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86

Upload: margarita-lee

Post on 26-Jul-2015

3.054 views

Category:

Entertainment & Humor


7 download

TRANSCRIPT

Page 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Page 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Page 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 JM

Page 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ER IST WIEDER DA by Timur Vermes

Copyright ⓒ 2012 by EICHBORN, A division of Bastei Luebbe Publishing Group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14 by The Korea Economic Daily & Business Publications, Inc.

All rights reserved.

This edition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EICHBORN through MOMO Agency, Seoul.

이책의한국어판저작권은모모에이전시를통해EICHBORN 사와의독점계약으로한국경제신문㈜한경BP에있습니다.

신저작권법에의해한국내에서보호를받는저작물이므로무단전재와복제를금합니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 JM

Page 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ER IST WIEDER DA티무르베르메스지음 | 송경은옮김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 JM

Page 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다시깨어나다

독일국민은내게가장큰기쁨을주었다. 그동안난정말

인간의힘으로할수있는모든것을해냈다. 적이혹시라

도사용할가능성이있는시설을없애려고다리와발전소,

도로, 기차역까지모조리파괴하라고명령했다. 모든공급

시설을없애야한다고분명하게지시했다. 상수도시설, 전

화시설, 생산수단, 공장, 작업장, 농가등인간이만든모든

것, 모조리다! 그게내생각이었다. 이럴때는신중하게조

치를취해야한다. 명령에조금의의심도품지않도록해야

하니까. 그렇게하지않으면전략적, 전술적지식이부족한

말단병사들은이렇게말할지도모른다. “아니, 이런신문

가판대까지불을질러야해? 이조그만가판대까지도적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야? 이까짓 것이 적에게

넘어간들뭐가그렇게심각하다고말이야!”

심각하다!

적도신문을읽지않는가말이다! 적의손에는아무리사소

한것도넘겨주면안된다. 아무것도안된다말이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4 JM

Page 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난다시한번힘주어말한다. 인간이만든모든것을파괴

하라고. 집뿐 아니라 문, 심지어 문고리까지도. 하다못해

나사도. 큰나사만이아니라작은것까지모조리. 문짝에서

나사를돌려빼낸다음다시쓸수없도록무자비하게뒤틀

어야한다. 문짝역시떼어내가루로만들어야한다. 톱밥

이될때까지말이다. 그러고나서는반드시집전체를태

워야한다. 그렇게하지않으면적들이드나들테니까. 문

은사라졌지만문이있던그구멍으로말이다. 고장난문

고리와뒤틀린나사와잿더미. 이런것들을발견하면처칠

의표정이볼만하겠지. 이 모든것이전쟁이라는잔인한

작업의당연스러운결과다. 분명히그렇다. 그런의미에서

내명령은제대로내려진것이다.

어쨌든그것은자연적인현상이다.

독일 민족이 영국과 볼셰비즘, 제국주의와 싸워 위대한

서사적 전투를벌였다는 사실은더는부인할수없는사

실이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5 JM

Page 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들은이곳에서사냥이나수렵같은원시적인단계로계

속살아갈수있는가능성조차발견하지못할것이다. 다시

말해상수도시설이나다리, 도로도몽땅사라졌다. 문고리

까지말이다. 바로이모든것이내명령에따라이뤄졌다.

미국과영국이공습을해서상당한수고를덜어주었다. 그

들이내가할일을대신해서다파괴해준셈이다.

사람들은내가할일이굉장히많았다고생각할것이다. 서

방에서는미국을타도하고동방에서는러시아에맞서저항

하고, 전세계의수도가될게르마니안도시도세워야하니

말이다. 하지만남아있는문고리는독일군이처치했어야

했다. 그리고특정한민족을더는존재하지못하게만들었

어야했다.

하지만확신하건대이민족은여전히존재한다.

이건어떤면에서이해할수없다.

다른관점으로보면, 나도지금살아있다. 이또한이해하

기어려운일이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6 JM

Page 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01

전진하라. 전진하라…. 갑자기눈이떠졌다. 가물가물하던시야가

조금씩또렷해지면서내가보고있는게구름이라는걸알게됐다.

그렇다, 나는누워있었던것이다. 몸을뒤척여보니등짝이딱딱한

것이맨바닥, 잔디보다잡초가더많은한데였다. 그걸깨닫자마자

반사적으로몸을일으켰다. 머리가약간어지러웠지만, 온몸을더

듬어봐도크게이상이있는것같지는않았다.

따뜻한날씨였다. 구름이약간끼긴했지만하늘은선명한파란

색이었고, 이른오후쯤인듯했다. 4월치고는너무나따뜻하군하는

생각을잠깐했다. 사방이참조용했다. 적군비행기는한대도안

보였다. 대포소리도들리지않았고주변에폭발음도없었으며방

공사이렌도울리지않았다. 여긴마치전쟁이라곤없는세상같군.

길건너에집이한채보였다. 어떤놈이그랬는지그집담벼락

에군데군데낙서가되어있었다. 순간화가치밀어올라되니츠●

67

● 독일의해군총사령관으로유보트함대창설자. 히틀러는그를후계자로지명할정도로신임했고실제로히틀러사후며칠간총통직을수행했으나연합군의무조건항복요구를받아들였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7 JM

Page 1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를불러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내가여기있으니그도근방어딘

가에있겠지. 하지만주변을아무리둘러봐도개미새끼한마리보

이지않는다. 이곳은아무도관리하지않는공터인것같다. 내제

국에이렇게버려진곳이있다니, 이걸당장…. 그러고보니내가

왜여기에있는거지. 독일제국총통관저도아니고지하벙커도아

닌이곳에말이다.

평상시에내가이렇게하늘이보이는땅바닥에서, 벽조차둘러

쳐지지않은곳에서자는일은없다. 뭔가이상하다. 간밤에내가

뭘했지? 과음같은단어는떠올릴필요도없다. 난술을입에도안

대는사람이다. 기억나는건, 에바와소파위깃털방석에앉아있

었다는거다. 국정에관련된일은잠시놔두기로하고그냥편안하

게앉아있었지. 우린특별한일정없이쉬고있었다. 식사하러가

거나영화를보러갈생각도없었다. 하긴독일제국의수도베를린

에서유흥시설은내명령에따라이미정리된지오래다. 며칠후

스탈린이방문할예정이라했는데, 그는아마자기네나라에서늘

하듯이여기서도영화관을찾겠지. 하지만그래봤자소용없다는

얘기다. 어쨌든, 우린소파에앉아이야기를나눴다. 나와에바둘

이서말이다. 그러다가에바에게내옛날권총을보여줬다. 그다음

어떻게됐는지는떠오르지않는다. 두통때문에그렇기도했다.

암만해봐도기억이되살아나지않자, 현실적인문제에집중하

기로했다. 그동안살면서나는관찰하고판단하는법을익혔다. 때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8 JM

Page 1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론학자들이사소하게생각하거나무시하는아주미미한일까지도

알아차리는데도가텄다. 수년간냉혹한규율을경험한나다. 위기

상황이되면냉혈한이되고생각을더많이하고더예리해진다. 일

을할땐한치의오차도허용하지않는다. 철저하면서도감정이없

는기계처럼.

지금내가가진정보를체계적으로요약해봤다. 나는홀로여기

에있다. 내옆엔쓰레기가있고무성한잡초위로지푸라기가날린

다. 여기저기에덤불이있고데이지와민들레도피어있다. 나무위

에새한마리가날아와앉더니지저귀기시작했다. 그저기분좋은

소리일뿐이라고보통사람들은생각하겠지만, 아무리작은정보

라도허투루할수없는이런불확실한상황에선그것조차어떤맹

수보다더큰존재감으로다가왔다. 고개를돌려보니뒤쪽으로웅

덩이가있는데, 그옆에내모자가떨어져있었다. 그렇게내이성

은쉼없이일을했고, 혼란스러운순간에도일을멈추지않았다.

