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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제목: 고전문학강독 담당교수: 최원오 강좌연도: 2013년도 1학기 수강대상: 광주교육대학교 국어과 3학년 강의구성: 초등교사의 인문학적 자질함양을 목표로 그와 관련 된 한국고전문학(구비문학, 기록문학)의 주요 작품 을 소개하고 교육적 함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 함. 강의방법: 교수 강의+ 퀴즈 강의자료: PPT자료와 동일한 내용을 한글파일로도 제공함. 일부 자료는 PPT자료를 보충하는 내용을 포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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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좌제목: 고전문학강독 담당교수: 최원오 강좌연도: 2013년도 1학기 수강대상: 광주교육대학교 국어과 3학년 강의구성: 초등교사의 인문학적 자질함양을 목표로 그와 관련 된 한국고전문학(구비문학, 기록문학)의 주요 작품 을 소개하고 교육적 함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 함. 강의방법: 교수 강의+ 퀴즈 강의자료: PPT자료와 동일한 내용을 한글파일로도 제공함. 일부 자료는 PPT자료를 보충하는 내용을 포함함.

  • 고전문학강독 6주차

    강의내용: , 읽기-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킨 사랑과 의리 강의목표: 1. 소설의 배경인 16세기말~17세기 초의 동아시아를 이해할 수 있다. 2. , 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 3. , 이 보여준 초국적 공간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 조선: 임진왜란(1592), 丁酉再亂(1597), 丁卯胡亂(1627), 丙子胡亂(1636)

    중국: 明淸 교체의 분기점-明이 遼東 深河에서 後金(훗날의 淸)과의 富車戰鬪(1619)에서 패배.

    일본: 戰國時代 말기에 전국 통일의 야망을 키웠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살해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정권을 쟁취(1590)하면서 중국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假道入明’을 구실로 임진왜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한 뒤 사망(1598)하고, 그 후 關東地方에 근거지를 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실권을 장악하며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 또는 江戶幕府) 건립(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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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 趙緯韓(1567~1649)이 1621년에 지은 작품. 김기동이 불교소설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 이래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① 임진란을 전후한 역사적 사실성을 바탕으로 창작된 피로문학(被虜文學)

    ② 어려운 난관을 숭고한 사랑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애정소설

    ③ 전쟁이 초래한 가족이산의 고통, 재회의 기쁨, 가족애 등을 그린 소설

    ④ 근대소설적 성격을 가진 최초의 소설

    ⑤ 역사소설

    ⑥ 절대적 고난의 상황에 놓인 개인이 고난의 현실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⑦ 임진왜란과 그 이후 동아시아 제국을 작품 속에 설정하여 공간적 확대를 보여줌으로써 17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소설

    : 초국적 공간인식의 부각 1-1

  • 최척과 옥영의 서사가 보여주는 초국적 공간과 세계관: 가족적 인간애의 탄생

    ⑴ 최척은 용모가 빼어나고 생각이 주도면밀하여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는 데다 문장에도 능했으므로, 여유문은 이런 최척을 매우 아껴서 한 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정도였다. 얼마 뒤 총병의 군대가 명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유문은 최척을 전사한 병사 한 사람 대신 명부에 끼워 넣어 국경을 통과하게 한 뒤 요흥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살았다. (중략) 이때 최척은 요흥에 머물며 여유문과 의형제를 맺었다. 여유문이 누이동생을 최척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보이자 최척은 완강히 거절하였다.

