亂

후 未幾에

이태리

敎士 맛비오릿

지(利

瑪ㅁ)가

北京에

들어와서 天土堂올

세우

교 크게 敎羲를

선전하니、

거기서 간헴한

서와

선사받온

器物이

使行의 펀에 진래하여、

士人의 사이에

西敎 : 西學이라

알려졌으되、

것이

신항에까지

다다루一 형적은

오히려 나다

나지

아니하떴옵니다。

正祖

초에

南人의 명사

撥哲身

·

丁若銓

·

형제

·

李蘗이덕 둥으로 말미암아

친주교리의

비밀

연구가

행하다가、 동

七년兮大己에

蘗의

처남이요 才士인

李承蒸이 ㄱㅗ 父 東郁의 北京

使行올

따라가거늘、

蘗이 ㅗ를

권하여 北京

갸거든 반드시 시양인

敎士룰

찾아

보 고 入

信하라

하여、 承煮이 到燕

後애

곧 南堂에

펄담으로써 교리를

배우고、

翌春귀국의

금 前에 되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교 조

교회의 기초라논

의미르 ㄱ베드 로」의 笠名올

연으니、 이것이 정식으르 입교한

조선인의 魁

首요、

그 歸裝에 허다한

敎薔

·

十字架

·

聖喆、

로사리오 둥올

가지교 와서

李蘗과

합께

연구

의 결음올

내키교 이어 진도에 착수하여 그세

자못

빨랐옵니다。

세계에 있는

기독교 傳道史를

보건대、

죄다

敎師가

가서 애쓴

결과를

조금썩 거두거늘、

선인은

셔적올

통하여 교리를

연구하교 자진

입교하여、

그 효과

速하교 큰 첨으로 일대 특

레를

열었움니다。 또 충 ·

양국의 진도가

세력올

이용하려 햐는 하류

사회로 始하거

늘、

조선은

인텔리 충의 교리 인식을

–줄발첨

으 르 하여 상류

사회가

먼지 受敎하게 된 것도

一 특점입니다。 西敎는

祭先의 교통올

또한

숭배로써 페기하는 점에시 고유도덕과

돌하여서 여러 번 탄압올

뱐났으되

교세는

대로 겅하며、

그렇게 되매 교도의 사이에서 권

있는

신부를

招邀초요해야

할 필요를

느끼교

이를

北京의 天圭堂에

청원하되、 량시에

있는

중국꽈

및 羅馬

법왕청의 사세가

허락지 아니

하여 오래도록

여의치

못하다가、

正祖

十九년

兮莞룡에야

北京圭敎

알텍샨드 르 데 쿠페아(湯

士選)갸

중국인

신부

周文謨를

파송하여 오니、

이것이 敎師의

도래한

始요、 재임 七년동안에

교세가

약진올

보터니、

純祖 辛酉에 체

一 차

「邪獄닛敎難)이

일어나서

다수한

신도와

합께

周神父도 순교하

고 교회가

참시

비운욜

한탄

하였움니다。

그러나

독실한

교 도들은

디욱

분발하여

京의

교당과

연락하여

교세룰

유지하니 羅朽

범왕이

이에

갇동하여、

純祖 辛卯兮스±)에

교구로서

븐리하여

조선

교구의

신설올

정하

교、

巴또의

외국 진도피로 하여금 교역의

확창에

량케

하여、

동회

소속인

逞羅因마이 매

주교 브뤼키에르쟈

조선육의 초대

주교르

부잉하게

되였터니、

그는 ⅲ洲에까지

와서

사햐

고 그 副로 면거

오던

중국인

신부

劉方湃

純祖

甲午兮스0애

잠입하여

교임에

당하

고、

憲宗

丙中兮스下에논

佛國人 신부

모방n維

伯多祿)、

戊戍쯔⌒ㅊ)에

는 동 샤스당(郞

牙谷伯)과

제二대

주교 앵베르=氾

世亨) 몽이

次第로 잠입

하여

교세의 +홍

자못

볼 만하더니、

密宋

五년

己亥仝스˛에

재二차

ㄱ邪獄」이

일어나시

교도와

합게

이 佛出 신부

三인이

다 誅致올

고、

조정에서는

五家作統의

규악올

勘行하

西敎의

철면올

기하였옴니다。

그러나

한 변 비룟뮌

진교 사업온

適害로써

저지될

리 엾어서、

쓩宗

乙巳仝企巴로부텨 禹

宗 乙丑兮公已에

이르는

동야에

재三대

주교

페레올(뾰林蛇舵ㅄ痂)、

재四대

주교 메르뇌蔬拖『

瞰J 이하

佛因人 신부

十四인이

잠입

팔동하

였으며、 이

외에

조선인

신부

一 -명

있으니、

7‘ 睹 敎

대개

이보다

앞서

憲宗

丙申兮스촛)에

. 모방

교가

둘어파서、 조선

幼年신도 金大建↑¿-레

Y

崔토마스 외 一 명、 합

三인을

渶門의

學修所

로 파송하여

교의를

연구케

하였더니、

그 중

一 인인

金大建이 業올

마치교 몰아와서

교난

이후의

교세

유지에

노력하고、

乙巳兮

金己에

페래올

주교 르부터 초선인

최초의

신부

로 임명뒤었다가、 丙午仝八믓)에

순교하교、

崔토먀스도 신부로 임명되어

서양인

교사

입국과

기타에

괄동하였웁니다。

哲宗

이후르는

금령이

차차

풀라교 더욱

申兮炎ε의

英佛聯軍

北京

攻陷의

役이 있은

닦에

교세

와작

확창되어

,

신도의

수 一 ㅡ반 三

된올

舞하기에

이르렀더니、 高宗

丙寅仝솟0에

大院君의

배외정첵

아래 제四차

교난이

일어

나서

茁害

慘烈올

극하교 교세

一 大.預挫돈바를

보았더니、 大珉君의

실세

후에

금령마

차차

훠치다가

丙子兮ㅅ夫)의

江華侈好條覩

.