다시몸을움직여보았다. 다리와양손,손가락도움직여보았다.

내몸어딘가에부상을입은곳은없어보였다. 두통이있는것만

제외하면건강상태는완벽했고심지어는손떨림증상도이제거

의없어진것같았다. 내몸을내려다보았다. 제복, 정확히군복차

림이었다. 좀지저분하긴했지만못봐줄정도로심하진않았다. 흙

투성이까지는아니었으니까. 옷에는과자인지빵인지모르겠지만

부스러기가묻어있었다. 옷에서휘발유냄새같은게심하게났다.

89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9 JM

Page 1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에바가 드라이클리닝 세제를 너무 많이 쏟아부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여전히에바는어디있는지알수가없고, 참모중누구도

나타나지않았다.

그때무슨소리가났다. 그렇게먼곳은아닌듯하다. 소란스러운

소리가점점가까워진다. 남자아이몇이시야에나타났다. 하나가축

구공을발로차고있는걸로보아공터에서축구를하려는것같다.

그들중히틀러소년단복장을갖춘아이는한명도보이지않았다.

열댓살쯤됐을까? 시민군이라기엔너무어리니아마도청년단이리

라.● 복무중이어야할시간에축구라? 아마적군이물러나잠시쉬

기로했나보다. 난군복에묻은부스러기를툭툭털며일어났다.

그때나를향해외치는소리가들렸다.

“아저씨! 거기공좀차주세요!”

“우와, 저아저씨뭐야?무슨코스프레같은거하나본데?”

세명의나치청년단원이축구를멈추고존경심가득한눈빛으

로내게다가왔다. 당연한일이다.독일제국의총통이갑자기자기

들앞에나타났으니말이다. 젊은이들, 이제곧성인이될이들에겐

이런일이인생에엄청난변화를가져다주리라. 젊은이는국가의

그가돌아왔다

● 제2차세계대전후반나치조직에는청소년조직역시체계를갖추고있었다. 10~14세의소년은소년단가입이의무화되었고, 14~18세는청년단이되었으며18세이상은군에입대했다. 시민군은정규군대의기준에미달하는성년이나청년으로조직된인민군을가리킨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0 JM

Page 1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미래지!

아이들이내쪽으로우르르몰려왔다. 녀석들은날둘러싸더니

내복장을유심히관찰하기시작했다. 그중제일덩치가큰아이가

한발더다가오며말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나치경례도없이나한테말을걸다니, 나도몰래인상이찌푸려

졌다. 이건상상도할수없는일이다. 아하, 그렇지. 격식조차차리

지못할정도로경황이없다는얘기겠지. 아마보통때라면이런실

수를하지는않을거야.

난 몸을 꼿꼿이 세웠지만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지라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군복을똑바로펴고급한대로손으로툭툭때려옷

에묻은부스러기를다털어냈다. 그런다음엔헛기침을한번하

고, 대장처럼보이는그아이에게물었다.

“보어만은어디있나?”

“그사람이누군데요?”

이해할수없었다.

“보어만! 마틴보어만말이다!”

“그런사람모르는데요.”

“세상에이런일이….”

“어떻게생겼는데요?”

“제국의총통비서를모른단말이야? 제군들, 지금무슨생각을

1011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1 JM

Page 1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하는건가!”

나의호통에도아이들은덤덤하기만하다. 보통같으면눈도제

대로못마주치고벌벌떨텐데. 아니지, 애초에이런상황이일어

나질않았겠지.

어딘지모르게이곳은현실성이없다. 마치내가총통이아닌다

른세상에와있는것같다. 아무래도빨리총통관저로가봐야겠

다. 우선길부터찾아야한다. 내가지금서있는곳은아무특징이

없는땅이라시내어디쯤인지알길이없다. 일단도로를찾아야겠

다. 여전히총성은들려오지않으니적군이상당히먼곳까지퇴각

한모양이군. 큰길에나가면행인들도있을테고오가는마차라도

불러세워탈수있겠지.

아이들은다시축구를하려는것같았다. 방향을돌려아까그

자리로뛰어간다. 유니폼에한아이의이름이적혀있었다.

“아디다스단원! 큰길은어느쪽이지?”

그런데정작그녀석은뒤도돌아보지않았고, 다른아이하나가

공터모서리쪽을가리켰다. 그녀석도정중하게그렇게한것은아

니고, 뛰어가면서대충가리키는둥마는둥했을뿐이다. 나는분

통이터졌다. 1933년부터이나라를이끌어왔지만군대가이렇게

개판인적은한번도없었다. 내가누군지도못알아본다면모스크

바로가는승리의길은어떻게찾을거냔말이다. 정말이지한심하

기이를데없다. 이아이들에대해서는보어만한테명령을내려강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2 JM

Page 1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력히조치하라고해야겠다. 총통인내가일일이이런조무래기들

의군기까지왈가왈부하는건격에맞지도않고말이다.

웅덩이옆의모자를집어들고공터모퉁이를향했다. 공터가끝

나는곳에이르자높은벽사이로좁은통로가나왔다. 고양이한

마리가소리도없이달려와내옆을휙지나갔다. 화려한얼룩무늬

털을가진고양이였지만주인이없는지돌보지않은티가났다. 몇

걸음더가니도로가나왔다. 그런데너무나도이상한풍경이라눈

이휘둥그래졌다.

한낮인데도거리는휘황찬란한불빛과깜빡거리는간판들로가

득차있었다. 온갖색깔의불빛이돌진해왔고나는엄폐물도없이

집중포화를당하는기분이었다. 어쩔줄모른채잠시서있었는데,

다행히별다른일은일어나지않았다.

내기억에시내의마지막모습은먼지가자욱하고어디든회색

빛뿐이었다. 어떤도시든마찬가지로폭격의흔적이그대로남아

있는폐허더미였다. 그런데지금내앞에펼쳐진모습에서는그비

슷한자국조차찾을수없다. 말짱한건물들이줄을지어서있고

도로도말끔했다. 더욱이도로에는수없이많은, 정말셀수도없는

자동차들이꼬리를물고오가고있었다. 아니, 하룻밤새에어떻게

이런일이생길수있지? 마치몇십년이지났고, 자동차기술을발

전시키는데만온나라가매달린듯한모습이었다. 자동차들은작

지만화려해지고소음도크지않았으며, 덜덜거리지도않고매끄

1213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3 JM

Page 1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러운도로를부드럽게달려갔다.

집들도깨끗하게페인트칠이되어있었다. 색상이다양해서어

렸을때가끔보았던사탕통생각이났다. 갑자기좀어지러웠다.

도로건너편에낡은벤치가있었다. 낡은무엇인가가하나라도있

다는점때문에마음이조금놓였다. 잠시거기앉아서생각을정리

해야겠다.

막발걸음을내딛는데갑자기끼익하는소리가나더니누군가

다짜고짜소리를질렀다.

“이양반아! 눈이멀었어?”

그게나한테하는소리라는걸알기까지는시간이조금걸렸다.

고개를돌리니내바로뒤에서한남자가나한테삿대질을하고있

었다. 급정거를한듯자전거를붙들고엉거주춤선채였다. 익숙한

것이또하나나타났다. 이남자가날바라보는분노에찬시선, 그

게날안심시켜주었다. 아무렴, 지금은전쟁중아닌가. 남자는폭

격탓인지심하게망가져서구멍이숭숭난헬멧을쓰고있었다.

