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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반도체 백혈병 항소심 판결에 대 해 상고를 포기하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7년 전 이 긴 싸움을 시작 하게 했던 고(故) 황유미 씨의 백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습니다. 반올림의 투쟁은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세상에 알 렸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직업병 인정과 산업재해보상이 얼마나 노동자에게 어려운 일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오늘날 법은 노 동자 편이 아니지만, 우리는 긴 투쟁을 통해 법적인 인정을 받으려 합 니다. 법적인 인정은 세상과 사회의 인정을 나타내는 한 척도이기 때 문입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을 다루었습니다. 현재 우리 법에서 노동자는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 다.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 중지권을 행사하고 뒤따른 민·형사 투쟁을 진행 중인 한 젊은 노동자는 자신의 투쟁이 외롭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작업 중지 투쟁이 활발해지려면, 법을 제대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 함께 해야 한다는 그와 어떻게 함께 연대할지 머리를 맞 대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 고민과 연대가 7년 전 반올림의 출발처럼, 지금은 꿈같은 소리로만 들리는 ‘작업중지권 복원’을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일터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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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반도체 백혈병 항소심 판결에 대

해 상고를 포기하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7년 전 이 긴 싸움을 시작

하게 했던 고(故) 황유미 씨의 백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습니다.

반올림의 투쟁은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세상에 알

렸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직업병 인정과 산업재해보상이 얼마나

노동자에게 어려운 일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오늘날 법은 노

동자 편이 아니지만, 우리는 긴 투쟁을 통해 법적인 인정을 받으려 합

니다. 법적인 인정은 세상과 사회의 인정을 나타내는 한 척도이기 때

문입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을 다루었습니다.

현재 우리 법에서 노동자는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

다.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 중지권을 행사하고 뒤따른

민·형사 투쟁을 진행 중인 한 젊은 노동자는 자신의 투쟁이 외롭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작업 중지 투쟁이 활발해지려면, 법을 제대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 함께 해야 한다는 그와 어떻게 함께 연대할지 머리를 맞

대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 고민과 연대가 7년 전 반올림의 출발처럼, 지금은 꿈같은

소리로만 들리는 ‘작업중지권 복원’을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일터

독 자 에 게 …

2 ․ 통권� 128� � 2014.9

16 특집

1.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2. 노동자의 안녕을 위한 권리 구성

3.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노동자 안전의 최후의 보루이자 노동자의 현장 통제권인 작업 중지권. 현재 법조문을 중심으로 법리

적 쟁점을 짚어보고, 작업 중지권을 작업중지권답게 만들기 위한 개선안을 모색해본다.

03 뉴스 주·야 교대근무 중 심근경색, 법원 산재 인정해 外 l 장영우

06 지금 지역에서는 산재보험 사각지대에서 산재투쟁을 시작한다 l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

청지회 사무장 최진일

08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l 최민

12 현장의 목소리 요양보호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l 재현

28 연구소 리포트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요구할 네 가지 l 흑무

33 사진으로 보는 세상 4월16일, 그날 l 김세은

34 노동시간센터(준) 기획 시간의 폭력 :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서 l 노동시간센터(준) 김보성

38 문화읽기 일하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으세요? l 김정수

40 유노무사의 상담일기고속도로 안전순찰원이 도로공사 노동자가 아니었다니!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2 일터 다시보기 넘어야 할 또 다른 산 앞에서, 반올림 화이팅! l 정하나

44 이러쿵저러쿵 마흔 l 콩

46 성명서개별실적요율제는 산재은폐를 조장하는 제도!

확대가 웬말인가! 제도를 당장 없애는 것이 답이다!

48 퀴즈 가로세로 퀴즈로 본 일터

l일터l ․ 3

27년간 주·야 교대근무 중 심근경색,

법원 산재 인정해

27년간 주·야 교대근무를 한 노동자가 병을

얻었다면 갑작스러운 과로가 아닌 일상적인 수

준의 업무 중이었어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

다는 판결이 나왔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해

당 산재신청 건에 대해 고용노동부 고시를 근

거로 불승인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고용노동부 고시와 비교해 야간노동에 대한 산

재인정 범위를 넓히며 공단의 산재 불승인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8월 17일, 기아자동차

노동자 박 모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

양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하

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박 씨는 지난 1985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7

년간 주야 2교대 근무를 해왔다. 1일 10시간

노동으로, 1주일씩 주간과 야간을 맞교대해 근

무하는 방식이다. 그는 생산라인에서 부품 세

팅과 용접 등의 일을 했고 그 뒤에는 품질 문

제 발생 시 대응 업무 등을 수행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9월, 공장 체력 단련장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으며 같은 해 12월 근로복

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

단은 근로시간과 관련한 산재인정 기준인 고용

노동부 고시에 미달해 ‘질병과 업무 사이에 인

과관계가 없다’며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재판의 쟁점은 업무량이 갑자기 증가한 것도

아닌데 박 씨가 과로했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

이었다. 실제 박 씨가 쓰러지기 전 3개월간 주

간 근로시간은 50∼60시간으로, 늘 해오던 수

준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장기간 계속된

주·야간 교대근무의 특수성을 고려했다. “27년

동안 해온 교대근무는 인간의 생체리듬에 역행

하고 신체에 많은 부담을 주는 근무형태이며,

야간 근무는 스스로 업무를 조절하거나 수면시

간을 확보할 수 없다”며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요양급여를 주지 않기

로 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

결했다.

이번 판결로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가

현실에 맞지 않는 협소한 산재인정 기준을 대

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

동건강연대 집행위원인 유성규 노무사는 지난

8월 18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 라디오 인

터뷰에서 “근로복지공단은 고용노동부 고시와

지침을 산재인정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데, 공

단이 고시 내용 중 근로시간 중심의 계량화 된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

다”며 “박 씨의 경우도, 공단이 1주 근무시간이

60시간, 4주를 평균으로 1주 근로시간이 64시

간을 넘겨야 한다는 고용노동부 고시에 미달한

다는 이유만으로 불승인 판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상규명 재수사 요구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유족

4 ․ 통권� 128� � 2014.9

출처 : 울산저널

지난 4월 26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선행

도장부 내에서 작업 중 에어 공급용 호스에 목

이 감긴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진

하청노동자 정 모 씨의 사인에 대해 경찰이 자

살로 결론을 내리자 유족과 노동계가 재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 씨는 당일 오전 11시 45

분께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고, 발견 당시

3.5m 가량의 현장 높이에서 몸이 바닥에서

50cm 떠 있는 채로 에어호스에 매달린 상태였

다. 정 씨는 인근 울산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저녁 6시 2분께 숨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울

산 동부경찰서는 지난 6월 16일 정 씨의 죽음

을 자살로 규정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유족과 지역노동계는 지난 8월 20일 기자회견

을 열고 “정 씨의 죽음을 자살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며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자살로

내사 종결한 동부경찰서를 규탄하며 재수사를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정 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이유로, 사고

당시 목격자가 없는 데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

휴식시간에 고인이 ‘작업에 사용하는 리모컨

작동이 잘 안 된다’며 ‘한 번 더 작업해보고 통

째로 바꾸든지 해보겠다’는 얘기를 나눈 점을

들었다. 유족과 노동계는 “당시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 순간, 현장 안

에는 고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소문이 퍼졌

다”며 “현대중공업은 중대재해 발생 시 지체

없이 노동지청에 사고 사실을 보고해야 하나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날 오후 2

시부터는 언론에 ‘고인의 죽음이 자살일 가능

성이 높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파악

결과 그 얘기는 울산 동부경찰서에서 (언론에)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울산 동부서는 사

고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이었는데, 시신에 대

한 검안과 부검도 이뤄지기 전에 자살일 가능

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

다.

유족은 “몇 번을 고민한 끝에 자라는 아이들

을 위해 정확한 진상규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현대중공업과 동부경찰서에 항의하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우리는 유족

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며 “유족들은 수

사자료 공개를 요구했으나 자살임을 주장하는

자료 외 현장 수사 자료를 받지 못했기에 수사

자료 전면공개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했다.

속초의료원 단체협약 해지 통고,

노조 즉각 반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등을 놓고 속초의

료원의 노사 갈등이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병원 측이 기존에 체결된 단체협약 해지를 노

조에 통고해 갈등이 악화될 전망이다. 속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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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원은 9월 2일 지난 2009년 1월 20일 전국보

건의료산업노조 속초의료원지부와 체결한 단체

협약의 해지를 노조에 통고했다.

병원 측은 이날 “노조가 지난 7월 22일부터

파업을 벌이다 10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으나

강원도청 앞 1인 릴레이 시위 등 계속되는 파

업의 여파로 병원의 안정적 운영이 불가능하고

환자들의 건강권과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상

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현행법률 및 조례에서

정하는 범위 내에서 현실에 맞고 경영에 효율

적인 체제로 모든 제도를 개선해 나가기 위해

기존의 단체협약을 해지하게 됐다”고 설명했

다. 병원 측은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임금인

상은 내년 상반기 중에 총액임금의 3∼5% 이

내에서 인상하고, 비정규 직원의 정규직화는

오는 10월부터 시행하며, 인력확보 및 승진은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음에도 노

조는 사측의 요구사항 자체를 거부하면서 현장

교섭을 파행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병원 측의 일방적인 단체

협약 파기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2차 파업

등 강력한 투쟁방침을 밝히고 있어 속초의료원

노사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인천 남동공단 염소가스 유출,

22명 부상

인천 남동공단의 한 공장에서 염소산나트륨

가스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인천 남동경찰서

의 발표에 따르면 8월 22일 오전 8시 21분께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위치한 A 도금공장에서

염소산나트륨가스가 유출됐다. 이 사고로 주변

에 있던 22명이 구토와 두통을 호소해 병원으

로 이송, 치료를 받았으며 모두 생명에는 지장

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 도금공장에서 염소산나트륨 1톤을

저장창고로 이동하던 중 수동제어장치를 잠그

지 않아 10~20ℓ가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출된 염소산나트륨은 10시 10분께 경찰 기동

대와 가스공사 업체 관계자가 완전 수거하는

등 현재 현장조치가 완료됐다. 경찰 관계자는

“염소산나트륨을 저장창고로 이동하던 중 사고

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공장 관계자 등

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

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남동공단의 위험성을 정부가 미리 파

악하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고를 방지하

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발

생 3달 전 정부의 정밀안전진단에서 인천 남동

공단은 ‘위험’ 판정을 받았었다. 이 진단 보고

서에선, 국내 노후 국가산업단지 18곳에 입주

한 업체 대부분이 폭발위험물질이나 유해화학

물질을 부적합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

났다. 일터

정리 : 장영우 선전위원

6 ․ 통권� 128� � 2014.9

산재보험 사각지대에서

산재투쟁을 시작한다

최진일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무재해사업장’ 동희오토

충남 서산에 위치한 동희오토는 기아자동차 ‘모닝’과 ‘레이’를 위탁 생산하는 국내 최

초이자 유일의 완성차 외주하청 공장이다. 또한, 요즘은 흔한 일이 되어버린 100% 비정

규직 공장의 ‘조상님’으로 생산직 전원이 16개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비정규직

공장들이 대부분 그렇듯 동희오토 역시 표면적으로 ‘무재해사업장’이다. 크고 작은 사고

와 근골격계 환자들이 넘쳐나지만 사용자성을 전면 부인하는 원청이 이를 책임질 리 만

무하고, 하청업체들은 줄곧 산재를 은폐해 왔다. 하청 노동자들은 ‘산재신청=해고’를 상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크고 작은 근골격계 질환을 자기 돈 들여가며 치료하고 있

다.