성럽올

켸기로 하여、 외국의

교통이

콩인되구

丙戌스

^

灸)에

朝法篠約의

쳬결올

브먼서

敎禁이

저질

르 해소하여

公然히

선전합올

연었융띠다。

高宗

庚寅兮介e에

뮈텔(閔

德孝)이

:게

八대

교 로 잉명된

뒤에、 익년에

신학교를:龍山에

팀하

고、 癸巳兮^잗

˘에 ,ㅗ

곁에

최초의

벽돌집

에배당올

건축하

고、

光武

-년

(ㅈ

大)에

京城

鍾峴에

흘연히

雜立한

대친주당의

뗬堂

式이

거행되어、

長夕으로 울리논

종정이

都ㅅ

의 昏漂한

정신을

笹醒하논

소임을

맡은

양하

였읍니다。

그리교 壬千仝스己에

조선의 교구

ㅡ 一분하여 京城과

大邱의 양 교구로 하였웁

니다。 이상은

구교펀의 말씀입니다。

天主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天圭란

말은

한문

뜻으 로 하나님이 되교、 기

독교의

神올

俗에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까탉

에、 보통

西語의

0&나

혹 ㄱㅗ 類語를

音譯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지바논、

실상은

羅甸

∪β只테우스 =上

帝)를

옴역한

말임니다。 다

天圭라는

字를

교른

것은

음올

표하는

시에 意로도 통하는

점올

취한

것임이

무론입

니다。

초기의

耶靺敎師가

ㄱ데우스」를

변역할

때에

天圭의 字를

생각한

것은

진실로 聰明하

기 짝없논

일로시、 동양인의 도덕죄

최교 대상

天帝를

연상시키논

ㄱ친주」란

말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친애감욜

주어시、

異敎的

혐오의

도를

완화하였는지 모롭니다。

더구나

하느님

이라는

진통

신앙에서 자라난

조선인은

만인

반으로 기독교의 여호아가

곧 우리의

ㄱ하느님」

이지

별깃이냐

하는

풍이 있옴은、

오로치

圭라는

역어의 공입니다。

天土敎는

광의르는

야소 계통

諸宗派의 總

名얼

것이지마는、

보통은

아소교 중의 羅馬가

톨릭 교파를

가리키는

이롬이며、

一 에 天土公

墩라고 이롬온

가톨릭올

公이라고 변역하여

어형이며、

一 애 羅馬牧

·

羅甸敎라

일컬음

希臘敎會애

대한

이음이요、

西敎슘라

교 합

희람교를

동교죄라

교 부훔에

대한

이흡임

니다。

■ 왜埠에 있는 垂“致 殉敎者의 壯烈한

==온

돝려

주시오

기독교의 역사에는

순교의 책창이 많교 세

각국민의

역사에는

法難

일어난

시기가

있지마는、

조선

근세 傅道史에서 보는

짓 같

청순

ㄸㅗ 창렬한

聖的

회생의 키훅온

거의

짝올

볼 수 없움니다。

원래

조선인은

남에게

권유되어서

기독교 르 들어간

것 아니라、

실르

자기 스스로의 총명과

결단으로써 인숨의 무

지한

줄올

끊고 새 생괄의 좁은문으로 툴어섰

으니

、 이

것이

이미

큰 용기

로되

이는

별개

제입

니다。

바야흐르 기독교외 광명올

내 나라로 끌어

들이려 할 때에、

그 앞잡이 된 이듈의 고심과

노력은

비길

데 없프

丁皮祥行岵蝴㎂也과

이는

명문의 자제요 禍家의 餘生으르서 세

상애

사는

것이 박해와

포냔

이외의 아무

이 없었건마는、

일씩 마음올

움직이지 않교

조선의 교회에 겅당한

牧者를

데러와야

할 필

요를

느끼매

,

몸을

馬夫

瑪從의 친한

무리

던겨시、

北京

다니는

使人의 일행에

듈어

해마다

北京의

천주당으 로 신부

브내

달콰

볘훼

蝴』鵝愰棚뼈ㅓ「

Page 12: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朝鮮常截用答 7‘

!:1 ψ¡ 甘i

운동올

다닐새、 당시 北京

교회의 사정이

이를

허락치

아니하여 매년

거질올

망하건마

논、

그래도 꺾이지

않교 一= 四친

리 던 길에

궁둥이를

따라서

「ㅗ 이듬해

ㄸㅗ 가교 또 그

이듬해

다시

가기를

아흄

변울

하여

그 목져

달한

뒤에

말고、 아무

보상