“아니, 찻길을그렇게막지나가면어떡합니까?”

“나는단지…, 저기의자에가서앉으려는것뿐이오.”

“앉을게아니라누워야할것같은데요. 그것도영영!”

남자는그렇게소리를치고는가던길을가버렸다. 피신하듯벤

치에몸을부린나는식은땀이나는것을느꼈다. 그젊은남자도

나를알아보지못했다! 물론나치경례를요구할틈도없었다. 지금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4 JM

Page 1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모종의훈련이진행되고있는걸까. 하지만내가알지못하는훈련

이란게어떻게있을수있느냐말이다. 중년남자하나가내앞을

지나갔다. 그는나를보더니고개를절레절레흔들기까지했다. 꽤

덩치가큰부인이미래의세계에서튀어나온듯한유모차를끌고

지나간다. 나를보고도별반응이없다.

더는참을수없었던나는벌떡일어나그여자에게다가갔다.

“부인, 지금당장총통관저로가야하는데가장빠른길이어디

요?”

“슈테판랍씬가요?”

“뭐라고요?”

“아니면케르켈링씨? 가만있자, 코미디가아니면길거리토크

쇼를촬영하시는중인가요?”

이무슨헛소리란말인가. 난여자의팔을움켜잡고외쳤다.

“정신차리시오, 부인! 독일국민으로서의의무를잊었소? 지금

은전시상황이란말이오! 러시아군이여기까지쳐들어온다면당

신에게무슨짓을할지생각해봤소? 또당신딸한테는어떻고! ‘오

호라, 한창피어오르는독일아가씨인걸’이러면서음흉한시선을

던지겠지. 독일국민의존속과순수한독일인의피, 인류의생존이

지금위험에처했소. 당신이지금독일제국의총통에게관저로가

는길을가르쳐주지않기때문에말이지!”

놀라서퍼뜩정신을차릴거라고기대했지만, 놀란것은도리어

1415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5 JM

Page 1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나였다. 그멍청이같은여자는망연자실한눈빛으로날바라보면

서자기팔을휙뺐다. 그러더니머리위에서집게손가락으로원을

그리는동작을반복했다. 이건또무슨뜻인가. 여자는그렇게원을

몇바퀴그리더니유모차를끌고가버렸다.

뭔가잘못되었다. 완전히통제불능상태다. 이곳에서나를군사

령관으로, 제국의최고지도자로, 총통으로대우하는사람은아무

도없다. 축구하던아이들도, 자전거타고가던남자도, 중년남자

도,유모차를끌고가던부인도그랬다. 이건절대우연이아니다.

물론어떤훈련프로그램도아니고말이다. 다시질서를잡으려면

안보기관을총동원해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난벤치에앉은채지금의이충격적인상황에대해다시한번

정리를해보았다. 난수십년을독일, 그중에서도이곳베를린에서

살았다. 그런데도지금모든게낯설게느껴진다. 여기가독일도아

니고베를린도아닌걸까. 그럴리가없다.전쟁중에내가한가하

게다른나라를여행하고있지는않을테니까. 그렇다면내가상당

히오랫동안실신해있었던걸까. 하나부터열까지알수없는일들

뿐이다.

그때벤치밑에뭔가가있는게눈에띄었다. 신문과비슷한데

좀더화려하고, 종이도질이좋아보였다. 집어들고맨앞장을보

니〈미디어마켓〉이라고쓰여있다. 이런인쇄물을내가허가해준

적이있던가? 아무튼인쇄물에대해서도한바탕정비를해야겠다.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6 JM

Page 1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안에있는내용은아무짝에도쓸모없는것들이었다. 분노가점

점더솟구쳤다. 대체어떤인간이이따위내용을퍼뜨리느라국민

의귀한자원을펑펑낭비하느냔말이다. 어서집무실로달려가독

일제국국민으로서의정신무장을대대적으로실시해야만하겠다.

지금나한테가장필요한것은믿을만한뉴스다. 우리당기관

지인〈민족의관찰자〉나〈돌격〉이있다면금방알수있을텐데….

마침멀지않은곳에신문가판대가있었다. 오후내내나는무방비

상태로아무런전략적결정도내리지못한채허둥댔다. 어서신문

을읽고상황을파악한다음, 최대한서둘러서관저로가야한다.

제국곳곳이무질서로가득차있는데다, 사령부는내가없어졌다

는사실때문에비상이걸렸겠지. 난신문가판대를향해걸어갔다.

그곳역시내가알던분위기는아니었다. 전투속보를전하는긴

장감같은건눈씻고봐도찾을수없었다. 가판대를둘러싸고수

없이많은알록달록한인쇄물이진열돼있는데, 터키어로된것도

네다섯가지나있었다. 이곳엔분명수많은터키사람이왕래하는

듯하다. 흠…. 아주중요한문제다. 우리가같은편으로전쟁에참

가해달라고 굉장히 공을 들였음에도 터키는 끝내 중립으로 남지

않았던가. 내가부재중인기간에누군가가, 아마도되니츠가터키

를끌어들이는데성공했나보다. 독일과터키가동맹을맺었다는

것은역시나전쟁에서독일이승리했음을보여주는증거다. 이제

제국의전쟁결과에대해서는한시름놓았다. 오후내내그게제일

1617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7 JM

Page 2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큰걱정이었다. 그다음일은, 내가실신한채로얼마나오래있었

는지를알아내야한다.

〈민족의관찰자〉는보이지않았다. 아마도다팔려서없는거겠

지. 그 옆을보니〈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이라는신문이

있었다. 처음보는신문이긴하지만, 다른신문들보다는그래도좀

낯이익은듯했다. 신문타이틀서체가내게아주친숙했다. 이것저

것보느라시간낭비할필요없이난제일먼저날짜부터찾았다.

거기엔 8월 30일이라적혀있었다. 8월이라고? 그럼내가넉달

이나여기누워있었단말인가?

그런데 더 이상한 게 있었다. 연도가 2011년이다. 1945년에서

자그마치 66년이나지났다는거다!

난눈을비비고다시한번봤다. 이건도저히있을수없는일이

다. 급히다른신문도들춰봤다. 〈베를리너차이퉁〉이란신문, 분명

히독일어로된신문이었다.

2011년.

신문을확펼쳐서다음장을보고, 그다음장도확인해보았다.

2011년.

숫자가춤을추기시작했다. 내눈앞에서왼쪽으로오른쪽으로,

그러더니빙글빙글돌기시작했다. 오늘자가맞기는한지기사를

읽어보려고하는데신문이내손에서스르르빠져나갔다. 그러고

는눈앞이깜깜해졌다.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8 JM

Page 2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02

정신을차리고보니, 난또바닥에누워있었다. 이번엔홀로버려

진것같진않다. 누군가내이마에젖은수건을얹어놓았다.

“좀어떠십니까?”

마흔다섯살정도, 어쩌면쉰이좀넘어보이는남자가상체를

기울여기색을살피면서물었다. 체크무늬남방에노동자들이입

는것같은허름한바지를입고있었다. 나는다짜고짜물었다.

“오늘이며칠이오?”

“음, 8월 29일이요.아니, 잠시만요, 30일이네요.”

“몇년도?”긴장탓인지목소리가갈라져나왔다. 자리에서일어

나앉자젖은물수건이무릎위로툭떨어졌다.

남자가이마를찡그리며날쳐다봤다.

“그야 2011년이지요.”남자가말하며내군복을뚫어지라바라

봤다. “그럼몇년이라고생각하셨나요? 1945년이요?”