중대재해가 동희오토의 가면을 벗겨내다

2013년 7월, 화이날 라인에

서 일하던 황재민 씨가 회사

식당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긴급히 수술을 받았지만 황재

민 씨는 현재 좌측반신 마비상

태로 병원생활을 지속하고 있

다. 사고 후 회사는 이례적으로

황재민 씨 가족에게 빨리 산재

보상신청을 하라고 종용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황재민 씨의

부인은 증빙서류 하나 없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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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서 한 장만을 제출했다. 당연히 불승인이 결정 났고 이후의 심사, 재심사 역시 결과

는 마찬가지였다.

2014년 6월, 재심사를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지회는 겨우 황재민 씨 부인과 접촉할

수 있었고 이후 행정소송 준비와 회사를 상대로 한 투쟁을 시작했다.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문제가 드러났다. 하청업체가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 산재보상신청을 종

용했지만, 뒤에서는 조사과정에서 불리한 증언들과 거짓말로 산재승인을 방해한 사실,

원청은 관리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간단한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하게 막은 사실, 근로복

지공단 역시 악의적인 왜곡으로 황재민 씨의 재해를 개인 질병으로 판단했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여기에 황재민 씨가 조합원으로 있던 어용노조는 하청업체와 손잡고 산

재를 무마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진행했다. 이후 심사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한 황재민

씨 측에 어용노조 위원장은 ‘모금까지 해서 줬으면 할 만큼 했다’며 더는 요구하지 말라

고 일축했다.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중대재해 한 건만으로 평화롭게만 보였던 동희오토

의 민낯이 하나둘 드러난 것이다.

산재를 인정하고 원청이 책임져라!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는 황재민 씨 사건의 진실을 현장에 알리고 원청의 책임을 촉

구하는 한편 그동안의 잘못된 조사과정을 되짚으며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이

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산재를 은폐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무시했던 고질적인 문

제점을 고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위탁생산 공장의 하청 노동자들일지라도 건

강을 유지할 권리, 아플 때 치료받고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첫걸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일터

■ 더 자세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투쟁을 확인하시려면

- 동희오토 공식 홈페이지 : www.동희오토.com

- 페이스북 페이지 : 동희오토닷컴

- 트위터 : @DHauto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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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이야기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최민 선전위원장

대형 서점에서 일했다는 손수영 씨를 소개받았을 때는 당연히 ‘매장 직원’일 줄 알았다. 책을

사는 일 외에 대형 서점과 관계할 일이 없는 내 눈에는 매장 직원들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손수

영 씨가 한 대형 서점의 직원으로 1년 남짓했던 일은 ‘검수팀’ 업무였다.

오히려 매장 직원들은 모두 이 대형 서점 직원이 아니라고 한다. 제조업 공장에 하청업체가 들

어와 있는 것처럼, 백화점 안에 있는 각종 매장이 해당 업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매장은 2

개 소사장이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장에게 고용돼 있다.

“일반서적과 전문서적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소사장이 있어요.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

장이 거느린 직원이죠. 물론 거기에도 정직원, 계약직 직원, 알바생이 있고요. 서울에도 이 서점

매장이 여러 군데인데 모두 각각 이렇게 운영되고 있어요.”

매장 뒤에도 수많은 서점 직원이 있어요.

대신 대형 서점의 역할은 매장 전반적인 관리와 영업이다. 매장의 소사장이 팔 책을 대형 서점

의 이름으로 들여온다.

“대형서점의 직원으로는 매장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기도 하고 기획도 하는 영업지원부가 있어요.

홈페이지 관리하는 분들이 3명 따로 있었는데, 홈페이지 관리에는 책 스캔하고 초록, 목차를 쳐서

홈페이지에 올릴 내용 만드는 일이 모두 포함되죠. 가끔 출판사에서 파일을 같이 보내주기도 하

지만, 대부분은 직접 쳐서 우리 홈페이지용으로 편집해요.

신간팀은 하루에 70~80종 정도 쏟아지는 신간 정보를 서점 자체의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일

을 해요. 이 정보에는 일반 고객들이 보는 정보뿐 아니라 매입율(정가 대비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구매하는 금액), 출판사 정보까지 포함된 것이죠. 이 정보를 모두 만들어 두면 이걸 보고 매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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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주문을 해요. 매장 각 파트별로 주문서를 입력하면 이를 출판사에 보내서 책이 서점으로 배달

오는 거죠. 제가 일한 검수팀의 기본적인 업무는 여기서 시작되는데, 책이 도착하면 매장에서 애

초 발행했던 주문서 내용과 도착한 책이 맞는지 확인하고 매장으로 올려보내는 일이에요.

차이가 뭐가 그렇게 날까 싶은데, 이게 그렇지가 않아요. 같은 책을 50권 주문하면 48권 들어

올 때도 있고, 50권 중에 한 두어 권 예전 판이 끼어 있거나 심지어 다른 책이 끼어 있는 경우도

있어요. 하나라도 안 맞으면 매장에 확인 전화하고, 필요하면 출판사에 확인 전화하고 어느 쪽

실수인지 확인해서 다시 맞추는 일을 하는 거죠. 이게 딱 맞아야만 매장으로 책을 들여놓을 수가

있어요.”

갑질하는 대형 서점, 직원 월급은…

하루에 열 통 이상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녀는 이런 전화에서는 ‘갑’의 역할이었다. 의외로 이 ‘검수팀’에서 출판사를 상대로 거래하는 역할

까지 하고 있었다.

“일단 매장에 있는 직원들은, 이 대형서점 직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서점 직원이고.

그리고 제가 전화해서 매장 직원이 주문서를 맞게 작성해서 보낸 것인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책

을 잘못 보낸 것인지 확인하는 거니까요. 출판사랑 중간 연결하는 전화를 직접 하기도 해요. 예

를 들어, 지난 겨울에 ‘겨울왕국’이 갑자기 유행하면서 책이 여러 가지가 갑자기 나왔잖아요. 그림

책, 동화책 등등. 그러면 영업지원부에서는 ‘겨울왕국은 매입률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고 현금 거

래로 받아라’는 정도의 큰 가이드라인을 줘요. 그러면 주로 매입률을 보고 각 출판사에 우리 이

책 받겠다, 혹은 안 받겠다 전화를 하죠. 그러면 거절당한 출판사에서는 다른 출판사에서 받는지

물어보고, 자기들 매입률을 낮춰 주겠다고 하기도 하죠. 그러면 다시 매장에 연락해서 매입률 바

뀌었으니 원래 했던 주문을 취소하고 주문장을 바꿔 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는 원래 주문하려

던 출판사에 또 전화를 해서, ‘다른 출판사와 낮은 매입률로 거래하겠다’ 얘기하는 거죠. 매일 이

렇게 말을 바꿔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더라구요.”

일반적으로 출판사들은 정가의 60~70% 정도 가격에 책을 서점에 공급해야 하지만, 대형 서점

들에는 40~50% 가격에 책을 보내기도 한다. 몇 개 대형 서점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기 때문

에, 이들 대형 서점에서 책이 좋은 자리에 진열되고 팔리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서점은 당연히 이런 걸 못 한다. 작은 서점은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을이다.

10 ․ 통권� 128� � 2014.9

출처 : www.flickr.com

“저희 이모부께서 대학로에서 ‘풀무질’이라고 작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풀

무질 거기에선 이렇게 못 하죠. 출판사에서 80%에 보낸다 하면 ‘네’하고 받는 거죠 뭐. 대형 서점

에서는 이렇게 싸게 책을 들여오니 할인 행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서점에서 일한 뒤부터

는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 쇼핑몰 같은 데서 하는 반값 도서 할인전 봐도 놀라지도 않아요. 그렇

게 할인해도 남겠네 하는 거죠.”

반값 할인을 해도 남는 장사라는 대형 서점 직원으로 수영 씨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2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추석처럼 명절 있는 달에는 상여금이 100% 나왔다고 하니 1년 전체

평균 내면 한 달 130만 원 정도 되었을 거라고 했다.

일만 한 게 억울해서 사표 던졌죠

지금은 서점일을 그만두고 약국에서 일하고 있는 수영 씨. 서점을 그만둔 건 너무 못 논 것이

억울해서, 제대로 좀 쉬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던 대학생활, 졸업 후

엔 조교로 일하다가 대형 서점에 입사해서 1년 넘게 일하기까지 몇 년 동안 그녀는 여행 한 번

을 가본 적 없다.

“2년 내내 매일 9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렇게

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집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일을 안 하면 불안했어요. 서점일 시작하고

나서요? 연월차도 있다고는 하고 아프면 쉴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직원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 한 적 있었는데,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에서 전

화를 했대요. 오늘은 무슨 검사 했냐

고. 심지어 지금 무슨 주사 맞고 있

냐고 묻기도 했대요. 그런 일 당했다

는 얘기 들으면 누가 휴가를 쓰고 싶

겠어요.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억울

하더라고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고 여행도 가고 싶고. 그래서 사표

쓰고 나와버렸죠.”

l일터l ․ 11

사표까지 쓰고 수영 씨가 다녀온 휴가는 제주도 2박 3일이 전부. 막상 가려고 보니 같이 갈

친구들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렇게 몇 일 쉬고 바로 다시 일을 시작했

다. 지금은 직원 5명이 일하는 약국에서 처방전을 입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일을

빨리 구했냐고 묻자, ‘알바 천국’이라고 답한다. 놀지 말고 알바나 하자고 급히 구한 일인데, 일하

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한 달 만에 정직원 하자고 해서 근로계약을 다시 했다니 잘 됐다.

수영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하지만 수영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

“근처 고등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이모부가 하는 서점을 통해서 매 학기 책을 사시거든요.

일부는 이모부가 아예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요. 도서관 책들 보면 청구 기호 매겨져 있고, 라벨

도 다 붙어 있잖아요. 이모부가 책을 보낼 때, 그 책들에 라벨을 다 매기고, 그 사서 선생님네 학

교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표지 스캔하고 목차, 색인, 페이지 수를 모두 등록해드렸어요.

사실 그 전에 있던 그 도서관 분류가 엉망이었거든요. 역사면 900번 한 가지로 붙여 놓은 거

예요. 생각해보면 한국사, 서양사, 일본사 등 얼마나 많겠어요? 제가 책 보내면서 분류를 제대로

해 준거죠. 색인도 열심히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면 애들이 이름을 다

기억 못 할 수도 있잖아요. ‘어? 베르 뭐였는데?’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베르’만 쳐도 나오

게. 저자 색인, 제목 색인 다 열심히 만들어줬죠.

그러면서 보니까 이 일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예전에 다른 중학교 도서관에서 일해본 적 있

는데 아이들하고 있는 것도 좋고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저는 지금 준(准)사서거든

요. 4년제를 졸업하면 2급 정사서 자격이 나오는데, 정사서 자격도 따려고 해요.”

