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 1 07 구원과 언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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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서 1 삼육대학교 신학과 박춘식교수 , Ph.D.( 구약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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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서 1삼육대학교 신학과

박춘식교수, Ph.D.(구약학)

오늘의 학습내용

13장 구원

1.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2.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14장 언약

1. 베리트의 어원과 의미

2. 창조언약

3. 아담, 노아, 아브라함언약

4. 언약에 대한 부조들의 믿음

구원과 언약

제13장 구원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이다. 창세기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종교개혁의 원리 인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가 부조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 있고, 언약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서의 구원을 엿보게 한다. 구원 을 체험한 남은 자에 대한 이야기와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최초의 기록들을 볼 수 있다. 구원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일치 하며 이것은 새로운 창조에 참여하는 것임을 창세기의 기사들이 증거 한다.

창세기는 내세에서의 구원,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부활 신앙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기사 속에서 엿볼 수 있을 뿐이다(창 21:12; 22:5; 히 11:17-19). 창세기의 매우 현세적인 구원의 기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궁극 적 구원에 대한 영적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창세기는 타락 후에 연속적인 구원의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다.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영원 한 구원에 관해 무엇이라고 증거하는지 살펴보자.

1.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1) 아담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분리요 인류의 죽음을 의미하나,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셨다(창 3:8-9).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의 길, 원복음창 3:15을 갖고 찾아오신 하나님은 인류에게 은혜요 생명이다. 하나님께 서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인류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으며, 구원은 오직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속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원복음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구원을 성취하시겠다는 선언이다. 인류는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단을 이기고 영생을 얻고 잃었던 낙원을 되찾게 된다.

아담 부부에게 지어 입히신 가죽옷은 무화과나무 잎처럼 쉽게 마르고 썩어 없어질 인간의 의가 아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영원한 의를 아낌없이 인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넘쳐나는 사랑을 예시한다.

(2) 에녹

(창 5:21-24)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의 승천은 이 땅이 인류의 영원한 무덤이 아니라는 희망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분리된 삶이 인간의 숙명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과 일상생활에서 동행함으로 보여주었다. 영원 한 구원은 하나님께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데려가셨다’는 구절이 알려주고 있다.

에녹: 하나크 “창시자, 도입자”

에녹의 히브리어 이름인 ‘하녹’%wOnx,] Hánôk은 서부 셈어의 어근인 ‘하나크’$nx, HnK ‘시작하다’, ‘도입하다’에서 기원하여 ‘창시자, 도입자’ 를 뜻한다. 이 이름을 가진 가인의 아들은 이 땅에 최초의 도시를 건축 한 것을 기념하지만(Hess, 39) 셋의 후손인 에녹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서 마련하신 영원한 하늘 도성에 최초로 입성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 기에서 헤매는 인류에게 희망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창세기 4-5장의 족보에서 에녹과 라멕은 각각 셋 족보와 가인 족보 에서 아담의 칠대손이라는데 일치한다. 에녹의 승천은 가인족보에서 아담의 칠대 손인 라멕에 이르러 강포가 극에 달했다는 점과 큰 대조 를 이룬다(창 4:23-24). 에녹의 모본은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하나님 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 가운데에서 지켜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살아서 승천할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분을 찾는 이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에녹의 이야기는 확인해 준다.

(박춘식 231)

(히 11:5-6)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 노아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8의 문맥은 대홍수 시대의 사악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동시대인들의 운명과 노아의 운명이 비교되고 있다. 심판의 배경에서 호의는 구원과 구출이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보이면서 동시에 진노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은혜는 심판과 공존할 수 없다.’(D.N. Freedman, J. R. Lundbom)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 하였다(창 5:24; 6:9). 하나님과의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통해서 노아는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 나님은 심판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노아에게 계시하셨고(창 6:13-22), 대격변적 홍수 속에서 그를 기억하셨다(창 8:1).

대홍수 기사의 문학적 구조인 교차대구법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억하셨 다’이다(Anderson). 하나님의 일방적인 보호와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에 노아와 그와 함께 한 가족과 생물들이 구원을 받았다.