난적당한대답을찾으려고심하면서자리에서몸을일으켰다.

“더누워계시는게좋겠습니다.”남자가말했다. “아니면앉아

계시든가요. 안에의자가있어요.”

1819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19 JM

Page 2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처음엔이렇게쉴시간이없다고말하려했는데내다리가여전

히심하게떨리고있음을알았다. 남자를따라안으로들어갔다. 밖

에서볼때는신문만파는줄알았는데길거리매점인것같다. 이

것저것생필품이상당히있었다. 나한테빈의자를가리키더니남

자는의자에앉아서날쳐다봤다. 가끔그는창문쪽을보곤했는데

네모난구멍이있는걸로보아손님들이오나보는듯했다.

“물한모금드릴까요? 초콜릿을좀드시겠어요? 아니면뮈슬리

바?”

난멍한얼굴로고개를끄덕였다. 남자가일어나탄산수한병을

가져와서는컵에따라내앞에놓았다. 선반에서네모난막대기같

은것도꺼냈는데, 군인들이먹는비상식량처럼생겼다. 포장이알

록달록하고화려하다는점이좀달랐다. 남자가매끄러운포장을

벗겨알맹이를꺼내서는내손위에올려놨다. 곡물을기계로납작

하게눌러만든것같은모양이었다. 식량부족이아직도해결되지

않았나보다.

“아침을좀더든든히드시는게좋을텐데요.”남자가말했다.

“이주변에서촬영하시나봐요?”

“촬영…?”

“다큐멘터리아니면영화겠지요. 이동네에서는끊임없이뭔가

를찍잖아요.”

“영화…?”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0 JM

Page 2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세상에, 선생님지금제정신이아니신가보군요.”남자가웃으

며 손으로 내 위아래를 가리켰다. “아니면 평소에도 그렇게 하고

다니십니까?”

난고개를숙여내차림새를살펴봤다. 아무리봐도뭐가이상한

지알길이없었다. 먼지가좀묻고휘발유냄새가나긴하지만대

체영문을모를일이었다.

“나는그렇소만.”말해놓고보니내얼굴에상처가있어서그러

는가싶어그에게물었다. “혹시슈피겔●있습니까?”

“그럼요.”남자가말하고는내뒤쪽을가리켰다. “저기요. 시사

주간지들있는곳, 〈포쿠스〉옆에있습니다.”

남자가가리키는곳을보니오렌지색테를두른슈피겔(거울)이

있었고거기에커다란글씨로‘슈피겔’이라고쓰여있었다. 마치그

렇게크게쓰지않으면사람들이못알아보기라도할것처럼말이다.

난일어나서거울을들여다봤다. 거울에비친내모습은완벽해

보였고군복도막다림질을한듯반듯했다. 아마도매점안조명

효과인것같았다.

“표지사진 찍는 중이시군요?”남자가 물었다. “그 주간지에서

요즘 3주에한번은히틀러이야기를다루니까요. 제생각에선생

님은이제더노력하실필요도없을것같습니다. 지금그대로도아

2021

● 거울. 독일을대표하는시사주간지이름이기도하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1 JM

Page 2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주완벽해보입니다.”

“고맙소.”난엉겁결에이렇게말했다.

“아니, 정말입니다.”남자가말했다. “저도〈몰락:히틀러와제3

제국의종말〉이라는영화봤습니다. 두번봤죠. 브루노간츠가히

틀러역을했는데연기를잘했지요. 그렇지만선생님근처에도못

가겠는걸요.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랄까…. 아무튼 선생님이

했으면정말좋았을걸그랬어요.”

무슨말인지잘이해가안돼서내가물었다. “뭐가좋았겠다는

말이오?”

“아, 선생님이그역에더어울린단말이죠.”

그러면서 남자는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팔을 쭉 뻗어 올렸다.

아, 66년이란시간이지났음에도나치경례가여전히남아있는것

이다! 여하튼내정치적영향이그동안에완전히사라져버린건아

니라는신호였다.

나도힘차게팔을뻗어경례에답하고는자못흥분되어말했다.

“당신은오늘총통을알아본최초의사람이오!”

남자는숨이넘어갈듯웃어댔다. “세상에, 어쩜저렇게자연스

러운지.”

도대체뭐가우습다는건가. 조금전나치경례까지올려붙였던

남자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내 행동을 코미디로 만들어버리다

니, 불쾌하기도하고도무지이해가안됐다.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2 JM

Page 2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러다서서히내가처한상황이조금씩인식되었다. 만일이게

꿈이아니라면, 아니다, 꿈이라기엔너무오랜시간이다. 내가지금

있는이곳은 2011년이란말이다. 그러니까이곳은완전히새로운

세계이고, 이세계에서나는신기한인물로묘사되고있다. 이론적

으로보면나는 122살이어야한다. 아니지, 인간이그렇게오래살

수는없으니까나는이미오래전에죽은사람이다. 풀수없는수수

께끼에골치가아프기시작했다.

“다른연기도하십니까?”남자가또말을걸었다. “어떤작품이

진행중이신가요?”

“그런거없소.”난무뚝뚝하게대답했다.

“아, 물론미리공개하긴곤란하시겠죠.”남자는이렇게말하면

서사정을다안다는표정을지었다. 그러더니목소리를낮추며의

미심장하게눈을깜빡거렸다.“그래도조금만얘기해주세요. 프로

그램●이있으시죠?”

“물론이오.”내가대답했다. “1920년부터나오고있소! 내프로

그램인 25개조강령●●에대해독일민족공동체일원으로서당신

도알지않소?”

2223

● 방송프로그램. 정당의정책이란뜻도있다.●● 나치의정치강령. 히틀러는 1920년뮌헨의비어홀에서 2,000명의독일인을모아독일노동당

의창당선언을하고25개조의당강령을발표했다. 당명은후에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당(일명나치당)으로변경되었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3 JM

Page 2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는고개를끄덕였다.

“예예, 그건 뭐 그렇다 치고…. 선생님, 혹시 팸플릿 있으신가

요? 아니면명함이라도?”

“미안하지만없소.”슬픈얼굴로내가말했다. “명함은작전통제

실본부에있소.”

나는갑자기기가죽었다. 아주중요한사실이생각났기때문이

다. 이대로라면내가다시나타난다고한들총통관저에서도, 지하

벙커에서도현재쉰여섯살인총통을믿어주지는않을것이다. 지

금상황을분석해서대책을세울시간을벌어야했다.

우선거주할곳이필요했다. 하지만내수중에는동전한푼도

없다. 스무살시절불안정한수입탓에싼하숙집을찾아전전하던

때의기억이떠올랐다. 물론꼭필요한시간이었고, 이세상의어떤

대학에서도배울수없는것들을깨우친시간이었다. 워낙궁핍했

기에당시에는무척힘들었지만말이다. 그중에서도가장힘들었

던몇달간의생활이내머리를스쳤다. 무시당하고멸시당하면서

매번다음끼니를걱정하며살아야했다.

생각에골몰하는동안무의식중에손에쥔막대곡물을입으로

가져갔다. 아까 가판대 주인이 건네준 것을 지금껏 잊고 있었다.

굉장히단맛이났다. 베어물고남은것을눈앞에대고유심히관

찰했다.

