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에 대한 성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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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25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에 대한 성서적 연구: 성서연구, 금식, 구제, 기도 서 동 수 한일장신대학교, 성서신학 1. 서론 2. 욕망의 실체 2.1. 욕망의 신학적 정의 2.2. 욕망의 메커니즘 3. 욕망극복을 위한 신앙영성 훈련의 원리들 3.1 인간의 3대 욕망 3.2 인간의 3대 욕망의 원론적 극복원리 3.3 인간의 3대 욕망의 실천적 극복원리 4. 결론 1. 서론 구약성서에서 발견되는 인간은 가시적인 피조물의 일부인 유한한 물질()과 초월적 존재인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숨결로 창조되었다는 구성론적 이해는(창세 2,7), 자연스럽 게 욕망의 유혹에 노출된 몸의 유한성으로부터 신적 영원성이 내재된 영혼이 그 욕망 연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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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25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에 대한

    성서적 연구: 성서연구, 금식, 구제, 기도

    서 동 수

    한일장신대학교, 성서신학

    1. 서론2. 욕망의 실체 2.1. 욕망의 신학적 정의 2.2. 욕망의 메커니즘3. 욕망극복을 위한 신앙영성 훈련의 원리들 3.1 인간의 3대 욕망 3.2 인간의 3대 욕망의 원론적 극복원리 3.3 인간의 3대 욕망의 실천적 극복원리 4. 결론

    1. 서론

    구약성서에서 발견되는 인간은 가시적인 피조물의 일부인 유한한 물질(흙)과 초월적 존재인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숨결로 창조되었다는 구성론적 이해는(창세 2,7), 자연스럽게 욕망의 유혹에 노출된 몸의 유한성으로부터 신적 영원성이 내재된 영혼이 그 욕망

    연구논문

  • 226 신학과 철학 제24호

    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갈망하는 존재로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 신학의 문제만이 아닌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주제에 해당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나름대로의 지침과 가르침을 제공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자신의 정과 욕심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자로 정의하는

    것은(갈라 5,24, 비교, 로마 6,6) 바로 이런 입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바울의 이 간결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은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과 본질을 규명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이미 몸의 욕망과 그 결과인 죄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 사망에

    서 벗어난 자이다. 그러나 자성적 신앙의 소유자는 이 구원의 선언과 정의에 반하여 여전히 현실은 강한 욕망의 사슬에 얽매여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실존을 세속성을 추구하는 몸의 욕망과 이에 대립되는 (영)혼의 초월지향적인 영성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로마 7,24-25).”

    이렇듯이 기독교 신학에서 인간을 몸과 (영)혼의 갈등에 갇힌 자로 분명하게 이해하고는 있지만 구약성서에서 보는 몸과 (영)혼의 이 구성론적 이해는 섣부르게 인간을 몸과 혼의 이원론적 존재, 혹은 혼, 영, 몸의 삼원론적인 존재로 규정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도리어 인격론, 혹은 품성론의 시각에서 몸의 욕망과 (영)혼의 갈망은 인격의 두 주체가 아니라 한 인간, 한 인격의 두 가지 상반된 삶의 성향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원론적 이해를1) 보이고 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라 5,16-17).”

    즉 진리의 성령을 추구하는 것도, 육체적 욕망을 따르는 것도 “너희”로 표현된 인격적 주체인 자아가 선택하는 한 인간 삶의 지향성으로 성서는 규정한다. 이 일원론적 인

    1) 그리스도나 성령이 인간 안에 내재하신다는 의미는 내 인격 안에 다른 인격적 주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사상의 지배를 표현하는 신학적 기술에 해당한다. 만약 성령의 내재를 문자적 의미로 받아드린다면 이것은 구약성서에서 혐오시하고 금기로 여겼던 강(접)신술의 (신명 18,9-11; 비교. 1사무 28,9-10; 이사 8,19) 아류에 해당한다.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27

    간이해로부터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몸과 (영)혼의 이상적인 조화와 일치의 상태와 단계를 형성하는 그리스도와 인간의 합일로 규정한다(갈라 2,20). 이런 일원론적 인간론은 사람이 자신의 전 생애의 결과를 타인이나 외부의 환경에 전가시키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단하는 자율적인 인간을 위한 영성훈련

    의 논리적인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욕망에 사로잡힌 것도 “나” 자신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바로 그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은 현상학적으로 수없이 변화하고 바뀌지만 그 “나”를 “참 나”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혹은 과거의 “나” 자신은 현재의 “나” 자신이 아니라고 거부할 수 없는 책임 있는 인격적 주체인 “나”로서 주체적 불변의 “나” 자신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실천은 몸(육체)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실제적인 해방과 구원을 추구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욕망에서 벗어난 자로 존재론적으로 이미 정의되고 선언된다. 그러나 실존적 차원에서는 아직도 욕망의 사슬에서 신음하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우리는 솔직하게 인식하고 있다.2) 이로써 본 연구의 목적은 욕망의 세력과 구조에서 탈피를 위한 신앙영성 훈련의 단서와 방법의 논리

    적 체계를, 신학과 신앙의 근간이 되는 성서로부터 밝혀내어 제공하는 것으로 분명해진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본 연구는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에서 통용되는 구원의 약속과 성취의 구원론의 도식에 따라서(1코린 15,4) 구약성서로부터 욕망의 메커니즘을 신약성서로부터 구원의 신앙영성 훈련을 위한 원리를 규명하게 될 것이다. 즉 연구 방법론에 있어서 인간의 인격적 주체는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형상

    으로서 생득적으로 부여된 절대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신구약성서를 토대로

    최근 인문학이나 혹은 정신활동을 단지 물질의 작용으로 이해하는 유물론적 사고의 뇌

    (신경) 과학의 욕망이론에서 대두된 주체 형성론에3) 반대하여 신학적 논리만을 차용하여 본 연구는 진행될 것이다. 이 방법론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주체의 인식론적 변화와 발전은 존재론적으로 소유하지 않았던 새롭고 낯선 형질을 습득하거나 형성

    2) 이미 조직신학에서는 이를 simul peccator et iustus로 표현하고 있다. 3) 성서에서 인간의 주체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 주어진 것으로서 존재하지 않던 것이 새

    롭게 부여되거나 생성되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적인 차원에서 자기 주체성에 대한 인식되는 심화과정과 발전은 이미 생득적으로 부여된 본성의 인지이고 발현이다. 현대의 인문학적 접근, 특히 심리학, 사회학은 대개 무신론적 차원에서 인간주체 형성론을 제안한다. 이럴 경우 인간의 주체는 만들어져 가는 각 환경과 문화의 결정체로 규정된다.

  • 228 신학과 철학 제24호

    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되어 있었지만 망각하였고 상실했던

    절대적인 “나” 자신인 “하나님의 형상”에4) 대한 재발견과 회복이라는 성서적 전제가 깔려있다(창세 1,26ff).