(4) 아브라함연속적인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통한 구원을 경험

사라: 바로,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내어 줌

유프라테스강 지역에서 온 최강의 군주들과의 전쟁

하나님의 개입으로 위기에서 구출 받음

소돔 백성을 위한 간청

이삭탄생: 사라가 웃을 정도로 불가능한 것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어 주셨다.

아브라함 기사 속에서 은혜로 얻는 구원에 관한 가장 큰 계시는 모리아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이다(창 22). 이것은 인간을 위해 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는 사랑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롬 5:8).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 야곱 (창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창 32:9-12)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귀향명령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 32: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창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도 살아 남았던 야곱은 복수심에 가득 찼던 형을 만났을 때 형에게서 그를 죽일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을 확인했다. 살의에 찼던 에서의 얼굴은 하나님의 자비하신 얼굴로 변해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은 구원을 받았다.

(6) 요셉 요셉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는 죽음 직전의 찰나에 은혜로 죽음에서 벗 어났고, 애굽으로 팔려갔다(창 37:20, 22, 27).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그는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열국의 구원자가 되도록 준비되었다. 요셉은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의 은혜를 입었다.

그가 부당하게 감옥에 갔을 때에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었다(창 39:4, 21). 보디발의 아내와의 사건은 요셉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그는 살아 남았다. 감옥 속에서도 그는 옥중 죄수를 모두 관할하는 인물이 되었다.

요셉생애의 키워드“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창 39:2, 21, 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축복이 되라고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명령은 요셉을 통해

성취되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기의 신분을 밝혔을 때 하나님이 위기로부터 형제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 후손을 세상에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를 애굽에 먼저 보내셨다고 말했다(창 45:5, 7). 이것 은 구속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이스라엘 민족이 칠년 흉년으로 이 세상에서 멸절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과 요셉의 형제들과 열국과 온 세상이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을 사랑하신다

요셉의 형들이 범한 죄가 그냥 넘어가지 않았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죄가 그냥 넘어가 지 않았다. 요셉의 형제들은 삼일 간 투옥되었고(창 42:17) 시므온은 형제 들이 돌아올 때까지 갇혀 지냈다(창 42:24; 43:23) 베냐민은 애굽에서 종이 될 위기에 처했고(창 44:17) 아버지 야곱이 슬퍼하며 스올, 곧 죽음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창 44:29, 31)

그러나 중보자 유다를 통해서 요셉이 형제들의 회개와 완전히 변한 삶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형제들을 온전히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여 이스라엘이 기근을 벗어나게 해 주었 다.

마찬가지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그들 은 저주에 빠졌다(신 28:20-68).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그들을 용서하시고 새 생명의 기회를 주실 것이었다.

사사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배도와 회개와 하나님의 구원은 이것을 실증한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왕상 8:22-53). 이스라엘은 국가적 멸망을 겪었지만, 하나님은 그 민족을 버리지 않으시고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셨다. 국가적 부활까지 주신 것이다.

교회는 흠이 많을지라도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교회 는 고난도 겪었으나 결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당하지 않았다. 요 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 중 그 어떤 교회도 주님께 버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흠이 많고 칭찬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은 최고의 선물을 주셨다.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갖고 있다.

2.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기독교의 핵심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해 창세기는 ‘믿음’ 이나 ‘믿다’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성경의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 요셉 등 창세기의 주요 인물들을 40절중에 절반이 넘는 22개 절 속에서 포함하고 있다(히 11:1-22).

창세기는 믿음을 신학적으로 논하지 않고, 믿음의 본이 되는 인물들을 통해서 진실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보여준다. 믿음은 생활인 셈이다.