없는 敎役에 오

봉안

渾身의

겅락올

기울이다가、 바침내 慾

己亥의

敎獄에

욜륭한

순교를

이운

것 같

옴은

그것이 强靭

持久的으로 발로된

용기민

점에시

더옥

느꺼운

사실임니다。

그러나

이러한

용키논

반드시

丁氏

一 門과

夏祥 ,인

만에

그치는

것 아니라、

傅敎

이래

여러

변의

대소 교난에

惡刑

毒貴을

엾는

같이 알고 영광의 쭉음올

구한

허다한

순교자

가、 형태는

다를

멈하되

정신은

한결같았었움

니다。

조선의

천주교사는

순교 사실

로 首尾를

짰다

고 이르는

터인

데、 이

순교담의

개개가

죄다

義의

앞에는

생명과

야무

것이

없다

합올

몸으로써

나타번

실들입니다。 명문

望族으 로 일

가의

파멀도 개의하지

않았으

며、

처녀

시집

가기

으며、

사세

결혼의

형식올

취하되 一 生不犯을

서로 약속

이를

뜨리

그러먼

끝에 형리에게 듣켜서、

다만

배신한다

ㅡ評뱐

하면

석방이 된다논데 귀천

·유무

식、

낭녀 노소 할것없이 하나도 苟生을

위하

여 압박에

굴한

이가

없고、

심지어

學語習步

의 소아까치

부모의 屍身

위에셔 웃교 순교하

사실이 무더기로 있곳

변변이 그렇고 에

외가

없으니 이 용기를

어떻다고 하쟀움니까。

法司獄官이 일부러 구명하기 위하교 혹 시

세의 면환통에 재 형창에

가지

못하고 잊어머

리는

일이

있어

사헝

선교 받은

채 수년

혹 수

심년

久囚

노롯을

하되、

무서운

乎초 속에

신양이 더육

견고하여、

同囚로부터 옥리까지

감콰

입신케 한 에도 比比하니、

이것이 어

찌 심상히 용기로만

말할

일이겠움니다。

혹시 말하기를、

조선인은

유약한

페가

있다

교 합니다。

우리논 그련

이에게

초선

근세의

순교사룸

보이고 싶슴니다。

그 一부

一전만올

블지라도

그 생각이 옵지

않악음올

개달올

것입니다。 혹

시 일시 일변의 일이 아니냐

하논

이가

있다

고 하면

,

우리는

다시 신라의 花郞史를

껴시

보라고 하겠음니다。 옛날

花郞네의

순국과

세 친주교 도의 순교를

붙듄어메어 봄진대、

의와

신녁올

위하여 두려운

것、

아까운

것이

없는 피가

一친년

一一친년올

매려 꿰어서、

선인의 현관에 괄똴

소리룔

지르는

사실올

시 앙탈하지 못하겠지요。

어느 외국의 역사가는

즈선

근세의 순교사

ㅛ고 가로되、

조선인이 무시운

민족이요 동

양과

세계에시 1τ

굿합

인송임율

여키시

분멍

히 개달았다고 하었움니다。 그논

분명 조선인

바로 보는 눈올

가갰다

하겠움니다。

剛毅

堅忍、

功壯莪烈올

信모竣의 위에

이뱐큼

발휘

하는 조선인올

누가

약하다

하며、

그 조선올

누가

작다고 하겠유니까。

호산나

조선

!

希麒敎留란

것은

무엇입니까

希臘敎會는 제十

一 세기에

襁馬敎φ로서

분리

하여

나온

기독교 구교의

일파니、

一에

동방

교회라

학온

르마

교회가

시방에

있음에

대함

이요、

또 정교회라 교 함온

종대의

여러

변.증

교 대회의에서

징한

교의와

및 條例를

지1다

18재 기 말 天土敎徒의 笛 g

77 睹 欺

뜻올

나타낸

이롬입니다。 희괌교회라

항은

그 본명이 아니료되、 이것이 처옴

회랍에시

기되고、

그 신초와

禮文과

神學上의

용어가

랍어임으 로써

보통의 명칭올

이웠움니다。

피람교회는

르마교회와

신교회를

아울러 기

독교 三태 교파의 -

르서: 희람인과

러시아인

기타

술라브 인종올

포괄하여 로마교회의

二억

I친

만、 신교회의 -一

억반에

대하여、

밥교회는

대략 ,

五친만의

신도를

가지니、

러시아는

실르 희랍교회의

중심이머

서구와

미국에는 소수의 신도가

있올

뿐압니다。 희란

교회의 조선

진도는 光武 四년兮공9에

융國

졍교푀의 진출에 비롯하였으되、

未幾에 표日

職役올

말미압아서중페되교、 嫡和구파 후

에 부

홍하였으나

翅 본국이 혀명 이후로 종교 파피

걍행하는 중이며、 외국 전도 갇은 것은 지

잊어

敎況의

옴니다。

㎺秒㎡駙”