    : 초국적 공간인식의 부각1-2

  • 최척과 옥영의 서사가 보여주는 초국적 공간과 세계관: 가족적 인간애의 탄생

    ⑵ 돈우는 명민한 옥영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혹 달아날까 싶어 좋은 옷과 맛난 음식을 주어 그 마음을 안심시키려 했다. 옥영은 물에 빠져 자살할 생각으로 몇 번이나 배에서 빠져 나왔지만 그때마다 들켜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략) 돈우는 퍽 가련히 여겨 옥영에게 ‘사우’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는, 배를 타고 장사하러 나갈 때마다 항해장의 일을 맡겨 중국의 복건성과 절강성 일대를 함께 돌아다녔다. (중략) 송우가 돈우에게 백금 3정으로 옥영의 몸값을 치르고 데려가고 싶다고 청했다. 그러자 돈우는 발끈 성을 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을 얻은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 사람의 단정한 모습과 성실한 성품을 좋아해 친형제 대하듯이 지냈지요.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며 떨어져 지낸 적이 없건만, 이 사람이 여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 두 사람의 일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천지 귀신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내 비록 어리석다 하나 목석은 아니니, 어찌 이 사람의 몸값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돈주머니에서 은 10냥을 꺼내 옥영에게 주었다.

    : 초국적 공간인식의 부각1-3

  • 최몽선과 홍도의 서사가 보여주는 초국적 공간과 세계관: 가족적 인간애의 탄생

    최척 부부는 둘째 아들 몽선이 장성하자 어진 아내를 얻어주려고 며느리를 구하고 있었는데, 이를 陳偉慶의 딸 홍도가 듣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 진위경은 임진왜란 시 劉總兵의 군대에 들어가 조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녀가 미처 자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였던 홍도는 이모에게 의지하여 살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라에 꼭 한번 가서 초혼하고 왔으면 하여 밤낮으로 한이 가슴에 사무쳤으나, 여자의 몸으로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음”(願一至父死之國 復哭而來 耿耿寃恨銘于心腑 而身爲女子 計不知所出)을 애달파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최씨 댁 며느리가 되어 조선 땅에 가보고 싶다는 계획을 이모에게 알리고, 그 즉시 이모도 동의하여 최척에게 가서 홍도의 사정을 말한다. 최척 역시 “친척 하나 없는 먼 이국 땅에 사노라니 늙은 부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어린 아들 생각으로 늘 가슴이 아팠”(而遠托異國 四顧無親 孫念老父 傷心稚子 日夜疚懷)던 터라, 홍도의 뜻을 가상하게 여겨 그녀를 며느리로 받아들인다.

    : 초국적 공간인식의 부각1-4

  • 최척, 최몽석, 그리고 歸化 노인의 서사가 보여주는 초국적 공간과 세계관:

    가족적 인간애의 탄생

    1619년 누르하치가 遼陽에 쳐들어가 여러 고을을 함락하고 명나라 군사들을 대거 살상하자 명나라 황제는 중국 전역의 병사를 일으켜 이를 토벌하고자 한다. 최척 역시 이 토벌대에 들어갔다가 누르하치 군대의 포로가 되고, 그곳의 감옥에서 장남 崔夢釋을 만나 해포를 풀다가 한 오랑캐 노인의 의심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오랑캐 노인의 추궁을 받게 되자 최척 부자는 화를 당할까 싶어 곧이곧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오랑캐 노인은 자신의 내력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탈출을 도와주게 된다.

    “두려워할 것 없다. 나도 본래는 삭주에서 병사로 있었다. 고을 부사의 가렴주구가 너무 괴로워 온 가족이 오랑캐 땅에 들어와 산 지 벌써 10년이다. 와 보니 이곳 사람들은 성품이 정직하고 가렴주구도 일삼지 않더라. 인생이란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것인데, 벼슬아치들의 매질에 시달리며 움츠리고 살 이유가 뭐 있겠나? 누르하치는 내게 정예 병사 80명을 주며 조선 사람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했지. 그런데 지금 너희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내 비록 누르하치에게 질책을 받겠지만 어찌 너희들을 놓아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초국적 공간인식의 부각1-5

  •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보여주는 초국적 공간과 세계관

    최척, 옥영, 유여경, 돈우, 송우, 홍도, 오랑캐 귀화 조선인 노인 등에게 국적이나 민족은 결코 중요하지 않으며, ‘가족회복하기’ 내지는 그 선험적 형태로서의 ‘가족지키기’만이 오직 중요할 뿐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동아시아 각국에서 발생하였던 전쟁은 동아시아인들로 하여금 ‘가족이산과 해체’를 ‘가족재회와 회복’의 형태로 바꾸려는 공통적 열망을 갖게 했고, 그것이 ‘가족애’가 확장된 ‘가족적 인간애’의 형태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포로’가 있다.