(1) 아담 히브리서 11장은 창세기의 믿음의 조상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믿음의 핵심 요소들을 드러낸다. 믿음의 조상의 첫 부분에 아담을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아담이 가졌던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이다(히 11:3). 아담은 우주의 삼라만상과 자기의 존재 근거에 대해서 하나님께 로부터 직접 들었다. 하나님 말씀은 창조력이 있어 발해질 때마다 사 물이 존재케 되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아담에게 말씀은 생명과 사망의 문제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을 때, 그의 불신적 행동은 사망을 가져왔다. 생명은 스스로 건강하게 살려는 몸부림에 가까운 노력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있다. (박춘식 238)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2) 아벨 아벨은 에덴에서 주신 희생제사를 통해 인류에게 낙원과 영생이 회복될 것을 믿었다. 에덴을 떠나며 인류가 갖고 나온 제사제도는 하 나님께서 인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대책을 마련하셨음을 증거한다. 구원은 인간편의 고안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편의 자기희생을 통한 구속적 결단으로 마련되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베푸 시는 사랑의 진정성을 마음에 수용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길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순종을 통해 구원은 현재화된다. 아벨은 자신의 행위의 열매, 자기 공로를 하나님 앞에 내세운 가인 보다도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순교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이 생명 보다 귀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박춘식 239)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3) 에녹

(히 11:5-6)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은 타락하기 전 인류가 에덴에서 누렸던 축복이지만, 죄로 가득 찬 이 땅에서도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에녹은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이 일은 하나님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호의를 갖고 계신 분, 인간의 행복을 바라시고, 그분과 더불어 동행하는 것을 제사 드리는 것보다도 더 기뻐하시고 제사 제도의 궁극 이 하나님과의 만남임을 확신하는 때에 성취된다.

주님의 백 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은 하늘로 옮겨지는 것이다. 에녹의 승천을 통해서 인류는 이 땅이 궁극적으로 저들의 무덤이 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이 인류의 눈앞에 활짝 열려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전인적 경험이다. 영생과 구원은 추상적 사고 속에 존재하는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온 몸과 혼과 영혼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 세계이다. 구원은 환상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 공동체 속에서 매일마다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박춘식 239-240)

(4) 노아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5) 아브라함

(히 11:8-19)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한다.

본문의 동사 ‘헤에민’!meah/ , he é́mìn, ‘믿으매’의 목적어는 ‘야훼’이며 ‘야훼’를 의지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표현한다. 하나님과의 절친한 관계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롬 4:17, 20-22; 약 2:23).

2. 의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신뢰하는 행동을 하나님께서 의로 간주하셨다.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3. 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하나님께서 가납하시고 의를 선사하신 것이다.

(롬 4:2-5)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4.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격적 신뢰 관계를 가진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순종한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창 15:9-10, 22:9-12, 16-18

(약 2:21-24)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5. 하나님의 의는 온 인류에게 제공된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입은 것은 그가 할례 받기 전이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구별하는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의가 제공된다.

(롬 4:9-12)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6. 하나님의 의는 전도적 속성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민을 위한 복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가 누린 의는 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이다.

(롬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갈 3:6-9)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제14장 언약

언약은 성경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구약학자 중에는 언약 을 성경신학의 중심으로 생각하거나(W. Eichrodt) 성경 전체를 언약 본 문covenant text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M.G. Kline). 후자는 고대 근동의 조약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그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1. 베리트의 어원과 의미언약(베리트)의 어원이 되는 아카드어

비리투 (족쇄, 죔쇄), Weinfeld

비리트 (중간에), Noth

바루 (보다), Kutsch

이중에 ‘비리투’birîtu 가 적절한 어원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어원이 어떤 것 이든지 언약은 쌍방을 함께 묶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J. Arthur Thompson)

용례

구약의 286회 중 창세기에 27회 사용되었다. 특히 창세기 17장은 13회를 사용하여 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이며,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한 장은 레위기 26장이 8회, 뒤를 이어 창세기 9장이 7회를 사용하고 있다.

