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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fd.kookmin.ac.kr 리마서 숙박한 쉐라톤 호텔 2014년 중남미 여행기-4 - 페루(쿠스코 및 마추픽추) 편 - 3월 9일(일) , 여섯째날 파나마 --> 페루 도착 오전과 오후 내내 파나마 시티 유적지 관광 및 파나마 운하를 견학한 후, 공항으로 이 동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서 기다리다 오후 6시 50분 CM 489편으로 파나마 공 항을 출발하여 3시간 반 지나 밤 10시 30분에 페루(공식적으로는 페루공화국)의 수도 리 마에 있는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북반구에서 적도 아래에 위치 한 남반구로 왔으며, 또한 잉카문명으로 대표되는 페루의 땅을 밟는다는 생각에 다소 흥 분이 되었다. 입국승객이 많아 1시간 정도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현지 가이드(지 수일씨로 남성)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로 오늘 숙박할 Sheraton Lima 호텔 로 향하면서 문화재 청장을 지내셨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씨를 꼭 빼어 닮은 지선생이 페루 전반에 대해 안내 해 주었다. 여행 전 공부하였던 내용이 대부 분이었으나,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자갈 구 르는 소리라는 뜻의 리막강에서 유래하였으 며, 사막도 물이 적은 沙漠과 자갈로 이루어 진 砂漠이 있다며, 페루의 사막은 대부분 자 갈로 이루어진 사막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한 이번 여행 중에 만난 다른 현 지 가이드와 달리 우리 일행에게 중남미 여행을 하는 연 3000명 정도의 한국인 중 한 사 람이라는 특혜(?)를 받았으니, 페루에 대해 많이 느끼고 알아가기 바란다고 하면서, [멀 리서 보면 보석 같은 것이 주워보면 돌멩이다]라는 멋진 글귀를 알려 주었다. 심야를 넘긴 시간에 호텔에 도착하였으나, 흥분 때문인지 피곤하지가 않았다. 로비로 나와 카톡으로 친구들과 문자를 나누다 들어와서 내일 일찍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쿠스 코로 가야하므로 다리의 상처부위를 다시 한 번 소독하고, 짐을 정리하여 며칠간 사용할 짐만을 배낭에 따로 챙겨 넣은 후, 잠을 청하였다. [페루 일반] 페루는 한마디로 사막, 고산, 밀림이라는 3대 거대 자연이 모여 있는 나라이다. 북쪽에서 내려 오는 안데스 산맥이 길게 볼리비아와 칠레를 향해 남쪽으로 향하며, 해발 4000 m에서 6000 m에 이르는 고지대 문화와 태평양 아따까마 사막으로 내려가며 황색과 푸른 바다가 경계선을 펼친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 동편으로는 브라질로 이어지는 거대한 아마존 밀림이 숨 쉬는 곳이다. 남태평양에 면한 사막에는 한류와 난류가 겹치며 형성된 천해의 해양자원이 무궁무진하다. 또 한 황금을 비롯한 수많은 광물과 원유, 그리고 동부 아마존으로 내려가며 밀림 생태계 자연이 보 존하는 동식물 약초 등 세계가 주목하는 친환경적인 자원이 넘친다. 안데스에는 잉카문명을 비롯 한 해발 3800m의 티티카카 호수를 중심으로 원주민의 생활터전이 자리 잡고 있어, 이곳에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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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서 숙박한 쉐라톤 호텔

2014년 중남미 여행기-4

- 페루(쿠스코 및 마추픽추) 편 -

3월 9일(일), 여섯째날 파나마 --> 페루 도착오전과 오후 내내 파나마 시티 유적지 관광 및 파나마 운하를 견학한 후, 공항으로 이

동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서 기다리다 오후 6시 50분 CM 489편으로 파나마 공

항을 출발하여 3시간 반 지나 밤 10시 30분에 페루(공식적으로는 페루공화국)의 수도 리

마에 있는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하 다. 드디어 북반구에서 적도 아래에 위치

한 남반구로 왔으며, 또한 잉카문명으로 표되는 페루의 땅을 밟는다는 생각에 다소 흥

분이 되었다. 입국승객이 많아 1시간 정도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현지 가이드(지

수일씨로 남성)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로 오늘 숙박할 Sheraton Lima 호텔

로 향하면서 문화재 청장을 지내셨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씨를 꼭

빼어 닮은 지선생이 페루 전반에 해 안내

해 주었다. 여행 전 공부하 던 내용이 부

분이었으나,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자갈 구

르는 소리라는 뜻의 리막강에서 유래하 으

며, 사막도 물이 적은 沙漠과 자갈로 이루어

진 砂漠이 있다며, 페루의 사막은 부분 자

갈로 이루어진 사막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한 이번 여행 중에 만난 다른 현

지 가이드와 달리 우리 일행에게 중남미 여행을 하는 연 3000명 정도의 한국인 중 한 사

람이라는 특혜(?)를 받았으니, 페루에 해 많이 느끼고 알아가기 바란다고 하면서, [멀

리서 보면 보석 같은 것이 주워보면 돌멩이다]라는 멋진 글귀를 알려 주었다.

심야를 넘긴 시간에 호텔에 도착하 으나, 흥분 때문인지 피곤하지가 않았다. 로비로

나와 카톡으로 친구들과 문자를 나누다 들어와서 내일 일찍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쿠스

코로 가야하므로 다리의 상처부위를 다시 한 번 소독하고, 짐을 정리하여 며칠간 사용할

짐만을 배낭에 따로 챙겨 넣은 후, 잠을 청하 다.

[페루 일반]

페루는 한마디로 사막, 고산, 밀림이라는 3대 거대 자연이 모여 있는 나라이다. 북쪽에서 내려

오는 안데스 산맥이 길게 볼리비아와 칠레를 향해 남쪽으로 향하며, 해발 4000 m에서 6000 m에

이르는 고지대 문화와 태평양 아따까마 사막으로 내려가며 황색과 푸른 바다가 경계선을 펼친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 동편으로는 브라질로 이어지는 거대한 아마존 밀림이 숨 쉬는 곳이다.

남태평양에 면한 사막에는 한류와 난류가 겹치며 형성된 천해의 해양자원이 무궁무진하다. 또

한 황금을 비롯한 수많은 광물과 원유, 그리고 동부 아마존으로 내려가며 밀림 생태계 자연이 보

존하는 동식물 약초 등 세계가 주목하는 친환경적인 자원이 넘친다. 안데스에는 잉카문명을 비롯

한 해발 3800m의 티티카카 호수를 중심으로 원주민의 생활터전이 자리 잡고 있어, 이곳에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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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에서 내려다본 리마 시내 풍경

파카, 면 등 고급 섬유의 원산지가 되고 또한 독특한 인디오 문화가 낳은 다양한 공예품과 자연산

물이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의 페루는 남미대륙 서해안 중앙에 위치하고 적도 바로 밑에서부터 남위 18도에 걸쳐

있는 나라로, 한반도의 6배나 되는 128만 km2의 넓은 국토를 차지하고 있는 농업국가이나, 국토

의 27%나 되는 안데스산맥 등은 많은 산악지대와 자연계곡을 흐르는 급한 물살로 교통이 원활하

지 못해 이러한 자연적 영향으로 국민의 45%가 순수한 인디언 혈통을 지닌 인디오일 정도로 다

른 남미국가들보다 혼혈의 정도가 낮다. 따라서 스페인어 및 케츄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 역시 12%의 백인이 주도권을 잡고 지배계층을 이루고 있으며, 40%의 혼혈, 그리

고 원주민들의 이에 대한 반목과 불만이 심각한 형편이다.

[페루의 역사]

페루의 역사는 원시 수렵농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2만 년에서 BC 10세기까지 안데

스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몽골계 원주민이 거주하였고, 이후 이들이 고대 토착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다 1세기까지 정착 농경문화를 형성해 이들이 만든 토기·피라미드 등의 신전이 아직까지 남

아 있는데 이 시기를 차빈문화로 부른다. 이어 BC 3세기~AD 8세기의 제1기 지역문화 시기를 거

쳐, 8~12세기의 통일국가 형성기를 티아우아나코 문화로 부르며, 이후 15세기까지를 제2기 지역

문화시기로 부른다.

13세기에 망꼬 카팍(Manco Capac)이 쿠수코에 나라를 세움으로써 케추아(Quechua)족의 왕

국이 탄생하였으며, 15세기에 이르러 파차쿠텍(Pachacuteq) 잉카(태양의 아들)가 페루 전역을 지

배함으로써 비로소 거대한 잉카제국이 탄생하였는데, 전성기에는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중부에

이르기까지 1200만 명에 달하는 백성과 광대한 지역을 다스렸다. 그들은 정비된 정치조직을 바탕

으로 관개농업을 발전시켜 서유럽을 능가하는 문명을 이룩하였고, 특히 거석을 이용한 건축술, 도

시계획·의술 등에 뛰어났다. 참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잉카는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 서안에 퍼져 살던 인디언 중 케추아족 등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동시에 태양의 아들로 숭배

되던 최고 승려이자 통치자를 지칭하는 ‘왕’이란 뜻의 원주민어로 우리나라에서는 잉카가 다스린

다는 말이 ‘잉카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에게 정복된 후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로서 그들의 지배를 받았

다. 스페인은 1535년 리마에 부왕청을 설치, 인디오를 노예로 삼아 금과 은을 채굴함으로써 남미

에서 가장 큰 부를 누렸다. 그러나 스페인 귀족들의 영화도 1781년 콘도르캉기(투팍 아마르)가

이끄는 인디오들의 대규모 반란을 계기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1814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인디오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821년 7월 '페루의 보호자'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산 마르틴 장군이 리마로 들어와 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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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공항에서 본 쿠스코 시내 모습

호텔 근처에 있는 대법원 건물 및 멋진 성

루의 독립을 선포한 뒤, 시몬 볼리바르가 다시 리마에 입성해 1824년 아야쿠초 전투에서 스페인

군을 격파함으로써 독립을 달성하였다.

1845년부터 1862년까지는 세 차례나 대통령을 역임한 카스틸랴의 지도 아래 약간의 진보정책

이 실시되고 자유주의헌법이 제정되는 한편, 구아노(새똥 천연비료) 판매에 따른 호황으로 근대국

가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879년 영국과 미국의 이해대립을 배경으로 한 대칠레전에 휩쓸려 크게

패함으로써 1883년 초석과 구아노 산지(아리카·타크나)를 칠레에 할양하였는데, 이 지역은 그 후

에도 계속해서 분쟁 대상이 되어 오다가 1929년 리마조약에 따라 칠레는 아리카를 차지하는 대신

타크나는 페루에 반환되었다.