문헌정보학과가 옛날 문헌 보는 과인 줄 알고 들어갔지만, 들어가서 책 분류하고 라벨 붙이는

게 재미있었다며 웃는 이 밝은 청년이 하고 싶던 일, 재미있는 일을 할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제는 좀 더 긴 휴가도 마음껏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

다. 일터

12 ․ 통권� 128� � 2014.9

요양보호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재현 선전위원

지난 8월 16일 일산에 위치한 수요양원 조합원분들과 인터뷰를 위해 길을 나섰다. 같은 일산

이지만 요양원은 주변엔 차도 다니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산골짜기에 타운으로 조성

된 곳에 있었다. 주변에 인기척이라고는 오로지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렸다.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하게 지어진 요양원 건물들을 지나고 지나, 가장 구석에 있는 요양원에 다다르니 로비에

농성장이 보였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소속된 일산수요양원 분회 조합원은 모두 요양보호사들

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에,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휴식시간도 제대로 보

장받지 못하고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으로 참고 버

티다 지난 4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자 사업주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돌연 폐업

을 단행하고, 요양보호사를 해고한 이후 하루아침에 바뀐 사업주가 비조합원 요양보호사를 고

용해서 일산수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처음엔 돈도 벌면서, 봉사할 수 있는 일 요양보호사 일이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후

회할 때도 많아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어머님이 5년간 식물인간이셨어요. 당시 저희 집에서 모셨었는데, 돌아가신 후에 보니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이 있더라고요. 병간호 했던 경험도 있고 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저

는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통이 터져요.”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은 한 달에 10번 출근에 24시간 일했지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

는 130만 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사업주는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그나마 지급하던 식대도 뺏으

려고 했다.

l일터l ․ 13

“야간이나 휴일에 일해도 수당 같은 건 없어요. 올해 노동조합 만들고 처음 5월 1일 노동자

의 날에 수당 받은 거 말고는요.”

요양보호사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위한 팀원 미팅을 한다. 미

팅이 끝나면 그때부터 온종일 환자들을 돌보게 된다. 규칙적으로 국민체조도 시키고, 기저귀

갈고, 끼니에 맞춰 식사도 챙긴다. 그리고 수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환자들 목욕을 시킨다. 요

양보호사 1명당 7~8명씩 환자를 맡다 보니 다들 가장 힘든 일이 목욕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법으로는 요양보호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가 2.5명으로 정해져 있어요. 현실과는 너

무 다르죠?”

“지금 사업주는 80이 넘은 자기 엄마를 요양보호사로 고용했다고 보고한대요. 요양보호사를

환자 수에 맞춰서 고용해야 하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을 쓰는 거죠. 문제는 다른 요양원들도 다

르지 않은데, 나라에서는 왜 이런 걸 묵인하는지 모르겠어요.”

24시간 온 종일 환자들과 씨름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환자분이 따귀를 때린 다던가 얼굴에 침 뱉고, 머리카락도 쥐어뜯

고, 욕하고 성희롱도 하고, 도둑질했다고 의심하고, 그럴 땐 정말 힘들어요. 요양보호사가 자기

맘에 안 들면 사무실 직원한테 가서 고자질하고 그러는데, 문제는 직원들이에요. 무조건 환자

들 말만 믿고, 요양보호사들이 잘못

했으니 맞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

해요. 같은 말이라도 ‘선생님 힘드셨

죠.’ 이 한마디면 되는데,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사실 환자들

이 그러는 거야, 치매 환자도 있고

하니까 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

는데, 사무실 직원들이 그러는 건 정

말 참기 힘들 때가 많아요.”

14 ․ 통권� 128� � 2014.9

요양보호사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직원들은 환자보다 요양보호사를 더 무시하고, 이러니 보

니 보호자도, 환자도 요양보호사를 무시한다. 한편, 그럼에도 요양보호사 일을 계속 하는 이유

가 궁금해졌다.

“환자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예쁠 때도 많고요. 대개 애 키울 때 그런 마음이 드는데,

요양보호사는 봉사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없으면 정말 못해요. 농성 시작하고는 병원에서 막으

니까 병실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지금도 환자들 보고 싶고 그래요. 우리가 농성하면서 아침

선전전하고 있으면, 환자들이 창문으로 우리를 막 불러요. 빨리 투쟁 끝내고 환자들 곁으로 가

야죠.”

얘기를 듣다 보니 생계도 책임져야 하고, 아무리 꼬집고 때리고 해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환자들을 뒤로하고, 평범한 40~50대 여성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결의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월부터 회사가 근로 체제를 바꾸려고 했어요. 그때 노동조합에 문의했죠. 그 뒤로 5월에

가입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했는데, 사업주는 바로 폐업을 하겠다고 하면서, 교섭에도 딱 한 차

례 응하더니 줄곧 거부했어요.”

이 한 차례 교섭에서도 사업주는 상급 단체인 공공운수노조에 ‘돈을 기부할 테니 노조를 없

애 달라’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교섭을 요청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병원을 방문하면 무단 침입

으로 경찰에 신고하는 등 어이없는 행동을 일삼았다. 그러다 7월 5일 사업주는 폐업 공고를

냈고, 하루아침에 요양원을 인수하는 새로운 사업주가 기존 요양보호사 40명 중 17명은 재고용

하고, 나머지는 요양보호사 신규 채용을 단행했다.

“저희가 7월 말이 대부분 계약 만기 시점이었는데, 퇴직금을 안 주려고 계약기간이 1년이 안

돼서 폐업 공고를 한거죠.”

더구나 새로운 사업주는 신규 채용 시 입사 지원서에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쓰게 하면서 사

실상, 채용과정에서 조합원을 배제했다. 그 일을 계기로 요양보호사들이 다들 화가 많이 났고,

본격적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l일터l ․ 15

“사업주가 바뀌었는데 요양원 대출 이자를 전 대표가 지금도 내고 있대요. 잔금도 안 치렀다

하고. 이러니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고 위장 폐업했다고 확신하는 거죠.”

한창 무더운 7월 6일 시작한 농성도 어느덧 40일을 넘어서고 있지만, 사업주는 대화의 의지

도, 태도 변화의 조짐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 로비 농성장에서 쓰지 못하게 단전, 단수까

지 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보다는 오히려 지금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동안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같이 일했지만, 근무 시간도 병실도 각자 다르고 서로 데면

데면하게 인사 정도 하는 관계였는데 어느덧, 매일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친해지고 즐겁게 지

내고 있어요. 다만 솔직히 더는 이 시간이 길어지면 어떡하지 걱정은 돼요.”

“우리는 이제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다른 데 가서 일할 수도 없어요. 일산, 파주 요양원장들

이 모여서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은 절대 채용하지 말라고 했데요. 이번에 새로 온 요양보

호사가 보호자에게 말해준 얘기를 전해줘서 알게 됐어요. 실제로 이력서를 내도 일산수요양원

에서 일했다고 하면 쳐다보지도 않는데요. 어떤 요양원 협회 간부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요

양보호사가 요양원 상대로 어떻게 이기겠느냐 했다는데. 정말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저희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2010년 기준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요양보호사는 약 23만여 명이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노인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돌봄 노동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는 데 반해 요양보호사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는 굉장히 미비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의 요양보호사들은 본래

돌봄 노동 외의 부당한 업무를 강요받거나, 근로기준법 위반 등 노동권 사각지대, 산재·직업

병, 성희롱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지금, 여기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의 투쟁이 지금의 현

실을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돌봄 노동하고 있는 일산수요양원 요양보호사 노동자들

의 투쟁은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계절을 넘기지 않고, 하루빨리 농

성장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의 곁으로 돌아갈 날을 기

대한다. 일터

16 ․ 통권� 128� � 2014.9

[특집1]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 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푸우씨 집행위원장

0. 들어가며

노동현장에서 재해발생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노동자가 그 위험으로부터 도피하거나

해당 작업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연법적 권리이므로, 누

구도 침해할 수 없다. 이러한 작업중지권은 생명권이며, 이에 대해 막는 것은 살인행위와

다름없다. 그래서 노동운동진영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전적 예방조치

이자, 노동자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권리로 ‘작업중지권’에 대해 의미 부여하며, 지

금의 법 조항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자본과 힘겨루기를 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은 노사관계에서 충분한 힘을 가진 노동조합만이 행사할

수 있는 제한적 권리로, 노동조합이 부재한 90%의 노동자는 그 존재유무조차 모르는지

오래다. 그렇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작업중지권은 현장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과 건강

을 위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조치다. 그래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에 담겨있는 작업중지권의 현실에 대한 진단1)과 함께 작업중지권의 확장, 재구성

을 위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1.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 현실

“사측에서 생산제품에 하자가 발생하거나 시공 등의 문제가 있을 때 작업을 즉시 중지

하고 접근금지 조치를 하는 경우들은 존재하지만, 작업현장에서 사망 등 인명 사상사고

가 발생하기 전까지 노동자가 라인중단을 멈추거나, 설비가동을 중지하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는 조건이다.”

1) 진단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연구를 참고하였다.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관한 실태 조

사], 조흠학, 산업안전보건연구원

l일터l ․ 17

법원, “노동자가 행사한 작업중지권 정당하다” 판결

수원지법 “재해 예방행위, 사회상규에 위배 안 돼”매일노동뉴스 2010-06-29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큰 작업공정에서 노동자가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더라

도 이를 범죄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작업중지권’이 사업주의 전유

물이 아니라는 것으로, 노동자도 작업을 중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략)

지난해 6월 기아차 화성공장 관리자들은 1공장 조립1부 하체3반 연료탱크가 컨

베이어에 30도 정도 기울어진 불안정한 상태로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생산라인을 중단하고 원인파악에 나섰고,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자 라인

을 재가동했다.

이에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문씨가 “원인을 정확

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라인을 재가동할 수 없다”며 하체3반 노동자

40명의 작업을 중단시키고, 이들을 분임토의장에 모이게 했다. 그러자 회사 측

은 “문 씨의 위력으로 소렌토R 차량 28대, 시가 7억2천700만원 상당의 생산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문 씨를 고소했다.

재판부는 “유사한 사고가 전날에도 발생했으나 원인을 밝히지 못했고, 이 같은

상태에서 작업자가 부주의하게 작업을 계속할 경우 금속밴드가 부러지거나 튕겨

져 작업자가 다칠 수 있다”며 “문 씨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 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기존에 설비 이상 등으로 라인이 중단됐을 경우 노사가 원인을 파

위의 작업자 진술은 노동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이 실행되지 못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

여준다. 어느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불량 없는 제품을 생산

하는 것보다 못하게 취급받는 실정이라는 아픈 진술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결국

작업 중지는 사고 발생 이후 수습을 위해 행해지는 조치이며, 재해를 예방하는데 그 기

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업중지권 행사를 둘러싼 사측과의 힘겨루기는 제한적이지만 현장에서 의미

있게 진행 중에 있으며,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법원에서의 판례 또한 존재한다. 기아자동

차 화성공장에서 벌어진 작업 중지와 관련하여 법원이 이를 업무방해죄에 해당되지 않는

다고 판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18 ․ 통권� 128� � 2014.9

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작업자가 이해하거나

동의할 경우 라인을 재가동해 왔던 관행이 존재한다.” 고 덧붙였다. (후략)

산업안전보건법 26조

③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

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현장에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매우 어려운 조건에 놓

여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① ‘급박한 위험’의 모호성

우선,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 작업중지권이 행사되어야 하는데, 작업중지권 사

용의 요건이 되는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 있어 실제 노동현장에서 노

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법조항에 담긴 ‘급박한 위험’에 대한 모호한 규정 때문이다. 현행 산안법에서는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 근거’를 해당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노동자가 생명에 위협을

느껴 작업 중지를 실시했다 하더라도, 사후적으로 아무런 위험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나

면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가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실제

로 현장에서는 사측의 위협을 견뎌낼 수 있는 힘 있는 노동조합의 노조간부, 혹은 의식

있는 현장 활동가만 라인과 설비를 멈출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②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작업 중지로 인해 발생할 사측의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등의 처사에 대해서, 이를 예

방하기 위해 1995년 제26조 제3항이 신설되었으나, 이 조항 역시 사업주의 위협에서 제

대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제3항은 사업주에 의한 징계나 임금공제에 대한 방어책은 될 수 있으나, 민형사상 가

해질 수 있는 사업주의 고의적인 위협으로부터의 방어책은 될 수 없다. 더욱이, 제3항에

l일터l ․ 19

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합리적인 근거’인데, 이를 다시 뒤집어 보면 합리적 근거

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사업주는 언제든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불이익한 처우를 행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차주가 입증해야 되는 상황과

똑같다.

