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드라마, 20년 뒤는 어떻습니까? 을 통해 본 한국형 장르 … · 한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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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그널>(tvN)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찌 보면 뻔한 소재가 아닌가. 과거와 현재가 무전기 하나로 이어져 소통하는 설정은 영화 <동감>에서,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 는 설정은 드라마 <나인>(tvN)에서 이미 등장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우직한 자와 출세에 눈이 멀어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 하지 않는 자의 대결은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가 가지는 대결 구도이고, 작은 실마리 하나로 범인을 잡아내는 것 또한 극적인 반전을 취할 때 주로 사용하는 포맷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다르게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탄 탄한 구성과 세밀한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건 ‘장르 드라마’로서의 특성이다. 장르 드라마란 무엇인가 ‘장르 드라마’,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장르’의 사전적 의미는 “문학, 예술에 서의 부문, 종류, 양식, 형(型) 따위에 따른 갈래”이며, “텍스트의 유사와 차 이에 기초하여 구분 가능한 범주화를 의미”한다. 1 드라마 장르는 텍스트 내용에 따라 멜로, 홈, 로맨스, 역사, 수사, 액션 등으로 구분되고, 편성 시간에 따라 일일극, 주말극, 월화극, 수목극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범위를 좁혀 의학, 범죄 수사, 정치, 사회 부조리 등 특정 주 제에 집중하는 드라마를 일컬어 ‘장르 드라마’라 통칭하고 있다. 혹자는 ‘전 장르 드라마, 20년 뒤는 어떻습니까? <시그널>을 통해 본 한국형 장르 드라마의 가능성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판타지-스릴러-범죄 장르물들이 높은 완성도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장르 드라마’의 약진으로, 일부 마니아층의 열광을 넘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 양상이다. 완성도와 화제성 높은 장르 드라마의 등장과 성공 요인, 그리고 그 의미를 들여다보았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시그널>(출처: tvN홈페이지) <CSI 과학 수사대>(출처: 구글 이미지) 1 박노현(2009).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 -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 휴머니스트. p.193. CONTENTS REVIEW 2016. 04+05 VOL. 05 33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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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장르 드라마, 20년 뒤는 어떻습니까? 을 통해 본 한국형 장르 … · 한동안 sns에 회자되던 이야기가 있다. “미국 법정 드라마는

드라마 <시그널>(tvN)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찌 보면 뻔한 소재가 아닌가. 과거와

현재가 무전기 하나로 이어져 소통하는 설정은 영화 <동감>에서,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

는 설정은 드라마 <나인>(tvN)에서 이미 등장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우직한 자와 출세에 눈이 멀어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 하지 않는 자의 대결은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가 가지는 대결 구도이고, 작은 실마리 하나로 범인을 잡아내는 것 또한 극적인 반전을 취할

때 주로 사용하는 포맷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다르게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탄

탄한 구성과 세밀한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건 ‘장르

드라마’로서의 특성이다.

장르 드라마란 무엇인가

‘장르 드라마’,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장르’의 사전적 의미는 “문학, 예술에

서의 부문, 종류, 양식, 형(型) 따위에 따른 갈래”이며, “텍스트의 유사와 차

이에 기초하여 구분 가능한 범주화를 의미”한다. 1

드라마 장르는 텍스트 내용에 따라 멜로, 홈, 로맨스, 역사, 수사, 액션

등으로 구분되고, 편성 시간에 따라 일일극, 주말극, 월화극, 수목극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범위를 좁혀 의학, 범죄 수사, 정치, 사회 부조리 등 특정 주

제에 집중하는 드라마를 일컬어 ‘장르 드라마’라 통칭하고 있다. 혹자는 ‘전

장르 드라마, 20년 뒤는 어떻습니까?

<시그널>을 통해 본 한국형

장르 드라마의 가능성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판타지-스릴러-범죄 장르물들이 높은 완성도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장르 드라마’의 약진으로,

일부 마니아층의 열광을 넘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 양상이다.