그 후 레기아 독재정권, 산체스 세로와 오스카르 베나비데스 군사정권(1930~1939)을 거쳐

1939년 마누엘 프라도의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였

으나, 1948년 장군 오드리아가 군사혁명을 일으켜 1956년까지 다시 독재정치가 계속되었다.

1956년 제2차 프라도 정권 때도 국민 억압정책이 실행되었고, 1962년 쿠데타를 거쳐 이듬해

7월 인민행동당의 벨라운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종래의 정권과 다를 바 없어 1965년부터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이 일어나기 시작해 급속히 확산되었다. 1968년 10월 쿠데타를 거

쳐 집권한 벨라스코알바라도 군사정권은 미국계 석유회사(IPC)를 국유화하고, 농지개혁법을 실시

하는 등 민족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지나친 급진정책과 석유파동으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였다.

1975년 베루무데스 장군이 이끄는 군부 온건파가 쿠데타에 성공한 뒤, 1980년 5월 벨라운데

테리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12년간 계속된 군정에 종지부를 찍었고, 1985년에는 알란 가르시

아 페레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총수출액의 10%만을 외채상

환에 충당하겠다고 선언하여 IMF, IBRD 및 채권국으로부터 고립되었다. 

한편 비동맹외교를 강화하였으며 중동, 아프리카 등의 미수교국을 비롯하여 북한과도 수교하였

다. 그러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인

교포인 후지모리가 1990년 7월 선거에서

당선된 후, 가르시아 정부의 비동맹외교에

서 탈피, 대선진국 외교를 중시하였다. 초

인플레이션 진정과 재정적자 해소에 주력하

는 한편, 20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 해결

에 역점을 두고 긴축 경제개혁 조치를 발표

하였다. 1995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이듬해

일본대사관저 인질사건이 일어나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1997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가입을 거쳐, 1998년에

는 에콰도르와 평화협정을 조인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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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공항 광장 풍경

170여 년 간 지속된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1999년에는 70년간 지속되어온 칠레

와의 국경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2000년 11월, 쿠리 야당의원 매

수사건 파문으로 사임하게 되었다. 후지모리 정권이 종식되고 페루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며 부패

와 싸우고 있으며, 2006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아메리카 인민혁명 동맹당(APRA)의 알란 가르시

아가 페루를 위한 동맹(UPP)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이 되었다.

3월 10일(월), 일곱째날 쿠스코 및 우루밤바 관광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밖으로 나와 호텔 주변을 산책하 다. 주변에 페루 법원 건

물 및 아름다운 성(이름은 모름)이 눈에 띄었으며, 호텔 앞에 지하철도 있었다. 내려가

페루 지하철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참았다. 아

침 식사를 한 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 다.

오전 8시경 호텔을 출발해 리마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친 후, 게이트에서 기다리다

9시 40분 LA 2075편으로 리마 출발하여 쿠스코로 향하 다. 비행기 안에서 다소 흥분된

기분으로 잉카제국에 해 조사하 던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남미 최 의 제국을 건설한 잉카제국은 1250년경부터 1533년까지 수도 쿠스코를 중심

으로 번 을 누렸다. 잉카제국의 역사는 제1 왕 망꼬 카팍에서 13 의 아타우알파

(Ataualpa)에 이르는 시기를 크게 전설기(1~2 ), 군주기(3~8 ) 및 역사기(9~13 )로

구분하고 있다. 잉카는 원래 쿠스코에 중심을 둔 케추아족의 족장으로 군주가 된 후, 최

후에는 강력한 제국의 왕으로 변신하 다. 즉, 1438년 잉카의 9 군주 던 파차쿠텍 잉

카 유팡키(Pachacuteq Inca Yupanqui)가 창카 족의 공격에 직면하여 그의 아버지가 쿠스

코로 이동했을 때 군 를 지휘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그의 제위 기간에 치무왕국을 합병

해서 북으로는 에콰도르의 키토 부근에서부터 남으로는 칠레의 티티카카 호 주변 저지

에 이르는 광 한 지역을 장악한 거 한 잉카제국을 건설하면서 역사시 를 열었다.

1471년 그의 아들 토파 잉카(Topa Inca)가, 1493년에는 사파 잉카(Sapa Inca)가, 그 후

1520년 우아이나 카팍(Huayna Capac)이 계승을 이어갔으나 1524년 쿠스코 부인의 아들

아타우알파(Atahualpa)와 키토 부인의 아들 우아스카르(Huascar) 사이의 갈등으로 내란

이 발생하여 멸망의 길로 접어들 때까지의 1세기 동안, 남북으로는 콜롬비아로부터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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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산맥 고원분지 속의 쿠스코 풍경

의 마울레(Maule) 강까지, 그리고 동서로는 태평양 연안으로부터 안데스의 동부 계곡 지

까지 방 한 지역을 정복하여 제국을 건설하 다. 초기에 잉카는 신의 화신이자 태양

의 아들(Hijo del Sol), 지의 지도자(Señor de la Tierra), 그리고 세계의 질서 수립

자(Ordenador del Mundo)로 인식되면서, 제정과 군사 분야의 최고 실권자로 전제정치를

펼쳤다. 따라서 그의 말은 제국의 법령이고, 불복은 곧 사형을 의미하 다. 그의 임무는

제국의 통치 및 야만족의 문명화, 즉 케추아 문화권으로의 통합이었다. 이것은 잉카제국

의 정식 국명이 모든 방향 또는 4방향의 세계라는 의미의 타완틴수유(Tawantinsuyu)라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즉, 잉카제국은 쿠스코를 수도로 정하고 안데스 산맥의 지세에 따

라 4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 잉카제국의 주민들은 쿠스코가 지구의 중심지이

고 성지라 태양에 의해 빛나는 도시라고 믿었다. 타완틴수요의 주된 주민은 쿠스코 중심

의 케추아, 코야오 지역에 정착한 라 코야(La Colla), 페루의 연안 지 에 정착한 라 융

가(La Yunga) 족 들로 구성되고, 그 밖에도 창카 족(Chancas), 푸기나 족(Puguinas), 우

앙카 족(Huancas), 우아누코 족(Huánucos), 콘추코 족(Conchucos), 카하마르카 족

(Cajamarcas), 차차포야 족(Chachapoyas) 등 수많은 부족들이 자체의 언어를 갖고 잉카

제국 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잉카사회에는 혈족귀족(nobleza de sangre)과 특권귀족(nobleza de privilegio)이 있

었다. 혈족귀족은 현직 잉카 왕의 부인과 자녀들을 제외한 모든 친척과 죽은 잉카 왕의

후손들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은 오레호네스(Orejones)라고 호칭되고, 쿠스코에 거주하면

서 호화스런 복장을 착용하고, 공물제공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특권귀족에는 정복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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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의 왕과 귀족 및 그의 후예들로 구성된 정복 특권귀족과 전공과 봉사에 한 왕의 은

전으로 이루어진 포상 특권귀족이 있었다. 반면 일반 주민들은 성년이 되면 모두 유용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았지만, 사실 그들은 노동을 위해 태어난 것에 불과하 다.

잉카제국은 각 지역 지배 계층의 자녀들을 쿠스코에서 집단적으로 교육시켰다. 잉카의

교육은 경직되어 있었으나 효율적이었다. 그들의 도덕률 개념은 나태한 자가 되지 말 것

(Ama Kella), 도둑질하는 자가 되지 말 것(Ama Sua), 그리고 거짓말하는 자가 되지 말

것(Ama Lulla) 등이었다. 잉카제국의 정복은 실용적이고 효율적이며 또한 전체주의적이

었다. 잉카제국은 정복지의 모든 주민들에게 케추아 어를 교육시켜 방 한 지역에서 언

어의 통일을 이룩하 다. 일찍이 스페인 정복 에 참여한 초기의 연 기 학자들은 페루

의 고산 지 에는 특성이 다른 44개의 부족 집단, 그리고 연안 오아시스 지 에는 38개

의 다른 부족 집단이 있었다고 보고하 다.

이와 같이 잉카의 지배계층은 방 한 제국에서 정치, 사회, 종교, 관습 및 공용어까지

통일을 성취했으나 지속적인 재정적 지원의 결여로 서서히 여러 곳에서 새로운 사회 문

화적 다양성이 표출되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잉카는 미티마에스(Mitimaes)라는 집

단을 새로운 정복 토로 보내 잉카 주민으로서의 언어와 농경술 등을 교육시켜 생산 증

와 제국의 통일에 기여하게 하 다. 또한, 잉카제국에는 평민과는 달리 의식주를 제공

받으면서 선 로부터 계승되는 일부의 예속된 직능 전문가인 야나코나스(Yanaconas) 집

단이 있었다.

잉카제국의 사회는 목적에 따라 10 단위(10000, 5000, 1000, 500, 100, 50 및 10) 가

정으로 위계화 되고, 행정조직은 친척들로 마을을 형성한 아이유(Ayllu)가 있었다. 기본

조직으로 가정(Familia)은 가족 표인 푸릭(Puric), 10가정은 충카(Chunca)를 구성하여

충카 카마욕(Chuncacamayoc), 100 가정은 파차카(Pachaca)를 구성하여 파차카 카마욕,

1000 가정은 우아랑가(Huaranga)를 구성하여 우아랑가 카마욕, 그리고 10,000 가정은 우

노(Huno)를 구성하여 우노 카마욕이 지도하 다.