“저도그거좋아합니다.”그가말했다. “하나더드시겠어요?”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4 JM

Page 2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난고개를저었다. 지금내겐더큰문제가있지않은가. 가장단

순하고근본적인, 거주지문제말이다. 살집이필요하고, 지금내

가어떤상황에처한것인지분명히밝혀질때까지는생활비도있

어야한다. 일자리를구해야한다. 적어도내가다시정상적으로정

부업무를맡을수있을지, 아니면어떻게해야다시일을할수있

을지알때까지는임시로라도일자리가있어야한다. 내재능을살

려화가로일하든지, 당장급하면막노동이라도해야겠지. 독일국

민에대해나만큼방대한지식을갖춘사람은없다고생각하지만,

현재상황이라면나혼자만의착각일지도모른다. 현재에대해서

는아는게하나도없다. 대체독일제국의아군이누구이고누구를

향해총을겨눠야하는지조차모른다. 상황이이렇다면건축현장

이나도로건설현장에서일할만큼의체력이라도회복해야한다.

“이제농담은그쯤하고얘기좀해봅시다.”남자의목소리가귓

가에울렸다. “아직초짜이신가요? 아니면뭔가역할을맡은적이

있으신가요?”

이말은정말내심기를건드렸다. “난초짜따위가아니오!”강

한 어조로 남자에게 말했다. “더욱이 어설프게 남의 흉내나 내는

사람이아니란말이오.”

“아니, 그런뜻이아닙니다.”남자가달래듯말했다. 그의말투

에는마음속진심을전하려는노력이담겨있었다.

“배우가아니라면무슨일을하시는지여쭤보려한겁니다.”

2425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5 JM

Page 2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내직업이뭐냐고? 내가누군지는아까말했지않은가. 그런데

그말을듣고바닥을구를정도로웃지않았느냐말이다. 휴, 정말

이지나로서도난감한일이다.

“난…, 난 지금은그냥…, 은퇴했소.”조심스럽게내처지를돌

려서말했다.

“제얘기를오해는하지마십시오.”남자가열성적으로말했다.

“이런분이아직도캐스팅이안되다니, 믿기어려워서하는말이

니까요. 아, 정말믿을수가없어요! 여기베를린이란곳은에이전

시나 영화사, TV 방송국 등 수많은 제작진이 바글거리는 곳이에

요. 이사람들은먹이에굶주린사자처럼항상새로운얼굴을찾고

정보를구하러돌아다닌다고요. 그 사람들이어떻게선생님을발

견하지못했나, 그게궁금할따름이에요. 그런데아직명함도없으

시다니…. 선생님한테연락하려면어디로하면될까요? 전화번호

는있으신거죠? 아니면이메일주소라도?”

“음….”

“어디사세요?”

그는결국내아픈상처를건드리고말았다. 한편으로, 그에게는

내형편을솔직하게털어놔도될것같았다. 달리뾰족한수가있는

것도아니니난모험을하기로했다.

“흠, 지금집문제는좀…. 어떻게말해야할지모르겠지만…, 지

금은없소.”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6 JM

Page 2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아, 그러세요. 그럼애인집에서살고계시는건가요?”

순간에바를생각했다. 에바는대체어디에있을까. 나처럼살아

있기는한걸까?

“아니오.”난의기소침해져서작은소리로중얼거렸다. “애인은

없소.지금은.”

“그러시군요.”남자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된

게그리오래된일은아닌가보군요.”

“그렇소.”내가대답했다. “지금여기서벌어지고있는모든일

이…, 당혹스럽소.”

“전에는괜찮았는데사정이나빠지신거죠?”

“그게딱맞는말이오.”난고개를끄덕였다. “괘씸하게도슈타

이너군집단●이베를린을포기했기때문이오.”

남자가혼란스러운듯잠시내얼굴을바라봤다. “아, 저는선생

님이애인과헤어진일에대해이야기한건데요. 누구책임이었든

간에.”

“나도모르겠소.”내대답이었다. “맨마지막은처칠때문인것

같은데….”

남자가웃었다. 그러더니한참동안날뚫어지게바라봤다.

2627

● 1945년창설된군부대로베를린수비를담당했다. 펠릭스마틴슈타이너가사령관으로임명되었는데, 소련이베를린을포위할때히틀러가베를린수복명령을내렸지만불복했다. 사실상그럴만한전력도되지않았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7 JM

Page 3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선생님말씀하시는게참맘에듭니다. 잘들어보세요.제가제

안을하겠습니다.”

“제안이라고했소?”

“어딘가꼭가셔야할곳이있는지는잘모르겠지만, 특별히그

런게없다면하루이틀이곳에서주무시면어떠신지….”

“여기서말이오?”매점안을둘러보며내가물었다.

“아니면세계갑부들이애용한다는아들론호텔에서라도묵으시

게요?”

“아들론호텔이라…. 폭격으로한쪽이좀부서졌을텐데수리를

마쳤나보군요.”

“말하자면그렇다는겁니다. 선생님정도의능력으로캐스팅이

안된다면말이안되지요. 관계자들이왔을때어디숨어계시면

안됩니다.”

“난 숨지 않소!”항의하듯 말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인데

어딜숨겠소!”

“네네, 맞습니다.”남자가손짓하며말했다. “일단은, 하루이틀

여기서주무시는겁니다. 그러면제가여기오는손님들중도움이

될만한사람을찾아보겠습니다. 인기있는영화잡지신간이어제

도착했으니, 그쪽일하는사람들이사러올겁니다. 어쩌면그중에

는선생님같은인물을찾고있는사람도있을지모르죠. 솔직히말

해서입고계신제복하나만으로도그인물에완벽하게어울리니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8 JM

Page 3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뭔가해내실수있을겁니다.”

“그렇다면, 나보고여기서지내란말이오?”

“우선은 그렇게 하자는 겁니다. 며칠만 여기 계시다가, 누군가

영화관련된사람이오면제가선생님을소개해드린다는거예요.

아무도 안 오면 그냥 웃어넘길 추억거리가 생기는 거고요. 아니

면…, 묵으실만한곳이있나요?”

“아니, 없소.”한숨이나왔다. “지하벙커빼고는….”

남자가웃었다. 그러다웃음을멈췄다.

“설마여기있는물건을다훔쳐가시지는않겠죠?”

난당황해서남자를쳐다봤다. “내가도둑놈처럼보이오?”

남자가날바라봤다. “아돌프히틀러처럼보입니다.”

“그야당연하지.”내가말했다.

2829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29 JM

Page 3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03

그뒤며칠동안힘겨운시간을보냈다. 낯설기짝이없는환경에다

온갖출판물과담배, 스낵, 음료캔이쌓인구석에불편하고비좁은

잠자리가마련됐다. 하긴그것들은큰문제가아니었다. 밤마다나

는그다지깨끗하지않은소파에누워내가죽었다는시점이후로

현재까지 66년간의사건들을곱씹어야했다. 혹시라도남의눈에

이상하게보이는행동을하지않으려고조심하면서말이다. 자연

과학적으로설명하기힘든, 이수수께끼같은상황에대해답을얻

어내야하는기이한처지였다. 그렇지만늘실용적으로사고하는

내이성은현재여건에적응할방법을찾았다.

고통을한탄하는대신새로운사실을받아들이면서상황을관망

했으며, 사건에대해정확히예측하고행동하기위해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 60여년간독일제국지역에주둔한소련군의수가현저

하게줄어들었다는사실을알게됐다. 그것과관련해서, 어쩌면내

가음모에휘말린건아닌가하는생각이들기도했다. 러시아가나

를납치해서내가미래에있다고느끼도록환경을조작한건아닐

까하는의심이었다. 내가가진가치있는비밀을꾀어내려고이런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0 JM

Page 3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가상세계를만들어놓을수도있지않겠는가. 내의지가너무도굳

건하므로그냥은힘들것같아서말이다. 하지만그가정도얼마안

가포기했다. 암만해도그건아닌듯했다.