*㎷:「却ⅱㅏ

一九0˛

#.國

:신

우에르 둥의

챵림한

바로서、 京珹의

東小門내

「ㅗ 본교당올

두교 元山

지방≠

"

교구르 하

친노셰

종사했논데

,

그 교파ㅑ

가톨먹에

속하여

불란서제

친주당으 로 더불아

동일한

호임니다。 이

교파외 신부

가운데논

조선

문화

현구에

정진하여

중은

지술을

패논

이가

어서 일반의 주목올

꼴교 있옴니다。

' 基f新

攷는

언제부터

듐어왔읍니까

로바의 가톨릭 교회가

중점올

외형적인

제도

두교 사람

개인의 정신직

결정올

무시합에

반대하여、

四백여

년 전에

이른바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서 르마교회

이외의독림한

교푀

진럽하굣

모든 제도와

의식의

속박에서 빗

어나서

떻葺와

및 신양으로써

사람과

하나님

이 직접

連通하는

신신앙올

주장하니、 이 신

단체를

프르메스단트(개

혁교푀)라

이르곡

종래의 로마

·

희람의 양교회를

구교라

합에

하여 개혀교회를

신교라교 이르게되였읍니다。

신교는

구미에서의 長成、 정리에

바빠서 逮

전도의 여력이 없고 근세 동양에 전래한

것은

구교의 유파에

그치더니、 十八세기 말로

부터 외국

전도의 기운이 움직이기

비롯하굣

十九세기에

들어서변시 영 ·

미 ·

·

불에 각

전도협회가

셜림되어서、 亞弗利加

·인도 ·

중국

·일본

내지

조선의

각국에

향한

전도 운

동이 차차로 팔발하여졌움니다。

조선에

대한

신교운동은

순조 三二년

壬辰

兮스三) 七월에

和面

전도혐회에

속한

득일인

교사

카알

귀츨라프가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기선

로오드 아머스투호에

편승하며、 동인도기

선회사를

위하여

북지나의

무역 사정올

시찰하

교、 키죄갸

중으면

초전파

통상도 하고 동시

신교를

선진하자는

의도로써

약 一개원간

–중칭도 해안율

편력한

때에

始하는데、

젼국

성과없이 되거하고 그 뷔

三0여

년간에

다지 笠息이 없나가、 高宗

丙寅兮灸0에

미국

선적의 무창

멈선

재너렬

셔어던흐가

또한

개시의 목척으로서

지나

·

조선의 연안올

행하다가、

七월에 대동강을

溯上하여 羊角舟

이르러 田人으로 더뷸어

충돌이 생겨서、

一 —일요μ력 七월 ,

一四일)에

선채는

僥火되교、

선쟝

이하

十九

명 승윈이 다 살해된

사진이 있

었는데、 이 충에

倫救傳道協會에

속한

장로파

의 선교사인

蘇格曲人스코[민

드인 로버트 자멘

바스라는

이가

젼도의 묵적으로 끼어 왔다갸

한가지

遇≠하여

.