잉카제국은 기본적으로 아이유를 중심으로 연간 그들 가족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토지

를 가족 표들에게 양도하 다. 이들 단위는 인구의 증가로 계속 확 되어 제국의 최전

성기인 1520년 우아이나 카팍의 집권시에는 제국 내에 30만 개 단위에 이르러 중앙 정부

에서는 주기적으로 왕실 감사관을 지방에 파견하여 감사하 다. 당시 10,000 가정 이상

지역의 최고 지배자들은 매년 쿠스코에서 회합을 갖고 세금을 전달하고, 또 왕으로부터

는 노예와 선물을 받으면서 잉카 왕실이 교육시키는 자녀들을 방문하기도 하 다. 잉카

제국의 주민들은 확실히 수학 지식에서 뛰어났다. 또한, 그들의 위 함은 방 한 제국

토를 연결한 도로망 구축의 완벽성, 산악지 경사지의 경작지에 수분공급을 위한 관

개수로의 구축, 그리고 왕궁과 요새의 건설에서 시멘트의 사용 없이 축조된 건축술이었

다. 또한, 그들은 돌의 조각과 벽화, 금속 장신구, 비쿠냐, 알파카 및 야마의 털로 직조

하고, 그리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매듭을 지어 여러 색깔로 꼰 결승 문자(El quipo)를

사용하 다

리마를 출발한 비행기는 산악지방으로 들어가더니 1시간 20분 지난 11시에 표고 3,457

미터에 달하는 페루 남부의 안데스 산맥 고원지 에 위치한 쿠스코에 무사히 도착하

다. 착륙하기 전 내려다 본 쿠스코 시내는 분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거 도시 다. 어

떻게 이렇게 커다란 도시가 안데스 산맥 한 가운데에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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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또 도밍고 성당

꼬리칸차 입장권

항 청사 밖으로 나올 때까지는 흥분

된 기분에 의식하지 못하 는데, 공

항 밖으로 나와 일행을 잠시 기다리

는 동안 갑자기 다리 상처 부위가 부

풀어 올라 터지는 것만 같고, 머리가

빠개지듯이 아파왔다. 머리가 아픈

것은 고산증으로 비행기 타기 전에

가이드가 고산증세가 와도 견딜만하

면 견디는 쪽이 회복도 빠르다고 하

여 견뎌 보려고 하 지만, 다리의 상

처 부위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이곳이 고산지 라

기압이 낮으니 다리 상처부위가 부풀

어 오를 것은 며칠 간 비행기를 타면

서 느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 지만 이정도 일

지는 몰랐다. 순간 무리하게 상처 난 다리를 끌고 이곳

에 온 것이 역시 나의 과욕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

지만,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참아 보기로 하 다. 움직이

지 않고 가만히 5분 정도 있자 머리와 다리 상처부위도

그런 로 참을 만 하 다. 내가 버스에 늦게 도착한 것

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친절하게도 인솔자가 괜

찮으냐고 물어보았지만, 일행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애써 웃음을 지우며 괜찮다고 하 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시내로 향하 다. 쿠스코의 첫 인상은 어릴 적 시골서 보던 하늘

과 같이 하늘이 너무나도 맑다(푸르다)는 사실과, 빌딩과 같은 현 식 건물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을 연상시키는 도시(인구가 50만을 넘는다고 하니) 다. 시

내로 들어가는 길에 잉카의 정복왕으로 불리는 제 9 파차쿠텍 기념비가 도로 한 복판

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기념비는 잉카방식을 흉내 내 1402개의 돌들을 이어 붙인 22.4m

의 9층 구조물로, 꼭 기에는 고 군주의 위엄을 보여 주는 높이 11m에 무게 7톤이나

되는 동상이 있다.

표고 3,457미터에 달하는 페루 남부의 고원 지 에 위치해 있는 쿠스코는 황금도시의

전설을 품은 잉카의 심장으로 잉카의 성스러운 수도이자 태양신을 숭배하는 황금도시로

서 번 을 자랑하 지만 1533년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그 절정기는 불과 100년에도 미치

지 못했다. 이 도시는 잉카제국 로 황제의 명에 따라 조금씩 건설이 이루어졌지만,

1438년에 즉위한 제9 황제인 파차쿠텍에 의해 제국 수도로서의 위상이 확립되었다. 파

차쿠텍 황제시 는 잉카제국이 급속히 세력을 확장한 시 이며, 동시에 창조신 비라코차

신앙이 뿌리를 내린 시 이기도 했다.

잉카의 전승은 쿠스코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창조신인 비라코차가

현재의 티티카카 호에 있던 '아톤 코야오'라는 태양의 섬에 망꼬 카팍과 아오 오쿠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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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또 도밍고 성당에 남아 있는 잉카 태양 신전의 석벽

꼬리칸차 입구 및 타완틴수유(잉카제국) 역사 안내판

잉카의 역사, 신격 및 문화 안내판

는 두 남녀를 창조해서

그들을 부부로 만들었

다. 그 후 비라코차는

둘에게 황금 지팡이를

주면서 "이 지팡이가 가

라앉는 곳을 거처로 삼

아라"는 천명을 내렸다.

신의 명령을 받은 두 사

람은 긴 여행 끝에 쿠스

코 남쪽에 있는 파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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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세계관을 엿 볼 수 있는 황금판

탐푸(기원의 땅)에 간신히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아우카우리 언덕에서 지팡이를

던졌더니 와카이 바탄에 가라앉았다. 그들은 이곳을 거처로 정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잉카의 기원에 관한 전설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결국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발상지 위에

건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뜻하는데, 이는 잉카족이 자

신들의 수도인 쿠스코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다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쿠스코는 우아타나이 강과 톨마요 강 사이에 끼어 있는 가늘고 긴 도시로, 위

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마치 퓨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북서쪽의 삭사이와망 요새는

퓨마의 머리, 우아타나이 강과 톨마요 강의 합류점에 인접해 있는 남동쪽의 푸마츄판은

꼬리, 와타나이 강의 굴곡은 복부의 형상을 띠고 있다. 그리고 중앙 광장에 해당하는 와

카이 바탄과, 인접해 있는 궁전은 심장의 위치에 놓여 있다. 쿠스코는 퓨마의 형상을 띠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의 축소판으로 그에 걸맞게 건물과 시설이 배치되었다.

실제로 궁전을 중심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은 와카이 바탄 부근에 배치되었고, 신분이 낮

을수록 그 주거지는 '도시 변방'으로 려났다. 도시 전체는 잉카의 행정구분에 따라 네

개 구로 나누어졌으며, 주민들의 출신지도 거주지 결정에 큰 향을 끼쳤다. 잉카제국의

중추인 쿠스코에는 궁전을 비롯한 수많은 건물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몇 명 안 되는 스

페인 군 에게 제국의 중심을 허망하게 빼앗긴 후, 건물 들 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다. 그 중에서도 쿠스코에서 가장 유명했던 비라코차

신전과 '태양의 처녀 궁전'인 아쿠야와시, 태양 신전인 꼬리칸차 같은 종교 건축물은 철

저하게 파괴되었고, 바로 그 위에 가톨릭교회와 수도원들이 건설되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규모 건물 유적은 삭사이와망 요새와 도시 주변부에 있는 몇몇 건물들에 불과하

다. 하지만 과거 꼬리칸차가 서 있던 자리 위에 세워진 산또 도밍고 교회 서쪽에는 반원

형의 석벽 일부가 남아 있다. 쿠스코가 번 을 누릴 당시 이 석벽에는 황금으로 두른 장

식이 있었지만 모두 스페인 정복자들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스페인인들이 잉카제국을 침략할 당시 제국은 아타우알파와 우아스카르라는 두 명의

황제가 내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 다. 내전에서 승리해 쿠스코를 장악한 아타우알파는

강력한 힘을 가진 스페인인들을 이용해 제국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그의 의도는 실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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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칸차 석벽 내부 모습 및 산또 도밍고 교회 벽에 걸려 있는 미신적 분위기의 십자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페인 정복자들은 황제 아타우알파를 처형한 후 쿠스코를

잔인하게 침탈했다. 궁전과 신전에 있던 황금 제품들은 모두 약탈당했고 건물들은 모조

리 파괴되었다. 특히 종교적인 건축물들은 철저하게 파괴를 당했고, 바로 그 자리 위에

들어선 가톨릭교회는 주민들에게 개종을 강요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새로운 지배자에게

저항의 깃발을 들었다. 간헐적으로 발생한 반란도 결국 스페인 정복자들의 물리력 앞에

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1871년 최후의 잉카 던 투팍 아마르 2세가 처형되자 더

이상의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남미 최 의 제국이었던 잉카제국의 역사

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말았다.

버스가 잉카 태양의 신전인 꼬리칸차 광장에 멈췄다. 광장 언덕위에 위치한 꼬리칸차

는 철저하게 파괴되어서 인지 주변의 건물들과 유사하게 낮은 단층 건물로 되어 있었으

며, 한 편에 위치한 산또 도밍고 성당 건물이 위치를 확인해 줄 정도 다. 낮은 언덕을

올라가려는데 다소 아픔이 가라앉았던 상처가 다시 아픔을 호소하여 천천히 걸어 산또

도밍고 성당에 도착하 다. 산또 도밍고 성당(꼬리칸차)은 1538년 쿠스코에 들어선 가톨

릭 신부들이 잉카의 가장 중요한 태양 신전이었던 꼬리칸차 위에 세운 성당으로, 바로크

스타일의 종탑을 가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가이드가 꼬리칸차 입장권을 사는

동안 성당 주변을 살펴보니, 성당은 다른 곳의 성당에 비해 그다지 특징적인 면이 없었

다. 입장권을 내고 성당 옆 단층 건물로 되어 있는 꼬리칸차 입구로 들어서니, [타완틴

수유-잉카제국] 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곧바로 중정과 회랑이 중심을 이

룬 곳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꼬리칸차 위에 함께 지은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 이었다. 꼬

리칸차는 황금의 뜰, 또는 황금궁

전이라는 뜻으로 잉카의 주신인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스

페인인들이 쿠스코에 관해 남겨

놓은 기록에 따르면 꼬리칸차는

초 황제 던 망꼬 카팍부터

로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지만,

애당초 망꼬 카팍이 건설했던 신

전은 인티칸차라 불리는 비교적

작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그러

나 시 가 흐르면서 신전과 붙어

있는 궁전과 새로운 주거지를 포

함하는 일군의 건물 전체를 태양

신전, 즉 꼬리칸차라고 부르게 되

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양 신전의

본체는 약 70×60미터 규모의 건물로 북서쪽으로 나 있는 유일한 입구는 인티판파라 불

리는 태양 광장으로 통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태양 신전 외에도 각

기 달, 별, 천둥, 뱀을 모시는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광장에는 옥수수 밭과 다

섯 개의 분수가 있었는데, 황제와 그 일족들은 옥수수 밭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고 한