완성도와 화제성 높은 장르 드라마의 등장과 성공 요인,

그리고 그 의미를 들여다보았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시그널>(출처: tvN홈페이지)

<CSI 과학 수사대>(출처: 구글 이미지)

1 박노현(2009). <드라마, 시학을 만나다 - 텔레비전 드라마의 미학>, 휴머니스트. p.193.

CONTENT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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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 장르 드라마, 20년 뒤는 어떻습니까? 을 통해 본 한국형 장르 … · 한동안 sns에 회자되던 이야기가 있다. “미국 법정 드라마는

문직 드라마’라고도 한다.

장르 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방영을 시작한 미국 드라마 <CSI 과학 수사

대>(美 CBS)부터라 볼 수 있다. 범죄 수사물인 <CSI>는 범죄에 관련된 증거물을 분석하는 법의

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수사 과정은 치밀했고, 추리는 정교했다. 과학으로 증명해야 하는 증거들

은 각각의 설득력이 있었다. 1970년대 대표 수사물이라 할 수 있는 <형사 콜롬보>(美 NBC)가

콜롬보 1인의 수사극이었고, 1980년대 <마이애미의 두 형사>(美 NBC)가 형사 중심의 범인 추

적 액션극이었다면, <CSI>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과학 수사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 과학 수사대 개인들의 관계나 감정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데에만 집중했다. 얽혀진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예상치 못

한 복선이 드러나며 반전을 거듭했다. 반전은 시청자와의 두뇌 싸움으로 이어져 몰입도를 한층

높여주었다. 출생의 비밀, 불륜, 금지된 사랑과 같은 일상화된 로맨스, 또는 경쾌한 트렌디 드라마

나 시트콤, 궁중 여인 암투사에 익숙해 있던 한국 시청자들에게 ‘미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런 미드의 영향을 받고 해외 콘텐츠 경험의 기회가 늘어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장르 드라마

마니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장르 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그널>을 통해 본 장르 드라마의 성공 요인

<시그널>은 최고 시청률 12.5% 2를 기록하며 잘 만들어진 장르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도 없었고, ‘유시진 앓이’를 유발하는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 같은 꽃미남 배우도 없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뿐만 아니라 한국형 장르 드라마의 성장 가능성까지 보여준 <시

그널>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주제의 보편성이다. <시그널>은 부정할 수 없는 악의 존재를 무조건 징벌하는 것이 아

니라, 현실의 범주 안에서 실현 가능한 단죄, 그리고 용기나 정의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잔여

의 불의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결기를 보여주었다. 무조건적인 응징은 과도한 영웅심을 불러오

거나 현실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그널>은 악은 뿌리 뽑히지 않

았지만, 작은 힘이 모이면 언젠가는 악이 사라진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겼다. 넘볼 수

없는 영웅의 탄생 대신 작은 용기 하나만 있다면 누구나 정의롭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

로써, 무거웠던 주제는 일상 속으로 녹아들었다.

두 번째는 안정적이고 자율적인 제작 시스템이다. 총 16부작이었던 <시그널>은 방송 전에

10부까지 제작을 마쳤고, 대본은 16부 전체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시청자와의 끝없는 밀당을 위

해 예상하지 못한 스토리, 반전의 묘미를 살려내야 하는데, 한국 드라마 제작의 고질적 문제인 쪽

대본으로는 이를 담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와 감독의 의도에 따라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그려낼 수 있는 사전 제작이 <시그널>의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시그널> 제작사는 지상파에 편성 요청을 하였으나 타

임 슬립 수사물의 시청률 확보를 확신할 수 없었던 지상파는 이 드라마를 선택하지 않았다. 지상

파의 입장에선 수십 년 동안 드라마 제작을 주도해오면서 형성된, ‘드라마는 이러해야 한다’는 고

미드의 영향을 받고 해외 콘텐츠

경험의 기회가 늘어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장르 드라마에 대한

마니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장르 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그널>(출처: tvN홈페이지) 2 닐슨코리아 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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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된 틀을 벗어버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와 경쟁해야 하는 케이블 방송은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두려