    2. 욕망의 실체

    2.1. 욕망의 신학적 정의

    “욕심(망)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라고 선언하는 야고보서의 말을 빌린다면 욕심(망)은 인간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이다(야고 1,15). 또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욕심(망)을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그리스도인으로 정의하여(갈라5,24) 이상적인 영(성)적인 인간을 욕심(망)을 벗어난 자로 규정한다. 그래서 욕망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로 정의된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욕망의 그늘에서 삶을 영위하는

    현실의 모순된 상태를 직시한다면 욕망의 정의와 본질에 대한 규명은 필수적인 작업이

    다. 이때 사용된 헬라어 단어 에피튀미아(ἐπιθυμία)는 이미 플라톤 이래로5) 부정적인 의미에서6) 일반적으로 금지된 것에 대한 욕구를7) 나타내는 전문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신약성서에서 차용된 이 단어는 거의 부정적인 용례를 보여준다.8)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욕심(망)에 대한 신약성서의 이런 이해는 그 배후에 기독교와 유대교 신학의 시발점이 되는 창조론의 인간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창세 1,26) 창조된 물질인 흙이 몸의 질료로 사용되었기에(창세 2,7), 인간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이미 피조물의

    4) 절대적 자아는 불멸의 자아와 동일하다. 기독교의 영혼불멸설은 자신의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파악하는 자연스런 논리적 결과이다. 인간 (영)혼의 기원으로 창조설, 유전설, 선재설 등 다양하다. 루이스 벌코프,『조직신학』, 권수경, 이상원 옮김,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0), 406-411.

    5) Phaedo 83B: ἡ του ὡς ἀληθως φιλοσοʹφου ψυχὴ οὕτως ἀπεʹχεται των ἡδονων τε καὶ ἐπιθυμιων κτλ(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영)혼은 쾌락과 욕망을 멀리한다…). 헬라어 원문이 없는 번역본으로,『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박종현 옮김, (서울: 서광사, 2003), 354를 보라.

    6) 욕망이라는 단어가 성서에서 항상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루카 22,15; 1테살 2,17에서는 동사의 형태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7) W. Bauer, Woerterbuch zum Neuen Testament, (Berlin: WdeG, 1971), 580의 에피튀미아를 보라. 8) I. H. Marshall(ed), Concordance to the Greek New Testament, (London: T&T Clark, 2002), 403의

    해당 단어를 보라.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29

    유한성에 갇힌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숨결로서 영혼에 내재된 영원성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실존의 양면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한 인간 안에 내재된 비물질과 물질의 상이한 요소는 서로 상반된 속성에 대한 지향성을 통하여 한 인격체 안에서 욕망

    의 현상으로 표출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신학적인 차원에서 욕망이란 결핍에 대한 보완과 충족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로 몸의 속성인 물질의 한계성, 즉 인간 본연의 피조물성의 경계선을 제거하여 초월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하는 하나님 앞에서 허용되지 않은

    삶의 성향이며 방향에 해당한다. 즉 창조되었기에 존재의 시원이 존재하는 물질로 구성된 인간의 몸은 소멸로 그 존재가 종결되며, 여기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욕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성서에서 말하는 욕망이란 초월자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론에서 규명되고 정의되어야 한다. 즉 인간에게 불행의 기원이 된 근본적인 욕망이란 하나님 앞에서 준수하여야 할 금기사항을 범하려는 인간의 부정적 성향이다. 바꾸어 말하면 욕망이란 유한의 피조물성과 연약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영원한 하나님이 되려고 홀로서

    기를9) 시도하는 인간의 항거이다. 그러므로 사실 욕망이란 물질의 몸을 소유하여 영원성이 결핍된 인간의 존재론적 약점에 해당하지만, 생명의 보존을 위하여 동산의 다른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아담에게 욕망의 죄가 성립되지 않듯이(창세 3,2) 항상 세속의 일반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단순히 인간의 성품내지는 성향으로 자신에게 결핍된 그 무

    엇을 취하려는 의도나 행동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제 이 문제를 창세기에 서술된 인간타락 설화를 통하여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2.2. 욕망의 메커니즘

    역시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B.C. 10세기의 Jahwist의 작품에 해당하는 창세기 3,1-7에 수록된 소위 인간타락 설화는10) 욕망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인간이 욕망의 유혹에 포로가 되어 자신의 운명을 파멸로 이끄는지를 신학적 차원, 즉

    9) 이희학,『인간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행동 창세기 1-11장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101-102.

    10)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명칭은 Jahwe가 아니라 Elohim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이 단락은 야훼스트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G. Fohrer,『구약성서개론 (상)』, 방석종 옮김, (서울: 성광문화사, 1985), 234-244, 특히 236.

  • 230 신학과 철학 제24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론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이를 ㄱ) 욕망의 유혹; ㄴ) 욕망의 매체; ㄷ) 욕망의 세력; ㄹ) 욕망의 결과로 구분하여 살펴보자. ㄱ) 욕망의 유혹: 일반적으로 대상을 경험하고 욕망이 발생하거나 욕망이 이미 존재하였기 때문에 대상을 취하는 두 가지 경로가 가능하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어떤 대상을 여러 사람이 경험할 때, 분명 모두가 이를 소유하거나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이것은 욕망의 유혹과11) 시발점은 대상으로부터 기인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선행되는 한 인간의 의식적 주체인 (영)혼의 활동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분명 욕망은 특정한 대상에 연루되어 있지만 이 대상은 객관적 물상(物象)으로 중립적이다. 지·정·의(知·情·意) 3요소로 작용하는 (영)혼이 대상에 대한 소유욕을 보일 때 비로소 대상은 욕망의 유혹으로 다가온다. 욕망의 실제적 발현은 인격주체인 인간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책임소재도 인간 자신에게 있다(창세 3,11). 주지하는 바와 같이 창세기 3,1-7의 인간타락 설화에서 욕망은 단순한 배고픔이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 심층적으로 욕망은 유한한 피조물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지혜(식)를 통하여 영원불변의 신적 존재가 되려고 하는 하나님의 금기사항의 위반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5절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가치관에 대한 인간의 결정과 선택이 일차적으로 발생하고, 그 후에 이차적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아담과 하와가 실제적으로 접근하는 욕망의 기본

    적인 구조를 묘사하고 있다. 즉 욕망의 유혹의 주체는 어떤 물상이 아니라 인간 자체이다. 신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물상이 아무리 유혹하여도 인간의 (영)혼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욕망의 유혹은 성립하지 않지만, 이미 인간 스스로 욕망에 빠지면 물상은 중립적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유혹적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욕망의 유혹은 외부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타락 설화에서 나타난 이런 욕망의 흐름에 대한 성서기자의 입장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절대

    적 의사의 결정권이 귀속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유의지를 소유한 인간의 (영)혼이 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독자적인 결정권과 이를 통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유이다.