결국,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은 실제로는 사업주가 언제든 그 행사에 제

동을 걸 수 있는 장치들을 이면에 깔아놓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위협들은 노동자가 현

장에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내는 유력한 수단인 작업중지권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

하게 하고 있는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추상적인 산안법 제 26조 2항과 3항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마련이 필요하다.

2. 그렇다면 현행 산안법 26조는 어떻게 확장, 재구성되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지면의 한계로, 큰 틀의 일부를 제시하는 것으로 하겠다.

① 작업 중지 대상의 확대

가장 중요한 것은 ‘급박한 위험’ 만으로 제한되어 있는 작업 중지 대상의 확대다. 현행

규정은 ‘당장 목숨을 잃을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참고 일하라!’ 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을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만을 작업 중지 대상

으로 협소화해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현장에서의 유해·위험성에

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따라서 지속적인 노출로 인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사

회적 건강을 훼손시킬 수 있는 유해위험요인을 포함해 예방적 조치로써 작업중지권 행사

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고객응대 과정에서 무방비 상태로 폭언, 욕설, 성희롱

등 다양한 형태의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되고 있으나, 상담원의 통화종료 등 작업 중지

나 작업거부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2) 이러한 유해·위험요

인은 ‘급박한 위험’ 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노동자 개인을 병들게 하고, 생명과 건강을 위

2) 2012년 서울시는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상습 폭언, 욕설, 성희롱을 일삼은 악성민원 고객을

서울북부지방 검찰청에 고소한 바 있고, 악성민원 통화 시 3회 상담불가 멘트 이후 여성노

동자가 전화를 선종결할 수 있도록 업무 조치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담사들은 여성이

기 때문에 겪게 되는 성적 모욕과 수치심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고 이미 시민들에게 불

쾌한 언행을 경험하고 난 이후의 사후적 대책에 머물러서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해결하기에

는 미흡하다,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 인권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

20 ․ 통권� 128� � 2014.9

협하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② ‘급박한 위험’ 등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의 정비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한 용역연구3)에서는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행사를 위해

‘산안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급박한 위험의 정의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 급박한 위

험이라는 용어를 ‘산업재해가 발생 할 위험을 인지한 경우로 수정’, ‘사업장 안전관리규정

에 급박한 위험에 대한 정의를 포함하도록 강제할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작업 중지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 에서 실행된 것임을 노동자가 스스로 밝히지 못하면, 사업주의 위협에서 노

동자를 보호할 장치가 없는 조건에서, 이러한 요건의 정비는 필수적이다.

또한 업종에 따라 위험의 내용이 다를 수 있고, 같은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업무에 따라 그 위험의 형태가 제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시행령으로 담

는 등 일정한 가이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사업장 차원에서는 ‘안전규정관리

규정’ 등으로 보완하여 명문화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③ 안전보건교육의 현실화

노동조합이 있어도 작업 중지를 둘러싼 노사 간의 마찰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노동

조합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이라는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

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이 위험한지, 현장에서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위험요인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기초적인 안전보건교육

과 더불어 작업중지권에 대한 직접적인 교육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권리로써 ‘작업중지

권’ 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가 작업현장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만있지 말라’ 고 강조하는 교육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터

3) [사업장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관한 실태 조사], 조흠학, 산업안전보건연구원

l일터 l ․ 21

[특집2] 노동자의 안녕을 위한 권리 구성

김재광 선전위원

앞서 작업중지권의 현실을 살펴보았다. 최근에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작업중지

권”과 같은 맥락이면서도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이 제기되고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작업

장의 환경과 본질적으로 쉽게 침해받기 쉬운 노동자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

넓은 작업 거절권의 실현, 인격권의 구체적 확보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문답 형식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문 : ‘작업 거절권’이라는 용어가 생소한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답 : 근로 계약서를 썼든 아니든 간에 사용자(기업주)와 노동자는 상호 주요한 권리 의무관계

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노동력제공의무, 사용자는 임금제공의무이다. 그런데 이때

사용자는 임금제공의무뿐 아니라, 안전배려의무를 가진다. (상식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안전하

지 않은 곳에서 일할 것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사용자가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피해를 입는다면 이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겠으나, 배상청구는 사후적이

며,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 충분한 권리행사라 볼 수 없

다. 따라서 사전에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이 있고, 이것이 작업거절권의 의의라 하겠다. 요약

하자면 작업 거절권은 사용자가 충분한 의무(안전배려의무)를 행사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급부(노동력제공)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문 : 그렇다면 이는 현재 산안법의 작업중지권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닌가?

답 : 일면 그렇다. 현재 산안법에 규정된 작업중지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산

안법 상의 작업거부 및 중지는 작업거절권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작업 거절권은 현재 산안법

이 ‘급박한 위험’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건 간에, 이것 이상(넓은 의미)의 사용자의 안전배려의

무를 요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것 이상(넓은 의미)의 거부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래야만 비

로써 작업거절권의 실익이 발생한다. 이러한 논리가 노동자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보

다 폭넓게 보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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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알 듯 말 듯 하다. 보다 이해하기 쉬운 예가 있나?

답 : 최근 서울시의 다산 콜센터의 상담원들에게 통화종료권이 부여되었다. 성희롱 또는 고의

악성 민원인에 대해서는 통화를 종료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러한 통화 종료권은

일종의 작업 거절권 행사라 할 수 있다. 산안법에 규정된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정신적, 신체

적 위해를 가하는 작업 환경을 거부할 수 있다. 예컨대 운송, 배달업무의 경우 악천후 상황

시 스스로 업무의 진행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급박한 위험’ 상황이 아니더라

도 사업주가 법상의 안전조치나 보건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 노동자는 작업을 거절

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 구성은 건설 및 제조업 위주의 현행 산안법 구조나 적용을 여타의

산업으로 확산할 수 있는 법리적 근거가 된다.

문 : 좋은 이야기이나 현재 작업중지권도 행사하기 어려운데 이것이 실현될 수 있

겠는가?

답 : 법 구조적으로 보면 현재 작업중지권은 오히려 행사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상식적 수준에서 안전 및 보건 조치가 안 되거나,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위협이

있을 때 이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행위 또는 권리를

특별한 권한처럼 만들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이런 말이 현행 작업중지권의 무용론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식을 보장할 확장된 논의와 복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 외국에서는 이를 입법화한 사례가 있나?

답: 법 규정과 해석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으나, 맥락상 같은 수준의 입법이나 적용을 하고 있

다. 독일의 경우 민법을 통해 안전배려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기반을 두어

노동자의 작업거절권은 폭넓게 지지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도 노동법적 차원에서 인정

하고 있고, 집단적 거절도 인정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기준이 때에 따라 까다롭기는 하다)

일본의 경우 법원 판결을 통해 일부 인정하고 있다.

문 : 작업 거절권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인격권 보장

과 안전 보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답 : 일반 계약과 달리 임노동관계(근로계약 관계)에서 노동과 인격은 불가분하다. 이러한 특

징으로 인하여 노동자의 인격권 침해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인격권의 침해는 노동자의 안전

과 보건을 위협할 개연성이 상당하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인격권 모두가 안전과 보건의 문제

는 아니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인격권은 노동자의 정신건강과 긴밀히 연관된다.

l일터l ․ 23

직장 내 성희롱, 집단적 괴롭힘, 폭언, 프라이버시

침해,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수집, 양심에 반하는 노

동의 강요, 건강 및 가정생활의 양립에 반하는 장

시간노동의 강요 등은 근로자의 인격권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문 : 좀 더 구체적 설명을 듣고 싶다.

답 : 인격권의 구체범주를 보면 신체적 측면, 정신

적 측면, 퍼블리시티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노동

법적 차원에서 근로자의 인격권은 사용자의 지시권과 충돌하여 분쟁을 일으킨다. 예컨대 정해

진 복장 의무, 양심에 반하는 일 강요 등은 사용자의 지시권과 충돌한다. 사용자의 노무지휘

권, 기업자산의 소유권 및 시설관리권을 인정하고 근로계약에서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시권을

인정한다고 하여 노동자의 인격권을 사전에 포기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예컨대 방송사 파업

의 경우 현행 노조법에 따른 정당성 문제와 별도로 인격권과 지시권의 충돌문제로 다루는 것

이 가능하다.

문 : 설명을 들으니 흥미롭긴 한다. 결국 작업거절권, 인격권을 운운하는 것은 산안

법의 작업중지권을 보완하자는 것인가?

답 : 당장은 그렇게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산안법을 보완한다는 것은 과정상의 결과이

고, 결국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안녕을 위해서 이러한 권리가 필요하다. 또

한, 이러한 권리는 노동자를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상식적으로 구현될 권리가 아닌가를 주장하

는 것이다. 우리가 작업중지권 등을 주목하고 주장하는 것은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구

현하는 것뿐 아니라, 일하는 주체로서의 노동자의 자기 결정권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문 : 여러 권리의 법리적 구성이 무엇이건 간에 정작 현장에서 행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지금은 어떠한 좋은 명분이 있어도 쉽지 않은 시기 아닌가?

답 : 그렇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이기에 더욱더 정당성의 논리와 명분을 만들고

우리 노동자들의 인정과 사회적 동의를 확대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가 쟁취한 모든 것

은 정당성에 대한 논리와 권리의식이 전제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본은 자신들의 이

해논리를 노동자에게 내면화하려 하고, 때로는 노동자가 먼저 이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때

문에 더욱 더 노동자의 논리와 정당성의 구성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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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금속노조 법률원 김유정, 김태욱 변호사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장

실제로 법정에서 작업중지권은 작업중지권 행사에 따른 손해배상 및 징계와 같은 민사·행

정사건, 혹은 업무 방해와 같은 형사 사건의 형태로 다루어진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김유정, 김태욱 변호사를 만나 실제 법정 및 법조계에서 작업중지권이 주로 어떤 측면에서

쟁점이 되는지 들어보았다. 이들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던 노동자가 받은 징계처분이 부당

하다는 취지의 ‘부당징계 구제재심판정취소사건’을 담당한 바 있다.