    그 점에서 뿐만 아니라 17세기 서사문학에서 ‘포로’는 초국적 세계관의 탄생을 형상화한 국제 유랑자였다.

    또한 이것이 최척과 옥영이 재회한 安南, 그리고 이들이 19년을 정착하여 살게 되는 항주에서 집중적으로 실천 및 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항주와 안남은 초국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 초국적 공간인식의 부각1-6

  • 은 洪世泰(1653~1725)의『柳下集』에 수록된 것과 단국대 나손문고 소장본[국문본], 박재연 소장본 등 3종이 밝혀져 있는 상태임.

    김영철은 박재연 소장본의 작품 내 기록에 따르면 1599년에서 1683년까지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또 홍세태의 라는 시의 병서에 따르면 그의 삶에 비분함을 느껴 立傳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에 묘사되어 있는 그의 삶을 보면 당연히 비분강개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영철은 1619년 深河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후금의 포로가 되고, 다시 탈출하여 살다가 1630년 조선의 進賀使 일행이 탄 배에 잠입하여 마침내 귀향한다. 그 후 明을 지원하기 위한 전쟁, 後金을 지원하기 위한 전쟁에 징발되었다가 재산상의 손해만 입고, 늘그막에는 慈母山城(평안남도 慈山郡에 있는 산성)의 축성과 방비에 응하면 군역을 면해준다는 말에 네 아들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살다가 84세에 죽는다.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그가 나라로부터 받은 혜택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이산의 아픔, 경제적 빈곤만이 그의 삶을 철저하게 장식했을 뿐이다.

    은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한 하층 조선인의 삶을 주목한 소설

    : 초국적 인간의 부각2-0

  • 김영철은 세 번의 결혼을 한다. 한 번은 후금의 여자와 또 한 번은 명나라의 여자와, 마지막은 조선에 귀국하여 조선의 여자와 결혼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 외국인과의 두 번의 결혼이다.

    첫 번째 결혼: 1619년 김영철은 심하 전투에서 후금의 포로가 되어 참수될 위기에 처했을 때, 오랑캐 장수 아라나가 누르하치에게 “제 아우가 전투 중에 죽었는데, 이 사람의 얼굴이 제 아우와 흡사합니다. 목숨을 살려 제가 부릴 수 있게 해주시길 청합니다.”(吾弟死於戰 此人貌 類吾弟 請免而役之)라고 하여 참수를 모면한다. 아라나가 김영철을 집으로 데려갔을 때 그 집 사람들이 김영철을 보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왔다고 여길 정도로 모습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영철은 전장에 나갈 때 조부가 한 말, 즉 “네가 돌아오지 못하면 우리 집안은 대가 끊긴다.”(汝不歸 則吾世絶矣) 는 말을 늘 가슴 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다가 왼쪽 발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당한 것은 조부의 그런 신신당부 때문이었다. 그러자 아라나는 김영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弟嫂를 김영철과 혼인시킨다.

    : 초국적 인간의 부각2-1

  • 김영철은 세 번의 결혼을 한다. 한 번은 후금의 여자와 또 한 번은 명나라의 여자와, 마지막은 조선에 귀국하여 조선의 여자와 결혼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 외국인과의 두 번의 결혼이다.