    11) 선악과와 욕망의 유혹의 상관성에 대하여, C. Westermann,『창세기 주석』, 강성렬 옮김, (서울: 한들, 1998), 47-48; 이종록,『인간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 (서울: 프리칭 아카데미, 2008), 65-66.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31

    인간타락 설화에 묘사된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초월의지는 물론 종교와 철학에서 각광받는 최종적인 인간의 목표지향성에 해당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이상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과 상태를 “초월”의 경지로 설정하지만, 이에 반하여 구약성서의 신학은 초월지향적인 인간의 태도를 자신의 피조물성을 망각한 욕망으로 단죄한다. 도리어 기독교 성서신학에서 인간의 본연적 자세는 피조물로서 초월자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존

    (믿음) 관계의 형성에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되고, 결코 인간의 피조물성의 한계를 초극한 초월의 성취나 도달로 제시되지 않는다. 어쨌든 철학적 용어를 통해서 진술되지 않고 신화적인 언어를 차용하고 있는 기독교 인식론의 주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에덴동산 타락설화는, 인간이 유혹을 받아 욕망의 포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존재로 도식화 하여, 인간 스스로의 자율적인 의지의 결단과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감만이 욕망에서 벗어난

    신 앞의 바른 인간의 모습으로 설정하고 있다. ㄴ) 욕망의 매체: 4-6절에서 욕망은 유혹을 통하여 발생하고 작용한다. 그리고 그 유혹의 욕망은 이미 희랍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12) 이래로 체계적으로 세간에 알려진 몸의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5대 감각기관을 매체로 활동하며 그 대상을 확정한다. 3절에서 욕망의 대상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로 즉 금기의 대상으로 “먹지 말라 명한 나무의 실과”, 소위 선악과이다. 우선 4-5절에 나타난 귀의 청각을 통한 몸의 유혹은 금지된 동산 중앙의 과일을 먹어도 사망에 이르지 않고 도리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아는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뱀으로 상징화 된 사탄의 소리로13) 일반적인 차원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타락설화에서 유혹의 주체로 등장하는 뱀은 위에

    12) 아리스토텔레스,『영혼에 관하여(περι ψυχης)』, 유원기 옮김, (서울: 궁리, 2005), 159-188.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B. C 6세기의 불교의 시조 석가모니의 오온설도 인간의 5대 감각기관에 대한 인식론을 전개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인간타락 신화에 등장하는 감각기관을 통한 유혹에 대한 설명은 B. C 10세기의 문헌으로 불교이론보다 훨씬 앞선 사상이다. 상세한 불교의 오온설에 관하여는 이중표,『근본불교』, (서울: 민족사, 2006), 169-240를 보라.

    13) 이 사탄은 인격적 실체가 아니라 인격적 주체인 “나자신 안에 내재된 욕망지향의 또 다른 자(아)신으로 이해할 때 욕망과 그 극복을 위한 신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극대화 된다. 뱀이 사탄과 동일시 될 수 없는 이유는 창조신화에서 뱀을 아담의 주권아래 놓인 동물로 설정하지만 타락한 천

    사인 사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G. von Rad, Genesis, (Philadelphia: Westerminster Press, 1956), 85. 그러나 뱀과 사탄의 동일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위해 비교, K. R. Joins, “The Serpent in Gen 3”, ZAW 87(1975), 1-11, 여기서는 8-9; J. Fichtner, “ὄφις”, ThWNT V, 566-582, 여기서는 574.

  • 232 신학과 철학 제24호

    서 언급한 것처럼 유혹은 근본적으로 외적 환경이나 타자에 의하여 일어나지 않고 인

    간의 내면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의인화로 이해하

    여야 한다. 눈의 시각을 매체로 한 유혹의 욕망은 6절에서 선악과를 보기에 탐스러운 색채를 띠고 있는 과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설화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코의 후각을 통한 욕심의 유혹은 먹음직한 과일 향으로 추론할 수 있다. 6절에서 하와가 과일을 취하였다고 서술한 부분은 몸(손)을 통한 촉각의 욕심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이 과일을 먹었다고 진술한 문구는 혀의 미각적 욕망의 표현이다. 즉 이 5개의 신체의 감각기관(眼·耳·鼻·舌·身)은 욕망의 대상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는 매체이고 통로이다. 인간에게 모든 욕망은 물질의 몸이 존재할 때 만 가능하다. 이제 몸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유혹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정보를 지·정·의의 종합적인 인식작용을 통하여 의식화 시킨 (영)혼이 행동으로 발현시킨다면 이는 죄를 초래하는 실제적인 욕망, 가치관의 왜곡과 훼손으로 표출된다. 즉 지·정·의의 3대 인식작용을 수행하는 (영)혼만이 인간의 의식과 인식의 주체이고 감각기관으로 구성된 몸은 외부의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기관의 정보를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등 식(識)으로 정의하는 불교와 다르게 타락설화에 나타난 성서기자의 인식론은 감각적 정보를 의식의 한 형태로

    정의하지 않고 지·정·의를 소유한 (영)혼의 작용만을 의식으로서 모든 감각을 매체로 활용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기원전 10세기의 이른 바 야훼학파의 성서기자는 인간의 (영)혼 속에 일어나는 이 욕망의 실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로 상징화 하고 형상화14) 하여 피조물로서 인간존재와 실존의 연약성을 폭로하고 있다. 욕망발생의 정·역(正·逆)반응의 전 과정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실제적 욕망 = 대상 ↔ 몸의 감각기관을 통한 색채. 소리. 향기. 맛. 느낌의 정보수집과 전달 ↔ (영)혼의 지·정·의 인식작용 = 실제적 욕망

    종합적으로 욕망의 본질적인 문제는 오감을 통하여 금지된 선악과를 먹었다는 단순행위 사건에 초점이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인식세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금기사항을 위반하였다는 사실에 연루되어 있다.

    14) 비교. 임태수,「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현대적 의미」,『신학사상』, 138(2007), 89-116. 선악과의 철학적 의미에 대하여 이정은,「헤겔의 종교철학에서 그리스도교의 악 이해」,『기독교철학』, 15(2012), 117-140.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33

    ㄷ) 욕망의 세력: 몸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수집된 물상에 대한 정보는 인간을 죄의 파멸로 오도할 수 있는 욕망이 될 수 있다면, 욕망은 하나의 거대한 세력에 해당한다. 모든 욕망은 “~하지 말라”라는 율법에 저촉된다. 그러나 이 욕망은 스스로 존재하고 세력을 형성하는 실체가 아니라 생성과 소멸의 양면성을 갖고 있는 인간의 허상이므로, 욕망을 욕망이라고 규정하는 율법을 근거로 하여 인간 위에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신학적 차원에서 아담을 죽음의 파멸로 이끈 본질적인 욕망의 세력은 창세기

    2,17에 명시된 것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라는 첫 인간에게 내려준 하나님의 율법이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명백하게 밝힌 것처럼 율법은 죄의 욕망을 규정하고 욕망을 욕망으로 깨닫게 한다(로마 7,7-8). 율법이 없으면 욕망도 존재하지 않고 그 결과인 죄도 형성되지 않는다(로마 5,13). 율법이 존재하면 그 율법의 욕망이 뒤 따를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욕망의 세력을 사탄으로 정의하지 않고 단지 유혹의 유발자로 이해하고 있다.15) 야훼학파의 성서기자는 타락설화에서 욕망의 세력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이 이미 숙지하고 있음을 명시한다(창세 3,3). 우주 속의 자연계시와 보편적인 인간의 양심법을 말하는 바울의 신학도 이에 동일한 보조를 맞추고 있다(로마 1,19.20.21; 2,12-15). 이 법에 근거하여 욕망은 기독교 신학에서 신의 의지와 뜻에 위배되는 인간의 성향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ㄹ) 욕망의 결과: 5절에서 명시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아는 존재”가 되려는 인간의 초월지향적인 욕망의 끝은 7절에서 하나님처럼 되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벌거벗은 자신”을 인식하는 경험으로 막을 내린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았다”라는 문구에서 욕망의 결과를 상징하는 “나신(裸身)”의 의미는, 언젠가는 인간이 죽어야 하는 유한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스스로 초월자가 되고자 아무리 애쓰고 노력하여

    도, 인간은 하나님처럼 될 수도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한계와 유한의 사슬에 묶인 숙명적 존재로부터 스스로 구할 수 없는 전적 무능력이라는 피조물성에 대한 처절

    하고 절망적인 자기성찰의 고통을 표현한다. 결국 욕망의 결과는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의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부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항상 무위로 종결되고, 반드시 그 욕망에 대한 책임추궁, 즉 금지의 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한 심판의 고통과(창세 3,11) 그 심판의 결과인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최종적으로 죽음이

    15) 궁극적인 죄(악)의 근원에 대하여 루이소 벌코프,『조직신학』, II, 423-440.