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인적 자원의 무한한 상상력과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보장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과 작가의 기획을 믿고 선택한

케이블 방송사의 결단도 중요했다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배우들이다. 주연이었던 김혜수와 조진웅, 이제훈의 소름 돋는 연기는 두말할 나

위 없었고, 광역수사대 요원들 및 경찰과 범인 등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력도 안정적이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연극 무대에서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만들어온 배

우들이었다. 인기 배우들보다 배역에 맞는 새로운 인물을 끊임없이 찾아낸 결과, 이들의 안정된

낯섦이 인물에 대한 몰입을 한층 높여주었다.

장르 드라마 주요 작가별 대표 작품

작가 대표작품

권은미 <갑동이>(tvN, 2014)

김은희<위기일발 풍년빌라>(tvN, 2010), <싸인>(SBS, 2011),

<유령>(SBS, 2012), <쓰리데이즈>(SBS, 2014), <시그널>(tvN, 2016)

김지우<학교>(KBS, 1999), <부활>(KBS, 2005), <마왕>(KBS, 2007),

<진진>(KBS, 2013), <상어>(KBS, 2013), <기억>(tvN, 2016)

도현정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SBS, 2015), <늪>(MBC, 2003))

류용재 <개와 늑대의 시간>(MBC, 2007), <라이어 게임>(tvN, 2014), <피리부는 사나이>(tvN, 2016)

박경수 <추적자>(SBS, 2012), <황금의 제국>(SBS, 2013), <펀치>(SBS, 2014)

박재범<신의 퀴즈> 시즌1~시즌4(OCN, 2010~2014), <굿닥터>(KBS, 2013),

<원혼>(KBS, 2014), <블러드>(KBS, 2015)

박혜련1 <세계의 끝>(jtbc, 2013)

박혜련2<논스톱> 시즌3, 시즌5(MBC, 2002~2005), <드림 하이>(KBS, 2011),

<너의 목소리가 들려>(SBS, 2013), <피노키오>(SBS, 2014), <페이지 터너>(KBS, 2016)

유영선 <뱀파이어 탐정>(OCN, 2016)

이재곤 <특수사건 전담반 TEN> 시즌1, 시즌2(OCN, 2011~2013)

이명숙 <더 바이러스>(OCN, 2013)

이유진 <실종 느와르 M>(OCN, 2015)

장민석 <동네의 영웅>(OCN, 2015)

정윤정 <별순검> 시즌1, 시즌2(MBC 드라마넷, 2007~2008), <미생>(tvN, 2014)

최완규<애드버킷>(MBC, 1998),<로비스트>(SBS, 2007), <식객>(SBS, 2008),

<종합병원> 시즌2(MBC, 2008), <아이리스>(KBS, 2009), <마이더스>(SBS, 2011)

최희라 <골든 타임>(MBC, 2012)

한정훈 <뱀파이어 검사> 시즌1, 시즌2(OCN, 20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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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의 한수는 OST였다. 산울림의 <회상>,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 신중현의 <나는

너를>과 <떠나야 할 그 사람>까지, 모두 40대 이상에겐 익숙한 노래이다. 이 노래들은 그 시대의

유행 음악으로서 시간적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했던 사건의 상황들, 등

장인물의 심리적 변화 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원곡이 아니라 젊은 가수들의 리메이크 곡을 사용함으로써, 시청자층을 20대와 30대에서

40대까지 확대하는 데도 기여했다. 전국 유료 매체 가입 가구 기준 <시그널>의 연령별 시청률은

40대 여성 19.77%, 40대 남성 13.2%, 30대 여성 10.7% (TNMS 집계) 순이었다.