창세기는 창조언약, 아담언약, 노아언약, 아브라함 언 약을 담고 있다. 이것들은 후에 등장하는 모세언약, 다윗언약,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새 언약으로 발전하였다. 우리가 창세기의 언약들을 잘 이해하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뜻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2. 창조언약

(1) 창조언약이 존재한다고 증거하는 성경의 증언들

(창 6:18, 개정)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노아와 언약 세우심.. 창 9:1-17

본문의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에 사용된 히브리어 ‘와하키모티’ (waháqìmotî, 내가 세우다) 기본형 쿰 (qûm 세우다)는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약정을 승인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Waltke & Fredricks) 하나님께서 창세기 9장에서 인류의 새로운 시조가 된 노아(새아담)와 맺으신 언약은 창조 때에 아담과 맺으신 언약을 갱신하신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언약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창 6:18) 창조 자체의 사실에 의해 확립된 신적 관계를 가리킨다.’(Dumbrell)

창조기사 속에 언약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창조기사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확립된 언약적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그 신적 관계가 창조언약이다. 노아언약은 창조언약의 갱신이다.

2) 호세아 6:7

(호 6: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3) 예레미야 33:20-21

(렘 33:20-21) 『[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창 1:4-5)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2) 창조언약의 두 대상 앞에 언급된 선지서들의 증언은 하나님께서 창조언약 속에서 언약 의 대상자로 삼으시는 대상이 두 가지 임을 지적한다. 호세아서에 의 하면 그 대상자는 인류이며, 예레미야서에 의하면 자연이다.

인간과 자연은 창조언약에 의해서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인간과 자연 의 운명은 언약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 달려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창조질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자연계에 이변이 생기고 인간은 심히 부패하게 되었지만 창조언약은 거두어진바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것이며,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 여전히 만물과 인류를 붙들고 계신다.

(3) 하나님의 형상 (창 1:26-28)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심으로 인간과 언약관계 속에 들어가셨다. 본문은 창조언약의 무조건적인 규정이다. 인간은 이것을 성취하도록 창조되었다(E. H. Merrill). 고대 근동에서 ‘첼렘’(형상)은 신을 대표 하는 조형물이다(Westermann).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닮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표하여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축복 받은 존재로 창조되었다.

언약 속에는 하급자의 의무가 포함 이 되는데 창세기 1:28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이라고 한다. 문화명령은 인구증가와 개발, 자연보호와 자원 보존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종근). 문화명령은 단순한 의무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위대한 축복이다.

(4) 안식일

(창 2:1-3)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다. 인간이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피조세계를 지혜롭고 선하게 관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주를 경외하며 그분께 순종하는데서 최고의 즐거움을 발견함으로 언약관계를 증진시 키도록 주야의 질서(언약) 속에 창조언약의 표인 안식일을 세우셨다. (Merrill)

(6)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 창조기사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끊임없이 열거하 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창 1:26, 27).

하나님은 축복의 안식일을 주셨다.(창 2:1-3) 하나님은 흙의 먼지가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하나님은 에덴을 인간에게 주셨다.(창 2:8, 15)

하나님은 아담 앞으로 모든 동물을 인도하여 이름을 짓게하심으로 만물을 그 발 앞에 복종하게 하셨다.(창 2:19, 20)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내를 만들어 주심으로 가족생활의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창 2:18, 20-25)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드러나 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는 창조기사 속에서 히브리어 성경에 세 마디 말씀으로 요약되었다. ‘와예바레크 오탐 엘로힘’ ‘하나님이 그들을 복주셨다!’(창 1:28. 비교, 창 5:2).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창조언약은 인류의 영생과 행복을 보장하는 축복 의 언약이다. (박춘식 251)

3. 아담언약 (창 3:14-19)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1) 여자의 후손

창 3:15

원복음에 대한 이해..여자의 후손 ..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심

초자연적인 분

(2) 아담언약의 계승

하나님은 창조 때에 주셨던 생육 (창 1:28; 3:16)과 땅(창 1:28-29; 3:17-19)과 영적 축복(창 2:3; 3:21)을 계속해서 누리도록 하셨다. 그러나 문화명령의 성취는 고통과 힘든 수고를 동반할 것이다.(Merrill)

범죄 후에도 하나님이 문화명령의 장려자이신 사실은 온 인류가 범죄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과 언약 관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실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문화명령의 지향 목표는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이다. 새 창조이다. 그러나 이 일은 인간이 아무리 열정과 노력을 불태운다고 할지라도 결코 성취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죽음으로의 소환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창 3:19)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통해 그분의 온전한 목적 을 역사 속에서 성취하시고, 주님의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룩하신 완전한 순종을 우리의 것으로 간주하심으로 새 사람, 새 세상이 존재케 된다.