  • 234 신학과 철학 제24호

    (창세 3,19) 뒤 따르게 된다. 이와는 다른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은, 역설적으로 욕망의 부정적인 결과로부터 인간이 피조물의 한계성, 즉 존재론적으로 벌거벗은 몸에서 해방되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창세 3,21) 인식과 갈망에(로마 7,24) 도달한다는 사실이다.16) 우리는 이제 여기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두 가지 신학적 주제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파멸로 이끄는 근본적인 욕망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는가? 둘째, 파멸의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는 신앙영성 훈련의 길은 그 무엇인가?

    3. 욕망극복을 위한 신앙영성 훈련의 원리들

    욕망이 종국에는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 세력이라 하여도 물질의 몸을 소유한 존재론적 인간의 본성에 해당한다. 그래서 인간은 크고 작은 수많은 욕망과 씨름하며 살아가고 있고 몸이 존재하는 한 욕망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여기서 욕망으로부터 해방과 구원의 길을 제시하여 몸과 (영)혼의 조화로운 삶의 평안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가르침을 제공하는 종교와 신앙의 궁극적 목적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제 욕망극복의 길을 성서로부터 모색하기 전에 선결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인간의 제반 욕망을 포괄적으로

    대변하는 인간의 3대 욕망의 모습과 내용을 살펴보자.

    3.1. 인간의 3대 욕망

    인간의 육체성 때문에 일어나는 욕망의 대상은 셀 수 없이 다양하지만 성서는 이를 크게 구분하여 3대 욕망으로 신학화 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간의 3대 욕망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욕망과 타락을 재현하는, 역시 인류의 대표자 되신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시험에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마태 4,1-11; 루카 4,1-13).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받은 시험은 단지 그가 메시아 직임을 감당하기 위한 자격을 시험하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실패한 아담의 죄의 욕망을

    극복하고 신 앞에 바른 인간으로 서야 할 모든 인간의 본보기로 제시된 인간론의 한

    16) 죄의 욕망과 율법을 통한 심판과 구원의 갈망 그리고 구원의 구조적 내용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위하여 서동수,「율법의 구원사적 역할」,『신약논단』, 16-1(2009, 봄), 231-268을 보라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35

    부분에 해당한다. 필자가 이미 논문을17) 통하여 어느 정도 상세히 이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본 연구의 논의를 위한 최소의 언급만으로 논의를 제한한다. ㄱ) 생존의 욕망: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첫 번째 시험으로 이는 몸(육체)을 지탱하기 위한 생물학적 욕망으로서 생존을 위해 의·식·주를 취하고 이를 획득하기 위해 염려하는 것은(마태 6,25.34)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본성이다. 최소의 인간 생존권을 위한 일용할 양식처럼(마태 6,11) 이 욕망은 경우에 따라서 허락되기도 한다. 그러나 육체적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 할지라도 사탄의 유혹에 따라

    돌을 떡으로 변화시키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 욕망에 해당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불로장생이나 영생불사를 꿈꾸는 의학 혹은 유전자 공학은 생존의 욕망의 그 전형적인 실

    례에 해당한다. 아담의 타락은 선악과를 먹고도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존의 욕망 때문에 비롯되었지만 새 아담 그리스도는 이를 극복하였다. ㄴ) 소유의 욕망: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지속하고 안전하게 위하여 필요한 물질과 권력 등을 소유하기 원한다. 천하만국의 부귀영화는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과 동일시되는 솔로몬의 영광으로 미화되어 인간의 의식을 미혹한다. 소유의 욕망의 전형적인 모습은 루카복음의 순서를 따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둘째 시험에 해당한다. 에피튀미아(ἐπιθυμία)가 통칭적 의미에서 사용되었다면 소유의 욕망은 좀 더 구체적으로 탐심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로18) 신약성서에서 표현되어 있다. 성서는 인간의 참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선언하여 어리석은 부자의 경우처럼(루카 12,15-21) 지나친 소유의 욕망을 차단하는 교훈을 제공한다. 아담의 타락은 선악과를 통하여 하나님과 같은 지혜의 소유자가 되고자 하는 소유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지만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만국의 부귀영화에 대한 소유의 욕망을 제어하

    였다. ㄷ) 지배의 욕망: 이 욕망은 성전 꼭대기에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놓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사의 시중을 받도록 유혹했던 하나님 없이 인간의 홀로서기를 부추기는

    가장 큰 정신적인 욕망에 해당한다. 지배의 욕망은 생존의 욕망이나 소유의 욕망보다 심층적으로 강화된 내면의 욕망으로 하나님의 임재장소인 성전19) 위에 서 있다는, 즉

    17) 서동수,「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시험과 인간의 길(마태4,1-11)」,『신학과 철학』, 13(2008, 가을), 115-144.

    18) W. Bauer, Woerterbuch zum Neuen Testament, 1324.

  • 236 신학과 철학 제24호

    하나님 위에 인간이 존재하려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드러난다. 권력지향적인 인간의 본성은 사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선악과를 따 먹은 첫 인간 아담의 행위를 통하여

    지배의 욕망으로 여실히 드러나고, 둘째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배의 욕망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하기 위한 도구로 마태오와 루카의 광야

    시험 기사에서 정반대의 필치로 서술되어 있다. 결국 아담의 욕망과 타락에 대비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이 세 가지 시험과 승리는 욕망을 극복한 사람의 길, 즉 참 하나님의 아들의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귀감으로 제시되어 있다. 특히 루카복음서 기자는 광야시험의 종결어구에서 사탄이 잠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났다고 부연설명을 첨가함으로써 인간의 노정은 단 한 번의 시험극복으로 욕망에서 해

    방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 동안에 끊임없는 욕망의 시험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교훈

    을 암시한다. 즉 돈오돈수(頓悟頓修)인가 돈오점수(頓悟漸修)인가 논쟁하는 불교의 교리와는 다르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원은 단 한 번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