우리는 왜 장르 드라마를 보는가

얽히고설킨 복선 위에서 반전을 무기로 시청자와 두뇌 싸움을 하기 때문에 전개는 어렵고 복잡하

다. 전문적인 방법이 동원되기에 때로는 극 자체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처음부터 시청

하지 않았거나 중간에 몇 회를 놓쳤다면, 스토리를 쫓아가는 것도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

드라마를 선호하는 매니아층이 형성되고, 한 자리 수 시청률이 두 자리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매체 환경이다. 2000년을 넘어서며 빠른 속도로 보급된 인터넷은

방송 채널을 통하지 않고도 미드를 포함한 해외 드라마들을 손쉽게 시청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방

송사들은 IMF 침체기를 지나 재도약기를 맞이하면서 경영의 안정을 찾았다. 더불어 프로그램 수

급이 다양화되고, 자체 제작도 활성화하였다.

특히 케이블 방송사들은 채널별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콘텐츠 전략을 수립하면서, 프로그

램 제작과 이를 기반으로 한 유통 창구의 다각화를 통해 드라마를 콘텐츠 상품으로 자리매김해갔

다. 그 결과 드라마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방송국이 정한 편성 시간에 시청자의 시간을 맞춰야 하는 실시간 방송과 다른 VOD 시

청 환경이 빠른 속도로 조성되면서, 10여 부로 구성된 한 시즌 드라마를 몰아 보는 ‘정주행 폐인’

이 생기기도 했다. 이는 복잡한 구성 때문에 이어보기를 하지 않으면 몰입하기 어렵다는 장르 드

라마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유용한 장치이기도 했다.

사회적 의식의 변화도 장르 드라마 시청을 유도하는 데 기여했다. 자신의 지식을 사회 문제나

타인을 돕는 데 쓰는 숙련된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사회적 약자나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

<시그널>(출처: tvN홈페이지)

케이블 방송사들은 채널별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콘텐츠

전략을 수립하면서, 프로그램

제작과 이를 기반으로 한 유통

창구의 다각화를 통해 드라마를

콘텐츠 상품으로 자리매김해갔다.

그 결과 드라마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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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사람들로 인정받아왔다. 그런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이 의사, 변호사, 정치인, 기업가 등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전문가 집단은 자신들만의 담을 쌓고 전문성을 독점했고, 그것이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전문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사회적 지진아가 되

는 듯, 너도나도 앞다투어 전문가가 되고자 했다. 전문가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높고 화려한 담 안

의 세상은 유혹적이었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기도 했다. 부

와 권력의 상징이 된 전문가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당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드라마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시청자들은 전문가들의 내밀한 세계를 다룬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장르 드라마의 내일

한동안 SNS에 회자되던 이야기가 있다. “미국 법정 드라마는 법을 보여주고, 일본 법정 드라마는

교훈을 주고, 한국 법정 드라마는 연애를 한다”고. 한국의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주든 ‘기승전 로맨

스’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후 지속적

으로 제작되어온 장르 드라마들은 이제 어느 정도 한국형 장르 드라마의 틀을 잡은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다듬어야 할 점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서사 구조를 좋아하는 한국 시청자들

의 특성을 고려할 때, 숨 막히는 반전의 연속 속에서도 왜 그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문

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심리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조금은 서술적으로 그려

도 좋을 듯하다. 또한 무거운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시청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극

복하기 위해 긴장 이완 조절 장치를 배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시그널>에서 김혜수와 조진

웅의 옅은 러브 라인이나 김혜수의 어리버리 경찰 초년병 시절의 이야기들이 인물이나 상황을 통

해 진지함의 무게를 덜어주었던 것처럼.

장르 드라마가 시청률 30%를 넘는 대박 드라마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구하

는 장르의 틀 안에서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사실감 있게 담아낸다면 작품성

과 화제성 모두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한국형 장르 드라마, <시그널>의 대사처럼 “20년 후는

어떻습니까? 장르 드라마의 인기는 여전한가요?”

<시그널>(출처: tvN홈페이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된 전문가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당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드라마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시청자들은 전문가들의 내밀한

세계를 다룬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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