이면에도 또한

씨를

뿌리지

웃하였옴니다。

이 밖에

奉天애 있어서 조선인애게

전도하

면서 성서 변역과

조선어사전

편챤올

기도하

존 르스와、 얼본에서 조선

학생간에 전도한

조오지 녹스 ·

로버트 맥클레이 둥이 있었으나

또한

뵨국에까지

풍화를

미치지

뭇하였유니다。

그리하다가

高宗

丙子兮스¸에

脚國政策이 설

시되곡

壬午兮炎己에,믹

국으로 더불어 옹상

조약이

체결되교、 이어

癸未에

영 ·

양국과

통상하여、 甲中 이후로 이 諸國의 선교사가

로소 公然히 임국하기 비못하였옴니다。

이네

선교사의 선구를

지은

이가

甲申仝炎υ

입국한

미국

욕창로파

선교사

호레스 알렌

'㎝

Page 13: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朝蚌 1함辨 78

언 텨 우드

7’ 諸 敎

(安

連)이

니 그논

또 의사

또 외교가로 우리

신문화에

공헌이 크 고 특히

度慈院(後

의 濟衆

院xㄹ

베풀어

신의학과

빚 1ㅗ

衒의 길올

얼었

으며、 익년베

同派로서

초선

주재

최초의

목사

에이치

치이 연디우드(元

杜尤)가

엡국햐여

신교 선진의

기초가

여기 서고 이로부터 동파

선교사의

도래가

꿉치를

이으니 에스 에이 모

페드(馬

⅜悅) ·

제이

에스 게일(奇 =

·

에프 에

스 밀러 ·

시이 지이

민톤

둥온

그 가운데

表한

자이었움니다。 이 파논

저음

京城

·

平墺·

釜山

·

元山올

주요 근거치로 하여

전도와

교육

사엄에

용력하여

학교의

많기

他派에

으뜸이

되였음니다。

장로파

연디우드의

임국하뎬

동년兮公巴에

감리파에서는

일뵨에

있덴

로버트 에스 맥클레

이가

도래하고 이어 에이치

지이 아괜셀러(亞

薛羅)가

입국하고 시이 에이치

존스、

디블류

비이

스크렌튼 둥이 뒤를

이었논데

또한

·= 샤껌

γ 多z–

∵ "∵

= 즈스ι ζ

'T'

γ

ι" 칵수=≡

「、

즈쯔η "=

스스 ÷ 子

츠·석인 考"箏

==/=→

="

·÷ 코– 놓ι 異仁

筆堂二內戌)ㅢ

> ㅢ

.>의

서움

마으、

힌Ξ

'

크·

·

英艾의 ㅛ÷작¸.

구비한

인쇄소를

경–추ㄹ,

신보한

츌판물을

속출하고 普救女陣올

셜립하

여 深閏에

갇힌

여성에게 新嗤療의 헤택올

치게 한 둥 문화척

공척이 자못

컸움니다。

이로부터 신교의 각국

각파가

연속

入來하여

교세

융성하고 일변으 로 문화

운동과

민족

운동

의 依支珞이 되는

관계로써

ㄱㅗ 크짢이 대단하

여 한데 서양에시 이르기를

진도협회 설림 이

후로 수확이 가창

많기는

조선이라고까지

였움니다。

英田뽀公*란

것은

무엇입니까

영국성공회논 一 에 영국교회라고도 하니 영

국의 교회는

그 전부터 로마교회에셔 일종의

특권올

받아셔 국왕이 「ㅗ 수장

노릇올

하다가

四백 년 조금전에 아주

로마교회로서 분리하여

독특한

敎義와

의식올

削定하여

정통적

기독

교희로 자처하니 그 교의와

의식온

대개

신 ·

양교를

철충하였다

할 것입니다。

교직온

圭敎G-多

°巳 ·

司祭ηㅗ9˛

·

執事θ요3↓

三階에

나뉘어서 監督은

자못

큰 권능올

가지

고 명국

켄터베리 대교구의 주교는

영국

一 의 귀족으 로셔 국왕의 태콴식올

집행하논

– I ,":,–

',∴

ㅑ多 , ',¸

즈' ?

”'τ

侄=ㅡ

Δ

: 쯔=,¼

,,'¼

∵ ' ∵

: 色}:

丁 ' =

씨츠÷

''Ξ

ㅡ :∵

.드

결∵˛

, t+- 'r

≡宇 丁亥兮–ι '

κ

淸 급 일는–

.≡

극 갇혹 cㅣ

즈션올 .–

ㅑ=ㅡ

뵨국으르 선교사

速派를

재촉하여 己丑兮災¸

감독

룰무에게 조선에 있는

영국교되의 +

리가

위임되ㅚ.

京城ㅘ

인천에

교회가

션럭되

교 이년兮先9에

초대 캄독으로 터너가

메"

하여 悴敎

·

施癖

둥 사얩이 진행되어 나왔우

니다。

京城에 설팁한

부인병인온 ,ㅗ

出色란

一 사ㅢ

사엉이였움니다。

敍世〓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구셰

군은

악 八○

진仝炎巴

영국의

목사

원리

부처

東련

던의

빈먼

균올

감분하여 전도와

사피

개량올

병진하논

취지

로써

설럽한

束련된

친노회에

시작하여 十

=

뒤에

現名으로 고치고 군대 조직에

의하

진걱척

전노 방벼올

쓰게

된 자니 그 子인

小부스의 손에

조직이 강화되어 차차

세계 각

치에 ㄱ.ㅗ 지부를

셜치하여 나왔움니다。

조선으로의 진츌은

비교적

늦어서 융피 二

년兮장0에

흐가트(許

甚斗)를

영도자르 하여 十

세군영이 걸팁되고 사관학교 ·

육야소 ·

신우딴

행 둥이 차폐차레 실시되었움니다。

■ 基,技

가 우리에게 준 衫,은

어명습니까

기독교의

전래가

조선의

문화

빚 조선인의

끼친

공적

여러

방변

것이

치마는

우선

그 충의

멎 가지를

들어 말씀하

겠읍니다。

(첫

쩨U는

미신의 타파니 기독교가

唯 一 神의

밖에

모든

우상율

疝斥합올

말미암아서

다른

아무

방볍으르도 조치하기

어려운

미신이 한

敎門에

들면

뿌리쩨

몽혀바림은

실로 정신

해방의

크τ 온덕이었다

할 것이요

, (둘

)