다. 여기에서 수확한 옥수수는 태양신에게 공물로 바쳤으며, 분수는 잉카의 왕비들이 혼

인 의식을 하기 전에 자신의 몸을 청결히 하는 장소 다고 한다. 또한 신전외부의 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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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시대의 잉카의 월별 업무(?)를 묘사한 부조사진 및 꼬리칸차 태양 광장에서 본 꼬리칸차(산또 도밍고 성당)

는 황금판이 씌워지고 신전 안에는 태양신이 묘사된 순금제 릴리프(부조) 등 황금상들로

가득하 지만 스페인 침략자에게 모두 약탈당해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역사

적인 장소에서 머릿속으로 이 모든 것들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그

나마 꼬리칸차가 서 있던 자리 위에 세워진 산또 도밍고 성당 서쪽에 반원형의 잉카신전

의 석벽 일부가 남아 교회 상부를 받치고 있는 모습과 성당 한쪽에 남아 있는 잉카의 세

계관을 엿볼 수 있는 해와 달, 별과 무지개, 구름과 천둥,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 황금판

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1650년과 1950년의 지진으로 스페인이 지은

교회 건물은 크게 파괴되었지만 잉카신전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을 정도로, 잉카인들

의 튀어난 석축기술과, 안내판에 소개된 사진이지만 잉카시 의 월별 업무(?)를 묘사한

부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나름 로 이곳에 온 보람을 느꼈다. 꼬리칸차 내부

한쪽 편에 있는 종교박물관에는 16~18세기까지 쿠스코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

데, 유럽에서 그려진 성화와 달리 뭔지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원주민들의 무의식

세계가 담긴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스페인의 잔혹한 잉카제국 침탈

역사의 계기가 된 사건인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가 인질로 잡히기 전 피사로와 면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즉 피사로는 가톨릭 사제를

통해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을 설파하지만 태양신을 믿고 있고 문자 자체

를 몰랐던 아타우알파는 성경에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며 성경을 던지는 순간 매

복해 있던 스페인군이 달려 나와 아타우알파를 인질로 잡은 역사적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언덕을 내려가며 산또 도밍고 성당을 다시 한 번 올려다 보다 벽면에 미

신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금박 장식이 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아하! 저것이 이곳

원주민들이 믿는 가톨릭 신앙의 본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조상제사 문제로 갈

등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기독교인들도 본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리칸

차 광장에서 이번 여행을 함께하는 일행들과 단체기념사진을 찍고, 전쟁광장을 의미하는

아르마스 광장(Plaza Armas)으로 향하 다. 쿠스코 시내는 여기 저기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몇 불록 떨어지지 않은 광장으로 버스로 가는데도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다.

아르마스 광장에 한 첫 인상은 세계 어떤 광장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참 아름답다!

다. 광장은 직사각형으로 한가운데 분수 가 있으며 분수 중앙에는 아까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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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쿠스코에서 점심식사한 전통음식점. 꼭 먹고 싶었던 쿠이요리 사진 및 실제 먹은 요리. 앙증맞은 민예품인 조미료 통

오면서 본 파차쿠텍 기념비에 있던 동상과 똑같은 모양의 잉카 제 9 군주인 파차쿠텍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분수 주위의 광장과 분수 를 중심으로 각선 방향으로 넓

은 길이 나 있으며, 길과 길 사이와 광장 바깥 도로로 둘러싸인 4개의 삼각형 형태의 터

에는 각종 꽃나무들로 예쁘게 가꾸어진 잔디밭이다. 또한 광장 주변으로 성당, 라꼼바

나 데 헤수스 교회와 같은 건축물과 함께 멋진 회랑과 테라스가 길게 이어진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 건물들에는 카페, 레스토랑, 민예품점, 선물가게, 여행사

등이 입주해 있었다. 또한 광장 주변 건물 너머로 분지 도시 쿠스코의 집들이 다시 둘러

싼 형태로 천혜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광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곳이 스

페인 침략 이전 잉카시 부터 아우카이파타(Haucaypata)로 불리던 통치의 중심지로 현재

의 아름다운 모습은 잉카 신전을 모두 파괴하고 피로 물든 폐허 위에 세운 것이라는 현

지 가이드의 말에 다소 놀랐다.

시간이 상당히 지나 시장하 기에 점심식사를 한 후 관광을 하기로 하고, 아르마스 광

장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갔다. 음식점은 간판부터 실내 인테리어까지 우리나라 괜찮

은 음식점보다 더 우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졌다. 입구에는 전통 복장을 한 원주

민 여인이 인사를 하고, 식사 중에는 악사들이 전통음악을 연주해 주었다. 손님에게 서

비스를 제 로 하고 돈을 번다는 업의 기본철학을 제 로 가지고 있는 점이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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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의 대성당 및 라꼼바나 데 헤수스 교회

음식점도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식탁에 놓인 앙증맞은 민예품인 조미료

통이 놓여 있는 것이 특히 눈길을 끌며, 파는 곳이 있으면 선물로 사가고 싶었다. 그런

데 우리가 먹은 음식도 잉카 후손인 원주민의 전통 요리(이름은 잊어 버렸지만)로 맛이

있었지만, 중남미여행 전부터 먹고 싶었던 쿠이(Cuy)요리가 음식점 메뉴판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것을 못 먹어 다소 아쉬웠다. 참고로 쿠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애완용쥐‘기

니피그’로 알려진 토끼 크기만 한 동물로 원주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쿠스코 음식으

로 유명하다. 여행사측에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다른 전통 음식이 나온

것은, 천만 원이 넘는 이번 여행가격을 생각하면 아마 가격 문제보다는 통째로 나오는

쿠이 요리를 고객이 징그러워 먹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여행사가 그동안의 고객설문조사

를 반 한 것이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하 다.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와, 가이드가 성당 및 라꼼바나 데 헤수스 교회에 해

설명해 주었다. 성당은 아르마스 광장 북동쪽 계단에 우뚝 솟은 붉은 건물로 잉카의

비라코차 신전(Palacio de Viracocha)위에 지은 것으로, 중남미에서도 손꼽히는 스페인

식민시 건축물로 1550년에 짓기 시작해 완공까지 100여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어제

파나마 비에호에 있던 성당이 파괴된 후, 이곳으로 옮겨져 왔다는 바로 그 성당이었는

데, 외관상으로는 바로크 스타일의 성당치고는 화려함(또는 현람함)보다는 중후한 멋이

풍기는 성당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성당 가운데 지붕에 남미에서 가장 큰 종인 Campana

Maria Angola가 1659년에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설마 성당 안쪽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성당 안에는 유럽의 화풍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유명한 메스티조 화가

마르코스 시파타가 그렸다는 [최후의 만찬]이 있다는데 만찬 음식으로 쿠스코의 표 음

식인 쿠이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또한 갈색피부를 가진 ‘지진의 신’ 예수와 같은 성

화가 있다고 하여 보고 싶은데, 물론 패키지여행이라 생략되었다. 라꼼바나 데 헤수스

교회는 잉카의 11 군주 우아이나 카팍의 궁전이었던 곳에 세워진 교회로 벽화와 제단

이 볼만하다고 한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성당 보다 이 교회 쪽 건물이 규모는 작

지만 더 마음에 들었다.

일행들이 페루 원주민들이 만든 알파카 의류 등 특산품을 사기를 원해, 가이드가 1시

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물론 나는 관광하는 쪽이므로, 다리가 아프지만 일행과 헤어져

쿠스코의 거리를 발길 닿는 로 둘러보며 그들의 문화를 피부로 느껴 보고 싶었다. 라

꼼바나 데 헤수스 교회 왼편골목으로 관광객과 제복을 입은 학생들을 포함한 쿠스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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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또 골목 및 산 프란시스코 광장 입구

사법재판소 뒷담의 독수리 조각상 및 앞 정원의 벽화

민들이 많이 들어가

고 있었다. 나도 그

들을 따라 들어서니

갑자기 양쪽으로 높

은 석벽이 이어져 있

는 로레또 골목으로,

마치 다른 시 로 시

간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

출하고 있었다. 이곳

석벽의 돌들은 아까

꼬리칸차에서 본 석

재보다는 작았고 특

별히 인상적인 모형

은 없었지만, 잉카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 이 석벽은 거의 원형 그 로

보존되고 있었으며 소문 로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완벽하게 맞물려 있어 잉카 석

벽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장소 다. 쿠스코 시민과 여행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이 골목을 천천히 거닐며 문이 열려 있는 건물 내부를 구경도 하고, 그 옛날

이 거리를 거닐었을 잉카시 잉카인들을 떠 올려 보기도 하 다. 발길 닿는 로 걷다

보니 담 밑에 두 마리의 독수리(콘도르)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아하! 잉카인들도 마야

인들과 같이 독수리를 숭상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건물을 돌아 걷다보니 민속공예박

물관과 건물 앞에 경찰이 서 있는 사법재판소(?)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 건물 정문

안쪽 정원 벽면에 멕시코 통령 궁에서 보았던 그림과 같은 거 한 벽화가 눈에 띄었는

데, 자세히 보니 십자가의 예수상, 스페인군의 침략 등 쿠스코의 역사를 하나로 표현한

것 같았으며, 눈을 가린 여성이 들고 있는 사법부의 상징인 저울이 특히 내 눈길을 끌었

다. 내가 가이드라면 이러한 현지 모습을 열심히 공부하여 고객에게 전하고 싶은데 아직

우리나라 여행 현실이 인증샵에 머물러 있는데 어찌하랴! 다음에 이곳을 여행한다면 스

스로 공부하고 통역이 필요한 가이드와 함께 오리라 생각할 수밖에. 여행은 증명사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삶에 한 공유의 느낌이라는 나의 개똥 여행철학(?)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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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아라마스 광장의 잉카 동상, 이름 모를 광장의 이름 모를 동상, 레고시호 광장에 있는 재미있는 카페 이름

에서는 패키지여행은 돈 자랑(?)에 불과하며 그것을 선택하고 왔으니 할 말은 없다지만.