당시 재판에서 노동자 측의 핵심적인 주장은 무엇이었나?

김유정 : 문제가 된 재해는 완성차 사업장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라인에 문제가 생겨 보전작업

자가 혼자서 보전작업을 하던 중, 기계가 작동되던 상태에서 신체적 접촉이 필요한 보전작업을

수행하다가 손가락을 협착했다.

라인을 정지하고 보전작업을 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다. 그러나 이 공장에서는 일반적

으로 수리를 할 때 라인을 세우지 않고 보전작업을 해 보전작업자가 상시적으로 산재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고장이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

문에 구체적인 위험이 남아 있는 상태였고, 이런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작업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산안법상 작업중지권의 정당한 행사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용자에게는 안전배려의무가 있어서 노동자들이 일할 때 생명

이나 신체를 위해 당하지 않도록 조치를 행할 의무가 있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이런 안전

배려의무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노무제공을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부분, 안전배려의무와 노무제공 거부에 관한 명확한 판결은 지금까지는 없었고, 이 사건에서도

이런 논의가 본격화되거나, 구체적인 사례로서 판결이 되지는 못 했다. 1심 판결은 안전배려의

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노무제공 거부권을 입법화시킨 것이 산안법의 작업중지권이라고 본 것

이다. 그렇게 제한시켜 버리고 더 넓은 논의를 피해버렸다.

또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반복되는 보전작업자 사고가 있었는데 회사가 안전 조치나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정당한 행위였다. 그

래서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l일터 l ․ 25

사용자 측의 핵심 주장은 어떤 점이었나?

김유정 : 무엇보다 사고원인이 개인 과실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회사 내 안전규정을 보전작업

자가 안 지켜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라인을 멈추고 보전작업을 하라는 안전규

정은 사문화 돼있었다. 생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전작업자들은 라인을 멈추지 않은 상태

에서 수리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사고원인을 개인과실로 돌리면, 남아있는 구조적인

위험성이나 문제는 쟁점이 안 되고 개인 과실에 의한 사고의 경우 노동자에게는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고가 기계랑 상관이 없으니까,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작업 중지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개선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27분 작업 중단으로 3억 3천만 원이나 손해가 발

생하였는데 이것을 어떻게 정당한 행위라고 볼 수 있나? 아주 심각한 사고도 아니었던 것 같은

데?’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하겠다고 했을 때 패소에 무게를 두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김유정 : 산안법에 작업중지권이 매우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데, 이 사건은 중대재해가 아니었

다. 또 라인 중지한 시점이 사건 발생 직후가 아니라 1시간 10분 이후였다. 외부에 있던 대의

원에게 뒤늦게 연락이 취해져서 그 대의원이 공장으로 돌아온 후에 작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직접적으로 산안법이 정한 것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또 재해 성격 면에서 재해가 구조적인 원인과 사업주의 과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명확하

게 드러나면 재판 진행이 좀 더 쉬울 수도 있었는데 재해를 당한 해당 보전작업자가 스스로

그 재해의 원인을 자신의 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 아닌 인정을 하고 있었던 점도 불리한

점으로 생각되었다.

김태욱 : 이 사건에서 아쉬운 점이 이 부분이었다. 보전작업자 당사자가 사고 발생이 자기 개

인 과실 때문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횡단보도가 없으면 당연히 위험

하다. 보행자가 부주의해서 사고가 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횡단보도 없는 거 아닌가. 기계

를 멈추고 보전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이 작업자도 그렇게 일했다면 혹시 그가

부주의했더라도 사고가 안 났을 것이다.

또 판결문 중 보전작업이 말 그대로 고장이 발생하면 수리를 하는 건데, 그 때마다 라인을

멈출 수는 없다는 논리가 나온다. 사실 라인을 멈추고 수리하라는 것은 이 회사 작업 지침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오히려 재판부가 회사의 경제적 손실을 더 고려한 것이다. 이 얘기는 횡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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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드니 어쩔 수 없다, 잘 피해서 건너가라는 얘기랑 같다.

실제로 법정 싸움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현행 법률의 가장 핵심적인 한계는 무엇인

가?

김유정 : 산안법 규정이 불명확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와 중대재해가 발생했

을 때가 병렬적으로 써 있는데 이 재판부에서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할 때, 즉 중대재해

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로 해석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에만 작

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한 상황이 매우 협소해질 수밖

에 없다. 또 작업중지권이라고 말은 하지만, 권리로 명확히 인정이 되어 있지 않다. 이걸 권리

로 명시하고, 그 권리행사 요건에 대해서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태욱 : 정리해고 요건에 대한 법원 판례와 비교해보면, 정리해고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에 대해서는 법원이 아주 넓고 융통성 있게 해석 해주는 반면 산안법에서 말하는 ‘급박한

위험’ 은 정말 엄격하게 해석한다. 이것이 지금 법원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업 중지권과 관련해서 법정에서 이겼던 경우는 어떤 점이 달랐나?

김태욱 : 금속법률원에서 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가 이겼던 사례(형사 사건)가 2번 정도 있는

데,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작업하면 또 다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고, 이렇게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작업을 중단하는 관행이 있었던 사례이다. 그런데, 작업 중

지 관행 존재 여부를 근거로 삼는 논리는 관행이 없던 곳에서의 작업 중지를 어렵게 하는 문

제도 있다. 우리는 위 사건에서 보전작업자의 사고 시 작업 중지권 행사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고 생각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업중지권을 확대하기 위해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유정 : 얼마 전 현대제철 하청업체에서 감전사하신 노동자 사례를 상담했는데, 작업시간도

아닌 시간에, 제대로 된 절연 장비도 없이 가서 일하다가 감전사한 경우였다. 이처럼 제대로

된 예방 조치가 없고 이로 인하여 사망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서는 재

해로부터 생명과 신체적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작업중지권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

다. 사용자의 예방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일을 하는 것을 실제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산안법상 구체적인 안전보건상의 사업주 의무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작업거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산업 재해 예방과, 사

l일터 l ․ 27

용자들이 산안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에도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벌금을 더 매기는 것보다도

더 강력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논의도 있지만 형벌 강화와 징벌적 손해

배상 이런 것은 사후적이고 재판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정한 절차를 통해 증명을

요하는 재판절차에서 사업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안전보건상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적극적으로 작업을 거부하도록 하는 것이 예방적인

의미를 더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김태욱 : 계약을 맺는다고 하면, 계약 당사자 간 주된 의무와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 법원의

다수 입장은 근로계약에서 근로제공과 임금만을 주된 의무라고 생각하고 안전배려의무는 부수

적이라고 생각한다. 임금을 안 주면 계약 이행이 안 되는 거라고 보지만, 안전배려의무가 안

지켜진다고 근로제공을 안 할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는 근로계약을 다른 계약

관계를 똑같이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노무를 제공할 때 노동력과 노동자 인격을 분

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민사상 계약과 같다고만 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자 인격권

보장을 위해 ‘작업 거부나 거절’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학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실

제 법적 다툼 과정에서 인격권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재판에서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현장의 운동과 투쟁, 또 이와 함께 하는 입법

과정이 우선이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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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요구할 네 가지

A사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흑무 상임활동가

근골격계질환은 생산직 노동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럴까? 이 글

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각자의 노동을 생각해보자. 생산직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허리, 목,

어깨를 두드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있지 않나? 그렇다. 근골격계질환은 일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다. A사 사무직 노동자들 또한 심각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동조합의 끈질긴 요구로 그간 안전보건에 대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사측에서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

보위)를 꾸리기로 했다. 2014년 노동조합에서 실시한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바

탕으로 산보위에서 논의하고 요구하기 위해 정리한 것을 연구소리포트에 싣는다. 사무직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자.

사업주의 의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제5조(사업주 등의 의무)를 통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정하

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준을 지키고,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할 것’을 그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A사 사무직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업주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점검

하고, 만일 두 손 놓고 있는 상태라면 법적으로 사업주의 각종 의무를 다하도록 강제할 필요

가 있다. 산보위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제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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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골격계질환 상담실 설치 : 질환자 찾기 및 산재신청

근골격계질환은 한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A사 노동자들에게는 공동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근골격계질환자를 찾아 치료받게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큰 힘이며 동시에 주변 노동자에게는 근골격계질환이 직업병이며 우리의 문

제임을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미 A사 생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방문하

여 근골격계질환 상담과 치료를 하고 있다. 대상을 사무직 노동자까지 넓히자.

▸▸ 근골격계질환 공동대책위원회 설치 : 예방 대책 마련

더 이상의 질환자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 또한 몹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전국금속노동조

합은 2014년 모범단협을 통해 근골격계질환 공동대책위원회의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 A

사에서 실시한 근골격계검진과 조합원 인터뷰에서도 예방을 위한 정해진 휴식 시간 제공,

스트레칭을 위한 공간이나 재정 지원, 근골격계질환 예방 교육의 필요성이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1. 근골격계 질환자 찾기-치료하기-예방하기

A사 사무직 노동자 4명 중 3명은 미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기준 증상 호소자, 2명

중 1명은 지속적 관리 대상, 7명 중 1명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1)

설문 응답자 중 30.1%는 근골격계질환으로 인한 치료 경험이 있었지만, 그중 98.9%는 개인

부담으로 치료하고 있었다.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산재신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각자 알아

서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근골격계질환이 생긴다면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설문 참여자들의 65.8%는 ‘개

인 비용으로 치료하겠다’고 응답했고, 7.1%는 ‘그냥 참고 일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는 산재 신

청하면 회사나 상급자의 압력이 있을 것(59.5%)이라는 예상과 산재신청의 복잡함(76.3%), 불

승인에 대한 우려(85.2%)로 인한 것이었다.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산재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

서 예상되는 회사(상급자)의 압박과 비협조는 산재신청 과정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고 산재

승인 여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1) 기준1은 미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기준으로 ‘통증의 빈도가 1달에 1회 이상 발생하였거나

통증의 기간이 1주일 이상 지속된 경우’이며 증상호소자로 분류된다. 응답자 가운데 1,576명

(75.4%)은 신체의 어느 한 부위 이상에 근골격계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기준2’는 일시적 증상이

아니라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대상으로 49.3%(1,032명)가 기준2에 해당하였다. 한편, 증상에 따

른 고통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기준3은 14.2%(296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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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간의 총체적인 점검 필요

이번 실태조사에서 조합원들이 제기한 환기, 온․습도 등 사무실 환경, 의자, 모니터, 노트북,

기타 환경문제에 대한 추가 조사와 개선이 필요하다. 고가의 의자, 업무 특성을 반영한 노트북

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하루 8시간 이상 이를 이용하는 노동자들이 심각한 불편을 느끼고 있

다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2. 작업환경 개선

근골격계질환을 비롯한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

선이 필요한 노동환경에 대해 물었는데, 환기, 온․습도

등 사무실 환경에 대한 개선 요구가 높았고 사전 면접

조사에서도 제기되었던 의자 개선 요구가 뒤를 이었다.

사무직 노동자에게 있어 모니터, 의자, 작업대, 마우스는 컨베이어벨트이며 공구다. 물론 고

용불안정, 과도한 업무량, 불합리한 조직체계, 인력부족 등의 노동강도 강화 원인을 간과해서

는 안 된다. 하지만 환기, 온․습도, 의자, 노트북, 모니터 등의 작업환경 개선 요구는 산적한

문제들 중 그나마 수월하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과제다.