    적인 발전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으로 성서는 말하고 있다(필립 3,10-12; 1코린 3,1-3; 13,11-12; 마르 4,28-28;). 특히 바울신학에서 점진적 과정을 겪는 인간의 구원은 존재론적 구원, 실존적 구원, 실제적(현실적) 구원 그리고 종말론적 구원으로20) 설명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규정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욕망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자로 선언함에도 불구하고(갈라 5,24), 삶의 실존적 차원에서 아직도 자신의 심연에 살아있는 욕망의 실체를 인식하고 목도할 때 그

    참담함과 당혹감은 감내하기 힘든 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대두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몸의 욕망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로 정의되는

    데 믿는 나에게 왜 아직도 욕망이 존재하는가? 아직도 욕망에 사로잡힌 나는 구원받지 못했는가? 나(그리스도인)는 나 자신의 욕망을 실제로 극복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어떻게 욕망을 제거하여야 하는가? 그 길과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욕망제거의 절대적 요청과 긴박성을 산상수훈에서 과장법적 명령으로 제시하고

    19) W. H. Schmidt, Alttestamentlicher Glaube in seiner Geschichte, (Neikirchen-Vluyn: Neukircher Verlag, 6.Aufl. 1987), 254. 이런 경향은 특히 묵시문학 사상에서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G. Schrenk, “ἱεροʹν κτλ”, ThWNT III, 221-284, 여기서는 247.

    20) 상세한 내용은 서동수,「바울은 단지 이신칭의론자인가?」,『신약논단』, 11-1(2004, 봄), 119-149를 보라. 이 논문은 구원을 이미 완성된 상태나 일회적으로 이미 주어진 것으로 보지 않고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서 완성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37

    있다(마태 5,29-30). 이제 욕망극복을 위한, 다시 말하면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갈라 5,16-17) 신앙영성의 훈련 원리를 성서로부터 원론적인 측면과 실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3.2. 인간의 3대 욕망의 원론적 극복원리 - 성서연구

    인간이 어떻게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원론적인 방법은 바로 극한의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경험한 광야의 3가지 시험기사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시험을 당할 때마다 예수는 구약성서의 말씀을 회상하고 적용함으로써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다는 복음서 기자의 기술은 “성서연구”와 “암송”을 일상적인 신앙생활의 축으로 삼았던 유대인의 신앙생활의 단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모든 고등종교의 존속은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경전전승이 전제될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종교의 가르침은 경전의 조직적인 이해와 적용을 위한 “성서연구”와 “암송”을 통하여 이를 개인의 삶에서 생생하게 구현시키는, 즉 경전에 수록된 말씀의 내면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생하게 발현된다. 다시 말하면 욕망의 극복은 오로지 성서연구의 최종 목적에 해당하는 진리의 내면화와 체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유대교에서 경전교육의 강화는 B.C. 587년 바빌론에 의하여 유다가 패망한 후 바빌론 포로기에 야훼신앙에 근거를 둔 민족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

    단으로 조직된 회당을21) 중심으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며, 이 회당은 예배와 후세들을 위한 유대교 신앙의 경전인 율법교육의 조직적인 장소로 활용되었다.22) 유대교에서 회당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교육은 신명기 6,(4)6-9에서 현저히 부각되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다”라는 신명기 학파의 전형적인 성서교육 사상의 전승, 즉 인간의 총체적인 삶의 지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대한 이해와 수용으로 간주된다. 사실 구약성서와 유대교에서 “성서연구”와 말씀의 완전한 “암송”은 인간이 욕망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체득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그 파멸의 욕망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21) 회당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견해에 대하여 L. I. Levine, “The Nature and Origin of the Palestinian Synagogue Reconsidered.”, JBL, 115(1996), 425-448을 보라.

    22) E. Lohse,『신약성서배경사』, 박창건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4), 136-142.

  • 238 신학과 철학 제24호

    이정표를 제시하기 때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빛입니다”라고 토로하는 시편기자의 신앙고백은(시편 119,105) 욕망의 원론적 극복방법에 대한 가장 간명한 표현이다. 복 있는 사람을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연구자로 규정하는(시편 1,1-2) 시편기자도 바로 이와 동일한 입장을 대변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약성서에서 욕망극복의 원론적인 방법론으로 성서교육의 중요성을 가장 현저히 드러내는 책은 사목서신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

    이라(2티모 3,16-17).”

    여기 본문에서 등장하는 하나님 말씀은 인간교육의 원동력과 온전한 삶의 지침으로 규정된다. 즉 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를 인간을 욕망에서 탈피한 의롭고 경건한 단계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교육적 매체로 소개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히브 4,11-14에서도23)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자신의 심령과 골수를 세밀하게 분석하게 하는 적나라한 자기성찰을 가져오기 때문에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파멸로

    이끄는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양면이 날선 칼보다 더 예리하여(tomoteros)24)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판단하는(kritikos) 기능이 있다는 표현은25) 스트로벨(A. Strobel)이26)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이 인간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에 대한 적나라한 성찰과 그 욕망

    을 제거할 수 있게 만드는 인식의 원동력이 됨을 시사한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성령의 활동과 작용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요한 16,13). 특히 히브리서 3,7-8.15의 신학적 문맥은 진리의 말씀

    23)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

    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24) 칼의 묵시문학적 의미에 대하여 E. Graeaaer, An die Hebraeer (Hebr 1-6), (Zuerich: Benziger,

    1990), 232-231을 보라.25) F. Buechel, “κρίνω κτλ”, ThWNT III, 933-955, 여기서는 945. 뷰켈은 이 용어가 법정용어임을 밝혀

    내면의 성찰과 관계됨을 암시한다.26) A. Strobel, Der Brief an die Hebraeer, (Goettingen: Vandenhoeck & Ruperecht, 1981), 120.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39

    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 자는 곧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 자와 동일한 것으로 설명

    하고 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망각하였기 때문에 욕망의 포로가 되었지만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광야시험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

    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것은 곧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물리친 것을 의

    미한다(마태 4,1.4.7.10; 루카 4,1.4.8.12). 결국 피상적인 성서의 자구적인 숙지가 아니라 말씀에 용해되어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역동적으로 습득하는 내면화만이 실제적으

    로 인간의 욕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실례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볼 수 있

    다면 모든 인간이 세속적 욕망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을 배양하는 원천이

    되는 성서연구는 기독교 신앙영성 훈련의 원론적인 방법으로 신학적 위치를 소유하고

    있다. 즉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서의 연구와 그 진리의 내면화가 없는 기독교 신앙영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3.3. 인간의 3대 욕망의 실천적 극복원리 - 금식. 구제. 기도

    성서연구가 인간의 욕망을 인식하고 제어하는 원리적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그 실천적 행위는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3대 경건생활로27) 알려진 금식과 구제, 기도에 해당한다(마태 6,5-18).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유대교의 금식과 구제 그리고 기도는 이미 기독교에서도 수용되어 일반화된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정착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의 의미는 이미 실행되어 온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의 3대 행동강령을 각개의 단편적인 신앙행동으로 이해하지 않고 이를 체계적으로 결합하여 예수 그

    리스도의 광야시험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인간의 근본적인 3대 욕망을 극복하는 영성훈련의 실천적 원리로 제시하려는 시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상세한 서술은 실천적 영성훈련의 방향제시와 제안에 국한되는 본 연구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

    한 상세하고 구체적인 진술은 추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놓는다.