아직 일행과 모이기로 약속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다리의 상처가 나를 가만 두

지 않기에 걷는 속도를 줄이고 시계를 보면서 쿠스코 시내를 살펴보기로 하 다. 쿠스코

시내 풍경은 평온하고 이곳에서 살고 싶은 도시답게 마음에 들었지만 고지 에 살지 않

는 나에게는 역시 고산증이 내 몸을 괴롭히고 있다. 거기에 상처까지! 천천히 걸으며 주

변을 살펴보니 현지인의 삶이 나와 동행하는 것 같다. 특히 성인이 아닌 학생 또는 어린

이의 표정에 관심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일상 삶을 관찰하고 보니, 우리에게 쿠스코는

망한 잉카제국의 흔적으로 관광지일지 몰라도 현지인들에게는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적

현장이며 일상의 삶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잉카제국이 망해 스페인 속국이 되었고 지금

은 페루의 국민이 되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특권을 누리기보다는 지배를 받는 현실을 받

아들이며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와 동일한 평범한 삶을 최

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그들 얼굴 표정에서 나는 그들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산 프란시스코 광장을 둘러보고 일행과의 약속 시간에 맞춰 발길을 돌리면서, 쿠스코

는 과거의 역사를 유지하면서 현재의 각박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잉카

후손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느낌이 들며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나 자신의 최근 나태

해진 삶에 해서도 반성하 다. 조만간 다시 이곳에 오면 관광객이 아닌 이들과의 이웃

으로 이들과 며칠간이나마 함께 호흡을 하며 생활해 보고 싶다고. 약속시간에 맞춰 서둘

러 아르마스 광장에 돌아왔는데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상처 난 다리도 아파 잠

시 벤치에 앉아 광장에 놀라 나온 쿠스코 시민들을 살펴보았다. 햇볕에 타고 일에 쪼들

려 주름진 얼굴을 가진 잉카의 후손들인 원주민들의 표정은 각박한 삶을 위하는 지배

층인 백인들의 표정과 달리 무표정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삶을 달관한 것 같은 평온한 표

정들이었다. 코를 흘리며 때가 절은 옷을 입은 원주민 아기에게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보

고, 귀여워 가방에서 초콜릿과 과자를 꺼내 건네주자 활짝 웃으며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아기 어머니 모습에서 내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삶이 어렵지만 힘내

세요! 라고 그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격려를 보냈다. 어느 시 , 어느 나라든 국가는 국

민(민중)을 위한다고 하지만 일반 국민이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먼 현실을 이곳에 와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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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마스 광장 풍경 및 소풍 나온 원주민 가족의 단란한 모습

실감할 수 있었다.

잉카인의 석조기술로 띄어난 12각의 돌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으나 약속 시간이

이미 지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광장 주변을 살펴보니 일행 중 몇 분이 눈에 띄어 만나

보니 다른 분들은 아직 쇼핑 중이라고 한다. 약속 시간이 조금 더 연장되었으면 쿠스코

시내를 좀 더 둘러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리의 아픈 상처에는 다행이다

라고 고쳐 생각하고 광장 벤치에 앉아 아픈 다리도 쉬며 주위를 둘러보니 분지 도시인

쿠스코를 둘러싼 산에 [페루]라는 글씨와 산꼭 기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이들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 아까 꼬리칸차(산또 도밍고 성당)에서 본 십자가와 같이 그들

에게 십자가는 기독교 또는 가톨릭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마음속의 신앙이라는 생각이 문

뜩 들었다. 신앙은 인간의 삶이 어려워 부모와 같이 누군가에게 기 고 싶어 인간이 만

든 것이므로(현재는 인간이 종교에 속박되어 있지만), 십자가가 누구를 의미하든 그다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그것을 보고 마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시간보다 약 30분 정도 늦어, 아라마스 광장 옆 레고시오 광장으로 옮겨 미술관

같은 오래된 유적지 건물을 잠시 둘렀으나 너무 짧은 시간이라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

는다. 버스를 기다리며 광장 벤치에 앉아 주변을 살펴 보다 재미있는 카페 이름을 발견

하 다. [Kushka....fe] 즉 쿠스코 카페란 의미일진데 서울의 어느 가게 이름보다도 더

욱 산뜻한 느낌이 드는 멋진 아이디어를 살린 명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쿠스코 근교 유적지 관광에 나섰다. 쿠스코 북서쪽으로 난 산길을 약 2km

올라가자 산중턱에 넓은 평지가 나타나더니 잉카시 의 거 한 유적인 삭사이와망

(Sacsayhuaman)이 나타났다. 이 유적은 잉카제국 제 9 파차쿠텍 황제가 건설을 시작

해 그의 후계자 투팍 유팡키 때 완성됐다고 하는 성벽으로 쿠스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건설되어 있는데, 쿠스코를 퓨마의 형상으로 볼 때 이곳은 퓨마의 머리에 해당

한다고 하는 학설 로 커다란 그릇 안에 도시를 담은 형태의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내

려다 보 다. 원래는 20m 높이의 성채와 원탑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페인 침략으로 부

분 파괴되고 지금은 성벽의 밑동암 남아 있다. 또한 이곳의 석벽은 쿠스코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잉카의 석벽과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 지만, Z 모양의 지그재그 형식으로 내

고 디 어 쌓기로 되어 있으며, 돌 하나하나의 크기가 최고로 큰 것은 높이 9m,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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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사이와망 전경 및 그곳에서 내려 다 본 쿠스코 시내 모습

삭사이와망 전경

350 톤에 이를 정도로 비교도 안될 만큼 컸다. 내게 관심을 끈 것은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하여 석축을 쌓아 올린 것과, 현명하게도 물 빠짐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었

다. 스페인 사람들이 쿠스코에 자신들의 건물을 지을 때 이곳의 돌들을 옮겨가 사용하고

도 남은 것이 이 정도라니 그 어마어마했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

아도 채석장이 보이지 않는데 도 체 이것들을 어디서 옮겨왔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

만, 중국의 만리장성의 돌들과 같이 제국을 수호하고 황제의 권위(?)를 위한 수많은 사

람들의 피로 물든 노역의 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돌들이

화강암이 아닌

연마하기 비교적

편한 돌로, 화강

암 같은 돌을 사

용하면 석재를

가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들의 빈

틈없이 석벽을

쌓는 기술이 어

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또한 이

장소는 잉카가

마지막 저항을

하 던 곳으로,

이곳에서 쿠스코

가 스페인의 지

배하에 들어간 후 꼭두각시 황제로 임명된 망꼬 잉카가 쿠스코를 탈출하여 병사들을 모

아 쿠스코 탈환에 나섰다고 하는데, 태양이 떠 있는 동안에만 전쟁을 하고, 농사철에는

농사를 지어야한다는 신앙(?)에 빠져있는 잉카인들의 미신(?) 때문에 잉카군의 유리했던

전세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몇 차례 접전 끝에 패해 잉카제국의 회복을 결국은 이루지

못하 다는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장소라고 한다. 유적지를 한가롭게 거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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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코 전경

삭사이와망에서 전통공예품을 팔거나 사진모델을 하는 원주민 여성들

삭사이와망 전경

며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가다보니 민예품과 알파카를 배경으로 한 사진 모델(?)

을 하고 있는 순박한 원주민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농사도 짓는 한편 틈틈이 이

곳에서 관광객을

상 로 장사를

하는 일종의 투

잡(이중 직업)을

하고 있는 셈이

라고 생각하니

미소가 떠오르

며, 억척같이 살

아가는 그들의

삶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지그재그

혹은 미로라는

뜻을 가진 켄코

(Qenqo)로, 쿠

스코 시내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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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코 모습

으로 4km 떨어진 곳에 있는 거 한 자연석들 사이에 난 길이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는 유

적으로 큰 켄코와 작은 켄코로 나뉜다. 거석 무리 앞쪽에 커다란 돌이 기념비처럼 세워

져 있는데, 가이드 말로는 춘추분때 이 돌의 그림자가 마치 퓨마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인데 가이드가 보여준 사진을 보면 그럴 듯하 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유적 안에 들어가니 조그만 공터와 함께 안쪽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제단처럼 깎

여진 돌은 희생 의식용 제단이라고 하는데, 입구에 지그재그 모양으로 홈이 새겨진 바위

로 흘러내리는 액체의 모양에 따라 길흉을 점쳤다고 하는데서 이러한 학설이 생긴 것 같

다. 신권정치에서 이러한 신탁의 장소를 만들어 길흉을 점치는 것은 무지몽매(?)한 백성

을 다스리는데 아주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곳에서도 삭사이와망과 마찬가지로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 는데, 정말 멋진 전경으로 바위에 앉아 잠시 감상하고 싶었

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붉은 요새라는 뜻으로 탐보마차이의 길 건너편에 붉은 벽

돌로 만들어진 석재 구조물인 푸카푸카라(Puca Pucara)가 나타났는데 폐허로 별로 볼 것

이 없다고 하여 버스 차창으로 보는 것으로 하고 지나치고, 탐보 마차이(Tambomachay)로

갔다. 그런데 입구에서 가이드가 유적지까지 언덕길을 약 20분정도 올라가야하니 힘든

사람은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분이 포기를 하고 버스에서 기다린다

고 하 다. 아픈 다리를 참고 지금까지 견뎌왔는데 언덕길이라니!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지! 라고 내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천천히 언덕길을 올라갔다. 쿠스코보다도 해발 고도

가 더 높아 숨이 가빠지고 다리상처의 통증이 있었지만 언덕길 주변의 풍경이 마치 늦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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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보마차이 풍경

오후에 한가롭게 시골 계곡 길을 걷는 것 같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다. 탐보는

숙소 또는 객사라는 뜻으로, 탐보 마차이는 잉카의 목욕탕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유

적은 1년 내내 일정한 양의 물이 흘러내리게 만든 잉카의 수로기술을 엿볼 수 있는 유적

으로, 언덕의 한쪽 면에 돌을 쌓아올린 계단형의 구조물이 있고, 돌 틈 사이로 물이 흘

러내리도록 수로와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가이드 말로는 위쪽에 있는 사다리꼴의 4개의

문 안쪽에 잉카의 미라가 안치되었던 것으로 처음에 추정하 으나, 4개의 문이 의미하듯

이 4방향의 세계라는 의미의 타완틴수유라는 잉카제국의 4명의 제후 표가 이곳에서 목

욕재계하고 잉카 황제를 알현(?)하는 의식을 행한 곳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하는

데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일행 중의 공주(닉네임)가 폭포 물에 손을 씻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라고 하여 얼떨결에 자세를 취하 더니 그럴듯한 작품이 만들어졌

다.

