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는 살아 있다… 탄핵 정국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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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신문과 방송 2017. 03 이진우 기자협회보 기자 요즘 뜨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는 살아 있다… 탄핵 정국 속 인기 쑥쑥 언론현장 “언론계에 계신 분들이라면 다 바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그만큼 처음 발을 딛는 어려운 보도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고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예전에는 섭외를 일찍 해 놓으면 됐는데 최근에는 오후에 갑자기 바뀌기 일쑤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밤에 온라인으로 회의하면서 다음 날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동진 /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PD) “언론, 특히 지상파방송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요. 인사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거나 수익성 때문에 자본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했어요. 라디오에서는 반성과 공감이 있었고 외압도 없었던 만큼, 관련 이슈가 불거진 초반부터 세밀하게 다룰 그 어느 때보다 뉴스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자 주요 라디오 방송사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은 각각 청취자와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다. 특종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어떤 이슈에 대해 팩트 확인과 검증을 거친다는 점에서 라디오 방송의 파급력과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YTN, SBS, CBC, TBS 라디오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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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요즘 뜨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는 살아 있다… 탄핵 정국 속 …116.125.124.10/kpf/no555/pdf/07.pdf · 지금의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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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 2017. 03

이진우 / 기자협회보 기자

요즘 뜨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는 살아 있다…탄핵 정국 속 인기 쑥쑥

언론현장

“언론계에 계신 분들이라면 다 바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그만큼 처음 발을 딛는 어려운 보도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고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예전에는

섭외를 일찍 해 놓으면 됐는데 최근에는 오후에

갑자기 바뀌기 일쑤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밤에 온라인으로 회의하면서 다음 날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동진 /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PD)

“언론, 특히 지상파방송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요.

인사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거나 수익성 때문에

자본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했어요.

라디오에서는 반성과 공감이 있었고 외압도 없었던

만큼, 관련 이슈가 불거진 초반부터 세밀하게 다룰

그 어느 때보다 뉴스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자 주요 라디오 방송사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은 각각 청취자와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다. 특종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어떤 이슈에 대해 팩트 확인과 검증을 거친다는 점에서 라디오 방송의 파급력과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사진 출처-YTN, SBS, CBC, TBS 라디오 홈페이지 캡처>

Page 2: 요즘 뜨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는 살아 있다… 탄핵 정국 속 …116.125.124.10/kpf/no555/pdf/07.pdf · 지금의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로

수 있었습니다.”

(박진호 / SBS라디오 ‘시사전망대’ 앵커)

“청취자들의 문자가 500~800개 정도 왔었는데

지금은 2,000개 가까이 와요. 세 배 이상 뛴 셈이지요.

그만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관심과 분노를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청취자가 보낸 문자를 보고

실시간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저도 배우고 있고요.

문자가 많을수록 양질의 방송이 된다고 할까요.”

(김현정 /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

“처음에는 음모론이라면서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항의 전화가 많이 왔어요. 하지만 끊임없는 크로스체크를

통해 특종을 이어 갔고, 지금은 격려 전화가 많이

옵니다. 제보도 오는데 그 덕분에 승마계 비리나

장시호 관련 인물 등 단독 보도를 한 적이 있어요.”

(정경훈 /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PD)

지난해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부터 탄핵

정국까지 뉴스 소비가 늘며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청취자들의 문자, SNS를

통한 소통량이 평소보다 훌쩍 늘어나는 등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며, 라디오 방송 제작진은 빠르게

요동치는 이슈를 이끌기 위해 숨 가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요 라디오 방송사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은

사회 의제 설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들의 제작 전반의 과정과 비전, 고민 등을 조명했다.