    27) Ch. H. Talbert, Reading the Sermon on the Mou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4), 102; G. Eichholz, Auslegung der Bergpredigt,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4. Aufl. 1978), 106; D. A. Hagner, Matthew 1-13, (Colombia: Nelson Reference & Electronic, 1993), 137.

  • 240 신학과 철학 제24호

    ㄱ) 금식: 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 시험에 나타난 음식물을 섭취하여 육체적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인 “생존의 욕망”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굶주린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사탄의 첫 유혹은 생존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간에게 공

    통적인 도전으로 다가오는 유혹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아들은 떡으로 보존되는 육체적 생명 이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영적 생명이 인간에게 병존한다는 그리

    스도의 자아성찰과 이로써 영적 생명을 위하여 스스로 음식물 섭취를 차단함으로서 보

    여준 육체적 생존의 욕망에 대한 극복은 금식의 근본적인 신학적 의미를 현저하게 부

    각시킨다. 금식은 페터 게어리츠(P. Gerlitz)가28) 간략하게 언급했듯이 모든 종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소유한 신앙행위로써 종교사에서는 제의적인 이유에서 음식과 음료의 완전한

    금지로 정의되고 전사가 승전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사냥꾼이 사냥 전에, 무당이나 주술사가 신탁을 얻는 수단으로, 젊은이가 성인의식의 준비과정으로, 신혼부부가 혼인의 성결과 축복을 불러오는 수단으로, 제사장이 제물을 드리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로써 실행되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금식의 동기는 할(S.G. Hall)과 크레한(J.H. Crehan)이29) 간략하게 서술한 바와 같이 다양하다. 빈번하게 기도가 수반되는 금식은 개인적인 죄의 속죄를 위한 방편으로 정착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느헤 9,1ff; 1사무 7,6; 2열왕 18,2; 요엘 1,14; 2,12ff). 집단적인 차원에서 대 속죄일에 행해지는 금식과(레위 16,23.25) 요나서에 서술된 니느웨 성읍의 전 백성의 금식은(요나 3,1-10) 하나님 앞에서의 참 자아의 발견과 회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실례에 해당한다. 이와는 성질을 달리하여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표현으로 금식이 행해지기도 한 사례를 다윗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1사무 31,13; 2사무 1,12; 3,35; 12,16-29). 또 다른 금식의 형태는 하나님의 은총을 획득하기 위한 신앙행위로 실행되었다(예레 14,12; 요엘 2,15ff; 에스터 4,16; 역대하 20,3).

    28) P. Gerlitz, “Fasten/Fasttage”, TRE 11, 42-45, 여기서는 42. 29) S. G. Hall; J. H. Crehan, “Fasten/Fsattage”, TRE 11, 48-59, 여기서는 48.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41

    신약성서에서 금식은 히브리어 춤(צ ּו מ)에 상응하는 명사형 네스테이아(νηστεία) 혹은 동사형 네스튀오(νηστεύω)으로30) 대개 등장한다. 산상수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요청하는 금식은(마태 6,16-18) 슈트레커(G. Strecker)가31) 정확히 이해한 것처럼 종교적 위선자가 자신의 신앙의 경건성을 과시하기 위한 형식적인 금욕이나 혹은 고통스런 고행

    이 아니라 아이히홀쯔(G. Eichholz)가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전향, 즉 참 자신을 찾기 위한 자기 부정을 뜻하기 때문에 기쁨의 행위가32) 되어야 한다. 또한 초대기독교 전통에서는 유대교의 금식일인 월요일과 목요일과 구별하기 위하여 그리스

    도인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할 것을 가르치지만(12사도의 교훈8,1)33) 외형적인 시간의 형식에 지나치게 구애되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금식에 대한 올바른 교훈은 아니다. 신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참 자아의 발견을 위한 금식의 전형적인 실례는 사도행전 9,9에 수록된 다메석 도상의 그리스도 현현 체험 이후에 보여주었던 바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페쉬(R. Pesch)가34) 정확하게 주석하였듯이 바울이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였다”라는 표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신체적 장애에 대한 고통의 표현이 아니라 과거의 삶을 회고하고 참 자아의 자각에 대한 몸부림으로 우리는 이

    해하여야 한다. 이제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첫 시험기사로 돌아가 보자. 그의 광야시험에서 제시된 금식의 신학적 의미는 위에서 언급한 금식의 동기나 태도, 목적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철저히 그리스도의 금식은 자기성찰의 신학을 표명한다. 분명 육체의 생명을 보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본연의 자신의 참 모습

    과 임무를 찾기 위한 각오와 결단 그리고 혼신의 노력의 결정체는 돌덩이를 떡으로 만

    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욕망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과 권능을 오

    용하지 않고 모든 음식을 스스로 차단하는 금식의 행위에서 현저히 나타난다.

    30) J. Behm, “νηστεία κτλ”, ThWNT IV, 925-93531) G. Strecker,『산상설교 - 그 신학적 해석』, 전경연; 강한표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158.32) G. Eichholz, Auslegung der Bergpredigt, 110-111.33) K. Niederwimmer, The Didache, (Minneapolis: Fortress, 1998), 131: “Let your fasts not(take

    place) with (those of) the wicked. They fast on Monday and Thursday; you, though, should fast on Wednesday and Friday”.

    34) R. Pesch, Die Apostelgeschichte(Apg 1-12), (Zuerich: Benziger, 1986), 305.

  • 242 신학과 철학 제24호

    ㄴ) 구제: 구제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탐하도록 부추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둘째 시험에서(루카 4,5-8) 보는 것처럼 육체적 생명을 보전한 자가 이를 더 안전하고 안락하게 지속하고 보증하기 위하여 의식주에 관련된 재화를 축적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인 소유의 욕망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인간의 소유의 욕망은 자기중심적인 독점욕이라면 구제는 이타적인 나눔과 공존의 신학을 표현한다. 높은 산에 예수 그리스도를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유

    혹하는 사탄의 시험은 인간을 소유욕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책략이다. 산상수훈의 구제에 관한 교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마태 6,1-4)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재물을 타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구제가

    하나님 앞의 의로운 행동으로 평가되고,35) 특히 루카복음서에서도 구제는 종말론적 하늘나라의 보상이 약속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루카 12,33), 더 중요한 것은 구제를 실행하기 전에 지나친 소유의 욕망을 포기하는 자발적 청빈을 체득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시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취할

    수 있는 소유의 욕망을 거부하는 것은 타인 앞의 선행이나 하나님 앞의 의로움보다 하

    나님 앞에 서야 할 인간이 마땅히 견지하여야 할 본연의 모습과 자세에 해당한다. 그래서 소유의 포기는 구제보다 선행된 구제에 해당한다. 어쨌든 소유의 욕망과 대비되는 구제를 뜻하는 헬라어 엘레에모쉬네(ἐλεημοσύνη)는 “의” 혹은 “자비”를 뜻하는 히브리어 체다카( ה)에 해당한다. 그러나 불트만(R. Bultmann)이36) 밝힌 것처럼 신약성서에서 이 헬라어 단어는 “의”의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고 단지 구제의 뜻으로만 사용되고 있다(마태 6,2-4; 루카 11,41; 12,33; 사도 3,2f.10; 9,36; 10,2.4.31; 24,17). 구제의 그릇된 태도를 지적하여 올바른 구제의 실천을 위한 가장 전형적인 교훈으로 제시된 마태오복음 6,2-4의 본문은 루츠(U. Luz)가37) 정확히 본 것처럼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마태오복음 6,1절과 5절 사이에 삽입된 본문이다. 일반적으로 구약성서(시편 112,9; 레위 19,9-10; 신명 14,28-29; 24,19-21; 26,12-13)와 유대교의 전통(토빗 1,3; 4,7-11; 12,8-10)에서 구제는 금식과 함께 하나님 앞의 경