버스에 올라 오늘의 숙박지인 우루밤바에 있는 호텔로 향하 다. 버스가 관령 고개

를 넘어 내려가듯 급경사로 난 산길을 내려가자 산허리에 계단식 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

쳐져 있었다. 말로만 듣던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으로 들어

서는 것이었다. 이곳이 잉카인들의 식량 공급처이므로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도

중에 [코라오]라는 강원도 산골마을 같은 작은 마을이 나타났는데, 가이드 말로는 코이

카가 이곳에 도자기 학교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토기 제조에 해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 이것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코이

카가 세계 곳곳에 한민국을 알리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의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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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장원이었던 식당에서의 저녁 성찬

옛 장원이었던 식당의 내부 모습 및 밖에서 발견한 앵무새 한쌍

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 시골 토담집과 같이 아도베(adobe)라는 흙벽

돌로 지은 집들로, 짚으로 만든 우리나라 지붕과 비슷하게 바하(baja)라는 풀을 사용하

여 지붕을 만든다고 한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여 어둠이 찾아올 무렵 눈앞에 우루밤바(Urubamba) 강과 함께 내리

막길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피삭(Pisaq)이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은 우리나라 시골

5일장과 같이 1주일에 3회 전통의상을 입은 주변 마을 원주민들이 중앙광장에 모이는 원

주민 시장이 서는데, 감자나 과일을 파는 활기찬 옛 시장 풍경을 볼 수 있어 관광객에게

유명해진 마을이라고 한다. 또한 광장 중앙의 교회에서는 일요일마다 원주민 전통언어인

캐추아어로 미사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피삭을 거쳐 어둠이 깔린 성스러운

계곡의 평지 길을 달려 깔까(Calca) 및 우루밤바라는 마을을 통과하 다. 어둠속이라 원

주민 마을을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돌아올 때 볼 수 있기에 잠시 뒤로 남기기

로 하 다. 그런데 우루밤바 삼거리 안내판에 우리가 달려가는 길이 아닌 쪽으로 쿠스코

라고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참고로 우루밤바는 6천m 이상의 높은 산들 아래로 황

토빛 물이 흐르는 우루밤바 강을 끼고 있는 평화로운 성스러운 계곡마을들 중의 하나로,

피삭에서 시작되는 우루밤바 강은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를 지나고 마추픽추 아래

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떼스(Aguas Calientes)를 넘어 아마존 지역까지 이른다.

우루밤바를 조금 지나쳐 버스가 도로에서 벗어나 산길을 조금 올라가자 우리가 저녁식

사를 할 멋진 집이 나타났다. 예전 이곳의 주(?)가 살던 집이라는데 어둠속이라 제

로 볼 수 없었지만 건물 규모가 단하 다. 지금은 고급 음식점이라고 하는데 이곳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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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밤바에서 2박한 호텔 Casa Andina

산품인 토기와 그림으로 장식된 엄숙하고 웅장한 실내 분위기는 화 속에 나오는 주

의 저택 그 로 다. 시장도 하 지만 오랜만에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원주민 청년이 연

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멋진 저녁 성찬을 즐겼다. 물론 쿠스코 관광을 무사히 마친 것을

기념하여 쿠수코의 맑은 물로 만들었다는 페루의 표 맥주 쿠스께냐(Cusqena)도 마시

고, 음악을 연주하던 청년과도 기념촬 한 컷하고. 식사 후 밖으로 나와 잠시 산책을

하는데 앵무새 한 쌍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조각물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살아있

었다. 이런 장소에서 실제 앵무새를 볼 수 있어 기뻤다.

음식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호텔(Casa Andina)에 도착하 다. 호텔은 2

층 건물이 몇 동 있는 리조트풍의 호텔이었다. 짐을 풀고 오늘 하루 종일 별 사고 없이

무사하게 잘 견뎌준 다리의 상처에게 감사하며 정성껏 치료하 다. 고맙다! 내 다리! 베

란다로 나와 주위를 살펴보니 산들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캄캄한 밤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누군가 안데스의 밤하늘에 해 멋지게 기

술한 것이 떠올랐다. [안데스에서의 밤하늘은 별점박이 무늬로 도배해놓은 거 한 천장

이다. 밤이 되면 안데스는 산이 아니라 하늘이 된다. 산은 자신의 모습을 침묵으로 숨기

고 신 밤하늘을 내놓는다. 안데스의 밤하늘을 따져보면 빈 하늘 면적보다 별들에 의해

점유된 면적이 훨씬 넓고 크다. 서울 밤하늘은 별이 있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안데스에서

는 그야말로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본 안데스의 밤하늘은 별들이 쏟아져

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3월 11일(화), 여덟째날 마추픽추 관광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날씨가 쾌청하 다. 드디어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 있는 마추픽추를 관광하는 날로, 설렘으로 약간 기분도 들떠 있었다. 또한

이곳이 쿠스코보다 약 천 미터 정도 해발이 낮아서 그런지 다리 상처의 통증도 거의 없

어 다행이었다. 밖으로 나와 호텔 주변을 산책하 다. 호텔은 원주민 마을 안에 위치하

고 있었으며 마을 주변에는 옥수수를 키우는 넓은 들판도 펼쳐져 있었다. 마을길을 따라

걷다보니 옛날과 다름없는 모습 그 로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 사람들의 아도베(흙벽돌)

로 만든 집들이 눈에 띄었다(다만 지붕은 이곳도 새마을사업을 해서 인지 기와와 슬레이

트 중간의 것으로 되어 있었다). 비록 낡고 허물어질 것 같은 집들이지만 집둘레에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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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밤바 원주민 마을 풍경

우루밤바 원주민 마을 풍경

초도 심어져 있고, 수세미, 호박, 오이 등이 심어져 있는 텃밭도 만들어져 있었으며, 놓

아 키우는 돼지, 관광객 상 로 장사를 하기 위한 노새 등도 눈에 띄었고, 시궁창 냄새

도 다소 나는 이곳 마을 분위기는 어릴 적 내가 자라던 시골과 너무나도 흡사한 평온함

과 아늑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그런데 이곳 원주민들의 신앙을 나타내듯 각 집 지붕위

에 장식된 십자가가 조각된 소와 함께 있었다. 예전 우리나라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 위

해 소가 귀중하 듯이 이곳에서도 역시 소는 농사를 짓기 위해 절 적으로 필요하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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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얀따이땀보에서 올려다 본 주변 산 풍경

오얀따이땀보의 재래시장 풍경

것이므로 십자가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을 곳곳에 산으로부터 내

려오는 물이 흘러가도록 관계수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고, 아침저녁 출퇴근을 위해 마을

버스(?)와 같은 시스템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가볍게 배낭만 지고 마추픽추를 관광하러 나섰다. 호텔

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잉카시 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층 건물이 올라섰다

는 것과 관광객으로 붐빈다는 것 정도라고 할 정도로 돌로 만든 길과 벽, 수로와 구획

등 잉카시 에 만들어진 마을형상을 그 로 간직한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마을인 오얀따

이땀보로 갔다. 이곳은 잉카의 길을 따라 마추픽추로 걸어가는 ‘잉카트레일’의 시작점

이자 좀 더 저렴하게 마추픽추로 가고자하는 여행객들이 열차를 타는 곳으로, 마을 광장

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산 중턱에 잉카의 신 비라꼬차 등 다양한 신들을 모시기 위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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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원주민의 집 내부 모습

오얀따이땀보의 수로가 나 있는 잉카시대 마을 풍경

교적 구조물이라는 잉카시 의 유적지가 눈에 띄었다. 피삭에서 보지 못한 원주민 전통

시장을 보기 위해 광장 인근에 있는 원주민의 재래시장에 가보니, 시장이 현 적 창고

건물 안에 있는 등 옛

날 모습은 많이 사라

졌지만 감자나 과일을

파는 활기찬 시장 풍

경이 우리나라 시골장

터와 분위기가 비슷하

여 반가웠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

니 잉카시 에 만들어

졌다는 돌로 만든 길

과 벽, 길 한복판을

흐르는 수로, 구획이

잘되어 있는 등 옛 모

습을 그 로 간직하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먼 조상을 쫓아가면 같은 종족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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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행 열차표 및 원주민 여승무원과 함께 기념사진

오얀따이땀보 기차역 입구 전경 및 열차 앞에서 인솔자와 함께

모르게 우리나라의 시골 전통마을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여 놀라웠다. 또한 원주민이

살고 있는 집을 두 곳 들어가 살펴보았는데, 참으로 신기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내가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서 본 한 칸짜리 초가집과 같이 두세 평 남짓한 원룸형 집안에

부엌, 침실, 주방도구, 탁자 등 모든 생활용품과 함께 농사도구, 농사지을 옥수수 씨앗

등이 눈에 띄었는데,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여러 가지 형상의 토기 및 조각상, 동물 미이

라, 조상의 해골 등 각종 신들을 모셔 놓고 있으며, 또한 집안에서 쿠이나 오리를 기르

고 있는 점이었다. 이 마을의 토착신앙은 내가 어릴 적 할머니가 부뚜막 (귀)신, 장독

(귀)신,.. 등등 집에는 각종 터주 감격 가택신들이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

신 개념으로 모든 사물에 신적 존재가 들어 있다고 믿는다.

기차시간이 다가와 기차역으로 가면서 보니 마을중앙을 흐르는 파타칸차 강(Rio

Patacancha) 주변에 잉카인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물길을 만들어 농경과 종교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 음을 알 수 있는 돌에 홈을 파서 만든 수로와 목욕탕 등 관계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이런 시설을 발견하니 반가웠다.