국어 ·

국문의

발달이니 기독교 선교사가

경진

변역과

책자

작성율

위하여

조선어법과

빚 조선문체를

연구하여 종래에

鄕言 ·

諺文

이라교 경

시되던

국어

·국문이

새르운

생명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은

진실로 우리 문화

대한

일대 공헌이라

할지니 저

친주교 친

래 후에

敎흄

譯成의 일면에서

사전

편챤이 수

실행되고 신교의 들어온

뒤아는

성시 全譯

챤송가

변역 둥올

위하여 어문의

用이

커지는

동시에

조선어의

문법

연구갸

그데의

손에

창죡

진보돠는

둥 조선어문에

대한

기독

교사들의

공적온

진실로 영원한

감사를

받올

것이요、

∩세쩨) 근대문파의

세레니 기독교사

전도의

器具

ㄸㅗ 방편으로서

학교를

셜립하

교 따라서

근대

학술의

敎課用휼를

반들고 施

療사엽에

인하여

근태

의학을

전하고 근대져

인쇄술올

수입하교 신옴악을

보급하고 집회 .

오락

·

교제 ·

연설

·

토론

둥 공동생활의 양식움

가르치교 또 그네의 사생괄에시는

옴식 .

의복·

원에

·

공작에

관한

가르칭올

받논

둥 기독교

의 진행은

그대로 근대 문화의 보굽올

의미했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요、 Π네째) 부녀의

에배

同은 우선

부녀의 錮閉生活올

타파한 것이요、

남녀 평둥의 사상과 축첩 페치의 교칙온 부

사회

지위

향상

요、

교의

및 그 보급은

부녀에게

교육상

기회균둥올

것이요、 Π다섯째) 의례의 簡化니 조선인은

형식을

중야하는

친성이 있은

위에

유교의

에의 숭상올

그대로 容受하여

이른바

—四禮의

준행이 인생

콸동상의 일대

질곡올

이루교、 인

숨에

얽매여서

그 流弊를

벗지

못하다가

기독

교의 신앙에서

비로소 繁文褥窟볜문*혜

로서

離하는

길올

얻고 기독교척

婚葬의 간편

장중

합은

드디어 일반사푀의

환영 준행을

보기에

이르렀욥니다。

이밖에

계급척

痼習고슘의 革除와

교회를

해서의 세계

호홉의 공감과

내치

국권

상실의

후에

민족운동의 依支를

이 속에

발견한

둥도 다 잊올

수 없는

혜택이라

할 것입나다。

또 일변으로 조선적

문화와

사졍이 선교사들

지슐로씨

遠西에

소개된

공직도 척지

않되

다반

지나

·

일본에

왔었먼

이 만한

우수한

구력올

가진

이가

척었다

할 밖에

없음은

섭섭한

일이었움니다。

■ 回回敬도 朝鮮에 들어왔읍니까

회회교는 -

三○0여

년 진에

아라비아의

카人

모하메드가

알라神의

계시르써

챵림한

신교니 그 正名은

이술란교라

하여 ㄱ신게

대 信順한다」의 義를

취한

것이요、

교조의 名

인하여

모하메드교라

이르기도 하며 지나

에서는

서역 회회인의

신봉하는

것이라

하여

피회교라고 통킹하게 된 것입니다。

그 信條삼는

바논

ㄱ너회는

唯 , 眞神

쿄,라

의 밖에 신이 있다고 하지 말라。 그리교 모하

메드는 그가

보내신

에연자니라L합

입니다。 피

희교는 창교 당시에 이미 지나로 진래하였다

하논

딸도 있지마는

왁충이 없고 大女(波

人)과

지나와의 교통이

빈변하여짐과

합계 차

남방

지나에

행하였으며 元代에 波斯

·

라비아

능 회회

계튬

인민의 지나

이주가

얍야

침올

따라시 內地

각처에

교세가

성하여첬우

니다。

고려에는

연제부터인지

회푀인과

함게

流入

하여

王京에

그 교량이

있었으며 이씨 초선에

내려와서까치.