“묻고 싶은 게 코인데

볼을 긁으면 안 된다는

게 원칙이에요. 철저

하게 당사자주의로 가야 한다는 거죠. 목격자를 불러서

가장 쉬운 언어로 청취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걸

돌직구로 던지는 게 핵심입니다.” 김현정 CBS PD는

“방송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PD는 “정치인, 교수 등

전문가도 좋지만 그보다 직접 사건을 목격한 시민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유가족을 설득해 방송에 나오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1년 CBS에 라디오

PD로 입사해 음악방송 제작을 줄곧 맡아왔다. 3년

후 시사 프로그램 ‘이슈와 사람’의 진행자가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타로 마이크를 잡게 됐고, 그렇게

눌러앉았다. 4년간 능숙하게 진행해 온 김 PD는 새

프로그램인 ‘뉴스쇼’에 투입됐다. 당시 ‘뉴스쇼’를 아는

청취자는 거의 없었다. 현재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진행하던 MBC의 ‘시선집중’이 아침 시간대를

완전히 점령할 때였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진행자와 PD 역할을 동시에 해온 덕에

‘뉴스쇼’는 차츰 입소문을 탔고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간판이 됐다. 송곳 같은 질문으로

정치인을 후벼 팠고, 단독 인터뷰는 타사 매체에

인용되기 이르렀다. 김 PD는 “진행자는 판소리판의

고수처럼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추임새를 넣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일반인들에게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편하게 가려고 하고, 정치인들에게는

감추려고 하는 사안을 벗겨내기 위해 반론을

돌직구로 물어보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김 PD에게도 진행이 어려울

때가 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뷰할 때다. 김 PD는 “오원춘 사건의 경우 단순히

유가족의 슬픈 심경뿐만 아니라 경찰의 무능력한

대처 행태 등을 다뤘다. 처음에는 섭외뿐만 아니라

질문할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려웠다”며 “하지만

방송이 나가고 신뢰가 쌓이면서 오히려 인터뷰를 더

하고 싶다고 의견을 전해 와 감사했다”고 밝혔다.

권력 비판 보도를 서슴지 않는 ‘뉴스쇼’에 가해지는

무언의 압박도 종종 부담으로 다가온다. ‘뉴스쇼’를

연출하는 손근필 CBS PD는 “실제로 방송심의위원회

등에서 압박이 종종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는 압박이

들어오면 그대로 까발린다. 거기에 굴하면 방송을

CBS ‘김현정의 뉴스쇼’

-허를 찌르는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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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 2017. 03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굳은 심지를

내비쳤다. 그는 “항상 마지막 방송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절실하고 간절하다. 방송과 나를 떼어 놓는

건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과 같다”며 “은퇴할 때

지금의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바꾸고 싶은 게 있는데

왜 개편 때까지 기다리

겠어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제작진의

부지런함 때문이다. 김어준 앵커는 제작진과 매일

아침 식사를 하며 회의를 진행한다. 다음 날 방송에

누가 출연하면 좋을지, 어떤 내용을 보강하면

청취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함께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뉴스공장’은 지난해 9월 첫

방송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팟캐스트 다운로드 횟수

300만을 돌파했다. 현재는 500만에 달한다.

“전통적인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틀에서 벗어나

개그콘서트식 시사를 하고 싶었어요. 기득권에

주눅 들지 않고 틀을 깨는 데 거부감이 없는 김어준

앵커가 ‘뉴스공장’의 완벽한 적임자죠.” 정경훈 tbs

PD는 “라디오 업계에서 반향을 일으키려면 어떤

사람이 와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어준은

‘마약급의 MC’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 PD의 칭찬에 김 앵커는 “그냥

우연히 길에서 지인을 조우해 대화하듯 인터뷰를

진행할 뿐이다. 그 길목이 하필 스튜디오가 된 것일

뿐이고 그 상대가 어쩌다 정치인일 뿐”이라고 답했다.

직설적이고 톡톡 튀는 질문에 보수 진영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부 청취자들은 “자극적인 편파

방송”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정 PD는 “지금의

시국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이 어떤 쪽이든 옳지 않은

경우에는 단칼에 자른다. 아이템 선정에 진영 논리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큰 죄를 저지를수록 죗값을 받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무엇이 악인지 헤아리는

눈,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악인을 찾아내는 눈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은 제대로 처벌

받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자기 취재에 대한

자부심이나 열정이

있는 기자들은

라디오 출연에

적극적이고 만족도도 높아요. 라디오에서 보도된

내용이 TV 8시 뉴스에 역으로 반영되는 경우도

많지요. 게이트키퍼가 짚어내지 못한 게 재부각돼

선순환 과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SBS라디오 ‘박진호의 시사전망대’가 민감한