나는여기서무엇을해야할까. 내겐군대도없고, 사령부도없

고, 무장친위대도없다. 당분간은도서관같은데가는것조차위

험할지도모른다. 그래서여러개의신문과잡지를훑어보고, 행인

들의발언이나짤막한대화내용에도귀을기울여봤다. 고맙게도,

가판대주인이내가밤에혼자있을때라디오를듣도록해주었다.

라디오에대한기술이그동안엄청나게발전했음을새삼느꼈다.

하지만내용면에서는충격적일만큼한심했다. 라디오를켜자참

을수없을정도로시끄러운소리가났고건질거라곤눈곱만큼도

없는허튼소리만나왔다. 우리독일제국의발전된기술에흐뭇해

서큰기대를가졌건만, 급기야전원을꺼버리고말았다. 화가나서

15분가량을미동도하지않고앉아있었다. 아, 독일이어디로가

고있는것이냐.

어쨌든 지금까지 파악한 바를 정리하자면, 불완전하긴 하지만

결과는다음과같다.

1 터키는분명우리를지원하러오지않았다.

2 바르바로사작전이초반기습에성공했지만소련군의반격으로

3031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1 JM

Page 3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모스크바에서밀려나결국실패로돌아갔다는점은나도잘안

다. 그후반전은없었고, 독일은전쟁에서졌다.

3 나자신은죽은것으로알려졌다. 알아본바로는내가자살했다

고되어있다. 물론나도군부내에서신뢰의위기를맞았을때

자살의가능성을생각해본적은있었다. 하지만내가마지막순

간에어떻게했는지는여전히기억나지않는다.

내가죽은게확실한가?

그런데사실신문기사라는게어떤건지다들알고있지않은

가. 눈먼사람이하는얘기를귀가어두운사람이받아적고, 그

걸멍청이가수정해내보내는게신문기사아닌가. 더욱이다른

신문사에서는그내용을그대로베낀다음몇마디무의미한거

짓말을보탠다. 그렇게해서‘그럴싸하게’만들어진신문을대

중은뭐라도되는양꼼꼼히들여다본다.

난이일을그냥놔두기로했다. 마땅히방법도없다. 내가나서

서‘여기살아있소’할것인가어쩔것인가말이다.

4 그런데내운명에대한건그렇다치고, 다른분야에대한실상

은두고볼수가없을정도다. 군대, 역사, 정치, 일반적인주제

를비롯해서경제분야까지언론은오판과무지를넘어악의적

인비방으로가득차있다. 생각이있는사람이라면이렇게많은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2 JM

Page 3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양의머저리같은인쇄물로아마미쳐버릴것이다. 그러니이런

건무시하는게상책이다.

5 언론은국가의통제에서벗어나자퇴화하고타락하고정신적으

로무뎌져서, 환상속세계의모습을현실인양써댄다. 정말이

지환상이아니라현실을이야기한신문기사를요며칠나는한

개도보지못했다.

6 독일제국은일명독일연방공화국이되었고나라를다스리는사

람은독일연방공화국총리란직함을맡은여자다. 물론그밑에

는다른남자들이직책을맡고있긴하다.

7 현재도정당은존재하고, 정당이있기에반드시그와관련된비

생산적인다툼도있다. 다만나치당은더는존재하지않는다.

8 〈민족의관찰자〉는아무데서나살수있는게아니었다. 이곳

주인은진보적성향이있는것같은데도그의가판대에는〈민족

의관찰자〉가한부도없다. 그뿐아니라나치당을표방하는출

판물은단한가지도전시되어있지않다.

9 독일영토는눈에띄게줄어든것같다. 주변국가들은과거와비

3233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3 JM

Page 3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슷해보인다. 그런데폴란드는영토가줄어들지않았고심지어는

구독일제국영토까지도자기들영토로만들었다! 참으로기가막

힐노릇이지만그런얘길어디다할수도없다. 처음이사실을

알았을때나는한밤중깜깜한허공에대고한탄했다. “내가그렇

게애를썼는데모든게수포로돌아가다니! 전쟁터에흘린우리

독일국민의피와땀이이렇게배반당하다고말다니!”

10 독일제국의화폐였던마르크는이제통용되지않는다. 새화폐

이름이유로라나뭐라나…. 전유럽에서통용되는단일화폐를

만들겠다는구상은사실내가항상염두에두고있던과제였는

데, 다른사람이이일을진행했나보다. 누군지는모르겠지만,

생각없는무능한사람이강자편에서만들었겠지.

11 부분적으로평화가찾아온것같지만국방군은예나지금이나

존재한다. 예전의 국방군은 독일연방군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누구나부러워하는군대였다. 그런군대를만들기위해내가얼

마나고민했었는지사람들은상상이나할수있을까? 당시엔전

방에서 40만이넘는군인이피를흘렸다. 1945년에지금처럼강

하고다양한장비를갖춘군대가있었더라면아이젠하워의군

대를바다로처넣었을수있었을테고, 스탈린의무리도몇주

안에꼬리를내리게했을것이다.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4 JM

Page 3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결론은지금은익숙해져야하는상황이라는것이다. 다시말해,

불편하긴하지만최소한긴급한위험이도사리는상황은아니라는

얘기다.

이렇게논리적으로정리를하느라거의새벽녘에잠이들곤했

다. 그러므로몸이에너지를회복하려면오전까지는좀느긋하게

쉬어야한다. 하지만가판대주인은아주이른아침에가게문을여

는생활을한다. 그래서주인이도착하는시간부터는나도더는누

워있을수없었다. 이남자는게다가아침부터엄청난대화욕구가

있는사람이었다.

첫날아침, 남자는매점안으로박력있게들어오며소리쳤다.

“자, 총통각하, 밤새잘주무셨습니까?”

그는내대답을들을생각도않고문과창을모두열어젖혔다.

갑자기눈부신빛이쏟아져들어왔다. 내입에서신음소리가절로

나왔고, 눈이부셔눈을꽉감으면서내상황을생각해내려고애썼

다. 가장실감나는건내가있는곳이지하벙커는아니라는사실이

다. 그렇지않다면이런얼간이는당장총으로쏘라고명령을내렸

을지도모른다. 나는계속화가난상태로있기보다는, 이바보가

아침부터귀찮게깨우는것도다내가잘되길바라기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했다.

“자, 일어납시다!”남자가탄성을지르며말했다. “이리오세요.

저좀도와주세요!”

3435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5 JM

Page 3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러더니남자는매장안쪽으로들여다놓은이동식잡지스탠드

들을고갯짓으로가리켰다. 남자는그중하나를밖에내놓았다.

한숨이나올만큼괴로웠다. 그의청을들어주기엔너무피곤했

다. 그저께난제12군●을옮기고있었는데오늘은가판대를옮겨야

한다니. 내시선이아래쪽에있던《사냥과개》라는책에꽂혔다. 그

책은여러권이있었다. 나자신이그렇게정열적인사냥꾼은아니

었지만, 아니도리어사냥에대해서는다소비판적이었지만이순

간난잠시동경에빠져본다. 이런말도안되는희한한일상에서

벗어나개한마리를데리고자연으로뛰어들고싶다고말이다. 자

연속에서생명체와눈을맞추고세상의흐름과변화를따라가고

싶다고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내 머릿속에서 잠깐 스쳐 간 생각일

뿐, 몇분지나지않아우리두사람은장사준비를마쳤다. 남자는

접이의자두개를꺼내오더니가판대앞해가드는곳에나란히

놓았다. 내게자리를권하면서그는셔츠주머니에서담뱃갑을꺼

냈다. 그러고는톡톡두드려서몇개비를나오게한뒤나를향해

내밀었다.