그런데 기차역 입구에서 기차표와 함께 여권을 검사하는 것이 다소 의아스러웠지만 여행

자 및 마추픽추 유적

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애써 이해하

기로 하 다. 티켓을

자세히 보니 내 이름

과 여권번호까지 인쇄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이 산 티

켓은 11시 15분 출발

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Turista(Backpaker)로

편도 요금이 48 미국

달러이니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지

만, 비행기 요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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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얀따이땀보-마추픽추 구간 기찻길 주변 풍경

마추픽추의 관문인 아구아스 깔리엔테스 마을 주변 풍경

따지면 에코노미 클래스에 해당한다. 참고로 이 보다 한 단계 높은 레벨, 즉 비즈니스

클래스인 Vistadome(약 71 미국달러)와 가장 비싼 일등석에 해당하는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 하이람 빙엄(Hiram Bingham)이 있는데 요금이 무려 300 미국달

러를 넘는다. 이들 세 클래스는 비행기와 달리 운행 열차가 서로 다르다. 기차에 탑승

한 후 마추픽추 입구에 해당하는 마을인 아구아스 깔리엔테스까지 약 1시간 반 동안 열

차에서 제공하는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우루밤바 강을 끼고 달리는 기찻길 주변 험난한

안데스 산맥의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12시 45분 드디어 마추픽추(Machu

Picchu) 여행의 관문인 아구아스 깔리엔테스역에 도착하 다. 아구아스 깔리엔테스는 여

행자만을 위한 식당과 숙소가 가득한 산속 작은 마을이었다. 역에서 가까운 우루밤바 강

이 내려다보이는 근처 2층 식당에서 뷔페로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어느

쪽에 마추픽추가 있을까 예측해 보았으나 나중에 본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다.

식당 길 건너에 있는 마추픽추행 셔틀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마추픽추로 향

하 다. 드디어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 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추픽추로 올

라가는 산길은 꼭 양의 창자 모양인데 양이 척박한 초식을 소화하기 위해 창자가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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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올라가는 길 풍경

번이나 꺾어져 길다는 뜻의 구절양장이란 말이 무색하게 아홉 번이 아니라 열세번이나

접힌 길로, 길도 1차선 비포장도로로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군데군데 조금 폭이 넓은 길

에서 교차를 하는데 보는 내가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슬아슬하 는데 운전기사는 익숙해

서 그런지 태평스럽게 운전을 하고 있었다. 버스가 정상에 도달할수록 점차 시야는 높아

지고 우루밤바 강이 눈 밑으로 보이기 시작하 다. 버스가 마추픽추 입구에 정차하여 내

렸다. 아! 드디어 그 유명하다는 마추픽추에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마추픽추에 해

그동안 조사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내용이 떠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며 그 존재만으로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잉카유적인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는 세계 7 불가사의

중 하나로,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110km 떨어져 있으며, 유유히 흐르는 우루밤바 강을

밑에 두고 [늙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마추픽추 산과 [젊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우

와이나픽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정상 사이의 해발 2430 미터 절벽 위 급경사면

에 계단을 만들고, 능선 위로 펼쳐져 있는 쟁반처럼 좁은 평지에 건설한 산정도시로, 아

래에서 봐서는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도시의

면적이 5 km2이라지만 그 절

반은 경사면을 깎아 억지로

도시에 끼워놓은 형국으로,

여기에 최 인구 만 명이

살았다고 하는데, 좁은 공

간을 최 한 활용하 기 때

문에 건물들은 답답해 보일

정도로 빼곡히 들어서 있으

며, 또한 도시 아래 급경사

면에 만들어진 계단식 밭이

유적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서 기묘한 풍광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마추픽추 유적은 1911

년 미국 예일 역사학과 교수 던 하이람 빙엄이 처음으로 발견하 는데, 그는 스페인

정복자들도 발견하지 못했던 마추픽추(실은 전설속의 빌카밤바)를 찾기 위해 온갖 어려

움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그는 급류가 흐르는 강과 계곡을 건너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한 우와이나픽추의 급경사면을 기어오른 다음 두 산의 정상을 이어주는 좁은

능선을 지나 마침내 마추픽추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마추픽추 유적은 잉카

제국에서 유일하게 정복자의 침탈을 받지 않은 도시이며, 이 유적을 발견한 빙엄이 이곳

을 제국 최후의 잉카인 아타우알파가 스페인 정복자에 한 저항의 거점으로 삼은 전설

속의 ‘빌카밤바' 을 것으로 추정함으로써, 부당한 지배에 맞서 싸운 잉카 문명의 상징

으로 페루 원주민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유

물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으며, 아쉽게도 나중에 다른 곳에서 빌카밤바가 발견되었다. 따

라서 마추픽추는 언제쯤 건설되었으며, 왜 잉카인들이 이 마추픽추를 만들었고, 또한 어

떻게 버려졌는가에 해 확실한 것은 무엇 하나도 지금껏 밝혀지지 않고 있다. 빙엄의

주장 로 최후의 잉카가 세웠던 전설의 ‘빌카밤바’라고 아직까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

고, 잉카에 굴복당하지 않았던 고지의 민족들이 수도 쿠스코를 방어하기 위해 건설한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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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입장권

제단, 도시 입구 성문, 세 개의 벽이 남아 있는 주신전

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으나, 실제

로 하이람 빙엄이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

했을 때 모든 신전과 황제들의 묘는 비어

있었다. 때문에 잉카의 신비를 풀 수 있

는 유물이나 그 실마리가 될 만한 것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시 아

래쪽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된 유체를 조

사한 결과, 매장되어 있던 185구의 유체

중 109구가 여성의 유체라는 사실이 밝혀

졌다. 이를 통해 적어도 마추픽추 말기에

는 주민의 부분이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추픽추는 잉

카제국 초기부터 신과 잉카만을 위해 길

러진 '태양의 처녀'들의 수도원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잉카의 남성은

정복자에게 계속 저항하기 위해 재산과 함께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

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주장이든 분명하게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다만 마추픽추는 잉카의 제 9 황제인 파차쿠텍이 1450년

경 만들었으며, 그가 하늘을 관찰하고 농경과 관련된 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머물렀다는

설과 신과 잉카만을 위해 길러진 '태양의 처녀'들의 수도원이라는 주장이 현재로는 가장

유력하다.

입장권을 내고 유적입구를 통과해 조그만 산허리 언덕을 넘어서니 언론 매체를 통해

보았던 마추픽추가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유적지 저편으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우와이나픽추 산, 눈 아래로 계단처럼 만들어진 밭 옆에 지워진

잉카의 저장고인 [꼴까](Depositos Qolqas), 그리고 머리 위로 [감시인의 집]이었다. 꼴

까는 수확한 식량을 저장하는 곳으로 잉카시 에는 잉카의 길 중간 중간에 이러한 꼴까

를 세워 곡물을 저장하고 필요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기도 하 다고 한다. 유적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보기 위해 왼쪽으로 향하는 좁은 산길을 따라 정상에 있는 [감시인의 집]

으로 올라가자, 우와이나픽추 산을 배경으로 도시와 계단식 밭으로 이루어진 유적 전체

가 한눈에 펼쳐지는 흔히 우리가 보는 표적인 마추픽추 사진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두 봉우리 사이에 좁은 도시의 공간이 있고 거기에 도시가 길게 드러누워 있

는 너무나도 멋진 장관에 잠시 넋을 잃을 정도 다. 언론 매체를 통해 본 태양의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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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의 환상적인 풍광

3개 창문의 신전, 주신전, 천문관측소인 인띠와따나가 주광장 남쪽으로 위치하고, 감시

인의 집 발 아래로 급격한 산 경사에 축 를 쌓아 농경지를 만든 계단식 밭이 있음을 확

인하고는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 다. 증명사진을 몇 장 찍고 일행을 기다

리면서 보니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잉카가 사망하

을 때 임시로 시신을 모시는 안실 같은 역할을 하는 제단이라며, 모든 잉카의 큰 도시

에는 이러한 제단이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이제 숲을 보았으니 나무를 보기로 하고, 가

파른 길을 내려가 도시의 좁은 문을 몸을 구부리고 빠져나가 성벽의 석벽에 해 가이드

의 설명을 듣고 묘지를 통과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 다. 마추픽추를 여행한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 체로 환한 햇빛 아래서 유적을 보기보다는 안개와 비구름에

가려진 모습을 보았다고 할 정도로 날씨 변화가 심하다고 하 는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

었다. 가지고 간 우비를 꺼내 입고 각자 흩어져 근처 무덤 바위들 밑에 비를 피하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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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의 환상적인 풍광

귀족의 거주지역, 삼창의 신전 창문으로 본 경치, 태양의 신전 모습

치기를 기다리며, 그래도 우리 일행은 환한 햇빛 아래에서 마추피추라는 숲을 제 로 감

상하 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비가 잦아드는 것 같아 신전들이 모

여 있는 신성의 광장(la Plaza Sagada)을 향해 내려가고 있을 때, 건너편 산에 선명한

무지개가 생긴 것을 발견하 다. 마추픽추에서 무지개를 보다니! 너무나도 큰 행운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주교의 집이 있는 귀족의 거주지역을 거쳐,

세 개의 창문이 나 있는 '삼창(三窓)의 신전(Temple de la Tres Ventanas)'과 3개의 벽

이 남아 있는 주신전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 장소가 중요함은 건

축의 규모가 크고 돌을 다듬은 솜씨가 비교적 정교하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는데,

잉카시 건축의 계급에 따른 구별은 재료와 기술 구사 정도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먼저 삼창의 신전은 반원형으로 지어졌는데, 광장 쪽으로는 벽이 없는 개방된 형

태로, 나머지 세 면에만 벽이 있고, 건물 뒤 동쪽으로 커다란 창이 셋 있어서 이러한 이

름을 가졌다고 한다. 3개의 벽이 남아 있는 주신전은 황제의 미라를 넣어두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햇빛을 통한 건조 효과를 노리기 위해 지붕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며, 바로

옆에는 축제나 행사 때 황제의 미라를 공개했을 것을 보이는 안치소 건물(?)이 있다. 또

한 신전 옆에 오로지 커다란 돌로만 쌓았는데도 면도칼조차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

며, 돌과 돌 사이의 접합면도 상당히 매끄러워서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으로 불리

며 유적을 발견한 빙엄을 감동시킨 것으로 유명한, 돌로 쌓은 단히 아름다운 벽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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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인해 올라가 보지 못한 천문관측소[인띠와타나] 전경, 대신 본 의식용 돌

콘도르 신전

다는데 비 때문에 확인해 보

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쉬웠

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려

신성의 광장에서 그림자를

이용해 계절의 변화를 감지

하 다고 전해지는 돌기둥인

잉카의 해시계로 유명한 언

덕위로 보이는 천문관측소

인띠와따나는 생략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이 있는

장소로 갔다. 참고로 마추픽

추가 번 을 누리던 때 인띠

와따나 장소에서 동짓날 밤

을 새면서 태양을 묶어두려

는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

정된다고도 한다. 건물이 있

는 장소에는 [의식용 돌]이라고 부르는 의식용으로 쓰이던 거 한 돌이 있었는데, 춘추

분때 건너편 산등성이의 그림자 모습이 이 돌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한다.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다시 출발하여 콘도르 신전으로 갔다. 콘도르의 신전은