ㄱ回呵犬朝會頌祝」이란

것올

典的으로 준행하고、

그 교사는

回回沙門이라

하여

지희

風儀를

지키디니 世宗

九년兮四毛

)

이르러 그것올

革除하고 도 그네로 하여

금 國俗올

좇게 하였옴니다。 그러나

회회교의

Page 14: 최˛多껀 「전정 - pds11.egloos.compds11.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835924.pdf · ㄸ 十三 사 五二 拐 川 光 陵 晄 一 一商0 脇 ∴ 焌 袈, 一五

胡鮮常戡間答 80

변헝된

것이 大國神堂이란

이름으 르써

민간

앙화하여 오래도록

진행하였읍니다。

이조 초

문화

영향

미친

회회

법 . 회

온 필시 회회교 전래와 상관이 있올

것입니다。

一 ○ 語 文

■ 朝鮮括는 甘喆串上 어띠한 種類에 붙습니까

세계 인류의

언어는

수뻑 가지가

넘지마는

ㅗ 섕김새의 유표한

첨올

살펴보뎐

대강

종류로 갈라

붙일

수 있다고 학자가

말합니다。

(하

나∪는

말이 알캥이 알캥이 따로 멀어져서

그것에논

성절이 나타나지

않교 글올

반들

어 놓아야

비로소 문볍상의 관계가

드러나는

孤立語란

것입니다。

이를데면

ㄱ明」이란

말이

글자로는

부사인지 명사인지 형용사인지 동사

인지가

분명치

않다가

神明

·

燈明에서는

요、

·

요、

·

明德에서는

동사로 드러남과

같습니다。

중국어의

외에

西藏語

·

暹羅語

둥이 이 종류

붙숨니다。

Π둘∪은

말의

몸뚱이

달야

렇게

펄요한태

변통하

쓰는

膠着語

크+이

添加語)란

니다

。 이

테면

ㄱ사

람이

는다

」 하

는데

오는

ㄱ이

」 코푠

ㄱ는다

하는

발이 ㄱ사팝L

「길」 ΓE이

라는

몸뚱이에

붙어 한 묻월올

깃는 다위입니다。

바구어 말하던

토달아

하는 말입너다。

우리

조선어갸

이 修着語에 붙는 하나요、 동무에는

반주어

·

몽고어 ·

일본어 ·

우랄

알타이어 ·

라비다어

둥이 있움니다。

(셋

∪은

말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부분이 그

말의 뿌리에 들어 붙어서 ㄱㅗ 일부분올

이루교

변화하는

대로 맏의 아랫동이

이렇게

저렇게

곱섞이는

屈折語란

짓입니다。 이를베변영어에

책을

ㄱ북」이라교 하는데、 여러 첵올

나타낼

ㄱ북스」가

되교 사란올

ㄱ맨」이라교 하는데

여러 사란올

나타낼

제는 ㄱ멘L이

되며(명

사의

에)、

글쓴다

하는

「라이트」라는 말이 시간

관계

의 변화를

따라서

ㄱ르우트」 ㄱ리톤」이라는 딴

모양을

만드는요

사의 에) 따위입니다。

구라파

여러 나라의 말이 대개

이 종류에

습니다。 자세하게 갈피를

잦아서 이밖에

한두

가치를

더 베푸는

이가

있지마는

세계의 충요

연어는 이상의 세 종류

가운데 대개

수용

됩니다。

우랄

얄타이語旅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란의 사이에

祖上올

한 가지로 하는

일가

의 관계가

있교、 일가에는

촌수의 멀교 가까

구별이 있는

것처럼 인류의 언어에도 근

본에서 나와서 서로 특수한

콴계를

가지고 있

는 떨거지들이 있움니다。 이 맏의 게농

관케음

연어학애셔 語扶이라고 이우ⅱ다

.

세계 인류의

.인

어를

계통져으르 갇라

ㅛ 닌

대개

여남은

띤거지갸

있다고 하는데 야시아

대룩

북밤의 우맏산과

알다이산올

중심으 로 하

여 동온

일본、 서는

토이기、

남은

투르게스

탄、 북온

亞、 歐 양대륙올

어울러 북극해에

르는

동안에 사는

여러 민족들의 사이에시 쓰

말은

문뼙이 서로 같교 말의 성질이 시로

비숫하고 주요한

단어에

서로 일치되논

컷도

않야서 다른

것에

미교하여 볼

메에

뿐멍히

덩굴에 열런

것이라는

느낑올

주니 그려

므로 학자갸

이 면거지룰

우발

알다이어족이

라고 부르기로 하였움니다。

우랄

알다이어족

이 한 떨기지이면서 북의 우닫샨펀와

담의 안

다이산펀에 약간

구면이 있음으 르씨 우닫

타이어족을

다시 우받족과

앞다이족

두 부뿐

으 로 나누고 또 그 중에서 디 자세한

촌수를

따저서 어느 맏과

어느 맏이 가깜다

벌다

말합니다。

우리 조선말이 우랄

알타이족의 가운데 알

타이족에

붙논

것온

대체로 의심맏

것 없으되

翁帖ρ*˜

샤디방Ψ"

봤柑뺘페♂梓枉짹惻ξ璃ⅳ卄→한젼

내켜

우랄

알다이

족의

어떠

지위

있고 어떠

내역올

가졌

느냐

점은

아직 조금도 명맥해지지

않았으며、

국의

학자들

가운데 이렇다

저렇다

하논

試論

BI 語 文

발표한

것이

없지

아니하되

졔멉 시원한

의건으로 칠 것이

엾으며 마땅히

조선인

신의 금후

노력으 르써

이 문제를

해결하지

니하변

아니될

것입니다。

우랄

알타이어족의

외에

중국

기타를

포함하논

치나어족、

南洋語

대부분을

포꽐하는

말라카ㅣ풀리네시야어

족、 歐米語를

대게로 포괄하는

인도 ·

日耳旻

어족이라논

이롬올

알아

둡이

펄요합니다。

리교 이것올

연어

형태상으 로 말하면

우랄

타이어족온

膠着語요、 지나어족은

'

고럽이요、

인도 ·

일이반어족은

굴절어입니다.