3. 업무상 사고에 대한 은폐 중단 : 산재를 산재로!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업무상 사고에 대한 은폐’였다.

사무직 노동자에 대해 흔히 다치거나 아플 일이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

각할 수 있지만, 업무 특성에 따른 재해의 발생은 사무직이라고 결코 예외일 수 없다.

업무상 사고로 병원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중 4일 이상 병원 치료를 받은 사람은

37명으로 66.7%였다. 업무상 사고는 당연히 산재보험의 대상이고 산재신청 요건이 ‘4일 이상

의 요양이 필요한 자’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설문에 응답한 37명은 적어도 산재보험을 통해 치

료와 보상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산재처리를 한 사람은 단 3명뿐이었다.

큰 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산재처리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1) 산재에 대한 지식

부족(산재인지 아닌지 자신 없음) 2) 아무에게도 조언, 지원 받지 못 하고, 작업 절차 준수 여

부 추궁 등 복잡한 일만 생김 3) 고과 등의 이유로 개인 치료를 종용 받거나 안전관련 실적

저해가 두려워 개인 비용으로 처리했다는 응답도 반복적으로 나타나 산재보상과 관련된 교육,

회사의 산재 은폐 시도 중단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l일터l ․ 31

▸▸ 조합원의 안전보건 교육 강화

알아야 권리를 사용할 수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노동자의 안전보건 기본 권리에

대한 조합원 교육 시행이 필요하다.

▸▸ 모든 산업재해는 산재보상보험처리

산재 은폐를 방지하고 재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원칙을 세우고, 이에 맞게 처리하

지 않은 경우 관련자를 징계하는 등의 구체적인 요구와 지침을 A사에 맞는 방식(공동 선

언, 단체 협약 등)으로 세워 사업주의 노력을 강제해야 한다.

▸▸ 1차 : 직무스트레스 요인 평가와 개선

4. 직무스트레스 완화 - 뇌심혈관계질환 대책 마련

남성과 여성 조합원 모두 직무불안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심각했고 한국인 참고치

상위 25%에 해당했다. 그 외에도 조직체계, 보상부적절, 직장 문화 영역의 스트레스도 상대적

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무스트레스는 근골격계증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직무스트레스가 높을 경우 근골격계 증상

유병율이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특히 국내 사무직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직

무스트레스가 높은 군에서 특히 목, 어깨 증상 유병률이 2~3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A

사 사무직 노동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무스트레스가 높은 군은 직무스트레스가

낮은 군에 비해 허리 증상은 2.13배, 어깨와 다리 증상은 2.00배, 목 증상은 1.90배, 팔 증상

은 1.84 배, 손 증상은 1.59 배 높았다. 다시 말해 일터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근골격계질

환의 원인이 되며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스트레스의 결과로서 사회심리적 스트레스(PWI)도

조사했는데, 응답자 중 건강군은 2.6%(54명)에 불과했고 68.0%는 잠재적 스트레스군, 29.4%는

고위험 스트레스군에 속했다.

그런데 A사 설문 응답자들의 평균 나이 40세는 스트레스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의 발병 위

험이 높아지는 때인 만큼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69조(직무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에 따른 예방 의무를 가진다.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공단의 <직장에서의 뇌․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발병위험도평가 및 사후관리지침(H-1-2013)>을 기본 틀로 활용할 수 있다.

32 ․ 통권� 128� � 2014.9

남/녀 조합원 모두 가장 큰 직무스트레스 요인으로 고용불안정(상위 25% 해당), 보상부적절,

직장문화 등을 지목(이상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조사 결과)했으며, 과도한 업무량, 불합리한 조

직체계(이상 노동강도 강화원인)에 대한 개선 요구가 높았다. 조합원의 직무스트레스를 가중시

키는 원인에 대한 진단과 대책 마련, 개선방안 실행 후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직무스트레스

요인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2차 : 발병위험도 평가와 고위험군 관리

직무스트레스에 의한 질환, 특히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은 노동자

를 미리 발견하여 건강증진을 도움으로써 질환으로의 진행을 막아야 한다.

예) 발병위험도 조사(기존 건강진단, 문진, 설문, 검사 등) → 우선순위 설정과 개선 대책 수립

(고위험 노동자, 고위험 부서 선별 / 개인적, 집단적 개선대책) → 개선 대책 실행 → 개선 결

과 평가와 피드백

조합원과 함께, 이제 시작이다!

A사는 그동안 A사 사무직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 다

시 말하면 새로 꾸려진 산보위를 통해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처럼 쌓여있다는 것이

다.

쌓여있는 문제들 중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할까?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은 바로 조합원이

다. 조합원이 중요하게 느끼는 문제와 대안이 무엇인지 조합 내 체계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확

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기로 했다’는 결과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고

조합원에게 묻고 답을 나누는 과정이 노동조합을 더 탄탄하게, 대안을 더욱 대안답게 만들 것

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일터

l일터 l ․ 33

34 ․ 통권� 128� � 2014.9

지난 8월 8일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준)의 <한국 장시간 노동의 원

인과 해법: 두 번째 이야기> 강연이 열렸다. 강연자는 책 「과로사회」로 유명한 김영

선 교수였다. 강연은 <장시간 노동의 현재: 양태, 원인, 대안>이라는 제목 하에 진행됐

으며, 강연 후 한국 노동시간의 실태 및 접근 방법, 대안과 운동 전략 등에 관한 활발

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많은 독자들을 위해 강연 내용을 간략

히 소개한다.

[노동시간센터(준) 기획]

시간의 폭력 :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서

한국 장시간 노동의 원인과 해법 - 노동시간센터(준) 강연회 (2)

김보성 노동시간센터(준)

1. 우리 모두는 “눈 시뻘건” 오과장 신세: 장시간 노동의 양태

웹툰 <미생>(윤태호, 2013)의 오과장은 언제나 눈이 시뻘겋다. 과도하게 긴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현대 한국인의 일상은 오과장의 충혈된 눈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잘 드러난다.

문제는 이러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

의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의 과로사 사망자는 1,572명에 달하는데

(2011년 기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2008년) 이후 과로사 통계가 과소계상된다는 점을 감안하

더라도 이는 상당한 수치이다. 특히 과로로 인한 40대 사망률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

다. “죽도록 일하면 진짜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가족관계를 왜곡시킨다. 장시간 노동이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까지도 박탈”해 공감이 없는 단절된 가족관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 박탈의 관

계적 효과는 지역참여의 차원에서도 나타난다. 물리적 차원의 이웃은 있어도 관계적 차원의 이웃은

사라진다. 관계를 맺을 시간 부족으로 지역공동체의 참여가 ‘피곤하고 성가신 일’이 되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의 부족은 우리의 삶을 수동적이고 소비적으로 만든다. 적극적으로 무

언가를 기획하고 실행할 여유가 없으므로 여가는 ‘TV 앞에서 시간을 때우는’ 식이 되거나, 단위시

l일터l ․ 35

간당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상품집약적이

된다. 가족 관계의 빈자리 역시 상품 서비스

로 채워진다. 아이와의 애착 형성을 위한 노

력은 장난감 사주기나 키즈카페 데려가기로

대체되고, 직접 만들어 먹는 요리마저 비합

리적 선택이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시간 노동의 위험이

보다 취약한 존재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있

다는 것이다. 싼값의 긴 시간 노동은 투잡 쓰리잡이라는 생계유지를 위한 선택을 강요하며 비정규

노동자 등 취약 노동자에게 그 위험을 전이하고 있다. 취약노동자에게 근로계약 미작성, 4대보험

미가입, 주휴 및 초과노동 수당 미지급, 저임금 등 산적한 문제들이 중층적으로 뒤얽혀 있는 상황

에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는 요원하다. 노동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건

강권, 휴식권, 모성보호권, 일-삶균형에 대한 요구를 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사회보장이 느슨하고

노동권이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장시간 노동의 위험이 하층 노동자들에게 더욱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2. 우리는 왜 장시간 노동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가: 장시간 노동의 원인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3인분의 일을 2명이 짊어지거나 심지어 1명이 떠안아야 하는’ 노동구조에

있다. 과로를 생산하는 기형적인 노동구조가 장시간 노동의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

으로 기업의 저비용 전략에서 기인했다 볼 수 있다. ‘인건비 부담에 따른 경영 악화’는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해진 기업의 단골 수사이다. 언제나 ‘인력 부족’이지만 신규 인력 확충은 없다. 대신 기업

은 각종 수당을 활용해 기존 인력을 더 오래 일하도록 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국가-자본-노동의 역학관계 측면에서 보자면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국가발

전’, ‘선진조국’의 이름으로 노동시간을 철저히 통제하고 수당을 유인기제로 싼값에 장시간 노동을

일삼은 발전주의적 야만이 장시간 노동을 초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은, 현재의 장시간 노동이 기존의 발전주의적 야만에 ‘경쟁력’이라는 이름

으로 성과를 추구하며 더 긴 시간 일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야만이 덧대어져 나타난 결과라는 점

이다. 발전국가의 억압장치에 의존해 장시간 노동을 강제했던 <시간통제>의 역사에 성과장치에 기

초에 자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도록 하는 <시간통치>의 역사가 중첩된 가운데 현재의 장시간

36 ․ 통권� 128� � 2014.9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를 미화하고 이상화하는 사회의 노동 규범 역시 장시간 노동의 원인 중 하

나이다. 근면신화가 재현하는 ‘이상적 노동자’ 상은 근면에 대한 강박을 만들고 헌신을 유도한다.

여기서 근면은 성공의 덕목으로 계열화되고, 여유는 게으름-나태-이기심-부도덕-부패-낭비-비윤리적

소모로 계열화되어 가난-저발전-실패-무질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노동규범은 초과근

무하지 않는 노동자를 일탈적 노동자로 낙인찍으며, 이를 통해 시간 권리의 주변화와 장시간 노동

의 합리화를 달성한다.

한편 국가의 임금억제 정책과 기업의 임금제도 역시 장시간 노동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발전

국가 시기에 고착된 장시간 노동체제는 국가의 임금 억제정책에 기대어 재생산됐다. 임금을 소비자

물가와 생산성 증가율의 합계보다 낮은 수준으로 제한하도록 한 ‘생산성 임금 원칙(70년대)’, 물가

안정책의 일환으로 공무원 임금인상과 동일한 수준에서 임금인상을 제한한 비공식적 ‘임금가이드라

인’(80년대초), 경제기획원을 비롯해 행정조직을 총동원해 임금을 억제하려 했던 ‘한 자릿 수 원

칙’(80년대 말)은 대표적인 임금통제 정책이다. 현재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임금상승-경제위기’

도식 역시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임금통제 계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은 발전국가의 임금억제 정책에 힘입어 낮은 기본급 비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대신 각종

수당 이용하여 장시간 노동을 유지했다. 97년 이후 기업들의 기본급 비율은 더욱 낮아졌는데, 경제

위기시 이루어진 노동유연화를 통해 기본급 비율이 낮아지고 변동급 비율이 높아지는 임금유연화

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임금유연화를 포함한 구조조정의 경험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벌 수 있

을 때 벌어놓자’는 의식을 형성해 장시간 노동을 조장했으며,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역시 생계를 보

충하기 위한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게 되었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미약한 사회적 규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장시간 노동이 지속되는 이유는

이에 대한 규제제도가 유명무실하거나 뒤처져있거나 고질적으로 문제를 방기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연차 휴가, 출산전후 휴가, 주휴

수당의 소진율이나 지급율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규제제도가 유명

무실하다 볼 수 있고, 비정규 노동자

의 휴가권 등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뒤

처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미흡하다는

l일터l ․ 37

점에서 장시간 노동의 문제가 고질적으로 방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에 포함시키지 않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은 사실상 장시간 노동을 용인하는 태도로, 당장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문제를 고질적으로 방기한 사례로 볼 수 있다.