보도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 보도국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서다. SBS 기자들은 시간이

부족해 미처 리포트로 소화하지 못한 취재물을

라디오로 내보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출연 의사를

밝힌다. 출연 시간이 최소 10분 이상인 만큼 취재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데다 전문이

기사화되기 때문에 리포트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진호 앵커는 “‘그것이 알고싶다’를 제작한 PD, 3차

대국민담화 때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서울신문

기자, 우병우 전 수석의 검찰 수사 당시 팔짱

낀 모습을 찍은 조선영상비전 기자 등을 섭외해

리포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취재 후기를 자세히

전하는 방식으로 이슈를 이끌어 왔다”고 설명했다.

“정치인들은 자기가 준비한 얘기를 하려고 해요.

하지만 앵커는 청취자들의 수요가 있는 부분을

물어봐야 하죠. 물론 여기에 답변을 하기도,

무시하기도 해요. 시간 제약에 맞춰서 물고 늘어지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지한 시사는 사양 SBS ‘박진호의 시사전망대’

-라디오·TV 협업으로

청취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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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중요합니다. 또 사전에 듣는 사람들이 다 안다는

생각으로 질문하면 거리감 있는 방송이 되는 만큼,

청취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질문하려고 해요.”

박 앵커는 클로징 멘트를 기획할 때도 청취자의 공감

여부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는 “주요 사안에 대해

네티즌의 반응을 보거나 신문 칼럼 등으로 여론의

방향을 보고, 상식적으로 가장 공분을 일으키거나

공감하는 내용을 꼽는다”며 “감성주의나 대중심리에

영합하는 클로징은 지양해야 하는 만큼, 근거와 논리에

따라 비판할 수 있는 말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소수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균형 있는 보도를

이어 나갈 것”이라며 “청취자들이 자기 의견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인 만큼, 시대정신에

맞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앵커를 포함해

제작진은 불과

4명이었다.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제작진은 지난 2008년

이후 그렇게 10년 가까이 라디오 스튜디오를 지켰다.

그만큼 작가와 PD, 앵커 간의 끈끈한 소통이

돋보였다. 서로에 대한 신뢰도 두터웠다.

신율 앵커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인력도 적고

매체의 특성상 눈에 띄는 특종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어떤 이슈에 대해 팩트 확인과 검증을 거친다는

점에서 파급력과 영향력이 크다”며 “제작진과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아이템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신동진 PD도 “방송에 나가는 리포트는 사전에 어떤 게

나갈지 알고 완벽하게 통제가 가능하지만, 라디오는

생방송 중에 어떤 게 나올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며

“청취자에게 사실을 검증해 신뢰를 높이고 그 믿음에

부흥하기 위해서 오보를 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도전문채널인 YTN은 타사와 달리 라디오의

모든 프로그램이 시사물로만 이뤄져 있다. 그만큼

속보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사건에 빠르게 대응하는 제작 능력이 필수다. 신 PD는

“속보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모니터로

실시간 체크하며 수시로 속보를 내보낸다”며 “앵커는

속보가 뜨면 알아서 경중을 판단하고 그 내용을

청취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상황 대처력이 매우 빠르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대개 백화점식 나열이

많아요. 우리는 포맷 그대로 가되, 지루하지 않도록

재미있게 진행하면서 조화를 이루려 하고 있어요.

말의 맛을 살리는 자유로운 진행으로 청취자들을

편안하게 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죠.” 신율 앵커가

밝히는 진행 노하우다. 신 앵커는 “디지털이 되면서

‘라디오는 죽었다’고 하지만 아직 영향력이 막강하다.

눈을 감으면 안 보이지만 귀를 막으려면 손을 써야

하지 않나. TV의 경우 정신이 분산되지만 라디오는

집중시키는 만큼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의미 있는 뉴스거리를 발굴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진행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라디오 방송이

되게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부터 탄핵 정국까지

뉴스 소비가 늘며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훌쩍 커졌다.

청취자들의 문자, SNS를 통한 소통량이

부쩍 늘어나는 등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며,

제작진은 빠르게 요동치는 이슈를 이끌기 위해

숨 가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팩트체크로 신뢰 높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