    첫 번째 결혼: 1619년 김영철은 심하 전투에서 후금의 포로가 되어 참수될 위기에 처했을 때, 오랑캐 장수 아라나가 누르하치에게 “제 아우가 전투 중에 죽었는데, 이 사람의 얼굴이 제 아우와 흡사합니다. 목숨을 살려 제가 부릴 수 있게 해주시길 청합니다.”(吾弟死於戰 此人貌 類吾弟 請免而役之)라고 하여 참수를 모면한다. 아라나가 김영철을 집으로 데려갔을 때 그 집 사람들이 김영철을 보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왔다고 여길 정도로 모습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영철은 전장에 나갈 때 조부가 한 말, 즉 “네가 돌아오지 못하면 우리 집안은 대가 끊긴다.”(汝不歸 則吾世絶矣) 는 말을 늘 가슴 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두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다가 왼쪽 발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당한 것은 조부의 그런 신신당부 때문이었다. 그러자 아라나는 김영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弟嫂를 김영철과 혼인시킨다.

    아라나는 그를 제수와 결혼시킨 뒤 두 아들을 낳자 “자네는 이제 우리 집안사람이니 조금도 의심하지 않지만, 저 두 놈은 앞으로 필시 도망가려 할 터이니, 잘 지키도록 하게.”(若今爲吾一家耳 誠信不疑 彼二蠻子 將必亡 汝可用心防守)라며, 그에게 명나라 포로 둘을 감시하도록 하고서는 寧遠衛(명나라가 遼寧城 興城縣에 두었던 부대의 이름) 전투에 참가하기에 위해 집을 떠난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인간적 情理’(인정과 도리)에 충실하려는 아라나의 행위는 전혀 연고가 없는 김영철과 같은 외국인에게는 감동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라나와 김영철이 견지하는 인간적 정리는 서로 조화되기가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철은 김영철대로 고국에 돌아가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인간적 정리’를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 초국적 인간의 부각2-2

  • 두 번째 결혼: 전유년은 김영철이 감시해야 할 명나라 포로 둘 중의 하나였는데, 이전부터 김영철과 전유년은 같은 포로 신세였기에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던 터였다. 1625년 8월 15일 밤, 전유년이 김영철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여기에 이미 처자를 두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과는 다르겠지.”(然此旣有妻子 思歸之念 必與吾徒殊) 이에 김영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짐승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하는데, 내가 타국에서 얻은 처자식 때문에 부모님을 잊을 리가 있겠소? 고국으로 살아 돌아가 단 한 번만이라도 부모님을 뵐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거요. 하지만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달아나다 붙잡혀 치욕을 당했소. 지금 또 달아났다가 잡히면 분명 목숨을 잃고 말 테니 어쩌겠소?”(獸猶首丘 豈以異國妻子 而忘其父母乎 生還故國 一見父母 則死不恨 顧前再辱 今若亡而見覺 必死奈何).

    이에 전유년은 함께 탈출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김영철이 마음을 바꿔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두 명의 누이동생 중 한 명을 소실로 주겠다고 약속한다. 즉 김영철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약속이야, 그것도 외국인에게 한 약속이야 나중에 모른 체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전유년은 탈출에 성공한 뒤, 탈출을 모의하던 당시의 맹서를 지켜야 한다며 그의 부모를 설득해 누이동생 중 한 명을 김영철과 결혼시킨다. 김영철이 어떻게든 고국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누이동생을 김영철과 혼인시키는 전유년의 행위는 전유년 나름대로 그가 견지하고 있는 ‘인간적 정리’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김영철은 결혼 후, 마을 잔치가 있을 때마다 불려 다니며 ‘조선노래와 춤’을 선보여 선물로 받은 비단으로 차츰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되고, 아들도 둘이나 낳아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는 듯 했지만, 1630년 10월 조선의 진하사 일행을 태운 배가 북경을 둘렀다가 다시 등주에 정박한 1631년 봄에 친구의 도움으로 배에 몰래 숨어들어가 귀국에 성공한다.

    : 초국적 인간의 부각2-3

  • 김영철은 귀국 후 두 번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한번은 명나라를 위한, 또 한 번은 후금을 위한 참전이었다. 거기서 김영철은 전유년과 아라나를 만나게 된다.