3. 어떻게 장시간 노동이라는 예속을 해체할 것인가 : 장시간 노동의 대안

노동구조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3인분의 일을 1인분으로 줄이는 것이다. 노동시간 상한선

을 월간, 주간, 일일로 명확히 하고, 상한선 이상의 노동시간에 대해 기업벌금과 근로소득세 형태

의 패널티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노동규범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근면·성실에 대한 강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휴식·

여유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근면신화와 이에 근거한 ‘이상적 노동자’ 상을 해체하고, 일과 삶

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해나가야 한다. 다른 삶, 다른 세계의 모습들을 그려나가려면 시간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끔 문화적 토대를 탄탄하게 하는 기획들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 후

자유시간을 주체적으로 전유할 수 있도록 상상하고 자극하는 실천들이 지속적으로 마련되어야 한

다. 하비의 지적처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생산체계, 일상생활의 재생산, 정신적 세계관 등 모두

에 있어 대안적인 내용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이 여가문화와 교육이

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탈적 노동자에 대한 비난의 시선이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체된 제도도 닦고 조여야 한다. 연차휴가나 출산전후휴가, 주휴수당 같이 유명무실해진 제도를

온전히 작동시킬 뿐만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의 연차휴가 확보, 야간노동자에게 건강권 부여와 같

이 현실을 반영한 제도들을 보완·시행해야 한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거나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등 방치된 고질적 제도를 정비하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삶의 양식과 관련해서는, 특히 소비에 있어 상품시장과 거리를 두는 삶의 방식을 훈련해야 한다.

소비주의적 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와 규칙으로부터 일종의 ‘떨어져 나오기’ 연습

을 할 필요가 있다. 이 떨어져 나오기가 바로 ‘우리가 무언가 다른 것이 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느질, 텃밭일구기, 목공하기, 요리하기, 장 담그기, 화장품 만들기에서부터 그림 그리기,

춤추기, 연주하고 작곡하기 등의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삶의 기술들을 하나씩 훈련하고

익히는 것에 덧붙여, 생협운동, 공동육아와 공동교육, 마을신문 만들기 등의 운동을 병행할 수 있

다. 탈상품화된 활동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소비주체는 일-소비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되고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일터

38 ․ 통권� 128� � 2014.9

일하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으세요?

김정수 운영집행위원

며칠 전 밤에 잠이 오지 않아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히든 싱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유명한 대중 가수와 그 가수의 노래에 대해 모창 실력이 뛰어난 일반인 참가자를

뒤섞어 장막 뒤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하고 출연자와 방청객이 누가 정말 진짜 가수인지를

맞추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날의 주인공은 이수영이었다. 평소 워낙 TV를 잘 안보는 편이라 처

음 보는 프로그램이었고 어느 방송사인지 본방인지 재방인지도 모르고 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방한지 한참 지난 재방이었다.

나도 귀를 쫑긋 세워가며 누가 진짜일까 맞춰 봤는데 자타공인 전문가인 유명 가수 출신 출

연자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참가자들의 뛰어난 모창 실력에 정말 쉽지 않았다. 심지어 참가자 중

에는 남자도 있어 지켜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참가들의 노래 실력보다 더 인상

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나마 덜 비슷한 참가자 두 명이 제외되고 살아남은 세 명의 참가자가 자

기소개를 하고 이수영씨와 인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이수영씨보다 더 이수영씨 같다는 평가를

받은 한 참가자는(결국 그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이수영씨와 대결을 펼쳤다.) 어린 시절 집

안에 빨간딱지가 붙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 때 이수영씨의 노래가 큰 위안이 되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군산에서 올라왔다는 수줍음 많은 한 참가자는 이수영씨를 보게 된 것 자체가 너무 좋

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했던 남성 참가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특이하

여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하는 등 맘고생을 많이 했다가 지금은 그 상황을 극복하고

많이 편해졌는데 그 과정에서 이수영씨의 노래가 큰 도움이 되었다며, 이수영씨도 이수영씨를

지켜보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슬럼프를 잘 극복해서 계속 좋은 노래들을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오히려 이수영씨를 위로하여 이수영씨도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노래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위안이 된다는 것이 가수로서 얼마나 큰 보람일까? 모르긴

해도 가요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지 않을

까 싶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로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일을 통해

l일터 l ․ 39

출처 : JTBC 히든싱어 방송화면 캡처

누군가에게 위로와 위안을 준 적이 있었

나? 혹 나는 내 일에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었나? 평범한 대다수의 노동자들 중에

서 자기 일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

람이 얼마나 될까? 갈수록 노동자들에게

불리해지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일을 하면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

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한 발 나아가 좀 뜬금없지만 내가 지금

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기업 노동조

합으로부터 의뢰받아 조합원들의 직무스

트레스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조사

내용의 대부분이 얼마나 힘든지, 뭐가 힘든지, 왜 힘든지에 관한 것이다. 어떤 점은 괜찮은지,

어떤 점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다. 물론 연구의 주 목적이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파악하여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니까 그런 내용이 주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조사 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점은 괜찮은지, 어떤 점에서 보람과 자

부심을 느끼는지를 부각시킬 이유는 없겠지만 그런 질문 몇 가지가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지는 않을까?

모든 사람이 가수가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

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껴 흥이 절로 나는 세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전에 즐겨 불렀던

민중가요처럼~!!!^^

“이제 우리의 노동을 노래이게 하자. 메마른 작업장 가득 크게 울리는 노래~!!!” 일터

40 ․ 통권� 128� � 2014.9

고속도로 안전순찰원이

도로공사 노동자가 아니었다니!

유 상 철 노무법인 필 노무사

[email protected]

추석이 지났다. 전국의 고속도로가 꽉꽉 막히더라도 정체를 뚫고 고향으로 향하

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한국도로공사’ 문구가 새겨진 경광

등이 달린 차량을 흔히 볼 수 있다.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거나

사고 수습 등 안전한 고속도로 이용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도로공사 소속 노동자가 아니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다.

2009년 공기업 선진화라는 핑계로 한국도로공사는 명예퇴직을 실시하였고, 명예

퇴직자들을 운전순찰 업무에 대한 외주운영자로 선정하였다. 외주운영자들은 사장

이지만 내부적으로 사무장으로 불렸고, 사무원 1명, 순찰원 16명(4조 3교대)을 고

용하였다. 사무실은 도로공사 지사의 사무실을 이용하며, 책상 등 사무집기도 도

로공사에서 대여해 주고, 임대료도 내지 않았다. 도로공사로부터 인원수에 맞춰

인건비를 받아 운전순찰원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 외주운영자가 독립적으로 수행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주 운영자는 일정한 계약 기간만 사장으로 있다가,

다른 명예퇴직자가 나오면 운영권을 넘겨주게 되므로 외주운영자가 바뀌더라도 기

업체 명칭과 사업자등록만 달라지기 때문에 기존의 운전순찰원에 대해서는 고용승

계를 이루어졌다. 운전순찰원들은 도로공사 상황실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외주운

영자가 관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외주운영자들은 운전순찰원들의 임금을 중간착취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일삼았

다. 운전순찰원들은 업무 특성상 안전사고 위험에 상시로 노출되어 있었고, 사망

사고도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 외주운영자 모두 운전순찰원

들의 안전보장 등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결국, 운전순찰원들

은 “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원 노동조합”을 설립하였고, 현재 450여 명이 조합원으

로 가입하고 있다. 전체 53개 지사에서 안전순찰원 8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l일터l ․ 41

이번 소송에는 도로공사 진천․홍천․남원․당진․산청 등 32개 지사에서 근

무하는 안전순찰노조 조합원 397명이 참여했으며, 재판부는 원고 전원에

대해 고용의무를 인정했다. 도공이 실질적인 사용주로 판단됨에 따라 재

판부는 외주업체 사장들에 의해 해고된 10여명도 도공에서 직접고용하라

고 주문했다. 전국적으로 안전순찰원들은 53개 지사에 800여명이 근무

하고 있다. 원고를 대리한 강상현 변호사는 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도로공사가 퇴직자들에게 외주운영업체를 맡기긴 했으나 이들이 독립적

인 사업자로서 인정되기 어려운 측면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도공 외주업체 운영자는 도공이 무상으로 제공한 사무실과 순찰

차량을 사용하고, 도공상황실의 지령에 따라 안전순찰업무를 수행하는

등 독립적인 사업자로서 인정되기 곤란한 점이 많았다. 강 변호사는 “도공은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정년이 가까운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명예퇴직금을 주는 대신 정년 때까지 임금을 이윤

형태로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외주업체 운영권을 부여해왔다”며 “형식적

인 외주화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라는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2014. 9.

5. 경향신문)

2014. 9. 3.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운전순찰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

소송에서 “도로공사의 고용의무가 인정된다”고 판결하였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9개월 만에 맞은 결과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진짜 사장이라는 판결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유사한 방식으로 톨게이트영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톨게이트영

업소 노동자들도 불법파견을 이유로 법원에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청구한 상태

이다. 톨게이트영업소 노동자들은 8,000여 명에 달한다. 공기업 선진화 방안은 이

런 방식의 간접고용, 불법파견을 양산하고 있다. 그저 “일자리 창출”에만 혈안이

된 지금, 간접고용, 불법파견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규

제 완화의 골든타임”을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파견법에 대한 대대적인 개

정을 요구하고 있다. 외주화, 간접고용을 통한 노동시장의 불안정을 막아서기 위

한 다각도의 노력이 절실하다. 일터

42 ․ 통권� 128� � 2014.9

▲ 반올림 투쟁을 주요하게 다룬 과월호들

넘어야 할 또 다른 산 앞에서, 반올림 화이팅!통권 87호 (2011.03.) 특집 “나를 잊지 마세요”를 읽고

정하나 선전위원

제가 작년 7월 한노보연에서 상임 활동을 시작한 지 한 2~3주밖에 안 됐을 때, 처음으로

반올림 이름 안에서 연구소가 함께 주최한 집회를 준비하고 참여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바로

故 황민웅 님의 8주기 추모집회였습니다.

모든 게 다 처음이던 날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크고 작은 집회에 수동적으로 참여해보기

만 했는데, 그날 추모문화제는 집회 시작 몇 시간 전 준비할 때부터 끝나고 정리할 때까지

스탭으로 처음 참여했지요. 물론 어리바리 아무것도 몰라서 문화제 참석한 게 한 일의 다

이긴 했지만요. 그리고 기흥공장 엔지니어로 일하시다가 급성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故 황

민웅 씨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주의 깊게 듣고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반올림 관련 기사

등을 계속 보아왔고 피상적으로 분개하고 가슴

아파하기만 했었지, 이날 처음으로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로 뭉뚱그려 알고 있던 노동자 한분 한

분의 이름과 인생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반올림 투쟁이 7년이나 지속하고 있다는

것도 그날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

다.