    35) G. Strecker,『산상설교 - 그 신학적 해석』, 12136) R. Bultmann, “ἐλεημοσύνη κτλ”, ThWNT II, 474-483, 여기서는 482-483.37) U. Luz, Das Evangelium nach Matthaeus(Mt 1-7), (Zuerich: Benzinger Verlag, 1985), 319, 각주 1.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43

    건하고 의로운 행위로 간주되고 특히 A.D. 70년 이후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과 동일시되고38) 일반적으로 전도서나 잠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제는 하나님의 현세적인 보상과 연관되어 있다(잠언 3,27-28; 11,24; 21,13; 전도 11,1-2). 그러나 산상수훈의 예수 그리스도는 구제의 자기과시와 그 배후에 은폐되어 있는 욕망을 폭로하고 있

    다(마태 6,1-4). “구제할 때 길거리에서 나팔을 불지 말고… 은밀히 행하라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는 구제에 대한 약속된 보상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의미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현세적 보상을 약속하는

    구약성서적인 구제의 성격과는 다르게 종말론적 상급으로39) 이해되고 있다. 구제행위에 대한 종말론적 보상의 약속은 다시금 반복된다(마태 19,21). 이럴 경우에 신구약성서를 막론하고 구제는 도리어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욕망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는 참다운 구제의 성격과 내용은 가난한 자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루카 12,15-21)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을 아는 이기주의적인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 나눔과 공존의 신앙영성을 실천하여 자신의 내면

    을 정화시키는 그 자체로(마태 5,3.8) 이해하여야 한다. 이런 상반된 맥락에서 볼 때, 구제는 형식상으로는 타인을 향한 선행으로 간주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소유의 욕망을 제거하고 극복하는 자신을 위한 선행이고 신앙영

    성 훈련의 길과 방법이다. 구제가 결국은 타인을 위한 신앙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구제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소유의 욕망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제를 위한 법적 조항으로 예를 들자면 구약성서의 십일조나(레위 27,30-34; 신명 14,22-27)40) 극단적인 형태로는 수입의 20%이상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랍비 유대교의 규정 같은41) 공동체의 사회복지적인 차원의 계명은 소유의 욕망을 극복하는 나눔의 신학의 제도화로 우리는 이해하여야 한다.

    38) Ch. Talbert, Reading the Sermon on the Mount, 104.39) G. Strecker,『산상설교-그 신학적 해석』, 125; D. A. Hagner, Matthew 1-13, 140-141.40) 사실 말라기 3,8-12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세 구복적인 사상을 보여 주고 있다. 십일조 제정

    의 본 뜻은 기업을 얻지 못한 형제의 생존을 위하여 자신만을 아는 이기주의적인 욕망을 제거하고

    나눔을 통하여 공존의 신학을 배우게 하는 가르침에 해당한다. 십일조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에 대하여 성기문,「모세율법규정에 나타난 십일조 신학」,『기독교사상』, 504(2000), 250-266; 천사무엘,「십일조의 의미와 기능」,『신학사상』, 102(1998), 129-146; 이종록,「십일조로 이루는 샬롬 – 신 26,12-15를 중심으로」,『신학사상』, 132(2006), 83-107을 보라.

    41) R. T. France, The Gospel of Matthew, (Grand Rapids: Eerdmans, 2007), 235.

  • 244 신학과 철학 제24호

    ㄷ) 기도: 기도는 하나님 없는 인간의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지배의 욕망의 대립개념으로 자신의 뜻과 의지를 포기하고 극복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게 해주는 순종의

    신학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간의 정치적인 지배의 욕망은 첫 인간 아담의 홀로서기의 시도 속에, 그리고 둘째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시험 가운데 (루카의 순서를 따를 경우) 3번째 시험에 묘사된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 꼭대기에 서고자 하는 인간의 행위 속에 상징적으로 폭로되어 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아담의 지배욕망은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이고 이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자기초월을 향한 종교적 열망의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피조물성, 즉 유한성을 망각한 자기기만으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종교사에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지향성의 표현”, 혹은 “인간이 자신의 곤경으로부터 자신의 신에게 말하는 과정”으로42) 정의된다. 타 종교에서도 볼 수 있는 바처럼, 이미 우리는 성서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기도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구약성서에서는 상위개념(Oberbegriff)으로서 “기도”라는 전문용어를 알지 못하고, 알베르츠(R. Albertz)가43) 밝힌 것처럼 기도는 “부르다”,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소리를 지르다”, “찬양하다”, “칭송하다”, 혹은 “자비를 구하다”라는 동사의 파생적인 의미로부터 차용되어 사용된다. 유대교의 기도생활은 대개 회당과 가정의 식탁에서 나타나는 예배의식과 관련된다. 공동체 예배의식의 기도교육은 성서시대에 태동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기초는 탄나니텐(Tannait) 시대에 등장한다. 매일 거행되는 예배의식에 사용되는 Schema와 Tefilla는 이미 A.D. 70년 이전에 형성되었다.44)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기도는 베르거(K. Berger)가45) 간단하게 밝힌 바,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전통에서 실행되었던 기도형태를 그대로 답습하지만 인간의 제의적

    행위로서 천상의 세계와 접촉하는 의미가 부가된다. 기도의 형태는 다양하다. 식사기도, 작별기도, 죄고백과 사죄기도, 출생기도, 사망기도, 치유기도, 보호요청기도, 임재요청기도 등등. 이런 다양한 기도형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곤경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을

    42) C. H. Ratschow, “Gebet”, TRE 12, 31-34, 여기서는 31.43) R. Albertz, “Gebet”, TRE 12, 34-42, 여기서는 34.44) L. A. Hoffmann, “Gebet”, TRE 12, 42-47, 여기서 42-43.45) K. Berger, “Gebet”, TRE 12, 47-60; 상세한 진술은 O. Cullmann,『기도』, 김상기 옮김, (서울: 대

    한기독교서회, 2007); 특히 타인을 위한 바울의 상세한 중보 기도신학에 대하여는 G. P. Wiles, Paul's Intercessory Prayers,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4)를 보라.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45

    간청하는 형식을 갖게 된다. 기도는 신앙영역에서 지대한 심층적 차원의46) 순기능을 제공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초래한다. 특히 신약성서에서 끈기 있게(마태 7,7; 루카 11,9) 하나님의 자비심을 의탁하여(루카 18,1.7) 또한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와(마태 21,2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내용에 대한 응답의 보증은(요한 15,7) 도리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구복신앙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도의 참다운 의미는 자신의 바람과 소원을 성취시키는데 존재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이루어지는데 놓여있다. 즉 인간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조차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고자하는 지배욕을 포기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확립하여 그의 뜻과 의지에 복종하는, 즉 하나님의 뜻이 자신과 이 땅 위에 성취되기를 구하는 주기도문의 셋째 간구나47) 생사의 기로에 선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48) 명백하게 제시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를 자청하는 것이다(마태 26,39.42; 마르 14,36; 루카 22,42).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임박한 죽음 앞에서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순종의 기도신학의 절정과 최종 목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기에 기도는 역설적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침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마태 17,5; 루카 9,7; 9,35), 즉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수용하는 인간의 신앙행위이다. 성전 꼭대기에 서서 하나님조차도 자신의 발아래 굴복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지배의 유혹과 욕망을 끊어버릴 수 있게 하는 능력은 오로지 침묵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를 배우는 기도를 통해서 획득된다.