    “영철은 본래 조선 사람인데, 8년 동안은 우리 백성이었고, 6년 동안은 등주 백성이었다가 이제 다시 조선 백성이 되었다. 조선 백성 또한 우리 백성이다. 더구나 큰아들이 군중에 있고 작은아들은 우리 건주에 있으니, 부자가 모두 우리 백성인 셈이다. 저 등주라고 해서 어찌 우리 백성이 될 수 없겠느냐?”(英哲本朝鮮人 八年爲我民 六年爲登州民 今還爲朝鮮民 朝鮮民亦我民也 況其大男在我軍中 小子在我建州 父子皆爲我民 則彼登州 獨不爲我民乎)라는 지배자의 통치 논리에 따라 홍타이지는 김영철에게 죄를 묻지 아니하고, 오히려 상을 내린다. 그런데 홍타이지 식의 통치 논리가 아니더라도,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발생한 동아시아 각국에서의 전쟁은 실제로 여러 부류의 일시적 국제정착민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자신이 견지한 ‘인간적 정리’의 내외적 조화/갈등에 따라 초국적 질서가 형성될 수 있는 일시적 사건이 수없이 明滅하였다. 김영철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이를 잘 말해준다.

    영철은 가난 속에서 하릴없이 늙어가며 가슴속에 불평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성 위에 올라가 북쪽으로 건주를, 남쪽으로 등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면 서글픈 생각에 눈물이 떨어져 옷깃을 적셨다. 영철은 언젠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처자식을 버리고 와 두 곳의 처자식들로 하여금 평생을 슬픔과 한탄 속에서 살게 했으니, 지금 내 곤궁함이 이 지경에 이른 게 어찌 하늘이 내린 재앙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타국에 떨어져 살다 끝내 부모의 나라로 돌아왔으니 또한 한스럽게 여길 게 뭐 있겠나?”

    : 초국적 인간의 부각2-3

  • 자모산성을 방비하는 한 늙은이의 시선, 즉 김영철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정확하게 어느 한 곳을 응시하지 못하고 있다. 처자식이 후금의 땅 건주에도 있고, 명나라의 땅 등주에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머무는 조선에도 그의 처자식이 있다.

    17세기 동아시아 내에서의 전쟁이 가져온 국제 ‘이산’은 김영철이라는 개인이 견지하는 ‘인간적 정리’로는 해결될 수 없는, 또는 치유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임을 제기하고 있다. 김영철 개인이 견지하는 그 ‘인간적 정리’라는 게 조선이라는 민족국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효’―적어도 그가 조선의 문사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도그마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민족국가를 뛰어넘어 국제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효’를 저버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선택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갈등과 고민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7세기 서사문학이 보여준, 초국적 인간의 암울한 자화상이다.

    : 초국적 인간의 부각2-4

  • 6주: , 읽기-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킨 사랑과 의리

    참고문헌

    윤인진, 박상수, 최원오 엮음(2010), 동북아의 이주와 초국가적 공간, 아연출판부.

  • 6주: , 읽기-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킨 사랑과 의리

    내용정리

    1. 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포로문학 중의 하나이다. 2. 은 조선, 중국, 일본, 안남 등 초국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3. 여기서 초국적 공간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주인공들이 어느 한 공간에 갇혀 사고하고 있지 않는 인물형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4. 은 조선과 중국[청] 중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양쪽에 마음을 모두 줄 수밖에 없는 초국적 인간을 제시하고 있다.

  • 6주: , 읽기-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킨 사랑과 의리

    퀴즈

    1. 의 배경이 되는 전쟁은 무엇인가? 2. 과 에서, 이전의 소설과는 달리 새

    롭게 부각되는 공간과 인간형을 각각 명명하면?

  • 6주: , 읽기-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킨 사랑과 의리

    퀴즈정답

    1. 임진왜란 2. 초국적 공간, 초국적 인간

  • 차시예고

    읽기 -죽음의 표현방식과 의미