“담배안피웁니다.”고개를저으며내가말했다. “그래도고맙소.”

그가돌아왔다

● 1945년4월베를린이러시아군에포위되어있는상황에서히틀러는이동중이던제12군에방향을바꿔소련군을공격하게함으로써일시적인작전성공을거뒀다. 하지만전세를바꾸지는못했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6 JM

Page 3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는한가치를집어입에물고바지주머니에서라이터를꺼내

불을붙였다. 연기를빨아들였다다시장난스럽게내뿜으며그가

말했다.

“아, 이제커피마셔야겠군요! 선생님도드시죠? 제말은, 드시

고싶으면요. 가루커피밖에없거든요.”

놀랄일은아니었다. 영국이예나지금이나항로를봉쇄했을테고

이문제에대해난충분히알고있다. 내가없는동안새로운제국의

지도부에선해결방안을찾으려고애를많이썼겠지만쉽지않았을

것이다. 그러니용감하고고통을잘참는독일국민은오래전부터

그래왔듯대용품으로견뎌야하지않았겠는가. 순간굉장히달았던,

어제의그뮈슬리바라는게생각났다. 훌륭한독일빵을대신해급

할때얼치기로만든것임에틀림없겠지. 그리고가엾은가판대주

인은자기손님앞에서미안해한다. 대용품말고는내놓을게아무

것도없기때문이다. 참가슴아픈일이다. 갑자기동정심이솟았다.

“할수없지어쩌겠소, 착한양반이구려.”난남자를달랬다. “난

커피를그리즐기는사람이아니오. 물이나한잔주면고맙게마시

겠소.”

너무이상한새로운날의첫아침을난이렇게담배냄새를풍기

는가판대주인과보냈다. 나를위해일할기회를찾아줄수있다고

믿고있는남자와말이다. 처음몇시간은단순노동자나퇴직한사

람들이많이왔다. 이사람들은짤막한몇마디로담배나조간신문

3637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7 JM

Page 4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을사갔는데, 특히〈빌트〉●라는이름의신문이인기가많았다. 내

가보기엔나이가좀많은사람이이신문을좋아하는것같았다.

글씨가다른신문에비해큼지막해서인듯했다. 누구의발상인지

몰라도아주좋은생각이다. 그순간난우리당의탁월한선전장

관괴벨스가생각났다. 이런조치라면우리가국민들로부터더열

렬한환호를받았을텐데말이다. 특히나이든사람들에게전쟁소

식을전하기에좋았을것이다. 글씨를좀더크게한다는단순한방

법으로이렇게큰효과를거둘줄누가알았겠는가?

가판대앞에있자니신경에거슬리는일들이가끔눈에띄었다.

특히젊은노동자들사이에서기분좋을때종종‘쿨하다’라거나

‘짱이야’같은소리가들리는데도대체무슨말인지이해할수가

없었다. 물론그래도나를향한표정에서는부정할수없는존경심

이드러나기는했다.

“멋지지않나요?”가판대주인이손님에게환한미소를지으며

말했다. “정말똑같아서분간을못할정도라니까요, 안그래요?”

“그러네요.”손님이말했다. 20대중반정도의노동자로보이는

남자가신문을접으며말했다. “근데저렇게해도되는건가요?”

“뭐가요?”가판대주인이물었다.

그가돌아왔다

● 1952년에창간된타블로이드판신문으로유럽에서가장잘팔리는신문으로알려졌다. 글보다사진이많은편이며논란거리나가십을많이다룬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8 JM

Page 4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아니, 제복이….”

“독일군복에무슨문제가있다고그러시오?”나는약간따지는

톤으로화를참으며말했다.

손님이웃었다. 어쩌면날달래기위해그러는것같았다.

“군복은정말멋져요. 그래도선생님은직업군인이라그러시는

지는모르지만, 공공장소에서계속군복을입고있으려면특별허

가가필요한거아닌가해서요.”

“그거좋은생각이겠군.”난비꼬듯대꾸했다.

“제말은그냥”손님이말했다. “페어파숭●때문에말씀드린건

데….”

그손님이악의가있어서그런말을한건아닌듯했다. 실제로

내제복페어파숭이최고는아니었으니까.

“맞아요, 군복이좀지저분한건사실이오.”난가볍게고개를끄

덕이며인정했다. “그런데군인의제복이지저분하다해도거짓말

을일삼는불성실한외교관나부랭이의연미복보단훨씬명예스러

운복장이오!”

“군복을입으면안될이유는뭐죠? 금지된건아니지않습니까?”

가판대주인이손님에게심드렁하게물었다. “하켄크로이츠●●도없

는데상관없죠.”

3839

●‘법적인문제’. ‘상태’라는뜻도있다.●●‘갈고리십자가’라는뜻으로나치즘의상징.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39 JM

Page 4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건또무슨말이오?”분노에찬목소리로내가말했다. “내가

어느당소속인지당신들은모르는거요?”

손님은고개를절레절레흔들며그곳을떠났다. 손님이가고나

자가판대주인이내게자리에좀앉아보시라고했다.

“저손님말이완전히틀린건아닙니다.”그가공손하게말을꺼

냈다. “손님들은희한하게쳐다봅니다. 선생님이자신의직업을소

중하게생각하신다는건저도잘압니다만, 그래도혹시다른옷을

입을생각은없으신가요?”

“아니, 그럼나보고내인생과내일, 내국민을속여야한다는

거요? 나한테그런식으로요구하면안되오.”말하면서난의자에

서벌떡일어났다. “난말이오,이제복을내몸에마지막피한방

울이남을때까지입을거란말이오.”

“매번이런걸로소동을벌여야겠습니까?”가판대주인이약간

뚱한얼굴로말했다. “그게꼭제복이어서만은아닙니다.”

“그럼또뭣때문이란말이오?”

“지독한냄새가납니다. 어디에서뭘하다오셨는지모르지만혹

시주유소에서도일을하셨나요?”

“말단사병이라도군복을바꿀수는없소. 하물며가장높은위

치에있는내가그럴수는더더욱없지. 아무옷이나걸치고전쟁의

‘전’자도모르는인간들처럼하고다니긴싫소.”

“그러시겠죠, 그래도선생님프로그램을생각해보세요!”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40 JM

Page 4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프로그램이라고?”

“선생님프로그램을사람들에게알리려는거아닌가요?”

“맞소.”

“사람들이지나가다가선생님을알고싶어서가까이갔는데지

독한냄새가난다면어떻겠어요? 선생님옆에서담배를피우면혹

시불이옮겨붙을까봐겁이나지않겠어요?”

“당신은내옆에서담배를피웠잖소.”내가대답했다. 하지만내

말은이미상당히누그러져있었다. 그의논리에동의할수밖에없

었기때문이다.

“전원래용기있는사람이라….”남자가웃었다. “자, 얼른집으

로가서다른옷을몇벌가져오시죠.”

또다시아픈문제가수면으로떠올랐다. 집문제말이다.

“내가말했지않소, 지금상황에선그게좀어렵다고말이오.”

“아…. 그래도선생님옛애인은지금일하고있을시간아닌가

요? 아니면장이라도보러나가겠죠. 마주치고싶지않다고해도

방법은있지않을까요?”

“어, 그게….”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문제가 있소. 집 말이

오….”이제정말제대로위기상황에빠졌다. 체면이말이아니다.

“여분의열쇠를안가지고계시나요?”