■ 期佯앞은 얹마나 오랜 ㅒ源옵 가졌읍니까

조선

민족이

세계에

있는

퍽 오랜

민족의 하

나인만큼

그 연어도 심히

유구한 :내

력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랄

알타이어족에 붙논

여러 민족

가운데

조선만큼

여사가

오래교 국

토가

횬들리치

않교 사회와

문화가

連綿하여

끊어지지

않논

민족이

엾으며 또 조선반큼

수효가

많교 문볍이 분명한

나라가

없옴올

아서

말의

연원이 또한

그뱐큼

深遠치

야니치

못할

것올

짐작할

것입니다。

시방

우리가

조선어의 근원올

찾아

올라가

「ㅗ 어덮

것은

영둥하게

아득한

옛날

지절

가서 닿는

것이

있으니 곧

민류가

최초의

발생지에시

멀치

아니한

곳에

모여

살교 야직

멀리

퍼치치

아니하였올

페에

쓰는

말로 인겅

되는

말이 조선먈

가운데서 발견되는

예가

읍니다。

이를테면

태양과

光明神을

고태 조선어에

Jㄹ

또 Jㄺ

안」이라교 하였는데

女眞語에 태

양을

ㄱ뱌칸」이라

하고 지나에서

日照의 神올

「魃」이라

하고 인도에서

꽝명신을

ㄱ바르나」라

하고 젬민족온

태양신을

「바알」이라

하교 바

빌론인은

태양신올

ㄱ삘」이라

하교 埃及에시는

태양올

ㄱ피」라

하교 회람에시논

태양신을

「아

플로L라

하고 羅馬에셔논

친주의

子인

火神올

ㄱ별칸」이라

하고 북구에서논

태양신의 子인

生殖神을

ㄱ프리카」라

하여 우주

至高의 꽝병

신에

대한

어형이

모두

일치하는테

이렇게

법위에

있는

각 시대、 각

민족간의

일치는

인류사의 最古

시대에

공동으로 쓰먼

말이던

것올

인류

원주지로서

사방으 르 분산할

메 제

각기 가지교 나간

것이라교 섕각하는

밖에 적

당한

설명이 서지

않습니다。

그련즉

조선에셔 태양으르부터 광명신

·

·

최교신올 Jㄹ

이라교 하는

연원이 까마아

득합과

합계

조선어 그것의 연원이 또한

悠久

長遠합올

생각합이 진실르 량연합니다。

朝佯括의

澣成內容은

어멓습니까

인류의 문화가

진파 교류를

본질로 하는 뱐

큼、 어느 나라

말이교 질대로 외곬으 로 내려

와서 치녀성올

곱다랗게

보진하는 밀은 있올

없움니다。

디옥

조선어논 ,ㅗ

연원이

久遠

한만큼 ,ㅗ

발달

과정에는

각 민족、 각

시태의

괼요한

요소를

많이

싱취하여서 ,ㅗ

내용올

하여

내려

것이

사실

것밉

러나

켜다란

용광르에

들어가는

쇠가

녹아셔

液이 되는

것처럼 대개논

제 어디서 들어

것인지를

모를만큼

조선어라는

허울올

집어쓰교 있게

되니 오늘날

우리가

교유

조신

어거

하논

말에

캐어

보면

이러

것이

숨니

시방

조선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대걍

조선

자체의 생셩으 로 인정되는

것、 학문의 傅

用밈이

분명한

것、

근세에

일뵨과

빚 구미로

새르 수입된

킷의 세 가지가

위주로늬

유어로 생각하는

말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데서

들어왔우의

명백한

것들이 픽 않습니

다。

이를메면

「시늉」이 形容의 訛한

것이요

,

ㄱ의뭉」이 陰凶의 면한

것이요、

ㄱ야단법석」이

惹端과

法席이요、 정신차림의 ㄱ뒤수른다」가

撥에서

나왔옴

둥이 ㄱㅗ 效例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가까운

한문뿐

아니라

열른

생갹하기는 얼토량토 아니한

데서

뒤어

듣어

것도 심히

많숨니다。

또 이 모양으르 시방

우리가

분명히 다른

데셔 온 말인

줄 야논

도 세월과

합께

형상이$˛

하고 의미도 달라져

他日에

갸서

슐며

교유

렝세

할 것

이 많올

것도 우리갸 미리 생각할

수 있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