하늘로 뻗치는 자연적인 암석의 전체적인 형상이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암석 날개에 인공 석축으로 힘껏 확장시키고 있었다.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를 잘 이용한 잉카인의 디자인 감각에 감탄을 할 수 밖에. 건물 뒤쪽에서 미라가 발

견된 동굴도 있어, 콘도르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바닥 편평한 돌 부분에서 희생의식이

치러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물(Fuentes)은 계단형 수로시설로, 정교하게 맞물린 돌 틈 사이로 물이 흐르게 만든

기술에 감탄사가 나올 정도 다. 참고로 이 수로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살던 지역에

있어 그들이 의식 전에 몸을 씻거나 생활용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물 옆에 굉장히 특이한 모양의 구조물이 하나 눈에 띄었는데, 구조물 아래 부분에

커다란 자연석을 지붕처럼 삼각형 모양으로 받치고, 특이하게 깍은 돌로 입구를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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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왼쪽), 능묘와 태양의 신전(오른쪽)

농경지역에서 올려 다 본 감시인의 집 및 유적지 전체 풍경

다. 이곳은

왕족의 미라

를 안치했던

장소로 추정

되며, 파차쿠

텍 왕의 시신

을 모셨다고

도 전해지는

능 묘 ( l a

Tumba Real)

는데, 이렇

게 추정하는

이유는 이 능

묘가 태양의 신전 하단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묘위에 위치하고 아까 삼창의

신전 창문으로 내려 다 본 태양의 신전(Templo del Sol)은 커다란 암석과 인공 석축이

중합되어 만들어진 복합 건축물로 이 유적지의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직선이 직경 10.5

m 정도로 휘어져 들어오면서 J자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있어 훨씬 정교한 모습이었다.

건물 상단에 뚫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을 관찰해서 계절의 벼화를 읽었다고 한다.

특히 동지와 하지의 정확한 시기를 그림자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는데, 파종과 수확시기

를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정보를 왕이 직접 통제함으로써 통치권한을 확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내 개인적로는 아까 비 때문에 지나쳤던 태양을 묶어두려는 제사를 지

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천문관측소 인띠와따나 보다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계속 내려 가이드가 유적지 입구에서 만날 시간을 정하고 다소 자유 시간을 주었

다. 다리도 아프고 하여 천천히 유적지 입구쪽으로 걸어가며 층층이 계단식 밭으로 이루

어진 농경지역을 살펴보니 알파카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또한

못내 아쉬워 발을 멈추고 되돌아서서 오늘 내발로 걸으며 확인한 유적지 풍경을 다시 한

번 감상하 다. 아까 그냥 지나쳤던 주광장 한가운데 나무가 한그루 심어져 있다는 새로

운 사실과 함께, 삼창의 신전이 이쪽에서는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는 사실 등...

유적지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아구아스 깔리엔테스로 내려오는데 옆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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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주광장 및 안내판

마침 마추픽추 트랙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호주 젊은 여성을 만났는데, 트랙킹을 위해 2

주일간 휴가를 내었다고 한다. 여행은 이런 식으로 해야되는 것인데, 우리나라 패키지

여행은 인증샷 여행이니 아직 여행문화가 선진화되기 까지는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구아스 깔리엔테스에서 잠시 자유 시간을 가진 후 저녁식사를 하고 기차를 타고 오얀

타이탐보 역으로 귀환하 다. 오늘 관광으로 피곤도 하 지만 밤기차에서 다른 한국인

관광객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며 오느라 지겨운 줄 몰랐다. 오얀타이탐보에서 다시 버

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올 때까지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비에

젖은 다리의 상처를 치료하고, 오늘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마추픽추 관광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을 자축하며 휴식을 취하 다.

3월 12일(수), 아홉째날 리마 관광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어젯밤 늦게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호텔 주변 안데스

산맥으로 너무나도 멋진 운해가 펼쳐지고 있었다. 멋진 풍경을 내 눈에 담아두기 위해

한동안 풍경에 눈을 떼지 않고 감상하 다.

오늘은 리마로 귀환하는 날이므로,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호텔 체크아웃을 한 다음

7시 조금지나 쿠스코로 출발하 다. 일행 중 어제 비를 맞고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서 그런지 감기 걸린 분들이 많이 생겼다. 아직 여행의 절반도 마치지 않았는데 다소 걱

정이 되었다.

어제 비온 덕에 성스러운 계곡의 넓은 평원에 오순도순 살고 있는 원주민 마을들의 풍

경이 너무나도 평온하고 아늑해 보 다. 가이드가 산맥 한쪽을 가리키며, 저쪽에 황토색

계곡사이를 가득 메운 하얀색 염전 살리네라스(Salineras)가 있다고 하며, 땅으로부터

소금을 수확하는 토판염(전)이라고 하며, 한국 강남에서도 잉카소금이란 이름으로 팔리

고 있다고 한다. 원래 바다 던 곳이 갑작스러운 융기로 인해 하늘과 맞닿은 고산지

가  되어 생겨난 것으로, 산속에서 미네랄이 녹아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막아서 태

양열을 이용해 물을 증발시켜 3000미터 산속에서 소금을 얻는 구조라고 한다. 염전의 규

모가 매우 크며, 소금 생산에는 이틀이 소요되고, 주 3회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소금은 층별로 색깔이며 용도가 다른데, 맨 아래 형성된 소금은 의약품으로 위는 순차적

으로 식용 및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산음식이 짠 이유가 고산증으로

인한 Na 부족분을 보급하기 때문으로, 이곳에서 수확된 소금이 안데스 산맥을 생활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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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호텔에서 바라다 본 안데스 산맥의 멋진 운해 풍경

으로 삼은 잉카인들에게 귀중한 국가자원으로 이곳 소금을 ‘태양의 선물’이라고 지칭

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루밤바 마을 삼거리에서 버스가 그저께 밤 쿠스코에서 피삭을 거쳐 이곳으로 왔을

때 이정표에 쿠스코로 되어있는 방향으로 돌아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 다. 아하! 이 길

이 친체로와 모라이로 가는 길이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산길을 올라가면서 차창 밖으

로 뒤에 설산을 배경으로 한 우루밤바의 멋진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멋진

풍경을 쫓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버스는 넓은 고원 평야지 를 달리고 있었으며, 주변으

로 꽃의 색깔이 다른 감자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잉

카시 의 농업실험장이 있는 모라이(Moray)라는 마을이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며 이곳에

해 조사하 던 내용이 떠올랐다.

 쿠스코 근방 친체로와 우루밤바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 마라스에서 갈 수 있는 잉카

시 의 농업실험장인 모라이(Moray)는 잉카의 농업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우주선 착륙장을 연상시키는 계단식 원형구조의 밭이 해발3400m에 있는데, 가장 낮은

지 부터 차차 높은 곳으로 옮겨 심는 식으로 곡물들을 고산지 에 적응시켰다고 하며,

각 계단의 높이를 달리하여 바람과 햇빛의 달리함은 물론 계단높이에 따른 온도변화도 

이용했다고 한다. 주요작물은 옥수수와 감자이며, 이곳 실험장은 비가 많이 와도  물이

차지 않고 스민다 하니 놀라운 정도로 관개 및 배수시설이 층별로 잘 되어있으며, 우기

에도 최하부 중앙원이 수 장이 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잉카제국 때 많은 개량으로

인해 당시 1500여종, 현재는 3000종의 감자가 존재한다고 한다.

버스는 운해에 빠져 있는 드넓은 안데스 고원지 를 계속 달리고 있는데 아침의 상쾌

함과 함께 무릉도원에 와 있는 것 같은 황홀감마저 느껴졌다. 친체로 조금 못미처 도로

가에 버스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자연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하

고 있는 안데스 산맥의 설산을 감상하 다. 사진을 찍었지만 내 눈으로 느끼는 멋진 모

습이 잡히지 않아 다소 아쉬웠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장관을 눈 속에 담았다.

버스를 타고 쿠스코로 가면서 가이드가 페루가 원산지인 감자가 프로이스(독일)로 갔

다가 아일랜드로 퍼져갔고, 그 후 전 세계로 퍼져갔다고 하며, 미국 역 통령 44명

중 22명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며 감자의 단함을 이야기해 주었다. 버스가 한적한 안데

스 고원 마을인 친체로(Chinchero)를 지나갈 때 보니 어제 지나 온 피삭과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로, 마을 중앙광장에 하얀 회벽 건물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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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체로 마을 근처에서 본 안데스 고원의 멋진 운해 및 설산

이것은 쿠스코와 마찬가지로 잉카의 신전을 허물고 그 석벽위에 세운 성당이며, 성당 안

은 ‘지진의 신’으로 불리는 검은 피부를 가진 예수나 일하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 등

이곳 원주민들이 독특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가톨릭을 받아들 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이미

지로 가득하다고 한다. 또한 성당 밖에는 잉카인들이 ‘ 지의 어머니 신’으로 섬긴 빠

차마마의 상징인 다층계단위에 십자가가 놓여있고, 십자가 한가운데에는 잉카의 상징인

태양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다음 번 다시 페루에 올 수 있다면 이곳도 발로 걸으며 직

접 확인해 보기로 하 다.

쿠스코에 가까워져 다소 창밖으로 볼거리가 없어졌을 때, 가이드가 애주가인 내게 귀

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곳에도 술집이 있는데, 장 끝에 빨간 봉지를 걸

어 놓은 집은 옥수수로 만든 막걸리집이고, 파란 봉지를 걸어 놓은 집은 여자가 나오는

니나노식 막걸리집이라고 알려 주었다. 다음에 오면 이 두 곳을 필히 현장 체험해 보아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시 조금 지나 쿠스코 공항에 도착하 다. 이틀 전 이곳에 도착하 을 때는 못 견디게

아팠던 다리의 상처도 이제는 면역이 되었는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체크인하고 게이

트 앞으로가서 기다리다 10시에 LA 2022편으로 쿠스코를 출발하여 리마로 향하 다. 만

이틀간의 잉카제국의 상징 도시인 쿠스코와 마추픽추 관광으로 보지 못한 곳과 제 로

못 본 것에 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왠지 잉카제국에 해 좀 더 알게 되었다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