진심으로걱정해주는천진난만한표정을보면서이번엔나도웃

지않을수없었다. 관저에열쇠가있었는지는나도알길이없다.

4041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41 JM

Page 4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아니, 흠,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우리 관계는 어찌어찌해

서…깨져…버렸소.”

“접근금지령이라도있으신가요?”

“나도이걸대체어떻게설명해야할지알길이없소.”솔직한내

심정이었다. “그런데어쩌면그런쪽이긴하오.”

“이런, 그럼그집에갈수는없겠군요.”남자가안쓰럽다는듯이

말했다. “그럼대체무슨일을하셨습니까?”

“나도모르겠소.”난사실대로말했다. “특정시간에대한기억

이안나서….”

“선생님이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

다.”남자가생각에잠긴듯말했다.

“글쎄, 뭐….”난손으로정수리를만지작거리며모양을다듬었

다. “물론난군인이니까말이오.”

“좋습니다. 선생님은 군인이시죠.”남자가 말했다. “제가 제안

하나더하겠습니다. 선생님은좋은분같긴한데어디홀린것처럼

보입니다. 제얘길잘들어보세요. 내일옷몇벌을가져다드릴게

요. 고마워할필요도없습니다. 요즘들어체중이좀늘어서단추가

채워지지않거든요.”남자는자신의배를불만인듯바라봤다. “그

래도선생님한테는잘맞을거예요. 선생님이괴링● 역할을맡으신

게아니어서얼마나다행인지요.”

“나한테당신옷을입으라는얘기요?”난혼란스러워물었다.

그가돌아왔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42 JM

Page 4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옷이세탁되는동안만요. 가까운데세탁소가있으니제가얼른

맡기고오면되죠.”

“내제복을다른사람에게넘길순없소!”나는단호한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남자가 말하곤 다소 지친 듯 덧붙였다. “그렇다면

선생님이직접세탁소로가져가시면되지요. 무슨말인지아시겠

죠? 그제복을세탁해야한단말이에요.”

마치어린아이취급을당하는것같아서좀당황스러웠다. 하지

만여기서아무리우겨봤자내옷이깨끗해질리없다는사실은분

명했다. 난고개를끄덕였다.

“그군화도좀곤란한데요.”남자가말했다. “신발사이즈가어

떻게되죠?”

“43.”난고분고분하게대답했다.

“그럼제신발은너무작겠는걸요.”남자가말했다. “이건좀더

생각해보죠.”

4243

● 헤르만괴링. 독일의군인정치가로히틀러의집권에큰역할을했으며요직을두루거쳤다. 나치돌격대지휘관이자게슈타포창설자이며강제수용소를만들었다. 은퇴후사치와향락을즐기느라엄청나게뚱뚱해졌다.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6 PM 페이지43 JM

Page 4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돌아-본문수정 2014.10.13 12:17 PM 페이지400 JM

Page 4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돌아왔다

글·그림김태권

in서울

한정판특별부록

《김태권의십자군이야기》베스트셀러작가의

스페셜만화

김태권작가의기발한아이디어

독일이아닌서울에서깨어난히틀러의흥미진진한그두번째이야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 JM

Page 4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 JM

Page 4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3 JM

Page 5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4 JM

Page 5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5 JM

Page 5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6 JM

Page 5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7 JM

Page 5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8 JM

Page 5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9 JM

Page 5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0 JM

Page 5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1 JM

Page 5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2 JM

Page 5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3 JM

Page 6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4 JM

Page 6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5 JM

Page 6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6 JM

Page 6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7 JM

Page 6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8 JM

Page 6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19 JM

Page 6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0 JM

Page 6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1 JM

Page 6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2 JM

Page 6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3 JM

Page 7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4 JM

Page 7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5 JM

Page 7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6 JM

Page 7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7 JM

Page 7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8 JM

Page 7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29 JM

Page 7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30 JM

Page 77: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31 JM

Page 78: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32 JM

Page 79: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3 AM 페이지33 JM

Page 80: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얼마전《히틀러의성공시대》라는만화를그렸습니다. 정치초년생이던‘듣

보잡’히틀러가 어떻게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집권에 성공하는가, 그

과정을 되짚는 작업이었지요. 자료를 수집하려고 베를린에 갔어요. 거기서

만난지인이어떤책이야기를해주셨답니다. “안그래도히틀러소설이독

일에 나왔는데. 히틀러가 지금 되살아나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래.”그 책

이 바로 이 책, 《그가 돌아왔다(Er ist wieder da)》였어요. 비슷한 주제를

다른방식으로다룬책이있다는이야기를들으니, 이것 참인연이다싶었

죠. 읽어봐야지 마음먹었지만 얼마 후 나는 돌아와 만화 연재를 시작했고,

서울의바쁜일상에묻혀지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연이 있었던 걸까요. 이 재미있는 소설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나도작은부분이나마거들게되었거든요. 히틀러가서울에나타나는

이야기를작은만화로꾸며보았습니다. 원작소설이끝나는지점과비슷하

게한국의히틀러이야기도멈추지요. 그 다음은어떻게될까요?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서울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을까요? 당신의 상상으로 채워주

세요. 제2, 제3의히틀러를막을방법역시당신이상상해주셔야한답니다.

민주주의란제도는뜻밖에도무척여린면이있더군요. “생각이다른사람

을함부로때려잡지않는다”는민주주의최고의미덕이동시에민주주의의

급소이기도 하거든요. “나는 민주주의를 때려 부술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너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므로 나를 때려잡을 수 없다”는 궤변을 앞세운

사람들이 꼭 나타나더라고요. “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가 있으므로, 남의

사상의 자유를 박탈하자는 사상을 가질 자유가 나에겐 있다”는 사람을 어

떻게막을수있을까요? 다른나라들을괴롭히던이골치아픈문제가, 이

제우리사회에도등장하는때같아요.

우리는앞으로어떻게해야할까요?

김태권(만화가)

그가-만화 2014.10.17 10:24 AM 페이지61 JM

Page 81: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4 AM 페이지62 JM

Page 82: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만화 2014.10.17 10:24 AM 페이지63 JM

Page 83: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김태권(만화가)《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장정일 삼국지》일러스트로 데뷔했다. 서

울대학교미학과를졸업하고, 대학원에서고대그리스로마문학을전공

하고있다. 《히틀러의성공시대》를한겨레신문에서호평현재했으며, 《르

네상스미술이야기》《히틀러의성공시대》등다수의작품을출간했다.

그가-만화 2014.10.17 10:24 AM 페이지64 JM

Page 84: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그가돌아왔다

제1판 1쇄인쇄| 2014년 10월 15일

제1판 1쇄발행| 2014년 10월 23일

지은이| 티무르베르메스

옮긴이| 송경은

펴낸이| 고광철

펴낸곳| 한국경제신문한경BP

편집주간| 전준석

편집| 송인국·이혜영

기획| 김건희·이지혜

홍보| 정명찬·이진화

마케팅| 배한일·김규형

디자인| 김홍신

주소| 서울특별시중구청파로463

기획출판팀| 02-3604-553∼6

영업마케팅팀| 02-3604-595, 583 FAX | 02-3604-599

H | http://bp.hankyung.com E | [email protected]

T | @hankbp F | www.facebook.com/hankyungbp

등록| 제 2-315(1967. 5. 15)

ISBN 978-89-475-2984-6 03850

책값은뒤표지에있습니다.

잘못만들어진책은구입처에서바꿔드립니다.

그가 돌아왔다 1쇄(판권) 2014.10.13 2:18 PM 페이지1 JM

Page 85: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
Page 86: 그가 돌아왔다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