    46) 특히 가톨릭 기도신학에서 기도의 실제적인 실행의 심층적 차원을 다루고 있는 윤주현 O.C.D.,「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전망에 따른 기도 단계: I. 능동적 단계」,『신학과 철학』, 18(2011, 봄), 127-158; Id.,「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전망에 따른 기도 단계: II. 수동적 단계」,『신학과 철학』, 20(2012, 봄), 109-142를 보라.

    47) 비교, O. Cullmann,『기도』, 108-113; 차정식,『마음의 빛을 부르는 기도』,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82-88; G. Strecker,『산상설교-그 신학적 해석』, 140-142.

    48) 비교. J. B. Green, The Gospel of Luke, (Grand Rapids: Eerdmans, 1997), 780; J. Gnilka, Das Evangelium nach Markus (Mk 8,27-16,20), (Zuerich: Benziger, 1979), 258-264; L. Morris,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Grand Rapids: Eerdmans, 1992), 668-672: W. L. Lane, The Gospel of Mark, (Grand Rapida: Eerdmans, 1974), 517-519.

  • 246 신학과 철학 제24호

    4. 결론

    스스로 초월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노예였던 첫 인간인 아담의 에덴동산에서의 타락과 추방은 다른 차원에서 보편적 인간의 심연에 은폐되어 있는 생존의 본능, 소유의 본능, 지배의 본능을 극복하고 승리한 둘째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시험에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있다. 사실 아담의 타락과 그로 말미암은 불행은 선악과를 따 먹어도 불사의 존재로 살 수 있다는 생존의 욕망과 모든 지식과 지혜를 획득하고자 하는 소유의

    욕망 그리고 하나님의 지배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신적 존재로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지배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비롯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학이론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욕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같이 못 박은 자로 정의되지만, 실제적 삶의 현장에서는 아담의 후예인 인간 모두는 아담의 죄를 답습하는 욕망의 노예들로(로마 5,12), 이미 바울이 처절하게 자신의 실존을 고뇌하는 것처럼(로마 7,24-25) 실상은 자신 안에 아직도 살아 꿈틀대는 욕망의 유혹과 투쟁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바울 개인의 신앙적 고뇌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로 육신의 삶을 지속하는 한 욕망으로부터의 구원은 단 한 번에 성취되

    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생애의 마지막까지 성취하여야 하는 삶의 진면목을 보여준

    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의무는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3대 욕망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극복하고 승리하여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하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원론적인 성서연구와 더불어 습관적으로 행하였던 금식과 구제 그리고 기도를 욕망을 제어하는 신앙영성 훈련을 위한 실제적 원칙으로

    재인식하고 정립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금식, 구제 그리고 기도는 어느 정도 기독교의 3대 신앙행위로 일상화 되고 단편적으로 정착되었지만, 많은 경우에 구복신앙의 도구로 오용함으로써 사실 욕망제거의 실천적 영성원리로는 인식하지 못하였

    다. 그래서 이 실제적인 신앙영성의 원리들을 인간존재와 실존에 대한 기독교 인식론과 결부시켜, 이제는 더 이상 자기과시와 구복 그리고 홀로서기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도구로 오용하지 말고, 도리어 자기성찰의 신학과 원리로 나눔과 공존의 신학과 원리로 그리고 하나님의 지고지순한 뜻만을 성취하는 절대적인 순종의 신학과 원리로 자신에

    게 적용시키는 일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원론적 차원의 경전연구와 실천적 차원의 금식, 구제 그리고 기도의 4가지 신앙의 영성훈련의 원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내면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47

    화 하는 삶이 점진적으로 심층화 되고 고양될 때, 명실공이 우리는 비로소 각자 모든 불행과 죄와 형벌의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들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참다운 그

    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 248 신학과 철학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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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51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에 대한

    성서적 연구: 성서연구, 금식, 구제, 기도

    서동수

    기독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님 앞에서 이미 욕망과 죄, 심판과 사망에서 구원받고 의로워진 존재로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자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자기 자신의 내면과 삶 속에 깊이 죄의

    근원인 욕망이 여전히 활동하고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인식한다. 그래서 이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구원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극복하

    는 영성원리와 실제적 신앙훈련을 요청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욕망은 모든 인간의 불행과 죄의 근원으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 설화에서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시험 기사에 나타나는 것처럼 생존의 욕망, 소유의 욕망 그리고 지배의 욕망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에 속한다. 본 논문은 성서로부터 욕망에 대한 정의와 그 구조적 틀을 제시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원론적인 방법으로 성서연구를, 실천적인 방법으로 금식과 구제 그리고 기도를 기독교 신앙의 영성훈련의 구체적 방법

    으로 제시한다. 특히 3가지 실천적 방법은 일반적으로 구복신앙의 수단으로 오용된 것을 필자는 지적한다.

    주제어: 인간의 욕망, 구원, 경전연구, 금식, 기도, 구제, 영성

    초 록

  • 252 신학과 철학 제24호

    A Biblical Study on the Fourfold Principles of Christian

    Faith-Spirituality for Elimination of Human Desire:

    Bible Study, Fast, Charity and Prayer

    Seo, Dong-Su

    Christian gospel proclaims that all Christian in Jesus Christ already are beings coram Deo justified and saved from desire, sin, God’s Judgement, and death. But all the introspective Christians, in despite of fully convincing their own salvation, are experiencing and well aware that desire as essential root of all sins is still active and alive profoundly in their own inner side and life. Thus, in order to guarantee the authenticity of salvation, this paradox between theory and reality requires inevitably the spiritual principle and practical faith training for overcoming and controlling all fundamental desires of human being. As generally known, desire as the prime cause of sin and unfortune of mankind is clearly shown in the biblical myth of Adam and Eve’s Fall. And, as described in the story of Jesus Christ’s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desires of existence, possession, and power belong to the most primitive desires of human being. With proposing the theological definition of human desire and its structural frame from the bible, this paper suggests the bible study as theoretical method, and on the other side fast, charity and prayer as the practical methods getting rid of human desire.

    Abstract

  • 인간욕망의 극복을 위한 4중의 신앙영성의 원리 253

    Key Words: Desire of Human Being, Bible Study, Salvation, Fast, Prayer, Charity, Spirituality

    논문 접수일 2014년 3월 27일

    논문 수정일 2014년 5월 8일

    논문게재 확정일 2014년 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