이 죽음들, 이 투쟁이 오늘날처럼 알려지기까

지 얼마나 많은 몸부림이 있었을까요? 우리

「일터」과월호들을 들춰보아도 매달 반올림의

기사와 관련 선전물은 끊이지 않고 지면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읽은 2011년 3월호

일터에서도 당시 세 번째 열린 “반도체·전자산

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주간”에 대한 특집기사

가 실려 있었습니다.

l일터l ․ 43

회사 생산제품총계

제보 사망

삼성

삼성전자

반도체 138 59

LCD 26 11

삼성전자 반도체, LCD 소계 164 70

휴대폰, 전자부품 18 10

삼성전기 전자부품 13 9

삼성SDI LCD, TV, PDP 등 33 9

테크윈,

SDS 등영상, 로봇, 정밀기기 등 5 1

삼성전자 계열사 소계 233 99

타사하이닉스, 매그나칩 반도체, ATK,

기타중소하청반도체전자회사56 21

총계 289 120

<2014.8.18 기준 반올림에 제보된 암 및 중증질환 피해자 현황>

출처 : 반올림 카페

이 기사의 서두는 이렇습니다.

“황유미는 시작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시작으로 ‘나도 아프다’. ‘내 동생도, 내 딸도, 내 누

나도, 내 형, 내 아내, 내 남편도 고통받다 세상을 떠났다’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세상에 외쳤던 그 시작.”

그 ‘시작’을 함께 부여잡고 걸어온 행적을 「일터」를 통해 간접경험 해 봅니다. 시청광장

과 서울역 광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46명(2011년 2월 기준)의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어갔음을 기억해 달라고,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무서운 병에 걸려 죽어가도 다른 보호·보

상 대책 없이 고강도의 교대노동을 지속하고 있는 삼성에 대하여 규탄의 목소리를 함께 높

여달라고 방진복을 입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놓았습니다. 피해노동자

가족들이 강남역 삼성본관을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려 건물 안으로 발을 딛

자마자 경비원과 경찰들에게 사

지가 들려 끌려 나가는 장면을

사진으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 영화가 나온

후 인터뷰 하러 온 누군가가

‘영화가 좀 과장된 거 아니냐?’

라고 질문하자 황상기 어르신이

특유의 사투리 섞인 말투로 “아

니에요. 영화는 훨씬 순화해 표

현했어요.”라고 하신 말씀이 결

코 거짓이 아님을 느낍니다.

2014년 지금, 골리앗 같은 삼성도 드디어 교섭테이블에 앉았고, 바로 추석 연휴를 마친

10일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故 황유미 님과 故 이숙영 님의 산재인정이 확정되

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교섭은 안팎의 사정으로 속도가 나질 않고, 피해제보와 사망자 수는

2011년에 비해 5~6배가 늘어났습니다(표 참고). 투쟁의 성과와 함께 나타난 넘어야 할 산

앞에서, 그래서 「일터」를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내가 뭐라고~’ 싶은 부끄러

움도 없지 않으나, 며칠 전 교섭하러 나가기 위해 사무실 마당을 나서는 가족·활동가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듯 이렇게나마 마음부터 나란히 놓으려 애써 봅니다. 일터

44 ․ 통권� 128� � 2014.9

마흔

콩 회원

곧 돌아오는 생일이면 꽉 채운 마흔 살이 된다. 내 나이 마흔 살에는 어떠하더라

는 가수 양희은 노래가 생각나 가사를 찾아봤다. 열아홉 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는데, 마흔 살이 되니 날아가는 세월이 야속해서 붙잡

고만 싶었다 한다.

나도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은 노래처럼

세월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붙잡는다고 멈추는 것도 아니고, 마흔이 되니

세월이 특별히 빨리 흐르는 것도 아니고, 가끔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걸 붙잡아 늦추어서 더 행복해질 것도 아니니까.

어쩌다 부모님 집에 가서 열일곱 열여덟 때 사진을 보면 내가 저랬던 적도 있구나

싶긴 하지만,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주름살이나 흰머리를 없애서 젊

어 보여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아까운 시간과 돈을, 고

작 더 예쁜 모습으로 포장하기 위해 따로 모아둘 생각도 없다.

세월을 되돌리거나 늦추고 싶지 않은 이유 중에는 정신적인 안정감도 있다. 삼십

대를 지나면서 그전까지 나를 보호하던 울타리들이 하나둘씩 사라졌지만, 정신적으로

는 오히려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게 되었다.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걸 인정하는 만큼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도 자라난다는 걸 배웠다.

십 대와 이십 대, 그리고 삼십 대를 거치면서 겪은 일들이 그런 안정감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이렇게 힘들게 얻은 것을 다시 되돌리긴 억울하지, 암.

그래서 지금, 내 나이 마흔 살이 되니 감사한 일이 참 많다. 큰 탈 없이 일 년에

꼭 한 살만큼씩 ‘등속도’로 늙어가면서 스물에 스물답고 마흔에 마흔답게 살 수 있다

는 게 얼마나 복인지 모른다.

l일터l ․ 45

출처 : 월간 인권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나 감사한 마음이 커갈수록, 더 나은 ‘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커진다. 쉰 살이 되면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으려나, 조금 덜 실수하지 않으

려나, 예순이 되고 칠순이 되면 좀 괜찮은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

도 생긴다. 어떨 때는 나이를 좀 더 빨리 들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 좋은 ‘마흔’을 누려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안타깝고 눈

물겹다. 반도체 공장에서 암에 걸려 스물 몇 살에 죽어간 노동자들, 군대 폭력에 희

생당한 병사들, 그리고 세월호 피해자들... 그들의 꽃다운 나이만이 아니라 그들이 십

년 이십 년 뒤에 누릴 ‘마흔’이 사라졌다는 걸 알기에 더욱 가슴 아픈 것 같다.

내 나이 쉰에는 어디에서 누구와 더불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들의 마흔, 우리

들의 쉰은 어떤 모습일까? 그때는 ‘서른’이나 ‘마흔’을 빼앗기고 죽어가는 청춘들이 지

금보다 줄어 있을까? 마흔을 꽉 채우기 일주일 전, 추석 보름달 아래서 이러쿵저러쿵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일터

46 ․ 통권� 128� � 2014.9

[성명서]

개별실적요율제는 산재은폐를 조장하는 제도!

확대가 웬말인가! 제도를 당장 없애는 것이 답이다!

매년 2300여명의 산재사망, 9천여 명의 산업재해 정부통계, OECD 1위 산재

사망 공화국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재해의 일

차적 책임은 기업에게 있지만, 기업이 ‘보호와 예방’을 위한 책무를 다할 수 있도

록 기업을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8/25

산재보험의 “개별실적요율제”를 확대하겠다는 입법예고를 통해 무책임 무능으로

일관하고 있다.

노동부는 “개별실적요율제” 확대와 관련하여 “현행 적용대상은 상시근로자수가

20명 이상 사업(건설업은 총 공사실적 40억 원 이상)으로 한정됨에 따라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는 등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어, 그 대상을 10명 이상(건설업은 총

공사실적 20억 원 이상)으로 확대함으로써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예방 및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가 확대를 선언한 “개별실적요율제”는 그동안 산재은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던 제도이다. 노동부는 그 도입 취지를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산재예방에 힘쓰도록 하기 위한 인센티브제도라고 설명하

고 있지만, 산재 발생 정도에 따라 최대 50%까지 보험료를 감면해주다 보니 산

재은폐를 위한 충분한 근거가 되어왔다. “개별실적요율제”를 통해 작년 한해만 1

조 1,376억 원의 산재보험료 할인의 혜택이 고스란히 삼성과 현대, LG, SK 등

20대 대기업에게 돌아가 ‘제2의 대기업 특혜’라는 지적과 비판에 대한 대책은 아

무 것도 없이 제도의 확대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부의 “개별실적요율제” 확대는 그 자체로, 산재사망 공화국의 현실

을 외면하고,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공상으로 유도하여 산재은폐를

조장하고, 그것이 마치 산업재해가 줄어드는 것처럼 착시 효과만을 노리는 꼼수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l일터l ․ 47

지난 6월말 노동부는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산재은폐의 원인이 되고 있는

개별 실적요율제도의 대대적 개편”을 발표하며 ‘대기업 산재보험료 감면 축소,

산재은폐 대책’등을 종합적으로 마련하겠다고 스스로 밝힌 한 바 있다. 이와 관

련한 제도개선을 위해 연구용역의 시행과 더불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경총, 중

소기업 중앙회 등이 논의를 7월 말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노동부 스스로 진행했던 과정은 무엇이었는지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통상적인 입법예고에 따른 의견수렴 기간도 5일로 제한하여, 초고속 규제완화

를 진행하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이것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모를 리 없을 것이라

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크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보호와 예방’의 책임을 망각하고, 오히려 산재은

폐를 조장하는 제도를 확대하는 입법예고에 반대한다. 이를 산업재해의 사각지대

에 놓여진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까지 적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와 노동

부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산재은폐

를 조장하는 개별실적요율제도는 당장 폐기하는 게 답이다!

2014년 8월 29일

건강한 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마산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산업보건연구회, 울산 산재추방운동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48 ․ 통권� 128� � 2014.9

1) 6) 7)

2)

8) 9)

3)

5)

4)

☞ 가로열쇠2. 기아자동차 ‘모닝’과 ‘레이’를 위탁 생산하는 국내 최초

이자 유일의 완성차 외주하청 공장이자, 최근 한 노동

자의 중대재해로 인한 산재인정 투쟁을 하고 있는 사

업장 이름은 ◯◯오토 p,6

3.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놓고 노사가 갈등을

빚고 있던, 속초의료원이 지난 2009년 1월 20일 노동

조합과 체결했던 ◯◯협약 해지 통보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음 p.4

4. 노동자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보다 폭넓게 보

호할 수 있는 권리로써,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안전배

려의무를 행사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노동력을 제공

하지 않을 권리를 이르는 말 p.21

6. 1999년 1집 앨범 <I Believe>로 데뷔해 지금까지 9장

의 앨범을 내며 3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

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의 이름 p.38

8. 노인의료복지시설이나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에서 의사

또는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장기요양급여수급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 p.12

☟ 세로열쇠1. 지난 8월 22일 오전 8시 21분께 염소산나트륨가스가

유출 사고가 있었던 공단은 인천◯◯◯◯ p.5

5.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성희롱 또는 고의 악성

민원인에 대해서 통화를 종료할 수 있는 권한을 일컫

는 말 통화◯◯◯ p.22

7.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직장 폐쇄

를 단행한 일산에 위치한 요양원 이름(일산◯◯◯◯)

p.12

9. 대형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손수영 씨가 하고

싶은 일은 도서관 ◯◯ p.11

※ 일터 127호(2014.8) 특집 대담자 김영선 님 소속 “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바로잡습니다.

정답을 이름, 연락처와 함께 연구소 메일 [email protected]이나

문자 010-3782-1871로 보내주세요.

정답자 중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지난 호 정답자는

이*희 (010-2084-****)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