(박춘식 254)

(3) 메시아에 대한 소망 표현 아담은 여자의 후손에 소망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아내의 이름을 새로 짓는 것을 통해서 나타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내를 데려다 주셨을 때 그 이름을 여자라고 지었지만(창 2:23) 여자의 후손을 통해 생명이 이르러 올 것을 깨달은 후 자기 아내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 아내가 생명의 소망이 될 것이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창 3:20). ‘하와’ 는 생명을 뜻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다(창 3:21). 저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서 무죄한 동물이 희생되었던 것처럼 메시아께서 죄인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 었다. 에덴을 상실한 후에 하나님의 백성이 드렸던 모든 동물 제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상징한다(요 1:29).

4. 노아언약

창 9:1-17

베리트: 7회 사용 (창 6:18제외): 창 9:9, 11, 12, 13, 15, 16, 17.

(1) 창조언약의 갱신

(2) 기억하시는 하나님

5. 아브라함언약

아브라함은 노아의 후손이며, 셈의 후손에 속한다.(창 10:21-31; 11:10-32)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기 12:1-3; 15:1-5; 17:1-14에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12:1-3은 아브라함의 소명을 기록하며, 이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약속들이 있다. 우선적으로 이 부르심은 온 민족이 하나님 앞 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린 바벨탑 사건 후에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선교적 부르심이며, 언약은 모든 민족을 하나님의 복음 속으로 초청하는 것이다.

(1) 창세기 12장(창 12:1,2,3,7)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3대 약속 첫째, 땅이다.

창 12:1, 7; 13:15, 17; 15:8; 17:8

둘째, 자손이다.

창 12:2, 13:15, 16; 15:5; 17:4-6, 17:16; 18:18; 21:13; 22:17

셋째, 축복이다.창 12:2, 3; 18:18; 22:17-18

이것은 크게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약속자손과 땅과 국 제적인 축복에 대한 약속으로 볼 수 있다.

(2) 창세기 15장

자손: (창 15:5, 6)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미래지향적 언약: (창 15:12-20)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고대 시대의 풍습을 따라: 인간에게 자신을 맞추시는 하나님:

(창 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피로 맺은 언약

(3)창세기 17장개명

아브람: 높으신 아버지

아브라함: 많은 무리의 아버지, 창 17:5

사래: 나의 여주인

사라: 여주인, 창 17:15

이 이름은 언약적 신앙을 갖고 있다. 아브람은 단순히 존귀한 아버지가 아니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며, 사래는 아브라함의 여주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 고, 영적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교회의 믿음의 조상이 되어 온 세계에 축복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 (박춘식 262)

이삭 출생 고지: 언약의 아들 탄생

할례

(4) 창세기 22장

(창 22:16-18)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6. 언약에 대한 부조들의 믿음

아브라함이 후처의 소생들을 모두 동방으로 떠나보냄. 약속의 땅은 이삭의 후손들에게.

막벨라 굴 구입: 사라, 아브라함, 야곱 장사 지냄

요셉은 출애굽 때 자기 유골을 가나안으로 메고 올라가기를 유언 (창 50:25, 수 24:32 세겜)

약속의 땅에 대한 저들의 갈망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저들 이 고대하였던 더 나은 땅인 하늘 본향을 사모하도록 격려한다. 믿음의 부조들은 언약의 믿음을 갖고 살았다. 그들은 자기의 뼈가 약속의 땅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의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약속하신 언약 의 후손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요 14:1-3)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